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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P広告とは?仕組み・課金・選定・国内主要サービス5社をご紹介!

2019/04/29
DSP広告とは?仕組み・課金・選定・国内主要サービス5社をご紹介!

Web広告を利用している企業様なら「広告費をできるだけ抑えながら、自社サイトへのトラフィックは大ボリュームを確保したい」と考え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しかし、広告枠を提供する媒体側は「できるだけ高く広告枠を売りたい」と、広告主の思惑とは正反対の考えを持っているはずです。

これら双方の意見を汲んで、ちょうど良いバランスで広告費が決まるのがDSP広告です。
今回は、DSP広告の仕組みや課金方法などをご紹介しながら、国内の主要なDSP広告サービス5社を比較していきます。

1.DSP広告とは?

DSP広告とは、DSP(Demand Side Platform)を通じて配信されるディスプレイ広告を指します。
広告主が狙いたい属性のターゲットユーザーに対して、リアルタイムに広告枠の入札が行えるという特長があります。
以下でもう少し詳しく見ていきましょう。

基本的な仕組み

まず、前提として、複数のDSPがあり、それぞれに利用企業(広告主)が複数ぶらさがっています。

DSP広告とは

ユーザーが広告枠のついたページを訪問すると、ユーザー属性などの情報が媒体側のSSP(Supply Side Platform)というツールに通知されます(各DSPは提携している複数媒体のSSPと接続しています)。

次に、SSPが各DSPに、ユーザー属性情報を送るとともに入札要請を行います。
入札要請を受けたDSPは、SSPから受け取ったユーザー属性情報と、広告主側の出稿条件(ターゲット属性)を照合し、条件の合った広告主の間で入札を行います。

入札結果はDSPごとに集計されて、SSPへ送られます。
SSPは、すべてのDSPの入札結果の中から一番高額な値段をつけた広告主の広告を選定(落札)し、掲載します。

以上の一連の流れをRTB(Real Time Bidding)といい、これらが一瞬(0.1秒以内)にして自動的に行われるのがDSP広告です。

DSPとは

上でもご紹介しましたが、DSPとは、Demand Side Platform(デマンド・サイド・プラットフォーム)の略で、DSP広告の仕組みのなかで広告主側のプラットフォーム(ツール)を指します。

DMPとは

DMPとは、Data Management Platform(データ・マネジメント・プラットフォーム)の略で、ユーザーの個人を特定できないかたちで、「年齢、性別、居住地、家族構成、職業」といったデモグラフィックデータ(人口統計学的なデータ)や、「価値観、ライフスタイル、趣味」といったサイコグラフィックデータ(心理学的なデータ)を収集・管理・活用するためのツールです。

DMPサービスは、幅広く広告を出したいときや、Google広告などではセグメントできない層に出稿したい場合に活用できます。

DSP広告では、各DSPが持つオリジナルのDMPを利用してインプレッションのあったユーザーの属性を分析し、広告主側の出稿条件と照らし合わせます。

SSPとは

SSPとは、Supply Side Platform(サプライ・サイド・プラットフォーム)の略で基本的な仕組み(上部該当箇所にアンカーリンク)でもご紹介したように、DSP広告において媒体側のプラットフォーム(ツール)を指します。

2.メリット・デメリット

DSP広告のメリットとデメリットを、それぞれご紹介します。

メリット

「面」ではなく「人」にアプローチできる

DSP広告のメリットの一つ目は、ターゲットユーザーにピンポイントでフォーカスしてアプローチできるという点です。
これは、特定のターゲットにフォーカスせず、とにかく幅広い層(面)に配信するという「アドネットワーク」とは真逆の出稿形態だといえます。

類似ユーザーにも出稿が可能

DSPのなかには「類似ユーザー機能」がついているものもあります。
この機能を活用すれば、インプレッションしたユーザーと類似した属性・興味関心を持つユーザーをターゲットとして設定できるため、狙ったターゲット像を核としながら出稿の幅を広げることが可能です。

広告効果が最適化される

DSP広告は、DSP、SSPそれぞれが持つユーザーの行動履歴などの膨大なデータをもとに、自動的に一瞬で広告の最適化と費用対効果を上げる仕組みであるため、DSP広告を利用するだけで広告効果が最適化されます。

デメリット

一方、DSP広告には、デメリットもあります。

初期費用と最低利用金額が高額

リスティング広告やSNS広告など、代理店に依頼する場合でも初期費用なしでスタートできるWeb広告があるなかで、DSP広告にはほとんどのケースでDSPサービスに支払う初期費用がかかります。
また、「最低契約期間」が設けられているサービスもあります。

サービスごとの独自性を理解する必要がある

DSP広告のサービスはたくさんあり、その中からどれを選んで利用するかを決める際には、サービスごとの特徴を理解したうえで検討する必要があります。
各サービスが提携している配信先、ユーザー情報の根拠となるデータや選定に利用しているアルゴリズムなども異なります。
たくさんのサービスを比較検討して自社に最適なサービスを選定するのはなかなか骨の折れる作業です。

広告の配信先が不透明

利用するDSP広告サービスによって、掲載先が開示されるものとそうでないものがあります。
開示されないサービスだと、いつ、どの媒体で広告が掲載されたかが不明なまま利用を続けることにな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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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모델의 혁신

자유여행 투어의 결합이라는 가치창조

서비스 공급(가이드)을 먼저 공략

플랫폼 사업은 이용자와 컨텐트를 충분히 모은 후 특이점이 지나면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그렇게 모은 데이터는 절대적인 진입장벽이 된다.




DBR Case Study: ‘마이리얼트립’의 플랫폼 전략

“짜증나는 강제 쇼핑 패키지여행 그만”
고객-가이드 직접 연결해 ‘여행 작품’ 만들다

Article at a Glance

가이드와 여행객을 중개하는 온라인 플랫폼 ‘마이리얼트립(My Real Trip)’이 경쟁이 치열한 여행 업계에서 지난해 한 해 동안 가입자 80만 명을 모으며 급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1. 복잡했던 여행상품의 유통 구조를 가이드-여행객으로 단순화하고 거래구조를 투명화해 가격 거품을 없애고 쇼핑 등 불필요한 여행 옵션을 제거했다.
2. 플랫폼 전면에 내세운 가이드들이 다양하고 독특한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여행지에서 독특한 체험을 원하는 자유여행객의 니즈를 충족했다.
3. 티켓·숙박·항공권으로 서비스를 확대해 여행 종합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구창원(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여행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2013년 1485만 명이었던 해외 출국자 수는 2015년 1931만 명, 2017년 2650만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 기간 해외여행 지출액도 23조2000억 원에서 25조4000억 원, 29조5000억 원으로 크게 뛰었다. 한 번 갔던 곳을 또 찾는 여행객이 많아졌고 현지에서의 소비도 예전보다 크게 늘어났다.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개별 자유여행 추이다. 2013년 해외여행 행태에서 자유여행의 비중은 52.4%로 패키지여행(38.4%)을 넘어섰다. 이후에도 자유여행의 비중은 2014년 56.9%, 2016년 68.0%, 2017년 67.7%로 크게 늘었다. 반면 2017년 패키지여행의 비중은 25.3%까지 쪼그라들었다. 대형 여행사의 패키지상품 성장률이 유럽을 제외하고 대부분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이 같은 추세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급성장한 기업이 있다. 바로 마이리얼트립이다. 이 업체는 투어 가이드와 여행객을 온라인으로 연결해준다. 2016년까지만 해도 마이리얼트립의 월 거래액은 10억 원대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2017년 61억 원으로 늘더니 지난해 170억 원까지 증가했다. 2012∼2017년 6년간 가입자(68만 명)보다 지난해 한 해 가입자(80만 명)가 더 많다. 마이리얼트립은 현재 국내 여행사 중 가장 많은 1만8220개(투어·액티비티, 티켓·패스, 항공권, 숙소 등, 2월 말 현재)의 상품을 보유하고 있다. 가입자만 180만 명이 넘는다. 대형 여행사들도 무시하지 못하는 업체가 됐다.



2012년 7월 설립된 마이리얼트립은 복잡했던 여행상품의 유통 구조를 혁신해 성공을 거뒀다. 기존 패키지 여행상품들은 ‘여행객-여행대리점-여행사-현지 여행사(랜드사)-현지 가이드’로 유통구조가 복잡했다. 마진을 남기려면 쇼핑 같은 불필요한 옵션들을 끼워 넣을 수밖에 없었다. 유통과정에 참여하는 중개인들은 수익을 내기 위해 수수료를 붙였고, 결국 최종 가격에 거품이 끼게 됐다.

마이리얼트립은 이 같은 전통적인 여행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했다. 여행상품의 유통구조를 ‘여행객-현지 가이드’로 단순화했다. 거래 내용과 구조는 IT를 기반으로 투명하게 만들었다. 현지 가이드를 전면에 내세워 박물관, 미술관 투어부터 현지 체험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상품을 내놓게 했고, 이를 여행지를 제대로 체험하고 싶어 하는 자유여행객들의 구매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이 플랫폼을 토대로 교통 티켓, 관광지의 공연, 박물관 입장권 등 티켓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후 숙박, 항공까지 비즈니스 영역을 넓히며 급성장했다. DBR은 여행 종합 플랫폼으로 거듭난 마이리얼트립의 성공 비결을 심층 분석했다.


DBR mini box I: 마이리얼트립은?
마이리얼트립은 해외여행을 가는 한국 여행객과 해외에 체류 중인 가이드를 연결해주는 온라인 P2P 중개 플랫폼이다. 현지 가이드가 투어나 액티비티 일정을 짜서 금액과 함께 올리면 여행자가 상품을 골라 결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마이리얼트립은 가격의 20%를 수수료로 받는다. 투어를 주요 비즈니스 모델로 삼았던 마이리얼트립은 티켓·패스 상품부터 숙박, 항공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현재 마이리얼트립에 등록된 상품 수는 1만8220개이며, 리뷰 수만 45만1960개에 달한다. 파리에서 10년 산 현지 가이드의 ‘진짜 파리 맛집 투어’, 미술품 거래상이 동행하는 ‘소더비 경매 참가 투어’, 미대생이 함께하는 ‘스케치 투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강점이다. 가이드와 여행객이 조율해 맞춤형 코스를 짤 수도 있다. 2012년 7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여행객 총 430만5220명이 마이리얼트립을 통해 680개의 도시를 여행했다.




여행시장 변화 놓친 대형 여행사들
2012년만 해도 국내 여행시장은 대형 여행사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업계 1, 2위인 하나투어와 모두투어가 전체 여행시장에서 차지한 비중이 30%에 가까웠다. 항공사들이 여행사가 항공권을 판매하면 지급했던 7∼9%대 수수료를 2010년부터 중단하면서 중소 여행사들의 경영 환경이 위축됐다. 반대로 수수료 의존도가 약했던 대형 여행사는 규모의 경제로 시장점유율을 높이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런데 이 무렵 여행시장의 성격이 바뀌고 있었다. 2012년 출국자는 1300만 명이었고, 1인당 평균 여행 횟수는 연 1.25회였다. 가치 소비와 여가가 주목받고 여행·레저 등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여행 산업이 막 커지고 있었는데 특히 자유여행의 비중이 꾸준하게 늘어났다. 2013년 한국관광공사 보고서에 따르면 개별 자유여행은 전체 여행 건수 중 39.3%로 패키지여행(38.4%)을 앞질렀다. 여행자의 니즈가 변하고 있었다.



대형 여행사들의 주력 비즈니스모델은 여전히 패키지여행이었다. 자유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상품은 항공이나 호텔 정도였다. 여기에는 익스피디아, 호텔스닷컴 등 글로벌 업체들이 이미 진출해 국내 업체들과 최저가 경쟁을 벌이는 등 시장이 성숙해질 만큼 성숙해져 있었다. 일부 패키지여행 시장에서의 견제도 있었다. 노랑풍선, 참좋은여행 등 직판 여행사들이 온라인 마켓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면서 치고 올라왔다.

정리하자면 당시 여행시장은 대형 여행사들이 패키지여행을 중심으로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10곳 이상의 경쟁자들이 온라인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항공이나 호텔은 최저가 경쟁으로 마진을 남기기가 쉽지 않은 구조였다. 여행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었고 누구나 성장 여력이 있다는 것을 예상하면서도 ‘레드오션’으로 취급하며 쉽게 사업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플레이어들의 경쟁은 치열했지만 여행객들은 만족하지 못했다. 먼저 패키지상품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다. 각종 패키지상품은 여러 관광지를 빠른 속도로 훑어보고 중간에 쇼핑센터를 들르는 방식으로 짜여 있었다. 식당도 문제로 꼽혔다. 단체 관광객 다수의 눈높이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여행사는 단가를 맞추기 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음식점을 잡을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 실망한 여행객들도 적지 않았다.

패키지상품은 왜 여행객들을 만족시키지 못했을까. 답은 여행상품의 유통 구조에 있었다.

패키지상품은 여행자→여행 대리점→한국 여행사→현지 여행사(랜드사)→현지 가이드의 구조로 이뤄져 있다. 1 예를 들어, 서울 광진구에 있는 A 여행사 대리점에서 한 여행객에게 일본 패키지여행 상품을 팔았다고 가정하자. A 대리점은 이를 여행사에 보고하고, 여행사는 현지 에이전시(랜드사)에 언제, 몇 명이 갈 예정이니 가이드를 찾아달라고 요청한다. 랜드사는 상품에 맞춰 숙박이나 식사, 각종 티켓, 가이드 등을 준비한다.

대부분의 패키지여행 상품은 이 ‘랜드사’로 불리는 현지 여행사가 기획한다. 상품에 가이드를 끼워 한국 여행사에 납품하는 방식이다. 한국 여행사는 인터넷과 대리점을 통해 여행객을 모집한다. 서로 다른 여행사에서 비슷한 상품이 보이는 이유는 같은 랜드사에서 여러 곳에 상품을 납품하기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고객을 유치하는 대형 여행사가 ‘갑’의 지위에 있고 랜드사가 ‘을’의 역할을 한다.

보통 여행사가 요구하는 가격에 맞춰 랜드사가 상품을 구성한다. 그렇다면 랜드사가 고용하는 가이드는 어떨까. 사실상 ‘병’의 위치에 있다. 랜드사와 가이드는 유통 비용을 상쇄하고 마진을 남기기 위해 여러 곳의 쇼핑센터에 가는 등의 옵션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2014년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여행사의 해외여행 패키지상품 만족률은 57.2%로 전체 해외여행 만족도(68.4%)에 비해 낮았다.

‘정보의 비대칭’ 문제도 있다. 가이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안내를 해주는지 품질을 미리 알 수 없다. 현지 안내를 받을 때도 이것이 가이드의 서비스인지, 영업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즉, 여행객은 자신에게 맞는 여행사와 여행상품을 찾는 데 드는 ‘탐색비용(시간)’, 유통과정에 따른 ‘계약비용(가격)’, 가이드가 약정한 대로 이행하는지 확인하는 데 필요한 ‘감시비용(서비스인지 영업인지 확인)’ 모두 높게 지불하는 구조인 셈이다. 여행객이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뿐만 아니라 타이트한 스케줄이나 정해진 코스를 단체로 돌아야 하는 패키지상품의 특성 자체를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남은 선택지는 자유여행이었지만 이 역시 여행객들을 완전히 만족시키진 못했다. 패키지여행 상품에 대한 불만은 자연스럽게 자유여행으로 옮겨갔지만 막상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현지 정보를 얻는 것이 쉽지 않았고 충분하게 경험하지 못하고 돌아와 아쉬움을 느낀 여행객도 많았다. 2012년 한국관광공사의 국민여행실태조사에 따르면 해외여행 시 가족여행(44.3%), 개인여행(32.7%) 모두 주로 참고하는 정보원 1순위로 여행사를 꼽았다.

“여행사가 주는 정보는 날씨나 교통, 주요 관광지, 축제 등 기본적이고 실제적인 것들인데 여행객들이 원하는 건 현지를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 감성적인 것들이었다.”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



현지 경험 특화된 자유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
이동건 대표는 자유여행과 패키지여행의 장점만 결합하기로 했다. 개인이 여행을 기획하면서도 일정 시간은 현지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패키지상품의 문제였던 유통구조를 혁신했다. 가이드와 고객을 직접 연결해 유통비용을 줄이면서 여행상품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렇게 나온 여행 P2P 중개 플랫폼이 ‘마이리얼트립’이다.

사실 가이드-여행객 직거래로 ‘진짜 여행’을 제공해보자는 아이디어는 이동건 대표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액셀러레이터 ‘프라이머’의 이택경, 권도균 대표의 아이디어였다.

2010년 이동건 대표는 친구와 함께 크라우드 펀딩 회사인 ‘콘크리에이트’를 차렸다. 첫 창업이었다. 인디밴드를 위해 자금을 모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잘됐다. 12번 중 절반을 성공해 1800만 원을 거뒀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펀딩 수수료를 책정하지 않았던 것. 1원 한 푼 건지지 못했다. “다른 펀딩 업체와 차별화를 고민하다 수수료를 안 받는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진정성이 부족했고 사업에 대해 너무 몰랐던 것 같다.” 이동건 대표의 말이다.

다시 창업을 결심한 그는 연세대에서 열린 창업 관련 강연을 찾았다. 그곳에서 프라이머의 두 대표를 만났다. 강연이 끝나고 그는 대표들을 따라가 명함을 받아냈다. 그리고 나선 약속까지 잡았다. 사업 아이디어도 없었지만 일단은 가보자고 생각했다. 그때 추천받은 것이 가이드 투어 사업이었다. 이동건 대표는 “나중에 대표님께 ‘저한테 왜 아이디어를 주셨느냐’고 여쭸더니 ‘여럿에게 제안했는데 이 대표만 진짜 도전하더라’라는 답이 돌아왔다”며 “사실 저한테 무슨 비범함이 보여서 주신 줄 알았다”며 웃었다.

사업은 아이디어로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 여행시장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각종 수치와 기사만 가지고 사업 전략을 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벤치마킹할 해외 업체부터 찾았다. 여행시장에는 비슷한 모델이 없어서 플랫폼 사업을 하는 ‘에어비앤비’를 참고했다. “에어비앤비는 집이라는 ‘공간’을 빌려주는 것이고, 우리는 가이드 투어라는 ‘경험’을 판매하는 개념이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사이트를 구석구석 살펴보고 약관이나 정책도 꼼꼼하게 확인했다.” 이동건 대표의 말이다.

처음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창업 당시 개발자가 없다 보니 홈페이지 제작을 외주에 맡겼는데 안 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먼저 결제가 바로 안 됐다. 고객이 예약하기를 누르면 계좌번호를 문자나 e메일로 통보해야 했다. 가이드와 고객이 시간 등을 조율할 수 있는 채팅 기능도 없었다. 무엇보다 홈페이지 디자인이 여행상품을 판매하는 회사보다는 개인 블로그에 가까워 보였다. “아웃소싱이란 게 부족한 것이 뭔지 알고 요청해야 제대로 된 품질이 나오는데 초기에는 아는 것이 부족하다 보니 착오가 많았다. 1년 후에는 개발자를 뽑아 이런 착오들을 수정해 직접 만들었다.”(이동건 대표)

2012년 7월2일 오후 2시, 3달 만에 제대로 된 예약이 들어왔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를 찾은 공무원 세 명이 생태투어 상품을 구매한 것이다. 친구나 지인이 아닌 생면부지 사람들이 상품을 산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들은 현지 일정을 끝내고 남은 몇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마이리얼트립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후 한 달에 한두 건씩 예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동건 대표는 “플랫폼에 부족한 면이 많았는데 판매가 이뤄지는 것을 보고 여행자들의 니즈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가이드 앞세워 진짜 여행 제공하다
마이리얼트립은 사업 시작부터 투어가이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을 썼다. 고객보다는 가이드를 모으는 데 주력했다. 사실 고객이 먼저냐, 서비스가 먼저냐는 플랫폼 비즈니스 사업자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문제다. 이동건 대표는 백화점을 예로 들었다. 백화점에는 다양한 업체가 입점해 고객들에게 물건을 팔고 수수료를 백화점에 지불한다. 그렇다면 고객이 백화점에 들어섰을 때 최악은 무엇일까. 입점한 업체들이 하나도 없고 휑하게 비어 있는 곳일 것이다. 그래서 좋은 가이드들을 많이, 다양하게 모으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도 판단 착오가 있었다. 이동건 대표는 각국의 주요 도시를 백화점의 층수라고 생각하고 도쿄, 파리, 런던, 샌프란시스코 등 여러 도시의 상품을 한 번에 준비했다. 그런데 막상 준비하다 보니 가이드를 모으는 작업에 속도가 붙질 않았다. 어렵게 주요 도시에 1∼2명의 가이드를 준비했을 때는 ‘상품이 다양하지 않다’는 고객의 불만이 나왔다. 생각해보니 도쿄에 가려는 여행객에게는 런던에 있는 가이드가 50명이어도 의미가 없었다. 도시마다 충분한 가이드 숫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전략을 한 도시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처음에는 지역을 파리로 제한하고, 잘한다고 소문난 가이드들부터 접촉했다. 대부분이 차가운 반응이었다. 새로 생긴 작은 업체에 관심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두 가지 방안을 생각해냈다. 첫 번째는 현지에 살고 있지만 가이드가 본업이 아닌 사람들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한국 여행객들을 만나 소통하고 싶어 하는 현지인, 용돈 벌이를 하고 싶어 하는 유학생 등이 떠올랐다. 이들에게는 어떻게 접촉했을까. 교민 커뮤니티를 활용했다. 이동건 대표는 독일 교환학생 시절 유학생이나 교민이 교민 커뮤니티를 통해 통역, 가이드 등의 구인구직을 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베를린리포트’ ‘프랑스존’ ‘04UK’ 등 각국 주요 커뮤니티에 가이드를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두 번째는 자질은 훌륭하지만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인지도가 낮은 가이드를 섭외하는 것이었다. 가이드들 역시 한 곳이라도 채널을 넓히고자 하는 니즈가 있었다.

각국 주요 도시를 돌며 가이드 설명회도 열었다. 한국무역협회를 통해 교민들을 초대하고 페이스북으로 타기팅 광고를 진행했다. 예를 들어, 파리에 사는, 언어를 한국어로 설정한 30∼60대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홍보한 것이다. 그렇게 설명회를 찾은 잠재 가이드들에게 마이리얼트립의 장점과 비전, 수익성 등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당시 우리에게는 비행기 타고 가는 것도 엄청 큰 경비였다. 노트북을 챙겨가 그 자리에서 가입시킬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우리의 적극성을 보면서 가입한 분도 꽤 많았다.”(이동건 대표) 현재까지 30회가량 열린 설명회에는 약 2000명(누적)의 가이드가 참석했다. 설명회에서 마이리얼트립의 가이드로 전환한 비율은 80%가 넘는다.


DBR mini boxII: ’마이리얼트립’에 빠진 벤처캐피털(VC) 3인 인터뷰

마이리얼트립은 올해 초 170억 원을 투자받는 데 성공했다. 이번이 여섯 번째 투자 유치였다. 현재까지 누적 투자금은 300억 원 정도. 일부 VC는 사업 초창기부터 연속적으로 투자에 참여했다. 성과가 미진한 시절에도 마이리얼트립에 자금을 부은 것이다. VC들은 왜 마이리얼트립에 빠졌을까. 알토스벤처스와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IMM인베스트먼트의 투자 담당자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빈틈과 시장 선점
알토스벤처스는 2014년 시리즈A를 시작으로 최근 라운드까지 투자에 모두 참여했다. 총 150억 원이 투입됐다. 박희은 알토스벤처스 수석은 “당시 자유여행시장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가능성이 충분한 ‘시장의 빈틈’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면 여행에 대한 소비도 증가하는데 한국이 자유여행 중심으로 시장이 바뀌고 있었다. 여기에 주목했다”고 투자의 이유를 밝혔다. 그는 스물다섯 살에 소셜데이팅서비스 ‘이음’을 창업했던 전 이음소시어스 대표다.

해외에서는 이미 온라인을 중심으로 여행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국내에서도 항공이나 숙박은 잘하는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그런데 가이드 시장은 사실상 공백 상태나 다름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인 여행객과 한국인 가이드를 연결하는 것은 해외 사업자가 쉽게 도전할 영역도 아니었다. “잘될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너무 빠르게 진입해 길만 닦아 놓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였다.” (박희은 수석)

백인수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이사도 ‘시장선점’을 이유로 꼽았다. 이 VC는 마이리얼트립에 4회에 걸쳐 총 52억 원을 투자했다. 초기 ‘가이드 시장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지적이 내부에서 나오는 등 호의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여행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봤고, 여기서 리드 플레이어가 되면 성공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웃바운드 시장이 계속 커지면서 마이리얼트립도 성장했지만 지금부터 더 잘해야 된다.” 백인수 이사의 말이다.


대표의 됨됨이
아이디어보다 ‘대표’ 자체에 무게를 두고 투자한 곳도 있었다. 총 30억 원을 투자한 IMM인베스트먼트의 김홍찬 투자팀장은 “전통적인 대형 여행사의 패키지 중심 여행시장에서 자유여행 추세에 맞게 만들어진 플랫폼이라고 생각했다”며 “시장 규모에 대한 의심이 있었지만 대표의 역량과 열정을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 대표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VC가 경험이 많아도 2년 후 시장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시간이 지나면 시장도 변하는데 그 이후는 결국 대표의 영역인 것 같다. 대표가 어떻게 시장 변화에 맞춰 대응하고 잘하는지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김홍찬 팀장의 말이다.

보통 스타트업계에서 VC들은 ‘시어머니’로 불린다. 각종 사업 현황을 매달 공유해야 하고, 때때로 간섭받는 일도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VC들은 이동건 대표가 이를 ‘즐기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김홍찬 팀장은 “대표님은 업계 동향부터 타 업종에 대한 것까지 본인이 질문을 더 많이 한다. 절반은 답변을 못한 걸로 기억한다”며 웃었다. 다른 VC들도 이동건 대표의 열정과 역량이 투자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이렇게 모인 가이드들은 직접 여행 코스를 짜서 플랫폼에 올리기 시작했다. 입소문을 타고 온 고객들이 마이리얼트립에서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골라 구매했다. 한 명, 한 명의 가이드가 곧 여행상품이 된 셈이다. 이 같은 직거래 방식은 가이드들을 하청 구조에서 벗어나게 만들었고, 가이드는 약속된 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를 수익으로 챙길 수 있었다. 일부 가이드는 고객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특색 있는 상품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가이드들 사이에서 마이리얼트립이 잘된다는 소문이 돌자 처음 섭외하지 못했던 유명 가이드들도 하나둘씩 플랫폼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지역에서 투어를 하다 보면 가이드들끼리 동선이 겹치기 때문에 어느 곳이 잘되는지 금방 안다. 이때부터 가이드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김도아 마이리얼트립 이사의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가이드에 대한 고객 불만이 쏟아진 것이다. 특히 가이드를 본업으로 하지 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문제가 계속 발생했다. 가장 많은 지적은 ‘지각’이었다. 이는 여행객한테는 큰 문제였다. 서울 강남에서 약속시간에 10분 늦는 것과 해외의 생소한 여행지에서 10분 지각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2012년에는 지금처럼 해외 로밍이 활발한 시절도 아니었다. 가이드의 서비스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여행객을 고객으로 생각하지 않고 친구나 지인처럼 대했다가 컴플레인이 발생한 것이다.

해법을 찾아야 했다. 일단 환불 조건을 강화했다. 15분 이상 지각하면 결제가 자동으로 취소되도록 만들어 가이드에게 경각심을 일으켰다. 이와 함께 가이드용 블로그를 만들어 자료를 공유하는 등 교육도 강화했다. 근본적인 변화도 가져갔다. 애초에 가이드를 최대한 까다롭게 뽑기로 한 것이다.

먼저, 간단한 소개를 시작으로 4페이지에 걸친 질문지를 꼼꼼하게 채워 넣게 만들었다. 문항 수를 많게 구성해 일종의 의지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두 번째 관문인 ‘화상 인터뷰’는 통과하기가 더 어렵다. 인터뷰에서 가이드의 역량을 체크한다. 실제 투어라고 생각하고 가이드를 진행하는 ‘시뮬레이션 테스트’를 거쳐야 하는데 서비스 마인드가 있는지 세부적으로 체크한다. 이후 현지에 있는 사람을 통해 자격증 등 필요한 서류들을 확인한다.

이 같은 절차를 마련하고 가이드 합격률이 30%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그만큼 고객 컴플레인이 줄어들어 상품의 품질이 좋아졌다. “처음 참고한 에어비앤비도 나쁜 호스트를 걸러내고 호스트-투숙객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우리도 좋은 가이드를 선별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이동건 대표) 마이리얼트립은 가이드와 고객이 분쟁을 일으켰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중재센터도 만들었다.

마이리얼트립이 중재자 역할에 심혈을 기울이는 사이, 가이드들은 다른 가이드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좋은 상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거 대형 여행사로부터 단순히 패키지상품을 받아 온 가이드들도 여행객의 선택을 직접 받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덕분에 거래구조는 투명해졌고 쇼핑 등 옵션이 사라졌다.

이 심플해 보이는 직거래 비즈니스 모델은 생각보다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가이드들이 고객의 니즈를 고민하게 되면서 특색 있는 상품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현직 요리사가 안내하는 ‘로마 쿠킹 클래스’, 아티스트가 추천하는 ‘뉴욕 박물관 투어’, 미국 마이너리그 출신 야구 선수의 ‘LA 다저스 경기 관람’ 등 기존 패키지상품에선 만나볼 수 없었던 여행 코스가 생겨났다. 덕분에 마이리얼트립은 다양한 상품을 갖출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마이리얼트립 직원들도 특색 있는 상품들에 당황했다. ‘과연 팔릴까’라며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그래서 직원들이 모여서 어떻게 해야 할지 회의했다. ‘우리가 그 지역의 전문가가 아니고, 고객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세세하게 알 수 없으니 판단을 우리가 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이 특색 있는 상품은 마이리얼트립의 ‘트레이드마크’가 됐고, 회사가 급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유튜브가 모두의 창의성을 보장해주는 플랫폼을 만들자 새로운 콘텐츠들이 등장해 고객들이 열광한 것과 비슷하다.

소비자도 다수의 여행상품 중에서 자신이 체험하고 싶은 것을 낮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여행지에서 무엇을, 어떻게 체험할지에 대한 고민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여러 상품을 체크하다 보면 해당 지역의 명소나 특징 같은 정보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자유여행에서 패키지여행의 장점만 확보한 셈이다. 마이리얼트립은 플랫폼의 상품마다 리뷰를 달 수 있게 해놨는데 고객들은 이를 통해 상품의 품질을 체크했다.



“고객들이 리뷰를 참고해 상품을 고르다 보니 가이드는 좋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피드백(리뷰)을 통해 특색을 강화하면서 자신의 브랜드를 강화하는 장점도 생겨났다.” (김도아 마이리얼트립 이사)


DBR mini box III: 도전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
마이리얼트립은 최근 급성장하면서 직원 수를 크게 늘렸다. 100명 중 절반 이상이 지난해 뽑힌 인원이다. 이동건 대표는 “본질은 ‘여행’에 있지만 플랫폼 업그레이드나 데이터 분석 등 주된 업무가 IT 업체와 비슷하다. 그래서 이공계 위주로 채용했다. 직원을 뽑을 때는 도전적이고 자유로운 스타트업 분위기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마이리얼트립은 직원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일단 시도하고 보라는 것이다.

이는 이동건 대표와 김도아 이사의 과거 경험에서 비롯했다. 이들은 실패하더라도 다양하게 시도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이 지금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2013년 시도했던 숙박권 판매는 반응이 없자 빨리 접었다. 프리미엄 패키지 상품도 판매했었는데 노하우가 부족해 마진이 거의 남지 않자 판매를 중단했다. 개별 고객을 만족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2015년에는 중국인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국 여행 서비스를 제공했다. 아웃바운드에서 인바운드로 사업을 확장한 것이다. 한창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많을 때였다. 플랫폼이 있으니 중국어 서비스만 제공하면 사업이 가능하겠다 싶었다. 먼저 중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제주도 지역을 대상으로 삼았다. 일정 시간 동안 관광버스로 제주도를 도는 가이드 상품이었다. 버스에 ‘뚜뚜버스’라는 이름까지 래핑했다. 그런데 매출이 기대를 밑돌았다. 당시 요우커들은 관광보다 쇼핑이나 의료에 관심이 많았다. “실패하더라도 무엇을 남기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실패를 통해 얻은 아이디어도 많았다. 대신 실패를 빠르게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김도아 이사)

마이리얼트립은 업무 분위기도 자유롭다. 직급을 세분화하지 않고 팀장 한 명씩을 제외하고는 다 매니저로 구성했다. 팀장도 프로젝트에 들어가서 매니저와 똑같이 일을 한다. 전 직원이 실무에 참여하기 때문에 일과 관련해 소통에 문제가 생길 이유가 없다. 근무시간도 자유롭다.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12시, 오후 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공동 근무시간을 제외하고는 출퇴근을 자유롭게 하도록 했다.

이보다 더 활성화돼 있는 것은 재택근무제도다. 3일 전에 신청만 하면 집에서 일할 수 있다. 팀당 최소 1명씩 내근하면 된다. “처음 사람을 뽑을 때 월급을 많이 줄 수가 없어서 좋은 근무 환경을 제공해 뛰어난 직원을 뽑아보자는 계획으로 시작했다. 시간이 지난 뒤에도 바꾸지 않은 이유는 근무 여건을 개선하니 일에 방해되는 요소들이 줄어들었고 결과물도 좋아 바꿀 필요가 없었다.” (이동건 대표)

마이리얼트립은 복지도 좋은 편이다. 가족 생일에 사용할 수 있는 반차를 연 4회 제공한다. 연 1회 건강검진을 지원하고, 직무와 관련된 교육이나 콘퍼런스에 참가할 때 비용의 80%를 내준다. 또 한 달에 15만 원을 자기계발이나 문화생활에 쓰도록 지급하고 있다. 마이리얼트립 이용 쿠폰을 1년에 100만 원까지 제공한다.

‘재택근무’에 ‘꿀복지’까지 자칫 직원들이 나태해지진 않을까. 이 때문에 이동건 대표는 채용에 공을 많이 들인다. 레퍼런스를 여러 곳에서 체크하고 면접도 충실하게 진행한 뒤에 뽑는다. “본인과 회사가 모두 ‘윈윈’할 수 있도록 성장 욕구나 도전 욕구가 강한 사람을 선호한다. 나이, 연차, 직급 모두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대신 직원들에게 ‘프로페셔널’이라는 단어를 항상 강조한다.” (이동건 대표)





티켓·숙박·항공 등으로 서비스 확대
마이리얼트립은 한 달에 한 번 상품 구매를 많이 한 고객을 대상으로 2시간씩 인터뷰했다. 플랫폼의 불편사항이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고객들은 교통권이나 미술관, 박물관 입장권 같은 티켓을 판매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마이리얼트립은 티켓 판매가 ‘여행 경험을 파는 회사’라는 회사 가치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리고 서비스를 확대하기로 했다. 좋은 가이드 상품을 많이 팔기 위한 ‘미끼 상품’도 필요했다.

다만 어떤 티켓을 판매할지, 티켓을 판매하면 구매가 많이 일어날지 등을 충분히 고려했다. 2013년 숙박을 판매했다가 금세 접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다시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행자들의 상품 구매 패턴도 참고했다. 이 결과 일본처럼 가까운 나라에서는 가이드 상품 판매보다 교통권이나 입장권 등의 티켓 판매가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유럽에서도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 입장권 판매가 활발했다.

2016년부터 교통권, 전망대·박물관·미술관 입장권 등 티켓 판매를 시작했다. 티켓 판매를 위해 국내에서 해외 티켓들을 판매하는 판매처들과 접촉했다. 이 업체들의 상품을 마이리얼트립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제휴를 맺었다. 마이리얼트립은 티켓 판매처로부터 평균 9.7%를 수수료로 받았다. 일부 물량은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 티켓을 직매입하는 방식으로 판매했다.

마이리얼트립은 티켓을 팔면서 주요 구매층이 가격에 민감한 20, 30대 젊은 층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2017년부터 ‘최저가 보장제’를 시작했다. 다른 곳에서 마이리얼트립보다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하면 환불해주는 식이다. 이후 여행객들 사이에서 ‘티켓은 마이리얼트립이 가장 싸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마이리얼트립은 티켓 중 대부분(81%)을 실물이 아닌 온라인 예약 티켓으로 준비해 편의성을 높였다.

티켓 판매는 생각보다 파급력이 컸다. 티켓 구매자는 여행 일정이 잡혀 있는 잠재 고객이다. 이들 중 다수는 티켓뿐만 아니라 마이리얼트립의 투어·액티비티 상품까지 구매하는 특성을 보였다. 일종의 크로스셀링이 이뤄진 것이다. 무엇보다 티켓이 최저가를 보장하고도 가이드 상품 못지않게 마진이 많이 남았다. 이는 마이리얼트립이 숙박과 항공으로까지 서비스를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서비스를 확장하면서 고비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이드 상품 판매에만 맞춰져 있는 시스템이 문제였다. 이때만 해도 홈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이 가이드 상품에 최적화돼 있었다. 처음 티켓 판매를 시작할 때는 가이드 상품만 판매되던 기존 시스템에서 강제로 티켓을 팔았다. 그래서 고객들에게 잘못된 안내창이 뜨는 일이 다반사였다. 예를 들어, 고객이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 입장권을 구매하면 ‘티켓을 오후 2시에 만나세요’ 같은 황당한 문구가 안내됐다.

이후 마이리얼트립은 플랫폼의 UI를 꾸준히 수정 보완했다. “이렇게 오류가 뜨는 데도 고객들이 구매하는 것을 보고 가이드 이외의 서비스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시스템을 보완하면서 숙박이나 항공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이동건 대표의 말이다.

숙박 서비스는 2017년 시작했다. 부킹닷컴, 호텔스컴바인 등 호텔 플랫폼 업체와 손을 잡아 단숨에 많은 양의 호텔 상품을 확보했다. 해당 업체들과 호텔 중개에 따른 수익은 5대5로 배분했다. 인기가 있는 숙박 업체는 직접 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와 함께 직계약으로 소싱해 온 한인민박도 계속해서 물량을 확대해 나갔다. 현재 마이리얼트립은 국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한인민박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항공권 판매 서비스도 시작했다. 글로벌 항공 예약 업체(GDS)인 아마데우스와 제휴를 맺어 해당 업체의 항공권을 판매했다. 마이리얼트립은 항공권 판매를 최근 고객 트래픽 증가의 가장 큰 요인으로 보고 있다.

숙박과 항공권 서비스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됐다. 티켓 서비스를 준비할 때는 제휴를 맺기 위해 작은 규모의 업체들을 일일이 설득해야 했다. 물량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 제휴 업체를 계속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마이리얼트립과 수익을 배분해야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곳도 있었다. 마이리얼트립은 판매처 증대로 추가 수익이 발생한다는 점과 마케팅 효과가 일어날 것이라는 부분을 앞세워 설득했다.

반면 숙박, 항공권은 많은 물량을 쥐고 있는 대형 업체들과의 제휴로 서비스를 빠르게 준비할 수 있었다. 그동안 마이리얼트립이 크게 성장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오히려 숙박, 항공 서비스 업체들이 마이리얼트립과의 제휴로 마케팅 효과를 기대했다.

마이리얼트립은 다른 곳보다 숙박과 항공권을 최대한 싸게 판매해 마진을 크게 남기지 않는 ‘박리다매’ 형식을 취했다. 이익을 남기는 것보다 많은 고객을 유입시키는 데 집중했다. 대신 항공권이나 숙소를 보러 온 고객들이 투어 상품에도 관심을 갖도록 전략을 짰다. 먼저 플랫폼 UI를 고쳤다. 앱 첫 화면의 정중앙에 ‘투어&티켓’ ‘항공권’ ‘숙소’ ‘에어텔’ 메뉴를 달아 고객이 원하는 종류의 상품을 쉽게 고를 수 있도록 배치하면서도 메뉴 바로 아래에 투어 상품들이 함께 보이도록 만들었다.

‘추천 시점 최적화’ ‘개인별 최적화’ ‘교차 구매 할인’ 등의 전략도 통했다. 여행객들의 예약 패턴을 분석한 결과 평균적으로 항공권은 여행일로부터 59일 전, 호텔·민박은 21일 전, 투어는 9일 전, 티켓은 5일 전에 상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확인하고, 스케줄을 고려해 상품을 추천했다. 고객이 항공권을 구매하면 기다렸다가 21일 전에는 호텔을, 9일 전에는 투어 상품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여행 목적도 고려했다. 항공권 구매 내역을 통해 혼자 여행을 가는지, 가족과 함께 가는지, 아이를 동반하는지 등을 확인하고 여행 목적에 맞는 상품을 보여줬다. 이와 함께 호텔+투어, 호텔+티켓 등 교차 구매를 하면 일정 금액을 할인해주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지난해 말 현재 항공권 구매자 중 숙박·투어·티켓·보험 상품을 하나 이상 추가 구매한 여행자 비율은 31%에 달한다.

마이리얼트립이 서비스를 다양화하고 저렴한 상품을 내놓으면서 여행객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행객들은 티켓은 A 업체, 호텔은 B 업체가 저렴하다고 생각하고 개별 업체에서 상품을 구매해왔다. 그러다가 마이리얼트립 한 곳에서 다양한 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마이리얼트립은 투어, 항공권, 숙박 상품을 특가로 판매하는 ‘핫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는데 2017년 5월 론칭 이후 14개월 만에 월 거래액 10억 원을 달성했다.



상품 수와 고객이 크게 증가하고 일정 규모의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마이리얼트립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마이리얼트립의 월 거래액은 2016년 11억 원에서 2017년 61억 원, 지난해 170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는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의 특성이기도 하다. 플랫폼 사업을 위해서는 사람을 모으고, 아이템(상품 수)을 축적한 뒤 발전시켜야 한다.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은 이용자가 몰릴수록 이용자가 더 증가하는 특성을 보인다. 상품과 이용자가 늘다 보면 임계점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지점을 넘어서면 큰 반응이 일어난다. 페이스북도 임계점을 넘은 후에야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다.


마이리얼트립의 강점은 ‘독점 콘텐츠’와 ‘리뷰’
마이리얼트립은 고전 끝에 가이드와 티켓, 숙박, 항공권 등의 상품을 모으는 데 성공했고, 좋은 상품들이 많은 고객을 유인했다. 플랫폼이 성장하는 사이 가이드들은 경쟁 속에서 독점 콘텐츠를 생산했다.

마이리얼트립의 상품 카테고리는 근교 투어, 시티투어, 로컬투어, 야경투어, 국립공원, 박물관·미술관, 이색체험, 스포츠, 테마파크, 크루즈·요트, 자전거, 픽업·샌딩, 맛집·카페, 쇼핑, 쇼·뮤지컬, 캠핑, 와이너리, 클래스, 통역·비즈니스 등 19개에 달한다. 특색 있는 상품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셰프와 함께하는 보케리아 시장 투어와 빠에야 만들기’, 미국 보스턴의 ‘하버드 대학생과 함께하는 하버드대 캠퍼스 투어’, 프랑스 파리의 ‘미술사 전공한 파리지엔이 소개하는 루브르&오르세 박물관 투어’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2017년부터 투어·액티비티 시장에서 경쟁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후발주자들이 등장한 이 시기부터 마이리얼트립은 오히려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그동안 쌓아놨던 독점 콘텐츠와 리뷰가 일종의 진입장벽 역할을 했다. “좋은 상품과 제품의 품질을 확인할 수 있는 리뷰를 많이 보유한 상태였다. 충성 고객이 많았고, 이들의 소개로 신규 고객이 계속 유입됐다.” (이동건 대표)

특히 45만 개가 넘는 리뷰가 강점으로 꼽힌다. 가이드투어는 ‘무형의 재화’이기 때문에 상품의 가격이 합리적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미리 구매해본 사람들의 평가(리뷰)를 체크하는 것이다. 평가가 많으면 많을수록 가격이 적정한가를 판단하기가 쉽다. 실제로 마이리얼트립은 리뷰가 많을수록 상품 판매가 더 잘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이리얼트립은 별점과 리뷰를 통해 사람들이 상품을 평가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인기 있는 상품들은 1000건이 넘는 리뷰가 달렸다. 마이리얼트립은 어떻게 양질의 리뷰를 모을 수 있었을까.

먼저, 리뷰를 많이 모으기 위해 여행객에게 5000포인트(5000원)를 지급하는 유인책을 썼다. 고객은 다음 상품 구매 시 이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다. 사실 5000포인트가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쇼핑몰 포인트만큼의 파급력을 발휘하긴 쉽지 않았다. 고객이 한 번 여행을 다녀오면 다음 여행을 가기까지의 공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이리얼트립은 포인트보다는 가이드의 노력이 리뷰를 달게 만든 힘이라고 강조했다. “고객들이 왜 후기를 쓰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한 적이 있다. 결론은 지불한 금액 이상의 좋은 서비스를 받았다고 생각한 고객이 가이드를 위해 선의로 리뷰를 단다는 것이었다. 가이드의 노력에 따라 리뷰 숫자가 달라지는 이유다.” 이동건 대표의 말이다.

홍보 등의 의도를 가진 리뷰는 어떻게 걸러냈을까. 마이리얼트립은 상품을 구매한 사람만 후기를 달 수 있게 했다. 가이드 지인 등이 상품 홍보 목적으로 리뷰를 달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마이리얼트립은 불순한 목적을 가진 누군가가 몇만 원을 주고 상품을 구매한 뒤 좋은 내용의 리뷰를 단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설명한다. 같은 상품을 구매한 여행객들이 이를 부정하는 평가들을 달 것이고, 오히려 신뢰를 잃는 계기가 돼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마이리얼트립은 특정 IP 주소에서 연속적으로 리뷰가 올라오는지도 체크하고 있다.

이렇게 쌓인 리뷰는 여러 가지 선순환 작용을 일으켰다. 불친절하거나 품질이 낮은 가이드는 시장에서 선택(좋은 리뷰)을 받지 못하게 돼 자연스럽게 도태됐다. 이 때문에 가이드는 품질 향상을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자동으로 품질 관리가 되는 셈이다. 대신 열심히 하면 그만큼 자신의 상품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다. 이미 여러 가이드가 자신의 이름과 이력을 걸고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한 명의 가이드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마이리얼트립의 하루 예약 건수가 4000건 정도인데 재이용률이 20%가 넘는다. 그만큼 충성고객이 많다는 것이다.” (김도아 이사)


빅데이터 분석으로 최적화된 상품 추천
마이리얼트립은 고객들의 상품 구매와 리뷰를 빅데이터 분석에 활용하고 있다. 여행객의 개별 니즈를 예측하고, 이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보통 고객의 개인정보나 행동 패턴, 소비 내역 등의 데이터를 분석하면 고객이 다음에 어떤 것을 구매할지 예측할 수 있다. 이미 많은 기업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 같은 예측을 개인화된 추천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정 상품, 서비스를 구매할 확률이 높은 고객을 예상해 해당 고객에게 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추천하는 것이다. 고객에게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해 상품을 탐색하는 시간을 줄이는 대신 기업은 지속적인 구매를 유도할 수 있다.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고객 데이터와 상품 모두 많아야 한다. 고객 취향을 알려면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돼 있어야 하고, 각각에 맞는 상품을 추천하려면 상품이 충분해야 한다. 마이리얼트립은 고객 정보와 상품이 충분하게 모여 있기에 기술만 바탕이 된다면 개인화 서비스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IT 전공자를 중심으로 조직을 구성하고 내부 교육을 강화했다. 마이리얼트립 직원 100명 중 절반 이상이 이공계 출신이다. “데이터 전문가로 꼽히는 분들을 소개에 소개를 통해 힘들게 한 명씩 늘려나갔다. 그렇게 한 분이 들어올 때마다 회사의 데이터 역량이 크게 점프했던 것 같다. IT 전문가는 지금도 끊임없이 찾고 있다.” 이동건 대표의 말이다.

IT 전공자가 어느 정도 늘어난 뒤 마이리얼트립은 내부에 ‘그로스팀’을 만들었다. 그로스팀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서비스 향상을 위한 핵심 지표를 정의한다. 그리고 이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한다. 크로스셀 활성화 전략도 여기서 짠다. 항공권을 산 고객이 투어나 호텔 구매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마이리얼트립은 데이터 기반으로 전략을 짤 수 있도록 전사 차원에서 ‘SQL(데이터베이스 언어)’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여행업계에서 이공계 출신이 절반 이상이고, 데이터로 의사결정을 하는 곳은 우리밖에 없다. VC들이 우리를 주목하는 이유도 일정 부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김도아 이사의 말이다.



마이리얼트립은 현재 플랫폼 전체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앱의 속도를 향상하고, 상품들을 데이터화해 구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사카 주유패스’는 1. 종이로 된 티켓패스이며, 2. 현지 교통 관련 상품으로 3. 젊은 여행자, 4. ‘뚜벅이’들이 이용하는 상품이다. 이렇게 데이터들을 쪼개서 분류하면 다양한 정보가 쏟아진다. 마이리얼트립은 이를 걸러내는 ‘다이내믹 필터’를 만들고 있다.

이 작업이 완성되면 개인화 서비스의 주요 기법 중 하나인 ‘협업 필터링(collaborative filtering)’이 가능해진다. 고객들의 구매나 검색 등에서 유사한 행동이나 평가 정보를 뽑아내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러 고객의 선호 정보를 바탕으로 상품을 구매할 만한 사람을 찾아내 상품이나 서비스를 자동으로 추천한다. 넷플릭스의 영화 추천 엔진인 ‘시네매치’가 그 예다. A 영화와 B 영화를 재밌게 본 고객이 C를 좋아했다면 A, B를 본 고객에게 C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평점이다. 재밌게 봤는지를 평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마이리얼트립도 45만1960개의 리뷰를 활용하는 방법을 고심 중이다. 자연어를 분석하는 컨설팅 회사에 이 후기들을 맡겨보기도 했다. ‘만족’ ‘일정’ ‘친절’ 등 단순 분류부터 ‘사진을 잘 찍는’ ‘유머러스한’ ‘너무 많이 걷는다’ 등 수백여 개의 유의미한 분석을 얻어냈다.

도쿄로 떠나는 예산이 충분한 5인 가족 여행객을 대상 고객으로 가정하면 지금은 대한항공 비즈니스석과 5성급 호텔, 프라이빗 밴 투어, 도쿄 긴자 코스 요리 등을 추천할 수 있다. 앞으로는 비행기 좌석(통로나 창가 어디를 선호하는지)이나 호텔 위치(역 근처인지, 주요 관광지 근처인지), 가이드 성격 등까지 참고해 상품을 추천해줄 수 있다.

해외에서도 개인화 서비스를 내놓기 위해 연구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 미국의 산업 리서치업체인 포커스라이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여행 업체 가운데 65%가 데이터 분석팀을 두고 있거나 관련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들이 진행한 데이터 연구 중 80% 이상이 실제 매출 증대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마이리얼트립은 이를 기반으로 2021년 월 거래액 700억 원, 연 거래액 8500억 원을 달성한다는 것이 목표다. 매출 비중은 투어·액티비티 22%, 티켓·패스 32%, 숙박 30%, 항공권 12%, 핫딜 5% 정도로 예상한다. 이를 달성하면 톱3 온라인 여행사(OTA)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동건 대표는 ‘시장 변화’와 ‘가치 창출’을 강조했다. 여행시장의 트렌드에 맞춰 대형 여행사들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시장과 고객의 니즈는 항상 변한다. 가치 창출은 고객을 얼마나 만족시키느냐에 따라 달려 있는 것이고, 이를 위한 것이 개인화 서비스다. 변화에 맞춰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의 목표는 고객을 만족시키면 저절로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동건 대표)


성공 요인 분석 및 시사점
마이리얼트립이 여행 P2P 플랫폼으로 성공적으로 성장한 것은 플랫폼 전략, 소셜 시스템, 관련 다각화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마이리얼트립은 소비자의 여행 경험이 심화하면서 자유여행 수요가 커지고 있는 시장 변화를 감지했으며, 이를 위해 회사 이름이 지향하는 바와 같이 내실 있는 현지 여행 가이드를 직접 발굴해 임계점 이상의 소비자를 확보했다. 이를 활용해 마이리얼트립 플랫폼에 참여하도록 하는 효율적인 양면시장을 구축했다.

여기에 플랫폼 전략을 확장하고, 공동구매 등의 장점을 살려 여행사업을 효과적으로 넓혀 나갔다. 소셜 시스템을 통해 현지 여행 가이드의 평판(reputation)에 기초한 평가 모델이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1. 플랫폼 전략의 구현
여행 P2P 플랫폼은 고전적 이론인 양면시장(Two-sided market)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양면시장은 판매자가 플랫폼에 제공하는 제품 및 서비스가 플랫폼이 구매자에게 제공하는 제품 및 서비스와 같지 않거나 또는 구매자가 플랫폼에 제공하는 대가와 플랫폼이 판매자에게 제공하는 대가가 다를 때 나타난다(최병삼 등, 2014).

기존 여행사 패키지의 플랫폼에서는 현지 가이드와 여행자들의 직접적인 매칭이 이뤄지지 않고 패키지를 파는 여행사가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국내 여행사들은 고객접근에 대한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현지 가이드들과 수요자 및 서비스 공급자의 관계, 다시 말해 일종의 갑을 관계를 갖게 된다. 현지 가이드 입장에서는 일정 수의 여행객을 확보하는 것이 비즈니스에 주요한 요소가 되는데 충분한 여행객 수를 확보한 국내 여행사에 일정 부분 보조금을 제공하는 교차 네트워크 효과가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마이리얼트립의 경우에는 P2P 플랫폼을 구축하면서 여행객 정보와 현지 여행의 요구사항을 쉽게 소통하도록 하면서 이런 교차 네트워크의 비용을 절감했다. 기존 패키지에서는 현지 가이드들의 교차 네트워크 비용이 커서 일정 규모 이상의 여행객 수를 확보하고 지정된 식당, 쇼핑을 통해 수익을 확보해야 했기에 정작 여행객의 요구사항은 뒷전이었다. 하지만 P2P 여행 플랫폼을 통해 현지 가이드들의 차별화된 서비스들이 경쟁적으로 제공되면서 다양한 여행 수요에 대응하면서 가격 메커니즘이 작동되며 제값을 받게 된 것이다.

2. 플랫폼 흡수 전략
플랫폼 흡수(platform envelopment)는 자신의 기존 플랫폼을 기반으로 외부의 플랫폼을 흡수 및 통합함으로써 다른 플랫폼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 진출하는 전략이다(Eisenmann et al., 2006, 2011). 플랫폼 흡수의 장점은 1) 복수 플랫폼 제공으로 다른 플랫폼 소비자 수요를 흡수하고, 2) 기존 플랫폼에 있던 자원을 활용해 효율성 개선, 3) 협상력 및 자원 동원 능력을 강화해 단독 플랫폼에 비해 경쟁우위 확보(Eisenmann et al., 2011)를 들 수 있다.

이런 플랫폼 흡수의 예는 여러 산업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온라인 게임 개발회사가 출시한 온라인 게임이 충분한 수의 고객을 확보할 경우 개발회사가 퍼블러셔로 전환해 자신들이 개발한 게임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의 게임도 유통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쿠팡, 티켓몬스터, 위메이크프라이스 같은 소셜커머스 회사들은 식당과 이벤트의 할인 쿠폰을 팔아 고객을 끌어들였지만 일단 충분한 수의 고객을 확보한 이후에는 전자상거래 회사로 전환해 일반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플랫폼을 확장했다.

마이리얼트립도 자유여행을 하는 고객들이 확보되면서 현지 여행사와의 매칭뿐만 아니라 자유여행을 하는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티켓, 항공권, 호텔 예약 서비스를 추가하며 플랫폼의 보완재 흡수를 통한 확장을 이뤄냈다.

3. 소셜 평판 평가 모델
보통 온라인 여행 상품 예약은 모니터나 스마트폰을 통해 얻게 된 상품 정보를 가지고 구매 결정을 내린다. 이런 경우 다른 구매 고객들이 남긴 평점과 댓글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판단할 만한 충분한 정보가 없을 때 다른 사람의 결정에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마치 낯선 곳에서 식사할 곳을 찾을 때 많은 사람이 줄서서 기다리는 식당은 의례 맛집이라고 판단하는 것과 같다.

마이리얼트립의 경우, 소셜네트워크의 평판을 십분 활용하는 평가 모델을 이용하고 있다. 현지 여행사나 먼저 그 여행을 다녀온 고객의 소셜네트워크 플로그인을 활용해 진정성 있는 리뷰 정보를 제공하고자 노력한다. 아무래도 소셜네트워크상에서 신원을 밝힌 사람들의 의견을 좀 더 존중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의 경영학 연구에 따르면, 온라인 평가와 매출과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일부 연구는 평점이 좋을 경우 매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보지만 다른 연구에서는 매출은 평점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평점 결과가 좋은 점수들과 좋지 않은 점수들이 모아지는 형태이거나 또는 양분된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즉, 최종 평점은 평균을 표시하기 때문에 양극화된다면 평균 그 자체는 의미를 잃을 수 있어서다.

요컨대, 마이리얼트립은 P2P 소셜플랫폼을 활용해 전통적인 여행산업을 혁신하고자 하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소셜플랫폼의 특성상 플랫폼 참여자들에 대한 서비스 품질 관리 실패 가능성, 또 오랫동안 쌓아 올린 평판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위험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이동원 (2015). “모바일 소셜 플랫폼의 진화 – 카카오”, Asan Enterpreneurship Review
2. 최병삼, 김창욱, 조원영 (2014). 플랫폼, 경영을 바꾸다, 삼성경제연구소.
3. Eisenmann, T., G. Parker, and M. Van Alstyne (2006). “Strategies for Two-Sided Markets,” Harvard Business Review, 84(10), 92-101.



필자소개
김성모 기자 mo@donga.com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 smjeon@gachon.ac.kr
전성민 교수는 서울대에서 경제학 학사를 마치고 동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경영정보 박사 학위를 받았다. IBM과 삼성에서 다수의 IT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서울 및 미국 산호세에서 창업자로 일한 경력도 갖고 있다. 벤처회사들의 실증 데이터 분석을 통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P2P lending, 소셜커머스 등 신규 사업 모델을 분석 중이다. 역서에 『페이스북 시대』가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9호 Rethinking Governance 2020년 6월 Issue 2 목차보기



DBR Case Study: 오디오 플랫폼 ‘스푼라디오’의 성장 전략

“연결되고 싶지만 노출되고 싶진 않아”
목소리로 토닥토닥, Z세대 사로잡다

Article at a Glance
오디오 플랫폼 스푼라디오는 2016년 서비스를 시작해 3년 만에 누적 다운로드 수 800만 건, 월 이용자 수(MAU) 130만 명에 달하는 기록을 세우며 Z세대들의 두터운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로 불리며 양방형 커뮤니케이션을 즐기는 Z세대를 겨냥해 이들의 입맛에 맞는 기능들을 선보이면서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인 결과다. 스푼라디오의 성공 요인은 다음과 같다.

1. Z세대향 비즈니스 마인드
최첨단 기술에 능숙하면서도 정서적 결핍에 예민한 Z세대에게 음성으로 소통하는 플랫폼을 선보여 감성에 어필
2. 사용자 행동 데이터를 토대로 한 실험주의
유저들의 행동 데이터를 꼼꼼히 분석해 무의식을 포착하고 그 결과를 끊임없이 경영에반영하는 실험주의 정신
3. 초자율시대에 걸맞은 임파워먼트 경영
판을 깔고 스스로 진화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자율과 권한을 부여해 창의를 꽃피우는 방임적 리더십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홍지선(경희대 호텔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사례 1 2019년 5월의 어느 잠이 오지 않는 밤 11시, 앱을 켰다. 그 시각 개설된 방은 모두 3000여 개. 그중 ‘매력적인 목소리’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방에 들어갔다. “초롱초롱 님, 어서 오세요∼” 들어가자마자 BJ가 내 닉네임을 부르며 환영했다. BJ는 그날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소개하면서 방에 모인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올리는 댓글을 하나하나 읽으며 반응하고, 신청곡을 받아 틀어주며, 틈틈이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반겼다. ‘목소리가 너무 예뻐요∼’ 하고 글을 올렸더니 BJ는 바로 “초롱초롱 님, 감사합니다”라며 웃었다. 방에 모인 사람은 200명이 넘었지만 BJ와 일대일로 소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례 2 2017년 12월 어느 날,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스푼라디오 사무실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1년간 활발히 활동한 BJ 가운데 인기 BJ를 선정해 시상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 스푼라디오 직원들은 하트나 스푼을 많이 받은 BJ 20명을 선정해 상금을 수여하기로 하고 플래카드를 걸고 다과 등을 준비했다. 하지만 행사시간이 한참 넘도록 현장에 도착한 BJ는 서너 명에 불과했다. 일부 BJ들은 대리 수령자를 보내기도 했다. 현장에는 스푼라디오 직원들만 가득했다. 나중에 이유를 물으니 다수의 BJ는 시상식을 통해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청취자들의 상상력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연결되고 싶지만 노출되고 싶지는 않은 Z세대의 심리를 잘 간파해 이들 세대의 두터운 지지를 얻고 있는 오디오 플랫폼이 있다. 2016년 서비스를 시작해 3년 만에 누적 다운로드 수 800만 건, 월 이용자 수(MAU) 130만 명에 달하는 스푼라디오가 그 주인공이다. 매일 개설되는 방 개수는 3만 개. 피크타임인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는 3000∼4000개의 방이 열린다. 방마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만 명 단위의 사람들이 모여 BJ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일상을 나눈다.

비디오 시대가 열리며 라디오는 더 이상 설 곳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되던 시절이 있었다. 예상을 뒤엎고 라디오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주파수를 맞추고 DJ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팟캐스트나 팟빵처럼 특정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오디오들이 가득한 플랫폼도 성업 중이다. 다만 디지털 네이티브로 불리며 양방형 커뮤니케이션을 즐기는 Z세대는 한층 진화된 형태로 라디오 방송을 소비하고 있다. ‘오디오계의 유튜브’로 불리는 스푼라디오를 통해서다.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방송에 만족하지 못하는 Z세대 청취자들은 스푼라디오라는 쌍방향 플랫폼을 통해 보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즐기는 라디오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DBR이 스푼라디오의 성장 스토리를 취재했다.

목소리로 위로받는 플랫폼 만들다

스푼라디오를 운영하는 마이쿤(Mykoon) 최혁재 대표가 처음 시도한 창업 아이템은 ‘스마트폰 배터리 충전 및 교환 서비스’였다.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고 스마트폰을 한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들이 늘면서 배터리 잔량이 얼마 남았는지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런 수요를 노려 최 대표는 외출 중 배터리를 어디서 충전할 수 있는지 가능한 좌표를 공유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나아가 주요 지역에 위치한 가맹점에서 누구나 쉽게 전력이 다 소모된 자신의 것을 반납하고 100% 충전된 같은 기종의 배터리로 교환해 갈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놨다. 최 대표는 서비스 홍보를 위해 홍대나 강남역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을 돌며 전단지를 뿌리기도 하고, 리어카에 기종별 배터리를 수천 개씩 담고 다니며 직접 교환해 주기도 했다. 최 대표의 열정과 사업의 발전 가능성을 인정받아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받았다.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에 수십 개씩 교환소를 두고 있을 정도로 사업이 번창했다. 하지만 배터리가 분리되지 않는 일체형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사업은 순식간에 몰락했고 빚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사무실에서 라면만 먹으며 버티는 날들이 이어졌다.

할 일 없이 출근만 하고 있던 어느 날, 마이쿤 창업을 함께했던 멤버 중 한 명이 오디오 플랫폼 아이디어를 냈다. 망한 처지가 되다 보니 지인들로부터 이런저런 격려와 위로의 말들을 듣는데 딱딱한 활자보다는 따뜻한 목소리에서 받는 위안이 더 크더라며 상심하거나 고민이 있는 사람들이 서로 목소리로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던 멤버들에게 와 닿는 아이디어였다. 당시 비디오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었다. 오디오는 상대적으로 플레이어가 적고, 서버의 유지 및 관리 비용 면에서 부담이 적었다. 최 대표를 비롯한 창업 멤버들은 오디오 플랫폼을 개설해 운영해보기로 하고 개발에 착수했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선점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오디오 플랫폼이 없으므로 일단 단순하게라도 서비스를 시작하고 이후 계속해서 업데이트해 나가자고 생각했다.” 최 대표의 말이다. 이들은 간단한 버전을 만들어 2016년 3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1. 실시간 라이브 방송 통해 사용자 폭발적 증가

처음에는 음성 녹음을 올려 공유할 수 있는 형태의 플랫폼이었다. 예컨대 누군가 ‘이러저러한 고민이 있다’고 녹음해 올리면 다른 사용자들이 그것을 듣고 위로하거나 공감하는 내용의 댓글을 목소리로 달아주는 식이었다. 처음부터 ‘라디오’와 같은 형식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월○일, ○○의 ○○라디오’라고 제목을 붙여 올리거나, ‘○○라디오 지금 시작합니다∼’로 녹음을 시작하거나, 전날 녹음에 달린 댓글을 듣고 그것을 소개하는 내용을 녹음해 다시 올리는 사용자들이 늘었다. 사용자들이 플랫폼을 활용해 자연스럽게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더라는 것. 그뿐만 아니라 앱스토어 등의 사용자 리뷰 란에도 ‘라이브 방송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왔다. 최 대표를 비롯한 개발자들은 라이브 기능을 추가하기로 하고 약 3개월 동안 밤낮없이 몰두해 현재 스푼라디오의 핵심 기능인 ‘라이브’를 개설했다.

라이브 기능이 추가되면서 사용자층 증가에 한층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1020세대의 가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누구보다도 온라인을 통해 소통하는 일에 익숙한 세대였다. 특히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을 통해 자기 채널을 운영하며 구독자를 늘려가고 싶은 욕구를 가진 이들에게 비주얼에 신경 쓰지 않고 목소리로만 방송을 진행할 수 있는 스푼라디오는 매력적인 대체재였다. 노래에 자신 있는 이는 신청곡을 받아 노래를 부르는 음악 방송을, 고민 상담에 자신 있는 이는 고민을 받아 그것에 대한 의견을 들려주는 방송을, 일상 공유에 관심 있는 이는 소통을 키워드로 유저들과 대화하는 방송을 진행하며 청취자를 불려나갔다. 이를 통해 진행자와 유저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됐고, 모이는 사람들이 늘면서 스푼라디오는 목소리만으로 소통할 수 있는 쌍방향 플랫폼으로 이름을 얻어갔다.


2. “재미만큼 후원” 유저 니즈 맞춰 ‘스푼 결제’ 추가

이어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는 BJ에게 금전적으로 선물을 할 수 있는 ‘스푼 후원하기’ 기능이 더해졌다. 플랫폼에서 스푼을 구매한 후 방송 중 BJ에게 쏘는 방식이다. 아프리카TV에서 BJ에게 별풍선을 쏘는 것과 같다. 그러면 BJ는 이를 현금으로 교환해 수익을 취할 수 있다. 스푼라디오에서 통용되는 화폐 단위인 스푼(=100원)을 구입해 1000원에서 33만 원까지 가격대가 다양한 스티커를 구입하고 이를 BJ에게 선물로 보내는 구조다. 유저들이 BJ에게 보낸 스푼 금액은 스푼라디오와 BJ가 사전에 정해진 비율대로 나눠 갖는다. 10대, 20대들이 몇천 원씩 결제하는 것이 무슨 수익 모델이냐, 라디오 듣다가 결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의구심이 안팎에 적지 않았지만 최 대표는 도입을 망설이지 않았다. 이유는 한 가지다. 유저들의 니즈다. 최 대표는 “Z세대는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자신이 잘 활용하는 서비스에는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BJ가 나를 즐겁게 해주고 내가 그 방송을 통해 재미를 얻고 있으니 그에게 ‘뭔가 해주고 싶다’ 내지는 ‘당연히 뭔가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거금을 들여 스푼을 쐈을 때 같은 방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감탄하며 환호하는 것을 즐긴다. 그것이 그들의 문화다.” 최 대표의 말이다. 결제 서비스가 시작된 첫 달, 유저들의 스푼 결제를 통해 200만 원의 매출이 기록됐다. 이후 결제 금액은 지속적으로 늘어나 지금은 매일 약 1억 원씩 결제가 일어난다. 한 달에 수백만, 수천만 원씩 스푼을 결제하는 20대들도 적지 않다. 2018년 연매출 230억 원이 여기서 나왔다.


스푼으로 후원받는 기능이 추가되자 이에 연동해 BJ들의 수입도 늘기 시작했다. 현재 톱10 안에 들어가는 BJ들은 연간 억 단위 규모의 돈을 번다. 지난해 가장 많이 번 BJ는 4억 원의 수입을 거뒀다. 이렇게 되자 전문적으로 BJ를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목소리만으로 진행되는 방송인데도 매일 아이디어를 내서 구성을 달리하고 자신만의 개성 있는 진행 방식을 고민해 팬덤을 불려나간다. 스푼라디오에서 진행하는 정규 방송 외에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을 통해 추가적으로 팬들을 관리하며 자체적으로 대규모 팬미팅을 기획하기도 한다. BJ들끼리 커뮤니티를 조성해 공동으로 행사를 진행하는 이들도 있다. BJ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스푼라디오에서 제작에 참여하는 사용자 비율은 전체 사용자의 10%대로 올라섰다. 유튜브 등 비디오 플랫폼에서 단순 공유나 시청이 아닌 직접 제작에 참여하는 비율이 2%대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스푼라디오에 대한 유저들의 참여도가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다.

데이터, 데이터, 데이터…

라이브 기능과 스푼 결제 등을 포함해 서비스 출시 이후 1년 동안 총 54회의 업데이트가 있었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꼴로 업데이트를 한 셈이다. 이는 최 대표의 경영 철학과 통한다. 최 대표는 뭐든 일단 해보고 이후 보완해가자는 주의다. 그는 “업데이트 54번 중에 성과를 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라이브와 스푼 결제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소 박한 자평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당연히 잘 활용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유저들로부터 외면당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대부분이 그렇다고 했다. “실패가 디폴트(default)다. 성공이 특이 케이스다. 원래 실패하는 게 당연하다고 가정해놓고 어떻게 하면 가급적 실패를 줄일 수 있을까를 열심히 연구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최 대표의 말이다.


DBR mini box I: 스푼라디오의 주요 기능

라이브(Live): 전체 방송 중 90% 이상을 차지한다. 매일 밤 4000개에 육박하는 방들이 만들어진다. 누구나 버튼 하나만 누르면 라이브 방송을 진행할 수 있다. 방에 참여하면 오픈채팅을 통해 BJ와 대화할 수 있다. 대화 중 스푼을 쏘면 BJ에게 금전적인 수익을 안겨줄 수 있다.

캐스트(Cast): 무엇이든 녹음해서 올려놓을 수 있다. 노래를 불러 음성파일을 올리기도 하고 특정인의 생일 축하 메시지를 릴레이로 녹음해서 올려두기도 한다.

톡(Talk): 드라마나 영화 대사, 노래의 한 단락 등 지정된 문구를 짧게 녹음해 올리는 코너다. 릴레이처럼 전 사람에 이어 다음 사람이 짤막한 자신의 음성 녹음을 올린다. 각 방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로 해당 문구를 읽어 올린 녹음을 연달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데이터를 가장 신뢰한다. ‘데이터 말고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씩 데이터를 보면서 전략을 다듬고 수정한다.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앱스토어 등에 올라오는 사용자 리뷰다. 운영팀에서 매주 취합해 주제별로 분류한 후 내부에 공유한다. 개발팀이나 마케팅팀과 협의해 운영에 반영한다. 유료 데이터 분석 툴도 많이 쓴다. 툴 값으로만 매달 수천만 원씩 나간다. 플랫폼을 통해 얻는 여러 수치를 다양한 잣대로 분석하고 파악해, 보고 또 본다.

여러 데이터를 비교 분석해가며 최 대표가 찾는 것은 ‘골든 넘버(golden number)’다. 예컨대, 트위터는 사용자가 팔로잉을 20명 이상 하면 탈퇴하지 않고 계속 사용하더라, 페이스북은 5명 이상의 친구와 연결되면 사용이 유지되더라는 식의 사용자 행태 분석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특이점이다. 스푼라디오도 여러 가지 골든 넘버를 갖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새로 가입한 사용자가 방송을 5개 이상 들으면 앱을 삭제하지 않고 계속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결과다. 무수히 많은 데이터(raw data)를 돌리고 분석해 얻어낸 숫자다. 이를 반영해 스푼라디오는 가입자가 앱을 설치한 후 끄기 전까지 최소 5개의 방송을 들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너지(nudge)를 설치했다. 처음 들어온 사람에게 채팅 형식으로 말을 걸어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거나 인기 있는 방송 리스트를 전면에 노출해 흥미를 유발하는 식이다.

AB 테스트도 매일 한다. 최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미친 듯이 한다’. 대체로 다음과 같은 프로세스를 따른다. 새롭게 적용하고 싶은 기능의 A버전과 B버전을 사용자 중 일부에게 먼저 도입해본다. 이 중 더 좋은 반응을 얻은 버전과 C버전을 또 사용해보도록 한다. 이런 과정을 수십 차례 반복해 마침내 살아남은 최종 버전을 전체 사용자에게 적용한다. 마치 이상형 월드컵을 진행하듯 일대일로 여러 버전을 붙여 최종 살아남는 버전을 가려내는 식이다. 최 대표는 “직원들에게도 말로 설명하지 말고 숫자를 가져오라고 많이 요구한다. 사용자들의 행동과 특성, 결제 방식,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는 물론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가 모두 데이터에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스푼라디오 유저 중 70% 이상이 18∼25세다. 스푼라디오가 진행하는 디지털 마케팅과 제공하는 기능들은 대부분 이 연령대를 타기팅한다. 처음부터 10대와 20대를 타기팅한 것은 아니었다. 초반에는 3040을 위한 시사 또는 지식 콘텐츠도 있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세바시)’과 협력을 맺고 세바시에서 제작하는 콘텐츠를 끌어와 음성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인기 웹툰 ‘우리 집에 사는 남자’와 ‘동네변호사 조들호’ 등을 각색해 전문 성우가 목소리로 연기해 올려두는 ‘오디오툰’ 코너도 있었다. 책을 귀로 들을 수 있는 오디오북과 비슷한 기능인 셈이다. 하지만 10∼20대가 라이브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는 용도로 스푼라디오를 많이 찾으면서 이들 위주로 기능이 재편됐고 지금은 시사 콘텐츠 제공은 물론 오디오툰 기능이 모두 종료된 상태다. 이 역시 신규 유저 추이, 앱 삭제 추이, 재방문율, 유저별 기능 활용률과 머무는 시간 추이 등 여러 가지 숫자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내린 결정이다. 최 대표는 “연령에 제한을 두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서비스를 가장 활발하게 즐기며 소비하는 세대가 10∼20대로 나타난 만큼 그 결과에 맞춰 점차 이들을 주요 타깃으로 보며 서비스를 운영하게 됐다”며 “스푼라디오가 나아가는 전략적 방향을 결정하는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사용자들”이라고 말했다.


마케팅팀에 최대한의 자율과 권한 부여

창업 초기, 최 대표는 서비스를 주로 이용하는 10∼20대 유저들을 이해하기 위해 이들이 많이 모이는 방에 자주 들어갔다. 직접 방을 만들어 운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방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깔깔거리며 웃을 때 자신은 하나도 웃기지 않거나 사람들이 왜 웃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 빈발했다. 개설한 방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을 때도 많았다. 이런 상황은 마케팅팀과의 회의에서도 자주 발생했다. 전원 20대로 구성된 마케팅팀은 각자 아이디어를 내고 문구를 작성해 마케팅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일한다. 이들과 같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다들 깔깔거리며 박장대소하는 상황에 최 대표 혼자 웃지 못한다거나 팀원들이 이른바 ‘급식체’를 사용해 작성한 문구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지금은 유저들의 대화 또는 마케팅팀에서 작성한 문구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저들은 저렇게 즐기는구나, 저들은 저런 상황에 지갑을 여는구나를 알아갈 뿐이다. “과거 우리 아버지 세대가 서태지 노래를 좋아하는 우리를 보고 이런 노래를 도대체 왜 좋아하냐, 이게 노래냐고 했던 것처럼 서로 다른 세대를 일부러 노력해서 머리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들의 특성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파악해 그에 맞는 서비스를 구현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래서 더더욱 데이터를 많이 활용한다.” 최 대표의 말이다.

마케팅을 직접 컨트롤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표는 예산 배정만 결정할 뿐 마케팅의 A부터 Z까지 마케팅 팀원들이 개인별로 결정하고 진행한다. 스푼라디오의 지난해 마케팅 비용은 120억 원. 연 매출이 230억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공격적인 마케팅이다. 올해는 더욱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패는 사용자층의 압도적인 확보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요 사용자층을 대상으로 마케팅 메시지를 지겨울 정도로 반복 노출해 그들의 머릿속에 스푼라디오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하고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목표다. 사용자들이 원해서 추가한 ‘스푼 후원하기’ 기능 외에 별다른 수익 모델을 시도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직 충분한 사용자층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상황에 광고 등 다른 수익 모델을 섣부르게 추가했다가는 사용자들의 이탈이나 관심 저하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금은 다른 무엇보다도 사용자층을 두텁게 확보하는 데 집중해야 할 때라는 게 최 대표의 생각이다.

마케팅에 개입하지 않는 대신 마케팅 팀원들을 구성하는 데 상당히 공을 들인다. 경력이나 학력은 보지 않는다. 오로지 열정만 본다. 스타트업인 데다 새롭게 시도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 만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우선으로 본다. 뽑힌 마케팅 직원들은 3개월간 수습 기간을 거친다. 하루에 몇만 원 정도의 예산을 받아 직접 디지털 마케팅을 시도해보도록 한다. 각자 맡는 플랫폼은 정해져 있지만 마케팅 문구나 형식, 기간 등은 스스로 정할 수 있다. 디지털 마케팅의 특성상 해당 마케팅을 통한 사용자 수 증감이나 스푼 결제 내역 등이 바로바로 체크된다. 실시간으로 성적표를 받아보는 셈이다. 그 결과에 따라 개인별 마케팅 예산의 증감이 달라진다. 예컨대 같은 10만 원의 예산을 받아 A는 20만 원을 벌었고, B는 5만 원밖에 벌지 못했다면 A에게는 활용할 수 있는 예산을 늘려주고 B에게 배정된 예산은 삭감하는 식이다. 3개월 수습 기간 동안 성과를 내지 못한 팀원은 정직원으로 채용하지 않는다.

정직원이 된 마케팅팀 직원들에게는 보다 넓은 범위의 권한이 주어진다. 유튜브, 페이스북 등 개인별로 맡는 채널만 정해져 있을 뿐 들어가는 문구와 노출 방식, 노출 기간, 타깃 설정, 수정 여부 및 방법 등은 모두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다만 성과에 따라 배정받는 예산 규모가 달라질 뿐 아니라 성과급의 유무 및 금액도 달라지므로 상당한 책임과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초기에는 광고 문구를 검토해 달라며 대표에게 들고 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절차가 없다. 오직 결과를 놓고 평가받을 뿐이다. 최 대표는 “광고 문구라고 들고 오는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지나치게 오글거린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뭐든 일단 해보라고 한다”며 “가급적 다양한 방식으로 광고를 시도해보고 그중 좋은 성과를 낸 광고에 예산을 추가 배정하는 것만 내 몫”이라고 말했다.



DBR mini box II: 스푼라디오 광고 문구들

늘 혼자인 게 좋다고 말했다. 늘 혼자인 게 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도 가끔은 누군가와 소통하길 바란다.


편하게 들으면서 주무시면 돼요. 제가 재워드릴게요.


내 개취는 라디오를 타고


어른들은 모르는 우리들만의 라디오


너의 숨은 재능을 스푼에서 보여줘


잠이 안 올 땐 스푼라디오(듣다 주무셔도 좋습니다)



창업부터 해외 진출 염두… 동남아, 일본, 중동으로

최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해외 시장 진출을 염두에 뒀다. 비디오와 달리 라디오는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기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 “국내 지상파 3사 라디오를 합쳐도 총 3000억 원이 안 되는 시장이다. 물론 기존 시장으로 단정하면 안 되겠지만 참고할 만한 수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국내가 100억 원 규모밖에 안 된다고 해도 이를 병렬식으로 펼쳐 세계에서 50개, 100개 시장을 키우면 될 것 아닌가.” 최 대표의 말이다.

처음 진출한 국가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이었다. 동남아시아는 전체 인구가 많고 그중에서도 젊은 인구 비중이 높다. 또한 SNS 사용이 매우 활발하다. 동남아시아 지역 사람들은 모바일을 활용해 하루 평균 3.6시간 인터넷을 쓰는데 이는 중국(3시간), 영국(2시간), 일본(1시간)보다 많다. 필리핀과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주요국들의 하루 인터넷 사용시간 및 소셜미디어 사용시간은 세계 상위권이다. 1

인건비가 저렴해 운영비가 적게 든다는 점도 동남아시아 선정의 이유가 됐다. 스푼라디오는 국내에서 서비스를 출시한 지 1년 만에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도 동일한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다운로드나 가입자 수를 꾸준히 불려나갔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하는 매출 성장은 더뎠다. 스푼 후원하기가 생각보다 활발하지 않았다. 결제 단위도 한국에 비해 훨씬 작았다. 최 대표는 “인간에게 필요한 의식주휴락(衣食住休樂) 중 스푼라디오 서비스는 휴(休)와 락(樂)에 해당하는데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희와 락에 소비되는 금액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다음 지역은 무조건 소비 수준이 높은 곳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진출 지역은 일본이었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지역이다. 그다음은 오일머니가 풍부한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인구는 한국보다 적지만 소비력이 강한 덕분에 인당 인앱(In-App) 결제 금액이 세계 톱 수준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얻은 교훈을 적용한 후발 지역에서의 매출 성장은 가파른 편이다. 일본과 중동 모두 유저 숫자는 물론 스푼 결제 금액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해외에서도 마케팅 원칙은 동일하다. 팀원들 각자가 최대한 많은 권한을 가지고 문구와 기간, 방식 등을 결정한다. 현지인의 감성을 이해하고 제대로 파고들기 위해 스푼라디오는 처음부터 해외 지역의 담당자들을 모두 현지인으로 뽑았다. 지사를 설립해 아예 현지에서 인력을 채용하는 동남아시아 지역을 제외하고 일본과 중동 지역의 경우 한국에 살고 있는 현지인을 뽑아 함께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현지인을 채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기업 아닌 스타트업에서, 기존에 없는 낯선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직군으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최 대표는 반드시 현지인으로 팀을 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케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규모를 더욱 키워나가겠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아무리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이라도 ‘갑분싸’ ‘TMI’ ‘인싸’와 같은 말을 이해하고 적절히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 1020세대를 겨냥하는 마케터 일을 하려면 반드시 현지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 대표의 말이다.

최 대표는 여기서도 권한 위임 방식을 적극 활용했다. 지역별로 팀장을 공들여 뽑고 팀원들의 채용 및 관리를 팀장에게 일임하는 방식이다. 팀장의 경우 어느 지역 출신이나 영어를 잘해 최 대표와 막힘없는 소통이 가능하다. 팀장들이 각 팀으로 돌아가서는 팀원들과 현지어로 소통하며 일을 진행한다.

마이쿤을 창업한 지 올해로 6년 차, 스푼라디오 서비스를 시작한 지는 만 3년이 됐다. 지금은 앱의 누적 다운로드 숫자가 800만에 육박할 만큼 인기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동안 겪은 어려움도 작지 않았다. 사업 초기에는 유저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대표 스스로 신조어를 찾아 공부하기도 하고 매일 밤 인기 있는 BJ 방을 찾아 들어가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관찰도 많이 했다. 그러나 한계가 분명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 점들이 너무 많았다. 지금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그들의 행태와 심리를 반영한 데이터를 파고들 뿐이다. “여성 속옷을 만드는 회사의 남자 CEO가 자사 제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경영을 잘할 수 없을까? 그것도 아닐 것이다. 내 경우가 그렇다. 나는 Z세대가 아니고 그들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할 수 없지만 그들이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재미와 편리를 고안해 한 번이라도 더 찾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최 대표의 말이다.

유저 수가 단시간에 급증하면서 서버가 다운되거나 서비스가 원활하지 않은 적도 수차례 발생했다. BJ를 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보니 CS센터를 통한 항의는 물론 회사를 찾아와 삿대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020세대의 눈높이에 맞춰 제작한 광고를 공격적으로 내보내다 보니 문구가 너무 느끼하다거나 지나치게 반복돼 거슬린다는 항의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무수히 많은 데이터를 통해 잘 먹힐 것이라고 예상하고 출시한 기능이 유저들의 외면을 받는 경우다. 애청하는 BJ의 방송이 시작됐다는 것을 알려주는 알람 기능이나 자동으로 방송을 틀어줘 아침 기상 알람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 등이 있으면 좋겠다는 유저들의 의견을 듣고 수십 차례의 AB 테스트를 거쳐 출시했지만 막상 적용한 후에는 잘 사용되지 않아 폐기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유저들도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지 못할 때가 많고 설문에서는 Yes라고 답해놓고 실제로는 No인 경우가 너무 많다. 계속 실험하고 시도하면서 수치로 나타나는 실제 사용률을 리뷰해보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최 대표의 말이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DBR mini box III : ‘스푼라디오’의 성공 비결
초자율시대… 판만 깔아주고 스스로 진화하게

스푼라디오의 성공은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율을 기반으로 스스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어디로 갈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쉽게 예측이 어려울 정도다. 강한 실험정신을 가지고, 사용자 데이터를 중심으로 미지의 세계에서 묘수를 찾아가는 도전이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스푼라디오 사례는 미래 기업의 생존을 위한 다양한 키워드를 제공한다. 현생 인류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하지만 미래 생존을 위해 기업에 가장 중요한 Z세대와 함께 진화하고 있는 브랜드라서 그렇다. ‘젊게, 빠르게, 가볍게, 다양하게’라는 키워드를 ‘Z세대 지향 비즈니스’와 연결하며 그 시사점을 찾아보자.


Z세대향 비즈니스 마인드
많은 사람에게 미래는 불확실하다. 너무도 빨리 변해가는 기술 환경에 허덕이는 사람일수록 미래는 두렵게 느껴진다. 디지털 네이티브, 즉 태어날 때부터 첨단 기술과 함께 자라며 짧은 동영상 한 편으로 필요한 지식을 간단히 습득해버리는 신인류에게 미래는 어떻게 보일까? 불확실성을 일상으로 받아들여 지내온 Z세대에게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만한 변화일지 모른다. Z세대는 조용히 진화하면서 미래 환경에 스스로를 가장 잘 최적화하는 세대다. 미래를 대비하는 기업이라면 반드시 Z세대 중심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가장 진화된 소비자를 상대해야 오랫동안 영업을 할 수 있고, 가장 진화한 직원들과 함께 일해야 지속가능한 기업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스푼라디오는 내·외부적으로 업의 중심을 Z세대에게 맞춰 미래지향형으로 진화해가는 기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1. 따뜻한 말 한마디의 힘
TV를 넘어 AR, VR과 함께 AI 시대로 가고 있는 현시점에 라디오라니, 놀랄 일이다. 그것도 가장 디지털화한 Z세대가 사용자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라디오 플랫폼이라니,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의 환경적, 심리적 특성을 깊이 있게 조망해보면 이 같은 의외의 역발상이 통하는 한 수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내려진다. 화려한 영상에 지친 그들에게 목소리는 위안이 된다. 저성장의 그늘 아래 최고 수준의 경쟁에 내몰리며 ‘실패’의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그들은 항상 위로에 목마르다. 감성은 아날로그적으로 전달될 때 그 효과가 최고로 치닫는다. ‘위로 결핍 세대’에게 따뜻한 감성적 말 한마디는 자기 확신성을 끌어올리며 공감대를 극대화한다.

스푼라디오는 BJ, 청취자를 가릴 것 없이 남 앞에 설 수 있는 자신감을 충족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비주얼에 신경 쓰지 않고 진솔하게 소통하면서 존재감을 찾아갈 수 있는 통로다. 영상 만능 시대, 능력 배틀 시대에 ‘나와 다르지 않구나, 나 혼자가 아니구나, 문제없다’는 느낌을 주는 따뜻한 목소리는 큰 힘을 가진다. 가장 첨단의 세대인 Z세대가 가지는 이러한 결핍과 그를 채우는 충족의 키워드는 세대를 뛰어넘어 미래를 겨냥하는 비즈니스에 핵심이 될 것이다.


2. 자유롭게 그러나 공정하게
스푼라디오의 마케팅팀은 주된 소비자층과 같은 Z세대로 구성돼 있다. 진화하는 소비자를 상대해야 하는 마케팅 인적자원의 채용과 관리는 기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경영의 다른 영역에 비해 관리보다 창의가 우선인 마케팅의 성격상 젊은 세대, 특히 Z세대를 적극 기용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다. 마케팅은 이미 검증된 경력직을 뽑는다는 관행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 관리 시대가 아니라 파괴 시대로 불리는 현대에 안정된 관리의 달인보다는 파괴를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세워야 한다. 최근 부활의 날개를 펼치고 있는 구찌 등의 기업이 이런 구조를 앞세워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Z세대는 전 세대에 걸쳐 가장 공정성에 민감한 세대다. 자유는 얻되 성과로 보상받는다는 의식이 강하다. 가장 합리적이며 실용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예외나 관행, 인정주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 만큼 처벌받거나 보상받는 것을 중요시하는 공정성 세대다. 그렇다 보니 이런 성향의 직원들은 자율과 성과라는 플랫폼에서 자아실현을 해 나간다. 스푼라디오의 마케팅팀은 매출의 절반이 넘는 예산을 가지고 무엇이든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에 따른 처벌과 보상은 명확하다. 미래로 갈수록 더 파괴하고 더 공개하는 비즈니스 환경이 펼쳐질 것이다. 자유롭게, 그러나 공정하게 실행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과학과 예술의 조화
마케팅은 과학과 예술의 조화라고들 말한다. 딱딱한 과학만 있어서는 안 된다. 지나치게 감에 의존하는 상상만 있어서도 안 된다. 스푼라디오 성공의 이면에는 데이터 중심의 과학적 접근과 예술 같은 실험주의적 접근이 공존한다. 머리는 차갑되 가슴은 따뜻해야 그 조화 속에서 그동안 없던 차별적 결과물이 나온다.

1. 사용자 행동 데이터 중심의 전략 수립
기업이 직관에만 의존하면 한두 번은 성공할 수 있으나 지속성을 보장받기 힘들다. 결국 마케팅의 핵심은 사용자이며 사용자의 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사용자가 보이는 행동, 그것에서 비롯된 데이터다. 데이터는 사실 기반이다. 과거의 정보 비대칭, 비공개 시대에는 감에 의존하는 주먹구구식 마케팅이 통했다. 하지만 초연결, 초공개, 초저장 시대에 인간의 행동 데이터는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저장, 추출되고 분석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초데이터 시대로 가고 있는 만큼 마케터에게 데이터의 자유도는 무한으로 이어지면서 기회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 누가 데이터를 잘 다루느냐가 경쟁의 핵심인 시대다. 마치 요리사가 글로벌 시대에 무한히 널려 있는 식재료 중 어떤 것을 선택해 어떤 레서피로 요리하느냐에 따라 평가받는 것과 같다. 감으로 마케팅하는 시대는 저물고 데이터 기반의 사실 마케팅이 통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데이터 시대를 살았고 팩트 기반의 결정에 익숙한 공정성 세대에게는 더욱 중요한 가치다.

여기서 하나 주의할 것은 말과 행동의 구분이다. 의식적 상황에서 표출되는 말은 사실 기반이라고 보기 힘들다. 얼마든지 자기 의지로 만들어내고 왜곡할 수 있다. 의식적 상황에서 행하는 설문조사나 인터뷰를 데이터라고는 할 수 있지만 사실 기반의 완전 데이터라고는 보기 힘든 이유다. 이 때문에 이런 자료들에 전적으로 의지해서는 안 되며 보조적 자료로만 활용해야 한다. 행동은 좀 다르다. 대부분의 말은 의식에서 오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행동은 무의식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행동 데이터는 무의식적으로 흘린 인간 본연의 흔적이며 진실의 순간(The Moment of Truth)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마케팅학자들 사이에도 의식 상황에서 행하는 설문조사와 인터뷰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세계 유수 저널에서는 필드에서의 행동 데이터 증명을 거의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기술 발전과 지식의 공개 및 공유로 인해 이제는 행동 데이터 분석도 학자의 영역에서 실무자 영역으로 넓혀지는 추세다. 앞서는 기업이라면 데이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마케터가 많아야 한다. 마케팅이 크리에이티브와 동일시됐던 것이 과거라면 이제는 행동 데이터가 기반이며 그 위에 크리에이티브가 더해지는 시대로 가고 있다.


2. 실패를 당연시하는 예술적 실험주의 정신
스푼라디오 사례를 보면 대단한 실험주의적 정신을 접하게 된다. ‘일단 시도해보자’는 앞으로 더욱 요구되는 가치일 것이다. 시도해보면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덤을 얻는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만들어 나가려는 주의는 옛날식 접근이다. 젊게, 빠르게, 가볍게, 다양하게 가야 살아남는 환경에는 실험주의 접근이 중요하다. 주야장천으로 지긋이 오래가는 시대는 저물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일상이 된 시대, 팝업적 시도가 비즈니스의 핵심이 돼야 한다.

실험주의를 위해서는 예술적 접근이 필요하다. 하나의 예술 작품이 나오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습작이 필요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예술적 정신은 비즈니스 세계에도 요구된다. 기왕이면 남들이 하지 않는 혁명적 시도, 즉 아방가르드한 성격의 것이면 더욱 좋다. 신인류, 미래 인류에게 각광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살펴본 사용자 행동 데이터 중심의 실험이어야 한다.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실험에 옮기면서 끊임없는 테스트와 도전 정신으로 진화해가는 것이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초자율시대에 대비한 믿음과 과감한 임파워먼트
많은 기업에 이런 말을 던지고 싶다. ‘잘 모르면 맡기는 것이 최선이다. 이해가 안 되면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 좋다.’ 스푼라디오가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직원들의 업무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고 과감히 맡긴 데서 찾을 수 있다.

초자율시대다. 모바일 인터넷 환경의 도래와 함께 사람은 이미 자율시대에 최적화돼 가고 있다. 혼자 생활하는 사람이 늘고 혼자 소비하는 비중이 커진 것은 자율시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다. 사물인터넷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은 사물의 자율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알아서 움직이는 시대라는 의미다.

판을 깔고 스스로 진화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이다. 조직 관리 차원에서 이 점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Z세대를 비롯한 젊은 세대가 주역이 되고 있는 상황에 뒷방 늙은이, 이른바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권한을 과감히 이양하고 다른 유효한 역할을 찾아 나서야 한다. 통제와 관리의 시대는 끝났다. 자율과 창의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기업의 시스템과 의사결정 과정, 조직 운영 등 모든 분야에 임파워먼트가 일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제는 각각의 조직원이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시대다. 모두 다 프로페셔널이다. 자체 조달이 어려우면 외부에서 얼마든지 조달해 전문가 수준의 과업을 해낼 수 있다. 맡겨놓으면 알아서 다 할 수 있는 시대라는 의미다. 믿고 맡겨보라.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겠으나 진화하고 발전해서 분명 궤도에 올라올 것이다. 젊은 세대일수록 회복탄력성이 높다. 과감하게 믿는 경영, 믿고 맡기는 경영이 차별화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런 경영으로 조직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 또한 중요한 요소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marnia@dgu.edu


DBR Case Study: 관광 불모지서 ‘재생의 아이콘’으로

“ 스토리가 있는 폐광” 모두가 열광 역발상으로 기적을 캔 ‘광명동굴’

Article at a Glance

관광 불모지였던 베드타운 광명시는 2011년 광명동굴을 개장해 수도권에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2016년 140만 명의 유료 관람객이 이곳을 찾았다. 폐광을 단장해 테마파크로 성공한 광명동굴의 비결은 다음과 같다.

1. 최소 요구 조건부터 맞춘 개발 계획: 시청의 한계를 파악하고 되는 일부터 차근차근 진행
2. 린스타트업 같은 공무원 조직: 10인 규모의 별동대 조직이 동굴로 출퇴근하며 5∼6년째 ‘빠른 실험-피드백 수집-개선’을 끊임없이 반복
3. 핵심/비핵심 업무영역의 분리: 콘텐츠 기획과 운영은 시청에서 전담하고 기타 부문은 외부기관들과의 파트너십을 적극 추진
4. 브랜드 네이밍: 누구나 기억하고 부르기 쉬운 이름을 선택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조규원(홍익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초여름인데 하얀 입김이 나왔다. 광명동굴 지하층은 시원한 정도를 넘어 추운 느낌마저 들었다. 사방 단단한 바위와 지하수 폭포에서 나오는 냉기 때문이었다. 왜 이 동굴이 수도권 서남부 관광명소가 됐는지 알 것 같았다. 화강암벽의 거친 질감에 은은한 조명이 잘 어울렸다.

광명동굴 개장 이전의 광명시는 관광과는 큰 인연이 없는 동네였다. 서울 근교 베드타운 중 하나,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 소재지, 비교적 최근에는 이케아 매장이 들어섰다는 것 정도가 외부인들이 광명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였다. 광명시를 찾은 관광객은 연간 수천 명이었다고 하지만 딱히 관광지라 할 만한 것이 없으니 숫자를 집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2011년 시험적으로 일반에게 공개되고 2015년부터 입장료를 받기 시작한 광명동굴은 2016년 142만 명의 유료 방문객을 받았다. 경기도 내 내로라하는 관광지인 캐리비안베이(142만 명), 한국민속촌(149만 명) 등에 뒤지지 않는 수치다. 2017년은 아예 200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직 성수기가 시작하지 않았지만 동굴 안팎은 평일에도 내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빈다. 한여름에는 주차장 진입에만 수시간 걸렸다는 증언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

어떻게 서울 근교에 길이 8㎞에 달하는 동굴이 있을 수 있을까? 왜 최근에야 각광을 받게 된 것일까? 사실 광명동굴은 천연동굴이 아니다. 일제시대부터 60여 년에 걸쳐 인간의 힘으로 꾸준히 파 들어간 금속 광산이다. 1970년대 광산이 문을 닫고 40년 가까이 버려졌지만 광명시청 공무원들의 지혜와 열정으로 새 삶을 찾았다. 광명동굴은 2017년 유료 개장 2년 만에 한국관광공사가 ‘한국 100대 관광지’로 선정했다. 또 시민에게 400여 개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재생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는 광명동굴 개발 사례를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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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불모지의 버려진 광산

광명동굴의 옛 이름은 시흥광산이다. 한일합방 2년 후인 1912년 일본인에 의해 ‘시흥 동(銅) 광산’이 설립됐다는 기록이 있으니 100살이 넘었다. 광산은 광명시 남쪽 외곽에 있는 가학산 중턱에서 시작한다. 산을 동서로 관통하는 갱도가 척추 역할을 하며 거기서부터 60여 년 동안 꾸준히 파내려간 흔적이 지하 8층, 총연장 7.8㎞에 달한다. 한창때는 500∼600명의 노동자가 하루 250톤의 암석을 캐냈다. 주요 산물은 금, 은, 동, 아연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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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최대 금속광산이던 시흥광산은 1972년 홍수 때문에 문을 닫았다. 광산 앞 공터에 쌓여 있던 광미(광석 찌꺼기)가 물에 쓸려가 일대의 논밭, 하천을 덮쳤다. 광미에는 미량의 중금속 성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제대로 처리를 하지 않으면 중금속 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 피해보상 문제로 하루아침에 문을 닫은 광산을 1974년 한 사업가(김기원)가 매입했다. 하지만 정부는 채굴 허가를 다시 내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소유주는 인근 소래포구에서 나온 새우젓을 한 통에 1만 원씩 받고 저장해주는 창고 용도로 갱도의 일부만을 사용했다. 그러는 동안 전체 8층 중 하단부 7개 층은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지하수에 서서히 잠겨버렸다. 산 곳곳에 위치한 출입구와 외부 시설물은 잡초와 덩굴, 나무 속으로 묻혀 들어갔다.

안양, 의왕, 시흥, 인천, 부천 등 주변지역이 도시화되는 가운데서도 그린벨트에 속한 가학산 지역은 도시 속의 산골로 남아 있었다. 1990년대 정부가 광산 주변 오염된 땅을 정화, 매립한 후 그 자리에 쓰레기소각장을 건설한 것이 유일한 변화였다.

1990년대 후반, 이 폐광산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강원랜드 카지노 개장 등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폐광 지역 개발이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1998년 2기 민선시장으로 부임한 백재현 시장(현 지역 국회의원)은 부임 다음 해 시청 직원들에게 가학산에 있다는 옛 광산 일대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조사는 막 신설된 시청 정책개발팀이 맡았다.

설계도도, 길잡이도 없었다. 당시 42세 팔팔한 나이로 팀장 직무대리를 맡고 있던 최봉섭 현 시민행복국 국장이 탐험에 앞장섰다. 진입로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하던 터라 우선 칡넝쿨을 잡고 기어 올라가 산 정상 부근에 있는 사갱(비스듬한 갱도) 입구에 이르렀다. 다음번에는 헬멧과 로프 등 장비를 챙겨왔다. 나무에 로프를 묶고 최 팀장이 다시 앞장을 섰다. 무시무시한 기분이 들었지만 일은 일이었다. 로프 한 가닥에 몸을 의지해 한참 내려가니 수십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공간이 나왔다. 거기서부터 아래쪽으로는 마치 잔잔한 호수처럼 갱도가 물에 잠겨 있었다. 수평 방향으로 이어진 다른 갱도를 따라가 보니 새우젓 저장고와 과거 광산의 정문으로 쓰이던 입구 쪽으로 이어졌다. “동굴이 생각보다 크고 미로처럼 복잡하게 돼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고 최 국장은 기억한다. 정책개발팀원들은 이후 동굴을 샅샅이 탐사해가며 도면을 그렸다. 수소문 끝에 광업진흥공사가 보관 중이던 갱내도를 입수했다.



인내로 꽃을 피운 동굴 개발

이렇게 만들어진 ‘가학광산 개발 정책보고서’는 광산과 일대의 그린벨트 지역을 포함하는 대형 테마파크를 그렸다. 약 500억 원의 투자금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다. 광산 테마파크, 워터파크, 실내 스키장 등이 이 프로젝트에 포함됐다. 하지만 광명 같은 중소도시 입장에선 그만한 투자 프로젝트를 진행할 여력이 부족했다. 개발 계획은 일단 보류됐다. 그렇게 10여 년이 흘렀다. 선거철마다 시장, 국회의원 후보들은 이 보고서를 토대로 가학광산(시흥광산) 개발을 공약에 포함했지만 예산과 사업성 문제로 실행까지 옮기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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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민선 5기 양기대 시장이 부임하고서야 일이 진척되기 시작했다.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정치인이 된 양 시장은 이 지역 국회의원 선거에서 두 번 낙선한 후 세 번째 도전에서 비로소 성공을 거둔 참이었다. 그는 일단 기존 가학광산 개발 보고서를 토대로 공약을 만들었지만 부임 한 달 후 광산에 직접 들어가 보고 나서는 머릿속에 그림을 새로 그려갔다.

보통 광산이라 하면 풀풀 날리는 검은 석탄재와 비좁은 통로,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토사가 연상된다. 하지만 가학광산은 입자가 무른 석탄이 아니라 단단한 금속을 캐던 곳이다. 워낙 단단한 화강암 암반에 구멍을 뚫은 것이라 광산 전체에 침목 하나 없어도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석탄재 같은 것도 없어서 공간도 쾌적했다. 또 충분히 넓었다. 조금만 길을 넓히면 메인 갱도에는 작은 트럭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였다. 양 시장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건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주변 지역의 개발 필요성이 절박해진 상황이라 광산 재개발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당시 KTX 광명 역사가 종착역에서 중간역으로 계획이 변경되면서 지역 개발에 활력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광명동굴이 딱 거기에 필요한 프로젝트였다”고 그는 설명한다.

양 시장은 일단 땅부터 확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과거 광명시가 고려했던 계획은 민간자본과 함께 대규모 테마파크를 개발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민간과 합작하면 대규모 투자가 가능하지만 공공사업으로 진행할 때보다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고 규제 관련 이슈도 복잡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당장 그린벨트 지역의 개발은 경기도와 중앙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항인데 프로젝트에 민간자본이 참여하면 허가 절차가 복잡해진다. 양 시장은 우선 빠른 업무 진행을 위해 민간자본 없이 시 단독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특히 토지부터 빨리 매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다음 해 예산에 43억 원의 폐광 매입비를 편성했다. 계약은 2011년 1월에 체결됐다. 시장이 동굴을 방문한 지 5개월 만이었다.

세 번째 작업은 폐광에 좋은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었다. 신문기자 출신답게 양 시장은 이름 선정에 민감하게 고민했다. 원래 이 광산의 이름은 시흥광산이었고 광명시가 시흥시에서 독립해 나온 후에는 가학광산으로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가학’이라는 말이나 ‘광산’ 혹은 ‘폐광’이라는 말 모두 관광객에겐 좋은 인상을 줄 것 같지가 않았다. 여러 후보를 놓고 고민하던 중 오종우 한국동굴학회장으로부터 “자연동굴이나, 인공동굴이나 다 같은 동굴이니 동굴이라고 부르는 건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들었다.1 그럴듯했다. 동아일보 옛 동료들도 같은 의견을 줬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당시로써는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무릎을 치게 만드는 발상이었다. 광명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친근감을 줬고 또 동굴의 위치를 쉽게 알리는 효과도 있었다. 발음도 예뻤다. 한국어에서 ㅇ과 ㄹ 받침은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 자연스럽게 새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달라붙었다.

약 8개월간의 준비작업을 거쳐 2011년 8월 처음으로 동굴이 일반에게 공개됐다. 하루 두 번,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안전헬멧을 쓰고 동굴을 방문하는 방식이었다. 손님을 맞기 위해 새우젓 드럼과 40여 년간 부스러져 내린 흙을 깨끗이 치웠다. 바닥엔 깨끗한 돌을 깔고 천장엔 낙석방지망을 달았다. 전등도 가설했다. 별다른 콘텐츠 없이 약 400m 되는 갱도를 견학하는 코스였는데, 1년 내내 섭씨 12도 정도로 유지되는 갱도 안이 워낙 시원해서 방문객들의 반응이 좋았다. 8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입소문만으로 1만6000여 명이 동굴을 찾았다.

가장 고무적인 것은 동굴 내 넓은 동공에서 열었던 음악회였다. 처음 동굴을 탐사했을 때는 상당 부분 물에 잠겨 있던 공간이었지만 펌프로 물을 빼내고 나니 수십 명 이상 들어가는 가설 콘서트장을 만들 수 있었다. 자연적으로 메아리 효과가 나는 동공에서 펼쳐지는 국악, 오페라, 연극, 가요 등 각종 공연은 동굴 체험의 피날레였다.

개발 두 번째 해인 2012년에는 동굴 개발을 전담하는 테마관광과를 신설했다. 1999년 처음으로 폐광을 탐사했던 최봉석 팀장이 부임했다. 양기대 시장은 아예 테마관광과 직원들을 위해 동굴 앞에 간이 사무실을 차려줬다. 다른 일엔 신경 쓰지 말고 동굴을 성공시키는 데 전념하라는 뜻이었다. 본인도 6㎞ 정도 떨어진 시청을 오가며 현장 회의를 주재했다. 테마관광과는 스타트업처럼 기획부터 의사결정, 실행까지 빠르게 업무를 진행했다. 시장과 직원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일도 흔했다. 시장과 팀원들은 짬이 날 때마다 국내외 여러 관광지를 다니며 동굴을 어떻게 꾸밀지 아이디어를 모아왔다. 폴란드 소금광산, 대만 금광산 등에서 특히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다.(표 1) 이렇게 벤치마킹한 내용은 회의에서 진행 가부 여부를 결정한 뒤 시청공무원들이 직접 제작과 설치를 맡았다. 이들은 동굴에 맞는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는 자신들보다 더 전문성이 있고 더 열정이 있는 조직은 적어도 대한민국 안에는 없다는 자신감을 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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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30분 거리에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암벽 동굴이 있으며 은근히 볼거리도 있다는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2013년은 방문객이 40만 명에 달했다. 관광 불모지였던 광명시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2014년 초 조사기관에 의뢰해 광명시민 800명과 인근 뉴타운지역 주민 634명을 상대로 실시했던 여론조사 결과는 더욱 고무적이었다. 주민의 83%가 시의 동굴 개발 사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표 2)


다음 단계는 유료화였다. 애초에 가학광산 테마파크 개발 프로젝트는 지역 내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계획된 것이었으니 유료화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다만 민간자본 투입 없이 시의 예산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니만큼 지갑을 쥐고 있는 시의회와 기타 이해관계자들도 사업성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참고 기다려온 것일 뿐이었다.



유료화와 콘텐츠 다양화 전략

유료화 개시는 2015년 4월로 잡혔다. 시청 내 전반적인 분위기는 좋았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적적으로 연인원 40만 명이 방문하는 광명시의 대표 관광지, 아니 광명시 유일의 관광지가 됐는데 섣불리 입장료를 걷겠다고 했다가 도로 사람이 빠지고 을씨년스러워지면 어쩔 것이냐는 일부 시의원들의 반대가 있었다. 그만큼 동굴은 광명의 자존심 같은 존재가 돼가고 있었다. 양 시장과 테마관광과 직원들은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입장료를 받으면 40만까지는 몰라도 30만 명은 충분히 올 거라 생각했다. 양 시장은 한술 더 떠서 입장료를 국내 관광지로서는 높은 수준인 8000원으로 책정하자고 제안했다. 화들짝 놀란 시의원들의 반대로 결국 4000원선에서 타협을 봤지만 ‘기왕 유료화하는 것 제대로, 확실하게 하자’는 그의 의지는 직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사실 양 시장이나 테마관광과 직원들이 가격 결정, 타깃 세그멘테이션, 홍보전략 수립 등 마케팅 업무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에 따라 진행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공무원이지 경영전문가는 아니었고 어설프게 경영전문가 흉내를 낼 생각도 없었다. 어떤 사람들을 타깃으로 잡아야 할지도 감을 잡지 못했고 그런 불확실성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했다. 다만 무료 개방 기간 동안 가족 단위 관광객들과 연인들이 주로 찾는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조부모부터 손자손녀까지 3대가 함께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동굴 전체를 어떤 하나의 콘셉트로 통일해 꾸미는 것보다는 다양한 연령층과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각자 좋아하는 바를 찾아서 동굴을 즐길 수 있도록 콘텐츠도 다채롭게 준비하자, 그리고 반응을 보면서 조금씩 개선해나가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가격 측면에서도 콘텐츠 보강은 필요했다. 2014년 초 진행했던 광명시민 설문조사에서 약 50%의 시민들이 동굴 입장료로 1000∼3000원이 적정하다고 답한 바 있었다. 이것보다 더 많이 받기 위해서는 볼거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유료화 직전 4개월은 동굴 문을 닫고 직원들이 밤낮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콘텐츠 보강에 매달렸다. 시장도 하루 서너 차례까지 방문해 함께 회의를 했다.

이 기간 만들어진 구역들은 현재까지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예술의전당’(공연장) 옆에는 동굴에서 나오는 1급수 지하수를 이용해 수족관을 만들었다. 어떤 물고기가 이 물에 적응할지 몰라서 국내외에서 여러 희귀종을 사다가 일단 수조에 집어넣어 보고 살아남은 종들을 모아 전시했다. 또 황금광산이라는 역사를 살려서 일부 구간에는 벽과 바닥에 황금칠을 하고 ‘황금의 길’이라 이름 붙였다. 마치 절에서 기왓장 시주를 하듯 14K 도금판에 소원을 적어서 벽에 걸 수 있게 했다. 양 시장은 원래 이 아이디어에 반대했지만 실무 담당자였던 테마관광과 직원의 고집으로 기어코 황금의 길도 유료화 개장에 맞춰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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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4일, 드디어 유료 개장식이 열렸다. 4월 한 달간 3만7000명 이상이 찾아왔다. 날씨가 더워지고 또 TV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방문자는 빠르게 증가했다. 어린이날엔 무려 1만4000명이 들었다. 6월에 메르스 사태가 터지면서 상승세가 꺾였지만 그래도 연말까지 총관광객은 92만 명이었다. 무료 개방 때보다 오히려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였다. 2016년은 더욱 성공적인 한 해였다. 8월에 이미 방문자 100만을 돌파했고 연말까지 총 142만 명이 광명동굴을 찾았다. 특히 황금의 길이 인기였다. 한국, 중국 관광객들이 좋아했다. 5000원에 판매하는 소원성취 도금판은 2만 장이나 팔렸다.

성공에 도취될 만도 하지만 테마관광과 직원들은 쉬지 않고 콘텐츠를 추가해나갔다. 기온이 가장 낮은 지하층에는 ‘귀신의 집’을 열어 여름에만 운영하는 특별 어트랙션으로 만들었다. 또 영화 ‘반지의 제왕’ 특수효과를 맡았던 뉴질랜드의 웨타워크숍으로부터 길이 41m에 달하는 용 모형을 주문 제작해 들여왔다. 이 용은 워낙 거대해서 조각을 낸 상태로 동굴로 들여온 다음 내부의 동공에서 전문가들이 조립해야 했다. 웨타워크숍과는 업무 협약을 맺고 국내 최초의 ‘판타지 아트 공모전’을 3년째 광명동굴에서 개최하고 있기도 하다. 전국의 판타지 아티스트들에게 작품을 응모 받아 동굴 안에서 전시하고, 1등 수상자는 웨타워크숍 본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기회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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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성공을 거둔 코너는 와인동굴이다. 뒤편 깊숙한 곳에 와인셀러를 마련해놓고 전국 곳곳에서 생산되는 국산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와인동굴을 꾸몄다. 전국에 와인동굴을 만든 지자체는 여러 곳이다. 대부분 자기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주로 전시하는 데 반해 광명은 애초에 포도 농사를 짓지 않는 지역이므로 타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을 다양하게 구비했다. 방문객이 여러 종을 비교해가면서 시음해볼 수 있게 한 것이 히트를 쳤다. 한편 음악과 무용 공연을 하던 공연장은 콘텐츠를 변경했다. 2017년부터는 울퉁불퉁한 암벽의 질감과 레이저 영상을 이용한 ‘미디어 파사드’ 공연을 상영하고 있다. 동굴 관광객 수가 증가하면서 1회 공연 시간을 줄이고 관객 회전율을 높여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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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자원이 없는 지역이니 그냥 한번 해보자 해서 시작한 동굴 개발이지만 그렇게 하다 보니까 타깃층도 생겼고 콘텐츠도 차차 쌓이게 됐습니다. 사람들이 처음엔 ‘동굴에 기껏해야 종유석이나 있겠지’ 하고 방문하지만 실제로 방문해서는 곳곳에 꾸며놓은 다양한 콘텐츠들을 보고 그중에서 각자 자기가 공감하는 바를 찾는 것 같습니다.” 최 국장의 말이다.

확장은 동굴 내부로만이 아니라 동굴 외부에서도 진행됐다. 2016년 4월에는 동굴 입구에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인 장 누벨이 설계한 ‘라스코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원래는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를 가져와 한정기간 전시하기 위한 시설로 만들어졌는데 전시물이 워낙 거대해서 동굴 안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아예 따로 전시시설을 만들었다. 라스코 특별전이 끝난 이후에도 이 공간은 그대로 남아 연중 다양한 예술 전시들이 열리고 있다. 이는 문화시설이 부족했던 광명 일대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또 동굴과 마주 보는 쓰레기소각장 옆 홍보관 건물에는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업사이클아트센터’를 열었다. ‘업사이클’은 ‘업그레이드+리사이클’, 즉 버려진 물건에 예술적 가치를 더해 새롭게 재탄생시킨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소방관이 썼던 호스를 재활용해 만든 배낭, 와인병을 녹여 만든 친환경 양초 등을 전시하고 판매하고 있다. 광명동굴 자체가 100년 묵은 폐광에 콘텐츠를 더해서 재탄생시킨 ‘업사이클’ 콘텐츠라는 상징성이 있어서 업사이클센터를 나란히 배치한 것이다.



입장료 유료화 이후 약 1년8개월 동안 광명동굴은 누적 방문객 약 250만 명, 세외 수입 125억 원을 올렸다. 또 약 400명의 직원을 정규직과 파트타임으로 고용해 지역 경제에 공헌하고 있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동굴, 서울에서 30분 만에 갈 수 있는 동굴로 TV 방송에 수차례 소개되면서 적어도 수도권 서남부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는 명소가 됐다. 지방에서도 소문을 듣고 KTX나 차량 편으로 찾아오는 이들이 늘었다. 인천공항에서도 인천대교를 통해 50분 안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중국과 일본, 태국 등 해외 관광객도 꾸준히 오고 있어 이들을 위한 외국어 가이드도 상시 고용하고 있다.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권 중저가 숙소에서 묵는 해외 단체 관광객들에게는 공항에 가기 전에 쉽게 들를 수 있는 위치다. 동굴 사업이 확대되면서 2012년 10명 안팎으로 시작했던 테마관광과도 30명으로 수가 불어났다. 이름도 ‘글로벌관광과’로 바뀌었다. 이제는 동굴뿐 아니라 인근의 쇼핑시설과 전통시장, 오리 이원익 서원 등을 연결하는 광명시 전체 관광 프로그램의 개발과 운영을 맡고 있다. 관광 불모지였던 광명이 경기도의 ‘핫’ 한 명소로 거듭나고 있는 중심에 광명동굴이 있다.

밧줄을 몸에 두르고 동공으로 뛰어내렸던 1999년부터 폐광이 관광 테마파크로 변하는 과정과 함께해온 최봉섭 국장은 감회가 남다르다. “KTX 광명역이 처음에는 KTX 시발역으로 계획됐지만 중간역으로 변경되면서 이 지역은 허허벌판으로 방치돼 있었습니다. 동굴은 완전히 폐허였죠. 쓰레기 소각장 하나 있는 곳에 누가 오겠나 싶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역경들을 다 이겨낸 겁니다.”



광명시는 2011년부터 현재까지 토지 매입, 주차장과 도로 건설, 각종 콘텐츠 개발 등 광명동굴 사업에 시 예산 약 570억 원을 투자했다. 국비 39억 원, 도비 199억 원을 포함하면 총투자비는 810억 원 정도다. 한편 동굴의 입장료 등 현장에서 발생하는 수입은 2015년 40억 원, 2016년 85억 원이었다. 광명시가 한국산업관계연구원에 의뢰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앞으로 30년간 매년 약 137억 원의 수입이 발생하고 비용을 제한 순수익은 연 60억 원 정도일 것으로 추산된다. 이를 토대로 산정한 광명동굴의 현재가치(present value)는 1530억 원이다. 투자 대비 2배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광명동굴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정해진 것은 없지만 민간자본과의 합작 투자를 포함해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다. 2017년 6월까지 동굴 내외부의 콘텐츠 구비는 완료된다. VR(가상현실) 체험관, 미디어관, 타임캡슐 등이 추가되면 당분간 큰 업그레이드는 없을 예정이다. 다만 시청 측은 장기적으로 동굴과 KTX 역사가 위치한 광명시 남부지역 전체를 개발해나간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미 약 2㎞ 떨어진 역사와 이케아, 코스트코 매장 주변에 30∼40층을 넘나드는 고층 아파트와 상업시설들이 들어서고 있으며 동굴 인근까지도 개발 계획을 세우고 있다. 광명역사와 서울 사당, 양재를 잇는 강남순환고속도로 개통도 이미 지역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있다.

2017년 5월 현재 광명동굴 앞 진입로는 2차로에서 4차로로 확장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국도변에 여분의 주차장을 확보하는 공사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수용용량에 비해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서 주차장에 들어가는 줄이 수백m 이어졌던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올해의 목표는 방문객 200만 명이다. 칡넝쿨에 뒤덮여 새우젓 창고로나 쓰이던 폐광이 불과 6년 만에 광명시의 자랑으로 떠올랐다. 시청 공무원들의 힘이다.



성공요인 분석

광명동굴의 성공사례는 공공영역뿐 아니라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요 포인트를 정리해본다.

1. 최소 충족 조건부터 맞춘 린 스타트업

광명시 남부 그린벨트 지역에 있는 가학광산은 개발 잠재력이 큰 관광 아이템이었다. 광명, 서울, 인천, 안산, 시흥, 안양 등 30분에서 1시간 거리 안에 수백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수도권 서남부 지역에는 타 지역에 비해 볼거리, 즐길거리가 적기 때문에 관광지로서의 경쟁에도 유리했다. KTX 역사 개통(2004), 인천대교 개통(2009), 이케아 입점(2014) 등 주변 호재도 충분했다. 그러나 이런 장점들이 실제 개발사업에는 오히려 저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었다. 지역 개발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은 게 문제였다. 1999년 작성된 정책보고서는 500억 원 이상의 민관합동 투자를 전제로 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KTX 역세권 개발이 시민들의 기대보다 뒤처지자 이 지역의 다른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회의론이 일었다. 동굴 개발 사업계획 역시 10년 이상 캐비닛에서 잠자는 신세가 됐다.

2010년 부임한 양기대 시장은 전임자들과는 달리 눈높이를 낮추고 시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 진행하는 방식을 택했다. 동굴 자체의 잠재력을 두 눈으로 확인하자 40억여 원의 시 예산을 들여 부지부터 매입했다. 매입된 토지는 어차피 시의 자산이 되는 것이므로 의회도 반대하지 않았다. 광산이 시의 소유가 되니 그다음부터는 신경 써야 할 요인들이 줄고 일이 술술 풀렸다. 민간자본이 개입되는 사업이었다면 그린벨트 개발 허가를 받거나 경기도와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문제도 훨씬 어려웠을 것이고 시간에도 쫓겼을 것이라는 게 양 시장과 최 국장의 견해다. 또 직원들에게는 ‘이 광산은 우리 것’이라는 주인의식을 심어주는 효과도 있었다.



최 국장은 이것이 가장 결정적인 성공요인이자 ‘티핑포인트’였다고 생각한다. “제가 정책 개발을 오래 해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10년 시장님이 땅을 매입해서 개발해보겠다고 나섰을 때였습니다. 그걸 보고 속으로 ‘그렇지, 개발은 저렇게 해야 하는 것인데’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이 굉장히 잘했던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잘못 끼운 단추를 처음부터 다시 맞춘 셈이다.

2. 린스타트업(lean startup)형 조직

토지를 매입한 후 테마관광과는 서두르지 않고 동굴을 단계별로 정돈하고 꾸며나갔다. 일부 구간들을 시민들에게 개방해서 피드백을 받았고 입소문을 유도했다. 2015년의 유료화는 그 이전 4년간의 준비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자본을 퍼부어서 화려한 관광지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새로운 콘텐츠를 실험해보고 기획을 업그레이드해가면서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방식이 주효했다. 테마관광과를 시청에서 분리해 동굴 앞 간이 사무실과 쓰레기 소각장 내부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한 것도 린스타트업 다운 발상이었다. 자동차로 20분 이상 걸리는 시청에서 근무하면 그때그때 동굴 콘텐츠를 기획해서 빠르게 실험해보고 피드백을 수집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런 린스타트업 방식을 적용하다 보니 초창기에는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과감하게 폐지하거나 변경한 아이템들도 있다. 일례로 ‘예술의전당’이라는 동공에서 벌어지는 예술 공연들은 오픈 초기 광명동굴의 대표 상품이나 다름없었지만 이용객이 많아지고 관람객 동선(動線)의 흐름에 방해가 되자 과감하게 ‘미디어 파사드’ 레이저쇼로 전환했다. 가학산 정상 부근의 외부 전망대로 이어지는 사갱 역시 동굴 개방 초기에는 주요 어트랙션으로 홍보했지만 방문객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미련 없이 접었다. 이미 투자된 돈, 즉 매몰비용에 대해서 아까워하고 책임을 묻기보다는 미래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렇게 일반적인 공무원 조직과는 다른, 민첩하고 날씬한 조직 운영이 가능했던 것은 양 시장이 직원들에게 스타트업과 같은 사고의 유연성을 독려했기 때문이다. 광명시청에서 이렇게 현장에 상주하는 조직은 테마관광과가 유일했다. “어차피 가보지 않은 길이었고 경험도 없었습니다. 교과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예산도 풍족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조금씩 써가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회의를 통해 계획을 수정하는 식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말이다.

3. 핵심 업무영역과 비핵심 영역의 분리

광명동굴 개발은 외부 전문가가 아닌 광명시청 공무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했다. 이들 중 원래부터 동굴 전문가나 테마파크 전문가였던 사람은 없다. 대신 내부 단면도부터 하나씩 손으로 그렸을 정도로 누구보다도 광명동굴에 대해서는 잘 알고, 또 애착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벤치마킹 대상을 선정해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콘텐츠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고, 피드백을 수집해 업데이트하는 것 역시 시청 테마개발과(현 글로벌관광과)의 주 업무였다. 팸플릿 등 홍보물을 만들 때도 외주 업체에 아이디어만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담당한 직원이 가안을 만들고 마지막 터칭만 외부 업체가 손보는 정도였다. 그 결과 초기부터 근무했던 직원들은 지자체 테마관광 전문가로서 어디서도 찾기 힘든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현재 광명동굴 콤플렉스에서 근무하는 약 400명의 직원 다수는 광명시 시설관리공단 소속이지만 콘텐츠를 담당하는 해설사들만큼은 광명시청에서 직접 고용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동굴만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라스코 전시관’ 및 광명시 인근의 다른 관광지에 대한 안내도 맡는다.

이렇게 테마공원의 핵심 영역인 콘텐츠 기획과 운영은 철저히 시청에서 맡고 비핵심 영역에서는 외부기관과의 파트너십도 적극 추진한다. 당시 광명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소속 정당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두 리더는 동굴 개발에 의기투합했다. 또 KTX 역사 주변에 아웃렛 매장을 낸 롯데그룹이 지역사회에 대한 보답의 뜻을 밝히자 가학산을 둘러서 동굴까지 이르는 산책로를 달릴 코끼리열차를 기증하도록 주선했다. 이 열차는 아웃렛 방향과 동굴 방향을 이어주므로 양측에게 윈윈이 되는 사업이다. 또 프랑스 라스코 전시회 유치, 뉴질랜드 웨타워크숍과의 협업도 광명동굴 관계자들의 오픈마인드에서 비롯된 파트너십이었다.



4. 네이밍(naming)

서비스업도 브랜드가 중요한 시대다. 특히 입소문을 많이 타는 관광산업의 경우 작명에서부터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중국 윈난성의 디칭 주정부는 1997년부터 지명을 ‘샹그릴라’로 바꿨다. 샹그릴라는 영국의 제임스 힐턴이 1933년 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가상의 지명이다. 디칭과는 연관이 없는 이름이었는 데도 불구하고 이후 이 지역을 찾는 외국 관광객이 연평균 25%씩 성장했다.

광명동굴은 샹그릴라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발음이 귀엽고 기억하기에 좋은 이름이다. ‘가학광산’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가 없다. 또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곳이니만큼 지자체의 이름을 알린다는 효과도 있다.

흔히 지자체들이 만드는 관광자원들은 스토리텔링에 대한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작명에 과도한 힘이 들어가곤 한다. 신문기자 출신 시장이 결정해서일까. ‘광명동굴’은 장식성보다는 실용성에 초점이 있다. 또 단순하기 때문에 다양한 콘텐츠로의 변주(變奏)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실제로 처음 고려됐던 이름 중에는 ‘광명황금동굴’도 있었지만 너무 이미지가 굳어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광명동굴’로 최종 결정됐다. 앞으로 추가 개발에 있어서도 가능성을 넓게 열어놓은 셈이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생각해볼 문제

1 광명동굴의 경제성 분석을 한 전문평가기관은 향후 30년간 약 60억 원의 연간 순이익이 들어올 것으로 전제하고 할인율(discount rate)은 공공 부문 대출이자율인 3.89%로 잡아서 순현재가치(net present value)를 계산했다. 그래서 동굴의 가치를 약 1500억 원으로 평가했다. 이 분석에 사용된 가정들은 충분히 합당한가? 만약 내가 시청 재무담당자라면, 혹은 지분투자를 하려는 기업 경영자라면 어떤 점을 더 고려해야 할까?

2 동굴 외에는 별다른 관광지가 없는 광명시가 동굴개발사업에서 키운 조직원들의 노하우와 역량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3 테마파크 방문객의 고객생애가치(customer lifetime value)를 최대화하기 위한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DBR mini box



위치: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광명 KTX역 서편 가학산 그린벨트 구역 내)
채광물질: 금, 은, 동, 아연
갱도 길이: 지하 7층까지 총연장 7.8㎞ 중 2㎞ 구간 개방
연 방문객: 142만 명 (2016년)
고용인원: 약 400명
수익: 85억 원 (2016년)


연혁

1912년 채굴 시작
1972년 폐광
1999년 최초 탐사, 가학광산 개발 정책보고서 작성
2011년 1월 광명시가 광산을 매입
2011년 8월 시범 개방. 5개월간 방문객 1만6000여 명
2012년 9월 테마개발과 신설 (동굴 개발 전담)
2015년 4월 유료 개장. 첫 달 방문객 3만7641명
2016년 4월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 전시회
2017년 1월 ‘대한민국 100대 관광지’ 선정
동아비즈니스리뷰 298호 Future Mobility 2020년 6월 Issue 1 목차보기


지평막걸리 성장전략




DBR Case Study: 막걸리 인식 바꾼 ‘지평주조’의 성장 전략

동네에서 전국구로
막걸리의 지평을 넓히다

Article at a Glance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도 수십 년 동안 동네 양조장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던 지평주조가 최근 10년 사이 메이저 막걸리 업체로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외부에서는 지평주조의 약진을 ‘마케팅의 성공’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정작 내부의 평가는 다르다. 김기환 대표이사는 지평주조의 성공을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지평주조는 ‘맛의 표준화’를 목표로 소규모 양조장으로는 드물게 생산 공정을 자동화하고 좋은 맛을 내는 미생물을 연구해 지평막걸리의 맛을 업그레이드한다. 또 영업에서도 대리점과의 상생 등 기본 원칙들을 지켜나간다. 이 과정에서 지평막걸리만의 깔끔한 맛에 반한 젊은 소비자들이 지평막걸리를 나서서 SNS에 홍보하고 대리점들과의 관계도 좋아지면서 업계 최초로 전국 유통망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평주조 측은 이는 결과일 뿐 비결은 ‘원칙을 지키는 것’에 있다고 강조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미라(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허름한 뒷골목 선술집에서 싼 맛에 먹는 중장년층을 위한 술.’

우리가 막걸리에 대해 갖는 일반적인 이미지다. 하지만 이런 막걸리가 와인이나 맥주를 누르고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시기가 있었다. 2010년을 전후해 막걸리가 일본에서 ‘맛코리(マッコリ)’란 이름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일본의 사케(약 14∼16%)보다 낮은 알코올 도수(약 5∼6%)로 술이 약한 사람도 즐길 수 있고 피부와 건강에 좋은 발효 식품이라는 인식이 일본에 널리 퍼진 덕분이다. 또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맥주 공장들이 가동을 멈추는 바람에 일본 맥주 공급에 차질이 생겼는데 그 반사이익을 막걸리가 얻기도 했다. 여기에 당시 일본 내 불었던 한류 열풍도 일본 내 막걸리 인기에 한몫했다. 덕분에 막걸리 수출량이 큰 폭으로 늘었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막걸리 수출 물량은 2009년 7405t에서 2011년 4만3082t으로 6배 이상 증가했다.

이 일본발(發) 막걸리 훈풍은 현해탄을 건너 한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막걸리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주점이 홍대·강남 등 번화가에 줄줄이 생겨났다. 막걸리 인기에 출고량도 크게 늘었다. 막걸리 출고량은 2009년 17만6000㎘에서 2010년 26만1000㎘로 1년 새 47.8%나 증가했을 정도다.

하지만 막걸리의 봄은 짧았다. 인기는 금세 사그라들었고 막걸리 시장은 다시 쪼그라들었다. 2011년 5079억 원(출고액 기준)이던 막걸리 시장 규모는 2017년 4469억 원으로 감소했다. 막걸리 수출액도 2011년 5273만 달러(약 620억 원)로 고점을 찍은 뒤 2018년 1241만 달러(약 146억 원)로 빠르게 감소했다. 한일 관계 냉각화 등 여러 원인이 있지만 영세한 국내 막걸리 양조장들의 전략 부재와 마케팅 역량 부족이 큰 원인 이었다. 특히 막걸리의 품질과 맛에 집중해 고급화를 시도하기보다는 막걸리 열풍에 편승하고자 가격 경쟁에만 매몰되면서 질 낮은 재료를 사용한 싼 막걸리들이 시장에 많이 나왔고 이는 소비자들의 실망으로 이어졌다. 막걸리 시장은 반짝 인기 후 장기 침체기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막걸리 시장의 침체 속에서도 모든 막걸리 제조업체가 다 어려워진 것은 아니다. 시장 상황과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성장한 회사가 있다. 지평주조가 그 주인공이다. 지평주조는 막걸리 붐이 한창이던 2010년 당시 매출 2억 원을 올리는 동네 양조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0년 김기환 현 대표이사가 회사를 맡은 후 불과 9년 만에 매출액 230억 원(2019년 추정 매출액)을 올리는 막걸리 업계 강자 중 한 곳으로 성장했다. 특히 이 회사의 성장세에서 놀라운 점은 기존 막걸리의 주요 고객인 50대 이상 장년층이 아닌 2030 젊은 세대의 입맛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더불어 기존 막걸리 업계 강자인 서울탁주나 부산생탁도 못한 전국 유통망을 경기도 작은 마을의 양조장이 구축했다는 점도 이 회사가 최근 주류 업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다. 지평주조가 짧은 기간에 막걸리 시장의 메이저 플레이어로 떠 오른 비결을 DBR이 분석했다.




연 매출 2억 원에 직원 3명인 동네 양조장을 물려받다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지평리에 위치한 지평주조 양조장은 1925년에 생겼으며, 현재 막걸리를 생산 및 유통하는 양조장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됐다. 특히 이 양조장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사령부로 쓰이기도 했고 치열했던 지평리전투에서도 유일하게 포탄의 피해를 입지 않고 보존된 건물이다. 그래서 2014년에는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역사적 가치만큼이나 스토리도 있는 양조장이다.

하지만 2010년 전까진 지평주조는 그저 그런 지역 양조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역사적 가치와 스토리를 품고 있었고 맛이 좋은 막걸리를 만들고 있었지만 김동교 전 대표(김기환 현 대표의 아버지)는 막걸리 사업을 크게 키울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김동교 전 대표는 막걸리 사업을 정리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돈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화가 일어난 건 김기환 대표가 지평주조의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면서부터다. 2010년 김기환 대표가 아버지로부터 양조장을 물려받을 당시 지평주조의 연 매출은 2억 원, 직원 수는 3명에 불과했다.
사실 김동교 전 대표는 아들에게 막걸리 사업이 아닌 미곡종합처리장(RPC) 사업을 맡기고 싶었다. 사업 규모나 수익 면에서 월등했기 때문. 그러나 김기환 대표는 무슨 이유인지 꼭 막걸리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는 양조장 사업에 욕심을 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려서부터 우리 양조장 막걸리가 맛 하나만큼은 좋다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2009년 전후로 막걸리 붐이 불면서 전국에 시음 행사가 많이 열렸고 아버지도 우리 제품을 들고 참가하셨는데 가는 곳마다 맛으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젊은 층의 호응이 좋았다. 그래서 젊은 층을 타깃으로 막걸리를 팔면 되겠다 싶었다.”

결국 아들은 아버지를 설득했고 새로운 방식으로 젊은 소비자들을 공략하겠다는 아들의 뜻에 아버지는 “망해도 좋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라며 양조장 운영을 맡긴다. 하지만 회사를 물려받았을 당시 김 대표의 나이는 29세. 사회생활 경험이라고는 서울에서 홍보대행사에 잠깐 다닌 것이 전부였다. 막걸리는 먹을 줄만 알았지 만드는 법도, 파는 법도 잘 몰랐다.

이때부터 김 대표는 막걸리와의 동거를 시작한다. 김 대표는 일단 막걸리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전문 교육기관에서 양조 교육을 받았다. 또 경험 많은 양조장 직원들과 함께 새벽에는 직접 밀 입국(粒麴, 곰팡이 배양) 온도를 맞춰가며 밤잠을 설쳤다. 이즈음 김 대표는 결혼을 하게 됐는데 신혼살림도 양조장 한편에 차렸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막걸리 배우기에 임했다.

동시에 김 대표는 자신의 홍보대행사 경험을 살려 먼저 양조장 일부를 개조해 지평주조 홍보관을 만들었다. 양평에 놀러 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양조장으로 끌어오려는 시도였다. 양조장 자체가 문화유산인 데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지휘소로 쓰인 역사가 있어 역사적인 가치와 스토리를 막걸리에 입혀 매력적인 관광명소를 만들고자 했다. 또 종전 60주년을 기념한 특별 막걸리 ‘자유를 위하여’도 출시했다. 막걸리 업계에선 신선한 시도라고 받아들여졌고 실제 양평에 놀러 왔다 지평주조 홍보관을 들러 막걸리를 사가는 외지 손님들이 생겼다. 하지만 김 대표의 초반 시도는 그리 성공적이진 못했다. 전통주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겉 포장만 바꾸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김 대표는 포장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은 내실을 다져야 했다.


원칙을 지키며 판로를 개척하다

직원 3명이 전부인 동네 양조장이 내실을 다지기 위해선 무엇부터 해야 할까.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판로 개척’이었다. 지평주조는 앞서 말한 대로 2010년 당시 양평 일대에 막걸리를 공급하는 동네 양조장이었다. 달리 유통망이라고 할 것이 없었다. 당시 막걸리 시장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그 지역을 대표하는 막걸리 브랜드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다. 서울의 장수막걸리, 부산의 부산생탁, 인천의 소성주, 대구의 불로막걸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과 비교하면 지평막걸리는 지역 특산 막걸리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판로 개척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류 시장은 수없이 많은 도매상과 소매상이 존재한다. 판매 채널도 식당과 술집부터 대형마트, 소형 슈퍼마켓, 편의점 등 다양하다. 지평주조는 일단 양평군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수도권 동쪽 상권에 도매상들을 접촉해 지평막걸리를 유통하고자 했다. 하지만 도매상 입장에서 이미 잘 거래하고 있는 곳들이 있는데 굳이 잘 알지도 못하는 새로운 막걸리 브랜드를 취급할 이유가 없었다. 김 대표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결국 김 대표는 직접 막걸리를 차에 싣고 지평막걸리를 소개하고 다녔다. 원래 법적으로 주류 제조사가 직접 술을 판매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그러나 전통주는 예외다. 전통주 양조장들이 워낙 영세해 정부에서 예외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밤에는 막걸리를 만들고 낮에는 막걸리 배달을 다녔다. 매출액 2억 원짜리 소규모 양조장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힘든 시기였지만 김 대표는 이때부터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이를 철저히 지킨다.


1.제대로 만들어 제값 받고 팔겠다.

첫 번째는 가격 경쟁이 아닌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원칙이다. 지평주조의 지평막걸리는 2010년 막걸리 붐 당시 서울시내 막걸리 바에서 병당 7000∼9000원에 팔렸다. 이는 일반 대중 막걸리에 비하면 2배 가까이 비싼 가격이다. 소매가 역시 장수막걸리 등 대형 막걸리 업체의 제품보다 비쌌다. 수도권 진입을 노리는 입장에서 막걸리 가격을 높게 가져가는 것이 부담일 수도 있다. 막걸리는 대표적으로 가격에 민감한 술이기 때문이다. 2010년 당시 막걸리 붐을 타고 고급 막걸리 바(Bar)도 생기고 프리미엄 막걸리들이 탄생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막걸리는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허름한 식당에서 마시거나 동네 슈퍼에서 구입해 집에서 마시는 술이었다. 전대일 지평주조 경영전략본부장은 “이런 소비자 가운데는 막걸리 가격이 100원만 싸도 1㎞ 이상 먼 슈퍼마켓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처음부터 장년층 소비자들은 지평주조의 주요 타깃 소비층이 아니라고 봤다. 그래서 초기부터 맛, 스토리, 브랜드에 만족하면 기꺼이 조금 비싼 가격도 지불할 수 있는 젊은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하고 이를 꾸준히 밀어붙였다. 사실 당시만 해도 전체 막걸리 시장에서 지평주조와 같은 가격으로 시장에 포지셔닝한 브랜드들은 많지 않았다. 이들이 전체 막걸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남짓에 불과했다. 당시로써는 매우 니치한 시장이었지만 지평주조는 꾸준히 준프리미엄 전략을 이어간다. 다행히 ‘저도주’ 열풍이 불고 ‘레트로 트렌드’가 인기를 얻으면서 지평주조가 타깃으로 했던 니치 마켓은 ‘리치 마켓(Rich market)’이 된다. 그리고 현재도 지평막걸리는 시장에서 준프리미엄 제품으로 구분돼 팔리고 있다. 일반 막걸리들과 경쟁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기보다는 맛과 품질을 높여 제 가격을 받고 팔겠다는 김 대표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DBR Mini Box Ⅰ ‘막걸리 시장에서 지평주조가 갖는 브랜드적 위치는?’ 참고.)


DBR mini box I: 지평주조의 브랜드적 위치

현재 막걸리 시장은 4개 카테고리로 구분돼 있다. 첫 번째는 대규모 시설을 갖춘 막걸리 업체다. 수도권의 장수막걸리, 인천의 소성주, 대구의 불로막걸리, 부산의 생탁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업체는 가장 대중적인 시장에 맞춰 막걸리를 만드는 업체로 최선의 가성비를 내기 위해 노력한다. 한국 막걸리 시장의 9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두 번째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소규모 지역 막걸리다. 대표적으로 부산의 금정산성막걸리, 당진의 신평양조장, 고양시의 배다리막걸리, 그리고 지평주조다. 10년 전 막걸리의 다양성을 알리며 붐을 일으켰던 곳으로 지역의 맛과 멋, 무엇보다 다양한 스토리를 품은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국산 쌀로 술을 빚으며 한식 주점 등에서 일반 막걸리의 2배 전후 가격을 기꺼이 지불하고 마시는 막걸리다. 대규모 양조장의 경우 유통망이 촘촘해 관리가 편하지만 이러한 막걸리는 소량으로 유통이 안 되고 무엇보다 재고가 남는 경우 처리가 곤란했다. 서울에서 막걸리 몇 병 남았다고 재고가 필요한 부산에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따라서 희소성 및 지역의 가치를 인정하는 트렌드세터들은 다소 높은 가격을 기꺼이 지불했다. 일반적인 막걸리가 1000원대라면 이 막걸리의 소매가는 2000원이 넘는 경우가 많았으며 외식 업체에서는 주로 5000∼9000원에 판매됐다.

세 번째는 트렌드라는 옷을 입은 ‘크래프트 막걸리’ 등이다. 젊은 감성으로 무장한 크래프트 막걸리는 기존의 막걸리가 가진 전통적 권위를 버리고 새로운 디자인에 맛과 멋으로 무장한 제품이다. 디자인만 보면 막걸리라고 생각하기 어렵지만 만드는 방식은 오히려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수제품으로 막걸리 자체의 가치에 중점을 둔다. 대표적으로는 단양의 도깨비 술, 서울의 나루생막걸리, 여주의 술아 핸드메이드 막걸리, 시뻘건 막걸리로 유명한 술 취한 원숭이, 복순도가 막걸리 등이 있다. 소비자 가격은 6000∼1만 5000원으로 외식업체에서는 1만∼3만 원가량에 팔리고 있다.

네 번째는 문화적, 기술적 가치를 뽐내고 싶은 고가 프리미엄 막걸리 라인이다. 병당 1만∼5만 원대의 막걸리로 원료를 아낌없이 사용하며 숙성 기간도 길게 가져간 제품이다. 지역의 햅쌀만을 고집하며 만드는 방식조차 전통적 문헌에 근거한 제품들이 많다. 트럼프 만찬주로 유명한 풍정사계 춘, 아세안 정상회의 건배주인 천비향, 아름다운 정원의 해창막걸리, 송도의 삼양춘, 안동의 별바당 등이다. 소비자 가격은 1만5000원이 넘으며 외식 업체에서는 2만∼7만 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다.“이렇게 고급 막걸리가 시장이 있나”라는 의문이 있지만 의외로 많이 팔린다. 와인은 와인 바에서 5만 원이면 저가에 속하지만 막걸리는 같은 가격이면 최상급을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막걸리들을 판매하는 곳조차도 와인 바 이상의 좋은 인테리어를 갖춘 강남, 홍대 등의 핫 스폿에 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지평막걸리는 두 번째 카테고리인 역사와 전통이 있는 지역의 소규모 양조장이었다. 그리고 이 시장은 원래 전체 막걸리 시장의 1% 정도의 틈새시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업계 1위를 위협할 정도의 기세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뜻은 막걸리 시장 자체가 더이상은 가성비가 아닌 가치를 따지는 프리미엄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2.유통업계 관행을 바꾼 고마진 정책

또한 김 대표는 대리점과의 상생을 회사의 원칙으로 삼고 꾸준히 실천한다. 지평주조는 초기 대리점 대상 영업을 시작하면서 경쟁사 막걸리보다 높은 마진을 약속했다. 이런 고마진 정책이 가능한 이유는 크게 2가지 이유 덕분이다. 일단 앞서 언급한 대로 지평주조가 준프리미엄 제품으로 고객들에게 인식돼서 조금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 큰 역할을 했다. 막걸리 유통업계는 병당 100원, 50원 떼기의 초저가 이윤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다른 어떤 가치보다 낮은 가격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김 대표는 처음부터 무리한 가격 경쟁 대신 지평막걸리를 준프리미엄급 막걸리로 포지셔닝하면서 대리점주들에게 돌아갈 몫을 늘렸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지평주조가 대리점에 판촉비 등을 전가하지 않고 공급 가격을 최대한 낮춰줬기 때문이다. 덕분에 도매상은 물건을 상대적으로 싸게 매입하게 되고 마진을 더 가져갈 수 있는 구조가 됐다.

그렇게 2010년부터 준프리미엄 가격 전략과 대리점 고마진 정책을 유지하자 대리점주들의 인식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얼마 남지도 않는 막걸리를 뭐 하러 거래선을 바꾸냐?”고 퉁명스럽던 대리점 사장들이 “지평막걸리 팔면 돈이 많이 남는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서서히 지평막걸리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처음엔 다른 막걸리 제품과 병행해서 취급을 하던 대리점들이 같은 양을 팔면 지평막걸리가 이윤이 많이 남는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지평막걸리만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체계도 없고, 네트워크도 없었지만 스스로 세운 원칙을 지키며 꾸준히 발품을 판 덕분에 지평주조의 매출액은 2억 원에서 2014년 28억 원, 2015년 45억 원까지 늘었다. 이렇게 5년 사이 조금씩 시장을 늘려나간 지평주조는 2014년경에는 용인, 수원, 여주, 이천 등 수도권 동남부와 송파 등에 대리점을 갖게 됐다.



막걸리는 손맛? 막걸리는 과학이다!

열심히 발품을 팔며 지평막걸리를 알린 덕분에 매출액은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2014년경,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는 성장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일단 늘어나는 주문을 감당하기에는 기존 양조장은 너무 작았다. 지평주조 양조장은 1920년대에 지어진 목조 건물이었다. 이 건물에서 막걸리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밀 입국을 만들고 고두밥을 지어 이를 항아리에 넣고 발효시켜 술을 담그는 전통 방식으로 막걸리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생산량을 크게 늘리기 어려웠다.

더 큰 문제는 막걸리 맛이 균일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양조장들은 대부분 수십 년 동안 막걸리를 담가 온 소위 ‘장인’들의 손맛에 따라 맛이 좌우된다. 문제는 사람의 손맛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 특히 막걸리는 같은 원재료와 물을 써도 온도 등 외부 변수에 의해 맛이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과거에는 막걸리 맛이 그때그때 다른 것이 막걸리의 매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국구 막걸리를 목표로 하는 막걸리 전문 제조업체가 소비자에게 “우리 막걸리는 그때그때 맛이 조금씩 다릅니다”라고 이야기하면 이를 이해해 줄 소비자가 있을까? 소규모 양조장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전국적으로 막걸리를 팔려면 맛의 표준화는 꼭 필요했다.

결국 맛을 좌우하는 변수들을 차단하려면 ‘자동화’가 답이었다. 지평막걸리가 가장 지평막걸리스러운 맛을 내는 원재료의 상태, 온도, 습도 등을 찾고, 100% 자동화는 어렵더라도 변수를 최대한 통제하려면 투자를 통해 생산 설비를 자동화해야 했다. 하지만 지역 양조장에 이런 시설투자비가 있을 리 만무했다. 당시 지평주조는 매출액 40억 원을 갓 넘긴 상황이었다.

결국, 지평주조는 2015년 기존 양조장 옆 부지를 활용해 생산 공장을 짓기 시작한다. 수도권 진출을 노리는 회사 입장에서 서울과 더 가까운 남양주 인근에 생산 공장을 옮길까 고민도 했지만 자금이 부족했다. 특히 생산지를 옮기면 술맛이 변할 수 있다는 것도 원래 양조장 옆 부지를 선택한 이유였다. 막걸리는 발효주기 때문에 물이 변하거나 누룩곰팡이가 변하면 술맛도 변한다. 그래서 술을 빚는 장소가 중요하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서 자동화를 시도하다 보니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완전 자동화보다는 제한된 자동화를 시도했다. 이렇게 1공장을 지으며 제조 과정을 자동화하고 공장 내부에 온도 조절 장치를 설치하는 등의 노력을 펼쳤고 이를 통해 막걸리 맛의 균일화를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2016년부터 지평주조는 지평면 제1공장에서 막걸리 생산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 생산 시설은 태생부터 한계가 있었다. 지평 양조장이 위치한 곳은 공장 지대가 아니라 근린 생활 지대였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근린 생활 지역에는 생산 시설을 500㎡ 이상 지을 수 없다. 지평주조의 새 공장도 결국 기존 목조 건물 양조장에 인접하게 협소한 공간에 지어졌다.

이런 한계 때문에 지평주조의 제1공장은 가동 1년여 만에 생산을 중단했다. 제1공장 완공 당시 이 공장의 생산 능력은 월 150만 병 수준에 불과했는데, 이후 지평막걸리를 찾는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2017년에 이미 수요가 생산 능력을 초과하게 됐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지평면이 상수원 보호 대상 구역이다 보니 막걸리를 만들면서 발생한 오폐수 처리가 문제였다. 전 본부장은 “상수도 보호 구역에서는 특정 기간 내 내보낼 수 있는 오폐수의 양에 제한이 있어서 막걸리 생산을 늘리고 싶어도 지평면 주민들이 내보내는 생활 오폐수들을 줄이지 않는 한 생산량을 크게 늘리기 어려운 구조였다”라며 “결국 생산 거점을 옮기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공장을 옮기면 맛이 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막걸리는 물이 중요한 술이다. 지평막걸리가 뛰어난 맛을 자랑할 수 있었던 것도 지평 양조장 내 우물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활용해 술을 빚었기 때문이다. 공장 부지를 옮기면 물맛이 변할 테고, 물이 변하면 술맛도 변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더 큰 문제는 효묘균이었다. 막걸리는 누룩을 만들 때 따로 첨가물을 넣지 않는다. 양조장 내부 누룩방에 누룩을 놓으면 그 공간에 오랜 기간 살고 있는 곰팡이들이 누룩에 달라붙어서 누룩을 발효시키며 막걸리의 독특한 맛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만들어지는 곳이 다르면 그 공간에 사는 곰팡이가 다르기 때문에 술맛이 달라진다.

결국 물맛과 효모균을 유지할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일단 물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평과 같은 수원(水原)인 북한강을 끼고 있는 곳에 공장을 세워야 했다. 김 대표는 적당한 신공장 부지를 찾기 위해 무려 6개월 이상 북한강 지류를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 인근에 적당한 부지를 찾아낸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북한강을 수원으로 쓴다고 해도 춘천의 물은 지평면의 물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지평 양조장의 물은 양조장 내 우물에서 나오는 지하수였다. 그러나 춘천에 공장을 짓는다 해도 지하수를 끌어다 쓸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상수를 써야 하는데, 상수는 지하수와는 성분이 완전히 다르다. 기본적으로 소독과 정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결국 공장 내 상수를 재정수해서 지하수와 비슷하게 만드는 설비를 설치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현재 지평주조 춘천 공장은 수돗물을 재정수해 지하수 물과 비슷한 성질의 물로 바꾸어 사용한다.

또한 막걸리 맛을 내는 효모균이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해 지평주조는 기존 지평 양조장 기둥과 서까래 등에서 서식하는 효모균을 일일이 채취해 사용하고 있다. 또 춘천 공장 내 미생물 연구실에서 이를 그대로 배양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지평주조는 중소 규모 양조장으로는 드물게 자체 미생물 연구실을 만들고 미생물을 전공한 전문가들을 채용했다. 이들은 지평막걸리의 맛을 유지하게 하는 효모균을 연구하고 배양하는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지평주조는 2018년 6월부터 춘천 공장 시대를 연다. 대지 8580㎡(약 2600평), 건물 면적 3300㎡(약 1000평)에 달하는 부지에 최첨단 자동화 설비와 품질관리 설비를 갖춘 신축 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하면서 지평주조는 월 500만 병 제조 능력을 갖춘 시설을 완비하게 된다. 이러한 생산량은 기존 양평 공장 생산량 대비 3배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덕분에 2018년부터 지평주조는 그동안 지평막걸리를 팔고 싶다고 지속적으로 접촉을 해 왔지만 물량이 부족해 공급할 수 없었던 편의점과 SSM(Super supermarket, 기업형 슈퍼마켓) 등에 막걸리를 납품할 수 있게 된다.

업계 최초 전국 유통망 구축

이렇게 생산 기반이 보강되면서 지평주조는 성장세에 날개를 단다. 일단 막걸리 제조 공정 자동화에 성공했고 이 과정에서 ‘지평 생막걸리’ 도수를 5도로 리뉴얼해 출시했다. 이 막걸리가 젊은 고객들 사이에서 ‘맛이 부드럽고 머리가 아프지 않은 막걸리’로 자리매김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 결과, 매출은 빠르게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김 대표는 부족함을 느꼈다.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배워가며 막걸리 만드는 방법은 어느 정도 터득했지만 회사가 커지면서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특히 회계, 인사, 세일즈, 마케팅 등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이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유능한 인재 영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특히 세일즈 전문가가 절실했다. 차에 막걸리를 싣고 돌아다니며 도매상을 찾는 발품식 방식으론 한계가 분명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배상면주가에서 영업본부장을 지낸 전대일 현 지평주조 경영전략본부장과 연이 닿게 된다. 전 본부장은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지만 커리어의 대부분을 주류 영업 분야에서 보낸 주류 유통 전문가다. 배상면주가 영업본부장 이전에는 웅진식품에서 음료 영업을 했다. 국내 주류 시장의 트렌드와 주요 대리점과의 네트워크 면에서 업계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혔다. 2016년 당시 전 본부장은 퇴사 후 개인사업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때 김 대표가 전 본부장에게 영입 제의를 했고 지평주조의 오랜 역사와 제품력, 젊은 사장의 열정에 끌려 결국 지평주조에 합류한다. 전 본부장은 “깨끗한 지하수와 신선한 쌀을 전통 주조법으로 빚어내는 지평주조의 제품력이 마음에 들었고 특히 옛 양조장에서 옛 전통 주조 방식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기본기가 탄탄한’ 제품이라 생각해 마음이 끌렸다”고 설명했다.

전 본부장이 지평주조에 오면서 지평주조의 대리점 수도 빠르게 늘었다. 특히 이전까지 서울과 수도권 동남부에 치우쳐 있던 대리점을 서울과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한다. 비결은 예상외로 간단했다. 전 본부장이 수년간 닦아온 네트워크가 비결이었다. 전 본부장은 “대리점 리스트를 쭉 살펴보고 서울과 경기도 인근에 지평주조를 취급하지 않는 대리점에 전화를 돌렸다”며 “수년간 주류 업계에서 닦아온 네트워크에 지평막걸리에 대한 우호적인 소문들이 더해져 손쉽게 유통망을 확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지평주조의 빠른 성장이 2030세대를 대상으로 마케팅 활동을 잘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김 대표와 전 본부장은 이런 지적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보다는 앞서 설명한 맛과 품질에 대한 투자와 도매상과의 상생 전략이 주효했다는 것이 지평주조 측의 자체 분석이다.

실제 전대일 본부장 합류 후 2016년 수도권 영업망을 확대한 지평주조는 2017년부터 수도권을 넘어 강원, 부산, 경남, 충청, 전북 등 전국 유통망 확대를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2010년 이후 줄기차게 지켜온 원칙이 힘을 발휘했다. 도매상과의 상생이 그것이다.

지평주조는 앞서 설명한 대로 도매상의 마진을 높여주기 위해 판매촉진비 등을 포기하고 그만큼 지평주조의 마진을 양보했다. 다른 막걸리 제조사들이 제조사 마진을 높게 가져가는 대신 판매촉진비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나눠주는 방식으로 대리점들을 관리하던 관행을 깬 것. 판매촉진비 대신 제조사의 공급 가격을 낮춰주고 대리점주들이 낮아진 매입 가격 아래서 자유롭게 판매 가격 정책 및 프로모션 전략을 운영할 수 있게 하면서 대리점들과 동등한 관계를 맺고자 힘썼다. 또한 대리점을 현장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제조사의 파트너이자 현장 전문가로 인정하고 이들이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노력이 시간이 지나 효과를 발휘하면서 대리점들은 자체적으로 판매촉진비를 투입해 스스로 시장을 개척하는 효과가 생겼고 입소문이 나면서 지평주조의 막걸리를 취급하려는 대리점들이 늘어났다. 덕분에 지평주조는 2019년 2월에 지평막걸리를 취급하는 75개 도매상을 구축, 전국 유통망을 완성했다. 현재는(2019년 말 기준) 도매상 수가 91개까지 늘었다. 이들 대리점은 대부분 지평막걸리만 취급하는 독점 도매상들이다. 이는 막걸리 업계 1위 업체인 서울탁주도 못한 일이다. 전 본부장은 “단일 브랜드로 지평막걸리처럼 전국적인 유통이 이뤄지고 높은 매출을 내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대리점을 파트너로 보고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가격 전략을 짠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입소문의 영향으로 2016년부터는 대형마트로부터 러브콜을 받는다. 대형마트들은 각각 자체적으로 지정한 벤더사가 있고 이 벤더사를 통해 주류를 공급받는데 2016년부터 이들 벤더사에서 지평막걸리를 대형마트에 공급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것. 이어 2018년부터는 편의점 업체들이 ‘저도주 열풍’을 타고 지평막걸리 납품을 요청하면서 지평막걸리는 명실상부 전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전국구 막걸리’가 된다. 전 본부장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회사의 성장세를 이어갈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전국 유통망 확보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지역색이 뚜렷한 막걸리 시장에서 지방을 뚫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막걸리가 경쟁력이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지평주조의 성장 비결

지평주조의 성장 스토리를 살펴보다 보면 치밀한 전략을 통해 성장했다는 느낌보다는 몇 가지 원칙을 정해두고 이를 철저히 지키면서 작은 회사답게 그때그때 그 원칙 아래서 유연성을 잘 발휘해왔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원칙의 대부분은 과거로부터 지켜온 전통과 관련이 깊었다. 과거로부터 전해져 온 막걸리 제조 방식을 활용해 고유의 맛을 지키고 양조장의 역사적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방식으로 라벨 디자인을 바꾸고 마케팅을 진행했다. 역사와 전통의 가치를 지키려는 이런 노력이 최근의 레트로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지평주조를 트렌디한 막걸리 브랜드로 만들어줬다. 덕분에 지평주조는 다른 막걸리 업체들은 잡지 못한 2030세대 취향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1. 맛과 품질이라는 본연의 가치에 집중

지평주조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지평주조는 막걸리의 도수를 낮추며 ‘저도주’ 경쟁에 불을 지핀 주인공이다. 2015년에 막걸리 업계에서는 최초로 5도짜리 지평 생 쌀막걸리를 내놓는다. 당시로써는 막걸리의 도수를 내린다는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였다. 시장 점유율 1등인 장수막걸리가 6도인 상황에서 인지도가 떨어지는 지평주조가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기 때문. 알코올 도수 6도는 기존 막걸리 시장의 주요 소비자층인 고령층이 오랜 기간 마셔온 익숙한 맛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도수를 내릴 때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경쟁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젊은 층과 여성 소비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막걸리 도수를 낮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평주조가 5도짜리 지평 생 쌀막걸리를 시장에 내놓자 경쟁사들은 “젊은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도수를 낮춘 것”이라든지 “물을 더 타서 생산 원가를 절감하려는 시도”라는 소문들이 넓게 퍼졌다. 그러나 지평주조가 막걸리의 도수를 내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평 생막걸리는 5도일 때 가장 맛있다는 것을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것. 전 본부장은 “가장 지평다운 맛을 살리고 품질을 균질하게 가져가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다 도수가 5도일 때 최적의 맛이 난다는 결과가 나와 이를 제품에 반영한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물을 탔다는 루머도 사실이 아니었다. 쌀 함량을 늘리고 쌀 자체의 단맛을 살리는 지평주조만의 방법을 개발했고 이 방식으로 도수를 낮출 수 있었다. 원재료의 단맛 덕분에 막걸리 특유의 누룩 냄새와 텁텁한 맛이 줄면서 젊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깔끔한 맛의 막걸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됐다.

의도와 상관없이 지평주조의 막걸리가 인기를 끌면서 이후 ‘저도주’가 하나의 트렌드가 된다. 덕분에 막걸리는 물론이고 소주 시장에서도 저도주들이 줄줄이 출시된다. 특히 업계 1위 장수막걸리도 5도짜리 막걸리 시장이 커지는 것을 보고 지난해 ‘인생막걸리’를 내놓으며 저도주 경쟁에 불을 지핀다. 지평주조는 지평 생막걸리가 가장 맛있는 도수를 찾아 맛을 지키자는 원칙에 충실했지만 본의 아니게 주류 시장에 저도주 바람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지평주조는 또 맛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경쟁사들은 잘 쓰지 않는 ‘밀 입국’을 여전히 사용한다. 1990년대 쌀 막걸리 허용 이후 대부분의 막걸리 업체들이 쌀로 만든 누룩을 쓰고 있다. 그러나 지평주조는 쌀 막걸리에도 여전히 밀 누룩을 활용한 전통적인 주조법을 고수하고 있다. 밀 입국은 밀 자체에 단백질 함량이 높아 고소하고 깊은 맛이 나는 특징이 있고 옛날 막걸리 맛에 가깝다. 또 옛날 막걸리의 향수를 가지고 있는 중장년층을 위해 지평 생 쌀막걸리 외 밀로 만든 ‘지평 생 옛막걸리’를 여전히 생산 중이다. 전 본부장은 “전체 매출에서 밀 막걸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도 되지 않지만 옛날 막걸리의 깊은 맛을 찾는 소비자들을 위해 꾸준히 밀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평주조는 최근 첫 제조공법을 살린 막걸리 신제품 ‘지평 일구이오’를 출시하기도 했다. 지평 일구이오는 1925년부터 막걸리를 빚어 온 지평주조의 오리지널 레서피로 재탄생한 제품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지평막걸리만의 깊은 맛과 향을 되살린 것이 특징이다. 알코올 도수는 7도이며 지평막걸리만의 부드러운 풍미를 그대로 살려내 기존 제품보다 높아진 도수에도 깔끔한 목 넘김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변화하는 막걸리 시장에서도 지평주조만이 가진 고유성을 소비자들에게 각인하는 것이 지평 일구이오의 목적이다.


2. 옛 양조장의 가치를 살린 마케팅, 레트로 트렌드

김 대표는 지평주조 합류 전 홍보 전문 회사에서 일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꾸준히 지평주조의 브랜딩에 노력을 기울였다. 초기부터 양조장 한편에 지평주조 홍보관을 만들고 지평주조의 모습을 형상화한 로고와 영업 브로슈어를 제작하는 등 당시 회사의 상황이나 규모와는 맞지 않는 다양한 활동을 한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또 라벨 디자인에 공을 들였다. 지평주조는 2010년 이후 수차례 라벨 디자인을 수정한다. 특히 초기에는 오히려 현재 라벨 디자인보다 색깔도 화려하고 젊은 느낌이 드는 라벨을 선보이기도 했다. ‘지평 진선미 막걸리’가 대표적 예다. 그러나 이후 지평주조는 전략을 수정해 지평주조의 오랜 역사를 라벨에 담기 위해 노력한다. 일단 서체 디자인을 파격적으로 바꾼다. 옛날 방식인 세로쓰기에 왼쪽으로 행갈이를 하는 우종서(右縱書) 형태로 라벨을 바꾼다. 여기에 글씨체는 옛날 양조장 현판 글씨체를 사용했다. 또 ‘지평 생막걸리’라는 상표명 옆에는 지평 양조장 그림을 넣어 고전미를 더했다. 젊은 세대 소비자를 잡는다면서 디자인은 예스럽게 바꾼 것. 그런데 마침 레트로 열풍과 함께 ‘예스러운 것이 멋스러운 것’이라는 트렌드가 생겼고 지평막걸리의 병 디자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예쁜 막걸리’로 인기를 끌었다. 전 본부장은 “지평막걸리 라벨 디자인은 공모전을 통해 인연을 맺은 대학생 작품”이라며 “고전적이면서도 젊은 감성이 담긴 라벨 덕분에 소비자들이 지평막걸리를 더 사랑해 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평주조는 최근에는 역사적 건물인 옛 양조장 건물을 체험형 공간으로 리모델링 중이다. 지평리의 양조장을 문화 체험 공간으로 변경, 지평주조의 100년 역사와 문화를 전파할 예정이다. 더불어 이 양조장에서 기존에 없었던 프리미엄 제품을 제조 및 판매할 예정이다. 다품종 소량 생산을 통해 소비자에게 막걸리가 가진 다양성과 부가가치를 보여줄 예정이다. 이러한 갤러리가 완공되면 주변 양평 관광지와 연결해 관광 문화 상품으로서의 부가가치를 키워나갈 예정이다.


3. SNS 마케팅 선도

지평주조는 막걸리 회사로는 드물게 젊은 소비자를 공략한 SNS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세월을 이어가는 맛과 향’이라는 슬로건하에 운영 중인 지평주조 공식 SNS 채널은 1925년부터 막걸리를 빚어온 역사와 전통을 알리고 지평막걸리를 보다 다양하게 경험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홈술·혼술이나 가심비, 소확행과 같이 적당히 맛있게 마시고 싶어 하는 2030세대의 주류 소비 트렌드에 맞춰 지평막걸리와 어울리는 이색 안주 조합이나 와인 잔, 칵테일 잔 등을 이용해 색다른 분위기 연출을 제안하는 등의 콘텐츠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다소 올드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막걸리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함이다.

브랜드 고유의 차별화된 콘텐츠를 위해 고정 코너도 운영 중이다. 지평막걸리를 판매하는 맛집을 소개하는 코너 ‘지평미식회’는 지평막걸리와 어울리는 메뉴 소개는 물론 지평막걸리를 즐기는 색다른 방법을 발견하는 재미를 제공하고자 기획됐다. 지평주조 직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지평을 여는 사람들’ 코너는 지평주조의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20년 1월 말 기준 인스타그램에서 지평막걸리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약 3만7000건의 피드를 확인할 수 있다. 업계 1위인 장수막걸리 피드가 3만3000여 개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지평막걸리의 SNS 마케팅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민희 지평주조 마케팅팀장은 “인스타그램에서 지평막걸리가 가장 피드가 많은 이유는 SNS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젊은 소비자들이 지평막걸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며 “이처럼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공유하는 콘텐츠가 많은 편이라서 공식 SNS 채널은 조금 느리더라도 지평이 가진 고유한 색깔을 확고히 하는 쪽으로 운영 방향을 설정해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 지평주조는 젊은 소비자층에게 주력 제품인 ‘지평 생 쌀막걸리’를 알리기 위해 유튜브 크리에이터 ‘팀브라더스’와 협업을 진행, ‘다양한 음식의 모든 것’이라는 콘셉트로, 요리와 먹방, 제품 리뷰 등의 영상 콘텐츠를 업로드하며 좋은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한국의 기네스 꿈꾸는 지평주조

지난 10년간 무려 120배 가까운 성장을 한 지평주조. 그런 지평주조가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전대인 본부장은 “우리는 한국의 기네스를 꿈꾸고 있다”라고 자신에 찬 어조로 답했다. 실제 기네스 맥주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평주조의 스토리와 닮은 점이 눈에 띈다. 일단 오랜 역사를 지녔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네스는 1759년 더블린에서 출발해 25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또한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시대에 발맞춰 제품을 혁신해 왔다. 기네스는 1893년 수학자와 과학자를 채용해 기네스 흑맥주가 최고의 맛을 내는 홉의 비율을 찾아냈다. 1959년에는 맥주에 질소를 넣어 기네스 특유의 부드러운 거품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기네스 캔맥주의 상징적 소리를 만들어 내는 ‘위젯(질소 가스가 담긴 공)’도 오랜 기간 연구한 혁신의 결과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평조주는 기네스 맥주가 갖는 상징성에 주목하고 있다. 전 본부장은 “아일랜드를 찾은 여행객이라면 으레 더블린 시내에 있는 기네스 양조장을 방문해 그 역사를 배우고 오래되고 독특한 흑맥주 맛을 음미한다”며 “기네스는 흑맥주 하나로 아일랜드의 상징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평주조가 한국 막걸리를 상징하는 브랜드가 됐으면 하는 희망을 내비쳤다.

“지평양조장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데다 독특한 건축 양식을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594호로 지정돼 있다. 이런 문화유산들을 그냥 허비할 순 없지 않나? 우리는 이곳을 기반으로 지평주조만의 콘텐츠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지평양조장 건물을 활용해 양조장 견학, 술 빚기 체험, 시음, 문화 연계 행사, 지평 브랜드 행사 등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하면 막걸리에 관심 있는 국내외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노력들이 쌓이면 지평주조도 기네스 맥주처럼 한국과 양평을 대표하는 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DBR mini box II : 김기환 지평주조 대표 인터뷰
“제조에서 문화로 외연 넓힐 것”

회사가 성장하고 조직이 빠르게 커지면서 겪게 되는 여러 어려움 중 최근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은?

아무래도 인재 양성이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과거에는 생각지 않았던 일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의 업무가 과도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너무 업무에 치이게 되면 열정도 사라지고 역량 강화도 소홀히 하게 되지 않나.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들이 더 나은 인재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업무 환경 및 제도 개선, 직원 교육 등을 고민하고 있다.


지평주조가 약진을 거듭하면서 경쟁사들의 견제도 심해지는 듯하다. 이에 대한 생각과 향후 대응 방안은?

같은 업계에서 경쟁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도 다른 업체들의 행보나 새로 내놓은 제품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매출 성장이나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지평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우리는 지평주조가 갖고 있는 목표와 가치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더 역량을 쏟고 있다. 앞으로도 지평의 생각과 색깔을 담은 제품을 선보이고 업계에서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제조’에서 ‘문화’로 외연을 넓혀나갈 예정이다.


매출액에 비해 직원 수(50여 명)가 적은 것이 눈에 띄는데, 이유가 있나?

작은 동네 양조장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생산성과 효율을 중시하는 경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직원 수를 늘리기보단 함께 회사를 키워나가는 기존 직원들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회사를 운영 중이다. 특히 젊은 직원들은 루틴(Routine)한 업무에 염증을 느낀다. 이런 업무를 줄일 수 있는 사무 자동화, 생산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불필요한 업무나 보고를 과감히 줄여나가면서 기존 직원이 새로운 업무를 시도해 볼 수 있도록 업무 효율화에 신경 쓰고 있다. 직원 수가 많지 않아도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면 직원에게 돌아가는 몫은 그만큼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평주조는 중소기업임에도 직원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떤 혜택이 있고, 이런 제도를 운용하는 이유는?

회사의 미래는 회사 내 조직원들에게 달려 있다. 현재 직원들에 대한 대학교 및 대학원 등록금 지원, 외부 교육비 지원, 취미 활동비 지원, 대학생 자녀 학자금 지원 등의 제도가 있다. 아직 대단한 혜택이라고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회사 규모가 커질수록 실질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나씩 확대하고자 한다. 올해는 사내 도서관 운영 및 복지 포인트 제공도 계획돼 있다.


막걸리는 해외 진출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수출 계획은 어떻게 되나?

현재 해외에 수출되고 있는 대부분의 막걸리는 외국에 거주하는 교포들이 주 타깃 고객이다. 이런 식의 수출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수출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지평주조는 현지인을 타깃으로 한, 그들의 입맛에 맞고 어필할 수 있는 제품을 수출하는 것이 진짜 수출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술뿐만 아니라 음식, 예술 등을 포함한 하나의 문화로 다가설 계획을 갖고 있다. K-Pop이나 K-Beauty가 좋은 롤모델이라고 생각한다.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바꿔라! 하지만 바꾸지 말아라!”


포르셰 철학과 같은 본질 집중 전략

막걸리 업계는 2010년을 전후해 일본발 막걸리 인기 덕에 외적으로 큰 성장을 한다. 하지만 눈앞의 이익에만 치중한 나머지 막걸리의 품격을 올려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향이 아닌 수출액 늘리기에만 급급하다 결국 2년 만에 실패를 경험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지평주조는 남들이 일본 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내수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바닥을 튼실하게 다진 후에 해외 진출을 한다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수출용 살균 막걸리는 기존의 생막걸리와 맛이 달랐다. 한번 높은 온도로 멸균 처리를 한 만큼 생막걸리 특유의 신선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페트병에 넣게 되면 탄산도 사라졌다. 일부 업체들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냉장으로 생막걸리를 수출하기도 했지만 유통기한이 짧은 수출용 생막걸리는 맛이 변질될 리스크가 컸다. 짧게는 수익을 올릴 수 있으나 무리하게 진행했다가 오히려 후폭풍이 올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지평주조는 수출이라는 시장 대신 주변에 가까운 시장부터 돌파구를 찾았다. 지평리 및 양평 군내는 물론 본사와 가까운 수도권의 동남부인 이천, 용인, 수원, 그리고 송파 쪽부터 마케팅을 진행했다. 이처럼 단기적 이익 대신 브랜드 가치와 맛이라는 본질을 지킨 덕에 오히려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인 포르셰의 디자인 철학은 단순하다. ‘Change it, But do not change it.’ 즉 ‘바꿔라, 하지만 바꾸지 말라’다. 이것은 본질에 집중하면서 진화해 나간다는 의미다. 지평주조는 막걸리 시장의 마이너 업체에서 메이저 업체로 성장하면서 이 원칙을 잘 지켜나갔다. 가장 기본인 품질 관리에 열정을 쏟았으며 수출보다는 내수에 집중했다. 맛은 바꿨지만 옛 맛은 살렸으며, 판매 대리점들과의 협업 및 상생으로 두터운 파트너십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기본을 지키는 노력 덕분에 품질과 맛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으며 전통은 지키되 트렌드에 따라 디자인이나 알코올 도수 등에 변화를 줘 시대를 아우르는 키워드 속에 지평막걸리가 늘 함께할 수 있었다.

소규모 막걸리 양조장의 가장 큰 과제는 대량 생산을 했을 때, 균질한 맛을 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경험치가 부족해서고, 두 번째는 설비도 받쳐주질 않는다. 무엇보다 ‘어차피 저렴한 막걸리’라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위생상의 문제가 있는 양조장이 많았다. 지평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 적극적인 품질 관리에 들어갔다. 일단 날씨 및 발효 컨디션이 안 좋아 맛이 조금이라도 변한 막걸리 원액, 그리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은 모두 버렸다. 한마디로 술은 버려야 팔린다는 철학이었다. 물론 덤핑으로 팔 수 있었지만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평은 시장에서 하나씩 신뢰를 쌓아갔다.

고정된 룰을 깨는 과감한 혁신

지평막걸리의 가장 큰 변화는 막걸리의 도수를 낮춘 것이다. 기존의 6%인 막걸리의 도수를 5%로 낮췄다. 단순히 저도수가 대세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지평막걸리가 가장 맛있는 도수를 찾기 위한 노력이었고 이를 위해 회사의 연구진도 총동원됐다. 알코올 도수를 5%로 낮춤으로써 일단 막걸리의 누룩취가 확연히 적어졌다. 하지만 단순히 물을 더 넣어서 도수를 맞춘 것이 아니라 쌀 자체의 단맛을 살려 도수를 낮췄다. 발효공학을 통해 원료 비율을 그대로 가면서 맛에만 변화를 준 것이었다. 이렇게 낮은 도수의 막걸리는 맥주에 익숙한 2030세대의 입맛에 딱이었다. 맥주의 알코올 도수가 4∼5%이기 때문. 저도주로 바꾼 부분은 생각지 못한 홍보 효과를 거뒀다. 소주 등의 도수가 계속 낮아지면서 ‘저도수’ 술이 하나의 트렌드가 됐고 저도수 술로 지평막걸리가 자주 언급됐다.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홍보가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원칙을 지키며 브랜드 가치 창출

그렇다고 지평주조가 모든 것을 바꾼 건 아니다. 특히 절대 고수하는 원칙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옛날 방식으로 밀로 만든 누룩을 고수한 것이다. 밀 누룩(밀입국)은 1960년대부터 양조장에서 본격적으로 쓰였던 막걸리 발효제. 특히 1965년 양곡관리법으로 인해 쌀로 더 이상 술을 못 빚게 되면서 당시 모든 양조장이 이 밀 누룩(밀 입국)을 사용해 술을 빚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와서 쌀 막걸리가 허용되면서 이 밀 누룩으로 술을 빚는 양조장은 상당수 사라졌다. 많은 양조장이 쌀 누룩(쌀 입국)을 사용해 술을 빚게 된 것. 하지만 지평주조는 맛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 끝에 막걸리 맛의 본질은 밀 누룩에 있다고 보고 옛 막걸리 맛을 고수했다. 결과적으로 막걸리에 향수를 가진 5060 소비자층과 새롭게 신규로 진입한 2030세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게 됐다.

지평막걸리의 디자인에서도 연관된 기업 철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바로 옛 방식인 세로쓰기인 종서(縱書)로 디자인이 돼 있는 것이다. 게다가 왼쪽으로 행갈이를 하는 우종서(右縱書) 형태로 돼 있다. 고전적인 디자인 형태를 그대로 가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디자인은 지평주조 자체 내에서 제작한 것이 아니고 디자인을 전공한 대학생의 작품이다. 즉, 고전적인 디자인이었지만 2030세대의 감성도 품은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소비자에게는 첫인상이다. 첫인상이 좋아야 그다음이 진전된다. 결국, 클래식과 트렌디를 품은 디자인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거부감 없이 다가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매출로 이어졌다.

지평주조의 모토는 이것 하나로 귀결된다. ‘바꾼다, 하지만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발전은 추구하지만, 결국 그 근본은 지켜나간다라는 의미다.


필자소개 명욱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 vegan_life@naver.com
필자는 일본 릿쿄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일하다 한국 전통주에 빠져 주류 전문가의 길을 가게 됐다. 현재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 과정 주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KBS1 라디오 김성완의 시사야, SBS 팟캐스트 말술남녀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다.




DBR Case Study: 호시노 리조트 운영 전략 및 조직 문화

료칸시대 끝났다고 할 때 ‘사람’에 집중
멀티태스킹 능력 키워 일본 호텔업 선도

Article at a glance
효율적인 운영 시스템과 역량 있는 직원만 확보된다면 기업은 경제 불황은 물론 경영난을 극복하고 성장해 나갈 수 있다. 핵심은 운영 시스템과 인사제도가 선순환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호시노리조트는 직원들이 고객 서비스의 a부터 z까지 담당하는 ‘멀티태스킹’을 도입해 업무 효율성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서비스 역량을 강화했다. 단순히 직원들에게 ‘일을 많이 하라’고 압박하지 않았다. 투명한 정보 공유, 공정하고 수평적인 인사 시스템,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의사결정 구조 등을 통해 직원들이 일에 보람을 느끼고 충분히 보상받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회사 분위기를 정착시켰다. 그 결과 호시노리조트는 작은 료칸에서 시작해 국내외 37개 리조트를 운영하는 일본 호텔 대표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남정희(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호시노 리조트는 1914년 일본 나고야현 가루이자와의 작은 마을에서 호시노 가문이 운영하는 작은 료칸에서 시작했다. 호시노 요시하루(星野佳啓) 4대 사장은 1991년 사업을 물려받아 ‘일본 료칸 사업은 망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뒤집고 20여 년 만에 일본 대표 리조트 브랜드를 만들었다. 료칸의 전통적인 매력과 서구식 호텔 서비스를 결합해 ‘일본식 호텔’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특별한 매력은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가 일본을 방문하면서 다시금 주목받았다. 이방카를 극진히 대접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만찬장으로 호시노 리조트의 도쿄 중심가 호텔 ‘호시노야 도쿄(星のや東京)’를 낙점해 화제를 모은 것이다.

호시노 사장은 호텔 비즈니스의 핵심을 ‘사람’이라고 봤다. 값비싼 인테리어나 화려한 빌딩보다 좋은 인재가 중요하다고 믿었다. 뛰어난 직원을 충분히 확보하고, 이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사업의 성패를 가른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호시노 사장은 Great Operation(효율적인 운영 시스템 도입)과 Great People(직원 만족도 향상)이라는 두 가지 원칙에 집중해 호시노 리조트만의 독특한 운영 전략과 인사제도를 정착시켰다. 먼저 직원 개개인의 멀티태스킹 능력을 강화했다.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 누구나 고객 응대부터 청소, 설거지, 요리까지 거뜬히 해낼 수 있다. 서로 일을 떠넘기는 상황이 없어지고 고객들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호시노 사장은 실력 위주의 수평적 조직 문화도 확립했다. 연공서열을 폐지하고 누구나 팀 리더가 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능력과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 관리자를 맡을 수 있어 직원들이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 결과 호시노 리조트는 일본 내 35개 리조트, 해외 2개 리조트를 가진 일본 대표 리조트 브랜드로 거듭났다. 2005년 142억 엔 수준에 머물렀던 총수입(Transaction Volume)은 2018년 509억 엔으로 뛰었다. 정규직 사원 수는 2014년 1910명에서 2018년 2509명까지 늘었다. 더 중요한 것은 우수한 인재들의 지원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150여 명을 뽑는 정기 채용에 매년 2000여 명의 대학 졸업 예정자들이 지원서를 낸다. 젊은이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직장이라는 얘기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직원들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마다 반발했다. “직원들을 설득하고 제도를 정착시키는 데만 10년이 걸렸다”는 게 호시노 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어떻게 수익성, 고객만족, 직원 성장이란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을까? ‘리조트의 달인’ 호시노 사장과 직원들 인터뷰를 통해 호시노 리조트의 혁신적인 운영 전략과 인사제도를 집중 취재했다.


고객만족도와 수익성 동시 달성 추구
1990년대 초 일본 료칸 사업은 침체기를 맞았다. 버블 경제가 붕괴되면서 우후죽순 들어섰던 료칸 상당수가 경영난에 시달렸다. 일본 경제 전문가들은 수급 불균형 문제를 지적하며 ‘료칸 사업은 회생 불가’라고 평가했다. 일본 국내 여행 수요가 줄고, 그나마 여행을 다니는 일본인들은 대부분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진단이 뒤따랐다.

호시노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 석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그는 대외적 상황이 아니라 료칸 자체의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호시노 사장이 자체 분석한 결과 일본 국내 관광시장은 연간 약 20조 엔 규모로 유지되고 있었다. 수요 자체가 급감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문제는 생산성이었다. 당시 미국과 비교해 일본의 서비스업 생산성은 약 76% 수준이었는데 료칸의 생산성은 23%에 불과했다. 결국 서비스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고객이 오지 않는 것이란 결론이 나왔다.

시대와 맞지 않는 낡은 료칸 서비스 스타일이 가장 큰 문제였다. 우선 사생활을 중시하는 젊은 일본인들의 니즈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료칸 대부분은 단체 손님 방문이 많아 개인 손님들이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손님이 방에 있는데도 직원들이 마음대로 들어와 청소를 하는 등 사생활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았다. 식사도 료칸이 정한 시간에, 료칸이 정한 메뉴로 먹어야 했다. 틀에 박힌 삶을 벗어나 여유롭게 쉬러 온 고객들이 되레 료칸이라는 틀에 자신을 맞춰야 했다. 고객들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료칸 사장들의 잘못된 상황 인식이었다. 료칸 경영자 상당수는 고객 만족과 회사의 이익이 상충한다고 생각했다. 돈을 많이 들이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그만큼 수익률이 떨어져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고객의 불만이 나오기 직전 수준의 서비스만 제공하자’는 식의 응대가 주를 이뤘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보다 인건비가 싼 동네 중년 여성을 고용하는 일이 보편화됐다. 좋은 식재료를 쓰거나 솜씨 좋은 주방장을 고용하는 대신 싼 재료에 적당한 레서피로 평범한 요리를 내놓는 경우도 많았다. 소비자들의 변화된 요구를 감지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호시노 사장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수익성과 고객만족의 관계부터 재정의했다. 수익성과 고객만족을 동시에 달성해야 할 목표로 봤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면 결국 직원들의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했다.

그는 직원의 성장과 만족을 기업의 성공과 동일 선상에 두자는 원칙을 세웠다. 단순히 직원들을 압박하고 업무 강도를 높이는 것은 답이 아니었다. 직원들이 일에 재미를 느끼고, 일을 통해 성장할 수 있고, 성과에 확실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새로운 피의 수혈도 필요했다. 실력 있는 젊은 인재들이 들어와야 근본적인 서비스 혁신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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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적으론 ‘젊은 인재들에게 매력적인 직장’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젊은 사람들이 회사를 더 친숙하고 현대적으로 받아들이도록 1995년 사명을 호시노 료칸에서 호시노 리조트로 바꿨다. 대내적으론 멀티태스킹제도와 수평적이고 공정한 인사제도를 도입해 직원들이 즐겁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갔다.

호시노 사장은 “인재 확보를 위해선 높은 연봉, 충분한 휴가 등 직원복지제도가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직원들에게 ‘일하는 즐거움’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의 운영 시스템과 인사제도에는 이런 철학이 녹아 있다. 좋은 근로 환경과 일하고 싶은 근로 분위기가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면서 호시노 리조트를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직원은 사장의 잔소리보다 고객의 불만을 더 믿는다.
1994년 어느 날 아침, 고객들의 아침 식사 준비로 분주해야 할 호시노 리조트(당시 호시노 료칸)의 주방이 텅 비어 버렸다. 주방장은 물론 그 밑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단체로 료칸을 떠났다. 비상사태였다. 밥 한 그릇도 없었기 때문에 고객들이 아침을 굶어야 했다. 잇따르는 항의 속에 호시노 사장은 홀로 상황을 수습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사건의 발단은 호시노 사장의 ‘독설’이었다. 그는 주방장에게 ‘음식이 맛없다’고 혹평했다. 지역 전통 요리를 수십 년간 만들어온 50대 주방장은 자존심이 상했다. 이제 갓 부임한 젊은 호시노 사장이 전통요리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반박했다. 호시노 사장은 굴하지 않았다. 고객들은 그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주방장과 휘하의 요리사들은 폭발했다. 항의의 표시로 말도 없이 료칸을 떠나버렸다.

호시노 사장은 요리사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는 요리사들에게 고객들이 제출한 설문조사 결과를 내밀었다. ‘익숙하지 않은 불친절한 맛.’ 료칸 음식에 대한 고객들의 냉정한 평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정해진 요리만 매번 나와 단조롭다는 의견도 있었다.

사장의 말에는 콧방귀도 안 뀌던 요리사들이지만 고객의 말에는 눈빛이 달라졌다. 고객이 만족하지 못하는 요리를 그대로 내놓을 수는 없었다. 이들은 주방에 복귀해 메뉴를 개선하기 시작했다. 그해부터 호시노 리조트의 고객 설문조사(Customer Survey) 제도가 정착된 배경이다.



호시노 리조트는 고객이 리조트를 떠나면 e메일로 만족도 조사 설문지를 보낸다. (그림 2) 설문지는 총 30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체크인, 체크아웃 서비스는 물론 온천의 청결도, 객실과 온천 내 비치된 어메니티에 대한 만족도까지 모두 설문 대상이다. 점수는 최고 3점에서 최저 -3점을 줄 수 있다. 추가로 리조트 서비스에 대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주관식 문항도 있었다. 호시노 직원들은 설문 항목 가운데 50%인 15개 이상에서 3점 만점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 0점에서 -3점은 5%가 넘지 않는 게 목표다. 응답률은 약 25% 정도다. 응답자에게 별도의 혜택을 제공하는 설문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DBR Mini Box 1 : 리츠칼튼과 힐튼을 대적할 ‘오모테나시’


서구식 호텔은 보통 고객과 직원이 ‘수직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직원은 고객이 요구하거나 지시하는 것들을 잘 해결해야 한다. 서비스 좋기로 유명한 리츠칼튼의 경우 고객의 개별적인 요구에 절대로 ‘노’라고 하지 않겠다는 서비스 정신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종업원들에게는 2000달러의 자유 결재권이 제공되고 있다. 현장의 종업원이 급하게 고객의 요구에 대처해야 할 때 종업원들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고객이 중요한 회의 서류를 방에 두고 갔는데 리츠칼튼 종업원이 비행기를 타고 가 서류를 전달했다는 유명한 에피소드도 있다.

반면 료칸 문화는 료칸 측에서 구성한 스토리, 문화에 고객이 그대로 따르면서 만족을 제공하는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가 관행이었다. 오모테나시는 ‘방을 차린다’는 의미로 고객을 대접하기 위해 손수 공간을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고객과 대등한 관계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대접하는 일본 특유의 서비스 문화다. 료칸 주변 지역을 충분히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이들의 역할이다.

2016년 도쿄 중심가에 문을 연 호시노야 도쿄는 현대식 고층 빌딩이다. 하지만 내부는 온천 료칸 시스템을 그대로 따랐다. 손님은 료칸에서 정해진 대로 현관에서 구두를 받고 일본식 간편 기모노인 ‘유카타’를 입고 관내를 돌아다니면서 일본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일반적인 료칸과 달리 시계를 설치하지 않았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한 휴양을 즐기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호시노야 도쿄를 제외한 다른 호시노야 브랜드에는 TV조차 설치하지 않았다. 또한 일본식 료칸의 미적 감각과 휴양을 위해 일부러 조명도 어둡게 한다. 더 밝게 해 달라는 고객의 요구도 수용하지 않는다. 휴양과 일본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일본 특유의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호시노 사장은 이러한 일본식 호텔 서비스가 고객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했을 때다. 미국에 있는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은 일본이 서구식 호텔을 짓는 것도, 내가 문화 행사에 민족의상 대신 양복을 입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있다고 봤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의 핵심 정체성을 지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호텔 서비스를 개발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설문조사 결과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설문조사 데이터는 직원이나 사업부서의 성과를 평가하는 자료가 아니다. 현재 제공하는 서비스를 되돌아보고 개선할 방법을 찾아내는 기초 자료로 쓴다. 설문조사 데이터는 인터넷을 통해 직원들에게 여과 없이 공개한다. 이 시스템을 ‘CRM 키친(Customer Relations Management Kitchen)’이라고 한다. 시스템에 접속하면 지난주부터 10년 전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를 모두 열람할 수 있다. 주관식으로 고객들이 서술한 대답도 리조트 서비스별로 분류해 제공한다.

직원들은 ‘공기를 마시듯’ 수시로 시스템에 접속해 고객의 생각을 살핀다. 최고점인 3점이 나오지 않은 서비스 항목은 사업부서별로 회의를 통해 개선점을 찾는다. 호시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개입은 없다. 직원들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답을 찾는다. 작은 개선이든, 큰 개선이든 상관없다.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개선할 점을 고민한다는 게 중요하다.

호시노 사장은 “직원들은 사장이나 상사의 지시에 따르지만 그건 직원들이 그 지시나 생각에 동의해서가 아니다. 상사이기 때문에 듣는 척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고객들의 이야기를 믿는다. 고객 설문조사 결과는 직원이나 사업부의 성적표가 아닌 자신의 서비스를 점검하고 개선해 나갈 수 있는 ‘건강 진단서’와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설문조사에 적힌 의견을 심도 깊게 고민해 큰 전환점을 만든 케이스도 있다. 일본 북부 홋카이도에 위치한 스키 리조트인 호시노 리조트 토마무(星野リゾート トマム, 이하 토마무)의 인기 상품 ‘운카이(雲海) 테라스’가 대표적이다.


리조트에 방문한 고객이 설문조사에서 ‘이른 아침에 즐기는 한 잔의 커피는 각별하니 보다 일찍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라운지를 오픈해 달라’고 요청했다. 단순히 생각하면 아침 식사 시간을 앞당겨 달라는 얘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직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기분’에 집중했다. 직원들은 이를 토대로 두 가지 기획을 내놨다. 하나는 숲속의 좋은 경치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다른 하나는 새벽에 곤돌라를 타고 산 위로 올라가 산속에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상품을 제안했다. 호시노 리조트는 후자의 아이디어에 집중해 서비스를 준비했다.

산속의 테라스는 이후 스키 시설에서 곤돌라 리프트를 관리하는 직원들의 아이디어로 토마무의 히트 상품 ‘운카이 테라스’라는 상품으로 업그레이드됐다. 곤돌라를 운영하는 한 직원이 산 정상에서 매일 보는 웅장한 운해에 집중해 아이디어를 냈다. 자신은 매일같이 보는 ‘당연한’ 장관이었지만 고객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고객이 이곳에서 운해를 보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운카이 테라스는 비수기인 여름에도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토마무의 최고 ‘히트 상품’이 됐다.

호시노 리조트는 고객 만족도 조사가 조직 스스로 개혁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여긴다. 고객의 요구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개선하면서 조직 전체가 진화한다. 호시노 사장은 “과학적인 기법을 활용해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직원을 발전시키고, 나아가 회사를 성장시켜 나갔다”고 자평했다.

‘멀티태스킹’으로 업무 생산성 제고
호시노 리조트를 방문한 고객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일이 있다. 직원들이 금세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곳 직원들은 유독 손님의 이름과 얼굴을 빠르게 기억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주 마주치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음식 서빙을 하는 직원이 객실 청소도 해주고, 프런트 데스크에서 결제도 도와준다. 고객과의 접점이 많다 보니 직원들은 개개인에 대한 정보를 더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자연스레 서비스도 필요한 곳을 제때 긁어주는 ‘맞춤형’이 된다. 그래서 고객들은 호시노 리조트에서 세심한 배려와 친절한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느낀다. 숙박료가 상당히 비싼 편인데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기저에는 호시노 사장이 2001년부터 도입한 ‘멀티태스킹’ 제도가 있다. 예를 들어 객실 서비스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청소, 프런트 데스크, 음식 서빙, 간단한 조리 등 4가지 업무를 수행한다. 대부분의 호텔이 서비스 영역별로 직원을 구분해 ‘전문화’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처음 멀티태스팅을 도입한 취지는 분명했다. 업무 공백과 과부하를 줄여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호텔은 서비스의 특성상 특정 시간대에 일이 몰린다. 고객들이 체크인, 체크아웃하는 시간, 식사를 하는 시간 등이 대체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체크인, 체크아웃 시간에는 프런트 데스크에 일이 많다. 체크아웃과 체크인 사이 시간대엔 객실 청소 업무가 바쁘다. 식사 시간대에는 식당이 북적거린다.

이야기를 반대로 뒤집어 보면 일이 몰리는 시간이 아니면 각 서비스 담당자들이 일손을 놓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멀티태스킹을 도입하기 전 호시노 리조트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객실 청소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12시부터 3시까지 바쁘고 그 외의 시간은 주로 ‘대기’하는 게 일이었다. 청소 도구를 관리하는 일을 제외하면 동료들과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허다했다.

호시노 사장은 멀티태스킹에서 답을 찾았다. 호시노 리조트의 서비스팀 직원이라면 고객 서비스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회사 방침을 정했다. 서비스팀 직원들의 스케줄은 이렇다. 아침 조는 새벽 5시30분에 출근해 오후 3시30분에 퇴근하고, 오후 팀은 오전 11시30분에 출근해 오후 10시30분에 퇴근한다. 아침 조는 출근하자마자 조식을 준비해 서빙한다. 9시부터는 프런트에서 고객들의 체크인, 체크아웃을 돕는다. 10시30분까지 체크아웃하는 고객을 배웅한 후 한 시간 정도 휴식한다. 11시30분부터는 객실 청소를 한 다음 오후 2시20분 회의에 참석하는 것으로 일과를 마친다. 회의에선 오후 출근자와 만나 고객 정보나 특이사항을 공유한다.

오후 출근자는 11시30분부터 2시30분까지 오전 출근자와 같은 스케줄로 움직인다. 오후 2시30분부터 프런트에서 체크인 업무를 담당한 후 오후 4시부터 1시간가량 쉰다. 오후 5시부터는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식사는 5시30분부터 9시30분까지다. 뒷정리를 한 후 10시30분에 퇴근한다. 늦은 밤과 새벽 시간에는 소수 직원들이 남아 비상상황에 대비한다.

물론 멀티태스킹 제도가 순탄하게 도입된 건 아니다. 처음엔 직원들의 반발이 거셌다. 특히 호텔 경영학과를 나왔거나 호텔 서비스에 대한 주관이 뚜렷한 직원들은 청소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서비스맨이 청소를 할 순 없다’고 강하게 맞섰다. 주방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전문성 없는 일반 직원들이 칼을 잡고 불을 쓰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기 위한 술수 아니냐며 호시노 사장을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호시노 사장의 의지는 완고했다.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익성을 높이고, 직원의 역량까지 발전시킬 방법은 멀티태스킹뿐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1년만 멀티태스킹 방식을 해보고 다시 논의해 보자고 직원들을 설득했다. 끝까지 반발하며 리조트를 떠난 직원들도 있었지만 상당수 직원은 그를 믿고 동참했다.

어렵사리 제도를 도입하고 보니 직원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고객 서비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해 보면서 전반적인 이해도가 확 높아졌다. 호텔리어로서 가져야 할 기본 덕목과 서비스 정신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객과 만나는 빈도가 늘면서 서비스 개선 의지도 높아지고, 아이디어도 더욱 다양해졌다. 여기에 규칙적인 교대 근무 시스템까지 자리를 잡으면서 업무 집중도가 올라가고 충분한 쉬는 시간도 확보됐다. 그렇게 멀티태스킹은 호시노 리조트를 대표하는 핵심 업무방식이 됐다. 현재 호시노 리조트에 신입으로 들어오는 직원들은 특별한 상황이 없는 한 서비스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한다.

호시노 리조트의 멀티태스킹 제도는 도요타의 ‘다능공(多能工) 제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도요타 직원들은 한 공정만 맡지 않고 여러 공정을 두루 거치며 일한다. 일손이 모자랄 경우 서로 거들 수 있도록 만든 시스템이다. 여러 공정을 경험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필요할 때 어떤 생산라인에 투입해도 거뜬히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다양한 업무를 맡아보기 때문에 한곳에서 일할 때보다 동기부여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특히 직원들 모두가 생산공정 전체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더 날카롭고 현실적인 공정 개선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멀티태스킹은 부수적인 효과도 만들어냈다. 서비스팀 업무 효율성이 확보되면서 서비스팀 외에 이벤트팀, 조리팀, 마케팅팀 등 전문성이 필요한 부서에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할 수 있게 됐다. 서비스팀에서 업무를 익힌 신입 직원들은 자신의 커리어 계획과 선호도에 따라 다른 부서로 투입돼 역량을 발휘한다. 타 부서로 가는 과정도 투명하다. 공식적으로 부서 이동을 신청하고 각 부서 면접을 통해 이동 여부를 결정하는 식이다.

책임의 선을 긋고 남의 일을 나 몰라라 하는 일은 호시노 리조트에서 상상할 수 없다. 서비스팀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타 부서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현장으로 달려간다. 전 직원이 호텔의 기본 업무를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부서 간 협업도 순조롭다.

2010년 호시노 리조트에 입사한 한국인 이근주 씨는 부서 간 적극적인 협업이 일상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토마무의 리테일 서비스 기획팀 관리자급인 유닛 디렉터(Unit Director, UD)로 일하고 있다.

이근주 씨가 웨딩 고객 서비스팀에서 일할 때였다. 레스토랑 팀과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었는데 당시 고객이 너무 많이 몰려와 레스토랑 내 일손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자 웨딩팀 직원들은 바로 레스토랑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주방에선 설거지, 홀에선 손님을 안내하며 일을 도왔다. 다른 팀에서 도움을 주기도 했다. 현재 이근주 씨가 관리하고 있는 편의점에 손님이 몰렸을 때에는 다른 팀 직원들이 고객 물건을 포장하거나 카운터 계산을 자발적으로 맡아줬다.

이근주 씨는 “멀티태스킹은 단순히 다양한 업무를 모두 할 수 있는 업무 스킬만을 가르치지 않는다. 멀티태스킹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가치는 고객을 편하고 즐겁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고객이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누구나 직원들을 서로 도와 업무의 연속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마인드를 갖는 게 멀티태스킹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Mini Box 2. 호시노리조트의 재생사업



호시노 리조트는 호텔을 ‘운영’하는 기업이다. 토지를 소유하거나 건물을 소유하지 않는 게 호시노 리조트의 원칙이다. 호시노 사장은 1991년 가문의 료칸을 물려받은 직후부터 이 원칙을 실천했다. 집안이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은 모두 매각하고 료칸과 호텔 운영에만 집중했다. 고객 만족도, 수익, 직원 만족도 등 호텔 운영 혁신에 몰두했다. 실제로 호시노 리조트는 업무 프로세스 개선,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 변화 등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해나갔고, 꾸준히 성장했다. 일반 일본 료칸 가동률이 37% 정도였는데 호시노 리조트의 가동률은 73%에 달했다.

호시노 리조트가 일본 전역에 35개 리조트, 해외에 2개 리조트로 확장할 수 있었던 것도 호텔 운영에만 집중한 결과다. 확장할 수 있는 기회는 2005년에 찾아왔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일본의 실적이 부진한 료칸과 온천을 사들여 새로운 관광레저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쉽게 사업을 진행하지 못했다. 가문의 전통과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료칸 주인들은 쉽게 경영권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료칸에 대한 지식이 없는 미국 회사가 무분별한 개발로 기존 자원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골드만삭스의 눈에 들어온 것은 호시노 사장이었다. 서구식 경영 스타일도 잘 이해하면서 료칸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온 경험이 있어 함께 사업을 하기에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이들은 5대5 합작법인을 세우고 일본 료칸 ‘재생사업’에 뛰어들었다. 투자는 골드만삭스가 하고, 료칸 운영은 호시노 리조트에 위탁하는 형태였다.

호시노 사장은 지방 료칸 주인들을 직접 만나 료칸을 없애려는 게 아니라 살려 나가기 위한 사업을 할 것이라고 설득했다. 골드만삭스 직원들을 지역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던 료칸 사장들이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료칸과 주변 자연경관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과거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해 재생사업을 진행하자 단기간에 성과가 나왔다. 처음 인수한 곳은 ‘리조나레 야쓰가타케(リゾナ一レ八ヶ岳)’라는 고급 호텔이었다. 이 호텔은 온천이 없어 고객들이 찾지 않는 게 문제였다. 호시노 사장은 역으로 이것을 이용했다. 온천이 없는 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고객층을 파악했다. 아이를 동반한 고객들에게는 온천보다 아이와 함께 놀 수 있는 공간, 아이를 자유롭게 맡길 수 있는 서비스가 더욱 중요했다. 탁아소와 북카페를 설치했더니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이 호텔은 3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호시노 리조트 아오모리야(星野リゾート青森屋)는 2004년 파산한 온천 호텔이었다. 자연경관이 훌륭한 노천탕, 맛이 훌륭한 향토 음식을 내세워 재단장했고
5년 만에 흑자를 냈다.

위탁 운영 경험은 호시노 리조트에도 큰 자산이 됐다. 우선 일본 전역의 관광지와 료칸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큰 자본 투자 없이 안정적으로 사업도 확장할 수 있었다. 호시노 사장은 “우리가 잘하는 것에 집중한 결과다. 부동산 투자는 리스크가 크다. 천재지변, 경기 변동 등 내가 스스로 경영 활동을 통해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많다. 위험을 감수하고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그 대가를 가져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부동산 소유와 호텔 운영을 분리했다”고 설명했다.

호시노 리조트는 2013년 골드만삭스와의 제휴를 종료했으며 이후에는 다른 투자회사의 투자를 받아 ‘호시노 리조트 리츠 투자법인’을 설립해 위탁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매뉴얼화 된 업무 숙지와 권한 위임의 ‘조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직원들이 멀티태스킹을 통해 터득한 지식과 아이디어는 호시노 리조트의 핵심 경쟁력이다. 직원들은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공유해 새로운 서비스나 이벤트로 발전시켜 나간다. 직원들 개개인이 자신의 업무를 바탕으로 신상품 개발자가 되는 것이다. 멀티태스킹 극대화가 낳은 긍정적인 효과다. 이를 위해 호시노 리조트가 반드시 지키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첫째, 철저한 교육으로 직원들이 매뉴얼화된 업무를 완전히 숙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기초 지식이 충분히 쌓여야 비로소 창의성도 발휘할 수 있다. 매뉴얼을 지키는 교육은 철저히 현장 실습 위주로 이뤄진다. 선배와 짝을 이뤄 청소, 프런트 데스크, 주방 업무 등을 1대1로 배운다. 객실 청소의 경우 청소의 순서, 이불을 개는 방법, 화장실 청소 등 세세한 방식 전부가 교육 대상이다. 주방 업무도 마찬가지다. 칼질하는 방법부터 재료를 손질하는 방법, 프라이팬에 계란을 요리하는 시간 등 사소한 영역까지 정해진 룰을 가르쳐 준다. 직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프런트 데스크 업무도 선배와 함께 시작한다. 전산 처리, 계산, 고객 응대 등 복잡한 일을 실수 없이 빠르게 처리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업무당 교육 기간은 약 한 달 정도. 객실 서비스 전체를 배우는 기간이 최소 넉 달이다.

빠른 업무 숙지를 돕기 위해 최근엔 동영상 교육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신입 직원들이 인터넷으로 1∼2분짜리 짧은 동영상을 보고 기본적인 업무 순서와 방법을 숙지한다. 새롭게 익혀야 할 내용이 있을 때도 동영상 자료를 업데이트한다. 지금까지 약 1900여 편의 동영상이 교육 자료로 활용됐다.

둘째, 자율성의 제도적 보장이다. 직원들이 직접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는 창구를 공식적으로 마련했다. ‘매력 회의’가 대표적인 예다. 매력 회의는 리조트별로 직원들이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펼치며 서비스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다. 한 달에 최소 한 번씩 여는 것이 원칙이지만 시즌 서비스를 개발하고 싶거나 시급한 개선점이 있을 때에는 직원들의 요청하에 수시로 열리기도 한다. 각 리조트의 마케팅팀 직원이 회의를 진행하고 조율하는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맡는다. 희망하는 직원은 누구나 참석해 자기 생각을 개진할 수 있다. 고객들에게 전달받은 생생한 의견, 서비스를 하면서 느낀 개선점 등을 제시하며 자유롭게 토론한다. 자기 부서, 업무와 관련이 없더라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누구나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아이디어를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강제로 쥐어짜면 오히려 신선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게 이 회사의 철학이다. 자유로운 토론을 거쳐 직원들이 직접 좋은 아이디어를 선정하고 한 단계씩 발전시킨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것이나 발전 포인트를 찾는 것도 모두 직원들이 직접 한다. 리조트의 총지배인이나 부서장/팀장급인 UD들은 이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조언만 한다. 이렇게 한층 업그레이드된 아이디어는 호시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함께 치열한 토론을 거친 후 실제 서비스로 다시 태어난다.

토마무에서 진행하는 ‘토마 피크’는 매력 회의가 탄생시킨 대표적인 인기 상품이다. 일대에 자작나무가 많은 토마무리조트의 특성에 주목한 직원들이 스스로 이와 연계한 프로그램을 연구했다. 그 결과 자작나무 숲에 소풍을 가서 각종 디저트와 차를 즐길 수 있는 휴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고객들의 큰 사랑을 받으며 지금은 토마무리조트의 상징이 됐다.

이근주 씨는 “매력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내면 일 년에 두 번 UD와 평가 면담을 할 때 능동적 참여, 팀의 공헌도로 평가점수를 높일 수가 있다. 호시노 리조트의 직원 평가 시스템은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하는 과정을 평가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능동적으로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직원일수록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호시노 사장은 “멀티태스킹 과정에서 직원들이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은 더 나은 서비스를 완성하는 원동력이 된다. 특히 모든 직원에게 회사에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권한을 주기 때문에 차원이 다른 주인의식이 생긴다. 자신이 직접 경영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직원들이 늘어날수록 고객 만족도가 높아지고 궁극적으로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Mini Box 3. 호시노 사장이 아버지를 해임한 까닭
호시노 사장의 행보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호텔 서비스팀 직원들에게 청소를 시키고, 연공서열을 폐지하는 등 일본 기업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방식으로 경영해왔다. 이 제도가 정착하기까지 직원들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호시노 사장이 직원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스스로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호시노 리조트의 경영 정상화와 성장을 위해 당시 사장이었던 아버지를 해임했다. 호시노 가스케(星野嘉助) 전 사장은 친척들이나 지인에게 시중보다 더 비싼 가격에 물품을 납품하고, 더 많은 급여를 주는 등 방만한 경영을 해왔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이 사실을 알게 된 호시노 사장은 크게 반발했고, 그동안의 관행을 고쳐야 한다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하지만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호시노 사장은 아버지의 고집을 쉽게 꺾지 못했다. 화가 난 호시노 사장이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것을 포기하고 글로벌 금융회사에 취직해 일할 정도였다.

호시노 사장는 여기서 물러나지 않았다. 회사 경영 정상화를 위해 이사회 이사들을 설득하고 나섰다. 마침내 이사회를 열었고, 60%의 지지를 얻어 아버지를 해임하고 4대 사장이 됐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친족 특혜 타파’를 공식화한 것이었다. 기존 납품 업체도 바꾸고, 친족의 월급도 정상화했다. 불필요한 직함을 가지고 있는 가족들도 모두 회사에서 내보냈다. 친족과 아버지의 엄청난 반발이 있었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다.

직원들은 호시노 사장의 행보가 회사와 직원들을 위한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가 고집하는 경영방식이 다소 터무니없거나 어려워 보여도 직원들이 결국 설득당했던 이유다. 2013년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는 나중에 그의 성공을 지켜본 후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인정하고 지지했다고 한다.

직원들이 직접 뽑는 매니저 선출제
호시노 리조트에서는 나이, 성별, 경력,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나 리더로 자원할 수 있다. 이제 막 입사한 신입 직원들도, 일본어가 서툰 외국인도 제한이 없다. 대신 자신이 UD가 되려는 곳의 업무를 어떻게 개선하고 발전시킬 것인가를 주제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프레젠테이션 시간은 약 15분이며, 이후 10분간의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다.

회사는 직원이 UD에 입후보하면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전문 강사나 선배 직원들은 자료 조사부터 발표 리허설까지 세심하게 도와준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는 일본 특유의 문화적 특성을 극복하기 위한 회사의 배려이기도 하다. UD선출대회는 상·하반기에 한 번씩 일 년에 두 번 열리는데 총 100∼150여 명이 지원한다.

재미있는 것은 같이 일할 직원들이 UD 후보들의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평가한다는 점이다. 경영진이 관여하지 않으면서 인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였다. 직원들은 인터넷으로 실시간 중계되는 프레젠테이션을 꼼꼼히 따져본다. 평가 항목은 크게 3가지다. 첫째, 후보가 내세운 전략의 ‘질’이다. 얼마나 미래를 내다본 전략인지, 시장의 상황은 물론 고객의 니즈와 잘 맞는 전략인지를 중점적으로 판단한다. 두 번째는 조직 개발 측면이다. 지속 가능한 조직 문화를 조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조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잘하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중장기적으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살핀다. 단기적인 성과, 재무적인 성과보다 고객 만족도가 평가의 최우선 기준이다. 호시노 리조트는 전 직원들의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최종 UD 풀을 선발한 후 각 부서에 배치한다.

부서 간의 장벽을 완전히 허물어 해당 부서 직원이 아니어도 UD 출마가 가능하다. 옆 부서의 일을 관찰하다 스스로 더 잘 관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 부서의 UD로 지원할 수 있다. 없는 부서를 만들어 출마하는 경우도 있다. 새로운 서비스나 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새 부서가 왜 필요한지, 어떤 성과를 낼 건지를 위주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면 된다. 실제로 한 직원은 토마무의 콘도미니엄동 전담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스스로 팀을 만들어 UD 후보로 등록했다. 프레젠테이션 후 회사 전 직원들과 경영진의 의견을 반영해 신설된 부서의 UD로 배치됐다. 회사는 UD 선출 후 e메일로 새 부서의 팀원 지원자를 받았다.

UD의 정해진 임기는 없다. 성과가 좋고 부서나 팀 내의 직원들이 지지하면 계속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반대로 업무가 생각보다 잘 맞지 않거나, 성과가 예상보다 저조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다. 직원이 스스로 결정할 수도 있고, 회사에서 판단해 부서를 재배치하는 경우도 있다.

UD 제도가 도입된 건 20여 년 전인 1995년이다. 호시노 리조트도 여느 일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경직된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나이 많고 경력이 많은 사람이 승진을 하고 의사결정을 했다. 신입사원들은 주로 단순하고 귀찮은 일들을 도맡았다. 이런 구조는 젊은 직원들을 금방 지치게 했다. 애써 뽑은 신입들은 2∼3년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호시노 사장은 나이나 직급에 상관없이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회사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처음엔 회사의 경직된 분위기를 전환하고 조직에 활력을 더하기 위해 능력 있는 직원 몇 명을 선정해 관리자로 승진하는 방법을 써봤다. 그런데 이 시도는 오히려 큰 부작용을 낳았다. 직원들은 ‘사장이 특정 직원을 편애한다’고 생각했다. 직원들이 승진한 젊은 매니저를 잘 따르지 않았다.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사내 정치만 더 늘어나는 모양새였다.

호시노 사장은 ‘직원들이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는 인사제도’라는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UD의 진입장벽을 없애버리고 직원들이 스스로 관리자를 뽑는 시스템을 생각해 냈다. UD가 되고 싶은 직원들은 어떠한 제한 없이 프레젠테이션만 잘 준비하면 된다. 직원들은 이들 중 함께 일하고 싶고 능력 있다고 생각되는 직원을 선택한다. 후보로 나오는 직원이나, 투표를 하는 직원이나 모두 자발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다. 상사의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 직원들이 서로를 평가하니 직원들은 나이가 어리든 많든, 경력이 짧든 길든 선출된 UD를 존중하고 인정해 줄 수밖에 없었다.

UD는 ‘팀 주장’과 같은 개념… 직원이 커리어 선택 주도
호시노 사장은 UD 선출제를 지탱하는 세부적인 시스템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상 체계, 조직문화, 커리어 관리 등 제도를 뒷받침하는 정교한 프로그램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UD의 역할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UD 선출 제도의 취지는 완벽한 ‘팀’이 돼라는 것이다. UD는 다른 직원들을 ‘통제’하는 위치가 아니다. 조직원을 다독이고 본인이 앞장서서 나아가는 팀의 주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팀원들도 UD에게 모든 책임과 권한을 맡기고 따라만 다니지는 않는다. UD가 부족한 점이 있으면 자신들이 채워주고, 결과적으로 더 옳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 UD와 함께 일하는 팀원들을 ‘플레이어(Player)’라고 부르는 이유다.

UD는 ‘승진’이 아니라 직원들이 커리어를 개발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UD는 관리자로 성장하고 싶은 직원의 선택이다. 관리자가 될 뜻이 없다면 굳이 UD에 도전하지 않아도 된다. 업무 전문성을 길러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할 수 있다. 자신의 역량을 꾸준히 개발해 서비스팀, 조리팀, 이벤트사업팀 등 특정 부서에 특화된 능력을 발휘하면 스페셜리스트로 인정받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게 된다.

이근주 씨도 입사 4년 만에 토마무의 웨딩 고객서비스 예약팀 UD로 선발됐다. 그곳에서 5년 동안 일한 후 현재는 서비스리테일 UD로 활약하고 있다. 이근주 씨 팀에는 아빠뻘이 되는 직원들도 서너 명이나 있다. 이근주 씨의 아버지가 ‘네가 상사여도 연장자를 꼭 존중해야 한다’고 주의를 줄 정도다. 하지만 이근주 씨가 이런 신경을 쓸 이유가 전혀 없다. 이들의 관계는 상하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연장자라고 UD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지시에 불복하는 직원은 거의 없다. 젊은 UD는 연장자의 경험과 지식을 존중하고 배우면서 진취적으로 사업을 이끌어 나간다.

호시노 사장은 “모든 사람은 약점과 강점이 있다. 팀은 서로의 약점은 보완하고 강점은 더 살려줄 때 빛을 발한다. UD제도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여기에 있다. 궁극적으로 각 부서가 어떻게 성과를 낼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조화를 이뤄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젊은 사람들의 입장도 많이 고려했다.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상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스스로 관리자가 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자발적으로 의욕이 있는 사람에게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량보다 더 중요한 것이 더 많은 책임과 일을 하겠다는 의지와 열정이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 호시노 리조트는 경영진과 직원들이 공유하는 경영 정보의 수준을 동일하게 만들었다. 회사에 중요한 사건이나 상황이 발생하면 경영진은 주저하지 않고 전 직원에게 알린다. 과거 매출, 수익, 직원 등 회사에 궁금한 경영 정보가 있으면 UD나 총지배인과 상담한 후 얼마든지 제공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정보 공유는 직원들이 누구나 자신 있게 사업 부서를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또 회사를 신뢰하고 일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역할에 따라 월급을 줄일 수도, 늘릴 수도 있는 유연한 임금 체계를 눈여겨봐야 한다. 호시노 리조트는 UD에게 일반 직원들보다 훨씬 많은 보수를 제공한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UD는 승진의 개념이 아니지만 팀원을 이끄는 입장이다. 조직 관리, 직원 평가, 프로젝트 관리 등을 도맡는다. 같은 보수를 받으면서 더 많이 일하려는 직원은 없다. 그렇기에 직원들은 UD가 되면 플레이어들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두 번째는 많은 직원이 UD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많은 보수를 받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이 UD에 도전하려 할 것이다. 그만큼 직원들은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고 직원들과 좋은 팀워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실적이 안 좋은 UD들은 어떻게 될까. 회사에서 부서를 재배치해 팀원으로 복귀할 수도 있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 이때 보수도 팀원 수준으로 내려간다. 대신 회사는 배려 차원에서 3년의 ‘유예 기간’을 준다. 3단계를 거쳐 보수가 내려가는데 이 사이에 본인이 원하는 경우 다시 UD에 도전할 수 있다.

상대적 박탈감이 크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UD에서 물러나서 팀원으로 복귀하는 것이 이미 보편화돼 있기 때문에 직원 스스로 실패했다고 여기지 않는다. 퇴사를 결정하지 않는 한 정년까지 다시 UD에 도전할 기회도 주어진다. 그래서 급여가 깎이는 것도 큰 부담이 없다. 더 많은 기회를 직원들이 골고루 나눠 갖기 위한 선택이라고 여긴다.

호시노 사장은 “UD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UD에서 팀원으로 복귀할 경우 급여도 함께 깎는 것에 직원들이 동의했다는 점이다. 1990년대 후반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직원들과 수없이 토론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직원들이 반대했지만 도입한 후 직원들의 만족도가 예상보다 높았다. 연령이나 성별, 경력에 상관없이 더 많이 일하고 성과를 내는 직원에게 돈을 더 많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통해 서로를 존중하며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Mini Box 4. 호시노리조트 브랜드가 4개인 이유

호시노 리조트는 현재 총 4개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호시노야(Hoshinoya)’는 최고급 호텔 브랜드로 럭셔리 리조트를 지향한다. ‘카이(Kai)’는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럭셔리 료칸이다. 주로 기존 료칸의 특성을 잘 살려 리모델링했다. 지역 특색이 강조된 다양한 활동과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리조나레(Risonare)’는 세련된 디자인의 서양식 리조트다. 온천이 꼭 포함되지 않는 대신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이나 가족들을 위한 여행 상품을 준비했다. 올해 개장한 오모(OMO)라는 브랜드는 실속형 도심 관광형 호텔이다. 고객들이 다른 브랜드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휴양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호시노 사장은 “기존 글로벌 호텔 브랜드들은 이름만 살짝 바꿔 한 도시에서 여러 호텔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고객들이 이 호텔들을 갔을 때 서비스의 차별점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호시노는 전혀 다른 개성과 특징을 가진 브랜드를 론칭했다”고 밝혔다.

성공 요인 및 시사점
1) 권한 위임을 통한 자율성 확보
리더십과 조직 관리의 권위자인 켄 브랜차드 박사는 존 카를로스, 앨런 랜돌프와 함께 저술한 『Empowerment Takes More Than a Minute』를 통해 ‘사람들은 이미 지식과 동기를 통해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 권한 위임은 이 역량을 풀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즉 권한 위임은 개인의 잠재 능력을 끌어내 조직과 개인이 모두 발전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권한 위임이 잘 이뤄지기 위해선 3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전 직원과 경영진이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책임감 있는 사람을 조직에 두기 위해선 그 사람을 경영진이 신뢰해야 한다.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기 어렵다. 회사의 재무정보, 신사업 동향, 경영진 활동 등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직원들도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호시노 리조트는 ‘경영진과 직원이 같은 수준의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 실천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재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업 방향성 등을 모두 알려 직원들을 이해시킨다. 고객 설문조사 내용, 영업 현황도 필요한 경우 수시로 열람이 가능하다. 민감하다고 생각되는 과거 정보들도 직원이 요청하면 제공한다. 직원들은 이런 정보들을 토대로 회사의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회사에 대한 신뢰가 깊어지고 직원들은 보다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자율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즉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를 명확히 해 직원들의 혼란을 막아야 한다. 강에 강둑이 없다면 흐름이 없는 하나의 물웅덩이에 불과하다.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직원들이 어느 정도의 자율권을 행사할지, 어떠한 능력을 개선해야 할지 그 기준을 세울 수 있다.

호시노 리조트는 고객 만족 극대화와 수익률 향상이라는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효율적으로 일하면서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한다. 직원들이 개발한 토마무의 ‘운카이 테라스’는 이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한 훌륭한 예다. 직원들은 고객이 아침에 더 일찍 커피 한 잔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허투루 듣지 않고 한 층 더 업그레이드된 서비스를 개발했다. 운해를 보기 위해 비성수기인 여름에도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운카이 테라스는 토마무리조트의 가동률을 높이는 효자 상품이 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직원들은 회사의 목표, 비전과 자신의 업무가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직원들이 기본적인 업무에 대해 철저하게 습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권한을 위임하면 오히려 회사의 리스크만 더 커질 수 있다. 따라서 권한 위임과 함께 표준화된 업무에 대한 엄격한 교육과 관리도 실행돼야 한다. 호시노 리조트는 기본 업무를 숙지하는 것을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 여긴다. 1대1 현장 학습뿐만 아니라 동영상 교육 프로그램을 배포해 기본 업무를 숙지시킨다. 누적된 매뉴얼 동영상이 1900여 개에 달할 만큼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셋째, 전통적인 위계질서를 대체하기 위한 자율 경영팀(Self-managed team)이 필요하다. 권한 위임이 이뤄지면 모든 사람이 책임과 결정 권한을 갖는다. 따라서 블랜차드 박사는 한 개인이 조직을 운영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팀으로 활동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자율 경영팀이 되기 위해선 리더가 아닌 팀이 주도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누군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전통적인 관리자처럼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물론 팀을 이끄는 리더의 역할은 존재한다. 이 리더는 지시를 내리는 역할이 아니다. 주로 조언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적절한 순간 팀원들을 도와줘야 한다.

호시노 리조트는 연공서열을 탈피한 UD 선출제도를 통해 자율 경영팀을 운영하고 있다. 신입사원이든, 외국인이든 상관없이 리더가 되고 싶으면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직원들은 같이 일할 동료를 뽑는다. 특히 승진의 개념을 없애 직급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에 대한 편견을 없앤 조직문화를 형성했다. 공통된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성과도 함께 나눠 갖는다.

수평적인 조직 문화는 호칭을 영어로 바꾸고 상사 위주의 회식 문화를 제거한다고 달성하는 것이 아니다. 직원들이 실질적인 권한을 가져야 하고 그 권한에 걸맞은 정보 공유, 영향력 등과 같은 시스템도 함께 구축돼야 한다. 무턱대고 수평적 문화를 도입하기보다 자국 내 사회 문화나 제도를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호시노 리조트는 UD에서 내려오더라도 3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연봉을 단계별로 조정하며 페널티 없이 언제든 다시 UD에 도전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정년을 보장하는 일본식 기업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2) ‘멀티태스킹’을 통한 업무 생산성·직원 만족도 동시 달성
서비스 산업은 외부 변수가 많은 영향을 끼친다. 경기는 물론 사람들의 심리도 영향을 끼친다. 관광업은 더욱 심하다. 성수기와 비수기가 뚜렷하다. 경제 상황뿐만 아니라 메르스, 세월호 등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도 타격을 받는다. 따라서 상황에 맞게 인력을 운영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런 이유로 많은 서비스업이 인력을 운영할 때 ‘수요추구전략(Chase Strategy)’을 적용한다. 시간대나 요일별 고객의 방문 패턴에 맞춰 인력을 고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할인마트의 경우 퇴근 시간대나 주말이나 공휴일 전날 직원을 더 많이 고용한다. 또한 고객 방문을 정확히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시간이 임박해서야 직원들의 근무표가 확정된다. 기업이 보다 효율적으로 인력을 활용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오히려 직원들의 업무 생산성을 저하시키고 고객 서비스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언제 일하게 될지, 언제 그만두게 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직원들은 업무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간대가 불규칙해 정규직 대신 파트타임 인력의 비중이 늘어나게 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직원들이 업무를 연속성 있게 진행할 수 없어 고객들을 응대하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회사가 예측한 고객의 패턴, 수요 예측이 빗나갈 경우에는 고객을 정상적으로 응대할 수 있는 없다는 것이다. 수요 추구 전략의 악순환이다.

제이넵 톤 MIT 경영대학원 교수는 『Good Job Strategy』를 통해 이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탈바꿈하는 방법이 멀티태스킹이라고 주장한다. 다양한 종류의 직무를 교육하는 교차 업무교육(cross training)을 통해 직원의 수를 조절하지 않아도 업무의 공백이나 과부화를 해결할 수 있다. 모든 직원의 ‘노는 손’을 제거해 노동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고, 직원 수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어 기업의 비용도 줄어든다.

호시노 리조트 직원들은 객실 청소, 고객 응대, 요리, 서빙 등 다양한 업무를 습득해 고객의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했다. 회사는 서비스별로 고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대를 쪼개 그 상황에 맞게 직원의 시간표를 짰다. 고객의 수요에 맞게 직원 수를 조정하지 않아도, 성수기에 직원의 수를 늘리지 않아도 고객들은 대기 시간 없이 호텔 서비스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일각에선 멀티태스킹이 회사에 더 큰 손실을 끼칠 수 있을 것이란 반론을 제기한다. 직원을 교육하는 시간이 많이 들고, 직원들이 여러 가지 직무를 수행하면서 전문성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멀티태스킹은 비용보다 이익이 더 큰 경우가 많다. 리처드 핵만과 그레그 올드햄이 저술한 『Work Redesign』에서 제시한 일을 의미 있게 만드는 조건은 세 가지다. 첫째, 다양한 업무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둘째, 업무의 처음과 끝을 모두 체험하고 파악한다. 셋째, 차이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멀티태스킹은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다. 특히 고객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서비스업에서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전체 서비스를 이해하면 고객의 불편함이나 요구를 잘 파악할 수 있고 이를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시노 리조트의 서비스팀도 네 가지 업무를 수행하면서 호텔 서비스의 처음과 끝을 모두 경험하고 고객과의 접점을 넓혀 나갔다. 이 과정을 통해 고객 서비스 개선과 새로운 상품 개발 등을 위한 작업을 직원들이 주도했다.

3) 철저한 경험 가치 추구
호시노 리조트의 혁신적인 운영 시스템과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는 인사제도는 고객을 소중하게 여기고 남들과 다른 경험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강화돼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경쟁력이 있는 경험가치라는 것은 고객에 대한 철저한 배려를 기반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만큼 새로운 아이디어나 창의적인 시도가 요구된다.

호시노 리조트 사례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의미 있는 고객 경험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부터 열정을 가지고 종업원들과 함께 아이디어와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단순히 1회성의 기획이 아니라 기업조직 자체가 끊임없이 경험 가치를 탐구하고 향상하려는 노력이 일상화되고 체질화돼야 하는 것이다.

호시노 리조트는 무엇보다 고객의 목소리를 중시했다. 호시노 사장이 주방장에게 음식의 맛을 바꾸라고 해도 전통 료칸에서 수십 년 동안 일해 온 전문가가 쉽게 수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고객의 목소리를 객관적으로 보여주자 변화가 일어났다. 따라서 호시노그룹은 고객에 대한 설문 조사에 주력했다.

덕분에 ‘과거의 데이터로 보면 고객은 이럴 것이다’라는 식의 사고의 틀에서도 벗어났다. 기존 데이터에 없는 새로운 시각과 아이디어로 가설을 만들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때로는 기존 데이터에서 표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숨은 의미를 찾아야 한다. 호시노 사장의 경우 경험이나 감과 함께 철저한 토론 과정을 거쳐서 가설을 만들어 나가면서 독특한 아이디어에 기반한 고객 경험 가치를 설계했다.

필자소개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 연구위원 jplee@lge.co.kr
이지평 수석 연구위원은 1963년 일본 도쿄에서 출생, 호세이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으로 건너와 1988년 고려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대통령 자문 기구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의 남북 대외협력 전문위원회 위원, 산업자원부 제조업 공동화 대책회의 위원, 미래부 미래성장동력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 부문 수석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는 일본을 닮아가는가』 『일본식 파워경영』 『일본형 자본주의』 등이 있다.


DBR mini box I : 아마존의 끝없는 오프라인 확장 전략

온라인에선 방대한 데이터를, 오프라인에선 초정밀 데이터를 얻는다

아마존이 최근 아마존북스, 아마존 4스타, 홀푸즈마켓, 아마존고, 아마존 락커 등 오프라인 매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존의 오프라인 매장은 크게 온라인 경험에서 출발해 오프라인과 연결하고 결합한 ‘아마존북스’와 ‘아마존 4스타’, 오프라인 경험을 온라인에 결합하려는 시도로 ‘홀푸즈마켓’과 ‘아마존고’, 온·오프라인으로 멤버십과 식료품 쇼핑을 결합하는 홀푸즈마켓과 ‘아마존프레시’의 사례로 나눠볼 수 있다.


1. 온라인 경험을 오프라인에 접목한 ‘아마존북스’

아마존북스는 아마존 고객의 온라인 경험을 오프라인에 그대로, 완벽하게 구현한 최초의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아마존북스에 전시된 모든 책에는 고객의 별점 평가가 달려 있다. 온라인 고객 평가를 오프라인에 옮겨 놓은 형태로, 평가에 대한 멘트나 별점도 수시로 바뀐다. 아마존북스 회원에 대한 할인율은 아마존 온라인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크다. 비회원 고객도 방문 뒤에는 반드시 가입을 해야 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차별화된 가격을 제시한다. 또 아마존의 성공 요소 중 하나인 ‘프라임’으로 결제 시에는 프라임 회원임을 밝히지 않아도 간편 결제에 등록돼 있으면 자동 할인을 해준다. 책과 영수증, 안내 보드 등 매장 곳곳에 프라임 고객을 대상으로 한 큰 폭의 할인율을 공지해 놓음으로써 비회원 관객이라면 할인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2. 오프라인 경험을 온라인에 접목한 ‘아마존고’

많은 사람이 4차 산업혁명의 대표 사례이자 그에 따른 대량 실직을 경고하기 위해 아마존고 사례를 많이 든다. 하지만 아마존은 계산원 인력 부담 때문에 아마존고를 설계하지 않았다. 아마존고 매장은 센서들의 총집합으로, 인공지능을 접목해 고객을 분석하고 자동화를 통해 고객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아마존고는 이미지 센서에 의한 딥러닝 기술, 센서융합기술, 버추얼카트 및 전자 영수증, 간편 결제 기술 등 미래 기술의 총 융합체다. 매장의 모든 고객과 상품에 대한 기본적인 센서와 이미지를 통한 딥러닝 결과를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하고,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분석, 제공하는 ‘디지털 연결(Digital Thread)’의 시범장인 것이다. 아마존은 이를 통해 고객의 동선과 상품 구매 습성, 주기 및 구매 선호도, 결제 금액과 경제력 등 대단히 정교한 고객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아마존고 역시 프라임 고객을 확보하고 그들에 대한 서비스를 개선하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한다. 아마존고에 입장하려면 기본적으로 프라임, 또는 등록 고객이어야 한다. 고객은 QR 코드를 가지고 매장에 입장해야 하고, 결제 수단이나 기본 정보가 사전에 등록이 돼 있어야 한다. 아마존은 아마존고를 활용해 이미 3억 명을 넘어선 프라임 고객을 확보하는 동시에 데이터를 활용해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3. 아마존 멤버십에 온·오프라인 쇼핑을 결합한 ‘홀푸즈마켓’

아마존이 기존에 알려진 대로 홀푸즈마켓을 아마존 락커의 거점이자 식료품 니즈가 강한 프라임 고객에게 혜택을 주는 정도의 목적으로 홀푸즈마켓을 인수했다면 오판이다. 그 같은 서비스는 인수합병이 아닌 단순한 제휴로도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아마존이 홀푸즈마켓을 인수한 후 대대적인 할인에 돌입하고, 프라임 고객에 한해서 추가적인 할인 혜택을 부여한 것은 맞다. 이는 아마존북스와 마찬가지로 기존 프라임 고객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고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촉매제가 됐다. 홀푸즈마켓의 매장 도처에는 프라임 고객에 대한 할인 공지문이 붙어 있고, 영수증 등에도 “프라임 고객이면 많은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기저기 떠들고 있다.

일부 품목이기는 하지만 현재 아마존고에서 사과나 토마토, 바나나에 대한 구매가 이뤄지는 것을 보면 홀푸즈마켓의 새로운 기술 적용은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아직까지 홀푸즈마켓에 아마존고와 같은 기술적인 혁신이 적용된 부분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식료품이나 야채, 과일에 대한 고객들의 선입견으로 기술 적용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수 있으며, 둘째, 이미지나 딥러닝, 센서에 대한 응용이 대단히 어려울 수 있다. 농수산물의 특성상 자주 교체되며 품질을 일정한 기준으로 기술적으로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향후 아마존고와 같은 시스템이 홀푸즈마켓에까지 적용된다면 지금까지 인간이 경험하지 못한 농수산물 쇼핑 형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존은 최고의 인공지능 쇼핑 기업으로 등극할 것이다.


4. 음성인식 인공지능 쇼핑의 미래

아마존 오프라인 매장은 공통적으로 아마존 제품의 전시장 역할을 하고 있다. 아마존북스, 아마존 4스타, 하물며 홀푸즈마켓에서도 아마존 TV와 에코, 아마존 홈 서비스 단말들을 판매한다. 이 같은 전시장은 아마존이 최근 축소하고 있는 팝업스토어를 대체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아마존 락커로도 활용된다. 아마존은 오프라인 매장을 전시장이자 유통 물류의 거점으로 활용하면서 고객에게는 편리함을, 아마존에는 비용 절감과 효율성의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아마존의 오프라인 거점들은 온라인 고객이든, 오프라인 고객이든 수많은 센서를 통해 산출되는 고객의 쇼핑 특성 정보를 활용해 고객 맞춤형 인공지능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토대로 봐야 한다. 1994년 설립 이후부터 아마존의 변함 없는 경영 목적은 바로 ‘쇼핑’이다. 특히 음성인식 인공지능 비서를 통한 쇼핑은 지금까지 인간이 경험하지 못한 형태로 기업에 최고의 성장 기회를 가져다줄 가능성이 있는 비전 아이템이다. 음성인식 쇼핑이 확대된다면 어린아이와 노인 가릴 것 없이 구매계층이 확대될 뿐 아니라 반복적인 자동 구매가 늘어날 것이다. 이 같은 미래를 선점하기 위해 기업들은 더 작고 빠르고, 고객 맞춤형이고 분산된 민감 데이터를 확보하고자 할 것이다. 그동안 아마존이 온라인으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생성하고, 또 모바일을 통해서 질적으로 정교한 데이터로 정제했다면 앞으로 오프라인 고객으로부터 초정밀 데이터를 걸러내고자 할 것이다.


필자소개 최재홍 강릉원주대 멀티미디어공학과 교수 smart_phone@daum.net
필자는 e-삼성 Japan 사업 고문, NHN Japan 사업 고문을 지냈으며, 현재 카카오의 사외이사이자 강릉원주대 과학기술대학 멀티미디어공학과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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