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Sloan Management Review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일선 현장에 답 있다
편집자주 이 글은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SMR) 2020년 겨울 호에 실린 ‘You’re Going Digital-Now What?’을 번역한 것입니다. |
3만 피트 상공의 기업 전용기 안에서 디지털 전환을 구상하는 것은 흥분되면서도 흥미진진한 일이다. 기업의 리더들은 활용 가능한 새로운 툴을 떠올리고 조직을 어떻게 개편할지를 생각하면서 희망에 부푼다. 작업 효율성과 속도 향상은 물론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 만족도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찰 것이다. 대형 통신회사에 근무하는 한 고위 임원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경쟁 전략을 짜는 일은 정말 멋지더군요!”
하지만 지난 16년간 8개 산업군에 걸친 20여 개 기업의 혁신 작업에 동참하면서 필자는 생각보다 멋지지 않고 다소 따분한 진실을 알게 됐다. 변화의 성패는 전략적인 영감보다는 기업의 일선 현장에서 디지털 툴을 실제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더 많이 좌우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리더는 이런 직원들이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지 않는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대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고위 관리자들이 실무자들의 현실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리더들은 새로운 툴이 자신들이 기대했던 방식으로 활용되지 않거나(혹은 전혀 활용되지 않거나), 특별히 건질 만한 데이터 기반 통찰이 없거나, 기대했던 혜택들이 구현되지 않을 때 당황한다. 이 경우 그들이 염원했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디지털 실패작으로 전락한다.
이런 운명을 피하고 싶다면 리더들은 어떻게 해야 디지털 툴이 효과적이고 광범위하게 활용될 수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변화를 위한 최적의 조건에 맞는 업무 환경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런 역할을 IT에 떠넘기고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된다.
이 글에서는 전형적인 사례로 한 자동차 회사가 추진한 디지털 변화 노력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기업의 일선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어떻게 경험하고 처리하는지 설명할 것이다. 그다음 역방향 계획, 즉 역으로 현실에서 출발해 기업의 광범위한 목표 설정 단계로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는 접근이 확고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관련 이론과 전략을 제시하는 글은 많다. 그러나 이 글은 좋은 의도로 시작된 많은 계획을 망치는 요인들, 즉 쉽게 간과되지만 주목할 만한 세부적인 패착 요인들을 예측하고 관리하는 방법에 초점을 둘 것이다.
단계별 디지털 툴의 채택 과정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노력은 대개 광범위한 실행 계획과 함께 시작된다. 이런 계획에는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 회사가 디지털 툴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민첩한 조직 구조를 만들고, 더 고객 맞춤형 제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데이터에 기반한 통찰력을 발전시키고, 출시 기간을 단축하는 등의 내용들이 요약돼 있다.
이런 활동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다. 그러나 기업들이 이렇게 꼼꼼하게 준비하지 않는 프로세스가 하나 더 있다. 필자는 이를 업무 디지털화 프로세스(Work Digitization Process), 혹은 약자로 WDP라 부른다. (그림 1) 이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실현되기 위해 조직 일선에서 반드시 일어나야 할 여섯 단계의 변화다. 각 단계는 서로 연관돼 있어서 대개 서로를 발판 삼아 발전한다. 이 때문에 초기의 성공으로 이후의 성공을 예견할 수 있지만 초기에 실패하면 이후 단계는 한층 더 실행하기 어려워진다. WDP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파악하기 위해, 또 그 과정에서 경영진의 조치(또는 무조치)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기 위해 지금부터 한 대형 다국적 자동차 설계 회사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살펴보자. 편의상 이 회사를 오토웍스(Autoworks)라 부르겠다.
1단계 리더들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필요성을 전파한다.
오토웍스의 리더들은 이 점을 알고 있었다. 자동차 업계의 다른 여러 기업과 마찬가지로 오토웍스도 2000년 중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작업에 착수했다. 이들의 목표는 자원이 집중적으로 투입되는 영역에서 비용을 절감하면서 제품 개발을 가속화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오토웍스는 신제품 하나를 출시하기 위해 적어도 30대의 시제품 차량을 가지고 충돌 실험을 했다. 실험을 한 번 할 때마다 비용은 약 75만 달러가 들었다. 그러나 새로운 디지털 설계 툴을 사용하면 엔지니어가 컴퓨터로 가상 자동차를 만들고 테스트할 수 있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게다가 그런 시뮬레이션을 통해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으므로 더 좋고, 더 안전하고, 더 저렴한 자동차를 설계하는 능력도 한층 더 최적화할 수 있었다. 이런 변화에 착수하기만을 학수고대하던 오토웍스의 경영진은 회사의 슈퍼컴퓨팅 센터를 보강하고, 직원들이 다양한 디지털 설계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도록 라이선스를 부여했다. CEO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이제 디지털 기업이 될 겁니다.”
회사 경영진은 그들이 원하는 변화를 분명하게, 소리 높여 설파했다. 성능 실험을 디지털 애플리케이션에서 수행한다는 것은 제품 개발을 더 빠르고 저렴하게 완수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사들은 임원 회의에서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라는 말을 들었고, 팀장들은 간부 회의에서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라는 말을 들었으며, 엔지니어들은 교육과 부서 회의, 전 직원회의, 그리고 일상 업무에서 팀장과 임원, 경영진으로부터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 이 회사에서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라는 말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모토가 됐다.
연구에 따르면 고위 임원들이 목표를 전파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대담한 계획들을 발표하면 직원들은 이를 경청한다.1 초기에 이런 선언은 직원들이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그 기술을 이해하는 준거 프레임이 된다. 만약 오토웍스 직원들에게 새로운 툴들이 조직을 탈바꿈할지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실제로 물었을 때도 종종 이런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그 툴들을 써서 시뮬레이션 모델을 더 빠르고 저렴하게 개발할 수 있다면 알게 되겠죠.”
2단계 직원들이 신기술 사용 여부를 결정한다.
40%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노력을 무산시킬 만큼 상당히 큰 숫자다. 그렇다면 직원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런 결과는 그 기술이 부적절해서도(보통 기술은 꽤 괜찮다), 교육이 부족해서도(교육은 보통 적절히 이뤄진다) 아니다. 그보다 직원들이 경영진이 발표한 목표를 개인적으로 구현하는 데 있어 그 기술이 도움이 될 것인지를 따져 보기 때문이다. 오토웍스의 경우 엔지니어들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소프트웨어를 쓰면 내가 새로운 자동차를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 설계할 수 있을까?”
그리고 모두가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진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라는 슬로건은 오토웍스 임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복잡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새로운 툴을 그들이 이미 효율적이고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던 예전 툴과 비교했다. 직원들 사이에서 얼리어댑터 노릇을 하던 일부 수석 엔지니어도 그랬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사용 중이던 기존 툴을 고수하는 게 회사에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오히려 업무 속도를 늦췄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기술이 조직에 주는 다른 뚜렷한 장점도 있었다. 그러나 직원들의 경험상 회사 경영진이 가장 강조했던 가치는 창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다른 엔지니어들도 존경하는 동료들의 결정에 동요돼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기존 툴에 익숙해져서 그 편안함이 신형 툴에 대한 인식을 변질시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에 대한 초기 실험이 회사 엔지니어 네트워크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물론 경영진의 의도는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라는 모토를 혁신을 향한 폭넓은 목표로 각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집단마다 그런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 말이 직원들의 세부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기업의 리더들은 이런 모토를 만들 때 아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내용이 실제 업무 방식과 일치하지 않으면 소중한 신기술이 바라던 대로 구현될 수 없다.
3단계 직원들이 새로운 기술의 사용 방법을 결정한다.
대다수의 디지털 기술은 기업용이든, 개인용이든 다양한 방식으로 채택된다. MS 엑셀이 가진 수백 가지 기능과 각 기능의 활용법을 생각해 보라. 하지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과정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기능을 채택하는지에 따라 어떤 데이터를 기록하고, 생성하고, 분석하고, 활용할지가 결정된다. 기술의 사용 방법이 일련의 결과에 영향을 일으키는 중요한 선택이란 의미다.
오토웍스 경영진은 자동차 설계 작업을 디지털 공간으로 옮길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이 데이터에 있다고 믿었다. 시뮬레이션 툴을 사용하면 엔지니어들이 충돌 실험이나 소음 및 진동 실험을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할 수 있다. 실험 데이터를 전부 비교하면 기존에 실험용 마네킹을 가지고 몇십 건의 충돌 실험을 할 때보다 자동차 디자인을 훨씬 더 정교하게 최적화할 수 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랬다.
필자는 자동화된 시뮬레이션 설계를 위해 동일한 디지털 툴을 사용한 두 부서를 1년간 추적했다. 그중 한 부서에서는 엔지니어들이 각자 선호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툴을 사용했다. 또 다른 부서에서는 모든 엔지니어가 동일한 기능을 동일한 순서대로 사용했다. 1년이 지나자 두 번째 부서에서 설계한 자동차가 첫 번째 부서에서 설계한 것보다 성능에서 2대1의 격차로 더 뛰어났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왜냐하면 동일한 기능과 동일한 경로를 따른 엔지니어들에게서 나온 데이터는 균일한 토대로 도출됐고, 그래서 효과 패턴을 분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각자의 방식을 따른 엔지니어들도 똑같은 양의 데이터를 만들어 냈지만 거기서 나온 정보는 다양한 가정과 선택을 기초로 도출된 것이었다. 이런 차이 때문에 새로운 디지털 툴을 활용하는 모범 사례를 만들기가 어려웠다. 만약 디지털 기술의 중심 가치가 효율성과 다른 유용한 학습을 위한 데이터 생성에 있다면 일관된 사용 패턴은 꼭 필요했다.
4단계 새로운 유형의 데이터가 직원의 행동 방식을 바꾼다.
비교 가능한 데이터를 생성하기 위해 신규 디지털 시뮬레이션 툴을 일관된 방법으로 사용했던 엔지니어들을 기억하는가? 기존 방식을 바꾸기 시작한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도 당연히 자신의 실험 결과를 스스로 확인하고, 결과를 종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발 더 나아가 실험 결과를 주위 사람들과 함께 논의하고 고민했다. 한 엔지니어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 회사도 디지털로 전환했고 설계 엔지니어로서 저의 역할도 변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설계 엔지니어끼리 서로 담을 쌓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똑같이 서로 담쌓기 바쁜 데이터 분석가들 팀에 실험 데이터를 넘겨주면 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설계 엔지니어들까지 모두 하나의 팀으로 데이터 분석에 참여한다.
‘원칙’을 강조하는 일부 관리자는 데이터 분석가들과 엔지니어의 책임을 계속 분리해 이들의 권한을 축소하려 했다. 그러나 풍부하고 더 나은 데이터가 업무 방식을 바꾸고, 역할과 관계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련의 프로세스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피할 수 없는 부산물이다. 본론부터 말하면 이 두 부서의 관계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맺어져 있다. 직원들이 새로 확보한 데이터와 정보를 가지고 새로운 직무를 수행하게 되면 그들은 자연스레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하게 된다. 그러면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새로운 사회적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이 새롭고 강력한 네트워크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추진하는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2
5단계 국지적으로 성과가 개선된다.
일단 새로운 디지털 툴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그 결과를 새로 형성된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서로 비교하게 되면서 오토웍스의 엔지니어들은 변화의 구체적인 이점들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덕분에 충돌 내구성과 연비 같은 주요 변수를 개선하는 최적화 설계가 더 쉬워진 것이다.
실험을 수행한 후 최종 설계 솔루션을 내기까지의 과정도 상당히 개선됐다. 실제로 필자가 분석해 보니 데이터 분석에 참여하고 다른 엔지니어와 소통하기 위해 새로운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한 엔지니어들은 그렇지 않은 엔지니어들보다 자동차 설계 작업을 23%나 더 빨리 마쳤다. 실험 수도 31%나 줄였다. 결국 엔지니어들은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 일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보면 오토웍스 경영진이 바라던 성공이 이뤄진 것 같다. 여기에는 두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첫째는 엔지니어 중 40%가 처음에는 신규 소프트웨어가 더 빠르고 더 저렴하다는 확신이 없어 기술의 사용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기술을 사용해 더 빠르고 더 저렴한 업무 처리라는 이점을 구현한 엔지니어들도 경영진의 지시에 따른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설계 품질의 개선처럼 그들의 직무에 가장 중요한 성과 지표를 보고 스스로 이런 성과를 이뤄냈다. 만약 실험 초기 경영진이 혁신의 모토를 엔지니어들이 현장에서 일하면서 직접 경험한 내용에 더 잘 부합하도록 조정했다면 더 많은 엔지니어가 더 빨리 새로운 디지털 툴을 채택하고, 더 많은 혜택을 얻어갔을 것이다.
6단계 국지적 성과가 회사 목표에 부합한다.
오토웍스가 자동차 설계에 집중하기로 한 이유 중 하나는 20년간의 탄탄한 통계 분석 결과 차량의 설계가 공급망, 규제 준수, 제조 효율성과 더불어 콘셉트 개발부터 출시 단계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출시 기간을 단축하면 매출 성장도 가속화할 수 있었다.
새로운 기술로 설계 작업을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 완수하게 됐으니 회사로서는 더없이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오토웍스는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그런 이점이 어떻게 달성됐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새로운 설계 소프트웨어를 통해 형성된 사회적 네트워크의 놀라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기계적으로 시뮬레이션 모델을 돌리는 대신 세 시간이나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동료들과 차량 디자인을 논의한 엔지니어들은 개발 후반 단계에서 재작업해야 하는 양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최적화된 자동차 디자인을 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인 건 분명하지만 작업 속도를 한층 더 높인 것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촉발된 담당자들의 대화였다. 오토웍스는 이렇게 성공의 원인을 파헤침으로써 향후 더 큰 발전으로 이어질 지식을 발견했다.
역방향으로 계획하기
위의 여섯 단계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하는 동안 조직 내에서 어떤 식으로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런 프로세스를 감안했을 때 기업의 트랜스포메이션 활동을 어떻게 계획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가장 좋은 방법은 역방향으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먼저, 회사가 새로운 디지털 툴로 달성하고자 하는 국지적 목표를 진단한 다음 거기서부터 계획을 세우자. 필자의 경험상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을 해 보면 이 과정을 더 효과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
1. 어떤 부서의 활동이 회사의 혁신에 잠재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칠까?
첫째, 회사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한 뒤 부서 단위에서 어떤 종류의 성과가 거대한 조직 목표를 추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지 파악하라. 예컨대, 필자는 예전에 한 소아전문병원과 협력한 적이 있었다. 그 병원에는 지역 내 병원에서 이송된 응급 환자들이 많았고 그런 취약 환자들의 생존율을 높이는 게 절실한 과제였다. 이에 소아전문병원은 그동안 쌓인 데이터를 깊이 있게 분석했고, 그 결과 이송된 환자의 생존율이 그들이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받은 초기 진단의 퀄러티와 관련돼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연관성을 확인한 병원은 구체적인 솔루션을 찾아 나섰다. 소아 응급치료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지역 일반 병원 의사들이 아이의 건강 상태를 자세히 기록할 수 있도록 해주는 디지털 플랫폼이 필요했다. 그래야 이송됐을 때 소아전문병원에 있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쉽게 상태를 판독하고, 이송된 환자를 담당 진료과로 쉽고 빠르게 분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을 견인할 수 있는 국지적 활동을 확인했다면 이제는 그 활동을 개선하는 데 디지털 전환이 미치는 영향을 측정해야 한다. 이런 평가 척도가 명확한 경우도 있다. 가령, 앞의 예에서는 소아전문병원 이송 환자의 생존율이 크게 증가하면 그것이 곧 성공이다. 하지만 척도가 명확하지 않을 때는 개선하려는 프로세스가 무엇이든 단계별로 척도를 세분화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필자가 자문했던 한 대형 금융 서비스 회사는 조직 내 지식 공유를 확대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지식 공유는 다면적인 성격이 강해서 우리는 전체 과정을 여러 단계로 세분화했다. 직원들이 분야별 전문가를 정확히 식별하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다음으로는 직원들이 서로의 전문지식을 얼마나 정확하게 평가하고 있고, 사람들 간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이 지식 공유를 촉진하는 데 최선인지 가늠하기 위해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회사는 그렇게 추출한 기본 정보를 가지고 직원들이 동료들의 업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내부 소셜 네트워킹 기술을 도입했다. 그리고 지식 공유 프로그램의 진행 현황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6개월마다 두 가지 지표의 변화를 추적했다. 이런 국지적 데이터는 종류를 막론하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꼭 필요하다. 이는 조직 내 어딘가 일어나는 움직임이 변화를 돕는지, 아니면 방해하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2. 조직 내에서 정보의 흐름과 행동 변화를 어떻게 육성할 수 있을까?
그럼 정보 흐름을 진단하는 게 어떻게 도움이 될까? 한 대형 공기업의 예를 보자. 이 회사는 전기와 수도 같은 유틸리티 소비량을 원격 모니터링하는 새로운 디지털 기술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봤다. 이 기술을 가지고 유틸리티 사용량을 지속적으로 측정하고, 수리 인력을 선제적으로 파견해 송전 장비가 심하게 고장 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회사 내부의 정보 흐름이 이런 예방적 유지 관리 활동에 어떻게 도움이 됐다는 걸까?
신기술의 등장은 이미 월별로 유틸리티 사용량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요금 징수 부서가 수요의 최고점이나 최저점에 맞춰 근무 인원을 조정해 왔던 유지관리팀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 요금 징수 부서의 직원 중 일부는 단순히 데이터를 집계하고 청구서를 생성하는 역할에서 분석가의 역할까지 맡게 됐으므로 직무 변화도 생겼다. 오토웍스의 엔지니어들과 매우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런 점을 인식한 회사의 임원들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직이 변경된 직원들을 위한 새로운 직무 목표를 확립했고, 관련 역량을 가진 인력을 새로 고용했다. 이런 노력 끝에 예방적 유지 관리 업무를 전담하는 직원들로 새로운 사회적 네트워크가 생겼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도 큰 성공을 거뒀다. 이런 식의 진단 작업을 보통 조직 네트워크 분석이라고 부른다. 이는 디지털 변화를 전개하는 데 가장 유용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툴 중 하나다. 3
이 사례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비즈니스 리더들은 새로운 기술을 채택할 사람들이 누구인지만 알아서는 안 된다. 현재 직원들이 어떻게 교류하고 있는지를 알고, 그래서 성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사회적 네트워크를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적절한 사람들과 협력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공식적인 직무가 새로운 직무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회사는 직원들의 직무 변화를 공식적으로 보조하고 직무 기술서와 성과 평가 방법을 조정해 그런 변화를 명문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직원들도 새로운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서 파트너와 효과적으로 협력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려는 의욕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3. 회사의 핵심 인플루언서는 누구이며, 그들은 회사 문화가 디지털 전환에 대비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필자가 아는 한 대형 의료장비 회사는 새로운 기술과 대대적 구조조정을 수반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근데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중간관리자 일부가 작당해서 그런 노력에 저항한 것이다. 반대론자들이 발목을 잡으면 변화를 위한 노력이 관료주의의 늪에 빠져버릴 수 있기에 경영진은 근심에 잠겼다.
WDP에 따르면 이런 식의 저항에는 회사의 핵심 인플루언서들을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 방법이다. 인플루언서라고 꼭 인기가 많거나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속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보다는 회사에서 조언을 구할 때 이용되는 비공식 네트워크의 중심인물인 경우가 많다. 필자는 인플루언서들을 파악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두 가지 간단한 질문을 한 후 그 답변들을 가지고 조직 네트워크 분석을 실시했다. “당신은 기술적인 문제가 있을 때 누구에게 조언을 구합니까?” 그리고 “당신은 전략적인 문제가 있을 때 누구에게 조언을 구합니까?”였다. 분석을 통해 각 사업부 내의 핵심 인플루언서를 10명씩 식별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왔다면 그중 가능한 많은 인플루언서를 새로운 변화의 옹호자로 만들어야 한다. 필자는 먼저 각 인플루언서와 인터뷰를 해서 변화에 대한 그들의 초기 반응을 파악했다. 새로운 디지털 툴과 구조조정을 모두 찬성하는 집단도 있었지만 둘 다 끔찍하다고 여기는 집단도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집단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즉, 구조조정에는 찬성하지만 신규 기술은 원하지 않거나, 그 반대였다. 이에 우리는 각 집단을 위한 내부 마케팅 계획을 수립했다. 회사와 협력하에 첫 번째 집단에는 그들의 태도를 뒷받침하는 하드데이터를 제공해서 변화를 전파할 때 그들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 다음 두 번째 집단과 만나서는 회사가 추진하는 변화가 현재 그들의 업무 패턴의 긍정적인 면을 어떻게 강화하고, 그들이 싫어하는 면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를 같이 논의했다. 세 번째 집단에는 중대한 변화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과 새로운 기술이 어떻게 상호 발전을 이끄는지 관련 사례를 제시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지지자 기반은 더 공고히 하고 소수의 회의론자는 설득할 수 있었다. 우리는 변화의 이점이 대다수 직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홍보 메시지 개발에 인플루언서들을 적극적으로 가담시켰다.
모두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인플루언서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려한 것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인플루언서들과 공조한 사업부에서는 새로운 디지털 툴의 채택률이 75%가 넘었다. 반면 인플루언서들이 관여하지 않은 몇몇 사업부에서는 채택률이 25%가 채 안 됐다.
디지털 기업이 되겠다는 희미한 약속 뒤에는 냉혹한 현실이 있다.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해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는 일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시작되려면 비즈니스 리더들은 먼저 새로운 기술이 도입됐을 때 내부에서 벌어질 일련의 일들을 파악해야 한다. 그런 다음 연쇄 활동의 마지막 단계에서 시작해 출발점을 향해 나아가는 역방향 접근으로 성공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즉, 국지적인 성과가 기업의 거대한 목표 달성으로 이어지는 단계에서 출발해 현 상태를 디지털 툴로 완전히 갈아엎는 작업을 직원들이 함께 도모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성공은 반짝이는 구호나 대담한 공약만으로는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현장 직원들이 내리는 결정들에 의해 좌우된다. 이 글에서 설명한 역방향 계획은 그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번역 |김성아 dazzlingkim@gmail.com
폴 레오나르디(Paul Leonardi)는 캘리포니아주립대 산타바바라 캠퍼스에서 두카 가문(Duca Family)의 후원을 받는 기술경영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주도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과 그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기업들을 자문한다. 이 글에 의견이 있는 분은 http://sloanreview.mit.edu/x/61215에 접속해 남겨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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