행복의 정의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생각
1. 배경
이전의 포스트에서는 행복을 만족과 동의어로써 정의하였다. 하지만 늘 찜찜하게 생각했던 것은 "인간은 언제, 어느 것에, 왜 만족하게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의 결여였다. 나는, '심리학으로 팔아라' 라는 책을 통해 해답없는 질문에 관한 힌트를 얻고 행복의 정의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의해 보기로 했다. '심리학으로 팔아라' 라는 책에서는 인간의 욕구를 본능적 8욕구와 학습된 9욕구로 구분하여 인간의 욕구를 공략하는 방식으로 세일즈를 진행하는 요령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세분화된 욕구의 구분은 나에게 욕구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이전부터 욕구는 인간의 소프트웨어를 구성하는 3대 요소 - 감정, 생각(이성), 욕구-중 하나 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욕구의 역할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욕구에 대한 깊은 사고를 통해, 행복, 불안, 존재에 관한 관계가 이전보다 명확히 구분됨을 느낄 수 있었다.
2. 존재-욕구-만족-행복(존재-욕구-결여-불안/스트레스)
깊은 사고활동 끝에, 존재, 욕구, 만족, 행복, 불안에는 다음과 같은 인과관계가 있지 않을까라는 '가정'을 세우게 되었다.
ⅰ. 행복과 만족이 같은 의미라면, 만족/결여의 대상은 무엇인가?
무엇에 만족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답을 욕구에서 찾았다. 욕구를 이론적으로 구분한 메슬로의 욕구 5단계설을 참고하면, 5단계의 욕구는 생리적욕구 - 안전의 욕구 - 소속,애정의 욕구 - 존경의 욕구 - 자아실현의 욕구로 구성된다.
인간은 자신의 욕구가 충족될 때, 만족을 느끼며 이것은 행복으로 이어진다. 즉, 「욕구의 충족 - 만족 - 행복」 의 인과관계가 되는 것이다.
ⅱ. 욕구결핍과 불안/스트레스의 관계
우리는 언제 불안하며 언제 스트레스를 받는가. 기본적인 예시들을 적어보자. 취업이 되지 않을때 불안하다, 상사가 공격적인 언행을 일삼을 불안하다, 이성친구와 헤어진 후 불안하다, 상대가 바람을 피는 것은 아닐지 불안하다, 내가 새로운 집단에서 잘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하다, 이번 프로젝트를 제대로 끝낼 수 있을지 불안하다, 가족이 화목하지 않아 불안하다.
위의 사례 외에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불안을 느끼는 무수한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어떤 불안이던 간에 불안은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지 않은 결과 발생함을 알 수 있다. 몇 가지의 불안을 욕구와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취업이 되지 않은 학생은 현대사회에서 생존이 걸린 돈벌이가 없으므로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가 결여될 뿐만 아니라 타인에 의한 존경을 성취할 수 없고, 자아실현도 실패한 상태이다. 또한 가족이 화목하지 않아 불안한 사람은, 원만하지 않은 가족관계 속에서 소속 애정의 욕구가 결핍되고, 가족이 와해된다면 가족을 통해서 형성되어온 안전의 욕구조차 보장되지 못한다.
ⅲ. (한 층 더 심오한 질문)인간에게 왜 욕구가 필요한가?
나는 만족과 행복의 인과관계를 이어준 욕구에 대해 한 층 더 깊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인간의 욕구를 본능적인 것" 이라고 생각을 끝맺는 것은 "그것은 신의 뜻이다" 라고 단정하고 모든 인과관계를 신의 뜻으로 돌려버리는 중세 시대 유럽인의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 더 근본적인 부분까지 인간은 왜 위와 같은 욕구를 가지게 되는지 철학적 고찰이 필요하다.
인간은 무엇보다 '존재' 자체에 의미가 있다. 인간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것보다 더욱 심오한 것은 없다. '존재'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존재해야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즉, 인간에게 욕구가 필요한 이유는 존재하기 위함이며, 바꿔 말하면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욕구이다.
존재는 위와 같이 두 가지로 나뉜다. 물질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존재와 상념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존재감이다. 물질적 존재란 신체가 온전히 보존되는 것을 의미하며, 매슬로의 5욕구 중 저위욕구(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가 이에 해당된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칼슘 비타민을 섭취하고, 물을 마시고, 안전한 집을 통해 맹수와 해충으로 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것.
상념적 존재를 의미하는 존재감이란 내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는 감각이다. 가령, 물질적으로는 존재하나 아무도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존재감에 대한 내적인식은 존재감에 대한 외적인식에 의해 위협받는다. 세상 사람 그 누구도 내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물리적인 존재는 이미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만큼 존재감은 존재 못지 않게 중요하다. 고위욕구(소속/애정욕구 , 존경욕구, 자아실현욕구)는 존재감에 대한 외적인식과 존재감에 대한 내적인식의 발현이다. 자신에게 존재감이 있음을 외부로 부터 성취하기 위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하고, 사랑을 나눈다. 자신에게 존재감이 있음을 스스로 성취하기 위해 자아실현을 이룬다.
존재감에 대한 내적인식과 존재감에 대한 외적인식은 알랭드 보통의 '불안'에 적힌 문구를 더욱 이해하기 쉽게 한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의해 좌우된다. 사람들이 우리 농담에 즐거워하면, 우리는 나에게 남을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을 갖게 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면, 나에게 큰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방에 들어갔을 때 눈길을 피하거나 직업을 밝혔을 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수도 있다.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이런식으로 남들의 반응에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시를 당하든 주목을 받든, 칭찬을 받든 조롱을 당하든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누가 엉터리로 우리를 칭찬하는 소리에 귀가 솔깃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여, 다른사람이 우리가 못났다고 넌지시 암시한다 해도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아주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내가 똑똑하다는 중거를 댈 수 있고 바보라는 증거도 댈 수 있으며, 익살맞다는 증거도 댈 수 있고 따분하다는 증거도 댈 수 있으며, 중요한 인물이라는 증거도 댈 수 있고 있으나마나 한 존재라는 증거도 댈 수 있다. 이렇게 흔들린다면 사회의 태도가 우리의 의미를 결정하기 마련이다. 무시를 당하면 속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고개를 쳐들며, 미소나 칭찬과 마주치면 어느새 역전이 이루어진다. 혹시 남의 애정 덕분에 우리 자신을 견디고 사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주어야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없다. 남의 관심때문에 기운이 나고 무시때문에 상처받는 자신을 보면,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어디있나 싶어 정신이 번쩍들기도 한다. 동료 한 사람이 인사를 건성으로 하기만해도, 연락을 했는데 아무런 답이 없기만해도 우리의 기분은 시커멓게 멍들어버린다. 누가 우리 이름을 기억해주고 과일 바구니라도 보내주면 갑자기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환희에 젖는다.
- 알랭드 보통 '불안' 中에서(이레출판사 p 21~22)
위 글에서 남들의 관심에 의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은 존재감의 외적인식이 강한 사람이다. 반면, 남들의 반응에 쉽게 좌우되지 않고 스스로를 규정할 줄 아는 사람은 존재감의 내적인식이 강한 사람이다.
3. 반론, 다른 생각들
ⅰ. 웅대한 자연을 보고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어떤 인과관계를 거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