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왜 행복을 원하는가?

  행복의 정의에 의하면 행복은 자기만족이다. (타인의 행복을 존중한 상태에서) 자기만족을 느낄 수 있는 모든 정신 상태를 포괄적으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샤워를 할 때의 만족감, 타인을 도와줌으로써 얻어지는 만족감,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의 만족감, 자신을 멋지게 치장했을 때의 만족감, 오락을 즐길 때의 만족감, 대자연을 느낄 때의 만족감, 지적 성취를 이루었을 때의 만족감 등 만족감의 원인이 되는 상위개념을 생각하면 그 가짓수가 셀 수 있을 정도로 압축되겠지만, 개개인은 모두 다른 개성을 지니기 때문에 피상적으로 우리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가짓수는 사람의 수만큼 많다고 보면 된다.(Q : 행복은 자기만족. 그렇다면 자기만족은 무엇인가? 자신의 존재가 인식될 때 자기만족을 이룰 수 있나?)  행복은 욕구의 만족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아래의 메커니즘과 같이 욕구가 만족될 시에 행복하며, 결핍될 때 불안/스트레스와 같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 들어선다. 한층 더 나아가서 욕구란,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존재 - 욕구 - 행복과 불행 이라는 인과관계를 따라가 봤을 때, 궁극적으로 우리가 행복을 원하는 이유는 '존재'다.(2016.8.31)





 

* 참고 : 행복의 정의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생각

http://blog.naver.com/da91love/220789181850



2.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 수 있을까?

 더 많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의 키워드는 '행복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행복의 정의」에서 논의한 대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의 내면이므로 내부와 외부에서의 자극을 어떻게 행복으로 느낄지는 모두 그것을 받아들이는 생각의 역할이다. 즉, 행복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개념으로 행복하게 되는 방법도 절대적이지 않으며, 단지 어떤 올바른 생각이나 행동들은 우리가 더 행복할 가능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행복은 욕구에 대한 만족의 결과물이다. 매번 욕구를 만족할 수 있다면 베스트지만, 우리네 삶은 원하는 욕구를 만족할 수 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더 많다. 아래의 방법들은 욕구 불만족의 결과가 자아 존재의 부정적 인식이나 불안, 스트레스로 이어지지 않토록 하는 인생의 현명한 방법들이다. 아래의 현명한 생각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데에 신은 어떠한 댓가도 요구하지 않는다. 나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생각의 방향을 살짝 비틈으로 인해 불행의 영역에서 행복의 영역으로 가는 다리를 이을 수 있다. 아래의 "공짜 생각들"은 당신에게 "공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공짜 도구"들이다. 그렇다면 아래의 생각들을 취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다만 불쌍한 자들은 그러한 방법을 모를 뿐이거나,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거나, 심지어는 알면서도 부정하고 싶을 뿐이다.




 

3. 욕구가 만족 되지 않을때, 행복할 가능성을 높여주는 생각들


ⅰ. 긍정과 감사

 내면의 긍정은 합리화와 동의어일지도 모르겠다. 긍정화는 이미 벌어진 불행한 일에 대하여, 이미 벌어진 일이므로 생각의 전환에 의하여 불행을 상대적 행복으로 바꾸려는 시도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어떤 사람은 이미 발생한 교통사고에 대하여 분노하고 아파할 수도 있지만, 더 큰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긍정화하면 사고가 발생하고 자신이 피해를 본 것은 동일한 상황임에도 어느 누구는 스트레스만 받을 수도 어느 누구는 안도감에 따른 상대적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다. 긍정의 힘은 특히 인간을 성장시키는데 효과가 크다.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투덜거림에 불과했던 사건 속에서도 배울점을 찾으므로써 성장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긍정적이지 않은 삶은 사람에게 매시간시간은 낭비일 뿐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매시간은 배움의 장이자 만족의 연속이다. 상사나 선배가 힘든 청소를 시켰다고 가정해보자. 부정적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정말 하기 싫다. 내가 이걸 왜해야 하지?" 이 생각을 한 이상 이 사람에게 청소하는 시간은 그저 배울것 하나 없는 낭비의 시간일 뿐이다. 자신의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부정은 불만과 연결되고 불만할 수록 감사와는 점점멀어져 행복한 삶을 찾기도 어려워진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음, 시키는데는 이유가 있겠지? 나는 청소를 하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이 사람에게 청소하는 시간은 , 설령 그 시간이 정말 무의미한 행동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만큼은 그 시간은 값진 시간이다. 함든 시간 속에서 있는 자신을 긍정하게 하는 법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에 청소를 배움으로써 인생의 부족한 부분을 하나하나 채워나가고 있다. 즉, 긍정하면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행복과 배움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

 감사도 긍정의 일종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긍정함으로써 불행을 상대적 행복으로 전환할 수 있는 생각의 힘이다. 


+ 긍정적 비관주의

 긍정적 비관주의란 단어는 상당히 모순되어 보인다. 긍적적이라는 의미와 비관적이라는 의미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나는 "긍정"이라는 단어와 그 반대 의미인 "부정"이라는 단어에는 현시점을 부여하고, "비관"라는 단어와 그 반대 의미인 "낙관"이라는 단어에는 미래시점을 부여했다. 그렇다면, 긍적적 비관주의란 더 이상 모순되는 단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현재는 긍정적으로 보되, 미래는 비관적으로 보자는 것이 긍정적 비관주의 이다. 

 긍정적 비관주의의 장점은 명확하다. 내가 속한 현재는 긍정하되, 다가오지 않은 미래는 반드시 밝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여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힘을 잃지 않게 해준다.



ⅱ.  불행 (불행은 행복과 반대일까?)

 행복은 행복감을 느끼는 감정의 상태일 뿐이며 일시적이다. 행복은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행복감을 통해서 무언가를 더 배우려는 노력에 까지 이르기는 힘들며 행복의 잔여물은 행복감을 통한 짜릿한 일회적 기억 그 뿐이다. 그러나 불행은 불행을 분석하고 긍정화하려고 노력 가운데, 그 노력 속에서 태어난 가치가 지속적이다.  

 세상 만사를 행복한 일과 불행한 일로 이분화해보자면, 세상에는 행복한 일보다 불행한 일이 더 많다. 세상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에게 하기 싫은 문제를 던져준다. 문제를 받아들이고 해결하는 과정이 인생이다. 따라서, 행복보다 더 빈번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려는 인지적 노력은 그러한 일련의 노력으로 한 인간의 인생이 의미가 결정된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불행을 상대적 행복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간단하다. 먼저 불행을 긍정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불행을 저주하는 마음 속에서는 불행을 객관적으로 직시할 수 있는 생각이 발현되지 않는다. 불행을 긍정화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면 다음은 불행을 "왜"에 기초하여 분석해보자. "왜" 이 사건이 나에게 불행한 느낌을 주는 것인지, "왜" 이사건이 발생했는지. 그리고서는 분석된 불행을 다시 한 번 정리하게 되면, 다음에는 이러한 불행이 나에게 찾아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클 뿐만 아니라, 설령 그러한 불행과 재회하였다 하더라도 이전보다 더 능숙한 자세로 불행을 상대적 행복으로 긍정화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이것이 성장이며, 성장은 내가 행복할 가능성을 더 높여준다.


ⅲ. 성장 ; 성장이란 무엇일까?

 위에서 언급한대로 인생은 평탄한 포장길이 아니다. 바닥에는 작은 조약돌부터 한번에 지나가기 힘든 바위까지 많은 시련과 고난이 깔려있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이 바닥을 건너간다. 미숙한 시기에 우리는 바퀴가 조그만 세발자전거를 타고 울퉁불퉁한 길을 건넌다고 상상할 수 있다. 바퀴가 작아 작은 돌맹이를 넘어가는 대도 자전거 전체가 크게 흔들린다. 성장이라는 과정은 바퀴의 크기가 점점 커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장을 거듭할 수록 바퀴의 크기도 커져, 이전에는 넘기힘들던 조그만한 돌맹이따위는 이제 쉽게 넘어간다. 즉, 나에게 주어진 문제를 간단히 해결하여 불행을 행복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성장은 우리가 행복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작은 고난에 쉽게 동요되지 않도록 도와준다.


  ①인간에게 공부가 필요한 이유: 성장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이 물음에 대하여, 공부를 인생에서 배우게 되는 모든 것이라고 포괄적으로 정의하면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가 성장을 통한 행복성취와 너무 쉽게 맞물리므로, 더 이상의 분석이 필요없게 된다. 따라서, 공부를 좁은 의미에서의 공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분석보고자 한다. 즉, 청소년기에 학교를 다니면서 주로 사회분위기에 위한 강압으로 공부를 하게되는 데 나는 이때의 공부라는 것을 왜 해야하는 것에 대한 답을 적고자한다. 좁은 의미의 공부란 단지 '지식 습득'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의 학생이 배우는 공부 -경제,법,화학,물리 등- 은 인간의 생존과 직접적이지 않은 것같은 방향으로 멀리 돌아와버렸지만, 사실 지식이 이렇게 복잡해지기 전 지식의 근원을 따져보면 그것은 매우 생존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다는 것을 알수 있다.  

 초기의 지식은 다음과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쉽게 피하는 법, 동물을 효과적으로 사냥할 수 있는 날카로운 돌을 만드는 법, 곡식을 저장하는 법, 아픈 발을 보호하는 법, 불을 만드는 법 등의 지식은 자신을 보호하고 후대를 남기기 위한 생존 노하우의 축적이었다. 그 이후 작물화와 가축화를 통해 원시 시회에서 현대의 사회라고 불릴만한 공동체가 등장한 이후에는 복잡한 사회와 더불어 지식도 한층 복잡해졌을 것이다. 게다가 잉여 생산물을 통해 지식만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사람들이 증가하여 지식의 다양성과 복잡성은 더욱 빨라졌을 것이다. 가령 과거에는 동물을 효과적으로 사냥하기 위한 방법으로 동물의 어느 부분이 약점이다, 어떻게 도망간다를 기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냥을 했다고 하면, 발전된 사회에서는 동물의 생태학적, 동물학적 성질을 바탕으로 복잡한 물리학이 적용된 무기를 사용했다. 과거에는 한 마리의 동물을 잡아 눈대중으로 사회구성원에게 식량분배를 했다면, 발전된 사회에서는 경제학을 기초로하여 사회의 효용을 최대로 하는 자원분배를 하려고 노력했다. 이처럼 인간의 진화, 사회의 발전에 따라 단순했던 지식은 현대와 같은 다양성과 복잡성을 갖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현대의 복잡한 학문들은 (그 연관성을 쉽게 눈치챌 수 없지만) 과거 선조들의 생존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생존법들의 축적의 결과물이다. 행복은 인간의 생각이라는 내부성을 통해 직접적으로 실현되지만, 생존법이란 외부성은 행복할 확률을 높여주는 유용한 도구이다. 즉, 지식 축적이라는 것은 생존법 축적을 통한 성장으로 생각할 수 있고, 성장은 우리가 행복할 확률을 높여줄 수 있다.




ⅳ. 사물,인간,장소의 관찰

같은 것을 보고 얼마만큼 감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풍요와 빈곤이 나뉩니다. 그러니까 삶 의 풍요는 감상의 폭이지요. 이철수의 한 문장을 읽고나서는 열매를그냥 못지나칩니다. 삶에 변 화가 생기는 겁니다. 옛날에는 1 킬로미터를 걸어가면서 아무것도 안 보 였는데, 지금은 베인 나뭇잎, 날아가는 새 반짝이는 빗방울이 다 아름답습니다. 제가죽을때 떠오르는 장면은 프레 젠테이션 석상에서 박수 받는 순간이 아닐 겁니다. 아마 어느 햇살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어느 나뭇잎이 떠오를 것 같고, 어느 달빛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혹은 어떤 대화 표정, 그런 것들이 많이 축적되어 있으면 풍요롭게 살다 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 박웅현 도끼中


-> 레이더의 단계

1. 오감(시각,촉각,청각,미각,후각)을 활용하기

2. 5W1H로 보기

3. 말로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하나하나를 매우 구체적으로 보고, 듣고, 만져보기




ⅴ. 현실에 충실하기

이게 바로 말씀드린 개처럼 살자입니다. 지금 꼬리치면 꼬리를 치고 밥을 먹으면 밥만 먹고, 잠을 자면 잠만 자야지. 잠을 자면서 아까 꼬리 치던 생각을 하거나 밥 먹을 궁리를 하지 말라는 것이죠. 같은 맥락으로 톨스토이 인터뷰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대학시절 읽고 나 서 요즘 강의할 때 자주 언급하곤 하죠. 기자가 "지금 당신한테 가장 중 요한 일과 가장 중요한 사람을 얘기헤주세요"라고 톨스토이에게 물었 답니다. 그러 자 답하길.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당신이고, 가장 중 요한 일은 이 인터뷰다"라고 했습니다. 찾아보면 사방에서 뭔가 배울 만 한게있다고 하는사람들은 다 같은 얘기를 하는 것 같지 않나요? 현재 에 집중하라는. 순간을 사랑할줄아는 조르바는 이런말도 합니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 있게 붙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일하고 있네."잘해보세..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하는가?"·여자에 게 키스하고 있네."조르바.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 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 고민을 하든 일을 하든 공부를 하든 놀든 그 무엇을 하든 지금 당장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기



운명론적 사고




ⅵ. 선행의 환원



1. 「자기분석이란 무엇인가」 - 의문 발생의 배경

 취업시즌을 맞이하는 대학생들은 자기분석이란 단어에서 벗어나고자 해도 벗어날 수 없다. 각 기업에서는 엔트리시트에 자기분석을 기초로한 질문들을 쏟아낸다. 이러한 추세때문에 자기분석 서비스를 전문으로 제공하는 회사까지 설립되고 각 대학에서도 취업을 대비해 자기분석 강좌를 개설하는 한편 그 자기분석 분야의 전문가까지 생겨날 정도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 자신이 좋아하는 것 혹은 싫어하는 것, 자신의 성향 등등의 지표를 제시하면서 "이것이 자기분석" 이라고 주장하며, 학생들에게 그 항목들을 생각해 볼 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 자기분석의 의미를 정의내리지 못하고, 회사가 자신에게 자기분석을 요구하는 핵심적인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면  그것은 진실된 자기분석이 아니라 그저 생각의 쥐어짜기와 암기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분석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왜 생각해 보아야할만한 것일까? 또 회사에서 지원자에게 자기분석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 자기분석이란?

 먼저 다양한 나의 철학적인 질문들이 다음과 같은 전제 하에서 그 해답에 대한 실마리가 잡히기 시작했듯이, 나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자기만족 = 행복" 이라고 전제하고 자기분석에 대한 개인적인 의미를 정의하고자 한다. (참고로, 많은 철학자들이 무엇이 행복인지에 대한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개인에게 자유롭게 맡겼지만, 삶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주장만큼은 대부분 동의했다. 만약, 삶의 궁극적 목적을 스스로 정의하지 못한 사람이나 그것이 행복이 아닌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이상 이 글을 읽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자기분석도 결국 행복을 위한 행위로 인식하면, 자기분석이란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그렇지 않은지"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이때 "무엇"이란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세속적인 것부터 근본적인 것까지, 일차원적인 것부터 고차원적인 것까지 모든 것을 포함하는 말이다. 인간이 삶을 살아가며 발생한다고 상정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무엇"에 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물을 좋아하는지, 명예가 좋은지 돈이 좋은지, 수학이 좋은지 싫은지, 어떤 이성이 좋은지 싫은지 등 가치판단이 가능한 모든 질문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자기분석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기까지에 머무른다면, 종이에 프린터된 여러 항목을 제시하고 자신이 맞는 항목에 체크하여 "이것이 당신의 자기분석입니다" 라고 알려주는 자기분석제공 서비스 회사와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콜라보다 사이다를 좋아하는구나’ 라는 사실을 찾아낸 것이 자기분석이 끝이 아니다.

 진정한 자기분석의 필요는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해답에 "왜"라는 물음을 붙이므로써 존재이유가 생긴다. 즉, 행복을 전제 하에 1차적으로 단순히 정의한 자기분석에 왜라는 질문을 더하여 재정의하면, 


자기분석이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과 행복하게 하지 않는 요소들에 스스로 납득할만한 원인을 붙여나가는 과정」


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내가 콜라보다 사이다를 더 좋아한다면 왜 그런지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성장환경과 무의식 속에 녹아있던 자기 자신을 더욱 뚜렷히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두껍게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먼지 안에 있는 보물을 찾아내는 것과 비슷한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다. 분위기 있는 식당보다 시끌벅적한 시장에서 먹는 식사가 더 좋다는 사실의, 자만하는 것보다 겸손한 것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 하이힐보다 단화가 더 좋다는 사실, 친절한 것이 더 좋다는 사실  원인을 분석하는 것으로 스스로도 잘 알지 못했던 감춰진 우리의 모습이 더 선명히 드러난다.


3. 자기분석은 왜 중요한가?- 회사에서 지원자에게 자기분석을 요구하는 이유

 자기분석의 해답을 행복을 전제로하여 생각해내었으므로, 결국 자기분석은 자신의 행복을 위한 분석이었다. 즉, 자기분석을 통해 자신의 진면모를 확인하고 자신이 어떤 것을 할때 행복한 인간인지 스스로 어느정도 판단할 수 있다. 또한, 자기분석은 어떤 선택의 기준이 외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더욱 의존하게 하기 때문에 더욱 주체적인 선택을 하게 해준다. 납득을 위해, 자기분석이 진행되어 있지 않은 사람A와 자기분석이 어느정도 진행되어 있는 사람 B를 가정하고 상황을 예측해본다. 자기분석이 진행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아직 먼지 속에 묻힌 스스로의 모습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선택이 개인적의 소신보다는 사회적 소문이나 타인의 의견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클 것이다. 반대로, 자기분석이 진행되어 있는 사람은 외부적인 소음(외부적인 소음과 수용할만한 가치가 있는 충고를 구분한다)을 완벽히 차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중심이 되어 선택을하는 경향이 클 것이다.

 안타깝게도 회사에서 지원자에게 자기분석을 요구하는 이유는 전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장기적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회사의 입장에서 개개인의 지원자에게 더 큰 행복을 주기위해 자기분석과 관련된 이런저런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단지 주체적인 인재를 원할 뿐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선동하기 쉬운 사람은 부리기 쉽다는 장점이 있으나 그로인한 효과는 단기적이다. 주체적인 인재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회사의 이윤을 과감히 포기할 가능성이 있으나 그들을 잘 요리하기만 한다면, 혁신을 이루어낼 가능성이 더 높다.


4. 가치관과 자기분석의 관계

 자신의 가치관을 세우는 것은 자기분석을 통해 얻은 스스로에 대한 자료를 기초로 한다. 가령 위의 예를 다시 빌리면, 자기분석이 두껍게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먼지 안에 있는 보물을 찾아내는 과정이라면 가치관은 그 보물을 어떻게 사용할지 정하는 과정이다. 먼지 안의 보물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쓰이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질투
 

 

1. 질투의 원인

불안 ; 사랑하는 사람의 연인이란 위치에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그 자리를 뺏길 것만 같은 심리 상태.


2. 불안의 원인

상대가 나를 떠나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는 것이 왜 불안한가?

상대가 내 곁을 떠나 혼자가 되는 것이 왜 불안한가?


불안의 원인을 파악해보도록 하자.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의해 좌우된다. 사람들이 우리 농담에 즐거워하면, 우리는 나에게 남을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을 갖게 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면, 나에게 큰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방에 들어갔을 때 눈길을 피하거나 직업을 밝혔을 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수도 있다.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이런식으로 남들의 반응에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시를 당하든 주목을 받든, 칭찬을 받든 조롱을 당하든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누가 엉터리로 우리를 칭찬하는 소리에 귀가 솔깃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여, 다른사람이 우리가 못났다고 넌지시 암시한다 해도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아주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내가 똑똑하다는 중거를 댈 수 있고 바보라는 증거도 댈 수 있으며, 익살맞다는 증거도 댈 수 있고 따분하다는 증거도 댈 수 있으며, 중요한 인물이라는 증거도 댈 수 있고 있으나마나 한 존재라는 증거도 댈 수 있다. 이렇게 흔들린다면 사회의 태도가 우리의 의미를 결정하기 마련이다. 무시를 당하면 속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고개를 쳐들며, 미소나 칭찬과 마주치면 어느새 역전이 이루어진다. 혹시 남의 애정 덕분에 우리 자신을 견디고 사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주어야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없다. 남의 관심때문에 기운이 나고 무시때문에 상처받는 자신을 보면,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어디있나 싶어 정신이 번쩍들기도 한다. 동료 한 사람이 인사를 건성으로 하기만해도, 연락을 했는데 아무런 답이 없기만해도 우리의 기분은 시커멓게 멍들어버린다. 누가 우리 이름을 기억해주고 과일 바구니라도 보내주면 갑자기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환희에 젖는다. -  알랭드 보통 '불안' 中에서(이레출판사 p 21~22)


 알랭드 보통의 또 다른 저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의하면, 우리의 자아는 아메바와 같다. 어떠한 형태를 지니기는 하지만, 상대가 어떠한 틀을 씌워주는 냐에 따라 그 모양이 변한다. 우리의 자아가 타인에 의해 규정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 외에 여기서 다른 중요한 점은 나에게 틀을 씌워주는 상대가 누구냐인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유난히 확신이 없는 사람은 그 대상이 지나가는 행인의 말 한마디 일 수도 있고, 꾀나 찐득찐득한 아메바를 지닌 사람이라면 자신이 선택한 몇 몇 사람에 의해서만 틀이 씌워질 수도 있다. 스스로는 나에게 틀을 씌우는 사람을 선택할 수 없다. 그 선택권은 오로지 자신의 가치를 아는 내안의 또다른 나에게만 주어져 있다. 즉, 내 안의 내가 스스로를 더 능숙히 규정할 수 있다면 선택의 힘도 더욱 강해진다. 

 그러나, 신은 인간이 스스로를 완전히 알 수 있도록 만들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완전히 규정할 수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은 존재해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규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때문에 불안이며 사랑 혹은 질투가 존재한다. 스스로의 존재의 불투명성에서 사랑이라는 꽃이 피어나는 미스터리인 것이다. 인류 모두가 자신을 완전히 규정할 수 있다면, 관심도 사랑도 존재 하지 않을 것이다.


 불안의 원인은 내 스스로가 나를 규정할 수 없기에, 타인의 관심과 사랑으로부터 나의 존재를 규정하고 싶은 마음에서 생겨난다. 상대가 없다면 나를 규정해줄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나를 규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나의 존재는 확신받지 못한다. 


3. 질투란?

나의 존재가 상대로부터 규정된다고 믿는 만큼 상대를 믿고 사랑하는 것.

1. 의견과 인정


ⅰ. 단어 정의

의견 : 어떤 대상이나 일에 대해 가지는 생각

인정 : 원인과 결과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

이해 : 상대의 상황이나 감정 상태등의 종합적 판단을 기초로 근거한 위에, 상대의 입장의 되어 공감하는 것(사전적 정의가 아닌 필자의 주관적이 정의임)


ⅱ. 의견과 인정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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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취향과 존중


ⅰ. 취향과 존중

취향 :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더 이상의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없는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자연발생적" 인 선호

존중 : 높이어 귀중하게 대함


ⅱ. 취향과 존중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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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반론

-어디까지를 취향으로, 어디까지를 의견으로 보아야하는지 애매하다.



평생을 다른 곳에서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사람들과 살아온 두 사람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서로의 공통된 부분에 대해 운명론적 의미를 두는 한편 서로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실망을 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보자면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서로 다른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둘 이유가 없다. 다른 것을 당연화하는 것이 맞다. 때문에 같은 점을 발견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기적적인 일이며 사소한 것에도 운명을 느껴야 한다.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나와 인연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가능했지만, 하필 당신이란 사람이 나의 상대가 된것 자체가 크나큰 인연이다.. 그리고 시간만이  그 운명을 증명할 수 있다.


서로 부딫혀 부서져 가는 것은 너무 상처만 남는다.

서로의 다른 굴곡을 그대로 두고 그 굴곡을 이해라는 진으로만 채우기에는 정신적으로 힘들다.

그나마 가장 나은 방법은 다른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부딫혀가며 진으로 그 사이를 매꾸는 것.


연리지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마치 하나가 되는 동안,

표피가 부서지기도 하는 동시에

송진을 뿜어 부서진 상처를 치료해주기도 하고, 부딫히기 전에 진으로 막기도 한다.

 

서로 맞춰가는 것

이해하는 것

쓸데없는 것 

심플한 것

복잡한 것.



한 사람의 입장에서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쓸데없다고 평가하는 것은 오만한 짓이다.

내가 생각치도 못한 상대의 입장에서 어떠한 행동이나 말을 하였을 수도 있다.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은 쓸데없는 것이 없다.

1.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전개

인간의 궁극적 삶의 목적은 행복이다라고 줄곧 외쳐왔다.

그러던 나는, 인간이 영위해야할 최종적 목적이 행복이라면,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모르고서는 진정한 행복이란 있을 수 없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모두가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가슴 속에서, 오로지 그 속에서만 느껴질 수 있는 무엇인가를 언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그 때 친하게 지내던 이모님 말씀이 머리에 스쳐갔다. 


 "하고싶은거 하면서 살어. 인생 그냥 자기 만족이야."


만족하면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사고가 수정되었다.

만족하면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은 행복 그 자체이다.

 

자기만족 = 행복 

 

두 단어 사이의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단어는 동의어다. 

 

2. 생각의 전개에 대한 반론

ⅰ.어떻게 하면 자기 만족을 할 것인가?

 누군가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외부적 내부적인 방법이 있지만, 결국 외부적인 원인도 내부적인 원인으로 형태가 바뀌어 자기만족을 취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애인에게 선물을 받아서 행복하다는 어느 남자가 있다고 할 때, 사실 그 남자가 행복한 이유는 선물자체의 이유가 아니라, 선물을 받은 것이 나의 기분을 좋게했기 때문에 행복해 진 것이다(기쁜 이유 :  상대로부터 나의 존재감 인정, 그 선물을 이용해 나의 만족을 느낄 것을 상상). 반대로 누가 봐도 귀한 선물을 받아도 선물을 받는 그의 마음이 편치않다면그는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자기만족에 직접적인 자극을 주는 것은 내부성이라는 단일적인 원인이다. 행복은 외부의 자극보다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외부적인 자극은 전혀 무의미한 것인가. 아니다. 외부적인 자극이 자기 만족까지 실현되는 매커니즘에서 외부적인 자극은 시작이고 내부적인 자극은 끝이다. 시작이 없으면 끝도 없다. 나를 위해서 외부적인 자극을 시작해준 외재적 존재에게 감사해야하는 이유이다.

 

① <외부적 자극이 없을 경우>  


 (시작 -내부적 자극)     ---->    (끝 -내부적 자극)     ---->    (자기만족실현 =행복)

예) 외로움이 더이상 외롭지 않은 내가 대견스러웠다.


② <외부적 자극이 있을 경우>  



(시작 -외부적 자극)     ---->    (끝 -내부적 자극)     ---->    (자기만족실현 =행복)

예)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 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노을지는 풍경을 보고 그 풍경에 녹아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정리하면, 행복=자기만족의 메커니즘은 그 시작이 내부적이든 외부적이든 결과는 내부적 자극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①과 ②의 예를 고민하면서 느낀 점은 (특히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부족한 사람은) 내부적 자극으로 시작되는 자기만족은 외부적자극으로 시작되는 자기만족보다 현저하게 그 수가 적다는 것이다. 즉, 외부적 자극은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더욱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며 자기만족의 시작점에 있다는 점에서 내부적 자극만큼이나 중요하다.

 

시작이 어떠한 자극이든 내부적 자극이 어떻게 징검다리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외부적 자극도 자기만족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자기만족을 더 많이 느끼기 위한 긍정적인 내부적 자극은 어떠한 형태인가. 가장 간단한 내부적 자극의 형태는 긍정이다. 긍정은 우리를 손쉽게 만족하게 할 뿐만 아니라,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요인들' 포스트참고)

 

3. 반론

ⅰ.자기만족은 올바른 방향성이 존재하는가?

타인의 만족도 자신의 것만큼 중요하므로, 타인의 만족을 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기 만족 실현이 이루어져야한다. 타인 뿐만 아니라 자기도 만족할 수 있는 것은 가장 높은 수준의 인간 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 부처의 칠시가 모두의 행복을 위한 생활 속의 간단한 가르침이다.


ⅱ. 자기만족과 행복은 필요충분조건인가?

오로지 자기만족만이 행복인가. 다른 어떤 감정이나 생각도 행복으로 이어 질 수는 없는가? 지금 까지의 생각으론 그렇다. 자기 만족과 행복은 필요충분 조건이다.

 

ⅲ. 왜 자기만족은 사람마다 다른가?

환경에 적응해온 생활권의 결과인 문화권 또 자라온 환경 또 선천적인 요인들까지 개인에 행복 기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하다. 행복한 사회를 위한 교육의 역할은 균일적인 행복의 기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 긍정하고, 타인의 행복을 위해 존중할 줄 아는 것 이 두가지만 가르치면 된다.

1. 여행의 준비단계 : 마음가짐

 어떤 것을 배운다거나 깨닿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에는 그로인한 부담감으로 여행이 퇴색될까 두렵다. 여행의 준비물은 설레임으로 충분하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그저 그렇게 일상에서 벗어난 것들을 보고 느끼다보면 어느새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짜증내는 상황에서 짜증을 내지 않는 다거나 복잡한 일들을 척척해내는 나를 보며 성장한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하고, 이번 유럽여행과 같은 경우에서 처럼 한국 일본과는 너무나 다른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라이프 스타일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생각치도 않게 만나게 되는 좋은 사람들에게 좋을 말들을 듣기도 한다. 이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2. 제한된 시간과 여행

 앞으로 내가 마음껏 하고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될까. 대학교 졸업전 까지 딱 그때 까지일 가능성이 크다. 취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서 알겠지만 막상 취업을 하면 야근에 일에 현실적인 면을 고려하느라 여행은 먼나라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른다. 대학 생활 때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경험하려고 노력한다면 지금은 역시나 무엇일지 모르지만 나의 생각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고 나의 인생을 바꿀 "좋은 것"들이 나를 찾아 올 것이다.


3. 향략여행과 고생여행

 유럽여행과 같은 타문화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경험하는 여행이 동남아 여행같은 향락여행과 다른 이유는 전자의 경우 1번과 같은 배울 점이 있기 때문이다. 배움이 있는 여행과 향락여행을 이분화 하는 것은 아니지만 향략여행은 몸이 편한 여행이기 때문에 그저 놀다오면 되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배우고 느낄 기회가 배움이 있는 여행에 비해서 적다. 예를 들어 티벳에 여행을 간 것과 발리로 여행을 간 것을 생각해보자. 실제로 겪은 일이 아닌 가정에 불과하지만 티벳 여행은 몸이 편하기 보다는 힘들 것이다. 위생이나 치안도 위험하고 먹을거리 입을거리도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던 것과 다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롭다. 인간을 성장시키는 것은 행복한 감정보다는 고통의 감정이다. 왜 고통을 느꼈는지 분석하는데에서 큰 성장을 이룬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고생이 예상되는 곳의 여행은 고생만큼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발리 여행을 생각하본다면. 발리같은 유명 관광지는 모든 편의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주변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관광지의 특성상 돈만 있다면 내가 사는 곳보다 더 높은 수준의 여가와 즐거움을 즐길 수 있다. 즐거움과 행복은 누리는 순간 만큼은 달콤한 것이지만 그것으로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4. 여행과 일상의 대립성

 우리는 일상에서 산다. 일상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준다. 안정감은 우리에게 기존에 자신의 해오던 것 이상의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한다. (이는 안정감이 우리의 인생에 줄 수 있는 큰 장점인데, 항상 긴장을 유지해야하는 여행은 기본적으로 소모되는 에너지가 많기때문에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에너지를 허락하지 않는다)그러나 일상에서는 배움을 찾고자했던 날카로운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대학생이다. 학교를 다닌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듣고 같은 학교의 학생들을 만나서 이야기한다. 수업은 들으면 그만이고 학생들과의 관계에서도 큰 위기를 찾기는 어렵다. 인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숱한 것들이 내 옆을 지나가도 틀에박힌 일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들을 놓쳐버리기 쉽다.(가령, 구걸을 하는 사람을 보고 의문을 갖고 스스로에게 답을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어떤 가르침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거지가 구걸하는 모습은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여행은 내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부터의 장소적 탈출이다. 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지나며,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발을 딛고 서며,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먹는 중에 머릿속은 호기심으로 분주하다. 왜 이런 음식을 먹으며, 왜 이런 장소가 탄생한 것이며, 왜 이런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게 된것이며, 왜 이런 문화 속에 살고있는 것인지 너무 궁금하다. 또 그런 생각들은 새로운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신의 가치관과 연관된 질문이나 인간 심리의 핵심적인 부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새로운 곳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이의 여행은 에너지낭비와 시간낭비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이에 니체의 말들을 이용해보고 싶다.


1.니체는 진정한 과제는 "삶"을 고양하기 위해서 사실들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괴테의 문장을 이용했다. "나는 나의 활동에 보탬이 되거나 직접적으로 활력을 부여하지 않고 단순히 나를 가르치기만 하는 모든 것을 싫어한다.


 

 

2.니체는 "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 하찮고 일상적인 경험- 을 잘 관리함으러써 그것을 경작 가능한 땅으로 만들어 1년에 세 번 열매를 맺게 한다. 반면 어떤 사람들 - 그 숫자는 얼마나 많은지!- 은 운명의 솟구치는 파도에 휩쓸리거나 시대와 나라가 만들어내는 혼란스러운 물줄기 속으로 말려들어가면서도 늘 그 위에 코르크처럼 까닥거리며 떠있다. 이런 것을 관찰하다보면, 우리는 결국 인류를 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 즉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소수(극소수), 와 많은 것을 가지고 적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다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고 말했다.


-알랭드보통, 여행의 기술中


 이러한 여행의 특성을 일상 속에서도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책읽기와 공부이다. 이들은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과 마주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생각의 영역 정립 그리고 통념에 묻혔던 생각들의 재정립하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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