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4. 인기 끄는 프리미엄 식음료 오프라인 매장의 핵심

디지털 솔루션 + 아날로그적 감성
“거기 가봤어?” 색다른 경험을 녹여야

Article at a Glance
쉐이크쉑, 블루보틀 같은 F&B 브랜드의 성공적인 국내 진출, 배스킨라빈스 심슨 매장의 인기, 세포라의 O4O 혁신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오프라인 스토어의 성공 비결은 다음과 같다.

1. 고급 품질의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대를 제시함으로써 고급스러움과 실용적인 가치 사이에서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을 만들었다.

2. 알록달록한 버거, 섬세한 커피 향기, 예뻐 보이는 얼굴 등 고객이 느끼고 싶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브랜드 경험을 공간에 녹였다.

3. 최신 디지털 솔루션을 활용하면서도 오프라인의 본질적 존재 의미, 인간적인 아날로그적 감성과 고객의 자율성을 공간에 반영했다.

딜리버리, 당일 배송, 익일 새벽 배송, 푸드테크 발전 등으로 외식 산업에서도 e-커머스 시장의 확대와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다. 손가락 하나로 샐러드에서 삼겹살까지 모든 종류의 음식을 언제, 어디서나 쉽게 주문할 수 있고 빅데이터와 커스터마이제이션(customization) 데이터를 통해 식료품 배송이 몇 시간 내로 단축됐다. 필자도 사라진 집 앞 대형 슈퍼를 대신해 ‘기가 지니(KT의 AI 스피커)’를 이용해 음성으로 롯데마트에서 장을 본다. 음성과 손가락 몇 번으로 식료품을 주문하고 4시간 안에 집 앞 현관에서 신선한 식재료를 받아 보고 있다.

이 같은 e-커머스 시장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고객이 F&B의 오프라인 매장을 찾고 있다. 외식 사업에서 오프라인 레스토랑은 고객이 느끼고 싶어 하는 모든 브랜드 경험을 담아내는 일종의 놀이공원, 또는 멋진 무대이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서의 공간적 의미 또한 아직 e-커머스 시장이 대체할 수 없는 점이다. 쉐이크쉑은 레스토랑을 ‘쉑(Shack, 판잣집)’이라고 부른다. 오두막, 음식 카트 같은 정겨운 의미를 담아 지역 주민들이 가장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공간 인테리어, 오픈 주방, 공감각적인 브랜드 경험을 녹여낸다.

쉐이크쉑과 아날로그 감성

파인 다이닝, 미슐랭가이드, 셰프 중심 외식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국내에서 ‘파인 캐주얼’이라는 외식 분야는 미국 버거 브랜드 ‘쉐이크쉑’의 진출과 더불어 본격화됐다. 미국에서 십 년 앞서 시작된 ‘파인 캐주얼’은 셰프(chef) 주도의 파인 다이닝급 고급 외식 품질에 간편한 서비스와 합리적인 가격 포지셔닝을 더한 개념이다. 맛있고 건강한 메뉴를 비교적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브랜드를 말한다. ‘파인 캐주얼’이라는 표현은 ‘파인 다이닝’과 ‘패스트 캐주얼’이라는 말의 조합이기도 하다. 셰프의 리더십하에 만들어지는 고급 레스토랑급 고품질 메뉴에 빠른 서비스와 품질 대비 합리적인 가격대를 제공한다는 의미다.

국내에 처음 도입된 ‘파인 캐주얼’ 브랜드가 바로 ‘쉐이크쉑 버거’다. 고급 스테이크에 들어가는 앵거스 비프를 그대로 패티로 다져 주문 즉시 바로 철판 위에서 육즙 가득한 패티로 구워내 준다. 셰프의 주도로 메뉴를 구성하고 새로운 메뉴를 소개한다. 한국에서도 매년 오픈 기념일에 맞춰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밍글스’의 강민구 오너 셰프, 미슐랭 1스타 ‘제로컴플렉스’의 이충후 오너 셰프 등과 협업해 한정판 버거 메뉴를 소개하기도 한다. 쉐이크쉑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크게 어필한 이유 중 하나는 고급 품질과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대를 제시하는 ‘파인 캐주얼’ 문화의 유행과도 연결돼 있다. 쉐이크쉑은 고급스러움과 실용적인 가치 사이에서 국내 소비자들에게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데 성공했다.

2016년 7월 한국에 첫 오픈한 쉐이크쉑 코리아 강남점의 첫 고객은 전날 밤 10시부터 줄을 선 지방 거주 남자 고등학생이었다. 폭염 속에서 오픈했던 첫날부터 몇 달 내내, 매일 하루에 몇 시간씩 줄을 서면서까지 쉐이크쉑을 찾은 고객 4000∼4500명은 쉽게 깨질 수 없는 기록이 됐다. 첫날 카운트다운을 함께 외쳐줬던 고객들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기대감, 행복함, 기다림, 그런 표정들을 지켜보면서 얼떨떨해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던 직원들의 표정도 잊을 수 없다.

필자는 SPC 쉐이크쉑 마케팅 팀장으로 관련 사업에 약 3년간 참여하면서 쉐이크쉑의 국내 진출 마케팅을 진행했다. 쉐이크쉑은 미국에서 워낙 인기 있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국내에서의 성공 또한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쉐이크쉑이 특히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비결은 성공적인 로컬라이제이션에 있다고 생각한다. 뉴욕의 맛과 품질을 그대로 구현하고, 쉐이크쉑 브랜드의 문화를 그대로 한국에 적용하면서도, 유행이 빠르게 변하는 국내 시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원하는 한국 고객들에게 브랜드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뉴욕에서 시작된 프리미엄 버거인 쉐이크쉑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뒀던 부분은 디지털 솔루션을 과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브랜드 본연의 아날로그적인 디자인 자산과 브랜드 정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한국과 싱가포르에서 쉐이크쉑을 운영하고 있는 SPC그룹은 이미 배스킨라빈스,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등에서 디지털 메뉴 보드, 해피오더 등을 업계 선두주자로 적용해 왔다. 하지만 쉐이크쉑은 야외 공원에 있는 듯한 나무 벤치의자를 설치하고 그와 연결되도록 나무와 마그넷으로 메뉴보드를 만드는 등 뉴욕 본점 매장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그대로 살렸다. 그리고 본점과 마찬가지로 코팅된 메뉴판을 줄 서서 기다리는 고객들에게 나눠 주면서 메뉴를 설명하거나 간단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친근한 소통이 시작되도록 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질 때는 햇빛과 비를 피하기 위한 큰 우산과 시원한 물을 나눠줬다. 겨울에는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검은색 담요와 귀마개를 나눠 주기도 했다. 오래 대기하는 고객들의 컨디션이 나빠질까 염려돼 실제 남자 간호사를 고용하기도 했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마치 놀이동산에서 줄을 섰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매장 밖에서부터 메뉴를 고민하고, 매장 안으로 들어와 메뉴를 주문하고 음식을 즐기면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특히 쉐이크쉑은 SNS에 적극적인 국내 소비자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했다. 쉐이크쉑은 사람들이 스스로 공간과 버거 사진을 찍고 싶도록 고급 인테리어와 오픈 주방의 활기를 연출하는 데 많은 투자를 한다. 쉐이크쉑의 글로벌 헤드 셰프인 마크 로사티가 버거 제조를 시연하면서 버거 하나하나에 ‘마이 베이비’를 외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쉐이크쉑의 버거는 먹기 전부터 이미 눈으로도 맛있어 보이고 사진 찍기 좋도록 번, 양상추, 토마토, 고기 패티, 치즈 등의 색감이 예쁘게 어울리게 쌓여 있다. 버거를 받아 든 고객들은 너도나도 먹기 전에 자발적으로 사진을 찍고 수백만 개의 포스팅을 올렸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 회사 차원에서 어떤 혜택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자발적이다. 직원들은 고객들이 스스로 찍고 싶은 것을 연출하고, 찍고 싶은 환경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고객 스스로 체감하고 공감한 브랜드 경험을 온전히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게끔 만든 것이다.

고객은 공간의 물리적 증거(Physical evidence)에 민감하다. 물리적 증거는 고객이 물리적으로 보고, 듣고, 만지고 하는 모든 요소로, 매장 간판이나 입구 사이니지, 팸플릿, 인테리어, 택배 포장, 모바일 앱 디자인 등 모든 물리적인 접촉 요소를 말한다. 쉐이크쉑 1호점 강남점 오픈 후 수많은 후기와 리뷰, 댓글들 중에서도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사소한 후기가 있다. 바로 화장실에 비치된 다이슨 핸드 드라이어가 좋다는 평, 그 핸드 드라이어로 손을 말리면 손이 잘 마르고 금세 보송보송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기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 또한 단박에 마르는 그 핸드 드라이어가 좋았기 때문에 그 리뷰가 기억이 났다. 당시에는 다이슨 헤어드라이어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마케팅하기 전이어서 다이슨이 지금보다 알려지기 전이었는데 화장실에 달린 핸드 드라이어 하나로 브랜드 전체를 좋게 기억해준 고객이 있었다.

블루보틀과 커뮤니케이션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쉬고 있던 2018년, 당시 국내 론칭을 준비하고 있던 블루보틀커피 코리아의 첫 직원이 됐다. 블루보틀커피 코리아가 조용히 국내에 유한법인을 세우고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실행할 사람을 찾을 때였다. 당시에는 한국 직원이 없었고 미국과 일본에서 비정기적으로 출장을 나와 매장 입지를 알아보고 일을 추진하던 시기였다. 마침 그 시기에 추천을 받았다. 쉐이크쉑과 마찬가지로 블루보틀커피도 해외에서 유명한 브랜드였고 한국 론칭 과정에서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블루보틀커피 코리아에서는 마케팅이라는 단어를 안 쓰고 대신 브랜드 경험(Brand Experience)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전반적인 브랜드 경험의 설계를 강조했다. 블루보틀커피 코리아의 브랜드 전략과 마케팅 전략을 맡으며 제일 처음 한 일은 한국 마케팅팀의 이름을 정하는 것이었다. 마케팅팀의 이름을 정하는 것은 블루보틀커피가 지향하는 비전을 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업무의 범위는 론칭 전략을 세우고, 브랜드 경험을 섬세하게 설계하고, 미디어 및 소셜미디어 홍보 전략을 짜고, 중·장기적인 e-커머스 전략을 세우는 것까지 비교적 넓고 다양했다. 논의 끝에 한국 마케팅팀의 이름을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부서로 정했다. 당시 상사가 일본 총괄 디렉터이자 미국의 마케팅 총괄이었는데 마케팅 전략을 짤 때 필자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을 보고 “부서 이름이 ‘커뮤니케이션’이면 좋겠다”고 역으로 제안했다. 그래서 필자도 마케팅이 아닌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라는 직함으로 일하게 됐다.

여기서 커뮤니케이션은 브랜드 경험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홍보가 아니라 다양한 접점에서의 전반적인 ‘소통’을 의미했다. 매장의 위치, 주변 상권과의 어우러짐, 브랜드 로고, 주문대의 높이, 커피 향기, 바리스타의 움직임, 의자의 배치, 조명의 각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사진, 브랜드 북 등 모든 것이 소통이고 브랜드 경험을 완성시키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커피에서는 블루보틀커피, 스텀프타운커피, 인텔리젠시아커피를 필두로 ‘스페셜티’라는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데 외식 업계에서 파인 캐주얼 콘셉트와 비슷한 맥락이다. 스페셜티 커피는 커피 원두의 생산 공정부터 거래, 로스팅, 추출, 핸드드립 서비스 과정에서 까다로운 기준과 원칙을 거친다. 블루보틀커피의 경우 원두 특성마다 가장 커피의 향과 맛이 좋은 ‘피크 플레이버’를 찾기 위해서 매일 커피를 시음하고 그 기록을 축적해왔다. 초반에는 로스팅 후 48시간 이내에 커피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48시간이란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원두마다 가진 특성을 고려해 가장 커피 풍미가 좋은 기일 안에 커피를 제공한다는 원칙으로 운영하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은 일반 카페와 비슷한 가격대에, 최고급 커피 맛을 즐길 수 있다는 메리트에 크게 열광했다. 블루보틀 또한 합리적인 가격대에 사치에 가깝다고 느낄 정도의 세심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데 집중했다.

일례로, 블루보틀은 고객이 커피 향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바리스타나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가급적 개인적인 향수를 쓰지 않도록 권했다. 커피 향기에 다른 강한 향이 섞이면 고객이 맛을 느끼고 즐거운 후각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싱그러운 커피 향을 기대하며 카페에 첫발을 내디딘 고객이 바리스타의 섬세한 움직임을 보며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볼 때 커피 향에 미세하게 바리스타의 향수나 진한 화장품 향이 섞이길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커피의 경험은 미각이 아니라 후각과 시각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전반적인 접점에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섬세하게 설계하는 것이 바로 마케팅의 일이다. 작은 곳에서부터 옅은 청각, 미세한 후각, 섬세한 촉각을 배려해 고객 스스로 느끼는 공감각이 확장되고 브랜드 경험이 긍정적으로 선순환되도록 일종의 시나리오를 설계하는 게 마케터의 역할이다.


배스킨라빈스 심슨 매장 키오스크의 실험

변화가 빠른 국내 시장에서 프리미엄 마케팅을 하며 디지털 솔루션과 리테일 혁명의 변화를 멀리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가장 먼저 새로운 디지털 솔루션을 리테일 매장에 소개해도 모자랄 판이다. 늘 앞서나가는 디지털 리테일 솔루션과 아날로그 감성을 동시에 지켜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2019년 7월 말 분당 서현에 오픈한 배스킨라빈스 심슨 매장은 그 두 가지가 자연스럽게 배치되면 고객들에게 더욱 즐거운 브랜드 경험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고객이 혼자서 주문할 수 있는 키오스크 POS(판매시점정보관리 시스템)는 보통 메탈 소재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 심슨 매장의 키오스크는 배스킨라빈스의 핑크색과 심슨 가족 캐릭터로 둘러싸여 있다. 메뉴를 고르는 화면에도 심슨의 애니메이션이 담겨 있다. 디지털 메뉴 보드 주변에는 입체적인 분홍색 액자 프레임을 입히고 오래된 TV 채널처럼 ‘지지직’ 하는 화면이 지나간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아이스크림 메뉴를 심슨 캐릭터와 함께 소개했다. 이 매장에는 심슨 MD 상품들이 디즈니랜드처럼 전시돼 있고 매장 안쪽에는 노란색 미끄럼틀과 무심하게 붙여 둔 심슨 포스터, 천장에 달린 스케이트보드까지 마치 심슨이 사는 집에 놀러 온 기분이 든다. 스태프들의 출입문과 매장 밖 유리 벽면까지 빠짐없이 심슨 감성을 개연성 있게 꾸며놓았다. 심슨 가족 캐릭터를 좋아하는 고객, 어린 가족이 있는 고객, 젊은 고객 모두 사진 찍고 놀고 머물다 가고 싶어 하는 매장이 됐다.

디지털, 기술에 집중하게 되면 왕왕 오프라인 매장의 본질적 의미를 잊기 쉽다. 그 디지털 미디어와 솔루션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은 사람을 위한 인간 중심적 콘텐츠와 편의 제공이다. 예컨대, 성수동에 생긴 ‘로봇X’라는 카페에서 로봇 바리스타가 근무하는 공간이 아이러니하게도 낡은 창고 콘셉트라는 점이 흥미롭다. 여러 사람의 손을 대신하는 로봇 엑스는 미국 3대 스페셜티 커피인 인테레젠시아 커피를 내려준다. 이곳에서도 기술이 중심이 되지 않고 카페라는 공간에서 가장 기본적인 따뜻함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몇 가지 신경 쓴 점이 돋보인다. 우선, 넓은 공간임에도 나무 질감에 단순한 디자인의 의자와 탁자를 빼곡히가 아닌 드문드문 배치했다. 그리고 사람의 동작에 따라 반응하는 대형 미디어월 내부의 홍학은 사람을 따라 함께 움직이고 따라오기도 한다. 정기적으로 달라지는 미디어월 안의 영상 콘텐츠가 의외로 지극히 아날로그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디지털과 매장 경험, 온라인과 오프라인, 기술과 고객 중심 사이에서 접점을 찾으려는 고민이 바탕이 됐기 때문일 것이다.


세포라의 O4O(Online for Offline) 전략

세포라는 뷰티 제품 마니아가 아니라도 디지털 옴니 채널 전략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눈여겨봐야 하는 브랜드다. 한국에는 2019년 10월24일 국내 1호 파르나스몰점 오프라인 매장과 함께 온라인 스토어를 동시 오픈했다. 세포라의 옴니 채널(Omni-channel)은 온·오프라인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고객이 원하는 시점과 채널에서 세포라의 제품과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으며, 최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솔루션들이 매장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필자가 국내 매장이 오픈하기 전에도 미국 출장 중에 꼭 들렀던 매장 중 하나가 바로 세포라였다. 세포라야말로 리테일 매장에서 디지털 솔루션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가장 앞서 나간 방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화장품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핵심 니즈는 내가 예뻐 보이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남에게 내가 예뻐 보이는 제품’을 편리하고 합리적으로 구매하는 것이다. 정확한 목적을 둔 구매가 아니어도 ‘어때? 예뻐? 별로야?’ 친구와 자유롭게 소통하며 놀 수 있는 놀이터가 되는 셈이다. 매장에서 눈치 보거나 간섭 없이 마음껏 고르고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율적 공간 활용이 리테일 매장의 디지털 솔루션을 기획할 때 제일 중요한 점이다.

미국 세포라 매장에 들른 나의 발목을 길게 잡아 뒀던 세포라의 가장 강력한 디지털 솔루션은 바로 ‘가상 아티스트(Virtual Artist)’ 앱이다. 스탠퍼드대에서 최초 개발한 가상현실(AR) 기술을 활용해 모디 페이스(Modi Face)와 협업해 만든 앱으로, 얼굴을 트래킹하고, AR로 이미지를 시각화함으로써 얼굴을 예쁘게 표현해주는 솔루션이다. 아직 한국 매장에는 적용되기 전이지만 세포라 해외 매장에서는 고객이 직원 도움 없이 손쉽게 이 앱을 활용할 수 있다. 즉, 매장에서 얼굴을 촬영한 다음 다양한 색상의 색조 화장품을 AR을 통해 본인 얼굴 위에 연출해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진 이미지를 바로 친구들에게 공유해 그들의 의견을 받을 수 있다. 세포라는 이 AR 앱으로 수천 개의 립스틱, 아이섀도, 블러셔, 인조 속눈썹까지 모두 쉽게 테스트해 볼 수 있도록 했다. 고객은 매장에서 나에게 어떤 색이 어울릴지 테스트하기 위해서 매장 직원의 팔목에 바른 색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아침에 애써 했던 화장을 지울 필요가 없다. 그리고 민망하게 직원에게 다가가 “죄송한데, 저에게 어떤 색이 어울리는지 좀 봐주실래요?”라고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또 세포라의 디지털 혁신을 앞당긴 일등 공신은 핵심 고객의 편의성에 맞춘 개인 맞춤형 정보 제공이다. 예를 들어, 매장에 설치된 컬러아이큐(Color IQ)라는 단말기를 통해 즉석에서 사진을 찍고 개개인의 피부톤에 맞는 색상을 정확하게 찾아주는 것이다. ‘팬톤’사와 협업해 개발한 컬러 매칭 기능은 고객이 피부톤에 맞는 색상 음영을 찾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인종이나 피부 상태, 나이에 따라 개인적 특성에 맞게 정확한 컬러를 추천해 줄 수 있다.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시즌별 피부 상태나 태닝 상태에 따라 피부톤이 미세하게 달라질 수 있는데 컬러아이큐를 통해서는 시즌별로 미세하게 달라지는 피부톤까지도 잡아낼 수 있다.

세포라 매장 사례처럼 오프라인 매장에서 쇼핑을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온라인(모바일) 서비스를 일컫는 O4O(Online for Offline)가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가 오프라인 매장에서 앱을 열고 포인트를 적립하거나 쓰는 로열티 프로그램도 쉽게는 O4O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AR, VR 환경을 오프라인 매장에 구현함으로써 고객이 즉각적으로 디지털과 초연결되는 리테일 환경의 변화를 포용하는 개념이다. 유통과 리테일 혁신의 핵심은 바로 O4O를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달려 있다.

세포라는 화장품 유통 브랜드이지만 디지털 혁신에 가장 힘을 쏟는, 즉 디지털 리더십이 강한 회사다. 모바일 플랫폼이 2010년에야 구축돼 디지털 혁신 자체는 비교적 늦게 시작했지만 그 후 진취적으로 디지털 혁신을 조직적으로 실행해 왔다. 2013년부터 디지털마케팅 부서를 설립하고 마케팅 임원인 CMO를 CDO(Chief Digital Officer) 겸임으로 뒀다. 그 후 오프라인 매장 팀과 디지털 팀을 아예 병합해 ‘옴니 리테일’ 부서로 바꿨다. 2015년에는 이노베이션 랩(혁신 연구소)을 설립해 고객의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360도 브랜드 경험을 연구하고 많은 것을 시도해왔다. 실리콘밸리가 속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이노베이션 랩을 중심으로 RFID, 증강현실, 인공지능, 로봇 등을 일찍이 화장품 오프라인 매장에 접목해왔다. 세포라 코리아 또한 가상 아티스트(Virtual Artist)나 온라인에서 주문 후 오프라인에서 제품을 수령할 수 있는 클릭 앤드 콜렉트(Click and collect) 같은 옴니 채널 서비스를 통해 색다른 차원의 브랜드 경험을 선사할지 기대된다.


필자소개 최연미 SPC삼립 신사업부문 마케팅팀장(부장) scandilife@naver.com
필자는 2015년부터 SPC그룹에서 마케팅 팀장으로 근무하며 쉐이크쉑 국내 론칭과 로컬라이제이션 마케팅을 진행했다. 매일 수천여 명의 대기 고객이 있었던 쉐이크쉑 강남점과 청담점 오픈 전 공공미술로서 호딩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SPC그룹 마케팅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 후 블루보틀커피코리아의 1호 직원으로 마케팅을 담당하며 블루보틀 국내 브랜딩, 론칭, e-커머스 전략 수립을 담당했다. 현재는 다시 SPC그룹 내 SPC삼립 신사업부문에서 마케팅팀을 이끌고 있다. ㈜두산그룹 전략실과 두산매거진 GQ, Allure 브랜드 매니저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탐나는 프리미엄 마케팅』 『서른셋 싱글 내집 마련』 『학교에서 배운 경제 직장에서 배운 경제 시장에서 배운 경제』가 있으며 브런치 칼럼과 강의를 통해 프리미엄 마케팅 경험을 전파하고 있다. 고려대에서 스페인어문학을 전공하고 미국 버지니아주립대에서 MBA 과정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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