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강자 제치고 가치혁신 성공
‘와이즐리’의 블루오션 전략

편집자주
본 원고는 DBR 325호에 실린 와이즐리 케이스 스터디의 ‘토론할 거리’에 대한 티칭 가이드(Teaching Guide)입니다. 본 자료는 교수자를 위해 마련한 것으로 교수자는 사례를 먼저 학습한 학습자들에게 토론할 거리를 제시하고, 본 가이드를 참고해 학습자 간 토론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본 가이드는 토론할 거리에 대한 합리적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경영학적 이론을 소개합니다.
 


토론주제 1
2016년 미국에서 달러셰이브클럽이 성공한 이후 우리나라에도 여러 회사가 유사한 D2C 사업 모델을 시작했고, 면도기 시장의 전통 강자인 질레트와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는 사업을 중단하는 등 실패하기도 했다. 여러 업체 중 와이즐리가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와이즐리는 기존의 질레트 면도기를 어떻게 가치혁신했는가?

토론 목표 경영전략의 대가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1996년 HBR에 기고한 ‘전략이란 무엇인가(What is strategy?)’에서 전략의 본질은 경쟁사와 같은 활동을 더 효율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략의 상쇄 관계를 강조하며 궁극적으로 전략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시어드대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의 대표 저서인 『블루오션 전략』(2005)에서 언급하는 가치혁신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가치혁신은 기존 제품 또는 서비스의 불필요한 요소를 줄이거나 제거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고객 가치 창출에 중요한 요인을 강화하거나 새롭게 추가함으로써 제품 또는 서비스의 전체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가치혁신 측면에서 와이즐리가 질레트, 이노쉐이브 등의 경쟁사와 어떻게 차별화했는지 이해함으로써 스타트업의 블루오션 전략을 이해하도록 한다.


토론 가이드 교수자는 우선 [그림 1]을 학습자에게 보여주며 저비용과 차별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가치혁신의 핵심 개념을 설명한다. 특히, ERRC 프레임워크가 저비용 및 차별화와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알려준다. 그 예로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마이클 포터 교수는 본원적 경쟁 전략인 저비용 전략과 차별화 전략이 서로 양립할 수 없으며 기업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둘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기업을 어정쩡한 상태로 만들기에 경쟁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는 가치혁신을 통해 저비용과 차별화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치혁신은 업계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요소들 가운데 고객에게 큰 가치를 주지 않는 요소들을 제거(Eliminate)하거나 감소(Reduce)시켜 비용을 줄이고, 업계가 간과하던 요소 중 고객 가치 창출에 중요한 요소를 증가(Raise)시키거나 새로운 요소를 창조(Create)해 차별화하는 것이다. 첫 글자를 따서 ERRC 프레임워크라고도 한다. 외식 경영 전문가 백종원씨가 TV에서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메뉴와 재료를 단순화해 비용을 낮추고 비법 소스 등을 개발해 맛의 차별화를 이끌어 내는 것 역시 가치혁신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처럼 가치혁신은 기존 관행을 고객 관점에서 재평가하는 것이 핵심이다.

와이즐리의 가치혁신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기존 면도기 시장의 경쟁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교수자는 기존 면도기 시장의 주요 경쟁 요소가 무엇인지 학습자가 토론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표 1]의 예시 외에 여러 항목이 있을 수 있으므로 학습자가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교수자가 이를 정리하는 형태로 토론을 진행함으로써 학습자의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낸다. 구제적인 예시는 [표 1]을 참고하라.
 


기존 면도기 시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와이즐리가 어떻게 기존 면도기 시장을 가치혁신을 이뤘는지 살펴본다. 교수자는 앞서 설명한 ERRC 프레임워크를 통해 와이즐리가 어떤 요소를 제거, 감소, 증가시켰고 어떤 새로운 요소를 창조했는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다. 제공된 사례 외에 학습자가 와이즐리 홈페이지나 신문 기사 등을 자유롭게 검색해서 추가 정보를 확보하도록 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작성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예시는 [표 2]에 정리했다.


국내에서 현재 와이즐리 외에 면도날 D2C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로는 이노쉐이브가 있다. 이론적으로는 와이즐리와 이노쉐이브의 사업 모델이 같으므로 이노쉐이브는 와이즐리와 유사한 가치곡선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2021년 기준 와이즐리의 점유율은 9.3%, 이노쉐이브 1%로 이노쉐이브보다 와이즐리가 시장 점유율이 월등하다.1 왜 와이즐리가 경쟁에서 앞서 나가는지, 와이즐리가 이노쉐이브와 어떤 점에서 차별화되는지 알기 위해 교수자는 학습자가 와이즐리와 이노쉐이브의 홈페이지, 신문기사 등을 검색해 그 둘을 비교하게 한다.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가격 경쟁력 측면을 비교해서 둘 중 누가 나은지 비교할 수 있고, 면도기의 디자인이나 기능 측면에서 고객 후기 등을 찾아 정리할 수도 있다. 정기구독 서비스나 고객 관리 측면의 차이도 비교할 수 있으며, 브랜드 인지도와 신뢰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도 비교해 차이점을 정리하는 것도 학습자의 이해를 돕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두 회사의 홈페이지를 비교하면 각 회사가 무엇을 소구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와이즐리의 경우 첫 화면에 “불합리한 시장을 바꿔나갑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기존 면도기 업체의 과도한 유통 및 마케팅 비용을 비판한다. 별도로 ‘와이즐리 이야기’라는 탭을 만들어 계속해서 ‘현명하고 건강한 소비’를 강조한다. 또한 와이즐리의 사회적 사명을 강조하며 고객의 동참을 요구한다. 반면, 이노쉐이브의 경우 “140년 기술로 쌓인 최고의 면도기” “써봐야 알죠 4900원으로 가볍게 시작하세요” 같이 제품의 품질과 가격을 강조한다.

교수자는 기업의 사회적 사명을 강조하는 것과 제품의 품질과 가격을 강조하는 것이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지 논의를 이끌어간다. 가능하다면 파타고니아처럼 기업의 사회적 사명을 앞세우는 회사와 비교하면서 와이즐리가 어떻게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는지,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제한된 광고비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논의하면 좋다. 사실 정기구독 업체 입장에서 광고는 양날의 검이다. 신규 고객을 확보하고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광고가 필요하다. 그러나 광고 비용을 늘리다 보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고 전통적인 면도기 업체와 다를 바가 없어진다. 실제로 와이즐리 역시 초기에 광고를 통해 신규 고객을 확보하다가 늘어나는 광고비로 고전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충성도 높은 고객의 입소문에 의존하는 형태로 전환하며 제한된 마케팅 비용으로 브랜드 인지도와 신뢰도를 꾸준히 높일 수 있었다.

D2C 사업모델이 소매점 유통 방식과 차이 나는 부분은 고객 관리다. 전통적인 사업 모델은 제조사와 소비자가 구매 시점에 단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D2C 사업모델은 정기구독 서비스를 통해 제조사와 소비자가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며 반복적인 구매가 일어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D2C 사업이 성공하려면 고객과의 장기적인 관계 유지가 필요하며 회사는 고객과 유대관계를 쌓을 수 있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달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사회적 사명을 강조하는 와이즐리가 제품 가성비를 강조하는 타 업체보다 고객 관계 측면에서 경쟁우위를 차지한 것으로 생각한다.

토론 주제 2

2021년 2월 오픈서베이에 따르면 와이즐리의 시장점유율은 3.3%p 증가한 반면 질레트의 시장점유율은 2.5%p 감소했다. 미국에서도 달러셰이브클럽은 창업 4년 만에 시장점유율 10%를 넘어서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처럼 와이즐리나 달러셰이브클럽 같은 D2C 기업의 출현으로 질레트의 독점적 지위가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질레트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적 대안은 무엇인가? 여러분이 질레트 경영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토론 목표 1997년 콘스탄티노스 마키데스 교수가 주장한 전략적 혁신은 기존 사업을 전혀 다른 방법으로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즉 사업모델 혁신을 통해 경쟁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와이즐리나 달러셰이브클럽의 D2C 사업모델은 기존의 소매점 유통 방식에서 벗어나 온라인을 통한 정기구독 형태로 고객에게 면도날을 판매한 점이 전략적 혁신으로 볼 수 있다. 달러셰이브클럽은 2016년에 매출이 2억 달러를 넘어섰고 유니레버에 약 10억 달러에 인수됐다. 질레트는 정기구독 회사에 대응하기 위해 2015년 기존 제품보다 저렴한 가격의 면도날 배송서비스 ‘질레트 쉐이브클럽’을 시작했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기존 소매점 유통의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나머지 면도날 가격 인하 폭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기에는 신생기업의 성장세가 위협적이다. 미국과 한국 등에서 D2C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꾸준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질레트가 취할 수 있는 전략적 대안이 무엇이며 어느 대안을 선택해야 하는지 살펴봄으로써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경쟁 위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토론 가이드 교수자는 우선 콘스탄티노스 차리도우 교수와 콘스탄티노스 마키데스 교수가 2003년 제시한 전략적 혁신에 대한 기업의 대응 방안 다섯 가지를 설명하고 질레트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은지 학습자를 소규모 그룹으로 나눠 그룹 토론을 진행한다. 다섯 가지 전략적 대안은 다음과 같다.

대안 1: 전략적 혁신을 무시한다.

신생기업의 전략적 혁신이 우리의 기존 사업과 겹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경우 대기업은 각자가 타겟하는 고객군이 겹치지 않아 신생기업의 전략적 혁신이 자신의 주력 사업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대안 2: 기존 사업에 집중한다.

신생기업의 전략적 혁신을 위협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안 1과 유사하다. 차이점은 기존 경쟁 방식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노력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특허 출원 등으로 법적인 장벽을 구축해 신생기업이 새로운 사업모델을 추진하지 못하게 방해하거나, 기술 개발 및 마케팅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해 고객이 신생기업의 새로운 제품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방어하거나, 신생기업의 제품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고객에게 마진을 더 붙여 수익 극대화를 하거나, 신생기업과 겹치지 않는 세분시장을 찾아 공략하는 방법 등이 있다.

대안 3: 전략적 혁신에 반격한다.

신생기업의 전략적 혁신을 무력화할 수 있는 또 다른 전략적 혁신을 모색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세이코가 쿼츠 기술로 혁신적인 시계를 개발해서 기존의 스위스 시계 회사가 위태로워졌을 때, 스위스 시계 시장에서는 부품 가짓수를 획기적으로 줄여 원가를 낮춘 스와치를 출시해 대응했다. 유사하게 질레트 역시 D2C 사업모델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멤버십 프로그램 등을 도입해서 D2C 사업자의 장점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대안 4: 기존 사업과 신사업을 병행한다.

신생기업의 전략적 혁신이 위협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기존 사업을 유지하면서 신생기업에 맞설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해 대항하는 방법이다. 질레트가 와이즐리나 달러셰이브클럽과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D2C 브랜드를 출시하는 것이다. 기존 사업과 신사업을 병행하는 방법은 신사업 추진을 위한 별도의 사업부를 신설하는 방법과 기존 사업부 내부에서 신사업을 추진하는 방법이 있다. 두 사업 간의 전략적 관련성이 높으면 기존 사업부에서 직접 신사업을 운영하고 그렇지 않으면 분리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이 대안은 대기업 조직에 서로 상반되는 사업 모델을 가진 두 개의 사업을 동시에 운영하는 형태가 되므로 조직 내에 상당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으며, 신규 사업이 기존 사업의 수익을 갉아 먹는 카니발라이제이션(cannibalization)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대안 5: 전략적 혁신을 완전히 수용해서 발전시킨다.

마지막 대안은 전략적 혁신을 완전히 수용하는 방법이다. 즉 기존 사업을 철수하고 사업부를 새로운 사업 모델로 모두 재편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사업 모델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조직 역량을 확보해야 하며 새로운 역량 확보에 실패할 경우 기존 사업과 새로운 사업 모두 실패하므로 조직은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또한, 새로운 사업 모델로 재편하더라도 전략적 혁신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신생기업에 비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기존 조직이 새로운 사업 모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조직 내부 구성원의 심각한 저항이 있을 수 있어 오히려 기존 사업을 철저히 고수하는 것보다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008_수정
교수자는 앞서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질레트와 와이즐리의 ‘가치곡선’을 그려 학습자가 둘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 가치곡선은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요소를 가로축에 놓고 각 제품이 각 요소를 얼마나 충족하고 있는가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교수자는 가치곡선을 통해 와이즐리가 어떤 요소를 제거, 감소, 증가 시켰고 새롭게 창조했는지, 와이즐리가 어떻게 질레트와 차별화하며 저비용을 달성할 수 있었는지를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그림 2]는 질레트와 와이즐리의 가치곡선을 예시적으로 보여준다.



교수자는 학습자의 소그룹 토론 이후 각 그룹이 선택한 대안이 무엇이며 그 대안을 선택한 이유를 적어가며 정리한다. 크게 ‘대응의 필요성’과 ‘대응 능력’ 두 가지로 귀결될 것이다. 대응의 필요성은 신생기업의 전략적 혁신이 대기업의 주력 사업에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말한다. 예를 들어, 질레트의 모기업인 P&G의 경쟁사인 유니레버가 달러셰이브클럽을 인수했다는 것은 그만큼 질레트 역시 D2C 사업에 대응할 필요성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또한 질레트의 시장 점유율과 수익성 감소, 와이즐리나 달러셰이브클럽의 성장 등 역시 신생기업의 전략적 혁신이 대기업에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다른 축인 대응 능력은 대기업이 신생기업의 전략적 혁신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의미한다. 유니레버가 달러셰이브클럽을 인수했으므로 질레트는 북미시장에서 M&A를 통해 D2C 사업에 대응할 수 없게 됐다. 이는 질레트의 대응 능력 수준이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또한 D2C 사업에 필요한 자원 및 역량이 기존 사업 모델과 얼마나 상충하는지도 질레트의 대응 능력 수준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질레트가 D2C 사업 모델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면도날의 마진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하는데 이는 막대한 광고비 투입을 통한 브랜드 인지도 제고에 의존하는 소매점 유통 방식에서는 불가능하다. 실제로 질레트는 2015년 질레트 쉐이브클럽을 출시했으나 큰 폭으로 면도날 가격을 인하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다.

교수자는 이 두 가지 축과 학습자가 선택한 전략적 대안이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 정리하면 [그림 5]의 2X2 매트릭스와 같다. 따라서 신생기업의 전략적 혁신에 대한 대기업의 대응 전략은 전략적 혁신에 대한 대기업의 ‘대응 필요성’과 ‘대응 능력’의 조합에 따라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교수자는 학습자가 실제 질레트가 취한 전략적 행보를 찾아보도록 하고 앞서 살펴본 다섯 가지 대안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연결시켜 보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어, 2015년의 질레트 쉐이브클럽은 ‘기존 사업부가 신사업을 추진’한 형태로 대안 4에 해당한다. 그러나 질레트는 기존 사업의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나머지 큰 폭으로 면도날 가격을 인하하지 않아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최근에는 20만 원대의 고가 신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이는 기존 사업에 집중하는 대안 2에 해당한다. 열선을 추가하는 등 혁신적인 기술을 면도기에 적용해 기술 격차를 벌리고 브랜드 신뢰도를 더욱 높여 D2C 사업자와 차별화하는 방법이다. 한국 시장에서는 현재 질레트 공식몰을 통해 신제품 등을 20% 할인해서 판매한다. 최소한 유통 마진은 제거하려는 질레트의 노력으로 이는 대안 3의 전략적 혁신에 반격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광고비 부분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어 와이즐리 같은 D2C 사업자만큼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교수자는 질레트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학습자가 자유롭게 의견을 내도록 한다. 필요하면 소그룹 토론을 진행해 학습자가 직접 질레트 경영진에게 보고할 최종 대응 전략을 정리하고 발표하도록 한다. 교수자는 이런 논의 과정을 통해 학습자가 왜 대기업이 신생기업의 전략적 혁신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지 이해하고 각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논의함으로써 학습자의 전략적 마인드를 함양한다.

마지막으로 교수자는 앞서 살펴본 대기업의 대응 방안을 토대로 와이즐리가 달러셰이브클럽처럼 지분을 매각해서 엑시트한다고 가정했을 때 어느 회사가 가장 큰 밸류에이션을 매길 것인지에 대한 논의로 확장할 수 있다. 유니레버가 달러셰이브클럽을 인수해 질레트를 보유한 P&G에 대응한 것처럼 국내에서는 LG생활건강, 애경산업이나 아모레퍼시픽 같은 생활소비재 혹은 화장품 회사가 인수할 수도 있다. 와이즐리가 면도용품에서 벗어나 스킨, 샴푸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에 남성 화장품 등에 D2C 사업모델로 진입하고 싶은 대기업 입장에서는 커다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니면 미국에서 놓친 달러셰이브클럽 인수 기회를 한국에서 실현하는 것도 P&G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 중 하나다. 이 경우 질레트 시장 점유율 잠식은 피할 수 없지만 파괴적인 경쟁자를 기업 내부로 들여올 수 있다. 이처럼 어느 기업이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할 것인지에 대한 토론을 통해 교수자는 스타트업의 엑시트 전략까지 본 사례를 통해 다룰 수 있다.


참고문헌
1. Charitou, C. D., & Markides, C. C. (2003). Responses to disruptive strategic innovation. MIT Sloan Management Review, 44(2), 55-63A.
2. Markides, C. (1997). Strategic innovation. Sloan management review, 38(3).

기사분석

시장분석

  • 전방시장의 종류: 기존 디램으로 대표되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엔드유저가 기업인 B2B 시장이었지만, 개인용 PC의 보급으로 인해 B2C의 전방시장이 개화하기 시작
  • 전방시장의 규모: 말할 것도 없이 개인용 PC시장의 규모가 가장 거대

고객분석

  • KBF: 기존 B2B시장만을 고객사로 하던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핵심 KBF는 성능 이였을 터. 하지만 B2C의 전방시장이 개화하기 시작하면서 메모리반도체의 핵심 KBF는 성능 에서 가격으로 옮겨가기 시작.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은 변화하는 전방시장과 KBF를 읽지 못하고 가격이 아닌 성능을 고집하면서 가격을 중심으로 전략을 짠 한국과 대만 업체들에게 마켓쉐어를 잠식당하기 시작.

경쟁분석

  • 메모리 반도체는 일정수준의 스펙만 만족하면 제품 간의 차별성이 존재하지 않음. 반면 시스템 반도체는 같은 스펙이더라도 설계에 따라 성능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차별성 존재. 결국 메모리 반도체는 KBF가 가격으로 수렴하는 시장임.

기사본문

D램 시장 80%를 장악했던 日 업체들이 몰락한 이유는?

과잉품질 및 과잉성능에 집착해 시장 흐름 놓쳐
삼성은 마케팅 및 시장조사 통해 적절한 제품 공급
원가 경쟁력도 삼성이 크게 우위

 
반면 1980년대 후반 PC 시대가 도래하며 수율과 생산성에 초점을 맞춘 한국업체들이 비상한다. 한국은 3년 보증 PC용 D램을 값싸게 시장에 내놓은 반면 일본은 여전히 고품질에 집착해 1998년 시장 1위를 한국에 내주고 만다. 대형 컴퓨터 시장에서는 일본 업체 점유율이 높았지만 PC 시장에서는 낮은 가격 경쟁력 때문에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특히 일본 업체들은 설비 확대를 통한 ‘규모의 경제’에 집착한 반면 한국은 기존 장치를 보다 길게 사용케 하는 요소기술, 적은 마스크 및 공정수로 생산기간을 줄인 인티그레이션 기술, 높은 수율이 가농토록 한 생산기술에서 앞서 있었다는 평가다.
 
특히 설비투자에 따른 감가상각비 부담이 일본이 압도적으로 컸다. 2004년기준 메모리 반도체 비용 구조를 보면 전공정에서는 △재료비(5%) △노동비(5%) △변동경비(9%) △감가상각비(40%) △기타비용(12%)이 후공정에서는 △패키지재료(2%) △인건비 변동비(4%) △감가상각비 및 고정비(23%) 등이 각각의 비용을 차지한다. 관련 수치에서 나오듯 반도체 장비의 감가상각비가 전체 비용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우수한 인력풀도 가격 경쟁력 강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셈이다.  

저자는 일본업체와 인텔의 경우 공정 과정 시 방점을 두는 부분도 다르다고 지적한다. 일본 업체는 공정 구축시 반도체 성능 향상을 최우선으로 하는 반면 인텔은 세트 원가를 보고 반도체 원가 및 가격 등을 결정해 공정을 구축한다. 즉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가격의 제품을 인텔이 내놓는 반면 일본 업체들은 고품질의 제품이 수요를 창출할 것이란 그릇된 신념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일본은 또 개발부서와 양산부서가 분리돼 있으며 개발부서가 훨씬 우대받는 환경인 반면 인텔은 이들을 동등하게 대우하며 당연히 수익이 없으면 인센티브도 주지 않는 구조다. 특히 삼성의 경우 개발과 양산 부서로의 이동이 자유로우며 수백여명의 전임 마케터 등이 현지 시장에서 어떤 반도체를 무슨 용도로 만들면 좋을 지에 대한 정보를 끊임없이 전략마케팅 팀에 보고한다. 특히 가장 우수한 인재는 연구보다는 마케터로 발령내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에 맞춤한 제품을 값싸고 빠르게 내놓는 삼성을 일본업체들이 따라갈 수 없는 셈이다.
 
저자는 일본 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합병 등의 공격적 경영 판단을 내렸지만 이 또한 조직 융합의 어려움으로 실패했다는 입장이다. 1993년 후지츠와 AMD가 합작사 스팬션을 설립했으며 1999년에는 NEC와 히타치가 엘피다 메모리를 설립했다. 2002년에는 NEC 일렉트로닉스가 분사했으며 2003년에는 히타치와 미쓰비시의 시스템온칩(SoC) 합작사 르네사스테크놀로지가 설립된다. 2008년에는 후지츠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의 분사가, 2009년에는 엘비다메모리와 대만 메모리 3개사 간의 협의가, 2010년에는 NEC일렉트로닉스와 르네사스 테크놀로지 간의 경영 통합 등이 진행됐다. 특히 2001년에는 12개 일본 업체와 삼성전자 1곳이 참여한 반도체첨단테크놀로지(Selete·아스카프로젝트)가 결성됐는데 타 업체들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반면 삼성전자는 알루미나 옥사이드·하프늄옥사이드 성막 방법을 D램 커패시터 절연막에 적용하는 성과를 낸다. 한때 ‘패스트팔로어’였던 삼성이 ‘초격차’ 전략을 펼칠 수 있는 도움닫기 역할을 일본 업체들이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해 준 셈이다.  

저자는 NEC와 히타치간 통합으로 설립된 엘피다메모리의 실패와 관련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경영자 부재 △투자금을 모회사에 의존해 낮은 자치권 △기술 혼란을 막기 위한 흡수 합병 등의 대체 전략 부재 등을 꼽았다. 저자는 “일본 반도체 업계의 저수익 구조는 1980년대 중순 일본 반도체의 황금 시대부터 변하지 않는 모습”이라며 “일본 반도체 업계가 과잉기술, 과잉품질이라는 병이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VQWSA7IU1

DBR Case Study: 미국 펫 리테일러 ‘츄이’의 고객중심주의

사람과 동물의 마음을 훔친 펫 전문 온라인몰
아마존 뛰어넘는 ‘팬데믹 승자’로

320호 (2021년 0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반려동물 용품 전문 온라인 리테일러 츄이가 거인 아마존을 견제하는 수준으로 성장한 것은 ‘고객중심주의’를 뼛속 깊이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츄이는 연중무휴 24시간 전화 상담과 손편지, 깜짝 선물 등으로 고객과 함께 울고 웃으며 끈끈한 관계를 쌓았다. 또한 원격 헬스케어 서비스와 온라인 펫 약국 사업에 빠르게 뛰어들어 팬데믹 시대에 반려인이 가장 필요로 하는 니즈에도 적극 부응했다. 제품과 서비스에 앞서 고객 경험에 올인하는, ‘얼굴을 가진’ 이커머스 츄이가 펫 휴머니제이션 트렌드를 가장 잘 이해한 기업이라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1년 플로리다주 데이니아비치. 마이애미에서 북쪽으로 40㎞가량 떨어진 이 도시에서 대학을 중퇴한 스물다섯 살 청년 라이언 코헨은 온라인 쇼핑몰 창업을 준비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자바(Java) 관련 온라인 채팅방에서 만난 마이클 데이 또한 조지아대를 그만두고 코헨과 의기투합한 상태였다. 사업 아이템은 주얼리였지만 두 청년 모두 이 아이템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마이애미에서 열린 주얼리 박람회에 갔다 본인들에겐 귀금속에 대한 지식도, 알고자 하는 열정도 없다는 사실만 깨닫고 말았다.

그즈음 코헨은 반려견 타이리의 사료를 사러 동네 애완동물가게에 들렀다. 가게 점원에게 건강에 좋은 사료에 대해 이것저것 묻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존도, 대형 애완동물용품점도 전문적이지 않아. 고객서비스도 엉망이고. 나 같은 사람만 해도 어떤 제품이 반려견 건강에 더 좋을지 엄청 궁금한데 말이야. 반려동물 제품에 대해 수준 높은 지식을 자랑하면서도 동네가게처럼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머리에 담고 사업을 준비하던 어느 날. 주얼리 쇼핑몰 오픈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두 청년은 과감하게 핸들을 틀었다. 사료 등 반려동물에게 필요한 제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전자상거래 사업으로 방향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미 사들인 쥬얼리는 저렴하게 처분했다. 열정을 가진 아이템을 찾은 덕에 사업 준비는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단 3개월 만에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판매할 제품을 갖추고, 물류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그리고 그해 6월 츄이(chewy.com)를 론칭했다.

‘팬데믹이 배출한 승자.’ 곧 창업 10주년을 맞는 츄이를 일컫는 수식어다. 2020년 초 미국을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츄이에 전례 없는 호재를 안겨줬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 및 반려동물 개체 수가 크게 늘었고, 일상적인 외출이 어려워지자 반려동물에게 필요한 사료며 물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2020년 미국 가정이 새로 입양한 반려동물은 수백만 마리, 온라인 펫 용품 시장은 40억 달러(약 4조5000억 원) 이상 성장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호재에 힘입어 츄이는 지난해 71억5000만 달러(약 8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림 1) 전년 대비 47% 성장한 수치다. 2020년 한 해 동안 570만 명의 신규 고객을 확보하며 총고객 수는 1920만 명이 됐다. 주가 역시 크게 올랐다. 팬데믹 이전 30달러를 밑돌던 츄이의 주가는 120달러까지 상승했다가 현재 80달러대에 안착한 상태다. 3년 전 회사를 떠난 코헨의 뒤를 이어 2018년 3월부터 츄이를 이끌고 있는 수밋 싱 CEO는 DBR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반려동물 인구가 증가하고 관련 소비가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며 “츄이는 앞으로도 빠르게 성장해나갈 것”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DBR mini boxI ‘“댕댕이 덕분에 고립 견뎠어요”코로나 팬데믹으로 성장률 3배 뛴 美 반려동물 시장’ 참고)




DBR mini box I
“댕댕이 덕분에 고립 견뎠어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성장률 3배 뛴 美 반려동물 시장





“와우, 이 아가씨 정말 귀엽네요. 몇 살이에요?”

“사실 남자애예요. 이제 곧 두 살 되는데 수줍음이 많은 편이에요.”

미국 뉴욕에서 이런 대화를 나눴다면 어린이가 아닌 반려동물에 관한 대화일 확률이 더 높다. 공원마다 어린이 놀이터와 함께 개 놀이터(Dog Park)를 갖췄을 정도로 뉴요커의 반려동물 사랑은 유별나다. 미국 내 최대 학군인 뉴욕시의 학생 수는 100만 명에 미치지 못하지만 각 가정에서 기르는 개와 고양이는 110만 마리가 넘는다. 이러한 현황은 미 전역으로 확대해도 마찬가지다. 전미반려동물용품협회(APPA)에 따르면 미 전체 가구의 67%에 해당하는 8490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기른다. 자녀가 없는 가구가 절반(4950만 가구)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려동물 숫자가 어린이 인구를 앞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밀레니얼세대의 반려동물 사랑이 두드러진다. 밀레니얼세대 중 반려동물을 키우는 비율이 76%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i

‘반려동물의 천국’ 미국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더욱 동물에 친화적인 사회가 됐다. 건강상 혹은 경제적 여건의 악화로 버려지는 동물이 많아질 것이란 당초의 예상을 깨고 반려동물 인구가 오히려 더 늘어났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재택대기령이 시행됐던 2020년 상반기에는 각 동물보호소에 유기견이나 유기묘를 입양하겠다는 요청이 쇄도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동물보호소를 지원하는 뉴욕 소재 비영리단체 포스터독스(Foster Dogs)에 따르면 팬데믹 초기 월 140건이던 개 입양 신청 건수가 이후 월 4000건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3.6% 증가한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예년의 성장률보다 3배 높은 수준이다.





“반려동물에게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많이 지출”

반려동물 가구의 증가는 관련 시장의 성장을 가져왔다. APPA는 2020년 미국인의 반려동물 관련 연간 총지출이 990억 달러(약 112조 원)로 2019년(957억 달러) 대비 3.4% 성장한 것으로 추산한다. 이 단체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 가구 중 팬데믹이 가정의 재정 상황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은 61%에 달했다.ii 하지만 반려동물 관련 소비 행동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82%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코로나19로 인해 변경되거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의 반려인은 오히려 반려동물에게 더 많은 돈을 지출하고, 프리미엄 제품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소매업체 쿠폰팔로우닷컴(couponfollow.com)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36%가 “반려동물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지출했다”고 응답했다.iii “덜 지출했다”는 응답은 11%에 그쳤다. 자신의 음식으로는 저가 식료품을 사서 먹는다고 한 응답자의 70%가 “반려동물 사료로는 (상대적으로 더 비싼) 브랜드 제품을 구입한다”고 밝혔다. 반려동물 관련 소비는 사료와 배변용품 등 필수품 위주였지만 밀레니얼세대는 반려동물의 장난감 구입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

반려동물의 건강 및 웰빙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시장 조사 업체 패키지드팩트(Packaged Facts)가 지난해 말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반려동물의 건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는 응답이 41%, “팬데믹을 계기로 반려동물의 건강 관리 제품을 바꿨다”는 응답이 14%였다.iv 실제 미국에서 반려동물 건강보조제 시장은 지난해 21% 성장해 8억 달러 규모에 도달했다. 이는 2019년 성장률의 4배 수준으로, 특히 면역력 강화나 스트레스 완화 효과가 있는 제품이 많이 팔렸다. 사람이 먹는 건강보조제처럼 프로바이오틱스가 함유된 반려동물용 건강보조제도 인기다. 이미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지만 새로운 반려동물을 들이고 싶은 욕구도 적지 않다. 지난해 9월 실시된 설문 조사에서 “반려동물을 추가로 키우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응답이 절반(46%)에 가까웠다.v

반려동물용 밀키트 등 전망 밝아

미국인들이 반려동물에 더 헌신적이 된 이유는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반려동물을 돌볼 시간적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고립감에서 오는 정신적 부담을 완화하는 데 반려동물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뉴욕에서는 룸메이트가 코로나19를 피해 도시를 떠난 뒤 반려동물을 입양했다는 사연이 더러 눈에 띈다. 반려동물에 대한 정신적 의존도가 커지면서 최근에는 코로나 사태 종료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내가 다시 회사로 출근하면 나의 개, 고양이가 감정적으로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다. 다시 출근하게 되더라도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반려동물을 돌보기 위해 재택근무를 하겠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밀레니얼세대의 48%, Z세대의 71%가 “반려동물 친화적 정책을 실시해 달라고 회사에 요구했거나 요구할 생각”이라고 응답했다는 설문 조사 결과도 있다.vi

이처럼 반려동물에 열정적인 두터운 소비층을 기반으로 미국의 반려동물 관련 시장은 지속적인 성장세가 기대된다. 이 분야에서 온라인 소비 비중도 현재 27%에서 2024년 35%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반려동물 관련 제품은 아마존 프라임 회원들이 즐겨 구매하는 카테고리 중 5위에 해당한다. 특히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로는 프리미엄 사료를 비롯해 동물성 원료가 포함되지 않은 비건 사료, 반려동물용 밀키트 및 간식, 정기구독 서비스, 디지털 약국 및 디지털 건강 관리 서비스 등이 꼽힌다. 사람 자녀를 키우듯 반려동물을 정성껏, 그리고 건강하게 돌보려는 반려인의 욕구를 겨냥하는 분야에 대한 전망이 밝은 것이다.


고객 만족을 넘어 고객 감동으로

널리 알려졌다시피 미국의 온라인 시장은 아마존이 장악했다. 이 유통 거인의 온라인 시장 점유율은 40%에 달한다. 아마존 프라임 가입자는 1억5000만 명이 넘는다. 미국인 2명 중 1명꼴로 아마존 프라임 회원인 셈이다. 이러한 ‘아마존 제국’에서도 츄이의 존재감은 매섭다. 소매 컨설팅 회사 1010data에 따르면 온라인 반려동물 용품 시장에서 아마존의 점유율은 50%가 넘는다. 하지만 츄이의 점유율도 34%나 된다. 츄이가 아마존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온라인 반려용품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상황이다.

츄이가 아마존에 대적할 만한 존재감을 갖게 된 핵심 비결은 ‘고객중심주의’에 있다. 브랜드 컨설턴트인 제프 할 세컨드투논 대표는 “츄이는 고객을 사업의 중심에 둔 브랜드의 가장 좋은 예”라며 “츄이는 구매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고객의 감정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한다.1

미국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는 ‘펫 오너(Pet Owner)’다. 하지만 츄이는 이들을 ‘펫 부모(Pet Parents)’ 혹은 ‘펫 파트너(Pet Partner)’라고 부른다. 반려동물을 ‘애완’의 대상을 넘어 평생을 함께할 ‘자녀’로 여기는 밀레니얼세대가 어떤 표현을 더 환영할지는 자명하다. 츄이는 홈페이지에 자사의 미션을 “반려동물 부모에게 가장 신뢰할 만하고 편리한 온라인 쇼핑몰이 되는 것”이라고 소개하며 “우리는 반려동물과 반려동물 부모를 가족으로 여기며, 고객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고객과의 모든 접점에서 고객의 기대치를 넘어서는 데 집착한다”고 밝히고 있다.

1. 연중무휴 24시간 고객센터와 전문적인 에이전트

츄이의 ‘고객 집착’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는 고객서비스센터를 연중무휴 24시간 운영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아마존도 콜센터를 연중무휴 24시간 운영한다. 하지만 아마존 홈페이지에서 콜센터 번호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구글에서 검색해 찾는 게 빠르다. 하지만 츄이는 회원 가입을 마친 고객에게 바로 이메일을 보내 고객서비스센터 번호를 알려준다. 홈페이지 메인 화면 상단의 검색창 옆에도 ‘24/7 help’ 배너를 걸어 놨다. 이 배너에 마우스 커서를 갖다 대면 고객서비스센터 전화번호 및 고객 문의 이메일 주소가 나온다.

츄이는 ‘고객 전화를 수 초 내에 받고, 이메일에는 1시간 내 답장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하지만 고객 전화를 언제든 빠르게 받아주는 게 능사는 아니다. 서비스 질이 뛰어나야 한다. 고객과 직접 대화하는 직원(‘에이전트’라고 불린다)들은 반려동물 및 취급 제품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교육받았다. 이들은 고양이의 배변 활동에 좋은 사료는 무엇인지, 10살짜리 레트리버에게 추천할 만한 영양보충제는 무엇인지, 동물보호소에서 방금 데려온 아기 강아지에겐 무얼 먹이면 좋을지 등에 대해 조언해준다. 코헨은 “츄이의 에이전트들은 가장 좋은 그레인 프리(Grain-Free, 곡물이 들어가지 않은 사료) 제품이나 최고의 체중 감량 식품을 알고 있고, 반려동물의 알레르기 또는 민감한 피부 문제에 대해 조언해줄 수 있다”며 “반려동물은 의사 표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반려동물 부모는 전문가와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2

2. 반려동물 초상화 등 깜짝 선물 공세

츄이는 반려동물 부모가 당장 궁금해하는 정보와 지식을 알려주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고객의 예상을 ‘초과한’ 감동 서비스를 선보인다. 일례로 츄이는 첫 구매를 한 고객에게 직원이 손으로 쓴 감사 카드를 보낸다. 반려동물의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도 카드를 보낸다. 반려동물이 사망해 주문한 사료를 취소하겠다고 고객서비스센터에 연락하면 취소가 바로 접수되는 것은 물론이요, 위로 카드와 꽃다발까지 집으로 보내준다. 기르던 골든레트리버를 잃은 뒤 츄이가 보내온 꽃다발을 받은 오클라호마주 고객 조던 레드먼은 AP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츄이의 배려가 정신적 고통을 더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3 츄이 에이전트와의 대화 중에 결혼한다고 말한 고객에게는 축하 꽃다발을 보낸다. 상담 중에 컴퓨터 키보드가 망가졌다고 하소연하는 고객에게 회사 비품실에서 새 키보드를 찾아내 보내준 에이전트도 있다.4



또한 츄이는 ‘무조건적 만족 보장 정책(100% Unconditional Satisfiaction Guaranteed Policy)’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어떤 이유에서든 소비자가 불만족하면 환불해주는 것인데5 츄이는 환불 이상으로 대응한다. 만약 구입한 사료를 반려동물이 좋아하지 않아 환불하겠다고 하면 즉각 환불해주면서 해당 사료를 근처 동물보호소에 기부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러한 츄이의 고객서비스에 감동받았다는 후기가 넘쳐난다. 고객 민디 잭은 링크트인에 자신의 친구가 경험한 이야기를 공유했다. 친구의 개가 사망해 츄이의 정기 배달 주문을 취소하자 츄이가 위로의 카드와 꽃을 보내줬다는 것이다. 잭은 “츄이 직원이 ‘대화가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했는데, 그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적었다. 또 다른 고객인 케이티 잭클은 트위터에 ‘고양이 사료 봉지가 뜯긴 채 배달돼 츄이 측에 이메일을 보내자 10분 만에 새 제품을 발송했다는 답장이 왔다는 글을 남겼다. 그런데 그 내용이 정말 귀엽다. 그가 첨부한 츄이의 이메일에는 ‘퓨마(반려묘의 이름)에게 저희의 특별한 사랑을 전해주세요. 고객님의 하루를 조금이라도 즐겁게 만들어드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으면 알려주시고요. 저희는 24시간 여기 기다리면서 도움의 발바닥(paw)을 언제든 내어드릴 수 있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도움의 ‘손’ 대신 ‘발바닥’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동물 엄마’ 고객에게 애교를 부리는 식으로 서비스 실패를 만회한 것이다.

고객들이 가장 기뻐하는 츄이의 서비스는 반려동물의 초상화다. 츄이는 매달 1000여 명의 고객을 선정해 전문 작가에게 의뢰해 제작한 반려동물 초상화를 보내준다. 유화로 그린 핸드페인팅 그림이다. 초상화를 받는 고객을 어떻게 선정하는지는 공개하지 않는데, 고객 계정에 반려동물의 사진을 올려 뒀거나 에이전트와의 상담 중에 반려동물 사진을 보여준 고객 중에서 뽑아내는 것으로 보인다. 뉴욕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반려동물 초상화 제작 비용이 100달러가량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츄이가 이 깜짝 선물에 꽤 많은 비용을 들이는 것으로 짐작된다.

츄이가 이러한 깜짝 선물 정책을 이어오는 이유는 고객이 자신이 느낀 감동을 이야기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아이의 사진을 거실장에 올려 두는 부모처럼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도 자신의 ‘아기’ 그림을 집 안의 좋은 자리에 걸어 두고, SNS에 공유하기 마련이다. 조셀린 크로프트는 트위터에 츄이가 보내 준 반려견 비비의 그림을 올리며 ‘비비는 이제 18살이라서 앞으로 얼마나 나와 함께할 수 있을지 모른다. 츄이, 고마워!’라는 글을 올렸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사는 법대생 앤슬리 클락은 AP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츄이로부터 반려견 윌로의 초상화를 선물받고는 “친구들한테 윌로의 초상화를 자랑하고 싶어서 소풍 갈 때 아예 그림을 가져갔다”고 말했다.6

3. 펫스마트 인수 이후에도 ‘고객 감동’ 전략 지속

츄이가 등장하기 전 이커머스 업계의 최고가 매각 사례는 온라인 신발 쇼핑몰 자포스(Zappos)였다. 토니 셰이가 1999년 설립한 이 회사를 2009년 아마존이 12억 달러(약 1조4000억 원)에 인수했다. 자포스는 뛰어난 고객 중심 서비스로 고객과 깊은 유대 관계를 쌓은 회사로 유명하다. 고객서비스센터를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하고 무료 배송, 365일 내 무료 반품을 실시한다. 고객서비스센터의 최장 고객 응대 시간이 6시간이라는 전설도 전해진다. 현재도 아마존은 자포스닷컴을 아마존닷컴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코헨이 츄이를 창업하면서 롤모델로 삼은 기업이 바로 자포스다. 연중무휴 24시간 고객서비스센터나 365일 내 무료 반품 등이 자포스와 닮았다. 츄이는 고객서비스센터 에이전트를 고객의 말을 경청하고 그에 적극 공감하도록, 그리고 고객을 기쁘게 만드는 의사결정을 스스로 하도록 교육한다. 고객에게 ‘친구나 가족에게 츄이를 추천할 의사가 있느냐’고 묻고, 부정적으로 응답한 고객의 이야기를 따로 들어 업무 개선에 반영한다. 또 고객서비스센터에 ‘와우(Wow)팀’을 별도로 두고 고객에게 선물이나 꽃다발을 보내라는 에이전트의 요청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코헨은 “계속 고객에게 집착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츄이가 스스로 밝히는 브랜드의 핵심 역시 ‘고객서비스에의 헌신(Commitment to customer service)’이다.

자포스를 추종한 츄이 또한 이커머스 업계에서 역대 최고가로 매각됐다. 2017년 4월 미국의 대형 반려동물 용품 유통업체인 펫스마트(PetSmart)가 33억5000만 달러에 츄이를 인수했다. 한 해 전 월마트가 제트(Jet.com) 인수에 지불한 30억 달러를 뛰어넘은 가격이었다.7

2018년 3월 코헨은 CEO 자리를 서밋 싱 최고운영책임자(COO)에게 물려주고 츄이를 떠났다. 싱은 코헨이 한 해 전인 2017년 영입한 인물로, 아마존에서 식료품 배달 서비스인 ‘아마존 프레시’의 글로벌 사업 진출을 담당한 IT 엔지니어 출신 경영자다.

선장을 교체한 이후에도 츄이의 고객 중심 전략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시장과 언론은 츄이가 고객 감동에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곤 한다. 이에 대해 싱은 “이는 비용이 아니라 고객과의 관계 구축을 위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반려동물과 그 주인은 부모자식 같은 끈끈한 관계다. 고객 감동 서비스를 통해 츄이 역시 반려동물 부모와 끈끈한 관계를 맺는다면 고객 충성도가 높아지고, 이를 바탕으로 성장을 지속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츄이의 고객 유지 비율은 시장 평균보다 높고, 고객당 평균 지출액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로 알려졌다. 츄이에 따르면 츄이의 고객이 된 지 3년째 되는 해에 지출하는 비용이 첫해의 3∼4배에 달한다고 한다. 2020년 확보한 신규 고객은 이전의 신규 고객보다 더 많이 지출하고, 1년 차 고객의 지출도 해마다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싱은 “고객이 장기간 유지되는 비결은 츄이만의 독특하고 깊은 고객과의 관계에 있다”며 “끈질긴 열정을 가지고 고객과 처음 인연 맺을 때부터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해온 덕분”이라고 말했다.

츄이의 고객서비스 담당 부사장을 지낸 켈리 더킨(Kelli Durkin)은 충성 고객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던 일화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 바 있다.8 “어느 날 아침 메일함을 열어보니 고객들이 보낸 이메일이 가득 쌓여 있었다. 뭔가 문제가 터졌나 걱정하며 열어봤는데 모두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 메시지였다.”

미 소비자들이 갖는 츄이에 대한 전폭적 신뢰는 올 초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게임스톱 주가 사태와도 연결된다. 코헨이 게임스톱 지분을 공격적으로 늘리자 밀레니얼세대를 중심으로 코헨이 게임스톱에서 ‘츄이의 마법’을 한 번 더 구현할 것이란 기대감이 형성된 게 게임스톱 주가가 크게 오르는 발단이 됐다. 게임스톱은 오는 6월 13%의 지분을 보유한 코헨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하고 온라인으로의 사업 전환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적자가 아니라 투자”… 빠른 성장으로 시장 선점

창업자 코헨은 “츄이는 이커머스에 ‘얼굴’을 가져왔다”고 말하곤 했다. 아마존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사람 냄새를 풍기며 동네 가게 같은 친밀함과 유대감을 고객에게 제공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츄이가 자포스 다음으로 롤모델로 삼는 기업은 다름 아닌 아마존이다. 츄이는 창업 초기부터 제프 베이조스가 고안한 ‘플라이휠(Flywheel)’ 성장 전략을 따르고 있다. (그림 2) 즉,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채 최저가와 다양한 상품 구색, 고객 만족, 고객 확보 등에 노력하면 이것들이 선순환을 이루며 빠른 성장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사업 초기부터 츄이는 빠른 속도로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구글 애드워즈를 비롯한 광고, DM 발송 등에 많은 돈을 들였다. 빠른 배송 또한 고객 만족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므로 창업 3년 차인 2013년부터 주문 처리를 인소싱하기 위해 자체 풀필먼트센터 건립에 나섰다.



이러한 전략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고자 코헨은 실리콘밸리를 드나들며 투자 유치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미 서부의 투자자들은 “플로리다의 작은 스타트업이 아마존을 상대로 얼마나 버텨낼 수 있겠느냐”며 거듭 퇴짜를 놓았다. 츄이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알아본 곳은 보스턴에 소재한 볼리션캐피털(Volition Capital)이었다. 이 투자사는 2013년 말 츄이의 매출이 전년 대비 3배 성장한 모습을 보고 15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후 몇몇 투자사가 더 나섰고, 츄이는 이렇게 확보한 초기 투자금으로 2014년 두 개의 풀필먼트센터를 마련했다.

2018년까지 츄이가 마련한 풀필먼트센터는 필라델피아, 텍사스, 인디애나, 애리조나, 너바나 등 6개 주 8개로 총면적은 20만 평에 달한다. 축구장 90개에 해당하는 넓이다. 이로써 츄이는 미 인구의 80%에게 익일 배송, 2일 내 100% 배송할 수 있는 물류 체계를 갖췄다. 츄이는 지난해 가을과 올봄, 팬데믹 상황에서도 2개의 풀필먼트센터를 추가했다. 몰려드는 신규 고객 및 주문량을 감당할 수 있도록 당초 일정보다 앞당겨 물류 처리 능력을 확충한 것이다. 츄이는 49달러 이상을 구매한 고객에게 무료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 이하 주문에 대해선 4.95달러의 배송료를 일괄 부과한다. 배송은 페덱스가 대행한다. 아마존 프라임처럼 구매 금액과 무관하게 무료 배송 등의 혜택을 주는 연회비 프로그램은 운영하지 않는다.

츄이는 국내의 이커머스 강자 쿠팡과 마찬가지로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동시에 큰 적자를 내고 있다. 최근 3, 4년간 연간 손실액이 2억∼3억 달러에 달했다.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인 2020년에도 9250만 달러(약 1032억 원)의 적자를 냈다. 하지만 쿠팡과 마찬가지로 츄이도 이를 ‘전략적 적자’로 간주한다. 수익을 내는 것보다는 투자에 집중해 빠른 성장으로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코헨은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 당장 수익을 낼 순 있다. 하지만 그렇게 했더라면 츄이는 구멍가게 사업에 머물렀을 것”이라고 말했다.9

원격 헬스케어 서비스 및 자사 브랜드 사업에 박차

싱이 CEO에 취임한 이후 그의 리더십 하에 츄이는 수익성 강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헬스케어 서비스와 자사 브랜드(Private Brand) 사업 강화가 대표적인 예다. 또 지난해 가을 필라델피아주 아치볼드(Archbald)에 새로 오픈한 풀필먼트센터는 자동화 설비를 적용해 효율성은 높이고 비용은 낮추고 있다.

사료, 가구, 의류, 장난감, 목욕용품 등 반려동물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판매하는 츄이는 의약품도 취급한다. 일반의약품뿐만 아니라 처방약도 집으로 보내준다. 츄이는 여기에 더해 지난해 하반기 원격 진료 서비스, ‘수의사와의 연결(Connect with a Vet)’을 개시했다. 이는 고객이 츄이의 수의사와 온라인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는 서비스다. 고객은 “우리 개가 동전을 삼켰다” “고양이가 밥을 먹지 않고 무기력하게 웅크리고만 있다” 등 염려가 되는 상황에 대해 수의사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다. 동물병원에 가야 할 상황이라면 수의사가 츄이와 제휴를 맺은 동물병원으로 고객을 연결해준다. 서비스 제공 시간은 주중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였는데 최근 주 7일, 오전 8시부터 밤 11시로 확대했다.

이 서비스는 츄이의 정기구독 서비스인 ‘오토십(Autoship)’ 가입자에게만 무료로 제공된다. 사료나 간식, 배변 패드 등 소모품을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오토십은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츄이 매출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팬데믹 사태를 계기로 반려인들은 반려동물 건강에 더욱 신경을 쓰는 추세다. 따라서 수의사와 언제든 손쉽게 연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서비스는 오토십 고객을 유지, 확대해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시장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츄이는 지난해 11월부터 복합약제(compounded medication) 판매를 개시했다. 동물들은 알약 등 표준 약제 섭취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미국의 복합약제 전문 약국들은 동물들이 선호하는 맛과 제형으로 맞춤형 의약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츄이는 이를 온라인으로 가져왔다. 츄이의 복합약제는 복합약제 면허를 가진 수의사들이 제조한다. 츄이는 앞으로 일반 고객뿐만 아니라 동물병원에도 복합약제를 판매할 계획이다.

츄이는 자사 브랜드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개와 고양이 사료 브랜드 ‘아메리카 저니(American Journey)’, 개의 치아 건강을 고려한 간식 브랜드 ‘닥터 리온(Dr. Lyon)’, 휴먼 그레이드(human-grade) 수준의 개 사료 브랜드 ‘타이리(Tylee)’, 고양이 진드기 치료제 브랜드 ‘온가드(Onguard)’ 등 자사 브랜드 라인업을 이미 여럿 갖췄다. 츄이는 지난 3년간 전체 판매 제품 가짓수(SKU)를 두 배로 늘렸는데, 이 중 자사 브랜드 제품 가짓수는 7배 증가했다. 지난해 자사 브랜드 제품의 매출은 두 배 이상 증가하며 전체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되고 있다.



지난 3월 츄이는 ‘디즈니 컬렉션’을 단독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침대, 의류, 목줄, 목걸이, 장난감 등 400개 이상의 반려동물 용품에 디즈니 캐릭터를 입혀 출시한 것이다. 미키마우스나 도날드덕 외에도 디즈니 산하 스타워즈, 픽사, 마블 캐릭터도 활용했다. “디즈니의 즐거움을 펫과 함께하는 일상생활로 가져오기 위함”이라는 츄이의 이번 시도는 갈수록 반려동물에게 많은 돈을 지출하는 밀레니얼세대의 취향을 적확하게 겨냥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가을부터 가동을 개시한 아치볼드 풀필먼트센터는 완전 자동화 시스템을 갖춘 츄이의 첫 번째 풀필먼트센터다. 그 덕분에 비슷한 규모의 시설에 비해 처리 능력은 25%, 노동생산성은 50% 높아졌고 비용은 30% 이상 절감됐다. 츄이가 정확한 숫자를 밝히지는 않지만 이 센터의 고용 인원은 기존 센터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추정된다. 츄이는 올해 2분기에 완전 자동화된 풀필먼트센터를 추가로 오픈하고 내년부터는 기존 센터들에 자동화 시설을 도입할 예정이다.

아마존 출신 CEO의 ‘데이터 경영’

싱이 츄이의 핸들을 잡으면서 츄이는 ‘데이터 기반’ 경영에 보다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똑똑한 데이터 괴짜(brainy data geek)’가 별명인 싱이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CEO 취임 초기인 2018년 여름 아마존이 반려동물 용품 정기배송 서비스를 신청하는 신규 고객에게 40% 할인 혜택을 제공하자 츄이 임원들은 현재 20%인 할인율을 40%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10 그간 츄이가 최저가 정책에 기반해 신규 고객을 늘려왔던 관성대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싱은 자사 고객이 가격 인하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츄이의 정기배송 서비스를 이미 가치 있게 여긴다고 생각했다. 일주일간의 데이터 분석과 토론 끝에 츄이는 30%만큼의 할인만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아마존보다 할인율이 낮다고 해서 경쟁에 밀리지 않았음은 최근 경영 실적으로 입증됐다.

싱의 리더십하에 츄이는 보스턴 본사에 기술 담당 조직을 대거 확충하고 데이터 과학과 기계 학습, IT를 활용해 주문 예측, 재고 구매 및 배치 등을 개선해 운송 및 물류를 최적화해나가고 있다. 고도로 자동화된 아치볼드 풀필먼트센터가 이러한 성과 중 하나다. 싱은 “서플라이체인(supply chain, 공급망)과 풀필먼트는 혁신의 주요 대상”이라며 “이를 통해 고객에게 최고의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동시에 빠르게 사업 규모를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3월 코로나 팬데믹이 미국을 강타했을 때 아마존을 비롯한 모든 이커머스 업체는 배송난에 시달렸다. 물류 시스템이 마비될 정도로 주문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상황에 놓인 츄이는 고객 감동 전략을 유지, 강화하는 선택을 했다. 풀필먼트센터 및 고객서비스 담당 직원을 1만 명 이상 새로 고용하고 항공 운송을 도입했다. 특히 오토십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에게 차질 없이 반려동물 사료 및 용품이 배송되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팬데믹 발생 수주 내에 전 직원이 집에서도 차질 없이 고객서비스에 임할 수 있도록 기술적 방안을 마련했다. 싱은 “덕분에 고객서비스의 질을 팬데믹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첫 분기 흑자 내며 청신호… 후발 스타트업 도전에 유의해야

현재 미국에서 츄이의 고객 감동 전략의 효용성을 의심하는 시선은 없다. ‘펫 휴머니제이션(반려동물의 인간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반려인과 반려동물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고 반려인만큼이나 반려동물을 귀하게 여기는 브랜드가 고객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란 데 모두가 동의하기 때문이다. 다만 츄이의 이러한 전략에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는 게 문제다. 시장은 츄이가 기존 전략을 유지하면서도 흑자로 돌아설 수 있을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츄이는 최근 긍정적 신호를 보여줬다. 팬데믹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비용 지출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4분기에 2100만 달러 규모의 사상 첫 분기 흑자를 냈다. 고객 및 매출 확대로 높은 비용 구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단초를 보여준 셈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츄이가 올해 사상 첫 연간 흑자를 기록하지 않겠냐는 기대도 흘러나오고 있다.

경쟁 상대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츄이의 앞날에 청신호를 보낸다. 물론 아마존이 온라인 반려동물 용품 시장에서도 막강한 존재지만 아마존이 츄이처럼 반려인들에게 친밀한 브랜드로 거듭날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츄이만의 차별성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오프라인 업체들의 빠른 온라인 전환, 바크박스(BarkBox) 같은 정기배송 서비스 업체의 성장에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펫코(PetCo)는 1500개에 달하는 오프라인 매장을 픽업 주문 센터로 탈바꿈시키며 물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또 기존 매장에 동물병원을 추가하며 경쟁력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장보기 대행 서비스 업체인 인스타카트와의 제휴로 ‘2시간 내 배송’ 서비스도 제공한다. 개의 간식과 장난감을 정기배송해주는 바크박스도 지난해 구독 건수가 58%나 증가했을 정도로 성장 속도가 무섭다. 바크박스는 매달 100만 개 상자를 발송하는데 내용물이 서로 다른 상자가 15만 가지에 달할 정도로 개인화된 서비스를 강점으로 내세운다. 반려견과 함께 반려돼지를 키우기 때문에 돼지고기가 들어간 개 간식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대체 간식과 함께 반려돼지를 위한 간식까지 챙겨 보내주는 식이다. 바크박스는 최근 사료 및 소모 용품에 대한 정기배송 서비스를 개시해 츄이의 잠재적 경쟁자로 부상하는 중이다.

하지만 고객과의 끈끈한 관계를 바탕으로 츄이는 자신감을 피력한다. 싱은 “우리는 이테일러(etailer, 전자소매업자)가 아니라 제품과 기술로 뒷받침되는 경험 중심 회사”라며 “대부분의 회사가 하지 않는 방식으로 고객 경험에 투자해온 동시에 쉬지 않고 혁신해왔기에 앞으로도 고객의 마음을 얻어 시장점유율을 높여 나갈 수 있으리라 자신한다”고 말했다.



DBR mini box II : Interview: ‘츄이’의 수밋 싱 CEO
“우리는 인정 넘치는 브랜드… 5년 내 해외 진출 고려할 것”



2021년 3월로 수밋 싱(Sumit Singh)이 CEO로서 츄이를 이끈 지 만 3년이 됐다. 창업자가 떠난 자리를 이어받았다는 부담이 적지 않았겠지만 그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며 2020년 말 ‘글로벌 비즈니스를 바꾼 블룸버그 50인’에 선정되는 명예를 얻기도 했다. 최근 게임스톱 주가 사태로 한국에도 이름이 많이 알려진 창업주 라이언 코헨은 츄이를 떠난 후 현재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

창업주의 입김 없이 싱의 리더십만으로도 츄이의 매출은 3년간 250% 성장해 70억 달러를 돌파했고, 수익성은 상승 곡선을 그렸다. 상각 전 영업이익(Adjusted EBITDA profit margins)이 2017년 -12%에서 2020년 +1%로 향상됐고, 2020년 4분기에는 사상 첫 분기 흑자를 냈다. 싱은 인도 출신으로 모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와 텍사스대 공학 석사, 시카고대 MBA를 취득했다. 델컴퓨터를 거쳐 아마존에서 아마존 프레시의 글로벌 진출을 맡아오다 2017년 츄이에 합류했다. 7살짜리 시츄, 디(D)의 아빠이기도 하다.

시애틀에서 플로리다로, 즉 아마존에서 츄이로, 어떻게 옮겨오게 됐나.

처음 츄이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 츄이가 어떤 회사인지, 반려동물 시장의 규모는 얼마인지 몰랐다. 조사해 보니 미국에서만 시장 규모가 1000억 달러(약 112조 원)로 큰 기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또 이 시장은 아주 감정적인(emotive) 시장이다. 반려인들은 자신을 반려동물의 부모라 생각한다. 고객서비스에 특화된 츄이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고객에게 손편지와 꽃다발을 보내는 등 츄이의 고객서비스는 유별나다. 이를 처음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정말 좋았다. 츄이는 인정 넘치는 회사다. 고객을 맨 앞에, 그리고 가장 중심에 두고 혁신을 추구한다. 고객을 놀라게 하고 기쁘게 하는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해 나가는 회사다.

고객서비스센터에 대한 고객 만족도가 높다.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츄이의 에이전트는 2000명이 넘는데 모두 고객서비스에 열정적이다. 회사는 이들에게 추가 서비스 제공이나 환불 여부 등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래야 에이전트 스스로가 고객의 문제를 신속하고 사려 깊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의 전화를 수초 내에 받는 것이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가능했나.

전염병 대유행 초기에 몇 주 만에 전 직원을 원격 근무로 전환시켰다. 이후 전화, 채팅, 이메일, 소셜미디어 운영 등 고객서비스의 질을 대유행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모든 플랫폼에서 고객에게 댓글을 남겼고, 츄이만의 ‘와우(wow) 문화’(고객의 기대를 넘어 감동을 주는 문화)를 지키기 위해 생일카드 등 필요 물품을 에이전트들에게 제공했다. 또 셀프서비스 기능을 강화했다. 고객이 환불 및 주문 취소를 자동으로 요청할 수 있게 만들었고, 우리가 미리 작성해놓은 이메일 내용을 골라 발송할 수 있게 했다. 또한 텍스트 인식 기술과 알고리즘 로직을 활용해 고객 민원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지난해 선전으로 아마존과의 점유율 차이가 많이 줄었나.

경쟁사와의 시장점유율을 비교하지는 않는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반려동물 용품 관련 온라인 시장이 40억 달러(약 4조5000억 원)가량 성장했다고 한다. 츄이의 매출 증가분이 23억 달러다. 우리가 성장분의 57%를 가져온 셈이다.

지난 4분기 첫 분기 흑자를 내면서 올해 첫 연간 흑자를 내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나온다.

내가 속으로 외는 주문이 ‘츄이여, 빨리 성장하고 빨리 건강해져라(get big fast and get fit fast)’다. 지난 3년간 매출은 크게 늘고 수익성은 좋아졌다. 앞으로 분기마다 약간의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수익성이 매년 꾸준하게 개선될 것으로 본다. 우리의 수익성 궤도는 명확하다.

팬데믹 기간 동안 특히 수요가 증가한 분야가 있나.

DIY 제품 수요가 많아졌다. 일례로 집에서 반려동물과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반려인들이 직접 반려동물을 관리하고자 해 그루밍 제품 수요가 늘었다. 간식 및 장난감 수요도 증가했다. 또 반려동물의 건강 및 웰빙에 대한 관심이 커진 반면 많은 동물병원이 문을 닫거나 근무시간을 단축해 반려인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우리는 고객과 수의사를 원격으로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애초 계획보다 앞당겨 도입했다.

수의사와의 연결 서비스에 대한 고객 반응은 어떤가.

고객들이 아주 좋아한다. 언제든 수의사와 연락할 수 있기에 안심할 뿐만 아니라 수의사로부터 적시에 조언을 구해 반려동물 건강을 관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최근 서비스 시간을 주 5일에서 주 7일로, 오후 8시까지에서 밤 11시까지로 확대했다. 현재 20여 개 주에서 수의사와 영상 상담이 가능한데 다음 달에 이를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자사 브랜드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사 브랜드는 우리 사업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로 최우선 순위로 여기고 있다. 우리는 다른 제품을 그대로 베끼지 않는다. 차별화된 제품으로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자 한다. 일례로 다양한 맞춤형 제품을 제공하는 프리스코(Frisco) 라인은 고객 리뷰에서 5점 만점에 4.5점을 받고 있다.

기존 오프라인 펫용품 업체들의 온라인 전환 및 새로운 스타트업 등장 등 경쟁이 만만치 않다.

츄이는 매우 특별한 회사다. 고객이 츄이를 처음 만날 때부터 아주 긍정적인 인상을 갖게 하는 경험을 제공해 고객을 츄이 브랜드의 전도사로 만든다. 고객은 츄이 브랜드에 적극적이며 오래도록 관계를 이어간다. 대부분의 회사가 하지 않는 방식으로 고객 경험에 투자하고 있기에 전망이 밝다고 생각한다.

해외 진출 계획은.

츄이의 브랜드와 능력을 보면 해외 진출도 당연히 검토할 만하다. 하지만 현재는 미국 시장이 매우 매력적이고 츄이의 높은 성장이 기대된다. 향후 5년 내엔 해외 진출을 고려할 생각이다.

펫 비즈니스에 도전하는 한국 기업들에 조언한다면.

고객과 고객 경험에 끈질기게 집중하는 고객중심주의가 반드시 사내 문화에, 그리고 브랜드의 핵심에 스며들어야 한다. 조직 전체가 매일 고객중심주의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과 시사점
컨슈머 아닌 ‘팬슈머’ 만들어 펫 비즈니스계의 아마존으로 부상

츄이의 빠른 성장을 설명할 때 늘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고객 충성도(Customer Loyalty)다. 츄이의 끝없는 성장의 이면에 충성 고객들의 힘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시대, 모든 기업이 “컨슈머가 아닌 팬슈머(Fansumer)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소비자의 욕구는 더욱더 까다로워지고, 디지털 세상에서는 그 욕구를 충족시켜줄 만한 수많은 대체재가 매일 새롭게 등장한다. 살아남으려면 모두를 만족시키기보다는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기업의 생태계에서 꾸준하게 가치를 생성해줄 충성도 높은 팬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츄이는 어떤 방식으로 고객을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충성도 높은 팬슈머로 만들어갔을까?

성공 요인 1. 정확한 타깃 고객에게 정확한 가치 전달

첫째, 츄이는 펫 비즈니스에서 충성 고객으로 빠르게 전환될 수 있는 타깃 집단을 정확하게 설정하고 그들이 원하는 가치를 발빠르게 전달했다. 반려동물 시장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은 반려동물을 소중한 가족으로 여기는 이들이다. 츄이는 자신의 비즈니스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바로 이들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동시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그저 동물이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가족으로 여기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츄이는 반려동물을 마치 사람처럼 대우하는 펫 휴머니제이션(Pet Humanization, 반려동물의 인간화) 현상을 여러 활동을 통해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대표적 예가 매달 1000여 명의 고객에게 전문 작가가 직접 그린 반려동물 초상화를 깜짝 선물로 보내주는 이벤트다. 아주 오래전부터 서양에서 초상화의 모델이 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권력과 부를 지녔다는 의미였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두는 게 무척이나 편리한 시대에 반려동물의 초상화를 집 안에 걸어두는 행위는 해당 대상이 매우 중요하며 가족처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해준다. 이 같은 츄이의 ‘의도’에 설득된 고객은 반려동물을 그저 자신이 보살펴주는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안에서 함께 웃고 떠들며 삶을 완성해나가는 존재,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츄이가 반려동물이 사망한 고객을 대상으로 사후 서비스를 강화한 것도 동일한 이유라 하겠다. 반려동물을 잃고 허전함에 잠긴 고객에게 애도의 뜻을 담아 꽃과 카드를 보냄으로써 ‘우리 역시 당신의 반려동물을 사람처럼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한다. 이러한 고객 경험 서비스를 통해 츄이의 핵심 타깃 고객들은 ‘반려동물은 곧 나의 가족’이라는 자신과 동일한 신념과 철학을 가진 츄이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다. 츄이의 서비스에 장기적으로 예속될 수밖에 없음도 물론이다.



성공 요인 2. ‘인간적인 이커머스’ 구현

둘째, 츄이는 디지털에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입혀 인간적 냄새가 나는 브랜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온라인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이커머스 시장이 나날이 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0과 1이란 숫자로 구축된 디지털 세상에서의 물품 교환은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충성 고객이란 인간적 교류와 아날로그적 체온이 전달돼야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커머스 업체 츄이는 잘 알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츄이의 고객 응대 서비스는 무척이나 아날로그적이다. 모든 기업이 효율성을 앞세우며 챗봇 형태의 고객 응대 서비스를 강화시켜나가는 시대에 츄이는 여전히 아무 때나 전화를 해도 1분 내에 따뜻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객서비스센터를 운영한다. 어디가 아픈지, 어디가 불편한지 반려동물은 스스로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니 문제가 생겼을 때 반려인은 불안하다. 츄이는 이 부분을 전문적 지식을 갖춘 상담원을 통해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터치한다. 다양한 제품을 온라인을 통해 저렴하고 빠르게 전달하는 아마존의 강점에 더해 고객이 가장 불편함을 느낄 포인트에서는 인간적으로 깊이 있게 접근하는 것이 츄이에 충성 고객이 많은 다른 이유라 하겠다.

츄이는 온라인이라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성장하는 기업인 동시에 가장 인간적이고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고객을 감동시키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영리한 기업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뽑아낸 고객에게 반려동물 초상화를 깜짝 선물하고,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났을 때 손편지를 보내는 등의 행위 하나하나에 츄이의 고객들은 충성도 높은 팬슈머로 변해갔을 것이다. 또한 츄이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고객 경험 서비스, 용품 판매를 넘어 반려동물과 관련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츄이만의 독특한 아날로그적 전략과 고객을 츄이의 플랫폼에 묶어두는 록인(Lock-in) 전략이 결합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시너지 효과는 매우 크다고 본다. 츄이의 성공은 단순히 펫비즈니스 영역에서의 온라인 기반 기업 성장 사례로 봐서는 안 된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이커머스 기업이 사적이고 아날로그적 고객 경험을 통해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한 혁신 사례로 봐야 한다.

국내 펫 비즈니스의 토종 승자를 기대하며

국내 반려인구가 꾸준하게 증가하면서 펫 비즈니스도 점점 열기를 더하고 있다. 대기업에서부터 스타트업까지 다양한 기업이 펫 비즈니스에 뛰어들고 있지만 아쉽게도 츄이만큼 반려인의 반려동물에 대한 신념이나 철학을 이해하고 체화해 핵심 고객층을 설정, 공략하는 기업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해외 브랜드가 국내 펫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이기려면 반려인 고객에게 그들이 원하는 핵심적인 가치와 차별적인 고객 경험을 선사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디지털 전략만을 고수하지 않고 인간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전략을 선보이는 츄이가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츄이와 같이 충성 고객을 굳건하게 확보한 브랜드의 가까운 예로는 우아한형제들이 운영하는 배달 앱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이 있다. 배민이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경쟁 업체들을 이기고 선두에 설 수 있었던 동력은 배민을 열렬히 좋아했던, 충성심 강한 2030 고객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배민은 맛있는 음식을 빠르게 배달한다는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가치를 넘어, 특유의 ‘배민스러운’ B급 유머 코드로 2030 세대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배달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하지만 이들 세대가 좋아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갔다. 독특한 서체(폰트)를 만들어 대학생들에게 무료로 배포했고, 이 폰트를 대학생들이 소소하게 구매할 수 있는 문구류 등에 삽입해 판매했다. B급 코드의 다양한 광고를 내보내며 젊은 고객들에게 긍정적인 브랜드 인식을 확립했다. 그리고 2016년에는 ‘배짱이(배민을 짱 좋아하는 이들의 모임)’를 결성해 좀더 충성도 높은 팬덤을 만든다. 배짱이는 지금의 배민이 있게 한 주요한 성장 동력이 된 팬클럽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팬클럽이 철저하게 아날로그적 휴먼 터치(Human Touch) 전략으로 운영됐다는 사실이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직접 김밥을 만들어 배짱이들과 소풍을 갔고, 신사옥 이전을 기념해 이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했다.

츄이와 배민처럼 ‘우리의 핵심 고객은 누구이고 그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디지털에서만 답을 찾으려 하지 않을 때, 국내 펫비즈니스에서도 토종 승자가 나올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로 대변되는 최첨단 기술도 결국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역할과 조화롭게 쓰여질 때만 의미가 있다. 디지털 시대의 혁신적 성장을 위해서는, 인간과 기계는 대체제가 아니라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보완재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츄이는 잘 보여주고 있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디지털 문화심리학자 seungyun@kunkuk.ac.kr
필자는 영국 웨일스대에서 소비자심리학으로 석사 학위,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대에서 경영학 마케팅 분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비영리 연구•학술단체인 디지털마케팅연구소(www.digitalmarketinglab.co.kr)의 디렉터로 디지털 및 빅데이터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공간은 경험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영향력』 『디지털 시대와 노는 법』 『입소문을 만드는 SNS 콘텐츠의 법칙, 바이럴』 『구글처럼 생각하라-디지털 시대 소비자 코드를 읽는 기술』 『디지털 소셜미디어 마케팅』 등이 있다.

 

 

DBR Case Study: 식료품 배달 시장서 아마존 제친 ‘인스타카트’

“대신 쇼핑해주고, 집 앞까지 가져다 드려요”
고객-식료품점 연결해 북미 돌풍

313호 (2021년 0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2012년, 아마존의 물류 담당 IT 엔지니어였던 인도계 청년 아푸바 메타가 만든 ‘인스타카트’는 코로나 시대를 맞아 미국을 대표하는 북미 최대 식료품 배달 서비스로 부상했다. 우버 기사가 고객을 목적지로 데려다주듯 쇼퍼(Shopper)가 고객 대신 장을 봐서 집으로 가져다주기 때문에 ‘식료품 업계의 우버’라고 불리기도 한다. 후발주자 및 강력한 대기업을 물리치고 최강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창업자 본인이 실제 겪었던 불편함을 바탕으로 고객의 불편함을 정확히 간파했기에 시장의 니즈에 정확히 반응했다는 점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 제공자와 사용자를 연결해 초기 투자에 따른 고정비용과 의도치 않은 경쟁 구도를 피했다는 점 △슈퍼마켓들과의 경쟁 대신 파트너십을 통한 성장을 택했다는 점 등이 꼽힌다.





“온라인으로 TV도 사고, 영화도 보고, 친구도 사귀면서 왜 식료품은 직접 가서 사야 하지?”

2012년 봄. 스물여섯 살의 인도계 청년 아푸바 메타(Apoorva Mehta)는 스리라차 소스 한 병밖에 들어 있지 않은 텅 빈 냉장고를 들여다보며 이렇게 푸념했다. 인도에서 태어나 캐나다 토론토에서 자란 그는 아마존 물류 담당 IT 엔지니어였다. 2년 전 창업의 꿈을 안고 아마존을 퇴사한 뒤 시애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왔지만 실패만 거듭하던 중이었다.

그는 자신처럼 슈퍼마켓은 먼데 자동차가 없어 장보기에 고충을 겪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아마존의 동료들도 업무에 치여 냉장고에 식재료 채워 넣을 시간이 없다고 푸념하곤 했었다. 메타는 곧장 식료품을 대신 사다 주는 서비스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10년도 채 되지 않아 그가 개발하고 창업한 인스타카트(instacart.com)는 아마존의 ‘아마존 프레시’를 누르고 북미 최대 식료품 배달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

인스타카트가 아푸바 메타의 첫 창업 아이템은 아니었다. 메타는 ‘변호사를 위한 SNS’ 등 스무 가지 창업 아이템을 실패한 후에야 인스타카트 아이디어를 고안해냈다. 당장 먹을 게 없는데 슈퍼마켓은 멀고 자동차가 없는 그에게 식료품을 빠르게 배달해주는 서비스는 정말로 필요한 것이었다. 그는 “그때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창업을 위한 창업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 창업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나는 변호사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1



그리고 2020년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미국을 강타했다. 자택대기령(Stay at Home)이 미 전역으로 확산되며 출근과 외식 등 평범한 외출조차 어려워졌다. 다른 많은 세계인과 마찬가지로 미국인의 일상생활도 상당 부분 달라졌다. 그중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온라인 장보기’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코스트코 같은 대형 마트로 몰려가 식료품과 생필품을 잔뜩 사들이는 미국인들과 이들의 ‘패닉 바잉’으로 텅 빈 매장의 모습이 뉴스 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지만 모두가 마트로 몰려간 건 아니었다. 많은 미국인이 팬데믹 시대에 가장 안전한 자신의 집에 머물며 식료품을 구매했다.

급속도로 팽창하는 미국의 온라인 식료품 시장에서 인스타카트는 가장 주목받는 플레이어가 됐다. 인스타카트는 ‘식료품 업계의 우버’라고 불린다. 우버 기사가 고객을 목적지로 데려다주듯 인스타카트의 쇼퍼(Shopper)가 고객 대신 장을 봐서 집으로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2012년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1시간 내 배송’을 기치로 내걸고 사업을 시작한 이 회사는 현재 미국 및 캐나다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1시간 혹은 2시간 내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의 특허 상품이라 할 ‘새벽 배송’보다 빠른 셈이다.

팬데믹 사태 초기이던 2020년 3월, 인스타카트의 주문량은 전년 동기 대비 500% 이상 늘었다.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 앱) 다운로드는 전월 대비 200% 이상 증가했다. (그림 1) 이 회사는 팬데믹이 발생하자 쇼퍼 인력을 빠른 속도로 늘려 폭증하는 주문에 신속하게 대응하며 시장 지배력을 강화해나갔다. 인스타카트 측은 DBR와의 인터뷰에서 “2020년 3월 초 20만 명이던 인스타카트 쇼퍼를 5월 기준 50만 명으로 늘렸다”고 밝혔다. 팬데믹 발생 두 달 만에 쇼퍼 인력을 30만 명 넘게 충원한 것이다.



인스타카트는 2020년 한 해 동안 미국과 캐나다의 각 가정에 배송한 식료품이 350억 달러어치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메타는 언론 인터뷰에서 “팬데믹 발생 이후 매일, 전날보다 주문량이 20% 증가했다. 두어 주 만에 연말 매출 목표를 넘어섰고 일주일 후 2021년 목표를, 또 며칠 후 2022년 목표를 초과했다. 그 이후로는 계산하기를 그만뒀다”고 밝혔다.2

4년 전 20억 달러였던 인스타카트의 기업 가치는 지난해 10월 177억 달러(약 (19조4000억 원)로 10배 가까이 뛰었다. (그림 3) 인스타카트는 여세를 몰아 올해 초 기업공개에 나선다. 투자 업계는 인스타카트가 기업공개 시점에 300억 달러(약 33조 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도 인스타카트의 무서운 추격을 의식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7월 미국 하원 반독점 청문회에 출석해 “쇼피파이(Shopify, 이커머스 플랫폼 기업)와 인스타카트가 아마존의 경쟁자로 부상했다”고 언급했다. DBR가 인스타카트가 급성장한 비결을 분석했다.

DBR mini box I
코로나19 이후 급성장한 美 온라인 식료품 시장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온라인을 통한 식료품 구매 금액은 전체 식료품 구매 금액의 7%를 차지했다. 이는 2019년 말 5%에서 석 달 새 2%포인트나 상승한 수치다. 지난해 8월 투자회사 코웬(Cowen)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는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구매한 적이 있다’고 밝힌 응답자가 32%에 달했다. 2019년 응답률이 18%인 점을 감안하면 큰 폭의 상승세다. 이제 온라인 식료품 배달(Online Grocery Delivery)은 미국 가정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서비스가 됐다.

물론 이번 팬데믹 이전에도 식료품 배달 서비스는 존재했다. 2017년 아마존이 홀푸즈마켓을 인수한 뒤 당일 배송(same day delivery) 서비스를 가속화하자 월마트, 타깃, 코스트코 등 오프라인 기반의 대형 마트들도 당일 혹은 이틀 내 배송 서비스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배송 편의성이 높아진 데 힘입어 미국의 온라인 식료품 시장은 2016년 120억 달러에서 2018년 260억 달러, 그리고 2019년 580억 달러로 쑥쑥 성장했다.

하지만 코로나 대유행으로 ‘성장’이라는 표현만으로 미국의 온라인 식료품 시장을 설명하기 어렵게 됐다. 주문량이 엄청난 속도로 폭증했기 때문이다. 조사 업체 어니스트리서치(Earnest Research)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아마존과 월마트 등 주요 유통업체의 온라인 배송 및 픽업 서비스(온라인 주문 후 고객이 직접 매장에서 수령)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분의 2 이상 늘었다.

주문 2시간 내에 식료품을 배송해주는 아마존 프레시의 경우를 보자. 2월 첫 주 200%를 넘어선 전년 동기 대비 매출 증가율이 3월 하순에는 452%로 크게 뛰었다. (그림 2) 대부분 업체가 주문 폭주로 2시간은 물론 당일 배송 약속을 지킬 수 없을 정도였다. 마케팅 조사 업체 이마케터(eMarketer)는 최근 2020년 미국의 온라인 식료품 시장 규모를 890억 달러로 추산, 전년 대비 53% 커질 것이라는 예상치를 내놨다.

i. https://www.bloomberg.com/news/features/2020-05-06/instacart-was-overwhelmed-by-coronavirus-overnight

장보러 가기 귀찮은 불편을 공략

인스타카트는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스타트업 액셀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 출신이다. 메타가 공동 창업자 맥스 뮬런, 브랜든 레오날도와 함께 YC에 입소한 것도 ‘정말 필요한 서비스’임을 몸소 보여준 덕분이었다. 2012년 6월 인스타카트 첫 버전을 완성한 메타는 YC 프로그램 기한이 이미 두 달 전에 끝났음을 알게 됐다. 그래도 YC 측과의 접촉을 시도했고, 마침내 YC 파트너 중 한 명이자 투자자인 개리 탠과 통화를 하게 됐다. 메타는 그에게서 “지금은 입소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메타는 여기서 포기하는 대신 인스타카트 앱을 열어 탠의 사무실 앞으로 맥주 6병을 주문했다. 곧 한 쇼퍼가 탠에게 맥주를 배달했다. 그리고 한 시간 반 후, 메타는 “내일 만나서 얘기하자”는 탠의 연락을 받았다.

인스타카트는 YC의 훈육을 받으며 실리콘밸리 일대에서 서비스를 개시했다. YC 멤버들은 인스타카트의 고객이자 조언자가 돼줬다. 숱한 창업 아이템 실패를 겪은 메타는 “인스타카트는 내가 친구들에게 권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사용하는 첫 번째 아이템이었다”고 회고한다.

사업 초기에 인스타카트는 식료품점들과 정식 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저 몇몇 슈퍼마켓에 가서 고객이 요청한 것들을 대신 장을 봐주면서 고객에게 매장 판매가에 10∼20%의 요금을 더 붙여 청구했다. 하지만 고객들이 매장보다 비싼 가격에 불만을 제기하자 2014년부터 식료품점과 정식 파트너십을 맺기 시작했다.

현재는 식료품점들이 인스타카트에서 각 상품을 얼마에 팔지 스스로 결정한다. 인스타카트는 리테일러에게서 상품을 직접 납품받지 않고, 자사 앱과 홈페이지에 리테일러 각각의 페이지를 열어줄 뿐이다. 각자의 ‘디지털 점포’에서 리테일러가 무엇을 얼마에 팔지 정해 알려주면 인스타카트는 이 정보를 앱과 홈페이지에 그대로 노출한다. 현재 파트너사의 절반가량이 오프라인 매장과 동일한 가격을, 나머지는 10∼20% 높은 가격을 인스타카트 고객에게 제시하고 있다. 인스타카트는 각 식료품점의 메인 페이지에 오프라인 매장과 가격이 동일한지(‘Everyday store prices’), 다소 비싼지(‘Prices are higher than your local warehouse’) 밝혀 고객의 선택을 돕는다.

특히 뉴욕처럼 주민들이 차를 많이 갖고 다니지 않는 지역에서는 무거운 식료품을 나르느라 우버나 택시를 타기보다 매장보다 다소 비싼 값을 지불하더라도 인스타카트 서비스가 선호된다. 또 감염증 우려로 약간의 프리미엄을 지급하더라도 온라인 쇼핑을 선호하는 고객도 크게 늘었다.

인스타카트 사업 전략

1) 3無 전략, 물류 창고, 재고도, 트럭도 없다

“초기 투자 단계인 시드 라운드를 준비할 때 벤처캐피털 투자자 중 한 명이 플로피 디스크를 잔뜩 안겨줬다. 그 안에 웹밴(Webvan)의 사업 계획이 들어 있으니 꼭 열어보라고 했다.” (2014년 6월 와이콤비네이터 강연에서 메타 인스타카트 CEO) 3

메타는 사업 초기에 겪은 가장 어려웠던 일로 투자자 설득을 꼽는다. 실리콘밸리에서 2001년 파산한 ‘웹벤 후유증’이 10년 넘도록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과 언론은 온라인 장보기가 일상적 행위로 자리 잡지 못해 결국 인스타카트가 ‘제2의 웹벤’이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웹벤은 실리콘밸리의 가장 유명한 실패작 중 하나로 거론되는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는 ‘온라인 슈퍼마켓’을 표방하며 주문한 지 24시간 내에 식료품을 각 가정에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과 과도한 투자, 닷컴버블 붕괴로 3년간 8억 달러의 투자금을 소진한 뒤 파산을 선언하고 말았다.

웹벤의 실패로 실리콘밸리에서 온라인 식료품 배달은 일종의 금기어가 됐다. 게다가 이는 이커머스 거인 아마존이 호시탐탐 사업 확장을 꾀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섣불리 뛰어들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인스타카트는 겁 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메타는 “웹밴이 실패한 2000년대 초반과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며 투자자들을 설득했다. 웹밴 시절에는 스마트폰이 없었지만 2012년에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됐다. 이커머스 시장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사람들은 우버 서비스에 익숙했기에 인스타카트 서비스도 쉽게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YC 시절의 에피소드다. YC 디너 행사에 참석 중이던 메타에게 한 쇼퍼가 “어떤 고객이 무려 200리터의 음료수를 주문했다”며 겁에 질려 전화했다. 인스타카트 직원들이 슈퍼마켓으로 출동해 차에 음료수를 한가득 싣고 도착한 고객의 배달지는 다름 아닌 YC 사무실. 디너 행사 담당 직원이 주문한 것이었다. 그 직원은 “행사 때문에 매주 음료수를 이만큼 사야 하는데 인스타카트 덕분에 쉽게 해결했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2013년 세쿼이아캐피털이 인스타카트에 850만 달러 규모로 시리즈A 투자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인스타카트에 도약의 발판이 됐다. 세쿼이아캐피털은 웹밴의 실패로 큰 피해를 입은 웹밴의 주요 투자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인스타카트 투자를 주도한 마이클 모리츠 세콰이아캐피털 회장은 “기술의 발전과 인스타카트의 창의적인 사업 방식 덕분에 웹밴과 같은 실패 위험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웹밴의 실패 요인으로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대규모 투자다. 웹밴은 미국 주요 26개 지역에서 대형 물류센터 건설을 동시에 추진하다 파산하고 말았다. 또 직접 사들인 트럭으로 식료품을 배달했다. 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 구조였던 것이다.

인스타카트는 정반대로 ‘3무(無)’ 전략을 편다. 즉, 물류 창고와 재고, 트럭을 보유하지 않는다. 인스타카트의 물류 창고는 전국의 식료품점이고, 재고는 각 식료품점이 보유한 식품이다. 또 우버가 우버 기사의 자동차로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듯 인스타카트는 쇼퍼의 자동차로 식료품을 실어 나른다.

인스타카트가 하는 일은 고객과 식료품점, 쇼퍼를 IT로 연결하는 것이다. 고객이 사용하는 인스타카트 앱과 홈페이지에는 고객이 설정한 주소로 배달해줄 수 있는 식료품점 목록이 뜬다. 그중 한군데만 선택하면 해당 식료품점에서 판매하는 식재료가 품목별로 제시된다. 식료품점이 매일 판매 제품 목록과 가격, 재고 현황을 인스타카트에 전송하면 인스타카트가 그것을 앱에 노출하는 것이다. 쇼퍼가 사용하는 인스타카트 앱에는 고객 주문 내역(식료품점, 구매 목록, 배달처)이 뜬다.

고객과 쇼퍼는 앱 내 메신저 창에서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쇼퍼가 매장에서 “‘엑스트라 크리스피 프렌치프라이 포테이토’는 없네요. 대신 ‘와플 프라이드 포테이토’와 ‘스테이크 프라이드 포테이토’가 있는데, 어느 걸로 대체할까요?” 하고 메시지를 보내면 고객이 원하는 바를 답장하는 식이다(많은 쇼퍼가 제품 사진을 찍어 보내준다).

물류 창고와 재고, 트럭 등 유형 자산을 사들이지 않으므로 인스타카트는 빠른 속도로 서비스 지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사업 초기에는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시카고, 보스턴, 뉴욕, 워싱턴DC 등 한 달에 한 도시꼴로 서비스 지역을 추가했다. 인스타카트가 진출한 도시는 2016년 25개, 2018년 4000개, 현재는 5500개 이상에 달한다.

인스타카트가 스스로를 소프트웨어 회사라고 정의하면서도 가장 큰 물류망을 보유한 식료품 배달 회사라고 자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구 830만 명의 뉴욕시부터 인구 28만 명의 알래스카주 앵커리지까지 북미 구석구석의 식료품점과 파트너십을 맺음으로써 방대한 서비스 커버리지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인스타카트와 마찬가지로 3무 전략으로 식료품을 배달하는 업체로 십트(Shipt)가 있다. 인스타카트보다 2년 늦은 2014년 앨라배마주에서 사업을 개시한 십트는 2017년 타깃에 인수된 이후에도 독자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서비스 범위가 인스타카트에 미치지 못한다. 일례로 뉴욕 맨해튼의 어퍼웨스트사이드에서 인스타카트는 이 동네의 80년 넘은 터줏대감 슈퍼마켓 자바(Zabar’s)를 비롯해 45개 상점의 주문을 소화하는 데 반해 십트는 11개에 그친다.

DBR mini box II
인스타카트 선두로 치열해진 2시간 내 배송 경쟁

북미 지역 식료품 배달 서비스 비교


2) 대기업 포함 다종다양한 식료품점과 제휴

2017년 6월 아마존이 홀푸즈마켓을 인수한다고 발표하자 미국 식료품 시장은 일순간 긴장에 휩싸였다. 아마존이 미국과 캐나다, 영국에 460개 매장을 보유한 홀푸즈마켓을 전초기지 삼아 식료품 당일 배송 서비스를 강화한다면, 시장 구도가 크게 재편될 것이 명약관화했기 때문이다.

이 뉴스는 인스타카트에도 근심을 안겼다. 인스타카트는 1년 전인 2016년 홀푸즈마켓과 이곳의 식료품을 독점 배송하는 파트너십 계약을 맺었다. 당시 인스타카트의 전체 매출에서 홀푸즈마켓의 비중은 10% 남짓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이 홀푸즈마켓 배달 서비스를 가져간다면 인스타카트로서는 큰 손실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가 됐다. 온라인으로의 전환에 미지근한 태도를 취했던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아마존의 습격’을 계기로 다급해진 것이다. 온라인 주문 및 배송 인프라를 자체적으로 갖추기 어려운 회사들은 그 대안으로 인스타카트의 손을 잡았다. 아마존의 홀푸즈마켓 인수 계획이 공개된 지 1년 만에 인스타카트의 유통 파트너사는 200개에서 350개로 크게 늘었다. 알버슨(Albersons), 알디(Aldi), 샘즈클럽(Sam's Club) 등 미국의 주요 식료품 유통업체가 이 시기에 인스타카트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홀푸즈마켓과의 제휴 관계를 종료한 직후인 2018년 9월 메타 CEO는 “홀푸즈마켓의 시장점유율은 1.5%에 불과하다. 미국인 대부분은 홀푸즈에서 장 보지 않으며, 그러한 미국인들이 장 보는 슈퍼마켓들이 인스타카트의 파트너”라고 말했다. 4

특정 유통업체에 의존하지 않고 다종다양한 유통업체와 파트너십 관계를 구축한 것은 소비자 행동 패턴을 고려할 때 유효한 전략이다. 메타 CEO는 2018년 11월 리테일러 업계 행사에 출연해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두 가지 특성이 발견된다”고 소개했다.5 우선 소비자는 오랫동안 장을 봐온 식료품점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 뉴욕주 북부 사람들은 샌드위치를 살 때 꼭 웨그맨(Wegmans)에서 파는 데니스 샌드위치를 사려고 하고,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사람들은 ‘식료품점에 간다’는 말 대신 ‘퍼블릭스(Publix)에 간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또 소비자는 한 군데 식료품점만 이용하지 않는다. 매주 ‘스프라우츠(Sprouts)’에서 장을 보면서 한 달에 한 번은 ‘샘즈클럽’에서 대용량 제품을 사들인다.

미국의 대표적 식료품 유통업체로는 월마트와 홀푸즈마켓을 인수한 아마존이 꼽히지만 이 두 대기업의 점유율은 20%가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 80%는 전국의 다양한 대형 마트, 슈퍼마켓 체인, 그리고 동네 식료품점이 차지한다. 인스타카트는 바로 이들과 손을 잡았다. 미국과 캐나다의 거의 모든 가정에는 10∼15분 내에 갈 수 있는 식료품점이 있다. 바로 이 식료품점에서 각 가정으로 식료품을 배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게 인스타카트의 전략이고, 이는 인스타카트가 시장을 선점하는 데 주효하게 작용하고 있다.

심지어 월마트도 인스타카트와의 제휴를 발표했다. 지난해 8월 월마트와 인스타카트는 미국 내 4개 도시(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 및 오클라호마의 털사)에서 식료품에서 전자제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가장 빠르게는 1시간 내에 당일 배송하기로 협약했다.

2020년 말 기준 미국 가정의 85%, 캐나다 가정의 70%가 인스타카트 서비스 권역 안에 있다. 인스타카트와 파트너십을 맺은 유통업체는 500군데 이상으로, 점포 수로 보자면 4만 개 이상에 달한다. 인스타카트 홍보팀 관계자는 “2020년 팬데믹 와중에도 150개 이상 리테일러와 파트너십을 맺어 1만 개 이상의 매장이 새롭게 인스타카트에 합류했다”고 밝혔다.

인스타카트의 파트너사(社)는 그 층위가 다양하다. 월마트와 타깃, 코스트코 등 식료품 외 다양한 상품군을 취급하는 대형 마트에서부터 알디, 알버슨, 스프라우츠 등 전국 단위 마트 체인, 웨그맨과 퍼블릭스처럼 사업 범위가 몇 개 주(州)에 한정된 지역 기반 슈퍼마켓 체인, 그리고 특정 동네에만 있는 작은 식료품점과도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최근에는 배달 대상을 식료품 외 제품으로 확장하는 중이다. 스테이플(사무용품), 베스트바이(전자제품), 세포라(화장품), 펫코(애완용품), CVS와 Rite Aid(드럭스토어), 빅랏(대형 할인유통점) 등이 최근 1년 새 인스타카트에 새로 합류했다. 150개 이상 주류 도매업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주류도 배달한다. 처방약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인스타카트 측은 “식료품에서부터 기타 제품까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안전하게 집에서 받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서비스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스타카트는 소비자 선호도 조사에서도 거대 슈퍼마켓 체인을 앞질렀다. 코웬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조사에서 인스타카트는 온라인 주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통업체 선호도 순위에서 월마트와 아마존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유통 대기업 크로거(Kroger)와 타깃을 제친 것이다. 2019년 크로거와 타깃의 매출이 각각 1210억 달러와 750억 달러인 데 반해 인스타카트 매출(추정치)이 고작 30억 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난쟁이가 거인을 넘어뜨린’ 셈이다.


3) 정확한 재고 파악에 승부수

인스타카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 기능 중 하나는 정확한 재고 파악이다. 재고 정확도(Found Rate)가 떨어지면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 인스타카트 앱에 ‘갈라 애플’이 있다고 해서 주문했는데 실제 매장에 재고가 없다면 고객은 원하는 것을 사지 못하고, 리테일러는 매출을 내지 못하며, 쇼퍼는 없는 물건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고객과 파트너, 쇼퍼를 모두 실망시켰으니 인스타카트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인스타카트 기술팀은 각 식료품점의 실시간 재고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리테일러가 정기적으로 재고 현황을 업데이트해 전송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 개발 및 보급에 지속적으로 투자한다. 기본적으로 각 매장은 하루에 한 차례 정보를 전송하는데 이것만 믿고 있을 수 없다. 몇 시간 만에 모두 팔려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시간 재고 있음(realtime availability)에 더해 또 중요한 것이 쇼퍼들이 고객이 주문한 제품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find-availability)이다. 늘 같은 선반에 있던 토르티야 칩이 프로모션 때문에 살사 소스 옆으로 옮겨갔다면 쇼퍼는 토르티야 칩을 찾아내기 어렵다.

이에 인스타카트는 매장에서 재고가 있다고 정보를 보내왔음에도 쇼퍼들이 반복적으로 재고가 없다고 보고하면 해당 제품을 ‘재고 없음’으로 간주한다. 재고가 없거나 거의 떨어져가는 제품은 앱에 노출하지 않는다.

대체 상품(replacement item)을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도 고객, 리테일러, 쇼퍼의 만족을 높이는 핵심 기능이다. 일례로 ‘체다 슬라이스 치즈’를 주문한 고객에게 “해당 제품이 없으니 ‘아메리칸 슬라이스드 치즈’로 대체해드릴까요?” 하고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인스타카트는 대체 상품 적합도를 높이기 위해 고객을 대상으로 대체품이 만족스러웠는지를 꾸준히 평가해 이를 알고리즘에 반영하고 있다.

인스타카트가 자체 평가한 재고 정확도는 팬데믹 이전에 90%를 상회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주문이 폭증하자 60%대로 크게 떨어졌다. 대체품 추천도 엉망이 됐다. 화장실 휴지를 주문한 고객에게 프린트 용지가 추천되는 식이었다.

이에 인스타카트 기술팀은 아예 예측 모델을 바꿨다. 알고리즘에 반영하는 데이터 범위를 30일에서 1주일로, 쇼퍼가 제품을 찾을 수 있는지 예측하는 주기를 2시간에서 1시간으로 좁혔다. 인스타카트의 최고기술책임자 마크 셰프는 지난해 5월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해 한 달 치 데이터를 보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하루 치 데이터를 파악해 모델을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고 말했다. 6

몇 달 걸리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두어 주로 앞당기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재고 정확도는 지난해 5월에 75%, 현재(2021년 1월)는 90% 이상으로 회복됐다.

4) 우버와 도어대시에는 없는 ‘기업 고객’

우버와 음식 배달 앱 도어대시(DoorDash), 그리고 인스타카트는 모두 고객의 요구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온디맨드(On Demand) 비즈니스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차이가 매출 구조에서 나타난다. 우버는 승객이 내는 탑승료, 도어대시는 식당과 고객이 내는 수수료가 수익원이다. 매출처가 한두 개에 그친다. 인스타카트는 이들과 달리 고객이 내는 수수료와 식료품점으로부터 매출에 비례해 받는 커미션에 더해 제3의 매출처를 확보하고 있다. 바로 포장 소비재 제품(CPG•Consumer Packaged Goods) 관련 매출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장보기가 확대되면서 ‘제3의 매출’ 전망에 청신호가 켜졌다.

동네 마트에 가면 항상 제품 프로모션을 만나게 된다. 골드키위 두 상자를 할인된 가격에 묶음 판매한다든지, 3개들이 샴푸에 컨디셔너 한 병을 증정해준다든지 하는 것이다. 쿠폰이 포함된 식료품점의 전단을 집으로 보내오기도 한다. 인스타카트는 이러한 CPG 브랜드의 프로모션 활동을 온라인으로 옮겨왔다. 코카콜라, 피앤지, 유니레버 등 미국 내 상위 25개 CPG 브랜드를 모두 포함해 1000개가 넘는 CPG 브랜드가 인스타카트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메타는 “인스타카트는 식료품의 ‘구글 애드워즈(검색 광고)’가 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인스타카트의 전체 매출에서 CPG 매출 비중은 15% 안팎으로 알려졌다.

인스타카트의 CPG 서비스는 아마존과 유사하다. 메인 페이지 및 검색 결과 상단에 광고료를 지불한 제품을 노출하고, 고객 e메일로 전자 쿠폰을 보내주거나 각종 프로모션 정보를 제공한다. CPG 브랜드가 광고를 요청했지만 식료품점에 해당 제품의 재고가 소진됐다면 프로모션 내용은 노출되지 않는다. 또 주문 완료 전 ‘장바구니 부양(Basket Boost)’ 코너를 통해서도 CPG 제품을 노출한다. 바비큐 소스를 산 고객이라면 바비큐 요리를 할 계획이라고 가정하고 머스터드 소스를 추천해주는 식이다.

팬데믹으로 온라인 장보기가 일상적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서 CPG 브랜드들이 온라인 프로모션에 더욱 뛰어들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특히 인스타카트에 매일 쌓이는 방대한 고객 데이터가 CPG 브랜드의 프로모션 활동에 좋은 참고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스타카트는 식료품이 어떤 조합으로 자주 함께 구매되는지, 지역별로 특히 선호되는 제품이 있는지 등을 분석해낼 수 있다. 인스타카트가 지난 연말 발표한 트랜드 리포트(New Year, New Cart : The Tastes and Trends of 2021)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에 사람들이 집에서 이국적인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기를 즐기면서 피리피리소스(Piri Piri Sauce, 남부 아프리카에서 유래된 고추로 만든 매운 소스) 판매량이 725%나 상승했다. 케토 다이어트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제품명에 ‘케토’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품 판매량이 72% 증가했는데, 특히 텍사스 및 미 서부 해안가 도시에서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이처럼 구체적인 소비자 행동 패턴에 대한 정보가 제공된다면 CPG 브랜드로서는 고객도 많고 서비스 커버리지도 넓은 인스타카트에서 프로모션 활동을 할 요인이 높아지게 된다. 인스타카트는 2019년 9월 아마존에서 글로벌 광고 판매 및 마케팅 담당 부사장을 지낸 세스 댈러일을 최고매출책임자(Chief Revenue Officer)로 영입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주문량이 폭증하자 당초 예정보다 일정을 앞당겨 북미 전역의 식료품점에서 프로모션을 실시할 수 있게 해주는 광고 툴킷을 출시했다.

5) 고객 니즈에 신속히 대처

실리콘밸리의 성공하는 스타트업이 대게 그렇듯 인스타카트도 속도전으로 시장 우위를 점하는 전략을 펼쳐왔다. 인스타카트는 사업 초기, 미국의 인기 식료품점인 트레이더조(Trader's Joe)에서도 고객 대신 장을 봐주기 위해 트레이더조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을 직접 하나씩 구매해 사진을 찍어 올렸다는 일화가 있다. 트레이더조에는 온라인 데이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팬데믹 상황에서도 인스타카트는 전투적으로 임했다. 전국적으로 재택 모드에 들어간 지난해 3∼4월 주문이 폭증하자 인스타카트 고객들은 ‘2주 후에 배송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아야 했다. 쇼퍼 부족 현상도 심각했다. 인스타카트는 신속하게 쇼퍼를 추가 고용하고 각종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갔다. 인스타카트 관계자는 “지난해 3월 이후 코로나19 사태 이후 달라진 고객 및 쇼퍼의 니즈에 대응하기 위한 서비스를 15개 이상 새롭게 선보였다”고 전했다.

우선, 인스타카트는 북미 지역에서 ‘비대면 배송’을 실시한 첫 번째 주문형 기업이다. 인스타카트는 고객이 사전에 요청할 경우 고객의 집 앞에 식료품을 놓고 간다(‘Leave at My Door Delivery’). 이 경우 쿠팡처럼 문 앞에 놓고 가는 식료품의 사진을 찍어 고객에게 보내준다. ‘빠르고 유연한(Fast and Flexible)’ 및 ‘미리 주문(Order Ahead)’ 옵션도 발 빠르게 도입했다. ‘빠르고 유연한’은 가장 빠른 주문 가능 시간대를 고객에게 자동으로 제시해주는 기능이고, ‘미리 주문’은 최대 2주 전에 미리 주문해놓을 수 있는 서비스다. 사람들이 집에 오래 머물게 되면서 필요한 식료품 및 생활용품을 미리 구매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점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지난해 5월부터 서비스 속도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인스타카트 홍보팀 관계자는 “현재는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서비스 수준이 향상됐다. 거의 모든 주문이 당일 혹은 이튿날 배송되고 있으며, 전체 주문의 3분의 2 이상이 2시간 내에 배송되고 있다”고 말했다.

리스크 및 남은 과제
‘불씨’로 남은 긱 노동자 처우 이슈

인스타카트가 별다른 장애물 없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식료품을 사다가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기존 시장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택시업계의 공격을 받는 우버나 지역사회의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는 에어비앤비와 비교해 유리한 입장인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사형통인 상황은 아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긱(gig) 노동자 처우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인스타카트의 쇼퍼 처우 문제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캘리포니아 선거에서 주민발의안 22호(Proposition 22)가 통과하면서 긱 노동자가 기업에 고용된 직원이 아닌 독립계약자 지위를 유지하게 됐지만 아직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인스타카트의 쇼퍼는 우버 기사나 한국의 대부분 택배 기사처럼 회사에 고용된 직원이 아니다. 회사와 독립적으로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다. 인스타카트는 일부 파트너사 매장에서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러한 매장에서 근무하는 ‘매장 내 쇼퍼(In Store Shopper)’만 시간제 근로자로 직접 고용하고 있다. 매장에서 장을 봐서 고객 집까지 배달해주는 대다수의 쇼퍼(‘Full Service Shopper’라고 부른다)는 독립계약자, 즉 긱 노동 종사자다. 우버가 승객과 승객 주변에 위치하는 기사를 연결해주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인스타카트도 고객 주변에 대기 중인 쇼퍼에게 고객의 주문을 전달한다.

인스타카트는 사전에 고객이 지불하는 팁(tip)을 포함한 각 주문의 예상 수익을 쇼퍼에게 제시한다. 그리고 쇼퍼는 자신이 수락한 주문에 대해서만 업무를 수행한다. 생수나 쌀처럼 무거운 상품이 포함된 주문에는 더 높은 수익이 제시된다. 팁은 구매 금액의 5%로 책정돼 있는데 고객이 더 많은 금액을 팁으로 지불할 수도 있다. 식료품을 배달하느라 동원된 쇼퍼 개인 차량의 유지비나 보험료는 쇼퍼 본인이 감당한다.

인스타카트의 일부 쇼퍼는 지난해 3월과 5월 처우 개선과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줄이는 안전 조치 등을 요구하며 두 차례 파업 시위를 벌였다. 인스타카트는 마스크와 손 소독제, 체온계 등 안전 장비 배포, 방역 가이드라인 안내, 의료진과의 건강 상담 서비스 제공을 비롯해 코로나19에 감염됐거나 격리에 처한 쇼퍼에게도 급여를 지급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쇼퍼가 가져가는 수익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는다. 쇼퍼가 ‘노동의 대가’를 미리 알고 업무를 수락하는 방식이라 하더라도 보상이 적은 노동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이 일부 쇼퍼의 주장이다. 쇼퍼가 연속적으로 몇 건의 주문을 거절하면 인스타카트의 알고리즘이 해당 쇼퍼가 현재 근무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해 신규 주문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수익이 낮은 주문도 수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긱 노동자의 처우가 계속 이슈가 되는 한 인스타카트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해나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쇼핑의 질’을 높여라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사람들은 온라인 장보기를 멈추고 직접 마트에 갈까? 이 점에 있어서는 걱정을 덜 해도 될 것이란 게 업계의 시각이다.

지난해 여름부터 미국에서 코로나 사태가 다소 잠잠해지면서 온라인 식료품 구매는 그 전보다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림 4) 지난해 8월 한 달간 미국의 온라인 식료품 판매액은 82억 달러로, 11년 전인 2009년 8월 20억 달러의 4배에 달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온라인 장보기가 뉴노멀로 자리 잡게 될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


브릭미츠클릭에 따르면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구매한 사람들은 더 자주 주문하는 경향을 보인다. 지난해 11월 3870만 명이 한 번 이상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주문했는데, 이들의 평균 주문 횟수는 1.62회로 지난해 8월(3750만 명, 1.59회)보다 다소 상승했다. 재구매 의향이 있다고 밝힌 응답자는 83%로 3월(43%)과 8월(75%)에 비해 기록적으로 높은 수치가 나왔다.

한편 온라인 장보기를 해본 소비자가 늘면서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주문한 소비자 비율이 지난해 11월 17%로 8월의 23%보다 낮아졌다. 이제 신규 고객 유입을 꾀하기보다는 기존 고객이 이탈하지 않고 주문을 더 많이 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시즌 2’로 진입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메타 CEO도 과거 “우리의 쇼퍼는 잘 익은 아보카도를 고객보다 더 잘 골라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속도뿐만 아니라 질(質)도 중요한 경쟁력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실제 인스타카트를 즐겨 사용하는 필자 주변 지인들은 “비용을 더 내더라도 특정 쇼퍼를 지정해 장보기를 의뢰하고 싶다”고 말한다. ‘쇼핑 능력’에 따라 신선한 과일, 흔치 않은 소스 등을 귀신같이 잘 고르고 찾아내는 쇼퍼가 있는 한편 그렇지 않은 쇼퍼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인스타카트에 주어진 과제는 독립계약자 쇼퍼와의 상생, 높은 재고 정확도 유지, 그리고 장보기 퀄러티를 높이는 일이다. 그래야 줄기차게 등장하는 신규 경쟁자에 밀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최근 뉴욕 등 미국 동부 지역에서는 온라인 슈퍼마켓 푸드다이렉트(FoodDirect)가 갈수록 인기를 더하고 있다. 최근 성공적으로 기업공개를 마친 도어대시도 CVS와 월그린(Walgreens) 등을 시작으로 식료품 배송 서비스를 넘보고 있다. 전국의 대형 마트와 슈퍼마켓들의 ‘IT 지원군’을 자처하며 북미 가정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서비스가 된 인스타카트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그 명성을 이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DBR mini box III
‘우버 닮은꼴’로 아마존 경쟁자로 부상


2020년 12월9일, 미국의 음식 배달 앱 1위 도어대시(DoorDash)가 기업공개(IPO)를 진행해 무려 33억6500만 달러(약 3조7000억 원)를 조달했다. 그런데 이러한 도어대시를 제친 배달 앱 서비스가 있다. 인스타카트(Instacart)다. 2012년 창업해 미국 식료품 배달 시장 점유 1위, 기업 가치 177억 달러의 인스타카트 i 가 이렇게까지 부상할 수 있었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성공 요인1. 고객의 불편함에서 시작한 비즈니스 모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코로나19)는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피부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모든 것의 배달화’일 것이다. 물론 코로나19 이전부터 우리는 쿠팡, 배달의민족, 마켓컬리 등 배송 문화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기존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배달까지 시도하며 언택트(Untact) 라이프스타일에 강제적으로 편입되게 됐다.

사실 인스타카트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하다. 소비자 대신 쇼퍼(shopper)가 마트에서 쇼핑해 소비자 집에 배달해준다. 겉보기엔 간단해 보이는 아이디어이지만 주문이 일어난 지 한두 시간 만에 쇼핑해서 배송해주려면 촘촘히 계산된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인스타카트의 시작과 성공에는 창업자의 역할이 컸다. 창업자 아푸바 메타는 아마존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창업을 위해 퇴사한 후 20가지 사업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실패의 원인을 꾸준하게 분석했고, 비즈니스의 근간은 ‘고객의 어려움/불편을 해결함으로써 수요를 만들고 거기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아마존 근무 시절, 동료들이 많은 업무 때문에 장보기가 어려웠다는 점을 포착, 장을 대신 봐주는 서비스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한다. 마침 메타가 아마존에서 담당했던 업무가 식품 공급망 관리였던 것도 인스타카트를 론칭하는 데 플러스 요인이 됐다.

많은 기업이 간과하는, 성공하는 기업의 공통점이 바로 이것이다. ‘고객의 불편함 해소’가 바로 사업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창업자가 보기에는 획기적인 상품이나 서비스여서 자신 있게 론칭했으나 기대만큼 부응 받지 못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고객의 시각이 창업자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이다. 즉, ‘내’가 아닌 ‘고객의 시각에서’ 불편함을 해결해주는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이 성공적인 비즈니스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인스타카트의 경우 창업자가 찾아낸 온라인 식료품의 ‘퍼스널 쇼퍼’라는 아이디어와 그가 가진 엔지니어링 경험, 그리고 스마트폰의 광범위한 확산이 인스타카트 서비스 확산의 필요조건을 만족시켰다.

성공 요인2. 공유경제 모델과 빠른 실행력

‘기업 전략 중 최고의 전략은 생존’이라는 말이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기업 생존의 관건은 위기가 닥쳤을 때, 문제에 직면했을 때 누가 빨리 대응하고 변화하느냐다.

인스타카트는 자신보다 앞서 론칭됐으나 실패로 끝난 웹밴(Webvan)의 사례를 참고해 똑같은 우를 범하지 않도록 했다. 1996년 창업된 웹밴은 당시 많은 주목과 투자를 받았지만 파산하고 말았는데, 실패의 가장 큰 이유는 슈퍼마켓형 배송 서비스 콘셉트였기 때문이다. 상품을 사서 보관하고 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배송하는 웹밴의 서비스 모델은 슈퍼마켓의 비즈니스 모델과 유사하다. 이는 두 가지 문제를 수반한다. 첫째, 슈퍼마켓처럼 상품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 및 물류비용 등 고정비용이 크다. 둘째, 슈퍼마켓을 경쟁자로 만든다. 배송 서비스를 주력 수익으로 삼기에는 의도치 않은 비용과 경쟁으로 사업 확장에 실패한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 인스타카트는 공유경제의 대표 우버처럼 플랫폼을 활용해 고객과 퍼스널 쇼퍼를 연결했다. 최첨단 ICT 기반의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 제공자와 서비스 사용자 사이에 온디맨드(On Demand) 형식으로 거래가 일어난다. 온디맨드의 가장 큰 장점은 유연함이다. 고객이 앱에서 소매점을 선택해 물건을 담은 후 원하는 배달 시간과 배송 서비스 타입을 정하면 등록된 근처 쇼퍼들에게 연락이 가고, 해당 주문을 수행하길 원하는 쇼퍼가 상품을 쇼핑해 배달한다. 또한 인스타카트는 우버의 승객이 기사를 평가하는 것처럼 이용자가 쇼퍼를 평가하는 기능, 네트워크와 GPS를 이용한 실시간 진행 상황(status) 업데이트, 쇼퍼와의 채팅 기능 등을 통해 실시간 소통 기능들을 제공한다.

백엔드(back-end) 영역에서는 소프트웨어 최적화와 애자일한 실행력, 그리고 변화에 대한 발 빠른 대응이 있었다. 상품의 재고 파악 정확도를 높여 소비자의 쇼핑 편의성을 높이는 한편 쇼퍼의 ‘쇼핑 허들’을 줄이는 데 주력했다. 또한 해당 상품이 품절인 경우 대체 상품 제안의 정확도를 높여 상품 품절 상황에 대한 대응력을 향상했다. 발 빠른 배달을 위해 쇼퍼들에게도 날씨와 교통정보 등을 이용해 최적의 이동 경로를 알려주는 한편 점포 내 시간 지연의 주원인인 ‘상품 찾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GPS 기반 상품 내비게이션 경로를 제공한다. 머신러닝 등 기술을 최적의 배달 서비스에 적용하는 것이다. 인스타카트는 이렇게 고정비용을 최소화하되 유연한 접근과 고객과의 실시간 소통을 실현함으로써 사용자를 늘릴 수 있었다.

성공 요인3. 경쟁 대신 파트너십을 통한 성장

인스타카트의 성공에서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경쟁자를 제대로 선정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웹밴처럼 슈퍼마켓의 배송 서비스 같은 콘셉트 대신 공유경제의 우버 모델을 택함으로써 슈퍼마켓과의 경쟁을 피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슈퍼마켓들과 파트너십을 맺으며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사실 중소형 슈퍼마켓 입장에서도 아마존이 ‘아마존 프레시’ 등 서비스로 식품업계까지 접수하려는 움직임에 대응하고자 인스타카트와 협력한 측면도 있다. 결과적으로 윈윈 모델이다.

앞으로의 기회와 과제

코로나19 팬데믹은 인스타카트에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설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어 줬다. 앞으로는 더 많은 기회를 줄 것으로 보인다. 퍼스널 쇼퍼가 나의 장보기를 대신해준다는 편의성을 경험해본 소비자들이 코로나19 이후에도 소비 패턴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에서 리테일러의 자체 브랜드(Private Brand)가 급성장한 계기가 2007∼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경제 위기였고, 중국인의 소비가 주로 알리바바, 즉 온라인으로 옮겨간 계기는 2003년 사스 때였다. 환경적 요인 때문에 바뀐 소비 행태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편리함이나 가성비를 경험하게 되면 환경적 요인이 사라진 후에도 소비 행태가 그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온라인 식료품 시장은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크다. 더 많은 기회는 배송 영역의 확대에 있다. 인스타카트가 지난해 9월 뷰티 리테일러 세포라(Sephora), 11월 전자제품 리테일러 베스트바이(Best Buy), 12월 스포츠용품 리테일러 딕스(Dick's Sporting Goods) 및 대형 마트 마이어(Meijer)와 파트너십을 맺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ii

식료품 외 상품 배송으로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하는 것인데, 이는 시기상 적절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금까지 축적된 데이터 외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추가적으로 구축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비즈니스도 가능하다. 현재 인스타카트의 수익원은 고객이 지불하는 배달료와 서비스 요금(Service Fee), 리테일러가 내는 커미션, 그리고 포장 소비재 제품(Consumer Packaged Goods)으로부터 추천이나 검색 상위 노출, 쿠폰 등 프로모션 비용인데, 향후에는 식료품 및 그 외 기업들에 데이터 기반 솔루션 판매 같은 수익 모델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만만찮은 과제도 있다. 우선 타 업체들과의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대형 마트 마이어만 해도 이미 비슷한 배송 서비스인 십트(Shipt)와 도어대시를 이용하고 있다가 이번에 추가로 인스타카트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즉, 소비자에게 편의성을 제공하기 위해 리테일러로서는 인스타카트 외 경쟁업체와도 파트너십을 맺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우버 등 다른 영역의 배송업체들이 식료품 영역으로도 진입하고 있어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다. 우버이츠(Uber Eats)를 운영하는 우버는 지난해 12월 식품 배송 업체 포스트메이츠(Postmates)를 인수했다. 더 심화되는 경쟁 구도에서 경쟁사들과 다른 차별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다.

마지막으로, 인스타카트 같은 서비스의 국내 론칭 가능성은 어떨까. 사실 인스타카트의 성공에는 미국이라는 특수성이 녹아 있다. 면적이 한국의 99배가 넘다 보니 아마존이 ‘이틀 내 배송’을 약속하는 프라임 멤버십 전까지 5일, 7일, 심지어 10일 배송이 당연한 때도 있었다. 배송 서비스의 속도는 물론 그 품질도 오히려 한국이 앞선 편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온라인 식료품 시장에서 새벽 배송, 로켓배송 및 로켓프레시와 쓱(SSG)배송의 혈투가 벌어지고 있는 데 더해 배달의민족의 ‘B마트’ 서비스, 편의점의 자체 배달 서비스 등으로 각종 배송 서비스가 확장되는 추세다. 따라서 인스타카트 형태의 서비스로는 경쟁력이 그다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주 고급화된 퍼스널 쇼퍼처럼 특화된 퍼스널 쇼퍼 서비스로 차별화를 이뤄야만 성공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황지영 노스캐롤라이나대 마케팅학부 교수 jiyoung.hwang.retail@gmail.com
필자는 한양대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의류 브랜드에서 상품 기획 및 마케팅을 담당하다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시간주립대에서 국제유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소비자유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플로리다대, 핀란드 알토대와 고려대에서 강의와 연구를 수행했고, 2017-2018 UNCG 우수 강의, 2017 우수연구자 강의상 등을 받았다. 미국과 한국의 대형 유통 기업을 대상으로 교육 및 컨설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저서 『리테일의 미래(2019)』와 『리:스토어(Re:Store)(2020)』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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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식당서 간편 결제” 고객 목소리
기본에 충실하니 배고팠던 시장이 열려

312호 (2021년 01월 Issue 1)Article at a Glance


식권대장은 2014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기업용 모바일 식권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종이 식권, 식대장부, 법인카드 등 기업의 전통적인 식대 지급 방식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기반으로 전환했다. 현재 470개 기업의 직장인 10만 명이 이 플랫폼에서 식대 등을 결제하고 있다. 식권대장은 고객들의 페인포인트를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식권대장의 비즈니스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오피스 상권 점주에게는 기업의 식대가 고정 매출원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2. 기업 역시 임직원에게 식대를 지급하고 관리하는 일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임직원은 구내식당이나 정해진 인근 식당 몇 곳만 이용할 수 있다 보니 식사 만족도가 떨어졌다.

3. 식권대장에서 이 기업과 직장인, 제휴점(식당)들을 이었다. 직장인은 매일 식권대장 앱을 열어 소속 기업이 지급한 식대를 제휴점에서 사용한다. 식권대장이 직장인에게 간편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됐다.

4. 식권대장은 코로나19를 전환점으로 삼고 있다. 기업의 변화된 근무 환경에 발맞춰 사무실이나 집으로도 음식을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접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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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은 독자 여러분들이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를 케이스 스터디 형태로 직접 기고할 수 있는 ‘DBR 브리프 케이스(DBR Brief-Case)’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실제 사업을 운영하는 비즈니스 실무자, 전체 전략을 수립/진두지휘하고 있는 고위 임원, 컨설팅•자문 등을 통해 해당 사업을 면밀히 지켜봐 온 학계 및 컨설팅 관계자 등 전문 영역에서 다양한 비즈니스를 성공시키기 위해 애쓰는 비즈니스 리더 여러분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원고는 dbr@donga.com 으로 보내주시면 심사 및 편집진의 윤문을 거쳐 DBR에 게재됩니다. DBR 독자들과 노하우와 인사이트를 나누면서 국내 산업 경쟁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본 신규 코너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연간 20조 원. 국내 기업이 임직원 복지를 위해 식대를 보조함으로써 형성되는 시장 규모다. ‘식대 복지’ 운영 방식은 기업마다 다양하다. 인근 식당과 종이 식권, 식대 장부 등으로 외상 거래를 하는가 하면, 법인카드를 나눠주거나 직원이 결제한 식대를 증빙 처리하면 돌려주는 기업도 있다. 구내식당을 운영하거나 급여에 식대를 포함해 지급하는 경우도 넓은 의미의 식대 지원이다.

‘식권대장’은 이 시장을 모바일 결제 기반으로 혁신하고 있다. 식권대장 개발사 벤디스는 2014년부터 식권대장을 서비스하고 있다. 기업이 지급한 식대를 임직원이 사용하는 식권대장 앱과 식대 운영 및 정산을 위한 기업 관리자 페이지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제휴점 관리 등 기업 식대 복지를 위한 서비스 일체를 공급한다. 지난해 식권대장으로 거래된 금액은 544억 원으로, 연평균 220.5%의 성장률을 보이며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식권대장은 기업의 규모나 업종, 기존 식대 운영 방식과 상관없이 자사에 최적화된 모바일 식대 관리 솔루션을 구축해준다.

현재 식권대장을 이용하는 기업은 470곳 이상이다. 현대오일뱅크,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애경산업, 한미약품, 한솔제지, 한화시스템 등 대기업부터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인천국제공항공사, 순천시청 등 금융• 공공기관에도 도입됐다.

이같이 B2B 고객을 유치한 식권대장은 기업의 식대 관리 솔루션을 넘어 직장인 결제 솔루션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식권대장 앱에 개인 카드를 등록하고 필요할 때마다 포인트를 충전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면서 직장인 사용자 10만 명의 지갑도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로부터 지원받은 식대 포인트와 개인 충전 포인트를 합쳐 보다 다양한 메뉴를 이용할 뿐만 아니라 식권대장이 제공하는 특가 상품을 구매하는 등 구매력을 갖춘 직장인 사용자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창업의 완성은 고객의 목소리

필자는 식권대장을 출시하기 전 창업 전선에서 두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막연한 상상만으로 아이템을 선정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만 보고 “이런 서비스는 꼭 필요할 거야”와 같은 직감에 의존했다. 식권대장이 나오고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된 과정을 이제서야 돌이켜보면 매번 정답은 고객의 목소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식권대장은 전신 격의 서비스가 있다. 2010년, 로컬 식당들을 연결해 스마트폰으로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게 한 ‘숨포인트’가 바로 그 시작이었다. 맛집 마니아들은 프랜차이즈 식당보다 골목 안쪽에 숨어 있는 작은 식당들을 더 즐겨 찾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들 로컬 식당을 위한 적립 서비스를 만들면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만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었다.

제휴된 식당이 10여 개쯤 됐을 때, 한 가게 주인으로부터 “사실 당장 매출이 중요하지, 적립 서비스는 우리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이 기프티콘을 많이 주고받던데 우리 식당도 그렇게 되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듣게 됐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자영업자들에게 ‘고객 관리’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는 것, 그리고 사실상 매출 창출이 골목 장사를 하는 이른바 ‘로컬 비즈니스’의 핵심임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

이후 발 빠르게 아이템을 로컬 식당 모바일 상품권 서비스 ‘브로컬리’로 전환(2012년)했다. 지금의 카카오톡 선물하기처럼 로컬 식당의 식사 상품권을 모바일 앱 기반으로 만든 것이다. 3개월 만에 150개의 식당과 제휴를 맺을 만큼 식당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이번에는 사용자가 문제였다. 사용처에 집중한 나머지, 사용자가 앱에서 상품권을 서로 주고받거나 식당에서 결제하는 방식에 대한 최적화가 부족했던 것이다.

사용자 모객에 어려움을 겪던 중 우연히 한 대기업으로부터 사내 구내식당을 비롯한 임직원 편의 시설에서 바코드나 QR코드 리더기를 설치하지 않고도 직원들이 스마트폰 앱만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개발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브로컬리의 서비스를 개선해 이 기업에 적용하면 자연스럽게 사용자(기업 임직원)를 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큰 이력을 남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해 모든 개발 역량을 이 업체에 집중했다.

하지만 업체 사정상 계약 자체가 불발되고 말았다. 계약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기업 내에는 이러한 복지 시스템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기업의 전통적인 식대 복지 운영 방식이 떠올랐다. 실제로 기업은 임직원들의 급식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식대를 관리하는 부서에서는 매달 식권을 만들어 나눠주고 식당과 정산하는 업무로 월초, 월말을 보냈다. 장부 거래를 하거나 법인카드를 지급하는 경우도 수기로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식권 깡, 장부 대리 작성, 법인카드 오남용이 발생하면서 식대 누수는 빈번히 생기는 듯했다.

식당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무작정 여의도 중심 상가를 누볐다. 큰 골목 하나에 딸린 식당 수가 300개에 달했고, 식당 창문마다 붙어 있는 ‘식권 받습니다’ ‘장부 거래합니다’ 문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왜 이런 문구를 붙여 놨는지 식당에 물었더니 “우리는 직장인 점심 장사로 먹고사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오피스 상권에 있는 식당은 불특정 다수의 100만 고객보다 실질적인 매출로 연결되는 식당 앞 기업 직장인 100명이 더 소중한 것이었다.

사용자는 기업과 식당 간의 식대 거래를 통해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주는 식대를 마다할 직장인은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제한된 식당 몇 군데에서만 식사할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해소해준다면 기업 내 복지 만족도까지 향상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14년 9월, 그렇게 식권대장이 출시됐다.

DBR mini box I
국내 기업 식대 시장

모바일 식권의 시장 규모는 기업이 식대를 지출하는 규모를 통해 연간 약 20조 원으로 추산할 수 있다. 식권대장이 빅데이터 전문 기관 한국기업데이터의 기업 정보를 활용해 기업 4만5464곳을 분석한 결과, 1인당 복리후생비는 월평균 33만4901원이었다. 복리후생비 중 식대를 추정하기 위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8 회계연도 기업체 노동비용 조사’(이하 노동비용 조사)에서 ‘법정 외 복지 비용’ 중 식사 비용의 비중인 32.5%를 반영하면 기업이 직원 1명에게 지급하는 월평균 식대는 10만8843원 정도다. 여기에 국내 상용 근로자 수(1524만3271명, 출처: 고용노동부 ‘2018년 연고용통계’) 통계를 활용했다.

식권대장은 기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식권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도입할 수 있기 때문에 추산한 시장 전체를 잠재 고객으로 두고 있다. 기업의 규모가 큰 경우엔 식대를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도입하는 경우가 많고, 기업의 규모가 작은 경우엔 임직원 모두에게 공평한 식대 복지를 운영하기 위해 주로 도입한다.

노동 비용 조사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2008년부터 매년 진행되는 같은 조사에서 식사 비용은 법정 외 복지 비용에서 30∼40%의 점유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에서 가장 많이, 일반적으로 운영하는 복지가 식대 지원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같이 식대 지원이 ‘근본 복지’가 된 이유는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공평하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운영하는 복지들은 대부분 사용처가 한정적이거나 임직원 전원이 골고루 누리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복지 비용이 들기만 하고 기대했던 복지 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직장인•제휴점 모두 윈윈하는 식권대장


식권대장을 도입하면 어떠한 기업이든 그룹웨어를 수정하거나 별도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번거로운 절차 없이 임직원 스마트폰에 식권대장 앱을 설치하는 것만으로 자사에 최적화된 모바일 식대 관리 솔루션을 구축할 수 있다. 또한 종이 식권 발급, 장부 비치 등에 따른 비용이 들지 않고 식당 제휴에서 식대 정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식권대장 전문 인력이 대행하기 때문에 식대관리 부서의 업무 효율화를 꾀할 수 있다.

식대 결제 전 과정이 전산화되므로 식대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 회사 관리자 페이지 기능을 통해 임직원의 모바일 식권 사용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이용 시간이나 1회 결제액 한도 등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임직원은 회사 식대 사용처가 대폭 확대돼 메뉴 선택의 폭이 크게 늘어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기존 체계에서는 구내식당이나 회사가 지정한 인근의 일부 식당만 이용할 수 있었지만 식권대장을 도입하면 맥도날드, 타코벨, 커피빈 등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도 회사 식대로 결제할 수 있다. 또 예약 배달 식사 서비스를 통해 샌드위치, 샐러드부터 한식•일식•양식 도시락까지 정해진 시간에 사무실로 받을 수 있다.

식권대장 앱으로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기 때문에 식사 때마다 종이 식권이나 법인카드를 챙기거나 식대 장부를 적고 경비 내역을 제출하는 등의 번거로움이 사라진다. 일행의 식대를 모아 한 번에 결제할 수 있는 ‘함께 결제’ 기능 등 직장인 식사 문화에 특화된 사용성도 갖추고 있다.

제휴점 역시 식권대장과의 거래를 선호한다. 식권대장은 인근 기업의 직장인을 모객하는 역할을 한다. 제휴점 인프라가 갖춰진 지역일수록 식권대장 고객사가 늘어나기 쉽고 늘어난 고객사는 자연스럽게 다시 제휴점과 연결된다.

기업과의 기존 거래 관행에서 만연했던 불규칙적인 식대 정산도 해결된다. 식권대장과의 계약을 통해 매달 규칙적으로 정산받을 수 있어 가게 운영에서 중요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관리자 페이지나 ‘점주용 식당대장 앱’에서 식권대장을 통한 결제 내역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식권, 장부 관리와 식대 정산 등에 들였던 수고를 덜 수 있다.



B2B 비즈니스의 첫걸음, 레퍼런스 만들기


이처럼 모든 주체가 만족하는 서비스를 기획했지만 식권대장 초기 1년은 고객사가 거의 늘지 않았다. 개인보다 훨씬 보수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가지고 있는 기업에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제품을 세일즈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서비스 소개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그래서 이걸 쓰는 다른 기업이 있나요?”에서 말문이 막혔다. B2B 고객을 설득하기 위해선 레퍼런스(기존 사용 사례)가 필요했다.

왕도가 없었다. 확률이 낮으니 기업을 만나는 빈도를 높였다. 다양한 시도 중 하나가 주요 오피스 지역에서의 빌딩 타기였다. 강남 테헤란로, 광화문, 종로, 여의도 등에 위치한 빌딩에 들어가 꼭대기부터 내려오면서 노크를 했다. 서비스 소개서를 내밀며 5분 만이라도 얘기할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대부분 문전 박대로 이어졌다.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다 보니 서비스에 관심을 보이는 한 IT 기업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 역시 기대 반 우려 반의 모습이었다. 힘들게 찾아온 기회인 만큼 간곡히 부탁했다. 결국 담당 부서 직원들만 1주일간 먼저 써 보는 기회를 얻게 됐다. 첫 고객사 유치가 달린 소중한 기회였다. 하지만 실제 서비스 적용은 처음이라 오류가 발생하고 말았다. 그때마다 스스로 정한 룰을 엄격하게 지켰다. ‘메일은 30분 내에 답장한다’ ‘전화는 3번 울리기 전에 받는다’ 등이다. 결국 이 회사는 식권대장의 첫 고객사가 됐다. 고객사 담당자는 “테스트 서비스 기간 오류를 응대하고 이를 개선하는 식권대장의 적극적인 태도가 도입을 결정하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어려운 만큼 이탈이 적고 입소문도 빠른 B2B


힘들게 첫 고객사를 유치한 식권대장은 본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이듬해 2015년 대기업 한솔제지를 고객사로 맞이하면서 확산에 탄력을 받았다. 별다른 마케팅 활동 없이 입소문만으로 기업들이 문의를 해오기 시작했다. 식권대장을 거절했던 기업이 1, 2년 후 먼저 연락을 주는 등 영업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식권대장과 같은 B2B 솔루션은 한 고객사를 유치하는 데 짧게는 1∼2개월, 길게는 1년이 걸리기도 한다. 이렇듯 의사결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만큼 이탈을 잘하지 않는다. 실제로 식권대장의 고객 이탈율은 0에 가깝다. 식권대장을 도입했다가 다시 종이 식권이나 장부 등 기존 체계로 돌아갈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의사결정을 되돌리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자물쇠 효과(Lock-in effect, 소비자가 일단 어떤 상품 또는 서비스를 구입•이용하기 시작하면 다른 유사한 상품 또는 서비스로의 수요 이전이 어렵게 되는 현상을 의미)가 발생하는 것이다.

업계의 입소문이 크게 작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대기업일수록 경쟁사나 관계사의 동향에 민감하다. 업계에서 특정 솔루션을 도입했다고 소문이 나면 경쟁하듯이 알아본다. 식권대장도 대기업 시장에, 항공 업계에 같은 이유로 확산됐다.

현재 식권대장은 국내 470개 기업을 고객사로, 직장인 10만 명을 앱 사용자로, 4300개 식당을 제휴점으로 확보했다. 2019년 식권대장으로 거래된 식대 금액은 544억 원으로 ▲2014년 4000만 원 ▲2015년 23억 원 ▲2016년 103억 원 ▲2017년 240억 원 ▲2018년 442억 원의 상승 추이를 보이며 매년 빠르고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외부에서 107억 원의 투자도 유치했다. IT 및 스타트업 업계 대표 주자인 네이버, 우아한형제들과 KDB산업은행, 신한금융투자, KB증권 등 유수의 금융기관이 투자에 참여했다.



100개 다른 기업도 앱 1개면 끝


성장의 또 다른 배경에는 꾸준한 기술 혁신을 통한 ‘기업, 직장인 맞춤형 서비스’ 개발이 있었다. 다양한 고객을 만나면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추가해 식권대장에 담았다. 어떠한 기업이라도 식권대장 앱 하나면 식대 복지를 운영할 수 있게 만들었다.

2016년, 구내식당에도 적용할 수 있는 독자적인 솔루션을 개발해 기업에서 운영하는 단체 급식까지 시장을 확대했다. 이후 부서•직급에 따라 식대를 다르게 지급하거나 청구서를 통해 예산 한도 내에서 식대를 사용하게 할 수 있게 하는 등 다양한 기업 환경에 최적화된 기능들을 탑재해 나갔다.

DBR mini box II
식권대장 결제 방식

식권대장을 크게 사용처로 나누면 ▲외부 식당 ▲구내식당 ▲배달 서비스다. 각 사용처에 최적화된 결제 방식을 식권대장 앱이 지원한다.

 


1. 외부 식당용 터치 결제
(1) (임직원) 식권대장 제휴 식당에서 식사
(2) (임직원) 식권대장 앱에서 모바일 식권 발행
(3) (제휴점) 식권 내용 확인 후 ‘터치’ 한 번으로 결제

 



2. 구내식당용 바코드 결제
(1) (임직원) 구내식당 도착, 식권대장 앱 실행 시 바코드 생성
(2) (임직원) 식권대장 전용 단말기에 스마트폰 바코드 갖다 댄 후 배식

 



3. 배달 식사용 예약 결제 (예약 배달 식사)
(1) (임직원) 오전 9시30분까지 식권대장 앱에서 원하는 메뉴 결제
(2) (제휴점) 점심시간에 맞춰 사무실로 배달


코로나19, 위기를 기회로


올 상반기부터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식권대장에도 타격을 줬다. 식권대장의 일부 고객사가 재택근무에 돌입하거나 출근일을 줄이면서 식대 사용량이 평균 5%가량 감소했다. 코로나19의 기세가 강했던 3, 4월이 가장 심했고 점차 회복세에 들어서고 있었는데 8월 중순부터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3, 4월 때와는 달랐다. 그간의 위기를 기회로 삼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유연해진 점심시간과 근무 형태에 발맞춰 식권대장의 체질을 바꿔갔다. 올해 초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예약 배달 식사’ 서비스를 확대 운영했다. 예약 배달 식사 서비스를 이용하면 식권대장 앱을 통해 오전에 음식을 주문하고 점심시간에 맞춰 사무실로 배달받을 수 있다. 점심시간마다 붐비는 식당을 방문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개별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코로나19 시국에 최적화된 급식 환경이 구축됐다.

예약 배달 식사는 매달 사용량이 꾸준히 늘어 서비스 출시 8개월 만에 거래액이 103.3% 증가했다. 코로나19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타격을 끼친 2월과 3월 각각 전월 대비 30.5%, 32.7% 성장했고, 8월 중순 코로나19 사태가 다시 악화되면서 8월은 전월 대비 57.4%의 성장률을 보였다. 점심시간을 안전하게 운영하기 위한 기업뿐만 아니라 예약 배달 식사 서비스 입점을 원하는 대기업 식품 브랜드의 문의도 잇따르고 있어 연말까지 거래액이 200% 이상 추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재택 근무자를 위해 배송지를 변경할 수 있게 하거나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 미리 수일분의 음식을 챙겨 갈 수 있게 밀키트(Meal kit, 요리 에 필요한 손질된 식재료와 딱 맞는 양의 양념, 조리법을 세트로 구성해 제공하는 제품)를 예약 배달 식사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예약 배달 식사는 식권대장의 2.0


코로나19가 기업들에 불러일으킨 근무 형태 다변화는 근로자의 식사 환경에도 영향을 줬다. 감염 예방을 위한 식사 시 거리 두기뿐만 아니라 재택•유연근무 등이 확산되면서 식당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예약 배달 식사는 식권대장의 주요 서비스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식당을 방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벌 수 있고 회사 인근 식당에서는 먹을 수 없는 새로운 메뉴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유 주방과 같이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는 제휴점이 예약 배달 식사와 결합하면서 만족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예약 배달 식사는 제휴점 입장에서도 신규 매출을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기업의 식대를 매출로 가져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문이 몰리는 점심시간에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 아닌 비교적 여유 있는 오전 시간에 주문이 늘어난다는 점, 배송지가 분산되지 않고 한곳에 모여 있다는 점 등이 매출의 질적 향상을 불러온다. 주문은 식권대장 앱을 통해 일괄 전달되기 때문에 편리하다. 매출 또한 따로 관리할 수 있게 식권대장에서 관리자 페이지 기능을 제공한다. 제휴점인 한 배달 전문 공유주방은 “식권대장과의 거래를 통해 일 매출이 최대 20% 가까이 늘었다”고 전했다.

3, 4월에는 로봇 솔루션 전문 기업 ‘로보티즈’와 협업해 자율주행 로봇이 배달원의 역할까지 대신하는 시범 서비스를 운영했다. 당초 자율주행 로봇과 식권대장 앱을 연동한 음식 배달 실증 테스트를 계획하는 단계였다가 코로나19 사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협업이 빠르게 시행됐다. 배달원까지 사라진, 한 단계 더 나아간 비대면 식사 환경이 구축되면서 주목받았다. 사용자가 예약 배달 식사 서비스를 이용해 주문하는 것까지는 동일하다. 이후 배달원 대신에 실외 자율주행 로봇이 식당을 방문해 음식을 수령하고 사무실 앞까지 배달한다. 식권대장은 앱 기반의 주문•결제•관리 기능을, 로보티즈는 로봇 배송 기술을 제공해 빠르게 서비스를 실현할 수 있었다.



B2B → B2G(Business to Government)로의 확장


식권대장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자원봉사자 급식을 위한 솔루션으로도 공급됐다. 1만5000명의 자원봉사자들은 평창군 등 강원도 5개 시(강릉•동해•삼척•속초•원주), 3개 군(고성•평창•횡성)에 지정된 숙소 35곳에서 식권대장을 사용했다.

올림픽 및 패럴림픽에서 자원봉사자용 모바일 식권이 도입된 경우는 처음이었다. 평창 올림픽에서 식권대장 도입으로 거둔 가장 큰 수확은 효율적인 식수(식사량) 관리였다. 조직위는 자원봉사자의 활동 일정에 따라 정해진 수량의 모바일 식권을 지급한 뒤 자원봉사자가 일정 변경이 필요할 경우 사전에 직접 식사 일정을 변경할 수 있게 했다. 실제로 대회가 진행되면서 기상 악화나 개인 사정 등으로 봉사활동 일정을 변경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고, 모바일 식권을 통해 식수 예측이 가능해지면서 낭비되는 식사를 줄일 수 있었다.

사업 기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약 50만 끼의 식사, 총 35억 원의 식대 거래가 식권대장을 통해 이뤄졌다. 35억 원의 전체 식대 규모는 사전에 조직위가 책정한 예산에서 5억 원가량을 절감한 금액이다. 평창올림픽에 성공적으로 공급된 이후 식권대장은 지자체 등 공공기관으로 확산됐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인천국제공항공사, 순천시청 등이 식권대장을 도입했다.

앞으로 식권대장은 많은 공공기관이 추진하고 있는 구내식당 축소, 청렴 식권 시행 움직임과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국 지자체를 중심으로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해 자체 구내식당을 특정 기간 폐쇄하고 공무원들에게 인근 식당을 이용하게 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또한 공무원이 민원인과 불가피한 식사 시 발생할 수 있는 부패 발생 요인을 차단하기 위해 발행한 식권만 사용하게 하는 등 모바일 식권이 개척할 수 있는 잠재 영역으로 보고 있다.

DBR mini box III
식권대장 이용 사례

[비용 절감] 상장사 A사는 식권대장을 도입한 후 식대를 25%가량 절감하는 효과를 봤다. 종이 식권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한 달에 약 6000만 원을 식대로 사용했는데, 모바일 식권을 도입하면서 4분의 3 수준인 약 4500만 원으로 식대가 줄었다. 관리가 손쉽고 사용 내역이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드러나는 모바일 식권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종이 식권 사용 시 만연했던 식권 깡, 대리 사용 등 식권 오남용으로 인한 식대 누수가 근본적으로 차단됐기 때문이다.

[업무 효율화] 항공사 B사는 식권대장 도입으로 전국 4대 공항(인천•김포•김해•제주) 내 100여 개의 식당 및 11개 구내식당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식대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사실상 전국이 근무지이고 업무 스케줄 변동이 잦은 항공사 근무 특성상 종이 식권 사용 시 관리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식권대장을 도입하면서 매달 개개인의 비행 일정을 파악해 직원별로 각기 다른 수량의 식권을 배부하는 수고를 더는 것은 물론, 급작스럽게 비행 일정이 변경되더라도 관리자 페이지에 접속해 포인트 지급액을 즉각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등 업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다. 식권대장 도입으로 B사 경영지원팀은 식대 관리 외 다른 업무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게 됐다.

[식사 만족도 향상] 직원 수가 30명 내외인 스타트업 기업 C사는 식권대장을 도입하면서 20곳 가까이 되는 식당에서 모바일 식권으로 식사를 할 수 있게 됐다. 기존에 이용할 수 있었던 식당이 5곳 남짓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식당 수가 3∼4배 늘어난 것이다. 소규모로 운영되는 스타트업 특성상 그동안 거래 식당을 늘리는 것은 엄두도 못 냈는데, 식권대장이 보유한 식당들을 연결해주면서 한정된 식당만 이용해야 했던 직원들의 식사 만족도가 크게 향상됐다.

[식대 복지 구축] 성장하는 초기 스타트업 D사는 최근 시리즈A 투자를 마무리하고 복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식권대장을 도입했다. 약 20명의 직원이 20개 식당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이들 식당 중에는 KFC, 맥도날드, 타코벨 등 유명 프랜차이즈도 포함돼 있어 만족도가 높다.

[지역 상권 상생] 대기업 그룹사 E사는 사옥을 이전하면서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해 구내식당을 없애고 식권대장을 도입했다. 구내식당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을 고스란히 인근 식당 상권으로 돌리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함과 동시에 구내식당보다 다양하게 메뉴를 즐길 수 있어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였다.

 



B2B → B2C로의 확장


식권대장은 지난 6월 포인트 간편 결제 충전 기능인 ‘대장포인트’를 업데이트했다. 식권대장 앱에 사용자 개인의 카드를 등록하고 필요할 때마다 충전할 수 있는 기능이다. 예를 들어, 회사로부터 매 끼니 7000원의 식대를 지급받는 사용자가 8000원 메뉴를 먹게 될 경우, 차액을 개인 지불 수단으로 추가 결제할 필요 없이 식권대장 앱에서 한 번에 결제할 수 있다. 반대로, 식사 후 1000원의 식대가 남아 사용처가 마땅치 않을 때도 개인 포인트와 합산해 후식을 이용하는 등 회사 식대의 활용성이 높아진다. 이와 동시에 개인의 충전 금액을 식권대장 플랫폼 안으로 유입해 더 많은 결제를 유도하고 있다.

식권대장의 사용자는 모두 구매력을 갖춘 직장인이다. 거기에 식사를 위해 매일 한 번 이상 사용한다는 점, 특정 기업의 직장인만 사용한다는 점(폐쇄형)이 더해져 특유의 커머스 플랫폼을 형성하고 있다. 폐쇄형 플랫폼은 시장 가격을 해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 같은 강점들로 일반적인 판매처보다 높은 할인율로 상품을 소싱하고 있다. 구매력을 갖춘 잠재 고객이 한 회사에서 모여 있기 때문에 판매자는 상호 구매 독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고객사 현황을 통해 사전에 수요를 파악할 수 있다는 특징도 있다.

현재 건강기능식품이나 테마파크 이용권, 사무용품 등 직장인이 선호할 만한 상품들을 식권대장 앱에서 판매하고 있다. 부가적인 매출 발생과 함께 식권대장에서만 만나 볼 수 있는 최저가 혜택 등을 제공함으로써 사용자 만족도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 사용자는 자신이 소속된 기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식권대장 내에서 복지몰을 갖게 되는 셈이다.


식권의 미래


식권대장은 국내 최초로 모바일 식권을 만든 선구자로서 시장을 계속 선도하는 한편, 기업 환경을 둘러싼 다양한 비용 영역으로 확장해 나갈 것이다. 대표적으로 기업 식대를 상징하는 ‘식권’을 서비스명에 담았지만 이제는 식권이 주는 한정적인 이미지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점차 다양해지는 기업의 근무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식권대장을 끊임없이 개선하는 것이 먼저다. 그러면 앞서 경험한 것처럼 더 많은 기업, 직장인, 제휴점이 자연스럽게 식권대장으로 유입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장기적으로는 기업에는 식대를 넘어 다양한 비용을 관리할 수 있는 ‘오피스 페이먼트 플랫폼’으로, 직장인에겐 ‘편리한 결제 서비스’로, 제휴점에는 주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안정적인 매출 창구이자 마케팅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목표다.


다양한 분야 전문가 손잡고 솔루션 개발

MS의 혁신 씨앗 ‘팜비트’서 열매 맺는다

306호 (2020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마이크로소프트의 정밀농업 솔루션 ‘애저 팜비트(Azure FarmBeats)’의 기술 혁신

1. TV 잔여 주파수(TV White Spaces, TVWS) 활용해 과도한 네트워크 연결 비용 해결
: 농업 관련 데이터 수집을 위해 필요한 인터넷 연결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TVWS 라우터가 장착된 사물인터넷(IoT) 기반 기지국을 농장에 세워 토양 센서, 스마트폰 등 농장 내 모든 디바이스를 연결

2. 머신러닝 알고리즘 기반 항공 이미지 분석 기술 도입해 토양 센서 사용 최소화
: 데이터 분석에 드론이나 스마트폰을 부착한 풍선으로 하늘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병행 사용함으로써 최소한의 토양 센서만 설치

3. 사물인터넷(IoT) 엣지 컴퓨팅 기술로 농가의 열악한 브로드밴드 극복
: 농장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전송할 필요 없이 농가 PC에서 직접 분석, 열악한 인터넷 속도로 인한 데이터 처리의 어려움 해결



지난 7월15일, 마이크로소프트(MS)의 최고경영자(CEO)인 사티아 나델라는 미국의 한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는 소식을 세상에 전했다. MS의 협업 툴인 팀즈(Teams)를 통해 상대방 회사 CEO와 화상으로 만난 그는 양사 파트너십의 의의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설명했고, 이는 곧바로 CNN 등 주요 언론 매체에 소개되며 큰 관심을 모았다.

도대체 어떤 기업과의 제휴였기에 거대 기술 기업(tech giant)의 최고 수장이 언론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며 홍보를 자처했던 걸까. 심지어 나델라는 상대측 CEO와의 대화 영상을 자신의 링크트인(LinkedIn)에도 공유했을 정도로 이번 전략적 제휴에 각별한 신경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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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MS와 손을 맞잡은 회사는 연 매출 규모만 140억 달러(약 16조 원)에 달하는 미국의 대형 농업협동조합 랜드오레이크스(Land O’Lakes)였다.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의 선택치고는 선뜻 연결이 되지 않는 조합이지만 랜드오레이크스가 어떤 회사인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랜드오레이크스는 일반인들에겐 버터, 휘핑크림, 생크림, 치즈 등 유제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업체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회사의 사업 영역은 단순 농산물 유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농부들이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도와주는 어그테크(AgTech, 농업 기술) 솔루션을 개발해 농식품 산업에 종사하는 다양한 주체들에 제공한다. 랜드오레이크스 입장에선 자사 솔루션의 역량을 배가하기 위해서라도 MS의 손을 잡을 유인이 분명한 셈이다.

그렇다면 MS는 왜 농업 분야에 관심을 갖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기존 윈도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을 클라우드 중심으로 과감하게 전환한 MS의 최근 행보와 인공지능(AI)을 통해 MS가 달성하고자 하는 비전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핵심엔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 AI를 활용하는 MS의 정밀농업(precision agriculture, 혹은 precision farming) 솔루션 ‘애저 팜비트(Azure FarmBeats)’가 있다. 랜드오레이크스가 다른 클라우드 사업자를 제치고 굳이 MS를 파트너로 선택한 결정적 이유도 애저 팜비트와의 연계를 통해 자사 솔루션과의 시너지 창출을 원했기 때문이다.

팜비트는 ‘기술이 선한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MS의 믿음하에 지난 2015년 출발한 프로젝트다. ‘농장(farm)의 맥박(beats)’이라는 이름1 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 현재 인류가 직면해 있는 여러 문제 중 농업 관련 문제를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해결하는 데 초점을 뒀다. 2015년 1월 MS 산하 연구조직인 마이크로소프트리서치(Microsoft Research, MSR)에서 시작한 팜비트 연구 프로젝트는 2018년 11월부터 본격적인 제품화 프로세스에 들어갔고, 이후 1년 만에 MS의 클라우드에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애저 팜비트)로 공식 출시(2019년 11월)됐다.

팜비트 프로젝트는 실제 제품화되기 훨씬 전부터 업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기존 정밀농업 솔루션의 최대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고비용 이슈를 상당 부분 해결한 덕택이다. 농장에 설치하는 센서 네트워킹 솔루션 비용(2017년 기준)을 놓고 따져볼 때, 기존 제품 가격은 대체로 센서당 최소 1000달러가 넘어갔는데 팜비트는 이를 약 200달러 수준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2년여 만에 거둔 쾌거였다. 랜드오레이크스 같은 대형 농업협동조합은 물론 펩시코(Pepsi Co.) 같은 식품 대기업, 미국 농무부(USDA),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 등 정부 기관들까지 애저 팜비트의 고객으로 속속 합류하고 있는 이유다. 기술 기업인 MS가 어떻게 이렇게 단기간 농업이라는 생소한 분야에서 괄목할 성과를 이뤄내며 농식품 산업 생태계의 발전을 가속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 DBR가 분석했다.

생소한 ‘농업’ 분야에 눈 돌린 기술 기업 MS

애저 팜비트는 현재 MS에서 애저 글로벌(Azure Global) 수석 과학자(Chief Scientist)로 일하고 있는 란비르 찬드라 박사가 MSR에서 근무할 당시 시작한 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찬드라 박사는 인도의 명문대이자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의 모교이기도 한 인도공과대 카라그푸르 캠퍼스를 나와 미국 코넬대에서 박사학위(컴퓨터공학)를 받았다. 2005년 졸업과 동시에 MSR 연구원으로 합류한 그는 “내가 하는 연구가 실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제품으로 사용되는 걸 보고 싶어 학계로 가는 대신 MS를 택했다”고 말했다.

학력으로 보나 직장 경력으로 보나, 찬드라 박사는 농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길을 걸어왔다. 실제로 팜비트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까지 그가 연구했던 주제는 무선통신 기술, 배터리 등이었다. 그런 그가 생소하기 이를 데 없는 농업 시스템 개발에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도에서 나고 자란 찬드라 박사는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방학만 되면 인도 내에서도 극빈 지역으로 손꼽히는 비하르주(Bihar State)에 있는 할아버지 댁에 가서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며 “화장실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지냈던 경험은 결코 즐겁지 않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개도국의 농업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늘 마음속에 있었다”고 말했다.

타이밍도 좋았다. IoT, 빅데이터, AI, 클라우드 등 다양한 ICT를 활용하는 팜비트 프로젝트는 2014년 MS의 3대 CEO로 취임한 나델라의 전사적 사업 개편 방향과도 잘 맞는 연구 주제였다. 주지하다시피 나델라는 일찌감치 클라우드와 AI를 회사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였다. 게다가 농업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지속될 ‘만년 산업’이다. 아무리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 시대라지만 스마트폰 없이는 살아도 밥 안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급격한 기술 진보로 인해 산업계 지형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불확실성 역시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에도 변함없이 존재할 산업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하다. MS 경영진이 2014년 말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한 정밀농업 솔루션 개발을 목표로 찬드라 박사가 제안한 팜비트 프로젝트를 승인하게 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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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비트 프로젝트는 연구 시작 초기부터 MS 구성원들은 물론 최고경영진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우선 찬드라 박사는 사내 혁신 문화 확산을 위한 프로그램인 마이크로소프트 거라지(Microsoft Garage) 해커톤에 다른 연구자들과 팀을 이뤄 참가했다. 팜비트 연구를 공식적으로 시작한 2015년의 일이었다. 이들은 이틀간의 해커톤 기간 동안 팜비트 프로토타입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고, 이후 실제 농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낸 성과를 인정받아 2017년 마이크로소프트 거라지 명예의 벽(Wall of Fame)에 이름을 올렸다. 나델라 역시 ‘2017년 한 해 동안 자신에게 영감을 준 10개 프로젝트’ 중 하나로 팜비트를 꼽아 자신의 링크트인에 소개했으며 MS에서 정책 프로그램 및 법률문제를 총괄하는 브래드 스미스 사장도 2017년 12월 ‘지구환경 AI(AI for Earth)’ 프로그램을 발표하며 해당 프로그램의 취지와 지향점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MS의 프로젝트 중 하나가 팜비트라고 밝혔다. (DBR mini box I ‘MS의 ‘지구환경 AI’ 프로그램’ 참고.)


DBR mini box I : MS의 ‘지구환경 AI’ 프로그램

“지구 살리는 연구라면…”
플랫폼 개방하고 기술자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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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는 지난 2017년 각종 환경 문제로 병들어가고 있는 지구를 AI 기술로 되살린다는 야심 찬 목표 아래 ‘지구환경 AI(AI for Earth)’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AI를 통한 지구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향후 5년간 총 50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구체적으로 △농업 △수자원 △생물 다양성 △기후변화 등 4개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이나 비정부 조직(NGO), 스타트업, 기타 연구 그룹이 제안하는 프로젝트를 선별, 프로젝트 범위와 특성에 따라 개당 5000∼1만5000달러에 상응하는 애저 플랫폼 사용권을 주고, AI와 관련한 각종 기술 자문과 교육 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형태다.

지금까지 MS는 전 세계 81개국에 걸쳐 508개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외부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MS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연구 프로젝트라고 무조건 배제하진 않는다. 팜비트 프로젝트도 내부 연구 과제였지만 지구환경 AI 프로그램의 수혜를 받았다. 마치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등대처럼 MS가 추구하는 지구환경 AI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시범 프로젝트(lighthouse project)로 인정받은 덕택이다.

지구환경 AI 프로그램을 MS가 일종의 사회공헌 차원에서 진행하는 단순 일회성 지원 사업 정도로만 이해한다면 큰 오산이다. 연구실 단계에 있는 프로젝트를 클라우드 플랫폼 수준에서 제공할 수 있는 상용화된 서비스로까지 발전시키는 게 프로그램의 최종 목표다. 이를 위해 MS는 지구환경 AI 프로그램의 1차 지원 대상 중 전도유망한 프로젝트를 따로 선별, 좀 더 많은 투자 지원과 함께 MS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접목해 해당 AI 솔루션을 상품화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해당 애플리케이션을 MS 애저에 탑재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반드시 자사 플랫폼이 아니어도 좋다는 게 MS의 입장이다. 어떤 클라우드 플랫폼에서든 환경 문제를 AI로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 상용화 사례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기업이 자사 전략에 맞는 지속가능성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게 될 것이고, 그게 바로 AI 시장의 파이를 키워나가며 더 건강한 지구를 만드는 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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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에서 해마다 진행되는 연구가 하나둘이 아닐 텐데 팜비트가 이처럼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프로젝트 초기부터 미국과 인도 현지 농장에서 파일럿 테스트를 수행하며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고 분석해 농장주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통찰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2015년 찬드라 박사가 연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팜비트의 실험 농장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해 온 미국 워싱턴주 소재 댄싱크로농장(Dancing Crow Farm, 춤추는 까마귀 농장)이 대표적 예다. 시애틀 동쪽으로 약 40㎞ 정도 떨어진 카네이션의 스노퀄미강 인근에 약 2만 ㎡(6100여 평) 규모로 자리 잡고 있는 농장으로, 빌 게이츠 MS 창업자까지 방문해 게이츠노트(GatesNotes, 빌 게이츠의 블로그)에 소개된 곳이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시애틀은 겨울에 비가 많이 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댄싱크로농장주는 겨울마다 홍수로 인한 작물 침수 피해로 골치를 앓곤 했다. 농장이 자리 잡은 곳이 범람하면 물에 잠기는 강가 평지였기 때문이다. 이 농장의 경우 유기농 채소를 재배해 식당이나 식품 유통업체에 납품하곤 했는데 한번 홍수가 나서 범람하면 어떤 농작물이 침수됐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할 길이 없어 모두 다 폐기 처분하다 보니 손해가 막심했다. 하지만 팜비트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토양과 작물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홍수가 일어도 물에 잠기지 않아 여전히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채소를 선별해 낼 수 있게 돼 손실을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뿐 아니다. 작물을 재배하고 토양을 관리하는 데 있어 전체적인 물 사용량은 30%, 석회질 비료 사용량은 44%나 줄일 수 있게 됐다.

2018년 파일럿 테스트 농가로 선정된 워싱턴주 소재 대형 농장인 넬슨농장(Nelson Farm, 약 3197만 ㎡, 967만 평)의 경우는 더 놀랍다. 팜비트 도입으로 고가의 화학약품(살충제, 제초제 등) 사용량을 무려 90%가량 줄일 수 있게 돼 전체 비용을 15% 정도 절약할 수 있었다고 한다. 팜비트의 온도 예측 서비스 덕에 냉해에 사전 대처함으로써 손실 위험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고. 이처럼 팜비트는 실제 제품화되기 전부터 농장 관리자에게 토양 습도와 온도, pH 수준 등 농사짓는 데 필요한 핵심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사람(농부)의 주관적 감이 아니라 객관적 데이터에 근거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정밀농업을 구현해내는 데 성공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5년 만에 실제 제품화에 성공했다. 찬드라 박사는 “보통 장기 연구 프로젝트가 제품 출시로까지 이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7년 정도로 잡는데 팜비트는 이 기간을 2년이나 단축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찬드라 박사를 위시한 MSR 연구자들은 어떻게 이렇게 단시간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걸까? 이를 이해하려면 벌써 역사가 40여 년은 되는 정밀농업이 그동안 왜 확산되지 못했는지에 대한 이유부터 따져봐야 한다.

정밀농업 확산 막는 걸림돌 파악

미국을 중심으로 1980년대부터 발전돼 온 데이터 기반 정밀농업은 작물의 생육 특성과 재배 환경에 대한 정보를 정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최소한의 투입 자원으로 생산량 극대화를 꾀하는 농업 전략이다. 동일 농가에서 운영하는 농경지라도 각각의 위치마다 작물 생육 특성이 다른 만큼 농경지를 관리하고 농자재를 투입하는 방식도 위치별로 달라져야 한다는 논리다. 이를 위해 정밀농업에선 작물의 건강이나 영양 상태는 물론 토양의 습도와 온도, 일조량 등 작물 재배와 관련된 다양한 데이터를 정밀하게 분석해 물과 비료 등의 자원을 꼭 필요한 곳에 적정량만 투입해 파종과 수확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개념적으로만 생각하면 전 세계 식량 수급 문제를 당장에라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마법의 솔루션이자 농업의 미래다. 경작 가능한 농지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고, 기후변화로 인한 토양 유실이나 살충제 및 화학비료 과다 사용에 따른 환경 파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국, 네덜란드, 일본 등 몇몇 선진국을 제외하고 대부분 나라, 특히 개도국 농업 현장에서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정밀농업은 매우 초보적이고 미미한 수준이다. 그 역사가 40년이 다 돼 가는데도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내리려면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첫 단추를 채우는 일에서부터 막히니 쉽게 확산될 리가 없었다.

찬드라 박사는 바로 여기서 기회를 발견했다. 데이터 수집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면, 그래서 데이터 기반 농업으로 농사의 패러다임 전환을 앞당길 수 있다면, 현대 농업이 직면하고 있는 범지구적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궁극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봤다. 그리고 ICT를 활용한 정밀농업 확산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부터 파고들었다. 이는 크게 △과도한 네트워크 연결 비용 △센서(자원) 활용의 제약 △열악한 브로드밴드 세 가지로 압축됐다.

1. 과도한 네트워크 연결 비용

정밀농업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땅에 센서를 꽂든지, 노지에 카메라를 설치하든지, 농장 곳곳에서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해 농장 전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모든 디바이스가 인터넷에 연결(connectivity)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걸 농장 환경에서 구현하기란 쉽지 않다.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야 곳곳에 기지국이 있으니 무선 네트워크에 쉽게 연결될 수 있지만 인적이 드문 시골 농장에서 도시와 같은 수준의 기지국이 있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당연히 네트워크 연결의 문제가 클 수밖에 없다. 호당 평균 농지 면적이 수십만 평에 달하는 미국 같은 곳은 더더욱 그렇다. 그나마 사람이 사는 농가는 비록 열악한 전송 속도로나마 인터넷에 연결돼 있긴 하다. 하지만 농장과 농가는 대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집에 있는 와이파이를 끌어다 쓰기도 어렵다.

이에 따라 기존 정밀농업 솔루션들은 대부분 별도의 무선통신 네트워크를 구축하거나 위성을 활용하는 방식을 택해 사업을 수행하고 있었고, 이는 당연히 데이터 수집에 들어가는 비용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팜비트 연구진에 따르면 2016년 미국에서 열린 농업 관련 박람회에서 농업 전문 기업들이 출품한 센서 가격은 대략 5개 묶음에 8000달러에 달했다. 물론 센서 자체 가격만 따지면 그리 비싸지 않다. 하지만 센서만 덜렁 구입해선 수집한 데이터를 사용자(농부)에게 전달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고가의 네트워킹 솔루션을 함께 갖춰야 하다 보니 전체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밀농업을 확산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는 아무것도 없는 농장 한복판에서도 모든 장비를 저렴하게 연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 연결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2. 센서(자원) 활용의 제약

기본적으로 농업은 기후와 토양 등 자연환경 조건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심지어 같은 농경지 안에 동일 종자를 뿌려도 노지 위치에 따라 생장과 발육이 달라진다. 따라서 정밀농업에선 토양 센서(soil sensor)를 땅에 꽂거나 드론(drone, 무인 항공기)을 하늘에 띄워 촬영한 이미지를 가지고 땅속 수분 함량이나 온도, pH 등 작물 재배와 관련한 데이터를 수집, 분석한다. 그래야 물과 비료를 꼭 필요한 곳에 적정량 투입할 수 있고 작황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토양 센서나 드론 모두 무작정 쓰기엔 현실적 제약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토양 센서의 경우 정교한 데이터 수집을 위해선 대략 10m 간격으로 촘촘히 센서를 꽂아야 하는데 이 방식은 농지 규모에 따라 금전적 비용도 함께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땅에 센서가 너무 많으면 관리도 힘들 뿐 아니라 걸리적거려서 트랙터 한 번 지나가기도 힘들다. 심지어 시중에 나와 있는 토양 센서의 경우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양은 매우 적어 효과성도 떨어졌다.

대당 1000달러 이하면 구입할 수 있는 드론이 대체 옵션으로 대두되긴 했지만 이 역시 완벽하진 않았다. 배터리 수명이 가장 큰 문제였다. 농장 전체를 커버하려면 몇 차례 왕복을 해야 하는데 한 번의 배터리 충전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센서를 최대한 비용 효과적으로 설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했다.

3. 열악한 브로드밴드

농장에서의 인터넷 연결 문제를 해결하고 데이터 수집도 무사히 마쳤다면 의사결정에 필요한 분석 정보(analytics)를 얻기 위해 이 데이터를 어디에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가장 간편한 방법은 수집한 데이터 모두를 실시간으로 클라우드 플랫폼에 전송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농가의 열악한 인터넷 속도를 고려할 때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한 번 드론을 띄워 15분만 촬영을 해도 4GB 수준의 고용량 데이터가 나오기 때문이다. 심지어 농장에선 홍수가 나거나 폭우가 쏟아지면 인터넷을 포함한 모든 통신 연결이 끊겨버리는 경우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이렇게 불안정한 인터넷 네트워크로 어떻게 그 많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농부들에게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할 것인가가 또 다른 도전 과제였다.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 극복

문제점을 파악한 찬드라 박사는 MSR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하나하나 해결책 모색에 나섰다. 처음엔 그의 근무지인 미국 MSR 레드먼드(Redmond) 랩에서 프로젝트를 주도했지만 1년 뒤부터는 인도 MSR 벵갈루루(Bengaluru) 연구진과도 힘을 합쳤다. 이들은 가장 먼저 제일 근본적인 문제, 즉 농장 내 통신 네트워크 연결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방법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찬드라 박사가 MSR에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연구해왔던 주제인 ‘TV 잔여 주파수(TV White Spaces, TVWS)’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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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VWS 활용해 고비용 문제 해결

TVWS란 TV 방송용으로 할당된 주파수 대역 중 이용하지 않고 있는 유휴 대역을 말한다. 방송 사업자 간 주파수 간섭을 막기 위해 일부러 비워 둔 보호 대역이나 지역별로 사용되지 않는, 쉽게 말해 ‘안 쓰고 남아도는 TV 채널’이다. 과거 아날로그 TV 시절에 채널을 돌리는 중간중간에나 TV 정규 방송이 모두 끝난 후 ‘지지직’거리는 잡음(white noise)과 함께 나타나는 화면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도시에선 수십 개 방송 채널이 존재하지만 시골에선 방송되는 채널 가짓수가 그리 많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역에 따라선 사용하는 채널보다 사용하지 않는 채널이 더 많기도 하다. 이는 그만큼 유휴 자원이 많다는 뜻이다. 심지어 TVWS는 비면허 대역이라 주파수 할당 대가나 전파 사용료 등의 비용 부담도 없다. 초단파(VHF)와 극초단파(UHF)를 사용하기 때문에 멀리까지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원래 TV 채널로 쓰려고 했던 주파수다 보니 드론으로 촬영한 고용량 데이터 전송에도 무리가 없다.

일찌감치 TVWS의 가치에 대해 주목해 왔던 찬드라 박사는 ICT 기반의 정밀농업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도 이를 활용하기로 했다. 농가에서 사용하는 인터넷을 TVWS 링크를 활용해 농장에 설치한 팜비트의 IoT 기지국(태양광 에너지로 작동)으로 연결하면, 기지국에 장착된 TVWS 라우터가 무선 인터넷 공유기처럼 작동해 각종 센서를 포함한 농장 내 모든 디바이스(예: 농부의 스마트폰)와 연결되는 구조였다. 이렇게 시스템을 설계하자 센서 비용도 자연스레 낮출 수 있었다. 기존에 센서마다 장착해야 했던 데이터 로거(data logger)가 필요 없어지게 됐고, 와이파이나 블루투스, 로라(LoRa) 같은 저전력 광역 통신 기술(LPWA)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찬드라 박사는 이처럼 TVWS라는 유휴 자원을 활용하는 방식을 통해 기존 정밀농업 솔루션의 가장 큰 문제였던 과도한 네트워크 연결 비용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2. 머신러닝 알고리즘으로 항공 이미지 분석해 토양 센서 사용 최소화

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센서만 사용하고도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을까의 문제였다. TVWS 사용으로 토양 센서 솔루션 도입 비용을 기존 제품보다 낮추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팜비트 연구진은 데이터 수집을 위해 토양 센서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건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토양 센서는 대략 200m 간격에 하나씩 최대한 듬성듬성 설치하되 드론을 통해 공중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함께 사용하는 방법을 도입하기로 했다. AI의 힘을 빌리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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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연구진은 드론이 촬영한 항공 이미지를 파노라마처럼 구성하고, 여기에 토양 센서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더해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정밀지도(precision map, 토양의 수분 함량이나 지중 온도, pH 수준, 혹은 작물의 건강 상태나 해충 침입 여부 등을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보여주는 지도)를 만들어내는 접근을 취했다. 이 역시 채널 대역폭이 넓어 고용량 데이터 전송에 무리가 없는 TVWS를 사용하기로 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찬드라 박사에 따르면 토양 센서 데이터만 사용하거나 드론 촬영 이미지만 사용하는 솔루션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두 가지 모두를 사용해 분석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팜비트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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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드론을 활용하는 방법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드론 구입 비용은 선진국에선 그리 큰 투자가 아니지만 소득 수준이 낮은 개도국에선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항공 관련 규제가 존재한다는 것도 걸림돌이었다. 가령, 인도에서 드론을 띄우려면 국방부 허가를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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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맞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연구진은 드론을 사용하지 않고도 항공 이미지를 수집할 수 있는 옵션이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연구진은 헬륨 가스 풍선에 배터리팩과 스마트폰을 매달아 공중에서 촬영하는 ‘묘책’을 생각해냈다. 마치 계류식(繫留式) 기구처럼 풍선에 줄을 매달아 땅에 고정시켜 놓고 60∼70m 상공에서 알아서 촬영하게 할 수도 있고, 아예 사람이 헬륨 풍선에 달린 줄을 잡고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에 매달아 놓고 농장을 돌아다니며 찍을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인도처럼 인건비가 싼 나라나 작은 농장을 운영하는 곳에선 충분히 가능하고 현실적인 옵션이었다.

3. IoT 엣지 컴퓨팅 기술로 농가 PC에서 직접 데이터 분석

마지막으로, 팜비트 연구진은 농가 PC를 IoT 엣지 컴퓨팅 디바이스로 활용함으로써 농가의 열악한 인터넷 전송 속도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을 취했다. 결국 필요한 건 수집한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보내는 게 아니라 해당 데이터를 농부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의미 있게 ‘분석’하는 일이라는 점에 집중한 결과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MS의 애저 IoT 엣지(Azure IoT Edge) 서비스를 통해 방대한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보내지 않고도 농가 PC에서 애널리틱스 서비스(예: 정밀지도 작성)를 실행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했다. 대부분 농가가 PC를 보유하고 있는데다 농부들이 모든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받아보길 원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에 착안한 접근이었다. 가령, 온도나 관수(irrigation) 관련 정보는 실시간으로 제공받기 원하지만 어떤 종자를 뿌리는 게 좋을지 같은 제안은 시차가 좀 있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서비스였다. 따라서 좀 더 시간을 갖고 제공해도 될 정보는 데이터를 압축적으로 요약해 클라우드로 전송하고, 실시간 니즈가 있는 내용은 바로바로 처리해 제공했다. 특히 폭우나 폭설 등 기후변화로 인한 갑작스런 통신 단절 위험에도 끊김 없는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인터넷 연결이 끊어진 상태에서도 작동하도록 했다.

연구 프로젝트 시작 5년 만에 상용화 서비스 성공

MS의 브래드 스미스 사장이 지난 2017년 ‘지구환경 AI’ 프로그램을 발표하며 자사의 AI 지향점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시범 프로젝트로 언급한 건 팜비트 외에도 두 개가 더 있었다. 감염병 발생 징조의 사전 예측을 목적으로 하는 ‘마이크로소프트 프리모니션(Microsoft Premonition)’과 토지피복도(土地被覆圖) 작성 기술인 ‘랜드커버매핑(Land Cover Mapping)’ 프로젝트다. 이 셋 중 지금까지 실제 제품화로 이어진 프로젝트는 팜비트가 유일하다. MSR 소속 책임 연구원(Principal Researcher)으로 팜비트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던 찬드라 박사가 2018년 11월 애저 글로벌 수석 과학자로 자리를 옮긴 이유도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던 팜비트 프로젝트를 실제 상용화 서비스로 출시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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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제품 출시를 위해 MS는 그간 정밀농업 분야 센서 전문 업체인 데이비스 인스트루먼트(Davis Instruments)와 페슬 인스트루먼트(Pessl Instruments), 드론 업체인 센스플라이(SenseFly)와 DJI 등 여러 업체와 긴밀한 파트너십을 맺고 시스템을 개발해왔다. MS는 정밀농업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는 농업 시스템을 만드는 업체이지 직접 센서나 드론을 만들어 파는 게 아니니만큼 다양한 파트너와의 협업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MS는 DTN처럼 날씨를 비롯한 농업 관련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해주는 업체들과도 협력하며 팜비트 시스템을 고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9년 11월 애저 마켓플레이스(Azure Marketplace)에 공개된 애저 팜비트는 현재 랜드오레이크스를 비롯해 펩시코, USDA, CSIRO 등 다양한 주체를 애저의 고객(B2B)으로 끌어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MS가 이들을 대하는 태도다. MS는 이들을 단순한 ‘고객’이 아니라 함께 시장을 만들어갈 ‘파트너’로 본다. 즉, 농식품 산업의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있는 농업 관련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교환•거래할 수 있는 통합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한 협력자로 보는 것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수집되는 데이터를 한데 모아 분석할 수 있는 기본 플랫폼을 제시하는 건 MS가 잘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지만, 실제로 그 플랫폼 위에서 최종 사용자(농부)가 사용할 수 있는 궁극적인 솔루션을 개발하는 건 파트너 고객사들이 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령, 작년 10월 MS와 파트너십을 맺은 USDA는 메릴랜드주 벨츠빌에 있는 국립농업연구센터(Beltsville Agricultural Research Center, BARC)의 농장(약 2800만 ㎡, 856만 평)에 팜비트를 적용, 피복작물(cover crop) 관리에 특화된 시스템을 테스트하고 있다. 현재 BARC는 토양 센서와 드론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트랙터에도 센서를 장착하고 인공위성까지 활용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고 있다. 지난 7월 MS와의 전략적 제휴를 발표한 랜드오레이크스의 경우엔 ‘윈필드 유나이티드 R7®(WinField United - R7®)’ ‘트루테라™ 인사이트 엔진(Truterra™ Insights Engine)’ 등 자사의 다양한 솔루션을 MS의 클라우드로 끌어모으고 애저 팜비트와 연계해 어그테크 연계 플랫폼(connected AgTech platform)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기술 기업인 MS는 이처럼 민관을 막론하고 다양한 고객사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전반적인 농식품 산업 생태계의 발전을 가속화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이는 비단 농업뿐 아니라 모든 산업 분야에 걸쳐 애저 클라우드를 통해 MS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즉, 농업, 금융, 유통,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지식(domain knowledge)을 갖춘 업계 리더들과 힘을 합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다양한 솔루션을 애저 위에 탑재하고, 이들이 하나의 통합된 아키텍처 위에 새로운 솔루션들을 개발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 이는 2년 전 애저 글로벌로 자리를 옮긴 찬드라 박사에게 주어진 미션이 팜비트를 실제 제품화화는 것 외에 여러 산업 분야를 아울러 혁신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에 대해 고민하라는 것이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MS는 이 같은 접근을 통해 개별 산업의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혁신을 가속화하는 것은 물론 산업 간 경계를 무너뜨리는 혁신 기회를 찾겠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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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점 및 도전 과제

인도 출신 엔지니어인 찬드라 박사가 주도한 팜비트는 MSR 레드먼드와 벵갈루루 랩 두 곳의 연구진이 머리를 맞대 내놓은 결과물이다. 농가 호당 경지면적이 방대하고 전 세계 정밀농업 기술을 선도하는 ‘미국’과 농민 대부분이 영세 소작농으로 농업 관련 인프라가 열악한 ‘인도’ 두 나라의 연구진이 힘을 합쳤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MS가 애초부터 최첨단 정밀농업 기술을 소득 수준이 낮은 개도국 영세 농가에도 적용할 수 있는 솔루션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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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팜비트 연구진은 정밀농업 확산을 막는 걸림돌을 극복하는 데 있어 개도국 시장의 눈높이에 맞는 ‘로테크(low-tech)’를 적극 활용했다. 환경, 의료, 보건, 교육 등 기본적인 삶의 질과 관련된 사회 문제는 소득 수준이 낮고 각종 인프라가 취약한 개도국일수록 그 심각성이 더하다. 이 경우 아무리 첨단 기술을 적용한다 해도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같은 문제를 놓고도 선진국과 피라미드의 저변(Base of Pyramid, BoP) 시장에서의 접근이 달라야 하는 이유다. 팜비트 연구진이 프로젝트 초기 인도에서 파일럿 테스트를 하면서 직면한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연구진은 첨단 AI 기술인 머신러닝과 풍선을 활용하는 로테크를 적절히 결합해 슬기롭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는 하이테크와 로테크의 결합을 통한 시너지 창출의 유익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할 수 있다.

다양한 주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차근차근 프로젝트를 진척시켜왔던 점도 눈여겨볼 점이다. 사회 문제는 기본적으로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단일 기업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농업도 마찬가지다. MS는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센서 업체, 드론 회사, 농업연구소 등 민관을 막론하고 다양한 주체와 협력하며 시스템을 고도화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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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과제도 분명 있다. 찬드라 박사는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 때 최소 1000달러를 훌쩍 넘기는 센서 네트워킹 솔루션 가격을 궁극적으로 100달러 이하, 즉 두 자릿수 숫자로까지 떨어뜨리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TVWS라는 유휴 자원과 드론이라는 대체 센서 자원 및 머신러닝 기술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기존 정밀농업 솔루션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온 고비용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해 대략 200달러 수준으로까지 비용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연구 프로젝트 단계에 머물러 있던 팜비트를 애저 팜비트라는 실제 제품으로 출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찬드라 박사도 지적하듯 현재 서비스는 최소 4만 ㎡(약 1만2000평) 이상 농지를 갖고 있는 중소 규모 이상의 농가에 적합한 수준으로, 소규모 자작농이나 개도국의 영세 농가들에는 여전히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MSR에선 아예 특별한 센서 장비 없이 토양 관련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개도국 환경을 고려해 드론 활용을 고집하지 않고 풍선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발상을 전환했던 때처럼 결국 필요한 건 하드웨어가 아닌 ‘데이터’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센서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적 해결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바로 스마트폰의 와이파이 무선 칩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이 현실화되면 새로 장비를 구입할 필요 없이 대부분 사람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활용하면 되기 때문에 엄청난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DBR mini box Ⅱ ‘란비르 찬드라 MS 애저 글로벌 수석 과학자 인터뷰’ 참고.)


DBR mini box II : 란비르 찬드라 MS 애저 글로벌 수석 과학자 인터뷰
“인간의 지식을 대체(replace)하는 게 아닌, 증가(augment)시키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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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R는 IT 업계에서도 실용적인 연구에 집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MSR의 미션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컴퓨터 과학의 진보에 기여하고, 둘째, 연구 결과물은 무엇이든 제품으로 출시하며, 셋째, MS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다. MSR 소속 연구자들이 해마다 엄청난 양의 학술 논문을 발표하고, 그 결과물이 단순 발명이나 특허 출원에서 그치지 않고 제품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미래에 중요해질 연구 분야가 무엇일지를 파악해 장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이유다.

나만 해도 지금까지 100편이 넘는 학술 논문을 발표했고, 박사 과정 학생들의 학위논문 심사에도 여럿 관여하며 학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동시에 나는 내 연구가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많은 에너지를 쏟아왔다. 단적인 예로 팜비트 전에 내가 수행했던 연구 주제는 배터리였는데 해당 연구 결과물은 윈도와 비주얼 스튜디오(Visual Studio, MS의 통합 개발 환경)에 반영됐다. 지연 시간이 짧은 고품질 무선통신 기술(low latency wireless) 연구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대가 팔린 비디오 게임기 엑스박스 원(XBOX One)의 무선 컨트롤러 프로토콜에 적용됐다. 마지막으로, MS의 미래를 위한 장기 프로젝트는 5년 주기로 새로운 토픽을 찾아 수행해 왔다. 2005년 입사 당시엔 TVWS를 연구 주제로 택했고, 2010년엔 배터리 연구에 착수했으며, 2015년 팜비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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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R가 지향하는 연구 혁신의 전체 맥락 속에서 팜비트 프로젝트를 평가해 달라.

팜비트의 경우 ‘흥미롭긴 하지만 다소 비현실적인(blue-sky)’ 혁신 연구 성격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불과 5년 만에 제품화에 성공했고, 이제는 애저 팜비트를 사용하는 고객들로부터 얻는 피드백을 통해 서비스를 개선하고 정교화시켜 나가는 과정에 있다. 팜비트 사업을 주관하는 공식 부서도 2년 전 애저 글로벌로 넘어왔다. MSR에서 연구 프로젝트로 처음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구체적인 임무(mission-focused)’가 정해진 셈이다.

팜비트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목표는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그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 실제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기존 정밀농업 솔루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최소 4만 ㎡(약 1만2000평) 이상 농경지를 가진 중대형 규모의 농장에서 도입하기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비용을 낮췄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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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초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졌던 궁극적 목표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빈곤의 늪에서 허덕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Sub-Saharan Africa) 지역의 영세 농민들도 제한 없이 쓸 수 있게 만들려면 솔루션 가격을 최소한 100달러 밑으로 낮춰야 한다고 보는데 아직 그 수준에 미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충분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MSR에서 팜비트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고, 나 역시 MSR의 파트너 연구원(Partner Researcher)을 겸직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의 와이파이 신호를 활용해 토양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 중이다. 이미 2년 전 관련 연구를 발표했고, 지난해에는 컴퓨터 과학 분야의 세계적 학술대회(The 25th Annual International Conference on Mobile Computing and Networking)에서도 발표해 상을 받았다. 해당 기술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값비싼 토양 센서를 따로 구입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농가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연구와 제품화 노력은 계속 같이 갈 수밖에 없고, 그래야 한다.

팜비트를 통해 MS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어림짐작(guesswork)으로 농사짓는 관행을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데이터 기반(data-driven)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여기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절대 농부를 대체하려는 게 아니다. 의사결정을 내리는 기반을 어림짐작이 아닌 IoT와 AI, 클라우드 기반의 데이터로 바꾸자는 것이다.

팜비트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많은 농부를 만나봤는데 그들 모두 놀라운 전문가들이었다. 특히 농부들 가운데에는 대를 이어 농사짓는 경우가 많아서 대대로 물려받은 자신의 농장(땅)에 대해선 최고의 전문가들이었다. 어떤 농부는 손으로 토양을 만져보고, 또 어떤 농부는 흙을 맛보는 등 제각각 방법은 달랐지만 그들 모두 자신만의 방법으로 토양 상태가 어떤지를 귀신같이 알아맞혔다.

팜비트를 통해 우리가 하고자 하는 건 이처럼 훌륭한 농부들의 지식에 더해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으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함으로써 기존 지식의 잠재력을 증폭시키려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의 지식을 ‘대체(replace)’하려는 게 아니라 ‘증가(augment)’시키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기술 비용을 낮추는 일이다. 누구나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저렴한(affordable) 정밀농업 솔루션을 만들어야 최소한의 물과 비료, 살충제를 사용하고도 생산성은 높여 농가에 더 많은 수익을 얻게 해 주고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지속가능한(sustainable) 농업을 구현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스마트폰 와이파이 신호를 활용하는 연구가 중요한 이유다. 빌 게이츠가 자신의 블로그인 게이츠노트에도 언급할 만큼.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분명 우리는 우리가 목표하는 바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는다.


편집자주
본 인터뷰는 마이크로소프트 협업 허브 플랫폼인 팀즈(Teams)를 통해 진행됐습니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왜, 무엇을, 어떻게, 누가’에 대해 확실한 답을 찾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애저 팜비트(Azure FarmBeats)’ 사례에는 급속한 환경 변화 속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고 있는 기업들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 전략, 경영, 혁신 이슈가 농축돼 있다. 애저 팜비트는 아직 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안고 있고 진행 중인 사업이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만으로도 충분히 성공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사업의 성공 요인을 기업의 혁신 전략과 기업가정신의 관점에서 찾아보면 이 사업은 무엇보다 MS의 사명(mission) 및 전략과의 연계성이 높아 전사적 지원과 외부의 협력을 잘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개발도상국에서 정밀농업 확산이 왜 어려운지에 대한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 이를 첨단 IT 역량과 유휴 자원, 로테크를 결합한 혁신적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창의적인 혁신 과정도 주효했다. 또한 기술 기업인 MS가 조직 내 부서 간 협력(MSR 레드먼드와 벵갈루루 랩)뿐 아니라 조직 외부의 분야별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여러 파트너와의 ‘협력’을 통해 문제에 효과적으로 접근했다. 마지막으로, 사내 기업가(corporate entrepreneur)라고 할 수 있는 란비르 찬드라 박사의 기업가정신과 역량이 뒷받침됐기에 이러한 성공이 가능했다. 성공 요인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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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MS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많은 역량과 자원을 가진 ‘기업’이 인류와 사회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기여해야 하고, 이러한 문제 해결 노력이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및 사업 전략과도 연계돼 경제적•사회적 가치 창출과 지속 성장으로 연결돼야 한다는 사명감과 전략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MS의 노력은 ‘지구환경 AI’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최근 선도 기업들을 중심으로 기업의 사명은 이익 창출을 넘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성공을 돕는 것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애저 팜비트 사업은 이러한 MS의 사명과 전략에 잘 부합됐기 때문에 CEO를 포함한 MS 내부 경영진의 전사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외부 파트너들과의 협력도 잘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둘째, MS가 애저 팜비트 사업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면 매우 창의적이고 ‘기업가적인 과정(entrepreneurial process)’을 따르고 있다. 먼저, 개도국에서 정밀농업 확산이 어려운 문제의 근본 원인을 ① 과도한 네트워크 연결 비용, ② 센서 활용의 제약, ③ 열악한 브로드밴드 등 세 가지로 압축해 정확히 파악했고, 이를 첨단 IT 역량(AI, 데이터 분석 등)과 유휴 자원(남아도는 TV 채널 주파수 대역인 TVWS 등), 인도 현지 상황에 적합한 로테크(헬륨가스 풍선 등)를 결합해 창의적이고 적정하고 혁신적인 ‘해결책’을 만들어 냈다. 기회는 문제의 명확한 인식과 그 문제에 대한 혁신적인 해결책이 만날 때 발굴되고 실현된다. (그림 1) 문제에서 출발해 해결책을 찾아 기회를 실현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가정신의 접근 방식이 글로벌 기술 기업 MS에서 팜비트 사업의 성공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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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경제적•사회적 임팩트가 큰 문제는 그 해결책 또한 특정한 개인이나 조직의 독자적인 노력만으로 찾아지기 어렵다. 정밀농업 또는 스마트 농업은 인간의 의식주와 관련된 중요한 영역이면서 전통 기술과 첨단 기술, 다양한 영역의 전문성, 기술 지식과 도메인(농업) 지식, 민간과 정부 및 지역사회가 함께 관련이 되는 복합 영역이다. 따라서 관련 지식과 역량, 경험과 권한을 가진 여러 주체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MS는 애저 팜비트 사업을 추진하면서 내부적으로도 부서 간에 서로 돕고, 외부의 다양한 파트너와도 효과적으로 역할을 정해 소통하고 협력했다. 과거 MS가 조직 내부의 협력이 미흡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점을 상기하면 MS의 바뀐 새로운 업무 수행 방식과 조직문화가 협력을 통해 외부 자원의 효과적 활용을 가능하게 했다. 애저 팜비트 사업에서는 조직 내•조직 간 협력이 아이디어 창출과 혁신을 가속화했다.

넷째, 애저 팜비트 사업의 성공에는 란비르 찬드라 박사의 기여가 컸다. 그는 인도와 미국에서 공부했고, 어린 시절 경험한 열악한 개도국의 농업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공감과 열정이 있었다. 그는 과학자로 출발했지만 애저 팜비트의 사업화를 앞당기면서 ‘사내 기업가’의 역할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인도의 경제적•기술적 상황을 고려해 현지에서 잘 적용될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해 기회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창의적인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을 찾았다. 어쩌면 인도 출신인 그가 자연스럽게 간디식 이노베이션이라고 알려진 『주가드i 이노베이션』의 기본 철학을 실천에 옮긴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애저 팜비트 사업은 대기업에서 이러한 사내 기업가의 역할 없이는 새로운 영역에서 획기적인 대안을 만드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잘 알려진 진실을 다시 확인해 주고 있다.

이상 애저 팜비트 사업의 성공 요인들을 종합해보면 [표 1]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결국 무언가 새롭고 혁신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은 사명과 사업과 사람이다. 특히 사람의 역할은 첨단 IT 사업에서도 여전히 중요하다.

물론 애저 팜비트 사업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첫째, 현재 200달러 수준으로까지 낮춘 이 사업의 솔루션 가격을 당초 목표인 100달러 밑으로 낮출 수 있느냐의 기술적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또 다른 파괴적 혁신이 필요할 수 있다. 둘째, 지금까지 미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추진돼 온 이 사업이 다른 여러 개도국으로도 확산돼 임팩트를 크게 하려면 또 다른 생태적•문화적•기술적 장애를 극복해야 할 것이며, 여기에는 각 지역의 기업가 및 전문가의 역량과 협력이 필요할 것이다. 애저 팜비트 사업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를 가지고 지켜본다.


참고문헌
1. Microsoft Garage, FarmBeats: Democratizing AI for Farmers around the World. (https://www.microsoft.com/en-us/garage/wall-of-fame/farmbeats/)
2. Prahalad, C. K. and Mashelkar, R. A., Innovation’s Holy Grail, Harvard Business Review, July-August 2010.
3. 김재구, 배종태, 이정현, 이무원, 양대규, 강신형, 사회가치경영의 실천전략, 클라우드나인, 2020.


배종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ztbae@kaist.ac.kr
배종태 교수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개도국의 기술 혁신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KIST 경제분석실에서 일했고, 태국 AIT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초빙 교수를 지냈으며, 중소기업학회 및 기술경영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관심 분야는 기업가정신, 기술 혁신 경영, 사회가치경영이며, 주요 저서로는 『사람 중심 기업가정신』 『사회가치경영』 『이토록 신나는 혁신이라니』 『굿 비즈니스 플러스』가 있다.









매장 하나 없이 고급케이크로 ‘원 아이템’의 전설이 되다

148호 (2014년 3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정희정(서강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중국 경제의 고도 성장과 함께 중국인들의 가처분 소득 수준이 늘어나면서 소비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대도시의 백화점에서는 루이비통, 페라가모, 구찌와 같은 럭셔리 브랜드 제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이랜드와 락앤락 같은 한국 제품들이 중고가 브랜드로 자리 잡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도 중국 소비자들의 향상된 구매력과 소비 수준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온라인 케이크 업체인 21Cake(www.21cake.com)는 이런 중국 소비 시장의 성장을 배경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벤처기업이다. 2004년 창업한 이 회사는 인터넷과 콜센터 주문을 통해 케이크를 판매하는 전자상거래에 의존하고 있으며 매일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제작하는 수천 개의 케이크를 베이징, 상하이, 톈진, 항저우, 쑤저우 및 우시와 같은 대도시에서 직접 배송하고 있다. 21Cake의 성공 사례 분석을 통해 대기업이 아닌 벤처, 특히 하나의 제품이 집중하는 원 아이템(one-item) 회사가 중국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법을 소개한다.

 

제품 차별화와 인터넷 주문 판매로 도약

 

21Cake CEO인 야오 레이(姚磊)는 중국 지린성 창춘에 있는 식품업계에서 10여 년간 일하다가 2004년에 케이크 파티시에(patissier)인 파트너와 함께 회사를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케이크 사업을 구상하면서 하이엔드 소비자층을 노리기로 했고 이를 위해서는 대도시에 매장을 내는 게 좋을 것이라고 판단해 서울의 명동에 해당하는 베이징 왕푸징에 있는 둥팡광장이라는 고급 쇼핑몰에 가게를 내려고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임대료가 너무 비쌌다. 또 한국의 파리바게트, 싱가포르의 BreadTalk 같은 고급 베이커리 브랜드가 이미 입점해 있었다. 그는 신생 업체가 오프라인 점포로 경쟁하기가 벅차다고 판단해 온라인 판매로 방향을 전환했다.

 

CEO 야오는 베이징 북쪽 주택가의 한 건물을 빌렸다.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케이크를 전화와 인터넷으로 주문 판매하기 시작했다. 21Cake 21가지 종류의 케이크를 판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소규모 주방에서 시작한 초기에는 하루에 케이크를 10개 남짓 팔았으나 입소문으로 수요가 늘어나 2006년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하루 판매량이 100개를 넘을 정도로 성장했다.

 

2008년 초가 되자 수요가 공급량을 초과하는 날이 많아졌다. CEO 야오는 소규모 주방에서 벗어나 사업 규모를 본격적으로 확장하기로 하고 그간 번 돈과 지인들로부터 받은 투자금을 합쳐 베이징과 상하이에 각각 케이크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2009년 당시 베이징 대부분의 베이커리들은 지름 20인치 생크림 케이크 기준으로 약 100 위안(18000) 정도의 가격에 판매했다. 케이크 모양은 투박했고 언제 생산됐는지가 정확히 표기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1Cake는 일반 케이크와 차별화하기 위해 벨기에에서 수입한 초콜릿, 일본 품종의 딸기, 유기농 우유 등 고급 원료를 사용했고 인공 첨가제는 넣지 않았다.

 

생크림도 여러 가지 첨가물을 넣은 식물성 생크림이 아닌 동물성 생크림을 고집했다. 동물성 생크림은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첨가물 없이 100% 우유에서만 추출한 것으로 식물성 생크림에 비해 입 안에서 쉽게 녹으며 더 가볍고 부드럽다는 장점이 있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냉장 보관을 해야 하며 작은 충격에도 모양이 흐트러지기 쉽다는 단점이 있어 일반 케이크 매장에서는 잘 쓰지 않았다.

 

차별화된 재료를 썼기 때문에 가격은 높게 책정됐다. 가장 작은 사이즈인 지름 12인치 케이크의 가격이 2009년 당시 138위안(한화 25000), 지름 20인치 생크림 케이크의 경우 일반 베이커리 동일 크기 제품의 4배에 가까운 390위안(한화 7만 원)이었다. 베이징 시민의 소득 수준이 높아졌다 해도 상당히 높은 가격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소득층을 효과적으로 타기팅한 21Cake는 판매량을 빠르게 늘려갔다.

 

2009, CEO 야오는 2013년까지 최소한 8개 도시, 많게는 10개 이상의 도시에 진출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필자가 일하는 레전드캐피탈의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았다.

 

이후 4년 동안 회사는 연 평균 50% 이상 꾸준히 성장하며 매출을 5배로 키웠다. 베이징과 상하이 공장이 2009년 말에 완공돼 대규모 생산이 가능해지고, 당초 계획대로 8개 이상의 도시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판매 지역이 베이징, 상하이 두 도시에서 주변 지역인 톈진, 항저우, 쑤저우, 우시를 포함한 여섯 도시로 늘어났다. 베이징, 상하이 두 곳에 생산 공장을 운영하면서 인근 도시들에 배송센터를 구축하는 형태로 확장했다.

 

단기간에 급성장한 배경

 

작은 수제 케이크 가게였던 21Cake가 치열한 중국 시장에서 단기간에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다음과 같다.

 

1. 고급 케이크에 대한 경영진의 열정

 

야오는 다음의 네 가지 원칙에 따라 회사를 운영했다.

 

1) 사각형 케이크만을 만든다.

2) 주문 생산 방식의 신선한 케이크를 온라인으로만 판매한다.

3) 최고의 원료를 사용해 비싼 케이크만을 생산한다.

4) 포장상자, 일회용 종이 접시나 포크 디자인에도 많은 투자를 한다.

 

 

2009년 당시 중국에서 팔리던 일반적인 케이크(왼쪽)와 21Cake의 베스트셀러인 개별 포장 초콜릿 케이크(오른쪽)

 

이 회사의 케이크는 원형이 없고 100% 사각형이다. 야오는 원형 위주인 일반 케이크와 차별을 두고 싶었다. 그는 유럽에서 온 케이크라는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워 사각형케이크 = 유럽 케이크이라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또 미리 생산하는 방식(Make To Stock)을 거부하고 신선함을 고집하는 주문 생산 방식(Make To Order)의 온라인 모델을 선택했다. 고객은 항상 5시간 내에 만들어진 신선한 케이크를 맛볼 수 있다.

 

원료 역시 비싸더라도 좋은 제품을 썼다. 벨기에산 초콜릿, 뉴질랜드산 유기농 우유, 프랑스산 코코넛 등과 같은 수입 원재료를 사용했다. 케이크에 들어가는 과일 재료는 신선함을 위해 제철 과일만 사용했다. 포장상자뿐만 아니라 일회용 종이 접시, 포크 등의 디자인도 전문 디자인 에이전시에 프로젝트를 의뢰했다. 그 당시 매출 규모를 고려했을 때 상당한 액수의 투자였다.

 

이런 과감한 제품 차별화는 CEO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회사가 초기 단계일수록 CEO가 가진 능력이나 경험이 비즈니스와 얼마나 부합하는지가 중요하다. 21Cake CEO 야오는 10년 넘게 식품업계에서 일해 온 경력이 있었고 무엇보다 케이크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케이크 먹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고 품질 좋은 원료를 구하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케이크 마니아였다.

 

필자는 야오와 함께 일본의 베이커리 생산 공장 방문을 주선한 적이 있었다. 도쿄에 체류하는 기간 중 그가 고급 유기농 슈퍼마켓을 돌아다니면서 과일 잼을 30개 넘게 사 모으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만큼 먹거리의 맛과 품질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품질에 대한 리더의 열정은 직원과 고객에게까지 전염된다. 21Cake의 사각형 고급 케이크는 유사한 업체와 제품이 갖지 못한 높은 고객 충성도를 자랑한다. 회사는 2009년에 레전드캐피탈과 함께 21Cake의 케이크를 구매한 적이 있는 소비자들을 무작위로 추출해 고객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다. 콜센터 직원들을 세 팀으로 나눠 500(유효 응답 수 266)의 소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확보한 설문 조사 결과는 아래와 같다.

 

 62%의 구매 고객들은 친구의 추천으로 케이크를 구입했다.

 19%의 구매 고객들은 오프라인 시식회를 통해서 21Cake를 알게 됐다.

 55%의 구매 고객들은 생일 파티를 위해 케이크를 구매했고 21%는 본인이 먹기 위해 구입했다.

 45%의 구매 고객들은 21Cake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맛있는 케이크라고 답했다.

 84%의 구매 고객들은 맛과 세련된 디자인 및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향후 21Cake를 재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무려 60%가 넘는 소비자들이 입소문을 통해 21Cake의 케이크를 구입했으며 재구매 의향 비율도 84%나 됐다. 2009년 당시 중국의 많은 전자상거래 회사들이 온라인 브랜드 구축 및 신규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매출의 20∼30%에 해당하는 금액을 마케팅 비용으로 쓰고 있었다. 이에 비해 21Cake는 입소문으로 신규 고객 및 재구매 고객을 다수 확보했다. 제품에서 경쟁 우위가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또한 21%의 구매 고객들은 본인이 먹을 목적으로 구입한다는 응답도 고무적이었다. 케이크는 일반적으로 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산다. 그런데 자기가 먹기 위해 산다는 건 그만큼 맛에 만족한다는 뜻이고 이는 높은 재구매율로 이어진다.

 

21Cake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던 2009년 무렵 베이징 거리에서는 맛있고 신선한 케이크를 파는 로컬 베이커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한국의 파리바게트 및 뚜레쥬르가 당시 중국에 진출해 있었고 고급 케이크를 파는 5성급 호텔의 베이커리도 있었으나 그 점포 수는 중국 시장의 크기를 고려했을 때 매우 미미한 수준이었다.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의 체인점을 확보한 하오리라이(Haolilai), 웨이둬메이(Weiduomei) 같은 중국 주요 로컬 브랜드 베이커리들의 경우 주력 상품은 가격대가 낮고 구입 빈도가 높은 빵이나 과자, 이윤율이 높은 음료수였다. 케이크는 매장 한편에 구색을 갖추기 위해 생산하는 제품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21Cake 138∼400위안(한화 25000∼72000)의 높은 가격의 고급 케이크에 집중했다. 고급 케이크로 브랜드를 형성한 베이커리 체인이 시장에 아직 없었기 때문에 고급 케이크로 포지셔닝한 것이 주효했다.

 

평균 국민소득이 낮은 중국에서 고가의 케이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케이크라는 제품이 가지는 감성적인 특징 때문이기도 했다. 케이크는 일반적으로 생일 파티, 크리스마스 파티와 같이 축하하는 자리에서 사용하기 위해 구입하는 제품이다. 만약 부모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케이크를 산다면 돈 몇 천 원 차이에 더 싼 것을 고를까?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조금 비싸더라도 건강에 좋고 더 맛있는 케이크를 산다.

 

투자의 현인 워런 버핏은 1972 See’s Candies라는 초콜릿 업체에 투자했다. 이 회사의 순수익은 1981년 약 600만 달러에서 1996년에는 그보다 다섯 배 이상인 3100만 달러로 증가했고 인수 이후 34년간 무려 13500만 달러의 누적 수익을 가져다줬다. 그는 1998년 플로리다대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밸런타인데이에 집에 가서 초콜릿 한 상자를 내밀며 여보, 이거 최저가에 구매한거야라고 말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 일은 없습니다.”

 

프리미엄 초콜릿처럼 케이크도 감성제품이다. 감성제품은 브랜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감성에 어필하는 제품 중에서 저가격으로 성공한 예는 거의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2. 매장 없이 온라인 판매와 자체 배송망 확보에 집중

 

매장 없이 온라인으로 케이크를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점포의 임대료 및 판매 인건비가 발생하지 않아 수익성이 높다. 또 재고관리도 용이하다. 오프라인 베이커리는 수요 예측에 의존해 케이크를 생산한 뒤 판매를 못하거나(재고 발생에 따른 손실) 재고가 없어서 매출의 기회를 놓치는(판매 기회 손실) 경우가 발생하지만 주문 생산 방식의 온라인 모델은 이러한 단점들을 극복할 수 있다.( 1)

 

또 오프라인 위주의 베이커리 모델은 매장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야 성장할 수 있는 데 반해 온라인 모델은 공장 하나를 지은 뒤에 배송 센터를 확장하는 방식을 통해 도시 전체로까지 판매 지역 확장이 가능해 규모의 경제 실현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반면 단점도 있다. 매장이 없기에 신규 고객 확보가 용이하지 않고 브랜드 구축이 어렵다. 또 온라인 모델은 제품을 공장에서 직접 소비자에게 배송해야 하기에 물류비용이 발생하며 택배 회사 이용 시 배송 도중 케이크가 훼손될 우려가 있고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맞춰 배달하기 어렵다는 점 등의 제약이 있다. 따라서 신선한 케이크를 고객이 원하는 정확한 시간에 배달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자체 배송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한다. 21Cake는 확장과 함께 물류/배송센터 구축에 힘썼다.

 

자체 배송체계가 완성되자 이는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다. 교통사정이 혼잡하고 행인과 어깨를 부딪치는 일이 많은 중국의 대도시에서 소비자가 케이크를 들고 이동하는 길은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21Cake의 배송 서비스는 지정한 시간에 신선한 케이크를 고객에게 안전하게 배송해 주고 다른 도시에 있는 친구나 거래처에도 선물로 케이크를 보낼 수 있게 해줘 고소득층 고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당일 주문 현황에 따라 베이징과 상하이의 공장에서 출시된 케이크는 각 도시의 물류센터로 하루에 3번씩 배송하며 물류센터 직원이 고객이 지정한 시간에 맞춰 배달한다.

 

3. 온라인 사업모델에 부합하는 마케팅

 

온라인 모델의 단점 중 하나는 오프라인 매장 부재에 따른 신규 고객 확보 및 브랜드 구축이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다. 21Cake는 대사관 파티, 연예인 행사 등 공적 행사에 케이크를 제공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또 중상위 소득 수준 이상의 화이트칼라층이 밀접해 있는 오피스가를 중심으로 시식회를 여는 마케팅을 통해 신규 고객을 확보하고 브랜드를 홍보했다. 이러한 노력들을 방증하듯 중국의 소비자 평가 전문 사이트인 뎬핑(Dianping)에서는 추천 음식 케이크 부문에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에 걸쳐 21Cake 1위로 선정했다.  45%의 구매 고객들이 21Cake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맛있는 케이크라고 할 만큼 좋은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온라인 모델의 단점 중 하나인 배송 문제도 소비자 접점을 직접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됐다.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배송 서비스를 통해서 최종 소비자와 대면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21Cake는 온라인 주문판매를 시작하면서 소비자별 주문 케이크는 물론, 연령, 성별, 지역, 휴대폰 번호 등 30만 명의 고객 DB를 확보했다. 이는 단순히 케이크 사업뿐 아니라 향후 부유한 소비자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 사업 분야로까지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다.

 

4. 베이커리 시장 확대

 

2009년 당시 시장 통계 자료에 따른 베이징 베이커리 시장 규모는 26억 위안(한화 4000억 원)이었는데 이는 모든 채널(마트, 베이커리, 편의점 등)을 통해 팔리는 빵, 제과, 케이크를 포함하는 수치다. 중국 소비자의 1인당 베이커리 소비 지출 금액은 미국 소비자의 3%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중국인들의 식생활이 점차 서구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베이커리 시장의 향후 전망을 밝게 해주는 요소였다. 또한 베이징의 베이커리 시장은 매년 30% 이상 성장하고 있고 그 외 대도시 지역의 베이커리 시장도 두 자릿수 이상으로 성장하고 있다.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서구화가 상대적으로 빨리 진행된 상하이는 베이징 베이커리 시장의 두 배 이상 규모로 추정된다.

 

중국 온라인 거래 시장과 IT의 발전도 21Cake의 승승장구를 도왔다. 2009년 당시 중국 전자상거래 규모는 2000억 위안(한화 36000억 원)이었다. 온라인 결제, 물류시스템과 같은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매년 100%에 가까운 폭발적인 성장을 해오고 있었다. 백화점, 쇼핑몰, 슈퍼마켓, 편의점과 같은 오프라인 채널이 대도시를 위주로 많이 늘어나고는 있었으나 선진국과는 여전히 큰 격차가 있다. 대도시 이외의 중급 도시(2, 3, 4급 도시) 소비자들의 향후 잠재적 수요를 고려할 때 온라인 주문/배송 모델의 매력은 여전히 크다.

 

5. 벤처캐피털의 투자와 도움

 

성장 단계의 회사는 많은 문제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2009년 당시 21Cake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크게 보아 다음의 두 가지 문제가 있었으며 이는 신생기업들이 대부분 겪는 문제였다.

 

첫째, 회계 관리 상태가 상당히 부실했다. 간단한 수준의 재무제표는 있었으나 관리회계는 전무한 상태였다. 예를 들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선물용 선불카드의 경우 소비가 실제로 이뤄지는 시점에 매출로 인식해야 하나 이 회사는 현금을 받은 시점에 매출로 인식하고 있어서 매출 대비 원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진 만큼 1년 예산을 수립해 실적과 비교하고 차이점에 대한 분석을 하는 것도 필요했으나 이 같은 수준의 재무관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

 

둘째, 재무, 마케팅, 인사, IT, 물류센터 부문의 인재들이 적시에 영입되지 않아 많은 진통을 겪었다. 소규모 주방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대규모 공장을 지으면서 지역 확장을 하다 보니 인원도 많이 늘어났고 각 부문별로 효율적인 관리가 필요했으나 이를 맡아줄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찾지 못한 점은 큰 문제였다.

 

21Cake CEO인 야오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으나 제조업체에서만 10여 년 넘게 일했기 때문에 온라인 모델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경험이 부족했다. 또 입소문에 의한 판매 매출 신장이라는 성공 방정식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기존 경영방식을 유지하더라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온라인 광고를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신규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지, 기존 구매 고객에 대한 프로모션이나 고객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노하우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2011년부터 외부 인력을 영입하기 시작했으나 입사 후 몇 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는 일들이 빈번했고 설상가상으로 창립 멤버이자 그간 베이징 시장 내 세일즈를 담당하던 임원이 또 다른 벤처캐피털 회사로부터 투자받은 경쟁업체로 스카우트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기까지 했다. 특히 온라인 마케팅 관련 책임자를 조기에 영입하지 못한 점은 큰 실수였다. 2010년 중순까지도 검색엔진의 키워드 광고를 하고 있지 않아 바이두(중국 최대의 검색사이트)에서 21Cake를 검색하면 경쟁 업체의 사이트가 최상단에 나오는 수준이었다. 이러한 온라인 마케팅의 부재는 결국 경쟁사들에 시장점유율을 내주고 21Cake의 선도적 지위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21Cake 2009년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으며 이런 문제점들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투자를 한 레전드캐피탈은 지주회사인 레전드홀딩스가 세계 최대 PC회사 레노보를 소유하고 있는 등 중국 기업 경영에 대한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가 많았다.

 

레전드캐피탈은 우선 정확한 재무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2009 9월 한 달간의 판매수량을 바탕으로 직접 원가분석 및 재무제표 작성을 수행했다. 이 자료를 CEO에게 보여주며 회사가 생각하는 것보다 순이익이 낮다는 것 등을 알려줬고 정확한 재무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핵심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방안도 CEO에게 제안했다. 중국엔 너무나 많은 사업 기회가 있기에 우수한 인재를 벤처 기업에서 영입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톡옵션 부여는 물론 회사가 향후 자본 시장에 상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필요했다. 직접 인재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기존 포트폴리오 투자업체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COO, CFO 후보자를 소개하는 한편 새로운 임원을 영입할 때 벤처캐피털도 함께 인터뷰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 세련된 마케팅을 위해 베이징에 지사를 두고 있는 일본계 광고 회사를 섭외해 본격적인 인터넷 검색 광고 및 홈페이지의 리뉴얼, 소셜미디어 전략을 수립하도록 지원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

 

중국의 GDP 규모가 일본을 넘어 세계 2위가 되고 자본 시장이 커지면서 상장되는 기업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거시적인 사실은 익숙히 접하고 있지만 실제로 중국에서 벤처 기업들이 어떻게 사업을 시작해서 성장하게 되고 상장에까지 이르는지에 대한 정보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13억 인구가 있는 중국 시장은 크고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따라서 중국의 벤처 기업들이 이러한 시장에서 어떠한 사업 기회를 포착해 어떻게 성장하는지 일련의 과정을 살펴본다면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들에도 힌트가 될 수 있다. 특히 21Cake의 성장 스토리는 중국 시장에 진출해 있거나 진출을 꿈꾸는 한국의 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1. 차별화가 중요하다

 

< 2>에서 정리한 바와 같이 21Cake는 화이트칼라 소비자를 타깃으로 최고의 원료만을 사용해 케이크를 만들었다. 오프라인 위주의 이벤트 마케팅을 하고 주문 생산을 통해 온라인 채널로만 국한해서 직접 배송하는 모델을 구축했다. 같은 제품을 판매하더라도 다양한 조합을 통한 모델 구축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해주며 차별화를 통해 경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단일 품목으로도 중국 시장에서는 큰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

 

한국과 같은 시장에서 3000여 개나 되는 매장을 가진 파리바게트 같은 베이커리 업체가 나올 수 있다면 도시 인구가 전 인구의 50%를 넘어선 중국은 단순히 인구를 기반으로 계산해도 3만 개 규모의 베이커리 매장이 나올 수 있는 시장이다.

 

최근 이사회에서 케이크가 아닌 초콜릿이나 선물 관련 아이템을 같이 팔아볼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CEO 야오는 이렇게 답했다.

 

21Cake는 이제 고작 6개 도시에 진출해 있을 뿐이고 내년에는 10개 도시로 판매 지역을 늘리더라도 아직 진출해야 할 지역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 있다. 중국 시장에서는 케이크 하나만 팔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단일 품목만을 판매하고 있지만 중국 시장의 규모를 고려해 봤을 때 케이크 하나에만 올인 하더라도 큰 규모를 이룰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 시장에서의 니치(Niche)’는 규모 면에서는 심지어 다른 나라의 전체 시장과 맞먹을 정도로 큰 규모가 형성되고 이에 따라 니치 상품(niche product)으로 승부하는 벤처 기업 입장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기회가 있다.

 

3. 하이엔드 제품의 오프라인 시장이 발달돼 있지 않은 중국에서 온라인 사업 기회가 크다.

 

21Cake와 같은 온라인 모델의 케이크 회사가 한국이나 일본 시장에서도 중국처럼 성장할 수 있을까? 맛있고 고급스런 케이크를 파는 가게가 넘치는 한국이나 일본 시장에서는 힘들 것이라고 판단된다. 제품으로도 차별화하기가 쉽지 않고 오프라인 매장이 곳곳에 잘 발달돼 있어 굳이 온라인을 선택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중국 시장은 상대적으로 오프라인 채널이 낙후돼 있기에 제품에 경쟁력이 있다면 온라인에서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이 존재한다. 실제로 제품 자체로 차별화하기 힘든 가전제품의 경우에도 온라인 회사들이 번창하고 있다. 오프라인 위주의 쑤닝(Suning), 궈메이(Guomei) 같은 가전제품 양판점을 운영하는 회사들이 있지만 온라인 채널로만 판매하는 징둥(JingDong)과 같은 회사도 급성장하고 있다. 징둥은 대도시 소비자에게 24시간 내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무기로 2013년에는 1000억 위안(18조 원) 매출을 기록했고 2014년에는 2000억 위안(36조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화장품 공동 구매 인터넷 사이트인 주메이(Jumei)는 저렴한 가격과 여성들의 입소문으로 2013 60억 위안(1조 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하고 상장을 준비 중이다.

 

중국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독자들이 상상하는 수준 이상으로 높아졌다는 것과 온라인을 통해서도 고가의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있다. 값비싼 장미꽃을 온라인으로 파는 로즈온리(www.roseonly.com.cn)라는 회사다. 장미꽃 한 송이에 699위안(14만 원), 장미꽃 여러 송이가 담긴 선물 박스를 무려 3999위안(80만 원)이라는 높은 가격에 팔고 있지만 밸런타인데이 및 크리스마스에는 재고가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사이트에서는 남성이 온라인 회원으로 등록할 때 단 한 명만의 여성을 지정해 장미꽃을 선물할 수 있다는 제한을 둬서 화제를 모았다. 또 연예인Weibo(중국판 트위터) 활동을 통해 마케팅을 하는 방식으로 많은 회원을 끌어모으고 있다.

 

21Cake 사례 연구가 시사하듯이 중국 소비자들의 고급 제품에 대한 수요는 늘고 있고 온라인 시장은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중국 시장에 관심이 있는 한국 기업이라면 상품, 타깃 고객, 마케팅, 생산, 물류, 온라인 채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차별화를 생각해보고 경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중국 소비 시장에 도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특히 한국의 벤처 기업들은 중국의 자본을 이용해서 중국 시장에 진출해 성장하는 것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이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이미 큰 성공을 거두고 있으나 벤처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고 현지 인재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으며 자본력도 제한적이다. 니치 상품 하나로만 진출해도 큰 시장이 형성되는 중국은 벤처 기업 입장에서 매우 매력적이다. 최근에는 중국 벤처캐피털 회사들이 IT, 소비재, 헬스케어 업종 등의 외국 기업에 투자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21Cake 사례에서 보듯이 한국 벤처 기업들도 중국 시장에 맞는 제품과 사업모델을 개발하고 벤처캐피털 등 파트너의 적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단기간 내에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박준성 레전드캐피탈 파트너 piaojc@legendcapital.com.cn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교환학생으로 수학했고 일본 게이오경영대학원과 중국 장강상학원(CKGSB)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엑센츄어(Accenture) 도쿄지사에서 애널리스트로 근무한 후 2005년부터 레전드캐피탈 베이징 본사에서 일하고 있다. 2009년 레전드캐피탈의 21Cake 투자건을 맡아 진행했다.


국내시장 전망

먼저 식품업계의 PER 분석

식품업계는 특히나 낮은 PER을 갖고 있다. 주식레포트 분석에 의하면 2015년 높은 valuation으로 시장이 크게 혼란이 온 이후에 현재까지 valuation이 낮게 조정되어, 당기순이익에 비해 주가가 높게 형성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식품업계의 당기순이익

이익 = 매출 - 코스트
     = (판개개수 * 가격) - 코스트

음식료품 시장의 변수

긍정요소

  1. 대형마트의 쇠퇴
    대형마트는 위의 식품업계의 이익 = (판개개수 * 가격) - 코스트의 변수 중 가격코스트변수에 영향을 미친다.

    • 대형마트는 대금미납, 가격후려치기등 식료품업계의 교섭력이 낮은 판매 채널
      낮은 교섭력으로 판매가격이 낮고, 마진이 낮았다. 대형마트의 쇠퇴로 인한, 대형마트 채널의 약화는 가격교섭력 상승과 이에 따른 가격 마진율을 높여줄 전망
    • 대형마트에 무의미하게 들어가는 판촉비 감소
      사실 요즘은 대형마트에서 판촉에 홀려 물건을 사는 시대는 지났다. 하지만 대형마트에서는 판매채널의 유지 조건으로 판촉 행사를 가용했던 모양이다. 대형마트가 쇠퇴하면서 무의미하게 사용된 판촉 코스트 비용이 줄어들게 되었다.
가설: 대형마트 쇠퇴 -> 식료품업계의 이익률 상승?

대형마트 쇠퇴
-> 가격 교섭력이 낮은 채널의 감소
-> 가격 교섭력 증가
-> 판매 가격 증가
-> 매출 증가
-> 이익증가

대형마트 쇠퇴
-> 코스파가 낮은 판촉행사 실행x
-> 코스트 감소
-> 이익증가
  1.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채널의 수요 증가
    온라인 채널의 수요증가는 이익 = (판개개수 * 가격) - 코스트의 변수 중 판매개수 가격 코스트변수에 영향을 미친다.

    • 코로나로 실내생활이 증가하면서 식료품의 선택률 뿐만아니라 1인당 소비량도 증가
    • 대형마트에 납품과 비교해서 중간유통이 줄어듬으로 높은 가격설정 가능
    • 판매이외의 판촉비 등이 들지 않음
  2. HMR시장의 상승
    HMR 시장은 다음의 사회적인 요소로 인해 성장이 예상된다.

    • 1인가구의 증가
    • 밥 대충 한끼 떼우지뭐 문화의 확산: 예전같으면 집에서 최소한 해먹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전자렌지에 데우는 HMR요리로 한 끼 뚝딱
    • 개인 여가시간 중요성 증가로 인한 가사 노동시간 감소

부정요소

  1. 소비 양극화
    매우 싼거 아니면 매우 비싼 것 을 선호하는 사회적 현상에 따라, 식료품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낮게 형성될 가능성 높음. 이익 = (판개개수 * 가격) - 코스트의 변수 중 가격변수에 영향을 미친다.

국외시장 전망

기존 식료품업계는 해외 진출이라고 해봐야 중국이 전부였지만, 최근 2~3년 내 미국을 중심으로한 해외 매출이 증가하고 있음.

미국 식료품 시장에서의 외부 환경 요소 PEST분석

  • 1인가구 증가
  • 1년중 40%는 혼자 밥먹는 혼밥족 증가
  • 다문화 음식을 즐기는 문화 확산

미국 식료품 시장에서의 Client 사이드 분석

  • 다른 나라의 음식과 비교해 한식 자체의 높은 인지도와 차별성
  • 유통채널
    • 미국 식료품 기업의 M&A를 통해 기존 유통망, 생산기지 흡수
    • 아마존 입점
    • 코스트코 입점

결론

시장 내외의 전반적인 변수들이 식료품 시장의 단기 혹은 중기적 상승세를 이어갈 전망. 단, 소비양극화로 인한 소비재의 낮은 가격형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장기적으로 이익을 높일 수 있을지 의문. 국내 시장은 그럭저럭이므로, 국외 시장에서 높은 성장률에 따라 국내 식료품 기업들의 희비가 갈리지 않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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