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Sloan Management Review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일선 현장에 답 있다

    Article at a Glance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먼저, 리더들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필요성을 전파하면 직원들이 새로운 기술의 사용 여부와 방법을 결정한다. 새로운 유형의 데이터는 직원들의 행동 방식을 바꾸고, 국지적으로 성과를 개선하며, 이 성과가 회사의 목표에 부합할 때 모든 과정이 끝난다. 이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활동을 계획하는 기업이라면 역방향으로 국지적 목표를 진단하는 데서 시작하면 된다. 어떤 부서의 활동이 회사의 혁신에 잠재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칠지, 조직 내에서 정보의 흐름과 행동 변화를 어떻게 육성할 수 있을지, 회사의 핵심 인플루언서가 누구이고 그들이 디지털 전환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파악해야 한다.


    편집자주
    이 글은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SMR) 2020년 겨울 호에 실린 ‘You’re Going Digital-Now What?’을 번역한 것입니다.

    3만 피트 상공의 기업 전용기 안에서 디지털 전환을 구상하는 것은 흥분되면서도 흥미진진한 일이다. 기업의 리더들은 활용 가능한 새로운 툴을 떠올리고 조직을 어떻게 개편할지를 생각하면서 희망에 부푼다. 작업 효율성과 속도 향상은 물론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 만족도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찰 것이다. 대형 통신회사에 근무하는 한 고위 임원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경쟁 전략을 짜는 일은 정말 멋지더군요!”

    하지만 지난 16년간 8개 산업군에 걸친 20여 개 기업의 혁신 작업에 동참하면서 필자는 생각보다 멋지지 않고 다소 따분한 진실을 알게 됐다. 변화의 성패는 전략적인 영감보다는 기업의 일선 현장에서 디지털 툴을 실제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더 많이 좌우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리더는 이런 직원들이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지 않는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대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고위 관리자들이 실무자들의 현실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리더들은 새로운 툴이 자신들이 기대했던 방식으로 활용되지 않거나(혹은 전혀 활용되지 않거나), 특별히 건질 만한 데이터 기반 통찰이 없거나, 기대했던 혜택들이 구현되지 않을 때 당황한다. 이 경우 그들이 염원했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디지털 실패작으로 전락한다.

    이런 운명을 피하고 싶다면 리더들은 어떻게 해야 디지털 툴이 효과적이고 광범위하게 활용될 수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변화를 위한 최적의 조건에 맞는 업무 환경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런 역할을 IT에 떠넘기고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된다.

    이 글에서는 전형적인 사례로 한 자동차 회사가 추진한 디지털 변화 노력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기업의 일선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어떻게 경험하고 처리하는지 설명할 것이다. 그다음 역방향 계획, 즉 역으로 현실에서 출발해 기업의 광범위한 목표 설정 단계로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는 접근이 확고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관련 이론과 전략을 제시하는 글은 많다. 그러나 이 글은 좋은 의도로 시작된 많은 계획을 망치는 요인들, 즉 쉽게 간과되지만 주목할 만한 세부적인 패착 요인들을 예측하고 관리하는 방법에 초점을 둘 것이다.

    단계별 디지털 툴의 채택 과정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노력은 대개 광범위한 실행 계획과 함께 시작된다. 이런 계획에는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 회사가 디지털 툴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민첩한 조직 구조를 만들고, 더 고객 맞춤형 제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데이터에 기반한 통찰력을 발전시키고, 출시 기간을 단축하는 등의 내용들이 요약돼 있다.









    이런 활동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다. 그러나 기업들이 이렇게 꼼꼼하게 준비하지 않는 프로세스가 하나 더 있다. 필자는 이를 업무 디지털화 프로세스(Work Digitization Process), 혹은 약자로 WDP라 부른다. (그림 1) 이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실현되기 위해 조직 일선에서 반드시 일어나야 할 여섯 단계의 변화다. 각 단계는 서로 연관돼 있어서 대개 서로를 발판 삼아 발전한다. 이 때문에 초기의 성공으로 이후의 성공을 예견할 수 있지만 초기에 실패하면 이후 단계는 한층 더 실행하기 어려워진다. WDP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파악하기 위해, 또 그 과정에서 경영진의 조치(또는 무조치)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기 위해 지금부터 한 대형 다국적 자동차 설계 회사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살펴보자. 편의상 이 회사를 오토웍스(Autoworks)라 부르겠다.



    1단계 리더들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필요성을 전파한다. 

    어떤 중대한 변화든 직원들이 폭넓게 수용하지 않으면 곧 시들해지고 소멸한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도 다를 바 없다. 성공적인 노력의 1단계로 디지털 변화가 가져올 이점들을 일선 직원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들이 디지털화로 인해 변경되는 표준 업무 절차를 수용할 수도 있고, 수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토웍스의 리더들은 이 점을 알고 있었다. 자동차 업계의 다른 여러 기업과 마찬가지로 오토웍스도 2000년 중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작업에 착수했다. 이들의 목표는 자원이 집중적으로 투입되는 영역에서 비용을 절감하면서 제품 개발을 가속화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오토웍스는 신제품 하나를 출시하기 위해 적어도 30대의 시제품 차량을 가지고 충돌 실험을 했다. 실험을 한 번 할 때마다 비용은 약 75만 달러가 들었다. 그러나 새로운 디지털 설계 툴을 사용하면 엔지니어가 컴퓨터로 가상 자동차를 만들고 테스트할 수 있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게다가 그런 시뮬레이션을 통해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으므로 더 좋고, 더 안전하고, 더 저렴한 자동차를 설계하는 능력도 한층 더 최적화할 수 있었다. 이런 변화에 착수하기만을 학수고대하던 오토웍스의 경영진은 회사의 슈퍼컴퓨팅 센터를 보강하고, 직원들이 다양한 디지털 설계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도록 라이선스를 부여했다. CEO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이제 디지털 기업이 될 겁니다.”

    회사 경영진은 그들이 원하는 변화를 분명하게, 소리 높여 설파했다. 성능 실험을 디지털 애플리케이션에서 수행한다는 것은 제품 개발을 더 빠르고 저렴하게 완수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사들은 임원 회의에서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라는 말을 들었고, 팀장들은 간부 회의에서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라는 말을 들었으며, 엔지니어들은 교육과 부서 회의, 전 직원회의, 그리고 일상 업무에서 팀장과 임원, 경영진으로부터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 이 회사에서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라는 말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모토가 됐다.

    연구에 따르면 고위 임원들이 목표를 전파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대담한 계획들을 발표하면 직원들은 이를 경청한다.1 초기에 이런 선언은 직원들이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그 기술을 이해하는 준거 프레임이 된다. 만약 오토웍스 직원들에게 새로운 툴들이 조직을 탈바꿈할지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실제로 물었을 때도 종종 이런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그 툴들을 써서 시뮬레이션 모델을 더 빠르고 저렴하게 개발할 수 있다면 알게 되겠죠.”



    2단계 직원들이 신기술 사용 여부를 결정한다. 

    경영진은 회사에 필요한 디지털 툴을 구입하고, 기대되는 혜택을 홍보하고, 관련 교육을 위해 적절한 자금을 지원하면 직원들이 알아서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에 맞게 작업 방식을 변경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필자가 실시한 조사를 보면 신규 애플리케이션의 잠재적 사용자 중 40%는 직속 상사가 의무 사용을 지시한 경우에도 그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40%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노력을 무산시킬 만큼 상당히 큰 숫자다. 그렇다면 직원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런 결과는 그 기술이 부적절해서도(보통 기술은 꽤 괜찮다), 교육이 부족해서도(교육은 보통 적절히 이뤄진다) 아니다. 그보다 직원들이 경영진이 발표한 목표를 개인적으로 구현하는 데 있어 그 기술이 도움이 될 것인지를 따져 보기 때문이다. 오토웍스의 경우 엔지니어들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소프트웨어를 쓰면 내가 새로운 자동차를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 설계할 수 있을까?”

    그리고 모두가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진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라는 슬로건은 오토웍스 임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복잡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새로운 툴을 그들이 이미 효율적이고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던 예전 툴과 비교했다. 직원들 사이에서 얼리어댑터 노릇을 하던 일부 수석 엔지니어도 그랬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사용 중이던 기존 툴을 고수하는 게 회사에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오히려 업무 속도를 늦췄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기술이 조직에 주는 다른 뚜렷한 장점도 있었다. 그러나 직원들의 경험상 회사 경영진이 가장 강조했던 가치는 창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다른 엔지니어들도 존경하는 동료들의 결정에 동요돼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기존 툴에 익숙해져서 그 편안함이 신형 툴에 대한 인식을 변질시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에 대한 초기 실험이 회사 엔지니어 네트워크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물론 경영진의 의도는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라는 모토를 혁신을 향한 폭넓은 목표로 각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집단마다 그런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 말이 직원들의 세부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기업의 리더들은 이런 모토를 만들 때 아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내용이 실제 업무 방식과 일치하지 않으면 소중한 신기술이 바라던 대로 구현될 수 없다.

    3단계원들이 새로운 기술의 사용 방법을 결정한다. 

    새로운 기술이 반대자들의 벽에 부딪친다고 해도 변화를 수용하는 다른 많은 직원은 이제 두 번째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바로 그 기술의 사용법이다. 이 또한 장기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는 복잡한 선택에 속한다.

    대다수의 디지털 기술은 기업용이든, 개인용이든 다양한 방식으로 채택된다. MS 엑셀이 가진 수백 가지 기능과 각 기능의 활용법을 생각해 보라. 하지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과정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기능을 채택하는지에 따라 어떤 데이터를 기록하고, 생성하고, 분석하고, 활용할지가 결정된다. 기술의 사용 방법이 일련의 결과에 영향을 일으키는 중요한 선택이란 의미다.

    오토웍스 경영진은 자동차 설계 작업을 디지털 공간으로 옮길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이 데이터에 있다고 믿었다. 시뮬레이션 툴을 사용하면 엔지니어들이 충돌 실험이나 소음 및 진동 실험을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할 수 있다. 실험 데이터를 전부 비교하면 기존에 실험용 마네킹을 가지고 몇십 건의 충돌 실험을 할 때보다 자동차 디자인을 훨씬 더 정교하게 최적화할 수 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랬다.

    필자는 자동화된 시뮬레이션 설계를 위해 동일한 디지털 툴을 사용한 두 부서를 1년간 추적했다. 그중 한 부서에서는 엔지니어들이 각자 선호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툴을 사용했다. 또 다른 부서에서는 모든 엔지니어가 동일한 기능을 동일한 순서대로 사용했다. 1년이 지나자 두 번째 부서에서 설계한 자동차가 첫 번째 부서에서 설계한 것보다 성능에서 2대1의 격차로 더 뛰어났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왜냐하면 동일한 기능과 동일한 경로를 따른 엔지니어들에게서 나온 데이터는 균일한 토대로 도출됐고, 그래서 효과 패턴을 분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각자의 방식을 따른 엔지니어들도 똑같은 양의 데이터를 만들어 냈지만 거기서 나온 정보는 다양한 가정과 선택을 기초로 도출된 것이었다. 이런 차이 때문에 새로운 디지털 툴을 활용하는 모범 사례를 만들기가 어려웠다. 만약 디지털 기술의 중심 가치가 효율성과 다른 유용한 학습을 위한 데이터 생성에 있다면 일관된 사용 패턴은 꼭 필요했다.


    4단계 새로운 유형의 데이터가 직원의 행동 방식을 바꾼다.

    디지털 전환 이전에 오토웍스에서는 데이터를 이동할 때 업무를 완전히 이관하는 핸드오프 방식을 사용했다. 자동차 설계 실험의 경우 다음과 같은 표준 업무 절차를 따랐다. 먼저, 엔지니어가 차량 충돌 등 여러 가지 실험을 실행하고, 결과를 수집한 다음, 관련 데이터를 데이터 분석 그룹에 넘겼다. 그러면 분석 담당자들이 좋은 자동차 설계를 위한 일반적인 원칙들을 열심히 찾아 모았다. 엔지니어가 있다면 분석가들이 있었고, 두 집단 간의 차이는 분명했다.

    비교 가능한 데이터를 생성하기 위해 신규 디지털 시뮬레이션 툴을 일관된 방법으로 사용했던 엔지니어들을 기억하는가? 기존 방식을 바꾸기 시작한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도 당연히 자신의 실험 결과를 스스로 확인하고, 결과를 종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발 더 나아가 실험 결과를 주위 사람들과 함께 논의하고 고민했다. 한 엔지니어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 회사도 디지털로 전환했고 설계 엔지니어로서 저의 역할도 변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설계 엔지니어끼리 서로 담을 쌓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똑같이 서로 담쌓기 바쁜 데이터 분석가들 팀에 실험 데이터를 넘겨주면 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설계 엔지니어들까지 모두 하나의 팀으로 데이터 분석에 참여한다.

    ‘원칙’을 강조하는 일부 관리자는 데이터 분석가들과 엔지니어의 책임을 계속 분리해 이들의 권한을 축소하려 했다. 그러나 풍부하고 더 나은 데이터가 업무 방식을 바꾸고, 역할과 관계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련의 프로세스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피할 수 없는 부산물이다. 본론부터 말하면 이 두 부서의 관계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맺어져 있다. 직원들이 새로 확보한 데이터와 정보를 가지고 새로운 직무를 수행하게 되면 그들은 자연스레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하게 된다. 그러면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새로운 사회적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이 새롭고 강력한 네트워크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추진하는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2

    5단계 국지적으로 성과가 개선된다. 

    기업 리더들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부여하는 목표와 직원들이 부서 단위로 경험하는 이점이 서로 다른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일단 새로운 디지털 툴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그 결과를 새로 형성된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서로 비교하게 되면서 오토웍스의 엔지니어들은 변화의 구체적인 이점들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덕분에 충돌 내구성과 연비 같은 주요 변수를 개선하는 최적화 설계가 더 쉬워진 것이다.

    실험을 수행한 후 최종 설계 솔루션을 내기까지의 과정도 상당히 개선됐다. 실제로 필자가 분석해 보니 데이터 분석에 참여하고 다른 엔지니어와 소통하기 위해 새로운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한 엔지니어들은 그렇지 않은 엔지니어들보다 자동차 설계 작업을 23%나 더 빨리 마쳤다. 실험 수도 31%나 줄였다. 결국 엔지니어들은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 일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보면 오토웍스 경영진이 바라던 성공이 이뤄진 것 같다. 여기에는 두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첫째는 엔지니어 중 40%가 처음에는 신규 소프트웨어가 더 빠르고 더 저렴하다는 확신이 없어 기술의 사용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기술을 사용해 더 빠르고 더 저렴한 업무 처리라는 이점을 구현한 엔지니어들도 경영진의 지시에 따른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설계 품질의 개선처럼 그들의 직무에 가장 중요한 성과 지표를 보고 스스로 이런 성과를 이뤄냈다. 만약 실험 초기 경영진이 혁신의 모토를 엔지니어들이 현장에서 일하면서 직접 경험한 내용에 더 잘 부합하도록 조정했다면 더 많은 엔지니어가 더 빨리 새로운 디지털 툴을 채택하고, 더 많은 혜택을 얻어갔을 것이다.


    6단계 국지적 성과가 회사 목표에 부합한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한 부문의 프로세스와 결과를 개선하는 기술을 채택해 기업의 핵심 목표를 달성할 때 강한 추진 동력을 얻는다.

    오토웍스가 자동차 설계에 집중하기로 한 이유 중 하나는 20년간의 탄탄한 통계 분석 결과 차량의 설계가 공급망, 규제 준수, 제조 효율성과 더불어 콘셉트 개발부터 출시 단계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출시 기간을 단축하면 매출 성장도 가속화할 수 있었다.

    새로운 기술로 설계 작업을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 완수하게 됐으니 회사로서는 더없이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오토웍스는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그런 이점이 어떻게 달성됐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새로운 설계 소프트웨어를 통해 형성된 사회적 네트워크의 놀라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기계적으로 시뮬레이션 모델을 돌리는 대신 세 시간이나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동료들과 차량 디자인을 논의한 엔지니어들은 개발 후반 단계에서 재작업해야 하는 양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최적화된 자동차 디자인을 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인 건 분명하지만 작업 속도를 한층 더 높인 것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촉발된 담당자들의 대화였다. 오토웍스는 이렇게 성공의 원인을 파헤침으로써 향후 더 큰 발전으로 이어질 지식을 발견했다.

    역방향으로 계획하기

    위의 여섯 단계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하는 동안 조직 내에서 어떤 식으로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런 프로세스를 감안했을 때 기업의 트랜스포메이션 활동을 어떻게 계획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가장 좋은 방법은 역방향으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먼저, 회사가 새로운 디지털 툴로 달성하고자 하는 국지적 목표를 진단한 다음 거기서부터 계획을 세우자. 필자의 경험상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을 해 보면 이 과정을 더 효과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

    1. 어떤 부서의 활동이 회사의 혁신에 잠재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칠까? 

    많은 기업의 리더가 회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잘 알고 있지만 그곳에 도달하는 방법은 확실히 모른다. 부서 단위에서 혁신을 이끌 잠재력이 가장 높은 활동이 무엇인지 확인하면 어떤 디지털 툴을 도입하고, 그 툴의 활용 기반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또 원하는 변화를 위해 직원들의 힘을 모으고 강화할 수 있다.

    첫째, 회사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한 뒤 부서 단위에서 어떤 종류의 성과가 거대한 조직 목표를 추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지 파악하라. 예컨대, 필자는 예전에 한 소아전문병원과 협력한 적이 있었다. 그 병원에는 지역 내 병원에서 이송된 응급 환자들이 많았고 그런 취약 환자들의 생존율을 높이는 게 절실한 과제였다. 이에 소아전문병원은 그동안 쌓인 데이터를 깊이 있게 분석했고, 그 결과 이송된 환자의 생존율이 그들이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받은 초기 진단의 퀄러티와 관련돼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연관성을 확인한 병원은 구체적인 솔루션을 찾아 나섰다. 소아 응급치료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지역 일반 병원 의사들이 아이의 건강 상태를 자세히 기록할 수 있도록 해주는 디지털 플랫폼이 필요했다. 그래야 이송됐을 때 소아전문병원에 있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쉽게 상태를 판독하고, 이송된 환자를 담당 진료과로 쉽고 빠르게 분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을 견인할 수 있는 국지적 활동을 확인했다면 이제는 그 활동을 개선하는 데 디지털 전환이 미치는 영향을 측정해야 한다. 이런 평가 척도가 명확한 경우도 있다. 가령, 앞의 예에서는 소아전문병원 이송 환자의 생존율이 크게 증가하면 그것이 곧 성공이다. 하지만 척도가 명확하지 않을 때는 개선하려는 프로세스가 무엇이든 단계별로 척도를 세분화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필자가 자문했던 한 대형 금융 서비스 회사는 조직 내 지식 공유를 확대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지식 공유는 다면적인 성격이 강해서 우리는 전체 과정을 여러 단계로 세분화했다. 직원들이 분야별 전문가를 정확히 식별하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다음으로는 직원들이 서로의 전문지식을 얼마나 정확하게 평가하고 있고, 사람들 간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이 지식 공유를 촉진하는 데 최선인지 가늠하기 위해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회사는 그렇게 추출한 기본 정보를 가지고 직원들이 동료들의 업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내부 소셜 네트워킹 기술을 도입했다. 그리고 지식 공유 프로그램의 진행 현황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6개월마다 두 가지 지표의 변화를 추적했다. 이런 국지적 데이터는 종류를 막론하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꼭 필요하다. 이는 조직 내 어딘가 일어나는 움직임이 변화를 돕는지, 아니면 방해하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2. 조직 내에서 정보의 흐름과 행동 변화를 어떻게 육성할 수 있을까? 

    기업의 리더들은 직원들이 조직의 트랜스포메이션을 이끄는 국지적 성과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강력한 데이터와 분석 기법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직원들이 자신의 임무와 역할, 사회적 네트워크를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 리더들은 정보의 흐름을 이해하고, 강력한 신규 데이터를 주입했을 때 조직의 긍정적인 변화를 가로막는 제도적 장애물들을 없애서 직원들이 그런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럼 정보 흐름을 진단하는 게 어떻게 도움이 될까? 한 대형 공기업의 예를 보자. 이 회사는 전기와 수도 같은 유틸리티 소비량을 원격 모니터링하는 새로운 디지털 기술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봤다. 이 기술을 가지고 유틸리티 사용량을 지속적으로 측정하고, 수리 인력을 선제적으로 파견해 송전 장비가 심하게 고장 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회사 내부의 정보 흐름이 이런 예방적 유지 관리 활동에 어떻게 도움이 됐다는 걸까?

    신기술의 등장은 이미 월별로 유틸리티 사용량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요금 징수 부서가 수요의 최고점이나 최저점에 맞춰 근무 인원을 조정해 왔던 유지관리팀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 요금 징수 부서의 직원 중 일부는 단순히 데이터를 집계하고 청구서를 생성하는 역할에서 분석가의 역할까지 맡게 됐으므로 직무 변화도 생겼다. 오토웍스의 엔지니어들과 매우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런 점을 인식한 회사의 임원들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직이 변경된 직원들을 위한 새로운 직무 목표를 확립했고, 관련 역량을 가진 인력을 새로 고용했다. 이런 노력 끝에 예방적 유지 관리 업무를 전담하는 직원들로 새로운 사회적 네트워크가 생겼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도 큰 성공을 거뒀다. 이런 식의 진단 작업을 보통 조직 네트워크 분석이라고 부른다. 이는 디지털 변화를 전개하는 데 가장 유용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툴 중 하나다. 3

    이 사례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비즈니스 리더들은 새로운 기술을 채택할 사람들이 누구인지만 알아서는 안 된다. 현재 직원들이 어떻게 교류하고 있는지를 알고, 그래서 성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사회적 네트워크를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적절한 사람들과 협력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공식적인 직무가 새로운 직무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회사는 직원들의 직무 변화를 공식적으로 보조하고 직무 기술서와 성과 평가 방법을 조정해 그런 변화를 명문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직원들도 새로운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서 파트너와 효과적으로 협력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려는 의욕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3. 회사의 핵심 인플루언서는 누구이며, 그들은 회사 문화가 디지털 전환에 대비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오토웍스에서는 누가 핵심 인플루언서였는지 기억하는가? 대부분이 새로운 디지털 툴 채택에 힘을 보탰지만 동료들이 새로운 디지털 툴을 완전히 사용하지 못하도록 유도한 반대론자도 소수지만 꽤 있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착수하기 전에 이런 인플루언서가 누구인지 파악해 그들이 향후 실현될 디지털 변화의 약속을 같이 전파하게 만들어야 한다.

    필자가 아는 한 대형 의료장비 회사는 새로운 기술과 대대적 구조조정을 수반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근데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중간관리자 일부가 작당해서 그런 노력에 저항한 것이다. 반대론자들이 발목을 잡으면 변화를 위한 노력이 관료주의의 늪에 빠져버릴 수 있기에 경영진은 근심에 잠겼다.

    WDP에 따르면 이런 식의 저항에는 회사의 핵심 인플루언서들을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 방법이다. 인플루언서라고 꼭 인기가 많거나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속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보다는 회사에서 조언을 구할 때 이용되는 비공식 네트워크의 중심인물인 경우가 많다. 필자는 인플루언서들을 파악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두 가지 간단한 질문을 한 후 그 답변들을 가지고 조직 네트워크 분석을 실시했다. “당신은 기술적인 문제가 있을 때 누구에게 조언을 구합니까?” 그리고 “당신은 전략적인 문제가 있을 때 누구에게 조언을 구합니까?”였다. 분석을 통해 각 사업부 내의 핵심 인플루언서를 10명씩 식별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왔다면 그중 가능한 많은 인플루언서를 새로운 변화의 옹호자로 만들어야 한다. 필자는 먼저 각 인플루언서와 인터뷰를 해서 변화에 대한 그들의 초기 반응을 파악했다. 새로운 디지털 툴과 구조조정을 모두 찬성하는 집단도 있었지만 둘 다 끔찍하다고 여기는 집단도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집단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즉, 구조조정에는 찬성하지만 신규 기술은 원하지 않거나, 그 반대였다. 이에 우리는 각 집단을 위한 내부 마케팅 계획을 수립했다. 회사와 협력하에 첫 번째 집단에는 그들의 태도를 뒷받침하는 하드데이터를 제공해서 변화를 전파할 때 그들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 다음 두 번째 집단과 만나서는 회사가 추진하는 변화가 현재 그들의 업무 패턴의 긍정적인 면을 어떻게 강화하고, 그들이 싫어하는 면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를 같이 논의했다. 세 번째 집단에는 중대한 변화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과 새로운 기술이 어떻게 상호 발전을 이끄는지 관련 사례를 제시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지지자 기반은 더 공고히 하고 소수의 회의론자는 설득할 수 있었다. 우리는 변화의 이점이 대다수 직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홍보 메시지 개발에 인플루언서들을 적극적으로 가담시켰다.

    모두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인플루언서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려한 것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인플루언서들과 공조한 사업부에서는 새로운 디지털 툴의 채택률이 75%가 넘었다. 반면 인플루언서들이 관여하지 않은 몇몇 사업부에서는 채택률이 25%가 채 안 됐다.

    디지털 기업이 되겠다는 희미한 약속 뒤에는 냉혹한 현실이 있다.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해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는 일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시작되려면 비즈니스 리더들은 먼저 새로운 기술이 도입됐을 때 내부에서 벌어질 일련의 일들을 파악해야 한다. 그런 다음 연쇄 활동의 마지막 단계에서 시작해 출발점을 향해 나아가는 역방향 접근으로 성공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즉, 국지적인 성과가 기업의 거대한 목표 달성으로 이어지는 단계에서 출발해 현 상태를 디지털 툴로 완전히 갈아엎는 작업을 직원들이 함께 도모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성공은 반짝이는 구호나 대담한 공약만으로는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현장 직원들이 내리는 결정들에 의해 좌우된다. 이 글에서 설명한 역방향 계획은 그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번역 |김성아 dazzlingkim@gmail.com

    폴 레오나르디(Paul Leonardi)는 캘리포니아주립대 산타바바라 캠퍼스에서 두카 가문(Duca Family)의 후원을 받는 기술경영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주도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과 그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기업들을 자문한다. 이 글에 의견이 있는 분은 http://sloanreview.mit.edu/x/61215에 접속해 남겨 주시기 바란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00호 Revisiting Case Studies 2020년 7월 Issue 1 목차보기


    미국 냉동 만두 시장 분석



    ・진입 장벽이 높은 미국 냉동 만두 시장을 선두로 들어감으로써, 타국의 냉동 만두 시장 시장 진입 용이

    ・M&A를 통한 시장진입






    베트남 냉동 만두 시장 분석



    ・M&A를 통한 시장진입





    중국 냉동 만두 시장 분석



    ・  진입방법 

       - 직접 참입: 정부규제로 인한 제한

       - M&A: 대상 기업 의사 없음

       - 조인트벤쳐: DCH사와 조인트 벤처 설립



    ・  보스턴 사각형 대로 포트폴리오별 시장진입






    DBR Case Study: CJ제일제당 비비고의 글로벌 전략

    현지인 식습관 간파한 ‘맞춤형 만두’
    美·中에 ‘글로컬리제이션’ 돌풍

    Article at a glance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는 미국, 중국 등 주요 글로벌 시장에서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다. 성공요인은 다음과 같다.
    1. 현지 업체를 인수합병(M&A)해 생산 인프라 및 유통망 등 현지 시장 진출에 필요한 자원 확보
    2. R&D와 현지 시장조사를 통해 현지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춘 만두 및 포장 개발
    3. 생산 및 제품 기획 등 비비고 만두 고유의 프로세스를 표준화해 품질 유지 및 현지 업체 제품 업그레이드 동시 달성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수진(성균관대 영상학과 4학년)씨와 여인호(경희대 외식경영학과 4학년)씨가 참여했습니다.


    식품의 세계화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음식 고유의 독특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현지인이 좋아할 만한 매력적인 요소를 갖춰야 한다. 현지화와 세계화라는 모순적인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고 참신함과 익숙함을 절묘하게 결합해야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일본 초밥은 ‘글로벌 푸드’가 되기까지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CJ제일제당은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비비고 만두의 글로벌화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2016년 미국 시장에서 비비고 만두는 연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현지 입맛을 공략한 ‘미니 완탕’과 ‘스팀 덤플링’이 실적을 견인했다. 같은 시기에 만두의 원조 국가인 중국에서도 잠재력을 확인했다. 중국 광둥성 일대에서 비비고 만두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일부 대형마트에선 판매량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수십억 원에 불과했던 중국법인 매출은 지난해 200억 원대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 기준 비비고 만두의 해외 매출 비중은 47%에 달한다.



    표 1 ‘비비고 만두’ 국내/글로벌 매출 현황 및 비중 (단위: 억 원)

    비비고 만두의 성과는 십여 년간 해외 시장을 두드린 땀과 노력의 결과다. 미국에선 10년을 버틴 끝에 25년 동안 냉동만두 시장 1위를 지켰던 업체를 넘어섰다. 중국에서는 꼬박 5년을 헤맨 끝에 성공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현지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끊임없이 제품을 연구하고, 현지 업체를 인수해 유통망과 생산 인프라를 확보한 덕분이다.

    2017년 기준으로 비비고 만두는 6조 원대로 추산되는 글로벌 만두 시장에서 8.1%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CJ제일제당은 2020년까지 매출 1조5000억 원을 달성해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약 15%까지 높인다는 전략이다. DBR은 CJ제일제당 비비고 만두가 해외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심층 분석했다.

    DBR Mini box I: 비비고 만두 해외 시장 진출 현황
    CJ제일제당은 활발한 인수합병(M&A)을 통해 해외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16년 베트남의 최대 냉동식품 브랜드인 까우제(Cautre)를 인수한 데 이어 2017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 3위 업체인 라비올로(Raviollo) M&A에 성공했다. 2000년대 초부터 시장을 다져온 미국에는 동부시장을 노리고 뉴저지 지역에 신규 공장 설립을 결정했다. 중국 북부인 요성에도 새로운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유럽 시장을 겨냥하기 위해 최근 독일 생산업체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김치·비빔밥 ‘No’… 만두로 글로벌 시장의 초석을 다지다
    2000년대 초, 국내 냉동식품 시장 성장이 더뎌졌다. 냉동식품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시장 성장세는 둔화됐다. 냉동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일반적인 요리에 비해 맛이 떨어지는 ‘싸구려 음식’으로 여겨졌다. 설상가상으로 쓰레기 만두 파동까지 겹치면서 냉동식품을 대표하는 냉동만두에 대한 인식도 크게 악화됐다.



    이 시점에 CJ제일제당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국내를 벗어나 냉동식품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해외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기로 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으며 습득한 냉동식품 기술력, 다양한 신상품을 만들면서 쌓은 기획력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토대로 글로벌 1등 식품 브랜드로 키워보자는 큰 포부를 세웠다.

    CJ제일제당은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킬러 아이템(Killer Item)’dm로 어떤 제품을 선택할지 고민했다. 비빔밥, 고추장 등 한국 음식 고유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제품들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외국인이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거나 자국 음식과 괴리가 큰 제품을 내놓으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력한 대안으로 만두가 꼽혔다.

    만두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식의 특성인 매운맛, 달고 짠맛과는 거리가 멀어 정체성이 너무 약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한국 만두는 일본, 중국 만두와 비슷하기 때문에 차별화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차라리 그때까지 일반적으로 추진하던 한식 세계화 방식처럼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마니아층을 먼저 공략하고 점차 시장을 확대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치열한 논의 끝에 최종적으로 만두가 결정됐다. 경험과 데이터 덕분이다. CJ제일제당은 자사 제품을 수년 동안 조금씩 해외로 수출하고 있었다. 수출한 제품들의 반응을 보며 외국인들이 한국 음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중개상을 통해 미국, 유럽, 일본 등에 고추장, 만두, 각종 한국 조미료 등을 판매한 결과, 가장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이 만두였다. 현지인들이 만두의 맛과 모양을 매우 익숙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 다양한 문화권에서 만두와 유사한 식품이 존재한다. 밀가루 피에 여러 가지 음식 재료를 싸 먹는 음식은 동아시아의 만두 외에도 터키의 케밥, 러시아의 펠메니, 베트남의 짜조 등 다양한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만두는 고기와 야채를 넣어 만든 음식이라 대부분 문화권에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박우근 CJ제일제당 냉동사업부 과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인 식습관과 맛에 거부감이 있는지 여부다. 만두는 외국인들의 식습관과 충돌하지 않고 맛의 괴리도 적어 글로벌화에 적합한 제품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첫 도전지는 미국이었다.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 등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으로 유사성이 높은 아시아 권역은 후 순위로 미뤄뒀다. 냉동식품 시장이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작고, 현지 경쟁업체도 많게는 수십 개에 달해 성공을 거두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미국 시장 진출을 결정한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미국의 냉동식품 시장 규모가 매우 크다. 미국에는 간편 식품이 이미 보편화돼 있고, 당시에는 아시아, 인도 등의 특성이 담긴 ‘에스닉푸드(Ethnic Food)’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었다. 둘째, 미국 소비자들이 만두를 상대적으로 친숙하게 생각했다. 미국으로 이민 간 중국인들이 오래 전부터 만두를 만들어 판매했다. 중국식 이름으로 소개됐지만 모양과 맛이 유사해 소비자들이 한국 만두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셋째, CJ제일제당의 생산 기술도 현지에서 경쟁력을 얻기에 충분했다. 당시 미국 시장 1위 업체였던 일본 아지노모토 계열사 링링은 수십 년을 사용한 노후 설비로 만두를 생산하고 있었다. 새로운 제품도 개발하지 않고 줄곧 한 종류의 만두만 판매했다.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다른 경쟁사들은 손으로 만두를 빚어 판매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제품의 맛과 모양이 일정하지 않아 경쟁력이 떨어졌다. 이에 반해 CJ제일제당은 한국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최신식 만두 생산 설비를 개발했다. 신제품을 꾸준히 출시하면서 제품 기획력도 키웠다. 자체 평가 결과 모든 면에서 CJ제일제당이 경쟁자보다 한 수 위라는 결론이 나왔다. 미국 시장에 과감히 투자한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섰다.

    마지막으로 미국이라는 선진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자연스럽게 CJ제일제당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미국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노하우가 쌓이면 다른 시장 진출은 한결 수월할 것으로 예상됐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선진시장에 진출해 시장 개척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일단 성공하면 다른 시장 진출이 매우 수월해진다. 이곳에 있는 업체들과 경쟁하고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는 과정에서 우리만의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M&A·제휴 통해 현지 시장 진출
    1) 美 시장 성공으로 구축한 글로벌 시장 개척 매뉴얼
    CJ제일제당은 만두를 앞세워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로 결심하고 나서 구체적인 진출 방안을 모색했다. 냉동식품의 특성상 한국 공장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구제역 파동 등으로 구제역 백신 접종 청정국 지위를 상실했다. 따라서 육가공품 수출이 불가능했다.

    독자적 투자를 통해 공장과 법인을 설립하고 브랜드를 만들어 시장 개척에 나서는 방안도 추진할 수 있었지만 미국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나 기업에 대한 인지도가 낮다는 게 걸림돌이었다. 이런 형태로 미국 시장에 진출할 경우 시장 안착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CJ제일제당은 현지 업체 M&A를 통해 빠른 시장 안착을 추진했다. 현지 업체를 인수하면 단기간에 브랜드와 공장 설비 등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유통망을 좀 더 쉽게 뚫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미국 유통업체의 경우 제품에 대한 평가 기준뿐만이 아니라 판매실적 등을 엄격하게 따지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영업을 해온 기존 업체를 인수하면 유통망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최적의 파트너로 CJ제일제당과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있던 미국 현지업체 옴니가 꼽혔다. 이 회사가 자체적으로 판매하는 만두 브랜드 ‘오하나’는 이미 미국 로스앤젤레스 일대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 회사는 만두를 하루 25만 개 생산할 수 있는 생산 설비도 갖췄다. 유기농 식품을 주로 취급하는 미국 유통업체 ‘트레이더 조(Trader’s Joe)’에 OEM 방식으로 만두를 공급하는 등 미국 전역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옴니가 기존에 하고 있는 사업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인수를 제안했다. 옴니 입장에서도 CJ제일제당의 식품 연구기술 역량, 제품 기획력, 생산 기술 등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딜이라고 판단했다. 한국 이민자 출신이 운영하는 업체인 만큼 한국인들끼리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2007년 3월 인수작업을 완료했다.

    옴니 인수 후 만두 신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을 살펴보니 미국인의 입맛을 고려해 현지화한 제품을 찾기 어려웠다. 대부분 중국인들 입맛에 맞는 만두 레서피를 활용했다. 만약 미국인들이 원하는 맛과 영양을 고려한 새로운 제품이 나온다면 기존 업체들과 차별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미국 사람들은 ‘건강한 맛’을 좋아한다고 판단해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를 넣었고, 아시아 ‘향’을 대표하는 실란트로(고수)를 가미했다. 사이즈도 한 입 크기로 줄여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고, 샐러드나 전체 요리 등에 응용할 수 있도록 했다. 꼬박 6개월간 신제품 개발에 매진한 끝에 미국 현지에서 개발한 첫 제품 ‘미니완탕’이 출시됐다.

    2008년 열린 NRA(National Restaurant Association) 전시회에서 미니완탕을 선보였다. NRA 전시회는 미국 최대 식품 박람회로 미국 내 프랜차이즈 및 식품 기업이 참여해 각종 신제품, 요리 기기 등을 전시한다. 미니완탕은 현지 전문가들로부터 미국 소비자 입맛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닭고기, 실란트로 등 기존 만두에 잘 쓰지 않은 재료를 활용하면서 미국인에게 익숙한 맛을 낸 것이 주효했다. 코스트코 등 유력 미국 유통업체에서 먼저 임시 매대 판매를 제안할 정도였다.

    다른 유통망에도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었다. 유통업체 트레이더 조에 이미 옴니가 납품을 하고 있었던 덕분이다. CJ제일제당은 브랜드 인지도를 고려해 기존 옴니 브랜드로 제품을 생산, 납품해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감도 줄였다. 운도 따랐다. 트레이더 조에 납품하던 업체인 일본계 회사가 캘리포니아 주정부로부터 공장 가동 정지 명령을 받아 예상보다 더 많은 양을 진열할 수 있었다. 이렇게 판매를 시작한 미니완탕은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2009년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유력지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포장 만두 맛 평가에서 CJ제일제당 만두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만두피와 건강한 재료의 식감 등에서 호평이 이어졌다. 입소문을 타자 코스트코는 직전 해 대비 주문량을 50% 늘렸고, 홀푸드의 월평균 판매량도 3배 이상 늘었다. 생산설비가 부족해 추가 주문을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미국 법인 매출은 M&A 전보다 40%나 늘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CJ제일제당은 2010년 미니완탕에 CJ제일제당의 글로벌 브랜드 ‘비비고(Bibigo)’를 입혀 판매하기 시작했다.

    시장 수요가 커지면서 2013년 미국 동부 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TMI 트레이딩’을 인수했다. 또 옴니 공장이 있는 플러턴에는 3000만 달러를 들여 2만7000㎡ 규모의 신규 공장을 지었다. 이 시기 새로운 제품도 출시했다. 중국 샤롱바오 형태의 ‘스팀 덤플링’이다. 이 제품은 간편함과 건강한 맛으로 현지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스팀 덤플링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포장을 뜯은 후 바로 전자레인지에 넣기만 하면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됐다.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한 아시아 고급 음식이라는 점도 어필했다. 기존 만두들이 싼 가격을 내세워 아시아 이민자들을 공략한 것과 반대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스팀 덤플링은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퍼지며 인기를 끌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튜브 등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스팀 덤플링에 대한 평가와 시식 방법이 올라오기도 했다. 





    2016년부터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기 시작했다. 25년간 1위를 내 준 적이 없는 경쟁업체 링링을 제치고 미국 시장에서 만두 부문 1위 업체가 됐다. 매출액은 2017년 기준 1750억 원으로 5년 전보다 약 7배 증가했다. 여세를 몰아 CJ제일제당은 동부시장 공략을 위해 최근 뉴저지 공장 자체 투자에도 나섰다. 공장 규모는 플러턴 공장의 약 2배 수준으로 알려졌다.

    2) 미국 진출 경험 토대로 동시다발적 해외 시장 확대
    미국 시장 진출을 통해 얻은 경험과 노하우는 CJ제일제당이 해외 진출을 본격화할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CJ는 인수합병, 공장 설비 리노베이션, 현지화한 제품 개발 등 미국 시장 진출 경험을 토대로 동남아시아, 유럽 등 새로운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섰다.

    2016년과 2017년 각각 인수한 베트남과 러시아 법인인 ‘CJ까우제(CJ Cautre)’ ‘CJ라비올로(CJ Raviollo)’가 대표적 예다. CJ제일제당은 까우제를 170억 원, 라비올로를 300억 원을 들여 사들였다. CJ제일제당은 두 나라의 냉동 만두 성장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베트남의 경우 아직 냉장고가 100% 보급되지 않았다. 베트남 경제가 성장 추세인 점을 감안하면 냉장고 보급은 앞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냉장고 보급이 늘어나면 냉동식품 보관이 쉬워지므로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또 베트남은 20~35세 젊은 층 비중이 매우 높다. 대부분 결혼을 일찍 하는 편이고, 결혼한 후에도 여성이 일을 하는 맞벌이 부부가 보편적이다. 이들은 외식을 자주 하고 간편식을 즐긴다. 만두와 같은 냉동식품의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러시아에서는 전통 만두인 펠메니의 시장 규모가 1조5000억 원 규모로 매우 크다. 그만큼 펠메니와 유사한 만두의 잠재 수요도 높다고 판단했다. CJ제일제당은 현지업체를 등에 업고 시장점유율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대형마트에서 한국에서 생산한 비비고 왕교자 시식 행사를 열어 현지인의 반응을 먼저 살핀 것도 러시아 시장 진출을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당시 비비고 만두를 먹은 현지인들의 반응이 예상외로 좋았다. 펠메니와 유사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맛이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베트남과 러시아 법인은 CJ제일제당의 해외 시장 진출에 도움을 주는 자원을 갖고 있었다. 우선 브랜드 인지도다. 까우제는 현지에서 베트남식 만두인 짜조 판매 1위 기업(시장점유율 45%)이고, 라비올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내에 있는 러시아 만두 펠메니 판매 3위 업체다. 그만큼 강력한 브랜드 자산을 갖고 있다. 또 두 법인은 브랜드 영향력을 바탕으로 각 지역의 유력 유통망도 확보하고 있다. 낯선 비비고 한국 만두 제품을 한결 수월하게 현지 대형마트에 진열할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들이 보유한 생산 인프라다. 이미 공장 설비를 갖추고 있어 새로 공장을 짓는 것에 비해 적은 돈으로 비비고의 최신 생산설비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했다. CJ제일제당은 자사 고유의 장점과 피인수업체 보유 자원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고 인수를 결정했다. 


    3) 조인트벤처(JV)를 통해 진입한 중국 시장
    중국 시장은 2011년 홍콩의 유력 유통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진출했다. 중국은 CJ제일제당 입장에서 매우 탐나는 시장이었다. 당시 한류 열풍으로 한국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고 중국 사람들의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도도 높았다. 2조1000억 원이 넘는 중국 만두 시장의 45%를 교자만두가 차지하는데 이 중 프리미엄 만두 시장은 매해 20% 이상씩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 현지 업체 M&A는 어려웠다. CJ제일제당이 염두에 뒀던 중국의 유력 현지 업체는 M&A 의사가 없었다. 이에 따라 다른 중국 업체들도 검토했지만 설비가 너무 노후화됐거나 생산인력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될 우려가 컸다. 마지막으로 자체 공장을 설립해 중국 시장에 들어갈 방법도 모색했으나 중국 정부가 공장 부지 사용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때 마침 비비고 만두 홍콩 수출을 담당했던 홍콩 최대 식품 유통회사인 DCH가 중국 시장 진출을 제안했다.

    DCH는 중국 광저우시에 공장 부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부지에 공동 투자를 해 공장을 짓고 만두를 판매하자고 제안한 것이었다. CJ제일제당은 DCH와 합자법인을 세우고 중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중국 시장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CJ제일제당이 현지에서 생산한 만두를 사 가겠다고 하는 유통업체들이 거의 없었다. DCH도 중국 현지 유통망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현지 생산업체의 도움이 없어 현지 소비자들의 성향을 파악하기도 어려운 구조였다. 이때 CJ제일제당이 미국 시장 등에서 확보했던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됐다. 중국인들의 생활습관, 만두 선호도 등을 조사해 R&D 부서 직원들과 함께 비교적 빠른 시간 내 현지화한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시식 코너와 같이 한국에서 벌이는 판촉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벌여 중국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도 했다. 그 결과 비비고는 중국 광저우시 내 대형마트 유통체인 중 일부에서 만두 판매량 1위를 차지하는 등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DBR mini box ‘한국형 시식 문화가 탄생시킨 중국 현지 직원들의 ‘폭파 활동’’ 참고.)

    DBR Mini Box Ⅱ: 까우제 원로 직원들이 눈물을 흘린 이유
    CJ제일제당이 베트남 식품회사 까우제를 인수할 당시 외부에서 우려가 많았다. 까우제가 생산하는 짜조를 더 이상 먹지 못하는 것이냐는 소비자들의 우려에서부터 시작해서 까우제 직원들이 모두 해고될 거란 괴소문까지 퍼졌다. 공장장, 법인장 등 회사 수장이 한국 사람으로 바뀌면서 직원들도 매우 불안해했다. 언론에서는 CJ제일제당이 까우제의 브랜드 파워, 유통망 등 이용해 한국 제품만 파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인수 작업에 참여했던 노웅호 베트남 법인장은 각종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인터뷰를 자처했다. 현지 경영 전문 매체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까우제의 짜조는 계속 유지할 것이며 심지어 품질을 높여 베트남에서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잘 팔리는 제품으로 만들 것이다. 베트남 공장이 세계에서 만두를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생산설비와 기술력을 갖추도록 투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7년 6월1일 열린 까우제 35주년 창립기념일에는 원로 직원들을 모두 초청해 비전 선포식도 가졌다. 이때 CJ까우제라는 회사명과 새로운 CI도 공개했다. 현지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원로 직원들은 이날 행사장에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했다. 베트남 법인에 있는 1700여 명의 현지 직원들도 신뢰를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노 법인장은 “10년 전만 해도 베트남 봉제사업에 진출한 많은 한국 기업이 현지 직원들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아 문제가 종종 발생했다. 그래서 한국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는데 이런 신뢰를 구축하는 작업, 자신의 개성과 전통을 존중하는 과정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DBR Mini Box Ⅲ:  한국형 시식 문화가 탄생시킨 중국 현지 직원들의 ‘폭파 활동’
    2016년까지도 중국 시장에서 CJ제일제당의 만두 판매가 지지부진했다. CJ제일제당은 극약처방을 내린다. 자사 제품 시식코너를 담당하는 CJ엠디원 ‘에이스’ 직원 5명을 중국 법인에 보낸 것이다. 이들은 중국 소비자들에게 비비고 왕교자를 맛보게 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이들은 광저우시 마트 내 임시 매대에 자리를 잡고 왕교자 시식 행사를 열었다. 중국에서는 적극적인 시식문화가 없기 때문이 CJ엠디원 직원들을 처음 본 중국 소비자들은 매우 당황했지만 이들이 서투른 중국어로 사람들에게 이쑤시개에 꽂은 만두를 웃으면서 건네자 중국인들은 만두를 받아 들었다. 시장에서 소리지르면서 호객 활동을 하듯이 흥을 돋우니 중국 소비자들도 즐거워했다. 만두를 맛본 소비자들이 만두를 한 봉지씩 장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한 번 맛본 현지인들의 재구매율도 높았다.

    영업과 마케팅을 담당하는 중국 현지 직원들은 이 시식 행사를 보고 크게 놀랐다. 처음에 매출을 10배 더 늘려야 한다는 법인 목표에 대해 “너무 무리하다”며 불만을 제기했지만 시식 행사를 통한 소비자들의 호의적 반응과 판매 증가를 눈으로 확인하자 태도가 바뀌었다. 마케팅 담당, 영업 담당 직원들이 마트나 할인마트에 가서 자발적으로 시식 및 판촉행사를 진행하는 등 열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초기에 CJ엠디원 직원들이 보여 준 시식 행사를 그대로 따라 했다. 중국법인 현지 직원들은 이런 영업활동을 ‘폭파활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소비자 만족도를 폭파한다, 판매량을 폭파한다는 뜻이었다.

    2017년 비비고 만두는 광저우시 내 400여 개 할인점 및 마트와 거래하는데 이 중 10%인 40여 개 매장에서 만두 제품 1위를 차지했다. 2위로 올라선 매장도 늘었다. 자신감을 얻은 CJ는 중국 요성 식품 공장을 설립,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비비고식 ‘Glocalization’


    1) 현지인의 식습관을 고려해 탄생한 ‘맞춤형’ 비비고 만두
    CJ제일제당은 철저하게 현지인의 식습관에 맞춘 제품을 내놓는다. 미국에는 비비고 스팀 덤플링, 미니완탕이, 중국에는 비비고 교황, 왕수교자가 대표적이다. 최근 진출한 베트남에선 비비고 해산물 만두와 고기와 옥수수가 들어간 ‘미트 앤 콘’ 만두가 주력 제품이다.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비비고 왕교자도 한국에서 생산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맛이다. 러시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펠메니에 고기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을 고려해 소고기양을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수교자(물만두)를 중심으로 판매하는데 일본 사람들이 만두를 보통 국물 요리에 활용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CJ제일제당은 현지 시장에서 이미 활약하고 있는 메이저 업체들을 따돌리기 위해선 비비고 만두만의 차별성을 확실히 드러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지역마다 사람들이 익숙하다고 느끼는 맛과 향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를 간과하면 소비자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다. 미국 시장에서 현지화한 제품으로 성공한 이후 적극적인 투자에 나섰다.
     
    우선 글로벌 R&D센터 인력을 현지에 배치해 제품 개발을 위한 투자를 확대했다. 총 23명으로 구성된 센터 연구원 중 9명이 미국, 중국, 베트남에 파견돼 있고, 나머지 인력은 한국 본사에서 이들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현지에 있는 연구원들은 자신이 알게 된 새로운 정보나 노하우를 다른 연구원들과 공유해 제품 현지화 및 제품 개선을 위한 재료로 활용한다.

    최근 중국 시장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는 것도 현지화 전략 덕분이다. 2011년 비비고가 중국에 진출할 당시 중국에는 3개의 거대 식품업체가 만두 시장점유율 85%를 차지했다. 중국 소비자들은 이미 익숙한 중국 브랜드만을 고집했고, 비비고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CJ제일제당은 중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분석했다.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맛을 내는 만두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부추가 문제였다. 중국 사람들은 의외로 만두에 부추 넣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일부는 부추가 열을 오르게 하는 식품이라는 이유로 꺼렸다. 그래서 박종섭 마케팅 총괄부장과 R&D팀은 중국 시장 내 시판되는 만두를 모조리 사서 먹어봤다. 대부분 옥수수와 배추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재료 배합 문제도 원점에서 다시 생각했다. 간장, 식초는 물론 현지 재료의 특성이 한국과 다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새로운 조합을 생각했다. 이렇게 중국 소비자들만을 위한 새로운 비비고 왕교자가 탄생했다.

    새롭게 탄생한 비비고 만두는 건강하고 익숙한 맛으로 현지인들을 사로잡았다. 박 부장은 “지금도 하루 세끼를 만두로 먹는 날이 허다하다. 만두 때문에 살이 7㎏이나 쪘다. 이렇게 먹어보니 중국인이 좋아하는 맛이 무엇인지 감이 왔다. 그런 의견들을 직원들과 공유했고,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새로운 비비고 만두를 출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품 개선 활동도 신속하게 진행했다. 현지 소비자들의 제품에 대한 반응을 살핀 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했다. 중국의 경우 약 1년마다 염도 조절, 속 재료 배합 비율 수정 등을 통해 현지화한 제품을 내놓는다. 현지에 파견된 R&D 인력과 자체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게 CJ제일제당 측 설명이다. 


    CJ제일제당은 맛뿐만 아니라 제품을 담는 포장재도 현지화했다. 비비고 로고와 디자인은 표준화했지만 포장은 나라별로 다르다. 박스에 포장한 것도 있고, 봉지에 담은 것도 있다. 크기도 제각각이다. 포장 방법을 결정할 때 중요한 의사결정 기준은 가격이다. 소득 수준과 지불 의향 등을 고려해 한 봉지당 가격을 정한 후 봉지에 담을 만두의 양을 결정한다. 또 나라별 생활 습관도 고려한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서는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냉장고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소형 봉지에 담아 판매한다. 중국은 플라스틱 트레이에 만두가 하나하나씩 별도로 들어가 있는 형태로 포장한다.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국 사람들의 성격을 고려해 포장의 외관, 디자인도 고급스럽게 했다. 냉동고에 음식을 오래 보관하기 싫어하는 일본 사람들을 위해 한 번에 먹고 치울 수 있는 양으로 생산한다. 반면 미국 사람들은 대량으로 소비하는 습관이 있어 종이 포장재에 만두 4팩을 다시 큰 박스에 포장해 판매한다. 




    2) 현지 제품과의 상생을 통한 ‘비비고’ 플랫폼 확대
    CJ제일제당은 인수한 현지 업체의 제품 생산을 중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품을 그대로 살려 비비고 브랜드에 편입했다. 이미 제품 인지도와 브랜드 파워가 있는 제품들을 비비고가 자체 개발·생산한 제품으로 대체하는 대신 비비고 자산으로 만들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는 비비고 브랜드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활용해 글로벌 만두 1위 기업이 되겠다는 CJ제일제당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다.

    CJ까우제, CJ라비올로 모두 기존에 생산하던 짜조와 펠메니 제품을 그대로 판매한다. 대신 비비고의 최신식 생산 설비, 제품기획력 등으로 피인수기업이 생산하던 제품의 맛과 품질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을 거친다. CJ제일제당은 현지 업체들보다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해 기존 제품의 매출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도 자신한다. 더 나아가 짜조와 펠메니 같은 현지 제품들을 원하는 글로벌 소비층을 공략해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고도 보고 있다. 강기문 CJ제일제당 글로벌 식품 R&D센터장(상무) “비비고는 현지 제품도 우리 자산으로 편입해 시장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택한다. 로컬 브랜드 제품을 통해 우리가 새로 개발한 주력 제품들도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어 간접적인 홍보효과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3) 비비고 생산 및 제품 개발 프로세스의 표준화
    CJ제일제당이 철저한 현지화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 비비고라는 브랜드가 지닌 강점과 정체성을 제대로 살려 현지 법인에 동일하게 녹여내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제품 포장 디자인이나 만두 모양 같은 ‘하드웨어’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CJ제일제당이 지키고 싶은 정체성은 오히려 ‘소프트웨어’에 가깝다. 어디서든 고품질의 만두를 제조할 수 있는 노하우,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가 이에 해당된다. 재료의 맛을 살리면서 식품 안전은 극대화한 생산 방식, 현지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방법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실제 CJ제일제당은 채소와 고기 등 각종 재료를 세척하고 손질하는 전처리 과정에 광학 선별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광학 선별 기술을 활용하면 제조공정에 투입된 식재료의 오염 여부를 광학 센서로 즉각 판별할 수 있으며 오염된 재료는 즉각 바람을 쏴서 제조 공정에서 탈락시킨다.

    중금속이 포함된 식재료를 감지하는 것도 광학 선별 기술의 중요한 역할이다. 비비고는 기존 업체들이 사용하는 간 고기 대신 깍둑썰기 공법을 통해 다진 고기를 사용한다. 이 고기는 입자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뼈와 같은 이물질이 포함될 수 있는 위험이 매우 높다. 그런데 광학 선별 기술을 활용하면 이물질이 포함된 부분도 솎아낼 수 있다. 식품 안전 관리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CJ제일제당은 이 광학 선별 기술을 세계 최초로 만두 공정에 도입했다. 현지 법인들에서도 모두 이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비비고의 자동화된 공정도 모든 해외 법인들에서 활용하고 있다. 밀가루 반죽, 만두 속 재료 혼합, 만두 성형 등을 모두 자동화했다. 복잡한 만두 제조 공정에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한 비비고의 자동화 생산 라인은 해외 어디서든 제품의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의 한국 생산공장 인력이 현지 인력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재료를 다루는 법에서부터 기계를 작동하고 유지 보수하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노하우를 전수한다. 한때 CJ제일제당 인천공장에서 5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 중 절반 이상이 해외로 나가 공장이 썰렁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비비고식 생산 과정은 피인수기업의 기존 제품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러시아 라비올로 펠메니가 대표적인 예다. 현지에 파견된 직원이 CJ제일제당 인수 작업을 진행하면서 라비올로 제품을 계속 먹어봤는데 매일 맛이 달랐다. 알고 봤더니 고기를 항상 같은 곳에서 구매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시중에서 수배가 가능한 고기를 넣었기 때문이었다. 생산 기술이 부족해 만두 모양이나 품질도 일정치 않았다. 인수 후 재료 공수 프로세스부터 제대로 세웠다. 고기와 야채를 제공하는 업체를 선정해 신선하고 질 좋은 재료를 안정적으로 공수받았다. 비비고 설비와 생산공정을 통해 공정 정도 표준화했다. 이렇게 라비올로의 펠메니를 비비고식으로 바꾸 자 제품의 맛과 모양이 일정해졌고, 생산성도 올라가게 됐다.

    제품 전문가가 인수부터 운영까지 주도
    CJ제일제당은 M&A 과정에서도 만두 전문가의 의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보통 기업은 재무 전문가들로 구성된 M&A 전담팀이 M&A 대상 물색, 실사, 계약을 주도한 후 계약 체결이 완료되면 해당 사업 분야의 전문 인력이 PMI(합병 후 통합)와 경영을 주도한다. CJ제일제당은 달랐다. 냉동식품을 기획하고 마케팅하는 냉동사업부, 만두 제품을 연구하는 R&D센터 연구원 등 제품 전문가가 M&A 과정 전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피인수회사의 현재 시장가치 등 재무적 요인을 중시하는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CJ제일제당의 인수 및 운연팀원은 제품 전문가로서 만두 생산과 운영, 주력 제품의 비즈니스적 가치와 잠재력 등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며 M&A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했다. 이는 만두 시장과 생산 공정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미국 시장 진출 당시 CJ제일제당은 강 상무를 포함해 만두 제품 개발과 생산을 담당했던 인력 3명을 파견했다. 이들은 현지 업체를 직접 방문해 생산설비를 면밀히 살폈다. 시장 조사를 통해 업체들의 브랜드 영향력, 성장 가능성도 꼼꼼하게 살폈다. 강 상무는 “재무적인 분석과 같은 전문적인 부분은 본사 관련 인력이 담당했지만 M&A 후보를 물색하고 선정하는 과정에는 만두 전문 인력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베트남 법인 인수를 주도한 노 법인장도 냉동식품 전문가 출신이다. 현지에 가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반영해 전략을 세우라는 본사 방침에 따른 것이다. 노 법인장도 인수 전략을 세우고 전담 인력을 꾸렸다. 인수 후에는 노 법인장과 인수 실무를 챙겼던 사람들이 남아 후속작업을 맡았다.

    최근 러시아 M&A에 참여했던 CJ제일제당 직원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제품 전문가들로 이뤄진 인수팀은 러시아 업체를 M&A할 때 일반적으로 간과됐던 중요한 요소를 파악했다. 러시아의 경우 한국으로 치면 ‘대리상’이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다. 인수업체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대리상과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그래서 대형 유통업체에 얼마나 쉽게 입점할 수 있는지를 중요한 요소로 평가했고 이런 측면에서 역량을 갖춘 업체를 인수했다.

    향후 회사를 운영해야 하는 사람들이 인수 단계에서 의사결정을 주도했기 때문에 사업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업체를 선정할 확률이 높았고, 인수 후에 어떤 방향으로 기업을 운영할지에 대한 방안도 미리부터 고민하게 됐다. 이는 PMI 작업의 효율성을 높였다.



    성공 요인 및 시사점
    침체된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흔히 해외 시장 진출을 떠올린다. 협소한 국내 시장에서 승산도 없는 경쟁에 매달리기보다 기회를 찾아 새로운 시장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해외 시장 진출은 리스크가 매우 높다. 해외 진출 기업 중 80% 이상은 기대 이하의 성과로 근근이 버티거나 철수를 고려한다. 해외 현지에서 무엇을, 어떻게,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제공할지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하지만 딱히 우리 회사에 맞는 정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수많은 경영이론이나 서적에서 발견한 현지화 이론은 적용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우리 회사에 적합한지 여부도 알기 어렵다.

    사실 해외 시장 진출 방식, 절차, 실행의 모습은 회사마다 다르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은 분명히 있다. 이 점에서 CJ제일제당은 이 원칙을 착실히 수행한 성공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CJ제일제당의 해외 시장 진출 과정을 복기해 보면 4가지 기본 원칙이 반복적으로 실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CJ제일제당 해외 시장 진출의 절차는 합리적이고 순차적이었다. ‘선택은 과감히, 그러나 실행은 치밀하게’라는 전략의 기본 원칙과 통한다. 회사는 진출에 앞서 확실한 한 방이 될 수 있는 킬러품목(본 사례에서는 만두)을 고르고, 진출 지역을 선정하며, 시장성을 검증하는 데 공을 많이 들였다. 진출할 때에도 현지 업체와 협업으로 시작해 설비를 늘리고 사업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이 절차를 거치면서 파생되는 부지 매입, 공장 리노베이션, 인력관리 등 하부지식들을 차곡차곡 축적해 미국을 시작으로 타 국가에 진출하는 데 그대로 활용했다. 자신만의 진출 방식을 습득해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고 실패 확률을 크게 낮췄다.

    둘째,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 해외 시장을 공략했다. 현지화 전략이란 현지인의 취향과 기호를 반영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매우 당연해 보이지만 현지화 전략이 해외 시장 진출의 상징처럼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현지화 전략은 쉽지 않다. 현지인의 취향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뿐더러 현지인의 취향을 맞추다 보면 차별화의 원천인 기업 고유의 정체성이 사라질 수도 있다. 최근 기업의 관심사도 현지화를 제대로 실행하면서 고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방안을 강구하는 데 있다.

    CJ제일제당은 미국, 베트남, 중국 등 특정 소비계층을 타깃으로 맛, 가격대, 포장을 달리해 성과를 냈다. 중국 시장에서 흔치 않은 시식대를 활용해 음식의 맛을 보게 하는 등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현지인이 선호하는 맛, 식감, 재료를 파악하기 위해 현지인, 파견 주재원이 직접 발 벗고 나섰다. 중국, 인도, 중동 등에서 현지화에 성공한 파나소닉, LG 등도 현지 소비자의 선호도를 파악하기 위해 7~10년간 공을 들였다.

    현지화란 그만큼 시간과 자원이 들어가는 일이다. 즉, 현지화란 현지 소비자들이 어디에 얼마를 소비하는지 물량과 숫자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파악해야 한다. 단순히 전문기관에 의뢰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업 실무자들이 오래 관찰하고 체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덧붙여 CJ제일제당이 비비고 등의 통합 브랜드를 만들어 현지 식품까지 이 브랜드에 편입한 것은 현지화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기업 정체성을 각인한 매우 기민한 전략으로 평가된다.


    셋째, CJ제일제당은 국제경영학의 오랜 난제인 Global-Local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명확한 사례를 제공했다. Global-Local 딜레마란 해외 진출 시 현지화가 수반하는 비용 압력을 일컫는다. 현지화를 하다 보면 각국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시킬 수야 있겠지만 제품 단위당 비용이 증가하고 나라마다 중복 투자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궁극적으로 매출이 증가해도 수익률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물론 제품을 표준화해서 각국 시장에 판매할 경우 비용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각국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따라서 제품의 다양화(현지화)도 추구하면서 전체 비용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는 진출 기업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가장 많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실제 서구의 다국적 기업들은 궁여지책으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P&G의 경우 각국 현지 시장에 맞는 비누, 샴푸 제품을 공급하다 증가하는 비용 구조, 사업부서 간 관리, 통제, 조정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지역 기반의 사업부를 글로벌사업부로 통합하고 ‘도브’라는 비교적 표준화된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재공략했다. 이 사례는 성공 사례로 꼽히지만 날로 다양화하는 지역별 소비자 기호와 요구를 감안할 때 모든 기업에 추천할 만한 방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학자들은 Global-Local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정이나 가치사슬상 핵심 부문은 표준화하고 비핵심부문이나 차별화가 요구되는 부분을 현지화해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추천한다. 자동차로 치면 메인 프레임 또는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은 표준화하고 여타 지역색을 반영해야 하는 판촉, 서비스 등은 현지화해 생산하는 개념이다. 결국 세계 각지에 판매하는 자동차가 기본적으론 비슷하지만 기호에 맞게 조금씩 차별화돼 서로 다른 제품인 듯 인식된다.

    CJ제일제당의 킬러 아이템인 만두의 경우 기본적으로 생산 방식은 플랫폼화돼 표준화된 절차로 세계 현지에서 생산·공급됐다. 하지만 재료와 포장은 차별화했다. 그리고 글로벌 R&D센터를 중심으로 제품이 좋은 반응을 얻은 이유들이 공유됐다. 이후 더 세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신제품 출시나 현지 시장 공략 전략이 수립됐다. 본사-해외 자회사의 역량이 계속 선순환되는 구조로 Global-Local 딜레마를 극복한 것이다.

    다만 이 방식이 효과를 보려면 세계 각 사업부별 업무 협조, 지식 공유가 필수적이다. 때론 본사가 해외 자회사의 좋은 아이디어를 역수입해서 재가공하고 다른 지역의 자회사에 다시 공급해야 하는 긴밀한 구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본사-해외 자회사 모두 윈윈하는 수평적인 조직구조가 필요하다. 이 방식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는 세계 각 지역 자회사들이 나름의 역량이 확보되지 않았거나, 별 권한이 없거나, 자회사 간 지식 공유, 원활한 업무 협조가 잘 되지 않는 기업문화 때문이다(이는 실무자들이 더 잘 이해할 것으로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CJ제일제당의 인수 역량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시장가치보다 내재가치에 무게를 둔 기업인수 철학도 주효했고 인수 후의 관리 방안도 탁월했다. 최근 중국 기업이 글로벌시장에서 약진하는 이유 중 하나로 중국식 M&A 운영 노하우가 학술연구에 자주 등장한다. 인수인 듯 인수 같지 않은, 이른바 ‘Light Touch 인수합병’이 부각되고 있다. Light Touch는 인수 후에도 피인수기업의 정체성과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면서 중국 기업도 같이 성장하는 통합방식이다. 피인수기업의 이탈과 사기저하를 막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육성해주는 방식으로서 기존 영미식 M&A에서는 보기 힘든 사례다. CJ제일제당이 베트남 국민 기업인 까우제와의 합병 과정은 이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CJ제일제당의 해외 시장 성공 사례는 해외 시장 진출 시 무엇을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할지를 보여주는 매우 모범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필자소개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류주한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jhryoo@hanyang.ac.kr
    필자는 미국 뉴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에서 석사(국제경영학), 런던정경대에서 박사(경영전략)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United M&A, 삼성전자, 외교통상부에서 해외 M&A 및 투자 유치, 해외 직접투자 실무 및 IR, 정책 홍보 등의 업무를 수행한 바 있으며 국내의 학술저널 등에 기술벤처, 해외 진출 전략, 전략적 제휴, PMI 관련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경량 방법론 주의


    한번 만에 완벽하게가 아니라, 한 곂씩 씌워가며 점점 완벽하게

     - 마치 여러겹으로 만들어진 애플파이 같이

     - 가볍게 한 번 돌린 다음에, 다시 가볍게 돌리는 식으로 여러 번 반복


    사전 분석이나 기획을 최소화하고 프로토타입을 빠르게 만들어 고객 반응을 확인 후 점차 개선 -> 이거뭐 디자인 씽킹이랑도 일맥상통하잖아?


    본부-센터-팀-실 과 같은 수직적 조직구조가 아닌 프로젝트 단위의 셀조직구조(프로젝트 주도형 조직구조)


    전사적인 일괄 도입이 아닌, 부분 부분 도입이 자발적으로 전사로 퍼져나가게(바텀업방식)


    협력을 위해 직원 평가방식을 상대평가 ->  절대평가, 360도 평가방식으로 전환



    조직관리 방안

    불확실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애자일’ 생각·리더십·조직형태 모두 가볍게…

    209호 (2016년 9월 lssue 2)

    Article at a Glance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애자일 방법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애자일 방법론 자체가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전된 관리 방식이다 보니 제조업 중심인 국내 기업들이 이를 적용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애자일 기법을 잘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조직문화나 철학을 바꾸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조직에 애자일을 도입하는 단계는 크게 진단 및 준비(Initial Setup) → 시범적용(Pilot) → 확장 시범적용(Expanded Pilot) → 전사 확산(Transformation)으로 진행된다. 특히 전사 확산 단계가 되면 전사 차원의 애자일 오피스를 만들고 직원 평가 제도를 다면평가와 절대평가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 구조 역시 기존 수직적 계층 구조보다는 셀 구조로 변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애자일 혁신(Agile innovation)은 지난 30여 년 동안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애자일 기법은 소프트웨어 개발의 성공률을 크게 높였고 품질 개선과 시장 진입의 가속화를 이뤄냈으며 생산성도 크게 향상시켰다. 그리고 최근 이 애자일 방법론(Agile methodology)이 업종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 발행된 몇몇 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애자일을 조직 내에 도입할 때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조직문화의 변화. 애자일 방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조직 내 프로세스 및 리더십의 변화가 필요한데 이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 역시 애자일을 성공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조직문화의 변화가 핵심이라는 것을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그만큼 애자일을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애자일은 불확실성이 높은 비즈니스 상황 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전된 관리 방식인 만큼 비교적 안정된 비즈니스 환경에서 수행했던 기존의 개발 및 조직문화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사전에 완벽한 분석이나 기획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사용하고 나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면 애자일에서는 사전 분석이나 기획을 최소화하고 시제품이나 MVP(Minimal Viable Product)를 빠르게 만들어 고객 반응을 확인하면서 점진적·반복적으로 제품을 개발한다. 또한 상명하달 형태의 수직적인 조직구조보다는 비즈니스 상황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직원들의 오너십과 자발성을 강조하는 수평적인 조직을 추구한다.

     

    이러한 애자일 경영이 갖는 조직 및 개발 문화의 변화는 과거 2·3차 산업에서 잉태됐던 경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기업경영을 복잡 적응계로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이런 변화는 전체 직원들에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과 관리 방법의 큰 변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일부 경영진이나 직원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한 성공한 기업들은 나름대로의 성공 방정식이 있다 보니 과거의 방식에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애자일 조직으로의 변화를 기획할 때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3∼5년의 기간을 두고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글로벌 애자일 단체 중 하나인 스크럼 얼라이언스(Scrum Alliance)스크럼은 단순한 프랙티스들의 집합 이상이며 근본적으로 사고방식(way of thinking)의 변화다. 자기 조직화(Self-organizing)된 팀과 임파워먼트(empowerment), 지속적인 변화와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얘기한 바 있다.1

     

    < 1>은 전통적 경영 방식과 애자일 방식이 갖는 특징을 요약한 것이다.

     



    애자일 도입 방법과 로드맵

     

    시대마다 유행하는 경영기법들이 있다. 한때 기업들이 앞다퉈 도입하던 6시그마라든지,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비즈니스프로세스혁신), CMMI(Capability Maturity Model Integration, 능력성숙도모형결합)와 같은 경영기법들은 대부분 경영진이 주체가 돼 조직 내에 확산하는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도입이 진행됐다. 이런 방식은 경영진의 집중적인 지원하에 일사천리로 진행되다 보니 조직 내에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경영진에 의해서 주도되다 보니 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부족한 것이 문제였다. 한때 많은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했던 6시그마도 경영진의 관심이 멀어지면서 지금은 자취를 감추거나 형식적으로 수행되는 곳이 많아졌다. 반면에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조직 내 도입을 추진하는 이른바 보텀업(bottom-up) 방식은 직원들의 적극성이 높다. 하지만 경영진의 관심이 부족하다 보니 교육이나 컨설팅 같은 지원을 얻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방식 역시 새로운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피할 수는 없으므로 부분적으로 적용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거나 혹은 내부 장벽에 막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애자일을 도입했던 많은 기업들이 대부분 보텀업 방식으로 애자일을 도입하다 보니 내부 확산에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삼성전자 및 LG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 역시 10여 년 전부터 애자일 방식을 도입해왔지만 사업부 혹은 개별 팀 단위의 도입이었지 전사적인 차원에서 도입을 검토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애자일은 기존 경영기법들과 달리 프로세스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사고방식과 리더십 등의 변화를 요구한다. 때문에 예전처럼 톱다운 방식만으로는 내부 확산에 한계가 있었다. 특히 우리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명령과 통제 중심의 수직적인 조직구조와 대치되는 것이다 보니 내부 저항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많은 조직들은 톱다운과 보텀업 두 가지 방식을 적절히 조합해 사용한다. 이 방식의 특징은 경영진의 지원하에 교육과 컨설팅을 제공하면서 애자일에 관심 있는 비즈니스팀부터 점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톱다운 방식보다는 조직 내 확산이 느리겠지만 자발적인 의지가 있는 팀을 대상으로 적용하기 때문에 도입의 효과나 지속성 측면에서는 뛰어나다. 왜냐하면 모든 팀들은 성과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다른 팀에서 효과를 봤다면 서로 경쟁적으로 도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업부들이 자발적으로 도입하게 만드는 것은 경영진의 압력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필자는 가끔씩 애자일 도입을 쉽게 생각하는 경영진을 보게 된다. 이런 분들은 과거에 그랬듯이 톱다운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모든 개발팀에게 일방적으로 애자일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더 큰 문제는 제대로 된 교육이나 컨설팅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자체 역량으로 적용할 것을 지시한다. 이렇게 되면 애자일 철학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팀에게도 곤혹이지만 애자일 도입에 대한 의지가 있는 팀도 초기 시행착오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은 원래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많은 글로벌 기업에서는 애자일을 도입할 때 다음과 같은 로드맵을 사용한다. 조직 내에 어느 정도 안착하기까지의 기간은 조직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3∼5년 이상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직이 크지 않다면 확장 시범적용은 생략할 수 있다.

     

     

    1) 진단 및 준비(Initial Setup) 단계

    이 단계는 조직에서 애자일 경영방식을 이해하고 조직 내부에 어떻게 적용시켜나갈 것인지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다. 대부분의 기업은 나름대로 발전시켜온 프로세스와 조직 구조가 있기 마련이므로 애자일 관점에서 기존 프로세스와 조직 구조, 개발 환경을 검토하고 개선사항을 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기존에 효과적으로 잘 활용되고 있는 프로세스를 버리고 무조건 애자일로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때문에 경험 있는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이렇게 개선 사항들이 도출됐다면 이를 기반으로 조직에 맞는 애자일 적용 계획을 수립한다. 애자일 프로세스는 관리 및 기술영역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존재하므로 우리 조직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최근에는 SW 개발 조직에만 적용되던 애자일 프로세스가 마케팅이나 교육, 기획, 하드웨어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도 확장돼 적용되고 있다.

     

    애자일 교육은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와 특정 인원을 대상으로 하는 계층별 워크숍으로 나눠서 실시한다. 세미나는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애자일 경영 철학과 주요 내용을 이해하는 취지에서 수행한다. 세미나 시간은 3∼4시간 정도가 적절하다. 계층별 워크숍은 크게 중간관리자를 위한 애자일 리더 워크숍과 상위 관리자를 위한 경영진 워크숍으로 나눌 수 있다. 리더 워크숍은 실제 팀을 이끌 리더를 대상으로 애자일 리더의 역할과 실무를 중심으로 2∼3일 정도 진행한다. 애자일 경영진 워크숍은 CEO를 포함한 실무 경영진을 대상으로 애자일 개발 철학과 경영진의 역할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1∼2일 정도 진행한다.

     

     

    2) 시범적용(Pilot) 단계

    시범적용은 우리 조직에 맞는 해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조직마다 개발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애자일 프로세스를 교과서처럼 적용할 수는 없다. 기존에 잘 사용하던 베스트 프랙티스가 있다면 애자일 프랙티스와 혼합해 우리 조직에 맞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시범적용은 그 방법을 찾는 탐색 과정인 셈이다. 이 단계에서는 애자일에 관심이 있는 사업부들을 대상으로 2∼3개 팀을 선정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어느 1∼2개 팀에서 애자일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범적용 팀의 사이즈는 10명 전후의 소규모 팀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시범적용 팀이 선정되면 팀원들이 변화된 업무환경을 이해하고 자기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애자일 개발 및 관리 방식에 대한 워크숍을 2∼3일 진행한다. 이후에는 해당 팀과 관련된 이해관계자(SW개발팀이 시범적용 팀이라면 현업이 이해관계자가 될 수 있다)를 대상으로도 애자일 교육을 진행한다. 애자일은 비즈니스 부서와 개발팀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강력한 프레임워크를 제공하기 때문에 개발팀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에게도 애자일 경영 방식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시범 적용 단계에서는 처음 애자일을 적용하다 보니 모든 활동이 낯설고 어색하므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시행착오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애자일 전문가의 멘토링이나 코칭이 필요하다. 애자일에서는 이런 전문가를 애자일 코치라고 부르는 데 이들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애자일 코치의 역할

    ● 비즈니스 성과가 날 수 있도록 애자일 프랙티스 적용 멘토링

     

    ● 조직에 적합한 표준 프로세스 수립 지원

     

    ● 애자일을 적용하면서 나타나는 개발팀과 이해 관계자 간의 이슈 해결

     

    ● 구성원이 잠재력을 발휘하고 상호협력할 수 있도록 코칭

     

    ● 애자일이 조직 내 정착할 수 있도록 이해 관계자 변화 관리

     

    ● 애자일 관리 도구 활용 가이드

     

    애자일 코치는 초기 2∼3개월은 팀을 자주 방문해 애자일 프랙티스 적용을 지원하고 이후에는 회수를 점차 줄여나간다. 또한 일정기간(6∼10개월) 동안 시범 적용 팀의 리더를 멘토링하면서 역량 있는 애자일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코칭한다. 시범적용이 끝나면 그동안 진행됐던 성과와 프로세스 자산, 교훈을 문서로 정리한다.

     

    3) 확대 시범적용(Expanded Pilot)

    이 단계는 시범적용 결과를 바탕으로 좀 더 규모가 큰 프로젝트나 사업부서 전체에 적용하는 단계다. 진행 방식은 시범적용 단계와 유사한 활동을 수행한다. 여러 팀으로 확대 적용하면서 각 팀에 맞는 애자일 방식을 찾는 단계다.

     

    4) 전사 확산(Enterprise Transformation)

    이 단계에서는 본격적인 애자일 조직으로 변화하는 단계로 조직 내 프로세스 및 조직구조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여러 가지 변화해야 할 요소들이 많지만 크게 3가지로 정리해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i) 전사 품질 조직의 변화

    회사마다 전사 품질 관련 조직은 품질보증, PMO(Project Management Office·프로젝트 관리 조직), 혁신 그룹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들은 보통 조직 내에서 제품 및 서비스 개발 활동의 프로세스를 개선하거나 품질을 점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애자일을 도입하면 이러한 품질 관련 조직의 역할도 변화가 필요하다. 전사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지원하는 PMO 그룹이나 혁신 그룹은 애자일 오피스(Agile Office)로 전환하거나 역할을 통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애자일 오피스는 사업부에 있는 개별 팀들이 애자일을 원활히 적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조직이다. 애자일 오피스는 경험 있는 애자일 코치로 구성되며 조직 구성원에게 애자일 교육과 멘토링 등을 제공한다. 또 조직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애자일 관련 이슈나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 해결을 지원한다. 기존 품질 관련 그룹에 있던 사람들은 애자일 지식과 경험을 습득할 필요가 있으며 기존에 하던 일도 애자일 관점에서 전반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애자일 환경에서의 품질 관련 조직은 보다 적극적으로 개발 과정에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그림 2>는 애자일 오피스가 지원하는 조직의 모습이다.

     

     

     

    ii) 직원 평가 방식의 변화

    전사 확산 단계에서 변화해야 할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직원들의 평가 방식이다. 많은 기업들은 2·3차 산업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되던 상위 관리자 중심의 평가와 상대평가 방식을 가지고 있다. 상위 관리자 중심의 평가란 팀원을 평가할 때 상사가 평가한 것만 인사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팀원은 상사가 시킨 일에만 집중하고 동료 간의 협업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애자일 개발에서는 조직화된 팀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상사의 지시가 아니라 동료 간의 협력이 더욱 많이 발생한다. 따라서 팀원들 중에 누가 열심히 했는지는 상위 관리자보다 동료들이 훨씬 더 잘 알게 된다. 상대평가제도는 사람들의 경쟁을 통해서 조직의 성과를 높이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이나 팀원 모두가 열심히 일했어도 누군가는 A를 받고 누군가는 D를 받아야 하는 문제점을 야기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각 팀원의 실력이 대부분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C D 등급을 받은 사람은 부당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런 상대평가제도하에서는 나의 일을 미루면서 남을 도와주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만약 상대방을 도와주느라 나의 업무가 지연되면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위 관리자 중심의 평가와 상대 평가는 팀의 협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쉽다. 이 때문에 애자일에서는 동료 평가가 포함된 다면평가제도와 절대평가를 권장한다. 모든 팀원이 열심히 잘했다면 모두 A B를 받아야지 인위적으로 일부만 C D를 받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 애자일의 특징이다. 마찬가지로 일방적인 평가보다는 다면평가가 공정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성과평가의 변화는 애자일 도입 시 직원들에게 중요한 이슈이므로 초기에 인사팀과 협의해 점진적으로 제도를 개선해나가는 것이 좋다.

     

    iii) 조직 구조의 변화

    국내 많은 기업들이 본부센터팀 등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계층 구조와 기획, 개발, 디자인, 테스트 등이 독립적으로 운용되는 기능형 조직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극도로 불확실한 비즈니스 환경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수직적 계층구조는 직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기 어렵게 만들고 의사결정 시간도 길어지는 단점이 있다. 기능형 조직구조 역시 개별 역량은 높일 수 있으나 자기 관점에서만 업무를 바라봄으로써 업무 간 장벽을 키우고 다양한 생각이 융합하고 교류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래서 애자일에서는 소규모의 자기 조직화된 팀으로의 변화를 권장한다.

     

    최근에 국내 인터넷 선두주자인 네이버는 현장 중심 경영과 의사결정을 빠르게 하기 위해 계층형 구조에서 방사형의 소규모 셀 조직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셀 조직은 비즈니스 서비스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기획, 개발, 디자인, 테스트 등 제반 기능을 포함한 자기완결형 조직으로 애자일에서 이야기하는 기능 혼합형 조직이다. 네이버는 이러한 셀 조직에 독립적인 의사결정 권한까지 줘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있다.2 네이버가 추진한 조직 변화는 전형적인 애자일 조직구조로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조직 구조는 직원들의 오너십을 높이고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을 더욱 활발하게 함으로써 창의성과 혁신을 발현시킬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그림 3>은 애자일에서 자기 조직화된 팀의 구조이다.

     

     

     

     

    맺음말

     

    우리는 산업화 시대의 후발주자로 출발해서 지금은 당당히 선진국의 문턱에 올라왔다. 그동안 눈부신 성장을 해왔으며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느껴온 것이 사실이다.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오면서 나름대로 경영 노하우를 가지고 있지만 그 대상은 어디까지나 2·3차 산업이 중심이었다. 지금 경제적 부를 창출하는 중심은 지식과 정보기반의 4·5차 산업이다. 이런 산업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통적 경영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애자일 경영은 실리콘밸리에서 출발한 경영기법으로 극심한 비즈니스의 불확실성에 대응하면서 창의적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실천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비록 우리가 나름대로 성공했던 경영방식과 많은 부분 배치되는 부분이 있지만 과거의 성공방정식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재왕애자일소사이어티 대표 ljw@agilesociety.co.kr

     

    필자는 고려대와 서강대에서 환경공학과 소프트웨어공학 석사 과정을 졸업했으며 지난 20여 년간 IT 관련 프로젝트 관리 및 프로세스 개선 컨설팅을 수행해왔다. 지난 몇 년 동안 SW 개발 조직의 성과 향상을 위한 애자일코치로 활동해왔으며 최근에는 애자일 경영의 가치와 철학을 다양한 산업 분야에 확산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애자일 & 스크럼 프로젝트 관리>가 있다.



    User Experience Report

    “즐거운가요?”“재밌나요?”고객에게 경험을 파는 5단계 길

    Article at a Glance – 전략, 혁신

    제품 자체의 외형이나 품질, 가격 등이 소비자 선택의 핵심 요인이던 때는 지났다. 이제는 해당 제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이 소비자를 끌어당기는 시대. 여기 한 음식점이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객이 감소하는 상황에 처한 이 음식점은개방형 주방이라는 요소를 도입, 고객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전달하는 일을 시도했다. 고객이 음식점을 방문해 겪는 경험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고객 경험 전반에 깊숙하게 개입하는 주방장을 주체로 내세웠다. 주방장을 중심으로 업무 프로세스를 재정비하면서 다른 음식점과의 차별성을 획득했다.

     

    기업들은 끊임없는 차별화를 통해 기존 고객의 이탈을 막고 새로운 고객을 흡수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차별화 요소라고 여겨졌던 항목들은 빠른 시간 안에 경쟁기업에 복제되고 더 이상 차별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 같은 초경쟁 시대에 직면해서도 기업들은 공급자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의사결정의 핵심 질문은 품질, 납기, 비용 경쟁력으로 수렴하고 기업이 원하는 메시지만 일방적으로 전달해서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되기도 한다. 고객이 실제 원하는 것이 변했다는 점을 감지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결과다. 이런 상황은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번 슈밋 교수의고객은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구매하는 것이다라는 말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고객에게 제품 자체의 품질, 외형, 가격 등은 더 이상 선택의 요소가 아니다. 제품을 통해 경험하는 다양한 요소가 핵심 구매 요인이다. 예컨대 디지털 카메라를 사는 것은 높은 화소수나 손떨림 방지 기능 때문이 아니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인생의 소중한 추억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업들이 갖춰야 할 새로운 경쟁력은 품질, 납기, 비용이 아니라멋있는가?’ ‘자랑할 만한가?’ ‘재미있는가?’ ‘관심을 끌 수 있는가?’ ‘즐거운가?’ ‘쉽게 사용할 수 있나?’ ‘나의 꿈에 가까워졌는가?’ 등 고객의 구매 결정에 관련된 핵심 요소에서 찾아야 한다.





     

    한 음식점을 소개하겠다. 이 음식점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음식점과 다를 바가 없다. 평범한 맛과 서비스를 유지하며 그럭저럭 매출을 유지하던 차에 같은 골목에 경쟁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경쟁이 치열해지고 고객이 점차 감소하는 상황에 직면한 음식점이다. 이 음식점이 고객 경험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도입했을 때 달라지는 과정을 살펴보자.

     

    1단계

    목표 고객(Target Customer)이 경험을 통해 얻는 주요 가치를 분석한다

     이 단계에서 가장 유용한 방법은 블루오션에서 제시된 전략 캔버스를 활용하는 것이다. 1단계를 마치면 집중해야 할 고객이 누구며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정리할 수 있다. 현재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은 경쟁자와의 차별성이 적기 때문이라는 점도 이해하게 된다.

    2단계

    고객과 기업이 어떻게 의사소통하고 있는지 분석한다

     

    두 번째 단계는 고객이 음식점에 들어와서 식사를 마치고 떠날 때까지 각 단계를 분석하는 것이다. 고객 이동 경로 분석(Customer Journey Analysis)으로 알려져 있는 방법을 활용해 고객이 음식점에서 경험하는 세부적인 요소들을 나열한다. 이 사례에서는 고객이 음식점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을 경험의 시작으로 봤다. 식사 후 음식점에 대해 평가하는 단계까지 총 10가지 경험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고객 이동 경로가 시작되면 경험 단계별로 고객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을 배치한다. 예를 들어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 고객이 음식점에서 경험하는 3번째 단계는 음식점에 도착해서 자리를 안내받기까지 기다리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고객의 주요 관심사는주차의 용이성’ ‘환대 수준’ ‘대기 시간등이다.

     

    고객 관심사를 파악한 후에는 음식점의 입장에서 고객의 10가지 경험에 대응하기 위해 진행해야 할 업무를 일대일로 배치한다. 그리고 서비스마다 고객과 직접 교류가 있는 직원을 연결한다. 이 사례에서는 매니저와 웨이트리스가 고객과의 접점에서 경험을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3단계

    고객에게 경험을 제공하는 모든 관계자를 연결한다

     

    고객과의 접점에서 서비스하는 직원들 외에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모든 직원들을 찾아 고객에게 차별적인 경험을 생산하는 체계를 정리한다. 음식점 사례에서는 매니저와 웨이트리스 외에 주방장(chef)과 보조 요리사, 식재료 공급업자, 음식점 주인, 음식 연구 커뮤니티 등이 고객의 경험을 만드는 주체들로 등장할 수 있다. 새롭게 등장한 관계자들 중 고객 경험의 핵심을 만들어내는 주체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업무 프로세스를 정리한다. 음식점에서는 주방장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주방장 중심으로 업무 프로세스를 정비했다. (그림 3) 주방장은 신규 메뉴를 개발해서 고객에게 제공하고 평가받으며 그 결과 음식점의 주인과 봉급 수준까지 결정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특이한 점은 주방장과 연계된 다양한 관계자들을 고객 접점에서 행동하는 직원과 고객과의 접점에 있지는 않지만 실질적인 서비스가 가능하게 하는 두 부류로 구분한다는 것이다.

     

    4단계

    고객 경험을 개선할 수 있는 영역을 DART모델을 이용해 찾아내고 개선한다

     

    주방장의 업무 처리 과정에서 고객에게 차별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부분을 DART모델을 활용해 찾아낸다. DART모델의 D(Dialogue)는 고객과 더 많이 대화해서 개선할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A(Access)는 고객과의 접점 이외의 영역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에 고객이 직접 접근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이다. R(Risk)는 고객이나 경험 제공자의 입장에서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T(Transparency)는 업무 절차를 개방해서 고객의 의심을 최소화할 수 없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이 같은 기준을 적용해 현재 진행 중인 주방장의 업무 프로세스를 분석하면 < 1>와 같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이 사례에서 DART 분석 결과, 음식을 주문하고 만들어져 전달되는 과정에서 기존 운영 방식이 갖고 있는 의문과 불만 요소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음식점은 개방형 주방으로 바꿔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이 전달될 수 있도록 변했다. (그림 4) 그 결과 음식점 내에서의 고객 경험은 <그림 5>와 같이 달라졌다. 개방형으로 달라진 주방에서 주방장은 고객과 대화를 통해 원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식사하고 싶은지 이해할 수 있고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식재료를 추가하거나 변경할 것을 조언할 수도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기존 고객이 음식점에 대해 갖고 있던 의문과 불안을 제거하는 장점이 있다. 주방장 입장에서도 고객과 직접 대면하고, 대화해서 친밀감을 높이고, 만족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셈이다.

     

    변화 전 음식점 운영 모델에서는 음식의 맛, 직원의 친절함, 주차의 편리성과 같은 차별화하기 어려운 요소들로 경쟁해서 지속적인 고객 감소라는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주방장과의 대화, 자신의 메뉴를 직접 설계하기 등 새로운 요소의 도입을 통해 고객은 음식점에 대해 갖고 있던 불안 요소를 제거하고 이전에는 받아보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를 경험하면서 이 음식점을 다시 찾는 이유를 얻게 된다. 개방형 주방의 도입이라는 방식이 아주 혁신적이거나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에 대한 이유와 방향성을 명확히 찾고 실질적인 솔루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5단계

    변경된 고객 경험 체계를 평가한다

     

    변경된 경험 서비스 체계가 고객과 기업 모두에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지 분석하는 단계다. 이 과정에서는 전략 캔버스 방법을 다시 한번 도입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고객 측면에서 전략 캔버스를 만드는 것 외에 핵심 경험 서비스 제공자(주방장) 및 기업(음식점)의 관점에서 또 다른 전략 캔버스를 하나 더 만든다는 것이다. 전략 캔버스로 분석할 수 있는 성과의 가장 큰 두 가지는 비용 및 위험요소의 감소와 고객에게 경험 요소를 통한 새로운 가치 전달이 적절하게 이뤄졌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주제는 기존의 전략 캔버스에서 고객에게 제공되는 가치 체계와는 완전히 다른 내용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차별화의 요소를 발견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핸리 포드가고객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면더 빨리 달리는 말이라고 답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고객에게 물어봐서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으로는 차별화 요소를 발견하기 어렵다. 고객의 경험 체계를 분석해야만 고객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림 6>은 고객 관점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통해 얻는 가치를 정리한 것이다. 고객이 음식점에서 비용을 낭비하고 잘못된 메뉴를 선택해서 겪을 수 있는 나쁜 경험을 최소화한 반면 주방장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자신이 직접 메뉴를 설계하는 즐거움을 얻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방장 관점에서 새로운 경험 서비스의 성과는 커뮤니케이션이나 메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요리의 특성에 대해 고객의 불만족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장치를 확보했다는 데 있다. 고객들과 대화를 통해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고 전문 요리사로서 선보일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보여줘서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만족도 및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그림 7)

    마지막으로 음식점 관점의 전략 캔버스다. 새로운 서비스는 음식점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과 위험 부담을 최소화한다. 특히 인적자원이 중요한 음식점에서 주방장의 만족도를 높여 이직을 최소화하는 것은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주요 요소가 될 수 있다. 반면 불필요한 대기 인력을 줄여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또한 고객으로부터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아 다양한 새 메뉴를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은 음식점이 축적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이다. 고객에게 제안받은 메뉴와 서비스를 도입하면 음식점에 대한 충성도도 높아진다.(그림 8)

     

    고객의 경험을 분석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면 기존의 고객 분석 및 전략 캔버스에서 제공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고 이 부분을 실행할 수 있는 체계를 확보해 기업이 차별적 경쟁력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 많은 기업이 새롭고 차별적인 경쟁요소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기존 사고방식에서는 새로움을 찾기 어렵다. 블루오션이라는 개념이 큰 인기를 끌다가 빠르게 사라진 것은 차별화 요소를 쉽게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음식점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고객 경험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만 차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김정윤 웨슬리퀘스트 이사 jykim@wesleyquest.com

    필자는 국내외 다양한 기업을 컨설팅했다. KAIST MBA 과정의 컨설팅 방법론 강사다. 고객 경험과 관련해 K리그 프로축구단의 경쟁력 강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관중 증가를 위한 서비스 개선 방안을 도출했다. 미국 MLS, NBA, NFL, 영국 EPL의 고객 경험 중심 서비스 개선


    SR2.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질주하는 ‘배달의민족’

    음식-배달보다 중요한 ‘브랜드 경험’
    글로벌 푸드테크 기업으로 우뚝 선다

    300호 (2020년 7월 Issue 1)

    2019년 12월 우아한형제들이 글로벌 배달 기업 딜리버리히어로와 인수합병(M&A)한다는 소식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뉴스가 놀라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마케팅 메시지로 시장의 정서를 자극해 온 회사가 독일 회사에 팔린다는 데서 오는 충격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우아한형제들의 시장 가치였다. 시장이 평가한 우아한형제들의 기업 가치는 무려 40억 달러, 당시 환율로 4조8000억 원 정도로 평가를 받은 것이다. 2010년 자본금 3000만 원으로 시작한 회사가 10년 만에 15만8000배가 넘는 가치를 인정받아 유니콘 기업의 대표 주자가 된 것이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지분을 딜리버리히어로에 파는 대가로 같은 비율(13%)의 딜리버리히어로 본사 지분을 받고, 싱가포르에선 50대50 지분의 합작사 ‘우아DH아시아’를 설립해 김 대표가 회장을 맡아 아시아 11개국 사업을 진두지휘한다는 소식도 더해졌다. 국내에서 출발한 스타트업이 명실공히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일단 독과점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M&A 건이 공정위로부터 합병 승인을 받게 된다면 딜리버리히어로는 배달 앱 시장의 90%를 장악하게 된다. 이에 대한 우려를 의식해 우아한형제들은 배달 산업 전체 시장의 규모가 훨씬 크다는 것과 수수료 문제 등에 대한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했다고 언급했지만 시장의 우려는 여전히 크다. 그간 시장의 정서를 자극해온 우아한형제들의 마케팅 메시지가 주로 ‘민족’이라는 단어였다는 것도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상처’가 됐다. 국내 기업이 성장해 발전한 덕에 여기까지 왔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물론 있지만 독일 기업과 합병함으로써 ‘민족성’에 대한 아이덴티티의 진정성을 통째로 의심받게 된 상황이다.

    하지만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아한형제들의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은 배달 앱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생존했고 1등이 됐다. 그리고 이제 딜리버리히어로를 만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것을 계획 중이다. 사실 배민의 앞에는 합병보다 더 큰 산이 놓여 있다. 바로 로컬의 특수성을 가지고 글로벌로 확장해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단어가 무의미해지고 있고 KBO 리그가 ESPN을 통해 방영되는 혼돈의 시대다. 또 변화하지 않으면 변화 당하는 시대인지라 그 산은 더 커 보인다.



    # Past Lessons

    월 300만 건의 주문을 처리하는 스마트폰 음식 배달 시장 1위 앱(app) ‘배달의민족’의 성장 비결

    1. 보이는 브랜딩과 보이지 않는 브랜딩(직원 상대)의 조화
    스타트업으로는 드물게 창업 초기부터 브랜딩에 많은 공을 들임. 특히 겉으로 보이는 브랜딩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브랜딩에 힘을 쏟았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브랜딩은 기업 내부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비전이 투영된 제품과 서비스 등 ‘소비자 경험’이 지속적으로 생산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2. 페르소나(Persona) 기법이 적용된 ‘찌질한 형아’ 캐릭터와 기업 서체 개발
    창업 초기부터 키치를 기업의 문화로 내세워 앱뿐만 아니라 사무실 인테리어나 직원들이 쓰는 볼펜, 지우개와 회사 기념품 등에 키치스러운 디자인과 문구를 삽입했다. 대표적으로 ‘살찌는 것은 죄가 아니다’ ‘오늘 먹을 치킨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등의 포스터가 있다.

    3. 통합적 경험을 갖고 있는 ‘경영하는 디자이너’가 리드
    디자이너와 경영자는 교육 방식의 차이로 인해 사고방식이 다르다. 디자이너는 보통 직관적 사고에 익숙하고 경영자는 분석적 사고에 익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둘을 통합하면 이상적인 CEO가 나올 수 있지만 이 둘을 다 잘하는 CEO는 드문 편이다. 김봉진 대표는 디자이너 출신으로 나중에 회사를 세우며 경영을 배웠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직관적 사고와 분석적 사고의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4. 수평적 공동체 문화와 수직적 업무 질서의 조화
    우아한형제들은 수평적 조직문화와 수직적 업무 질서를 추구한다. 보통 수평적 조직문화 도입을 시도하는 회사가 업무에서 발생하는 비효율과 혼란을 경험하는 데 반해 우아한형제들은 ‘업무는 수직적으로, 관계는 수평적으로’를 시도한다.

    # Why Revisit?

    2015년 당시 우아한형제들 ‘배달의민족’ 서비스의 위상이 ‘스타트업 중 성장세가 빠르고 독특한 브랜딩 활동을 하는 회사’ 정도였다면 2020년 배달의민족은 ‘스타트업에서 출발해 유니콘 기업을 거쳐 글로벌 기업으로 커나가고 있는 한국 스타트업 최고의 성공 사례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그만큼 우아한형제들은 5년 사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고 인수합병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의 성장을 꿈꾸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의 성장 과정을 재조명해봄으로써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공 요인에 대해 살펴보고 향후 우아한형제들이 글로벌 푸드 테크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 New Insights

    우아한형제들의 배달 서비스인 ‘배달의민족’은 그동안 클래스가 다른 고객 경험을 바탕으로 배달 앱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2030세대를 자신들의 팬으로 만들며 업계 선두주자의 자리를 공고히 해 왔다. 그런 배민이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 속에서도 독일 기업인 ‘딜리버리히어로’와의 M&A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로컬 시장에서 배달 앱 1위 자리만을 지켜서는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리고 배민은 M&A를 통해 확보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푸드테크’ 기업으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2019년 배민키친을 오픈하고 QR 코드로 주문하고 로봇이 서빙하는 메리고키친을 선보인 것을 비롯, UCLA 산하연구소 ‘로멜라’와 함께 요리 로봇 개발에도 착수했다. 또한 자율주행형 서빙 로봇 ‘딜리’의 시험 운행을 통해 더 큰 시장으로의 진출을 꿈꾸고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정석 ‘배달의민족’

    ‘플랫폼’이란 단어가 남발되고 있지만 정작 플랫폼 비즈니스를 정확하게 구현하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많은 기업이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을 미래의 성장 전략이나 생존 모델로 생각하고 있지만 대다수 기업은 그저 기존의 문법에 포장만 갈아입은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에 반해 배민은 플랫폼 비즈니스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배민은 어떤 전략으로 플랫폼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이끌었을까.



    1. 배민만의 배달 플랫폼 비즈니스를 정의하다.

    2012년에 배민이 만든 소개 자료를 보면 스스로를 “내 주변의 배달 집 정보를 쉽게 찾아주는 어플입니다”로 설명하고 있다. 동시에 그 아래 소개 페이지에는 스스로를 ‘소상공인 비즈니스 플랫폼’이라고 표현해 놓았다. 여기서 플랫폼 비즈니스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첫 번째 설명은 소비자에게 적용되는 설명이다. 반면 두 번째 설명은 플랫폼 비즈니스의 다른 한쪽 구성원인 공급자들을 위한 설명이다. 이 소개 자료에서 배민은 소비자에게는 소비자의 필요를, 공급자에게는 공급자의 필요를 간단하게 정의하고 있다. 또한 서비스 비전 역시 서술하고 있는데 “정보기술을 활용해 배달 산업을 발전시키자”라고 일갈하고 있다. 초기 사업 모델에 대한 설명이지만 플랫폼 비즈니스의 정의를 제대로 써 놓았다고 할 수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이론과 설명은 플랫폼 비즈니스란 말이 등장하면서부터 넘쳐나지만 정작 해당 비즈니스를 영유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자사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정의는 모호한 경우가 많다. 플랫폼의 정의 자체를 논하는 것은 복잡하니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면 비즈니스 플랫폼과 플랫폼 비즈니스는 구분해야 한다. 어떤 비즈니스를 위해 필요한 플랫폼들이 있고 어느 기업에는 플랫폼 자체가 비즈니스인 경우가 생기는데 배민을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그냥 배달 애플리케이션이다(소비자들에게는 기존의 배달 방식을 조금 편하게 하는 방법일 뿐이다). 하지만 소상공인에게는 자신들과 수많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이자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운영 체제다. 그리고 우아한형제들에는 이 플랫폼이 비즈니스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배민은 양 사이드 고객들이 어떻게 이 플랫폼에서 활동하게 해야 하는지를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제공한 플랫폼 비즈니스가 되는 것이다.

    소비자를 배민 앱에 끌어당기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가장 기본은 배달하는 집이 많아야 한다. 그런데 배달하는 집이 많이 들어오려면 소비자가 많아야 한다. 그래서 플랫폼의 양 끝에 많은 니즈가 존재해야 한다. 초기 배민은 식당들의 전화번호를 모으고 콜센터를 통해 전화를 대신해주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이는 아직 배민이 플랫폼이 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는 소상공인들에게 배민이 자신의 비즈니스를 위해 꼭 필요한 플랫폼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배민이 배달할 곳의 전화번호가 많은 곳 또는 맛집의 전화번호가 많은 곳이라는 이미지가 자리 잡으면서 반복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자연스럽게 고객 유입 채널로서 앞서 나가면서 외식사업자들이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비즈니스 구조를 만들었다. 배민이 사업 초기, 쿠폰을 돌려가면서까지 소비자를 모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민은 소비자를 모으는 마케팅에 열을 올림과 동시에 플랫폼 구조에서 다른 사이드인 외식사업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비즈니스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외식사업자들 입장에서는 과거 유선전화 시절, 배달을 마치면 아파트 위아래 집에 명함이나 전단을 돌리곤 했는데 이를 대신해줄 미디어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주문이 들어오면 주문 처리를 해주고, 심지어 이분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고객 관리 시스템까지 제공한다. 따라서 배민이라는 비즈니스 플랫폼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여기에 기술의 발전과 결제 시스템이나 마케팅 플랫폼으로서 역할이 더해지면서 진정한 플랫폼 비즈니스를 구현할 수 있었다.



    2. 플랫폼의 진화, 배달이 아닌 기술을 팔다.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 중 하나가 중간 유통 과정이 하나 더 생겨 필요 없는 지출이 생겼다는 점이다. 중간 유통 채널이 하나 생긴 것으로 생각하기엔 세상이 매우 복잡해지고 세분화돼가고 있다. 과거 시장에선 외식사업자들이 배달을 담당했다. 당연히 인건비부터 시작해서 관리 문제까지 소상공인들이 모두 부담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배달 전문 대행 서비스도 생기고 고객 관리 프로그램 하나 없던 작은 가게들도 내 가게를 분석할 수 있는 운영 시스템을 갖게 됐다. 여기에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에서 가게 전단을 돌리는 비용도 세이브할 수 있게 됐다. 이렇듯 배민은 사업자에게 시스템이나 솔루션을 제공하고 소비자에게는 접근성을 높여 연결해주는 일을 한다. 이런 서비스를 매끄럽게 제공하려면 기술적인 완성도가 높은 솔루션 개발이 필수다. 현재 배민 직원들의 절반 이상은 개발자다. 업은 다르지만 온라인 쇼핑몰 쿠팡도 직원의 절반은 IT 관련 인력인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 생태계 변화를 생각하지 않으면 중간에 이익을 보는 회사가 하나 늘어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소비자의 구매 과정을 살펴보면 배민이 단순한 배달 중계라는 서비스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소비자에게 보이는 것은 배민 앱 하나지만 이 과정에 필요한 구매 여정에 많은 시스템과 이해관계자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단순하게 앱 하나라고 하기엔 이미 너무나 큰 생태계가 존재하는 산업으로 발전한 것이다. 구매 여정에 필요한 솔루션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원과 시간이 필요하다. 단순하게 전단을 앱에 구현했다는 초기 모델을 가지고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을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현재 우아한형제들의 배민을 단순히 배달 산업의 선두주자로 정의하기에도 뭔가 부족한 감이 있다. 일례로 배민이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자율주행형 서빙 로봇 ‘딜리’를 보자. 자율주행형 서빙 로봇을 직접 개발해 시운전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력이라면 배민을 단순히 배달 산업의 강자라고 보는 것은 배민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딜리는 우아한형제들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어디로 방향을 정하고 전진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클래스가 다른 고객 경험 제공

    배민은 서비스만큼이나 독특한 조직문화와 키치한 브랜딩으로도 유명하다. CF에서부터 매거진 광고, SNS 콘텐츠 등 B급 마케팅이라 불리는 키치한 콘텐츠로 소비자의 관심을 모으고 MZ세대가 열광하는 굿즈나 프로모션 등으로 배민의 차별화를 만들어 왔다.



    1. 기능적 고객 경험을 넘어서서 Fun한 재미가 있는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다.

    배민의 지금을 만든 요인을 한두 가지로 정리하기 쉽지 않지만 많은 소비자와 전문가는 배민 성공의 핵심이 배달을 가장 많이 시켜 먹는 20∼30대들 사이에서 ‘브랜드 팬덤’을 효과적으로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마디로 배민은 다른 배달 브랜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성도 높은 고객을 성공적으로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런 배민 전략의 핵심에는 단순한 기능적인 고객 경험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서 소비자가 배달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긍정적인 느낌으로 머릿속에 떠오를 수 있는 브랜드로 이미지를 만드는 ‘브랜드 경험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브랜드 경험(Brand Experience)과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의 핵심은 ‘고객’에 있다. 고객 경험은 소비자가 ‘배달 음식 주문’이라는 기업의 핵심 서비스를 즐기는 순간,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끊김 없는 기능적인 만족감을 주는 것이라면 브랜드 경험은 고객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서 서비스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브랜드 경험이 다양하고 흥미로운 마케팅 활동과 광고 메시지를 통해 고객과 장기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활동이라면 고객 경험은 사용 상황에서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는 활동에 좀 더 가깝다고 하겠다(고객은 브랜드와 관계가 형성된 소비자로 정의한다).

    왜 배민은 만족스런 고객 경험뿐만 아니라 그들만의 브랜드 경험을 형성하기 위해서 노력했을까? 2020년 오픈서베이(Opensurvey)가 20∼50대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배달 서비스 트렌드 리포트’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50대에서 20대로 갈수록 메뉴를 정하거나 음식점을 정하고 배달 앱에 접속하는 것보다는 접속 후에 메뉴와 음식점을 결정하는 경향이 높았다. 배달 앱에 접속한 후에 그날 먹을 메뉴와 음식을 결정한다고 대답한 20대의 응답이 42.6%였다. 이러한 결과는 배달 앱을 통한 주문이라는 것이 20대, 30대에게는 주변에 있는 유명 맛집에서 특정 음식을 빠르게 주문해서 배달 서비스를 받는 것을 넘어서 해당 앱의 생태계에서 다양한 음식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고, 비교하고, 그 안에서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의사결정을 통해 주문하는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의미다.



    배달 앱의 기능적인 만족을 주는 단순한 고객 경험만으로는 충성도 높고 지속적으로 앱을 사용하는 사용자를 유지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배민은 가파르게 성장하는 시기부터 배달 앱 안에서는 끊김 없는 기능적인 만족을 제공하는 고객 경험을 만들어주고 배달 앱 밖에서는 고객들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고 그들의 서비스에 대해서 무형의 가치를 느끼도록 만드는 브랜드 경험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아직도 ‘배달의민족’ 하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광고가 고구려 벽화 속에서 배우 류승룡이 철가방을 들고 말을 타면서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를 외쳤던 TV 광고다. 배달 관련된 기능적인 이야기 하나 없이 광고 하나만으로 그해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브랜드가 됐다. 광고 대행업체 HS애드와 손을 잡고 만든 이 광고 시리즈는 특이한 광고 형식과 유머 코드에 수많은 20∼30대가 열광했다. 배민의 브랜드 정체성을 알리고자 큰돈을 투여한 이 광고로 젊은 소비자들의 인식 속에 뚜렷하게 자리 잡았다.



    물론 이런 방식의 광고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경쟁사들 때문이다. 2014년 이 광고가 온에어됐을 당시 이미 백여 개가 넘는 배달 관련 앱들이 존재했고 상위 3개 업체의 경쟁이 치열했다. 해당 시장은 표면적으로만 판단해도 이미 완벽한 레드오션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배민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바로 가장 배달을 많이 시켜 먹는 핵심 계층인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었다. 스타벅스나 나이키처럼 멋진 브랜드가 아니라 전 국민이 쓰는 편안한 앱, 젊은 20대들이 좋아하는 ‘B급 인터넷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하는 브랜드가 되기로 한다.

    2. 고객을 넘어서 열광하는 팬을 만들다.

    배민은 2012년 사업을 시작하는 시점에 20대 대학생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서체(폰트)를 만들어 배포했다. 그리고 이 폰트에 대학생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서체를 대학생들이 소소하게 구매할 수 있는 물건들에 사용해서 익숙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다 때가 있다’라는 문구가 달린 때수건을 팔거나 ‘이런 십육기가’라는 멘트가 달린 16GB USB, ‘비워도 다시 한번’이란 문구를 가진 맥주 컵 등 톡톡 튀는 B급 정서를 담아낸 문구들을 이 서체로 제작해 팔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배민의 서체로 쓰인 다양한 언어 유희는 20대, 30대들이 즐겨 찾는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그리고 배민의 이런 문구류들이 20대들 사이에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2016년에는 자체 온라인 채널인 ‘배민문방구’를 열고 더욱 다양한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서비스를 중개하는 플랫폼 비즈니스 기업이 기능적인 측면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문화적인 코드를 통해서 브랜드 경험을 전달하기 시작한 국내 최초의 사례였다.



    실제 이와 같은 활동들은 문구를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라기보다는 B급 정서가 담긴 브랜드 스토리를 잘 전달하고 배민이 핵심 타깃으로 생각하는 20대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가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또한 다양한 마케팅 광고 활동을 통해서 어느 정도 긍정적인 브랜드 인식을 심어준 이후에는 좀 더 충성도 높은 팬덤을 만드는 시도를 한다. 2016년에 시작된 ‘배민을 짱 좋아하는 이들의 모임’이란 뜻의 ‘배짱이’는 지금의 배민을 있도록 만든 주요한 성장 원동력이 된 팬클럽이다. 배짱이 운영의 목적은 배민이란 브랜드를 좋아하고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함께 만들어갈 핵심 팬층을 확보하는 데 있다. 배짱이가 되려면 ‘배달의민족’을 얼마만큼 ‘좋아하는지’, 그리고 ‘잘 알고 있는지’ 등의 문제를 푸는 ‘배짱이 입학시험’이라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경쟁을 통해서 배짱이로 임명된 사람들은 ‘입학식’ 형태의 팬클럽 창단식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보통의 기업들은 팬클럽을 제품 판매를 위해 관리해야 하는 핵심 소비자로 보지만 배민은 ‘배짱이’를 함께 자주 놀아야 할 대상으로 선정하고 이들과 가능한 즐겁게 놀 수 있는 기회들을 자주 만들었다.

    매년 열리는 ‘배짱이 환영회’ 외에도 연말엔 ‘배짱이의 밤’이라는 파티를 열고, 봄이면 함께 소풍을 가기도 했다. 배짱이로서 배민의 팬클럽에 들어온 고객들은 자연스럽게 배민의 진성 팬 집단으로 변화해 갔다. 이들은 스스로 배민을 위해 다채로운 활동을 열심히 하게 됐고 배민이 진행하는 핵심 캠페인인 ‘배민 신춘문예’와 같은 다양한 온라인 캠페인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거나 배민문방구의 아이템을 만드는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기도 했다.

    3. 플랫폼의 다른 사이드에 서 있는 외식사업자들을 파트너로 만들다.

    배민은 소비자 차원에서만 브랜드 경험을 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비즈니스에 있어서 핵심적인 코어 역할을 하는 외식업주들에게도 좋은 브랜드 경험을 주려고 노력했다. 배민아카데미는 외식업주들의 운영 및 매출 증대를 위해 2014년부터 실시한 자영업자 교육 프로그램이다. 한 달에 1∼2번, 사업을 하는 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마케팅, 재무 관리, 외식업 트렌드 등과 관련된 강연을 무료로 제공했다. 2019년에 발표한 배민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배민아카데미에 2회 이상 참가한 자영업자들은 평균적으로 월 매출이 300% 이상 오르는 결과를 냈다. 그냥 형식상으로 만든 프로그램이 아니라 소상공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실전 위주로 운영했다는 의미다. 배민아카데미에 참여한 수강생의 숫자만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누적 기준 1만 명이 훨씬 넘었다.



    교육 프로그램은 끊임없이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됐다. 2020년에는 소상공인들의 노무, 세무 고민을 들어주는 컨설팅 프로그램인 ‘장사 고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같은 무료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배민아카데미를 통해 신청을 받고 신청자들의 사연을 기반으로 해서 대상자를 선정한다. 6주년을 바라보는 배민아카데미는 배민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외식사업자들이 생업 현장에서 느끼는 실질적인 고민들을 함께 해결하는 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음식 공급자인 소상공인들은 배민을 자신들의 음식을 배달하고 커미션을 가져가는 단순 중간 플랫폼 업자로만 생각하지 않고 공생하는 파트너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배민이 꿈꾸는 푸드테크 그룹으로의 성장을 위해서는 배달 서비스라는 생태계에서 배민과 함께 성장하기를 원하는 우군들을 얼마나 만들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기술은 큰 차이가 없고 수많은 경쟁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푸드 시장에 도전을 내밀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진정한 자산은 배민이라는 브랜드를 좋아하는 팬덤층 소비자들과 배민을 파트너로 생각하는 배민아카데미 출신의 수만 명 외식사업자들임에 틀림없다.



    배민이 선택한 길, 그리고 선택할 길

    우아한형제들이 ‘배달의민족’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을 때 배민의 초기 목표는 배달 업계 1등이었을 것이다. 이후 시간이 흘러 비즈니스의 정체성을 ‘푸드테크’로 정의하면서 스스로 비즈니스의 속성이 단순히 배달 중계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우아한형제들의 성장 비전과 배민의 성장 비전이 같을 수는 없다. 소비자 시선에서 두 가지 비전을 엄밀히 구분하기는 어렵고 배민이 아직은 우아한형제들 비즈니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둘이 겹쳐 보이지만 기업과 브랜드가 지향하는 비전은 다르다. 푸드테크라는 이름으로 정체성을 정의한 우아한형제들의 비즈니스 본질은 아직 배민에서 주로 발산되고 있지만 기업의 성장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변주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1.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 제공하자

    통계청의 ‘2019년 연간 온라인 쇼핑 동향’에 의하면 2019년 배달 음식 주문 등 음식 서비스 거래액은 9조7365억 원으로 전년보다 84.6% 성장했다. 배달 앱 이용자는 1100만 명(2019년 12월 igaworks의 앱 통계 기준)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배달 음식 시장 규모는 더욱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배달 음식 서비스 영역으로만 비즈니스 성장을 한정하기에는 시장 규모가 작다. 2019년 식품외식산업 주요 통계에 따르면 2017년 식품산업 규모는 218조 원이다. 그중 음식료품 제조가 89조7000억 원, 음식점업이 128조3000억 원인데 음식점업은 2007년부터 평균 8% 이상의 성장을 보이고 있다. 전체 배달 음식 시장이 20조 원 안팎의 규모로 추정되는 가운데 배민이 가야 할 길은 배달이 아님을 보여주는 숫자들이다. 배민의 성장 과정에서 기업의 비전을 고민한 흔적이 ‘푸드테크’로 정의된 것이다.



    국내 식품외식산업의 성장은 예견된 일이긴 하다. 1인당 국민소득은 2017년 이미 3만 달러를 넘어섰다. 입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산업이 중심이 돼간다는 의미다. 거기에 더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2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62.5%를 차지한다. 과거의 식품산업의 패러다임이 통째로 바뀔 것이라는 의미다. 또한 한국의 식품과 음식 관련 산업은 다른 분야에 비해 발전이 더디다. 농수산물의 생산은 아직 소규모 자영농 위주이고 생산 관리도 여전히 주먹구구식이라 해마다 농수산물 가격의 폭등과 폭락이 반복되고 있다. 앞으로 식품 관련 산업의 질적 성장과 기술적 지원이 필요함을 나타낸다.

    배민이 말하는 푸드테크는 배달 서비스를 고도화하거나 로봇을 활용한 배달 등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우아한형제들이 2019년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와 합병을 발표했을 때 합병 금액은 국내 유가증권시장의 시가총액 순위 50위 안에 드는 규모였다. 이미 배달이라는 카테고리에서 계속 성장을 찾을 수 있는 규모는 넘어섰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배민의 슬로건을 보면 우아한형제들이 생각하는 미래 비즈니스의 청사진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라는 문구에는 그들이 지향하는 푸드테크의 의미가 부여돼 있다.


    ① 좋은 음식

    좋은 음식을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좋다는 말부터 정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좁게는 재료의 퀄러티부터 조리 과정의 안전함과 음식의 맛까지 정도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넓은 의미의 좋은 음식이란 생산자에서부터 소비자까지, 그리고 재료가 음식이 되는 모든 과정이 적절하고 안전하고 누구에게나 부가가치가 잘 전달된다는 의미로 확장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배민이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원하는 곳에 가져다준다는 의미에서 벗어날 것이다. 서비스의 정체성이 비즈니스 정체성으로 확대되는 순간 앞으로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② 먹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곳 또한 마찬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한강변에서나 해운대해수욕장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배달받아 먹을 수 있다는 뜻만은 아니다. 2019년 배민키친을 오픈했고 QR 코드로 주문하고 로봇이 서빙하는 메리고키친을 선보였다. UCLA 산하연구소 로멜라와 함께 요리 로봇 개발에도 착수했다. 앞서 언급한 배달 로봇도 마찬가지다. 먹고 싶은 곳의 의미는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객이 먹는 것과 관련된 구매 여정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배민만의 독특한 고객 경험을 주겠다는 의지를 설계한 슬로건이다.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이지만 디지털 전단지로 불리던 시절의 배민의 역할과 이제는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2. 음식과 어울리는 플레이팅을 위한 콘텐츠 비즈니스


    1인 가구가 음식을 해 먹거나 배달시켜 먹을 때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 음식을 음미하기도 바쁘지만 눈과 귀는 다른 곳에 쉽게 열린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기업이 좋은 콘텐츠 만들기에 도전하는 일이 전혀 관련없는 일은 아닐 수 있다. 그간 배민이 마케팅 프로모션으로 선보였던 콘텐츠들(치믈리에, 떡뽁이마스터즈, 배민 신춘문예, 배민문방구 등)이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재밌는 웹툰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서비스 ‘만화경’은 그 시작점에 서 있는 콘텐츠들이 아닐까 싶다. 또한 먹는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 수 있는 영상놀이 앱인 ‘띠잉(Thiiing)’도 있다. AR와 커스튬을 중심으로 10초 이하 영상을 만들어 즐길 수 있는 앱이다. 아직은 이런 몇 가지 콘텐츠 비즈니스에 대한 시도들을 보고 우아한형제들이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길이라 정의하기는 어렵다. 콘텐츠 시장은 배민과는 결도 다르고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음식 자체가 훌륭한 콘텐츠이기에 앞으로 우아한형제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는 데 좋은 재료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먹고, 입고, 사는 문제는 사람들이 생존 욕구에서부터 자기 표현이나 의미를 찾는 욕구까지 다 커버할 것은 당연하고 자명하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콘텐츠 비즈니스를 고민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기업의 일이다.


    향후 과제

    우아한형제들의 임직원 규모는 1500여 명에 이른다. 웬만한 대기업 계열사 직원 수인데 과거 몇십 명, 몇백 명 규모의 조직에서 빠르고 신선하게 일하던 방식으로만 일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기업의 성장이 지속돼야 임직원의 성장도 지속될 수 있기에 소수의 의사결정과 남다른 실행력으로 소비자들에게 신선함을 제공하던 시절의 업무 처리 방식이 한계에 다다랐단 뜻이다. 또한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최근 광고 중심 수익의 비즈 모델에서 수수료 방식의 모델로 변경을 하려다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한 찬반이나 평가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사태의 본질은 배민의 정책 영향력이 사내나 해당 카테고리 비즈니스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여준 사건이다. 이는 과거의 의사결정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제 소비자들이 바라보는 이 기업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발랄한 B급 문화 마케팅 덕에 재미있는 기업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작은 스타트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커진 규모에 걸맞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되길 바랄 정도로 기대치가 높아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배민이 하면 다르다는 말로 배민의 비즈니스를 평가하는 시대는 끝났다. 다만 ‘배민도 다르지 않구나’라는 세간의 평가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간 배민이 배달 산업에서 보여줬던 신선함과 참신함을 비즈니스가 성장하는 국면에서 어떻게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소비자와 소통할 것인가를 지켜보는 시선들이 많아졌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진화의 단계에 접어들어야 한다. 비즈니스 철학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비즈니스 모델을 더욱 세심히 다듬고 새로운 비즈니스에 덤벼드는 문제도 스타트업처럼 가볍게 접근할 수만은 없다.


    조명광 비루트웍스 대표 mike@beroute.com
    조명광 대표는 삼성카드 프리미엄마케팅팀/브랜드팀, 현대캐피탈 고객전략팀, 신세계백화점 CRM팀 등을 거쳤다. 현재 20년 동안 마케팅 현업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마케팅/브랜딩컨설팅, 강의 및 저술을 하고 있다. 현재 크리에이티브 디지털마케팅 그룹인 비루트웍스(http://beroute.com/) CEO이자 마켓 솔루션 컴퍼니 씨엘앤코(http://clnco.kr/)의 대표 컨설턴트로, 한양대 사이버 대학원 마케팅 MBA 겸임 교수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마케팅 무작정 따라 하기』 『호모마케터스』 『21일마케팅』 등이 있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seungyun@konkuk.ac.kr
    이승윤 교수는 디지털 문화심리학자이다. 영국 웨일스대에서 소비자심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맥길대에서 경영학 마케팅 분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이자 비영리 연구•학술 단체인 디지털마케팅연구소(www.digitalmarketinglab.co.kr)의 디렉터로서 디지털•빅데이터 분야의 전문가들과 주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다양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빙그레, LG전자, 대교, SK텔레콤 등 다양한 회사를 위한 디지털 마케팅 관련 컨설팅을 진행해오고 있다. 저서로는 『공간은 경험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영향력』 『디지털 시대와 노는 법』 『입소문을 만드는 SNS 콘텐츠의 법칙, 바이럴』 『구글처럼 생각하라-디지털 시대 소비자 코드를 읽는 기술』 『디지털 소셜 미디어 마케팅』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00호 Revisiting Case Studies 2020년 7월 Issue 1 목차보기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주의할 점

     - 네트워크 효과

     - 클러스터링

     - 사용자 이탈

     - 멀티호밍(multi homing)

     - 플렛폼간 브릿징을 통한 시너지효과


    플랫폼 비즈니스의 최장점

     - 수요자 공급자 양측의 데이터 수집을 통한 최적의 서비스 상품 개발



    SR5. 플랫폼 비즈니스 관점에서 본 ‘카카오택시’

    빅데이터 축적으로 고객 이탈 방지
    대리운전, 주차 등 모빌리티 전반 확대

    O2O 비즈니스 모델의 진화

    2015년 3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카카오택시는 카카오의 첫 O2O(Online to Offline)이자 국내 최초의 O2O 비즈니스 성공 모델로 평가받았다. 카카오택시의 운영진은 택시회사, 개인택시조합, 콜택시조합을 찾아가 요구사항을 청취하면서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이해하고 오프라인 기업의 성공 공식을 따랐다. 동시에 온라인 기업의 장점을 살려 택시기사들과 사용자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편리한 사용자 경험(UX)을 극대화한 앱을 내놓았다. 또한 서울시, 중앙정부 등 규제당국과 협의하면서 혁신적 서비스에서 위법적 요소를 빼는 ‘빼기의 전략’을 활용했다. 결과적으로 카카오택시는 국민 택시 앱으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카카오택시 앱은 카카오T로 바뀌면서 택시 호출 외에도 대리운전, 주차, 내비게이션, 바이크 등 다양한 모빌리티를 통합해 서비스 중이다. 카카오T 앱은 2020년 현재, 사용자 2500만 명을 자랑하는 명실상부한 국민 앱으로 등극했다.

    주변 택시를 호출하는 카카오T 택시 서비스는 기존대로 택시기사에게 결제할 수도 있지만 사전에 등록한 카드나 카카오페이 등으로 자동 결제를 할 수 있다. 또 수수료 1000원을 더 내면 배차 성공률이 높은 기사에게 연결해주는 ‘스마트 호출’을 쓸 수 있다.




    # Past Lessons

    ‘국민 택시 앱’ 카카오택시의 성공 요인

    1. 오프라인 비즈니스에 대한 명확한 이해
    카카오택시는 온라인 기업답지 않게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제대로 이해함. 팀원들이 총 수천 회 이상 택시를 타면서 오프라인 니즈를 세세하게 파악

    2. 뛰어난 UX 구축과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응
    온라인 기업의 장점을 살려 뛰어난 UX를 구축했고 유연성과 스피드로 어려움을 돌파

    3. 성공적인 ‘비시장 전략’
    선제적이고 완벽한 ‘비시장 전략’으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택시 산업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를 제공

    # Why Revisit?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 모빌리티 시장은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2013년 우버가 국내에 진출하면서 일반 차량과 승객을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서비스를 운영했지만 서울시, 국토교통부, 택시업계 등이 택시가 아닌 자가용으로 승객을 태우고 돈을 받는 것은 불법이라며 서비스 중단을 요구했고 결국 2년 만에 우버는 서비스를 중단했다. 올해 3월 여객운수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렌터카 기반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베이직’도 멈춰섰다. 그런 와중에 카카오택시는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택시 호출 시장에서 자리를 잡더니 주요 택시 업체들을 인수하면서 서비스 규모를 확대 중이다. ‘2015년 Business Cases’ 중 하나로 선정됐던 카카오택시를 다시 들여다보며 현재의 카카오와 택시 산업을 분석했다.

    # New Insights

    카카오T의 성공 요인

    1. 모빌리티 통합 서비스로 비즈니스 확장
    카카오택시 앱을 카카오T로 바꾸고 택시 호출 외에 대리운전, 주차, 내비게이션, 바이크 등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

    2. 투자와 유연한 대처로 위기 돌파
    렌터카 기반 택시, 카풀 중개 앱 서비스가 택시 업계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이, 카카오T는 카풀 서비스를 포기하고 법인 택시 회사를 인수해 택시 면허 확보

    3. 모빌리티 데이터 축적을 통한 경쟁력 강화
    지난해 말 기준 카카오T는 하루 최대 260만 콜을 기록, 월 이용자가 1000만 명을 돌파. 카카오내비 사용자 수는 1600만 명에 달해 매일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가 쌓이고 있음


    고급 택시를 호출하는 카카오T 블랙이란 프리미엄 서비스도 제공 중이다. 카카오의 고급형 택시 기사 자격 과정을 수료한 기사들만 고급 택시를 운행할 수 있으며 요금은 더 비싸지만 고급 승용차에 생수와 휴대폰 충전기 등 추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제 카카오택시는 플랫폼 중개 사업을 통해 콜서비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가맹사업형 플랫폼 택시로 사업을 확장했다. 가맹사업형 플랫폼 택시란 기존 법인 택시나 개인택시가 플랫폼과 결합해 가맹사업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림 2) 타다로 대표되는 렌터카 기반 택시와 풀러스와 같은 카풀 중개 앱 서비스가 택시업계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이, 카카오택시는 카풀 서비스를 포기하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서울 지역 9개 법인 택시 회사를 인수해 900여 개의 택시 면허를 확보했다. 택시 면허를 개당 5000만 원으로 계산하면 카카오택시는 450억 원 이상의 대규모 자금을 투자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카카오는 법인 택시 회사들을 인수해 택시 호출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승차 거부, 소비자와 불필요한 대화를 하지 않고 차량 내부를 청결하게 하는 등 서비스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플랫폼 가맹사업은 ‘웨이고 블루’라는 이름으로 서비스하고 있고, 택시 기사는 사납금 없이 전액 관리제(완전 월급제와 사납금제의 중간 형태)로 운영 중이다.

    카카오T 벤티라는 대형 승합차 택시 호출 서비스도 제공 중이다. 이 서비스는 카카오 캐릭터를 활용해 라이언 택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렌터카를 활용해 택시 면허 없이 운행한 타다와 달리 카카오T 벤티의 경우 차량 구매나 운행은 제휴 법인 택시 회사가 맡아 운영한다. 카카오T 벤티 기사는 승객을 골라 태울 수 없게 목적지를 미리 알려주지 않고 배차하는 강제 배차 시스템을 택하고 있으며, 배차 상황에 따라 요금이 탄력적으로 적용된다. 또한 카카오T 벤티 택시 기사는 월급제로 운영된다.


    최근에는 카카오 모빌리티의 자체 포인트 결제•지급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포인트 제도가 도입되면 카카오T 이용자들은 카카오택시 외에도 바이크, 대리운전, 내비게이션, 주차 서비스를 포인트로 결제할 수 있다. 사용자들은 포인트를 적립하고 결제, 충전, 선물하기, 서비스 내 교차 사용 등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카카오T의 해외 진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지금도 카카오T는 일본과 베트남에서 해외 로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카카오T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해외에서 이동 수단을 호출하는 것인데 일본에서는 ‘재팬택시’와, 베트남에서는 ‘그랩’과 연동돼 서비스가 제공된다. 카카오T는 ‘택시 업계의 디지털화’를 목표로 동남아를 중심으로 글로벌 확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모빌리티 데이터의 축적

    작년 연말 카카오택시는 하루 최대 260만 콜을 기록했으며 월 이용자가 1000만 명을 넘었다. 전국 27만 대 택시 중 25만 대가 카카오택시 호출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 인프라는 김기사를 인수해 서비스하기 시작한 카카오내비로, 사용자 수는 1600만 명에 달한다. 매일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가 쌓이고 있다.

    축적된 정보는 택시 서비스 품질 향상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도입의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카카오택시 콜은 보통 하루에 3번 피크 타임을 보인다. 첫째, 출근 시간대인 오전 7시∼10시, 특히 오전 8시에 하루 중 가장 많은 콜이 이뤄진다. 둘째, 퇴근 시간대인 오후 5시∼7시, 셋째, 심야 시간대인 오후 9시∼다음 날 오전 2시다.



    심야시간 택시에 대한 초과 수요는 지역에 따라 시간대별 분포가 다르다. 업무 시설과 유흥 시설이 같이 있는 강남역 인근 역삼1동은 자정 인근에 초과 수요가 최고치를 나타낸다. 한편 서울의 핫플레이스 이태원1동은 최대치 자체가 새벽 2시 이후다.

    심야시간대 택시 수요 공급이 부족한 일이 많은데 이는 법인 택시는 2∼3교대, 개인택시는 운행시간을 각자 정해 실제로 심야에 운행하는 택시 숫자가 적기 때문이다. 카카오택시는 개별 택시 수준의 데이터를 AI 머신러닝 기법을 활용해 택시 기사들이 선호하는 지역으로 승차 고객을 매칭할 수 있어 수요 공급 불균형 문제를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다. 택시 기사들은 빈 차 상황, 차고지, 주거지, 운행 패턴, 교통 상황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콜을 수락하는 선호가 있기 마련이다. 택시 기사의 콜 수락 지역에 대한 선호를 분석해 콜 수락 가능성이 높은 기사들에게 콜을 보내 매칭 비율을 높일 수 있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택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대리운전, 주차, 바이크 등에 대한 운영 정보를 축적, 분석함으로써 모빌리티 수요에 맞는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지리라 예상된다.

    이는 넷플릭스와 같은 콘텐츠 플랫폼의 전략과 유사한 접근 방법으로 이해된다. 넷플릭스는 온라인 비디오 서비스를 통해 3000만 명 이상의 시청자 행동 데이터를 분석했다. 시청자들이 ‘몰아 보기’나 ‘다시 보기’를 하는 행동이라든지 어느 장면을 보고, 어느 장면을 뛰어넘는지 등 세부적인 데이터 분석했다. 이런 빅데이터 분석을 기초로 넷플릭스는 다른 방송국들이 투자에 난색을 보이던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 약 1000억 원의 대규모 투자를 결정, 시리즈를 통째로 제작했다. 당시 나스닥에서 퇴출 위기에 놓였던 넷플릭스는 이 드라마의 성공에 힘입어 3조 원 이상의 순익을 거뒀으며 현재는 세계 최대의 영화, 드라마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카카오모빌리티도 카카오택시로 서비스를 시작해 새로운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있다. 카카오T 블랙, 스마트 호출, 웨이고 블루, 카카오T for Business 등 소비자의 수요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택시 서비스를 확장했다. 그리고 카카오내비, 카카오T 대리, 카카오T 주차, 카카오T 바이크, 자체 포인트 등 모빌리티 전반의 확장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확장을 통해 서비스 사용자들은 카카오T 서비스에 록인(Lock-in, 잠금 효과)1 될 가능성이 크다. 택시 기사들 입장에서도 카카오T를 더 많이 사용할 경우 행동 데이터 분석에 따라 기사들 입맛에 맞는 서비스를 해주기 때문에 카카오T 서비스에 록인된다. 앞으로 더 많은 서비스 사용자, 더 많은 서비스 공급자 유입으로 모빌리티 플랫폼의 위치를 공고히 할 가능성이 크다.


    플랫폼 기업으로서의 성장 전략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실린 Zhu & Iansiti2 연구에 따르면 플랫폼 비즈니스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기업과는 다른 플랫폼 기업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1. 네트워크 효과

    플랫폼 기업의 이론적 기초는 양면시장(two-sided market) 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전통적 거래시장에서는 재료를 수급해 생산 과정을 통해 부가가치를 증대한 후 고객에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데 비해 양면 시장에서는 여러 공급자와 수요자의 관계를 중계해 양면으로 시장이 형성된다. 즉, 플랫폼은 두 참여자 집단 간의 거래를 중개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플랫폼에서는 참여하는 두 그룹의 참여자가 많아질수록 더 큰 가치를 얻게 되는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s)가 발생한다. 더 많은 참여자가 유입될수록 플랫폼의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초기 참여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하며 임계점(critical mass)에 도달하는 것이 사업 성패의 주요한 요소가 된다.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는 ‘네트워크 외부성(network externality)’이라고도 불리며 네트워크상의 특정 이용자가 얻는 가치가 그 네트워크에 연결돼 있는 다른 이용자 수에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즉, 특정 제품 또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그 제품 또는 서비스의 품질 또는 구매자의 선호 체계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경우를 말한다. 네트워크 효과를 유도하는데 일정 사용자 수, 즉 임계점을 넘어 시장에 안착한 제품 또는 서비스는 일정 기간 계속 성장하게 된다. [그림 5]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경쟁에서 임계점을 넘어서 성장한 네트워크는 더욱 성장하고 이에 비해 경쟁에서 뒤처진 네트워크는 사용자 수가 점점 줄어드는 승자 독점 현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제품 또는 서비스 제공자는 경쟁에서 승자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네트워크 효과를 통한 선순환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경쟁 제품 또는 서비스에 비해 앞서가고 있다 해도 치열한 격전지에 있다고 판단되면 승리를 위해 수익 창출보다는 이용자 확보에 노력해야 한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선택된 제품 및 서비스에서 사용하고 있던 콘텐츠를 다른 제품 및 서비스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전환비용(switching cost)을 발생하게 할 수 있으며 이때 이용자에게는 기존 제품 및 서비스에 묶이게 되는 록인 효과가 나타난다.

    플랫폼 참여자가 임계점을 넘어 무리 없이 성장하는 선순환 단계에 이르면 플랫폼 제공자는 수익 창출 모델을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플랫폼의 성장을 둔화시키거나 활력을 저해하지 않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카카오택시의 경우에는 기존 사업자들과 규제 당국과의 충돌을 최소화하면서 데이터 분석 기반의 프리미엄 서비스 모델을 내놓으면서 수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2. 클러스터링

    네트워크의 구조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규모를 유지하는 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네트워크가 로컬 클러스터로 파편화되며 고립된 로컬 클러스터가 많을수록 비즈니스는 취약해진다. 이런 현상은 O2O 비즈니스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전국구 서비스를 하는 배달 서비스와 지역 특화 배달 서비스 간에 경쟁이 생길 경우, 지역에서 배달하는 사람들은 다른 지역의 배달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지역별 강자가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반면 숙박 공유 서비스의 경우에는 사용자들은 본인이 사는 지역의 숙박 공유 호스트가 얼마나 되는지는 관심이 없다. 대신 앞으로 여행할 도시에 있는 숙박 공유 호스트에게 관심이 있다. 따라서 숙박 공유 네트워크는 하나의 거대 클러스터를 형성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배달 서비스보다 숙박 공유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더 어렵다. 카카오택시는 국내에서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냈지만 글로벌 시장 진출은 또 다른 과제가 될 것이다. 특히 카카오톡 기반이 초기 사용자들의 확보에 큰 기여를 했기 때문에 카카오톡 기반이 약한 나라에서 어떻게 서비스의 절대 규모를 확보할지가 이슈로 부상될 가능성이 크다.



    3. 사용자 이탈 위험

    사용자들이 플랫폼을 우회해 공급자들과 직접 연결하게 되면 사용자 이탈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가령, 배달 앱을 통해 음식이 배달됐을 때, 식당에서 고객에게 다른 전화번호나 직접 주문할 수 있는 앱을 알려주고 고객이 직접 주문하게 된다면 플랫폼 비즈니스에는 타격이 크다. 만약, 고객이 지속적으로 한 식당과 거래할 경우, 플랫폼을 회피할 유인이 얼마든지 있다. 식당 입장에서도 배달 일정이 충분할 정도로 고객 수가 확보된다면 플랫폼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플랫폼은 사용자 이탈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메커니즘을 도입한다. 약관을 통해 사용자들이 플랫폼 밖에서는 거래하지 못하게 한다든지,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연락처를 주지 못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전략이 항상 효과를 보는 건 아니다. 고객이 플랫폼을 사용하기 번거로워진다면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 더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카카오T는 택시 기사들이 서비스를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 인터페이스, 사용자 경험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승객과의 분쟁 해결, 활동 모니터링 등 승객 서비스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4. 멀티 호밍에 대한 취약성

    플랫폼 멀티 호밍을 막는 노력을 해야 한다. 멀티 호밍이란 사용자나 서비스 제공자가 여러 플랫폼이나 허브를 동시에 사용하는 현상이다. 신규 플랫폼을 사용하는 비용이 크지 않을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실제로 많은 운전자와 승객이 리프트(Lyft)와 우버(Uber)를 동시에 사용한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가격과 대기시간을 비교할 수 있고, 운전자는 유휴시간을 줄여 더 많은 손님을 태울 수 있다. 앱 개발자들의 경우에도 한 번 개발한 앱을 앱스토어와 플레이스토어에도 출시한다. 멀티 호밍이 발생할 경우 플랫폼이 핵심 비즈니스에서만 수익을 창출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버와 리프트는 승객과 운전자를 서로 확보하느라 경쟁하면서 이익이 자꾸 줄어들고 있다.

    기존 플랫폼은 시장의 한쪽 또는 양쪽을 막는 방식으로 멀티 호밍을 막으려 한다. 독점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우버, 리프트 모두 호출 취소를 지속적으로 하지 않은 고객들에게 보너스를 제공한다. 또 피크시간대에 호출을 계속 받은 운전자들에게도 보너스를 지급했다. 하지만 다른 신규 플랫폼을 사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 아주 낮기 때문에 차량 공유 업계에서 멀티 호밍을 막기는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카카오T의 경우, 다른 모빌리티 플랫폼과 동시 사용하는 사용자들 또는 서비스 제공자들의 멀티 호밍을 막기 위해 독점적 거래를 강화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다만 최근 연구3 에 따르면 멀티 호밍을 막기 위해 독점적인 거래를 강화할 경우 뜻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루폰과 리빙소셜은 소셜커머스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 중인데 유명 판매자들을 서로 독점적으로 확보하려 하다 보니 사용자들의 멀티 호밍 현상이 더 커졌다. 즉, 시장 한쪽의 멀티 호밍을 막으려 들다가는 다른 쪽의 멀티 호밍이 커질 수 있다. 카카오T가 모빌리티 서비스 제공자들과 사용자들에 대한 독점력 강화를 추진하려면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5. 멀티 네트워크에 대한 브리징

    플랫폼 기업의 성장 전략으로 다수 네트워크를 서로 연결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모든 플랫폼 비즈니스 성공은 고객 확보와 제품 또는 서비스 거래에 대해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다. 고객 정보와 거래 정보야말로 플랫폼 비즈니스에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이 자산을 잘 활용한다면 플랫폼 기업이 다른 비즈니스로 다각화하고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다. 이런 다각화에 성공한 예로 아마존이나 알리바바를 들 수 있는데, 이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알리바바의 경우 전자상거래 사이트 타오바오(Taobao)와 티몰(Tmall)을 결제 서비스 알리페이(Alipay)로 연결해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 원하는 서비스를 받게 됐고 신뢰도 강화됐다. 알리바바는 또 금융 서비스 자회사인 앤트파이낸셜(Ant Financial)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를 개시할 때 타오바오와 티몰의 거래 및 사용자 데이터를 활용했으며, 구매자와 판매자에 대한 신용등급 시스템도 갖추게 됐다. 또한 이 정보를 활용해 앤트파이낸셜은 저금리의 단기 대출을 실행했다. 이를 통해 구매자는 이 대출금으로 알리바바에서 상품을 더 많이 구매하고, 판매자는 대출을 통해 재고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카카오T 역시 카카오톡,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와 같은 관련 네트워크와의 시너지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하면서 신사업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해야 할 것이다.

    또한 플랫폼 사업 측면에서는 고객 기반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엄밀한 분석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돼 해당 내용의 사업을 인수하며 수직적 통합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그 때문에 카카오T는 모빌리티 관련 업체들을 인수하며 성장하는 전략적 기회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같은 고객층을 대상으로 하는 회사들과 제휴를 강화해야 하겠지만 카카오T가 고객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는 독자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런 카카오T의 성장 중에는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가 커질 위험도 존재한다. 모빌리티 플랫폼이 대규모 자본을 동원해 택시회사를 인수한다든지, 대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는 방향만으로 일이 추진된다면 우버, 디디추싱 등 해외 대기업들이 진입해 자본 규모의 경쟁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모빌리티 영역에서 혁신적 스타트업의 진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어떻게 지속적인 혁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대학 교수 smjeon@gachon.ac.kr
    필자는 서울대에서 경제학 학사를 마치고 동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경영정보 박사 학위를 받았다. IBM과 삼성에서 다수의 IT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서울 및 미국 산호세에서 창업자로 일한 경력도 갖고 있다. 벤처회사들의 실증 데이터 분석을 통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P2P lending, 소셜커머스 등 신규 사업 모델을 분석 중이다. 역서에 『페이스북 시대』 『FANG시대의 경영정보학』, 저서로는 『경영학으로의 초대』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00호 Revisiting Case Studies 2020년 7월 Issue 1 목차보기


    SR5. 위기를 기회로 만든 중국의 AI 헬스케어

    팬데믹 대항 플랫폼 만들어 의료 자문
    원격진료, 의료 컨설팅 등 전방위 활약

    Article at a Glance

    중국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발 이후 AI가 폐렴 진행 수준 평가, 대규모 인파의 발열 측정, 온라인 진찰, 의심 환자 동선 추적 등에 광범위하게 쓰였다. 이 같은 중국 AI 헬스케어의 눈부신 활약은 정부 차원의 정책적 뒷받침과 기업 차원의 기술 혁신 및 경영진의 리더십이 빚은 합작품이다. 특히 혁신 기업들의 서비스들은 팬데믹 상황에서 저력을 발휘했다. 예를 들어, 모바일 의료 서비스 클라우드 플랫폼 ‘웨이이’는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전염병 대항 플랫폼을 구축해 중국과 이탈리아 양국 의사들이 의료 자문을 구하는 소통 창구가 됐다. 또 e커머스 플랫폼 징동의 자회사 ‘징동건강’은 무상 원격진료, 의료 컨설팅부터 의약품, 건강기능식품 판매 등에 이르기까지 비대면 논스톱 서비스를 선보이며 종합 의료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20년 3월11일 팬데믹(Pandemic, 세계 대유행)을 선언한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촉발된 위기는 이번 고비를 넘는다 해도 완전히 종식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최근 10여 년간 사스부터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까지 이어진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이 앞으로도 짧은 주기로 반복될 것이라는 게 의료계의 정설이다. 이런 감염병은 암, 뇌출혈처럼 개개인의 문제로 국한되는 종류의 질병과 달리 인간의 대면 활동을 극도로 위축시키고 세계 경제를 총체적 위기로 몰아갈 위력을 가진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의학적•사회적 대비를 위한 시스템 대전환이 인류의 생존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AI를 활용한 의료 기술과 비대면 진료 기반의 헬스케어 산업은 인류의 건강을 지킨다는 당위의 관점에서나,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나 꼼꼼히 준비하고 투자해야 할 분야임에 틀림없다. 중국의 AI 기업 사례를 통해 위기를 기회 삼아 미래 산업을 선도할 아이디어를 찾아보자.

    위기를 기회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과 AI의 발전

    의료 자원이 부족하고 면대면 접촉을 가급적 삼가야 하는 감염병 상황에서는 원격 의료 시스템을 갖추는 게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다. 실제로 지금은 중국에서 자리 잡아 가던 ‘분급 진료’ 체계를 활용할 수 있는 적기다. 분급 진료란 중국 정부에서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추진하는 제도로, 환자 질병의 경중 및 치료 난이도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보다 위중한 병은 상급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여러 의료기관이 상호 협력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환자가 지역 보건소나 하급 병원에서 초진을 받으면 질병 등급에 따라 재배치되고, 위급 상황 시 상급 병원의 원격진료와 개입이 제도적으로 보장된다. 제대로 된 진료를 받기 위해 환자들이 장거리 이동을 할 필요가 없다. 이 체계가 정상 작동하려면 상급 병원과의 데이터 공유 및 소통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야 하며, 하급 병원에서 진단 및 치료가 어려운 응급 질환 처리에 대비한 원격진료 시스템 및 자동 영상 판독 기술이 갖춰져야 한다.

    1. AI 기업의 활약상

    이번 위기 상황에서 중국 AI 기업들의 활약상은 다양한 측면에서 돋보였다. 먼저, 신속한 진단을 위해 2020년 1월28일 상하이 공공위생임상센터는 중국의 AI 헬스케어 기업인 이투헬스케어(Yitu healthcare)가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스마트 평가 시스템’을 정식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들의 CT 스캔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규 환자의 CT 영상을 분석함으로써 폐렴의 진행 수준을 자동으로 측정한다. 보통 의사가 환자 한 명을 수동으로 평가하는 데 5∼6시간이 소요되는 것과 달리 이 AI 시스템을 이용하면 몇 분밖에 안 걸린다.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한 발열 측정에도 AI 기업들의 솔루션이 적용됐다. 2020년 2월2일부터 베이징 북쪽에 위치한 칭허기차역은 바이두AI의 다중 체온 쾌속 측정 솔루션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 솔루션은 하나의 통로를 동시에 통과하는 200명에 대한 체온 검사를 1분 안에 완료한다. 또 다른 중국 AI 기업인 메그비(Megvii)사의 체온 측정 시스템 역시 이미 베이징 하이디엔 정부 건물 및 하이디엔구 일부 지하철역에서 이용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마스크나 모자를 쓴 사람의 체온까지도 신속하게 측정하며, 오차 범위는 0.3℃ 미만이다. 최대 3m 떨어진 사람의 체온도 검사할 수 있고 발열 의심자에 대해 1초당 최대 15명까지 경찰에 신고 처리할 수도 있다. 시스템 하나만으로 16개 보행자 통로를 관리할 수 있어 기본적으로 지하철역 입구 하나는 거뜬히 담당한다. (그림 1)



    2. 클라우드 컴퓨팅과 플랫폼 산업의 발전

    클라우드와 플랫폼 산업도 일사불란한 위기 대응을 가능케 했다. 2020년 1월29일, 중국 최대 클라우드인 알리바바 클라우드(이하 알리클라우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는 기간 동안 전 세계 공공 과학기술 단체에 AI 컴퓨팅 크레디트 일정 용량을 무료로 풀겠다고 발표했다. 백신 개발 속도를 높이는 데 일조하겠다는 목적이었다. 2월3일에는 중국 대표 메신저 서비스인 위챗의 모듈 중 텐센트 클라우드 기반으로 운영되는 국가 정무 플랫폼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방역 전용 탭이 추가됐다. 이 플랫폼은 클라우드 컴퓨팅 능력과 표준화된 데이터 처리 과정을 거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실시간 동향, 방역, 자가 검진 및 의료 안내 서비스를 제공했다. 1 이와 동시에 핑안굿닥터, 하오다이푸온라인, 춘위닥터 등 플랫폼 기업과 우한협화병원, 우한통지병원 등 의료기관들까지 자발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온라인 진찰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2020년 1월 말 기준 다양한 등급 병원에서 온라인 진찰을 받은 환자 수는 450만 명에 달한다.

    또한 2020년 2월9일부터 중국 AI 기업인 딥와이즈(深睿医疗)는 원격진료 시스템을 개발해 일반 사용자들에게 전염병 관련 최신 뉴스를 전달해주고 자연어 처리 기능이 탑재된 질의응답용 챗봇도 제공하고 있다. 딥와이즈는 CT 영상을 자동 분석해 흉부 질환 및 뇌졸중 진단을 내리는 의료 보조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자체 플랫폼을 통해 병원 간, 그리고 의사와 환자 간 정보 교환과 원격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환자의 과거 병력 데이터 자동 수집, 진료 결과 보고서 자동 생성, 온라인 진료 등의 기능을 지원할 뿐 아니라 의사가 이미 퇴원한 환자의 건강 상태까지 수시로 확인한다. 병원 방문자들의 동선도 지속적으로 추적할 수 있게 해준다. 이 회사는 이런 시스템을 바탕으로 중국의 분급 진료 체계에서 사업 기회를 찾았다. 그리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발 이후 상급 병원의 원격진료를 도움으로써 환자들이 굳이 상급 병원에 가거나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할 필요를 줄여주고, 그만큼 환자의 생존 확률을 높여줬다. 현재 딥와이즈와 협력 관계에 있는 400여 개의 병원에서 해당 시스템을 설치해 활용하고 있다. (그림 2)


    다른 회사인 슈쿠테크놀로지에서는 전염병 확산 초기에 정예 전문가들로 조직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AI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AI 기술을 이용해 환자 진찰, 질병 경과 추적, 과학 연구 등 다방면에서 의사들의 부담을 덜어준다. 또 희소한 의료 자원이 응급환자 치료에 집중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안배하며, 열이 나는 환자들을 분급 진료함으로써 교차 감염의 가능성을 최소화한다. 이 시스템은 현재 우한시 중심병원에 도입돼 전염병 사태에 대처하는 데 활용되는 중이다.2

    직접적인 의료 분야 외에도 플랫폼을 통해 일반 시민들이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있다. 전염병 위험을 피하기 위해 각종 교육기관이 개학을 연기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음성 녹음방송 공유 플랫폼인 히말라야는 ‘수업이 멈추더라도 배움은 멈추지 않는다’는 슬로건하에 공식 교과과정 내용을 녹음방송으로 제공해 학생들이 자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학생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학교 교육을 임시로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대항한 조치였다. 그뿐만 아니라 ‘우한 폐렴 전염병 최신 정보’라는 특별 코너를 마련해 청중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가장 최근 소식은 물론, 관련 전문가들(의사, 간호사, 생물학자 등)의 강연도 들어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림 3)



    2월17일 칭화대와 리얼AI가 협력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화제 분석 플랫폼 역시 칭화대 컴퓨터공학부에서 개발한 최신 자연어처리기술 WarpNLP(Natural Language Processing)를 활용해 대중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키워드를 추출하고, 실시간의 정확한 정보가 전파되는 데 일조하고 있다.3 또 세계에서 가장 많은 거래량을 자랑하는 중국의 기차 예약 플랫폼인 12306의 경우 전염병 확산 이후 실명제를 실시해 열차 탑승자 중 환자가 발견되면 해당 확진자와 주변 좌석에 앉았던 밀접 접촉자 명단을 공개하고, 관련 부문에 연락을 취해 방역을 하고 있다.

    인간을 보조하는 기계의 힘:
    중국 AI 헬스케어 기업

    익히 알려졌듯 AI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은 인공신경망 모델을 학습할 수 있는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다. 그러나 개인 정보, 특히 의료 분야와 같이 사생활과 직결되는 데이터는 대단히 민감한 사안으로 취급돼 수집 및 가공이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다른 국가에 비해 정부의 힘이 세고 상대적으로 데이터를 수월하게 수집할 수 있는 중국은 AI 기술을 육성하기에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칭화대와 중국과학원 같은 교육/연구기관은 물론 바이두, 텐센트, 메그비 등 사기업에서도 AI 의료기술에 활발히 투자하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 사회의 고령인구 증가에 따른 수요 증가가 예상되자 인간 의사를 대체하거나 병원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는 AI 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때마침 5G 기술이 개발되면서 온라인 통신 장벽이 낮아지고, 정부 정책 방향까지 맞아떨어진 덕에 2018년도 중국 AI 의료 시장 규모는 약 3조6000억 원(210억 위안)까지 커졌고, IDC 통계에 따르면 2025년까지 15조8000억 원 규모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AI가 의료업계에서 활용되는 경우, 대개 진료 과정에서 환자의 증상, 과거 병력, CT 스캔 영상 등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료 보조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이때 기업의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는 얼마나 많은 의료기관과 협력 체계를 구축해 데이터를 확보하는지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는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양이 기계 학습 결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사업의 확장성도 중요하다. 일정 규모를 이룬 기업이라면 직접적인 의료 진단 외에도 보험 처리, 의약품 판매, 병원/의사 추천 등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할 수 있다.

    1. 징동건강(京东健康)

    먼저, 의료 보조 분야에서 사업 확장성이 큰 곳은 2019년 5월 설립된 징동건강이다. 이 회사는 코로나19로 인해 외출을 자제해야 하고 면대면 진료가 부담스러운 환경에서 종합 의료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강화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기존 사업 그대로 비대면 의약품 판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무상 원격진료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중국 베이하이시 등지에서 공식 코로나 진료 업체로 채택된 것이다. 나아가 3월23일, 해외 동포들을 위한 무상 진료까지 선보이며 각국 대사관을 통해 전 세계에 신규 서비스 론칭을 공지했다.

    이처럼 징동건강은 이미 하고 있던 온라인 의료 서비스 외에도 의료 컨설팅, 건강식품 판매, 오프라인 커뮤니티 행사 주최 등 의료 플랫폼으로서 총체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기업가치도 2019년 말 기준 8조4000억 원에 달한다. (그림 4) 종합 온라인 쇼핑몰인 모회사 징동의 자원을 적극 활용해 의료와 실질적으로 무관한 전자기기, 의류, 화장품 등의 상품까지 한꺼번에 구매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게 차별점이다. 원격진료부터 의약품 구매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의 편의를 극대화했다. 2020년 1월26일 기준 일평균 진료 횟수가 약 10만 회에 달하며 피크타임 1시간 동안 1만 명 가까이가 진료를 요청하고 있다.4

    2. 웨이이(微医)

    모바일 의료 서비스 클라우드 플랫폼인 웨이이의 경우 코로나19 확산 이후 전 세계 전염병 대항 플랫폼을 구축했다. 그리고 실제 이 플랫폼은 이탈리아에서 바이러스가 퍼진 뒤 중국과 이탈리아 양국 의사들 간 소통 체계로 활발히 이용됐다. 2020년 3월16일 당시 이탈리아 내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규모가 가장 컸던 사르데냐섬의 가정의학과 전문의 루카 발카시아(Luca Varcasia)가 해당 플랫폼을 통해 중국 의료진에게 의료 자문을 구해온 것이 교류의 시발점이었다. 웨이이 소속의 쥐메이의사단체(菊梅医生集团)는 그로부터 이틀 뒤, 우한협화병원 감염내과 전문의 자오레이(赵雷)를 초빙해 루카와 여러 동료 의사를 대상으로 장장 7시간에 걸쳐 원격 강의와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5 이처럼 웨이이는 서양의학 AI 의료 상품과 한의학 AI 의료 상품을 모두 선보이면서 여러 의료기관의 니즈에 부응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아울러 이 플랫폼 역시 징동건강과 마찬가지로 원격진료, 24시간 온라인 의료 컨설팅, 병원 연결, 만성질환 관리, 건강관리 등 종합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사이트에 등록된 전문의에게 맞춤 진료 요청을 할 수 있는 식이다. (그림 5) 아울러 의료 서비스뿐만 아니라 금융, 보험 서비스까지 함께 다루면서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3. 알리딩딩(阿里钉钉)

    알리바바의 인트라넷 서비스 회사인 알리딩딩은 원래 의료 서비스보다 모바일 비즈니스 AI 플랫폼으로서의 성격이 강하지만 최근에는 의료 분야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일찍이 알리 클라우드와의 협력을 통해 특정 산업군별로 폐쇄적인 상품 및 기술 생태계를 조성하려 한 전략이 먹힌 셈이다. 원래 알리딩딩은 통신망을 디지털화해 관리하는 조직관리 서비스, 영상 통화 및 무료 비즈니스 통화, 커뮤니티 개설, 기업 e메일(C-mail), 기업 클라우드(C-space) 등 비즈니스에 범용적으로 활용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그림 6)


    그런데 2018년 8월 알리딩딩의 CEO 천항(陈航)이 돌연 의료 분야를 기업의 핵심 사업 4가지 중 하나로 삼겠다고 발표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이후 회사는 데이터 디지털화 서비스, 병원 내 업무 자동화 및 임상 프로세스 연동 서비스 등 의료진용으로 특화된 서비스를 플랫폼상에 연달아 출시했다. 현재 푸단대 부속 산부인과, 난징의대 부속 제2병원, 저장대 의대 부속 제2 병원 등 전국 2급 이상 병원의 약 26%가 알리딩딩을 이용하고 있으며, 2018년 고객 규모는 병원 3000개, 의사 30만 명을 돌파했다. 6 이 플랫폼은 단지 기업 및 병원 내부 소통뿐 아니라 기업 및 병원 간 소통도 가능도 가능케 함으로써 고객들의 의존도를 높이고 생태계를 구축하는 전략을 취했다.

    4. 링이즈후이(灵医智惠)

    한편, 의료 영상 판독 분야에서는 바이두가 2018년 설립한 AI 의료 브랜드 링이즈후이가AI 개발에 특화된 모기업인 바이두 브레인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유리한 출발선에 서 있다. 의료 영상 판독의 정확도는 데이터베이스 규모는 물론 AI 기술 자체의 정밀도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현재 이 회사는 임상 보조 결정(CDSS), 안구 영상 분석 시스템, 의료 빅데이터 전체 솔루션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3대 병원 의사 출신 전문가 수십 명을 인재로 보유하고, 인민위생출판사와 중산대 중산안과센터 등과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으며, 2019년 12월 기준 18개의 성과 도시에 걸쳐 1000개 이상 기업에 CDSS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5. 딥인포매틱스(杭州迪英加科技)

    또 다른 의료 영상 판독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딥인포매틱스는 세포 종양 등을 판별해내는 데 특화돼 있으며 5초에 최대 1억 장의 이미지를 처리한다. (그림 7) 이 소프트웨어의 세포 검진 정확도는 95%에 달하며, 앞의 종합 서비스 회사들처럼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진 않지만 특정 의료 분야에 있어서는 인간 의사보다 진료 정확도가 높은 질 좋은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2018년 7월에는 레전드캐피탈, 장먼벤처캐피털, IDG캐피털, 쥔허캐피털 등 4곳의 투자처로부터 시리즈A 투자금 37억4000만 원(300만 달러)을 유치하기도 했다.




    정부와 기업의 이인삼각 경주

    물론 중국의 AI 기술력이 미국과 세계 1, 2위를 다툴 정도의 수준까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강력하게 작용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5년간 ‘의료 빅데이터 응용 및 발전의 촉진 및 규제에 관한 의견’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계획’ 등을 발표했으며, 2019년 7월 중국 위생부 주도하에 AI 의료기기 혁신 협업 플랫폼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계획에 호응한 기업들이 없었다면 정책이 결코 실현될 수도 없었다. 기술을 직접 개발해 판매하는 기업, 성장 가능성이 있는 투자처를 발굴하는 벤처캐피털의 역할이 컸다는 얘기다.

    특히 중국의 AI 굴기를 이끈 동력으로 기업 경영진의 리더십을 빼놓을 수 없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2018년 9∼10월에 걸쳐 오스트리아, 중국, 독일, 프랑스, 일본, 스위스, 미국 등 7개국에서 각각 사업을 운영 중인 2700명 이상의 기업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 조사7 결과, 기업 내 AI 기술의 성공적 적용 여부는 세 가지 요소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 기업의 혁신 주기가 짧을수록, (2) 최고경영진이 AI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혁신을 주도하는 경향이 강할수록, (3) 다기능(cross-functional)팀을 조직해 여러 부서 간 협력을 이끌어내는 조직 구조가 갖춰졌을 때 기업의 AI 응용 속도가 더 활발하고 성공률 또한 더 높았다.


    먼저, 조사 결과 혁신 주기가 10∼14개월에 달하는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의 기업에 비해 중국 기업은 평균 7.3개월마다 혁신을 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장기간에 걸친 느리고 확실한 품질 개혁을 꾀함으로써 시장을 선도했던 독일, 일본 등의 장인정신이 린스타트업(lean startup) 방식에 따른 신속한 혁신, 발 빠른 기술 개선이 요구되는 오늘날의 AI 창업 생태계에서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다음으로, 85%에 달하는 중국 경영자들이 AI를 최우선 혁신 목표로 꼽은 반면, 독일과 프랑스 경영자들은 각각 53%와 52%에 그쳤다. 이 역시 AI를 다루는 중국 경영진의 적극성을 반영한다. 마지막으로, 조직 구조를 개편하는 데 있어서도 50%가량의 중국 기업들은 다기능팀을 새로이 조직해 AI 기술 혁신을 도모했다고 답했다. 이는 미국 기업의 28%, 독일 기업의 34%와 대비된다. 이는 중국이 AI 기술 접목의 성공 여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세 가지 요인 모두에 대해 높은 성과를 기록했음을 보여준다.


    한국 기업들에 주는 교훈

    사람의 건강 및 생명과 직결돼 있어 신기술 도입에 대해 가장 보수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의료 분야에서도 AI의 활용이 본격화하고 있다. 물론 국내에도 전도유망한 의료 AI 스타트업이 존재하지만 AI 분야에서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을 인정받는 국가 위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료 AI 개발 부문은 규모가 작다. 그마저도 의료 영상 분석에만 치중돼 있다. 중국처럼 음성 데이터를 수집해 문자로 전사하거나 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환자에게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응용 분야를 개척해 나갈 필요가 있다.

    중국의 의료 AI 산업이 발전하게 된 배경에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지가 있긴 했지만 실질적인 기술 혁신을 주도한 것은 어디까지나 기업들이었다. 딥와이즈 같은 의료기관 협력 플랫폼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한 분급 진료 시스템을 기반으로 더 빠르게 성장하긴 했지만 이때 정부의 지침은 산업 발전의 촉매일 뿐 필수 원료는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책적 차원에서 별도로 장려한 적이 없음에도 몇몇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지역 또는 전문 영역에 따른 자발적 의료 연합이 형성돼 있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다만 이런 국내의 중소 규모 병원 및 연구센터 간 의료연합의 경우 연합 차원에서 자체 개발한 의료 보조 플랫폼을 활용할 뿐 통일된 시스템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국내 기업, 기관들은 이런 중국 시장의 선례를 통해 어떻게 플랫폼을 통합해 연속성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어떤 비즈니스 모델들이 효과적인지 확인하고, 국내에서 적용 가능한 모델부터 기업들이 선택적으로 응용해야 한다.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사회적 재난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사회적 격리를 실천해야 하는 상황은 원격 기술 및 플랫폼 산업이 발전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환경을 조성했다. 특히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이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유행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비대면 업무 처리를 보조하는 각종 기술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 중국에서 신속하게 보급되고 있는 원격진료 플랫폼들과 자동 진단 기술, 자동 자원 배분 체계는 사태가 진정된 뒤에도 의료 분야 인프라의 일부로 정착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의료 이외에도 교육,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생활 범위 원격화에 대한 수요가 보다 폭넓은 비즈니스 기회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위기로부터 파생되는 새로운 시장 기회를 파악하고, 지금의 고난을 새로운 혁신을 위한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필자소개 박형서 레전드캐피탈 전(前) 연구원 plary116@snu.ac.kr
    박형서 연구원은 서울대에서 경영학과 사회학을 복수 전공하고 현재 서울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정보학(Managerial Information Systems)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2019년 말∼2020년 초 레전드캐피털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기간 진행한 리서치를 기반으로 글을 작성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00호 Revisiting Case Studies 2020년 7월 Issue 1 목차보기


    3D프린팅 : 환자의 심장 모형 제작

    VR : 환자의 환부, 장기등을 시각화

    5G : 원격 진료의 필수 인프라

    AI의료영상 판독 보조기술, 임상 판단 보조 시스템, 임상테스트

    의료용 로봇

    웨어러블 기기(IoT) 


    Bio Trend

    의료용 로봇, 웨어러블 기기…
    날개 단 헬스케어

    2019년 4월 중국 대륙에서는 5G,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원격 수술 성공 사례가 발표됐다. 광둥성 인민병원과 광둥 가오저우시 인민병원은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41세 여성 환자를 대상으로 공동 수술을 진행했다. 가오저우시 인민병원에서 약 400㎞ 떨어진 광둥성 인민병원 소속의 전문가가 5G로 전송된 고화질 수술 화면을 보고 원격 의료 가이드를 제시했고, 가오저우시 인민병원 소속 의사가 이 가이드에 따라 수술을 집도했다. 주목할 점은 수술 준비를 할 때 광둥성 인민병원이 실제 환자의 심장 영상을 바탕으로 한 데이터 모델링으로 3D 심장 모형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실제 환자의 심장과 똑같은 3D 심장 모형을 만든 뒤 이렇게 제작된 모형을 이용해 원격으로 수술 가이드를 수행한 것이다. 3D프린팅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모형이 아니라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할 수도 있다고 한다. 5G, AI, VR 등 여러 기술의 총체가 원격 의료로 구현되고 있는 모습이다.

    원격 수술에 성공한 것은 중국만이 아니다. 일본에서도 내시경 수술에 널리 활용되는 ‘다빈치’ 의료용 로봇을 활용해 기존 의료 서비스 제도권 내에서 원격 수술 준비에 나서고 있다. 이렇듯 헬스케어를 통한 각국의 변화 시도는 2019년 우리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다. 실로 상전벽해에 가깝다. 헬스케어에 대한 달라진 인식과 소비자 니즈의 변화도 혁신을 가속화하는 요인이다. 과거에는 헬스케어가 주로 의료 서비스라는 제도 안에 갇혀 있다 보니 주로 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의미했다. 그러나 지금은 일상적인 건강관리와 질병의 예방으로 그 의미가 확대되고 있고, 자연스럽게 건강관리와 질병 예방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과 제품이 등장하고 있다.

    가령 건강보험만 봐도 헬스케어 분야에 대해 달라진 사회적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1970년대 처음 건강보험이 도입됐을 때만 하더라도 건강보험의 명칭은 ‘의료보험’이었고, 질병이 발생한 뒤 병원 진료 및 치료에 대해 일부 보장해주는 역할에 머물렀다. 그러나 2000년을 기점으로 건강보험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보장 범위가 확대되는 등 제도가 크게 바뀌었다. 이제 정부는 건강검진이나 금연 등 치료를 넘어 일반적인 건강 증진 활동에 대해서도 보험료를 지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헬스케어 변화의 중심에는 새로운 패러다임 등장과 기술 혁명이 있다. 특히 5G, AI, 사물인터넷(IoT) 등의 발전이 헬스케어 분야에 적용되면서 변화의 속도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 ‘초연결성’ ‘초지능성’ ‘예측가능성’을 특징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이 헬스케어 시장에 가져오는 변화는 데이터 분야에서부터 감지되고 있다. 환자의 진료 기록, 의료영상 자료 등으로 구성된 의료 데이터, 유전체 분석기술 발달에 따른 개인의 유전체 데이터 등 산업 내 데이터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또한 각국의 보건의료 체계가 조금씩 다르긴 해도 공통적으로 보험 청구 데이터가 존재하며, 최근에는 웨어러블 기기의 출현으로 데이터가 더 많이 생산, 축적되는 추세다. 과거에는 이러한 데이터들이 개별적으로 저장될 뿐 확장성을 가지고 활용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 같은 이질적인 데이터들이 서로 연결되고 분석됨으로써 의미 있는 가치를 생산한다.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사용되는 기술은 크게 AI, 의료용 로봇, 웨어러블 기기 등으로 나뉜다. 

    AI

    먼저, AI 분야에서는 IBM의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 1 가 국내 여러 병원에 도입되면서 국내 헬스케어 분야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물론 최근 왓슨 포 온콜로지가 실패했다는 일부 지적과 분석도 있으나 이는 IBM의 왓슨 포 온콜로지에 국한된 것이지 의료용 인공지능 전체의 실패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매년 미국에서 개최되는 방사선의료기기전시회(RSNA)에서는 이미 인공지능 기술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2018년 12월 시카고에서 개최된 전시회에 참여한 수십 개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기존 의료영상기기회사들도 인공지능 이니셔티브를 발표했고, 이는 실제 결과로도 가시화하고 있다. 최근 미국 FDA 허가를 받은 ‘의료용 인공지능’ 제품은 26건에 달한다. 한국도 다양한 업체가 폐결핵 판독용 인공지능 솔루션, 안저(眼底) 판독 인공지능 솔루션 등의 제품을 출시하고 있으며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진행 중인 제품도 있다.

    의료용 AI 가운데 특히 발전하고 있는 분야는 ‘의료영상 판독 보조기술’이다. 위에서 언급한 한국 업체들도 의료영상 판독 보조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실제 의료현장에서 AI 기술을 활용하게 되면 의료진의 수준 차이에서 오는 오진율은 줄어들고 세계적인 영상의학과 전문의 공급 부족 문제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개발도상국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둘째, ‘임상 판단 보조 시스템’의 활용도 활발하다. 왓슨 포 온콜로지가 대표적이다. 검증되지 않은 의료지식이 쏟아지고 짧은 기간 내 변화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검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환자를 치료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AI 기술을 접목한 ‘임상 판단 보조 시스템’을 활용하면 기대를 뛰어넘는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셋째, 내시경, 의료용 로봇 등 다양한 의료기기와 AI의 결합이 이뤄지고 있다. AI가 적용된 의료용 수술로봇은 의사의 수술 과정에서 적절한 가이드를 주고, 사전 경고를 하면서 의료 과실을 줄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또 AI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이미 GSK, Eli Lilly, Pfizer, Janssen, Novartis, Bayer, BMS 등 유명한 다국적 제약회사가 AI를 활용해 신약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신약 개발 분야의 경우 임상에서 AI를 활용할 때와 달리 비용 지불 주체가 확실하기 때문에 그 성장 가능성이 높다.


    의료용 로봇

    최근 주목받는 또 다른 분야는 의료용 로봇이다. 의료 목적으로 사용되는 의료용 로봇의 종류는 간호 로봇, 재활훈련 로봇, 수술용 로봇 등 다양하다. 의료용 로봇의 시초는 2000년 세계 최초로 미국 FDA 승인을 받은 미국 Intuitive Surgical社의 다빈치 수술로봇이다. 사실 처음 의료용 로봇이 개발된 이유도 멀리 떨어져 있는 환자의 원격 수술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주로 흉강경과 복강경 등 ‘최소 침습수술’을 지원하는 보조 로봇 정도로만 쓰였다. 그런데 5G 시대의 개막은 이런 판도를 바꿔놓고 있으며 로봇의 활용 영역이 원격 수술로까지 점차 넓어지는 추세다.

    사회·인구학적 변화 역시 재활 및 요양, 간병 로봇 분야가 유망한 분야로 떠오르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이런 로봇은 인구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뇌졸중, 치매 등 신경장애와 만성질환이 증가할수록 그 시장이 성장할 수밖에 없으며 장애인 및 노약자의 삶의 질 향상 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도 산업부와 복지부가 이러한 의료용 로봇, 특히 재활 및 요양로봇 개발 및 보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산업부는 로봇의 개발과 보급을, 복지부는 중개연구 및 서비스 모델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특히 복지부는 돌봄 로봇 서비스 모델 개발 계획
    (2019∼2020년)을 통해서 기존 기기로는 해결이 어려운 돌봄 관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로봇 개발 및 실제 적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웨어러블 기기

    AI, 로봇 분야와 더불어 헬스케어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분야는 웨어러블 기기 분야다. 고성능 마이크로컨트롤러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물인터넷이 발전하게 됐고, 이런 기술은 의료용 또는 건강관리용 웨어러블 기기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임상 환자의 치료 및 건강관리는 환자의 건강 상태에 관해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는데, 기존 의료 체계에서는 이런 정보 획득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웨어러블 기기를 이용하면 수시로 환자의 데이터를 획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환자 개개인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통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특히 웨어러블 기기는 모바일 기술과 더불어 더욱 발전하게 됐다. 모바일 제품과 의료용 및 건강관리용 웨어러블이 접목되면서 갤럭시 기어, 애플워치 등 다양한 제품이 출시됐기 때문에 아날로그 방식의 건강관리에서 벗어나 스마트폰, 웨어러블, 기타 IT 기기와 연계한 모바일 헬스케어라는 분야가 출현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개발도상국의 보편적 의료 보장 달성을 위해 모바일 헬스를 적극 활용하려고 노력하는 상황이다. 선진국에서도 의료비 절감을 위한 건강관리와 예방 중심의 헬스케어 트렌드가 맞물리면서 시장 규모가 급속히 커지는 추세다. 이미 사람들이 일상 시간을 보내는 집, 차량, 사무실 등 다양한 공간에서 수집한 건강, 신체 관련 데이터를 건강 상태의 예측, 관리,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

    영국의 국가 건강보험 기관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는 HP(Hewlett -Packard)와 협력해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가정에 사물인터넷 기기를 설치·모니터링하는 시범사업을 시행 중이다. 한국에서도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자 원격 모니터링 서비스를 통해 환자들의 질환 관리에 효과가 있음이 확인됐다. 이 밖에도 호주, 미국 등 이미 많은 국가도 이런 서비스를 활용해 의료비 절감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결론

    세계 각국은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앞 다퉈 헬스케어 혁신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런 추세는 사회적, 경제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급증의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신기술 적용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인력 부족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또 헬스케어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는 분야기 때문에 국가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 정부도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100만 명 규모의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정부 연구개발 투자를 현재 연 2조6000억 원 규모에서 2025년 4조 원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를 통해 환자 맞춤형 신약 개발과 새로운 의료기술 연구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국민의 건강 및 삶의 질 향상 및 편의를 증진하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국가 차세대 먹거리 산업으로서 헬스케어 산업 분야도 적극 지원하려는 태세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 역시 각종 혁신 및 지원전략을 발표하고 있으며 상당수는 이미 우리보다 앞서고 있는 상황이다. 후발주자인 한국도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의 바이오헬스 투자 의지가 있고 급격한 사회변화를 담아내려는 시장의 기술 진보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기대를 가져볼 만하다.

    필자소개 김종엽 한국보건산업진흥원 4차신산업육성팀 연구원 kjy11109@khidi.or.kr
    김종엽 연구원은 차의과학대 보건행정정보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보건대학원에서 보건정책 및 병원관리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보건학 협동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한국보건산업진흥원 4차보건산업추진단에서 신산업육성 및 디지털 헬스케어 정책기획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00호 Revisiting Case Studies 2020년 7월 Issue 1 목차보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