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냉동 만두 시장 분석
・진입 장벽이 높은 미국 냉동 만두 시장을 선두로 들어감으로써, 타국의 냉동 만두 시장 시장 진입 용이
・M&A를 통한 시장진입
베트남 냉동 만두 시장 분석
・M&A를 통한 시장진입
중국 냉동 만두 시장 분석
・ 진입방법
- 직접 참입: 정부규제로 인한 제한
- M&A: 대상 기업 의사 없음
- 조인트벤쳐: DCH사와 조인트 벤처 설립
・ 보스턴 사각형 대로 포트폴리오별 시장진입
DBR Case Study: CJ제일제당 비비고의 글로벌 전략
현지인 식습관 간파한 ‘맞춤형 만두’
美·中에 ‘글로컬리제이션’ 돌풍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는 미국, 중국 등 주요 글로벌 시장에서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다. 성공요인은 다음과 같다.
1. 현지 업체를 인수합병(M&A)해 생산 인프라 및 유통망 등 현지 시장 진출에 필요한 자원 확보
2. R&D와 현지 시장조사를 통해 현지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춘 만두 및 포장 개발
3. 생산 및 제품 기획 등 비비고 만두 고유의 프로세스를 표준화해 품질 유지 및 현지 업체 제품 업그레이드 동시 달성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수진(성균관대 영상학과 4학년)씨와 여인호(경희대 외식경영학과 4학년)씨가 참여했습니다.
식품의 세계화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음식 고유의 독특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현지인이 좋아할 만한 매력적인 요소를 갖춰야 한다. 현지화와 세계화라는 모순적인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고 참신함과 익숙함을 절묘하게 결합해야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일본 초밥은 ‘글로벌 푸드’가 되기까지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CJ제일제당은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비비고 만두의 글로벌화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2016년 미국 시장에서 비비고 만두는 연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현지 입맛을 공략한 ‘미니 완탕’과 ‘스팀 덤플링’이 실적을 견인했다. 같은 시기에 만두의 원조 국가인 중국에서도 잠재력을 확인했다. 중국 광둥성 일대에서 비비고 만두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일부 대형마트에선 판매량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수십억 원에 불과했던 중국법인 매출은 지난해 200억 원대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 기준 비비고 만두의 해외 매출 비중은 47%에 달한다.
표 1 ‘비비고 만두’ 국내/글로벌 매출 현황 및 비중 (단위: 억 원)
비비고 만두의 성과는 십여 년간 해외 시장을 두드린 땀과 노력의 결과다. 미국에선 10년을 버틴 끝에 25년 동안 냉동만두 시장 1위를 지켰던 업체를 넘어섰다. 중국에서는 꼬박 5년을 헤맨 끝에 성공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현지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끊임없이 제품을 연구하고, 현지 업체를 인수해 유통망과 생산 인프라를 확보한 덕분이다.
2017년 기준으로 비비고 만두는 6조 원대로 추산되는 글로벌 만두 시장에서 8.1%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CJ제일제당은 2020년까지 매출 1조5000억 원을 달성해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약 15%까지 높인다는 전략이다. DBR은 CJ제일제당 비비고 만두가 해외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심층 분석했다.
DBR Mini box I: 비비고 만두 해외 시장 진출 현황 CJ제일제당은 활발한 인수합병(M&A)을 통해 해외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16년 베트남의 최대 냉동식품 브랜드인 까우제(Cautre)를 인수한 데 이어 2017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 3위 업체인 라비올로(Raviollo) M&A에 성공했다. 2000년대 초부터 시장을 다져온 미국에는 동부시장을 노리고 뉴저지 지역에 신규 공장 설립을 결정했다. 중국 북부인 요성에도 새로운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유럽 시장을 겨냥하기 위해 최근 독일 생산업체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
김치·비빔밥 ‘No’… 만두로 글로벌 시장의 초석을 다지다
2000년대 초, 국내 냉동식품 시장 성장이 더뎌졌다. 냉동식품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시장 성장세는 둔화됐다. 냉동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일반적인 요리에 비해 맛이 떨어지는 ‘싸구려 음식’으로 여겨졌다. 설상가상으로 쓰레기 만두 파동까지 겹치면서 냉동식품을 대표하는 냉동만두에 대한 인식도 크게 악화됐다.
이 시점에 CJ제일제당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국내를 벗어나 냉동식품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해외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기로 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으며 습득한 냉동식품 기술력, 다양한 신상품을 만들면서 쌓은 기획력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토대로 글로벌 1등 식품 브랜드로 키워보자는 큰 포부를 세웠다.
CJ제일제당은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킬러 아이템(Killer Item)’dm로 어떤 제품을 선택할지 고민했다. 비빔밥, 고추장 등 한국 음식 고유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제품들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외국인이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거나 자국 음식과 괴리가 큰 제품을 내놓으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력한 대안으로 만두가 꼽혔다.
만두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식의 특성인 매운맛, 달고 짠맛과는 거리가 멀어 정체성이 너무 약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한국 만두는 일본, 중국 만두와 비슷하기 때문에 차별화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차라리 그때까지 일반적으로 추진하던 한식 세계화 방식처럼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마니아층을 먼저 공략하고 점차 시장을 확대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치열한 논의 끝에 최종적으로 만두가 결정됐다. 경험과 데이터 덕분이다. CJ제일제당은 자사 제품을 수년 동안 조금씩 해외로 수출하고 있었다. 수출한 제품들의 반응을 보며 외국인들이 한국 음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중개상을 통해 미국, 유럽, 일본 등에 고추장, 만두, 각종 한국 조미료 등을 판매한 결과, 가장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이 만두였다. 현지인들이 만두의 맛과 모양을 매우 익숙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 다양한 문화권에서 만두와 유사한 식품이 존재한다. 밀가루 피에 여러 가지 음식 재료를 싸 먹는 음식은 동아시아의 만두 외에도 터키의 케밥, 러시아의 펠메니, 베트남의 짜조 등 다양한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만두는 고기와 야채를 넣어 만든 음식이라 대부분 문화권에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박우근 CJ제일제당 냉동사업부 과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인 식습관과 맛에 거부감이 있는지 여부다. 만두는 외국인들의 식습관과 충돌하지 않고 맛의 괴리도 적어 글로벌화에 적합한 제품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첫 도전지는 미국이었다.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 등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으로 유사성이 높은 아시아 권역은 후 순위로 미뤄뒀다. 냉동식품 시장이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작고, 현지 경쟁업체도 많게는 수십 개에 달해 성공을 거두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미국 시장 진출을 결정한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미국의 냉동식품 시장 규모가 매우 크다. 미국에는 간편 식품이 이미 보편화돼 있고, 당시에는 아시아, 인도 등의 특성이 담긴 ‘에스닉푸드(Ethnic Food)’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었다. 둘째, 미국 소비자들이 만두를 상대적으로 친숙하게 생각했다. 미국으로 이민 간 중국인들이 오래 전부터 만두를 만들어 판매했다. 중국식 이름으로 소개됐지만 모양과 맛이 유사해 소비자들이 한국 만두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셋째, CJ제일제당의 생산 기술도 현지에서 경쟁력을 얻기에 충분했다. 당시 미국 시장 1위 업체였던 일본 아지노모토 계열사 링링은 수십 년을 사용한 노후 설비로 만두를 생산하고 있었다. 새로운 제품도 개발하지 않고 줄곧 한 종류의 만두만 판매했다.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다른 경쟁사들은 손으로 만두를 빚어 판매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제품의 맛과 모양이 일정하지 않아 경쟁력이 떨어졌다. 이에 반해 CJ제일제당은 한국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최신식 만두 생산 설비를 개발했다. 신제품을 꾸준히 출시하면서 제품 기획력도 키웠다. 자체 평가 결과 모든 면에서 CJ제일제당이 경쟁자보다 한 수 위라는 결론이 나왔다. 미국 시장에 과감히 투자한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섰다.
마지막으로 미국이라는 선진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자연스럽게 CJ제일제당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미국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노하우가 쌓이면 다른 시장 진출은 한결 수월할 것으로 예상됐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선진시장에 진출해 시장 개척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일단 성공하면 다른 시장 진출이 매우 수월해진다. 이곳에 있는 업체들과 경쟁하고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는 과정에서 우리만의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M&A·제휴 통해 현지 시장 진출
1) 美 시장 성공으로 구축한 글로벌 시장 개척 매뉴얼
CJ제일제당은 만두를 앞세워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로 결심하고 나서 구체적인 진출 방안을 모색했다. 냉동식품의 특성상 한국 공장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구제역 파동 등으로 구제역 백신 접종 청정국 지위를 상실했다. 따라서 육가공품 수출이 불가능했다.
독자적 투자를 통해 공장과 법인을 설립하고 브랜드를 만들어 시장 개척에 나서는 방안도 추진할 수 있었지만 미국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나 기업에 대한 인지도가 낮다는 게 걸림돌이었다. 이런 형태로 미국 시장에 진출할 경우 시장 안착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CJ제일제당은 현지 업체 M&A를 통해 빠른 시장 안착을 추진했다. 현지 업체를 인수하면 단기간에 브랜드와 공장 설비 등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유통망을 좀 더 쉽게 뚫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미국 유통업체의 경우 제품에 대한 평가 기준뿐만이 아니라 판매실적 등을 엄격하게 따지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영업을 해온 기존 업체를 인수하면 유통망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최적의 파트너로 CJ제일제당과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있던 미국 현지업체 옴니가 꼽혔다. 이 회사가 자체적으로 판매하는 만두 브랜드 ‘오하나’는 이미 미국 로스앤젤레스 일대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 회사는 만두를 하루 25만 개 생산할 수 있는 생산 설비도 갖췄다. 유기농 식품을 주로 취급하는 미국 유통업체 ‘트레이더 조(Trader’s Joe)’에 OEM 방식으로 만두를 공급하는 등 미국 전역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옴니가 기존에 하고 있는 사업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인수를 제안했다. 옴니 입장에서도 CJ제일제당의 식품 연구기술 역량, 제품 기획력, 생산 기술 등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딜이라고 판단했다. 한국 이민자 출신이 운영하는 업체인 만큼 한국인들끼리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2007년 3월 인수작업을 완료했다.
옴니 인수 후 만두 신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을 살펴보니 미국인의 입맛을 고려해 현지화한 제품을 찾기 어려웠다. 대부분 중국인들 입맛에 맞는 만두 레서피를 활용했다. 만약 미국인들이 원하는 맛과 영양을 고려한 새로운 제품이 나온다면 기존 업체들과 차별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미국 사람들은 ‘건강한 맛’을 좋아한다고 판단해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를 넣었고, 아시아 ‘향’을 대표하는 실란트로(고수)를 가미했다. 사이즈도 한 입 크기로 줄여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고, 샐러드나 전체 요리 등에 응용할 수 있도록 했다. 꼬박 6개월간 신제품 개발에 매진한 끝에 미국 현지에서 개발한 첫 제품 ‘미니완탕’이 출시됐다.
2008년 열린 NRA(National Restaurant Association) 전시회에서 미니완탕을 선보였다. NRA 전시회는 미국 최대 식품 박람회로 미국 내 프랜차이즈 및 식품 기업이 참여해 각종 신제품, 요리 기기 등을 전시한다. 미니완탕은 현지 전문가들로부터 미국 소비자 입맛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닭고기, 실란트로 등 기존 만두에 잘 쓰지 않은 재료를 활용하면서 미국인에게 익숙한 맛을 낸 것이 주효했다. 코스트코 등 유력 미국 유통업체에서 먼저 임시 매대 판매를 제안할 정도였다.
다른 유통망에도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었다. 유통업체 트레이더 조에 이미 옴니가 납품을 하고 있었던 덕분이다. CJ제일제당은 브랜드 인지도를 고려해 기존 옴니 브랜드로 제품을 생산, 납품해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감도 줄였다. 운도 따랐다. 트레이더 조에 납품하던 업체인 일본계 회사가 캘리포니아 주정부로부터 공장 가동 정지 명령을 받아 예상보다 더 많은 양을 진열할 수 있었다. 이렇게 판매를 시작한 미니완탕은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2009년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유력지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포장 만두 맛 평가에서 CJ제일제당 만두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만두피와 건강한 재료의 식감 등에서 호평이 이어졌다. 입소문을 타자 코스트코는 직전 해 대비 주문량을 50% 늘렸고, 홀푸드의 월평균 판매량도 3배 이상 늘었다. 생산설비가 부족해 추가 주문을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미국 법인 매출은 M&A 전보다 40%나 늘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CJ제일제당은 2010년 미니완탕에 CJ제일제당의 글로벌 브랜드 ‘비비고(Bibigo)’를 입혀 판매하기 시작했다.
시장 수요가 커지면서 2013년 미국 동부 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TMI 트레이딩’을 인수했다. 또 옴니 공장이 있는 플러턴에는 3000만 달러를 들여 2만7000㎡ 규모의 신규 공장을 지었다. 이 시기 새로운 제품도 출시했다. 중국 샤롱바오 형태의 ‘스팀 덤플링’이다. 이 제품은 간편함과 건강한 맛으로 현지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스팀 덤플링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포장을 뜯은 후 바로 전자레인지에 넣기만 하면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됐다.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한 아시아 고급 음식이라는 점도 어필했다. 기존 만두들이 싼 가격을 내세워 아시아 이민자들을 공략한 것과 반대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스팀 덤플링은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퍼지며 인기를 끌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튜브 등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스팀 덤플링에 대한 평가와 시식 방법이 올라오기도 했다.
2016년부터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기 시작했다. 25년간 1위를 내 준 적이 없는 경쟁업체 링링을 제치고 미국 시장에서 만두 부문 1위 업체가 됐다. 매출액은 2017년 기준 1750억 원으로 5년 전보다 약 7배 증가했다. 여세를 몰아 CJ제일제당은 동부시장 공략을 위해 최근 뉴저지 공장 자체 투자에도 나섰다. 공장 규모는 플러턴 공장의 약 2배 수준으로 알려졌다.
2) 미국 진출 경험 토대로 동시다발적 해외 시장 확대
미국 시장 진출을 통해 얻은 경험과 노하우는 CJ제일제당이 해외 진출을 본격화할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CJ는 인수합병, 공장 설비 리노베이션, 현지화한 제품 개발 등 미국 시장 진출 경험을 토대로 동남아시아, 유럽 등 새로운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섰다.
2016년과 2017년 각각 인수한 베트남과 러시아 법인인 ‘CJ까우제(CJ Cautre)’ ‘CJ라비올로(CJ Raviollo)’가 대표적 예다. CJ제일제당은 까우제를 170억 원, 라비올로를 300억 원을 들여 사들였다. CJ제일제당은 두 나라의 냉동 만두 성장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베트남의 경우 아직 냉장고가 100% 보급되지 않았다. 베트남 경제가 성장 추세인 점을 감안하면 냉장고 보급은 앞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냉장고 보급이 늘어나면 냉동식품 보관이 쉬워지므로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또 베트남은 20~35세 젊은 층 비중이 매우 높다. 대부분 결혼을 일찍 하는 편이고, 결혼한 후에도 여성이 일을 하는 맞벌이 부부가 보편적이다. 이들은 외식을 자주 하고 간편식을 즐긴다. 만두와 같은 냉동식품의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러시아에서는 전통 만두인 펠메니의 시장 규모가 1조5000억 원 규모로 매우 크다. 그만큼 펠메니와 유사한 만두의 잠재 수요도 높다고 판단했다. CJ제일제당은 현지업체를 등에 업고 시장점유율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대형마트에서 한국에서 생산한 비비고 왕교자 시식 행사를 열어 현지인의 반응을 먼저 살핀 것도 러시아 시장 진출을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당시 비비고 만두를 먹은 현지인들의 반응이 예상외로 좋았다. 펠메니와 유사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맛이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베트남과 러시아 법인은 CJ제일제당의 해외 시장 진출에 도움을 주는 자원을 갖고 있었다. 우선 브랜드 인지도다. 까우제는 현지에서 베트남식 만두인 짜조 판매 1위 기업(시장점유율 45%)이고, 라비올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내에 있는 러시아 만두 펠메니 판매 3위 업체다. 그만큼 강력한 브랜드 자산을 갖고 있다. 또 두 법인은 브랜드 영향력을 바탕으로 각 지역의 유력 유통망도 확보하고 있다. 낯선 비비고 한국 만두 제품을 한결 수월하게 현지 대형마트에 진열할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들이 보유한 생산 인프라다. 이미 공장 설비를 갖추고 있어 새로 공장을 짓는 것에 비해 적은 돈으로 비비고의 최신 생산설비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했다. CJ제일제당은 자사 고유의 장점과 피인수업체 보유 자원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고 인수를 결정했다.
3) 조인트벤처(JV)를 통해 진입한 중국 시장
중국 시장은 2011년 홍콩의 유력 유통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진출했다. 중국은 CJ제일제당 입장에서 매우 탐나는 시장이었다. 당시 한류 열풍으로 한국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고 중국 사람들의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도도 높았다. 2조1000억 원이 넘는 중국 만두 시장의 45%를 교자만두가 차지하는데 이 중 프리미엄 만두 시장은 매해 20% 이상씩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 현지 업체 M&A는 어려웠다. CJ제일제당이 염두에 뒀던 중국의 유력 현지 업체는 M&A 의사가 없었다. 이에 따라 다른 중국 업체들도 검토했지만 설비가 너무 노후화됐거나 생산인력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될 우려가 컸다. 마지막으로 자체 공장을 설립해 중국 시장에 들어갈 방법도 모색했으나 중국 정부가 공장 부지 사용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때 마침 비비고 만두 홍콩 수출을 담당했던 홍콩 최대 식품 유통회사인 DCH가 중국 시장 진출을 제안했다.
DCH는 중국 광저우시에 공장 부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부지에 공동 투자를 해 공장을 짓고 만두를 판매하자고 제안한 것이었다. CJ제일제당은 DCH와 합자법인을 세우고 중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중국 시장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CJ제일제당이 현지에서 생산한 만두를 사 가겠다고 하는 유통업체들이 거의 없었다. DCH도 중국 현지 유통망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현지 생산업체의 도움이 없어 현지 소비자들의 성향을 파악하기도 어려운 구조였다. 이때 CJ제일제당이 미국 시장 등에서 확보했던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됐다. 중국인들의 생활습관, 만두 선호도 등을 조사해 R&D 부서 직원들과 함께 비교적 빠른 시간 내 현지화한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시식 코너와 같이 한국에서 벌이는 판촉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벌여 중국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도 했다. 그 결과 비비고는 중국 광저우시 내 대형마트 유통체인 중 일부에서 만두 판매량 1위를 차지하는 등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DBR mini box ‘한국형 시식 문화가 탄생시킨 중국 현지 직원들의 ‘폭파 활동’’ 참고.)
DBR Mini Box Ⅱ: 까우제 원로 직원들이 눈물을 흘린 이유 CJ제일제당이 베트남 식품회사 까우제를 인수할 당시 외부에서 우려가 많았다. 까우제가 생산하는 짜조를 더 이상 먹지 못하는 것이냐는 소비자들의 우려에서부터 시작해서 까우제 직원들이 모두 해고될 거란 괴소문까지 퍼졌다. 공장장, 법인장 등 회사 수장이 한국 사람으로 바뀌면서 직원들도 매우 불안해했다. 언론에서는 CJ제일제당이 까우제의 브랜드 파워, 유통망 등 이용해 한국 제품만 파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인수 작업에 참여했던 노웅호 베트남 법인장은 각종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인터뷰를 자처했다. 현지 경영 전문 매체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까우제의 짜조는 계속 유지할 것이며 심지어 품질을 높여 베트남에서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잘 팔리는 제품으로 만들 것이다. 베트남 공장이 세계에서 만두를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생산설비와 기술력을 갖추도록 투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7년 6월1일 열린 까우제 35주년 창립기념일에는 원로 직원들을 모두 초청해 비전 선포식도 가졌다. 이때 CJ까우제라는 회사명과 새로운 CI도 공개했다. 현지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원로 직원들은 이날 행사장에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했다. 베트남 법인에 있는 1700여 명의 현지 직원들도 신뢰를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노 법인장은 “10년 전만 해도 베트남 봉제사업에 진출한 많은 한국 기업이 현지 직원들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아 문제가 종종 발생했다. 그래서 한국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는데 이런 신뢰를 구축하는 작업, 자신의 개성과 전통을 존중하는 과정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DBR Mini Box Ⅲ: 한국형 시식 문화가 탄생시킨 중국 현지 직원들의 ‘폭파 활동’ 2016년까지도 중국 시장에서 CJ제일제당의 만두 판매가 지지부진했다. CJ제일제당은 극약처방을 내린다. 자사 제품 시식코너를 담당하는 CJ엠디원 ‘에이스’ 직원 5명을 중국 법인에 보낸 것이다. 이들은 중국 소비자들에게 비비고 왕교자를 맛보게 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이들은 광저우시 마트 내 임시 매대에 자리를 잡고 왕교자 시식 행사를 열었다. 중국에서는 적극적인 시식문화가 없기 때문이 CJ엠디원 직원들을 처음 본 중국 소비자들은 매우 당황했지만 이들이 서투른 중국어로 사람들에게 이쑤시개에 꽂은 만두를 웃으면서 건네자 중국인들은 만두를 받아 들었다. 시장에서 소리지르면서 호객 활동을 하듯이 흥을 돋우니 중국 소비자들도 즐거워했다. 만두를 맛본 소비자들이 만두를 한 봉지씩 장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한 번 맛본 현지인들의 재구매율도 높았다. 영업과 마케팅을 담당하는 중국 현지 직원들은 이 시식 행사를 보고 크게 놀랐다. 처음에 매출을 10배 더 늘려야 한다는 법인 목표에 대해 “너무 무리하다”며 불만을 제기했지만 시식 행사를 통한 소비자들의 호의적 반응과 판매 증가를 눈으로 확인하자 태도가 바뀌었다. 마케팅 담당, 영업 담당 직원들이 마트나 할인마트에 가서 자발적으로 시식 및 판촉행사를 진행하는 등 열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초기에 CJ엠디원 직원들이 보여 준 시식 행사를 그대로 따라 했다. 중국법인 현지 직원들은 이런 영업활동을 ‘폭파활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소비자 만족도를 폭파한다, 판매량을 폭파한다는 뜻이었다. 2017년 비비고 만두는 광저우시 내 400여 개 할인점 및 마트와 거래하는데 이 중 10%인 40여 개 매장에서 만두 제품 1위를 차지했다. 2위로 올라선 매장도 늘었다. 자신감을 얻은 CJ는 중국 요성 식품 공장을 설립,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
비비고식 ‘Glocalization’
1) 현지인의 식습관을 고려해 탄생한 ‘맞춤형’ 비비고 만두
CJ제일제당은 철저하게 현지인의 식습관에 맞춘 제품을 내놓는다. 미국에는 비비고 스팀 덤플링, 미니완탕이, 중국에는 비비고 교황, 왕수교자가 대표적이다. 최근 진출한 베트남에선 비비고 해산물 만두와 고기와 옥수수가 들어간 ‘미트 앤 콘’ 만두가 주력 제품이다.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비비고 왕교자도 한국에서 생산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맛이다. 러시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펠메니에 고기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을 고려해 소고기양을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수교자(물만두)를 중심으로 판매하는데 일본 사람들이 만두를 보통 국물 요리에 활용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CJ제일제당은 현지 시장에서 이미 활약하고 있는 메이저 업체들을 따돌리기 위해선 비비고 만두만의 차별성을 확실히 드러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지역마다 사람들이 익숙하다고 느끼는 맛과 향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를 간과하면 소비자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다. 미국 시장에서 현지화한 제품으로 성공한 이후 적극적인 투자에 나섰다.
우선 글로벌 R&D센터 인력을 현지에 배치해 제품 개발을 위한 투자를 확대했다. 총 23명으로 구성된 센터 연구원 중 9명이 미국, 중국, 베트남에 파견돼 있고, 나머지 인력은 한국 본사에서 이들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현지에 있는 연구원들은 자신이 알게 된 새로운 정보나 노하우를 다른 연구원들과 공유해 제품 현지화 및 제품 개선을 위한 재료로 활용한다.
최근 중국 시장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는 것도 현지화 전략 덕분이다. 2011년 비비고가 중국에 진출할 당시 중국에는 3개의 거대 식품업체가 만두 시장점유율 85%를 차지했다. 중국 소비자들은 이미 익숙한 중국 브랜드만을 고집했고, 비비고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CJ제일제당은 중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분석했다.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맛을 내는 만두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부추가 문제였다. 중국 사람들은 의외로 만두에 부추 넣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일부는 부추가 열을 오르게 하는 식품이라는 이유로 꺼렸다. 그래서 박종섭 마케팅 총괄부장과 R&D팀은 중국 시장 내 시판되는 만두를 모조리 사서 먹어봤다. 대부분 옥수수와 배추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재료 배합 문제도 원점에서 다시 생각했다. 간장, 식초는 물론 현지 재료의 특성이 한국과 다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새로운 조합을 생각했다. 이렇게 중국 소비자들만을 위한 새로운 비비고 왕교자가 탄생했다.
새롭게 탄생한 비비고 만두는 건강하고 익숙한 맛으로 현지인들을 사로잡았다. 박 부장은 “지금도 하루 세끼를 만두로 먹는 날이 허다하다. 만두 때문에 살이 7㎏이나 쪘다. 이렇게 먹어보니 중국인이 좋아하는 맛이 무엇인지 감이 왔다. 그런 의견들을 직원들과 공유했고,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새로운 비비고 만두를 출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품 개선 활동도 신속하게 진행했다. 현지 소비자들의 제품에 대한 반응을 살핀 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했다. 중국의 경우 약 1년마다 염도 조절, 속 재료 배합 비율 수정 등을 통해 현지화한 제품을 내놓는다. 현지에 파견된 R&D 인력과 자체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게 CJ제일제당 측 설명이다.
CJ제일제당은 맛뿐만 아니라 제품을 담는 포장재도 현지화했다. 비비고 로고와 디자인은 표준화했지만 포장은 나라별로 다르다. 박스에 포장한 것도 있고, 봉지에 담은 것도 있다. 크기도 제각각이다. 포장 방법을 결정할 때 중요한 의사결정 기준은 가격이다. 소득 수준과 지불 의향 등을 고려해 한 봉지당 가격을 정한 후 봉지에 담을 만두의 양을 결정한다. 또 나라별 생활 습관도 고려한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서는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냉장고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소형 봉지에 담아 판매한다. 중국은 플라스틱 트레이에 만두가 하나하나씩 별도로 들어가 있는 형태로 포장한다.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국 사람들의 성격을 고려해 포장의 외관, 디자인도 고급스럽게 했다. 냉동고에 음식을 오래 보관하기 싫어하는 일본 사람들을 위해 한 번에 먹고 치울 수 있는 양으로 생산한다. 반면 미국 사람들은 대량으로 소비하는 습관이 있어 종이 포장재에 만두 4팩을 다시 큰 박스에 포장해 판매한다.
2) 현지 제품과의 상생을 통한 ‘비비고’ 플랫폼 확대
CJ제일제당은 인수한 현지 업체의 제품 생산을 중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품을 그대로 살려 비비고 브랜드에 편입했다. 이미 제품 인지도와 브랜드 파워가 있는 제품들을 비비고가 자체 개발·생산한 제품으로 대체하는 대신 비비고 자산으로 만들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는 비비고 브랜드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활용해 글로벌 만두 1위 기업이 되겠다는 CJ제일제당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다.
CJ까우제, CJ라비올로 모두 기존에 생산하던 짜조와 펠메니 제품을 그대로 판매한다. 대신 비비고의 최신식 생산 설비, 제품기획력 등으로 피인수기업이 생산하던 제품의 맛과 품질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을 거친다. CJ제일제당은 현지 업체들보다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해 기존 제품의 매출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도 자신한다. 더 나아가 짜조와 펠메니 같은 현지 제품들을 원하는 글로벌 소비층을 공략해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고도 보고 있다. 강기문 CJ제일제당 글로벌 식품 R&D센터장(상무) “비비고는 현지 제품도 우리 자산으로 편입해 시장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택한다. 로컬 브랜드 제품을 통해 우리가 새로 개발한 주력 제품들도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어 간접적인 홍보효과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3) 비비고 생산 및 제품 개발 프로세스의 표준화
CJ제일제당이 철저한 현지화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 비비고라는 브랜드가 지닌 강점과 정체성을 제대로 살려 현지 법인에 동일하게 녹여내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제품 포장 디자인이나 만두 모양 같은 ‘하드웨어’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CJ제일제당이 지키고 싶은 정체성은 오히려 ‘소프트웨어’에 가깝다. 어디서든 고품질의 만두를 제조할 수 있는 노하우,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가 이에 해당된다. 재료의 맛을 살리면서 식품 안전은 극대화한 생산 방식, 현지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방법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실제 CJ제일제당은 채소와 고기 등 각종 재료를 세척하고 손질하는 전처리 과정에 광학 선별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광학 선별 기술을 활용하면 제조공정에 투입된 식재료의 오염 여부를 광학 센서로 즉각 판별할 수 있으며 오염된 재료는 즉각 바람을 쏴서 제조 공정에서 탈락시킨다.
중금속이 포함된 식재료를 감지하는 것도 광학 선별 기술의 중요한 역할이다. 비비고는 기존 업체들이 사용하는 간 고기 대신 깍둑썰기 공법을 통해 다진 고기를 사용한다. 이 고기는 입자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뼈와 같은 이물질이 포함될 수 있는 위험이 매우 높다. 그런데 광학 선별 기술을 활용하면 이물질이 포함된 부분도 솎아낼 수 있다. 식품 안전 관리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CJ제일제당은 이 광학 선별 기술을 세계 최초로 만두 공정에 도입했다. 현지 법인들에서도 모두 이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비비고의 자동화된 공정도 모든 해외 법인들에서 활용하고 있다. 밀가루 반죽, 만두 속 재료 혼합, 만두 성형 등을 모두 자동화했다. 복잡한 만두 제조 공정에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한 비비고의 자동화 생산 라인은 해외 어디서든 제품의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의 한국 생산공장 인력이 현지 인력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재료를 다루는 법에서부터 기계를 작동하고 유지 보수하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노하우를 전수한다. 한때 CJ제일제당 인천공장에서 5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 중 절반 이상이 해외로 나가 공장이 썰렁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비비고식 생산 과정은 피인수기업의 기존 제품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러시아 라비올로 펠메니가 대표적인 예다. 현지에 파견된 직원이 CJ제일제당 인수 작업을 진행하면서 라비올로 제품을 계속 먹어봤는데 매일 맛이 달랐다. 알고 봤더니 고기를 항상 같은 곳에서 구매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시중에서 수배가 가능한 고기를 넣었기 때문이었다. 생산 기술이 부족해 만두 모양이나 품질도 일정치 않았다. 인수 후 재료 공수 프로세스부터 제대로 세웠다. 고기와 야채를 제공하는 업체를 선정해 신선하고 질 좋은 재료를 안정적으로 공수받았다. 비비고 설비와 생산공정을 통해 공정 정도 표준화했다. 이렇게 라비올로의 펠메니를 비비고식으로 바꾸 자 제품의 맛과 모양이 일정해졌고, 생산성도 올라가게 됐다.
제품 전문가가 인수부터 운영까지 주도
CJ제일제당은 M&A 과정에서도 만두 전문가의 의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보통 기업은 재무 전문가들로 구성된 M&A 전담팀이 M&A 대상 물색, 실사, 계약을 주도한 후 계약 체결이 완료되면 해당 사업 분야의 전문 인력이 PMI(합병 후 통합)와 경영을 주도한다. CJ제일제당은 달랐다. 냉동식품을 기획하고 마케팅하는 냉동사업부, 만두 제품을 연구하는 R&D센터 연구원 등 제품 전문가가 M&A 과정 전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피인수회사의 현재 시장가치 등 재무적 요인을 중시하는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CJ제일제당의 인수 및 운연팀원은 제품 전문가로서 만두 생산과 운영, 주력 제품의 비즈니스적 가치와 잠재력 등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며 M&A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했다. 이는 만두 시장과 생산 공정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미국 시장 진출 당시 CJ제일제당은 강 상무를 포함해 만두 제품 개발과 생산을 담당했던 인력 3명을 파견했다. 이들은 현지 업체를 직접 방문해 생산설비를 면밀히 살폈다. 시장 조사를 통해 업체들의 브랜드 영향력, 성장 가능성도 꼼꼼하게 살폈다. 강 상무는 “재무적인 분석과 같은 전문적인 부분은 본사 관련 인력이 담당했지만 M&A 후보를 물색하고 선정하는 과정에는 만두 전문 인력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베트남 법인 인수를 주도한 노 법인장도 냉동식품 전문가 출신이다. 현지에 가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반영해 전략을 세우라는 본사 방침에 따른 것이다. 노 법인장도 인수 전략을 세우고 전담 인력을 꾸렸다. 인수 후에는 노 법인장과 인수 실무를 챙겼던 사람들이 남아 후속작업을 맡았다.
최근 러시아 M&A에 참여했던 CJ제일제당 직원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제품 전문가들로 이뤄진 인수팀은 러시아 업체를 M&A할 때 일반적으로 간과됐던 중요한 요소를 파악했다. 러시아의 경우 한국으로 치면 ‘대리상’이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다. 인수업체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대리상과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그래서 대형 유통업체에 얼마나 쉽게 입점할 수 있는지를 중요한 요소로 평가했고 이런 측면에서 역량을 갖춘 업체를 인수했다.
향후 회사를 운영해야 하는 사람들이 인수 단계에서 의사결정을 주도했기 때문에 사업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업체를 선정할 확률이 높았고, 인수 후에 어떤 방향으로 기업을 운영할지에 대한 방안도 미리부터 고민하게 됐다. 이는 PMI 작업의 효율성을 높였다.
성공 요인 및 시사점
침체된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흔히 해외 시장 진출을 떠올린다. 협소한 국내 시장에서 승산도 없는 경쟁에 매달리기보다 기회를 찾아 새로운 시장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해외 시장 진출은 리스크가 매우 높다. 해외 진출 기업 중 80% 이상은 기대 이하의 성과로 근근이 버티거나 철수를 고려한다. 해외 현지에서 무엇을, 어떻게,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제공할지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하지만 딱히 우리 회사에 맞는 정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수많은 경영이론이나 서적에서 발견한 현지화 이론은 적용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우리 회사에 적합한지 여부도 알기 어렵다.
사실 해외 시장 진출 방식, 절차, 실행의 모습은 회사마다 다르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은 분명히 있다. 이 점에서 CJ제일제당은 이 원칙을 착실히 수행한 성공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CJ제일제당의 해외 시장 진출 과정을 복기해 보면 4가지 기본 원칙이 반복적으로 실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CJ제일제당 해외 시장 진출의 절차는 합리적이고 순차적이었다. ‘선택은 과감히, 그러나 실행은 치밀하게’라는 전략의 기본 원칙과 통한다. 회사는 진출에 앞서 확실한 한 방이 될 수 있는 킬러품목(본 사례에서는 만두)을 고르고, 진출 지역을 선정하며, 시장성을 검증하는 데 공을 많이 들였다. 진출할 때에도 현지 업체와 협업으로 시작해 설비를 늘리고 사업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이 절차를 거치면서 파생되는 부지 매입, 공장 리노베이션, 인력관리 등 하부지식들을 차곡차곡 축적해 미국을 시작으로 타 국가에 진출하는 데 그대로 활용했다. 자신만의 진출 방식을 습득해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고 실패 확률을 크게 낮췄다.
둘째,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 해외 시장을 공략했다. 현지화 전략이란 현지인의 취향과 기호를 반영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매우 당연해 보이지만 현지화 전략이 해외 시장 진출의 상징처럼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현지화 전략은 쉽지 않다. 현지인의 취향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뿐더러 현지인의 취향을 맞추다 보면 차별화의 원천인 기업 고유의 정체성이 사라질 수도 있다. 최근 기업의 관심사도 현지화를 제대로 실행하면서 고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방안을 강구하는 데 있다.
CJ제일제당은 미국, 베트남, 중국 등 특정 소비계층을 타깃으로 맛, 가격대, 포장을 달리해 성과를 냈다. 중국 시장에서 흔치 않은 시식대를 활용해 음식의 맛을 보게 하는 등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현지인이 선호하는 맛, 식감, 재료를 파악하기 위해 현지인, 파견 주재원이 직접 발 벗고 나섰다. 중국, 인도, 중동 등에서 현지화에 성공한 파나소닉, LG 등도 현지 소비자의 선호도를 파악하기 위해 7~10년간 공을 들였다.
현지화란 그만큼 시간과 자원이 들어가는 일이다. 즉, 현지화란 현지 소비자들이 어디에 얼마를 소비하는지 물량과 숫자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파악해야 한다. 단순히 전문기관에 의뢰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업 실무자들이 오래 관찰하고 체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덧붙여 CJ제일제당이 비비고 등의 통합 브랜드를 만들어 현지 식품까지 이 브랜드에 편입한 것은 현지화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기업 정체성을 각인한 매우 기민한 전략으로 평가된다.
셋째, CJ제일제당은 국제경영학의 오랜 난제인 Global-Local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명확한 사례를 제공했다. Global-Local 딜레마란 해외 진출 시 현지화가 수반하는 비용 압력을 일컫는다. 현지화를 하다 보면 각국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시킬 수야 있겠지만 제품 단위당 비용이 증가하고 나라마다 중복 투자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궁극적으로 매출이 증가해도 수익률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물론 제품을 표준화해서 각국 시장에 판매할 경우 비용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각국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따라서 제품의 다양화(현지화)도 추구하면서 전체 비용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는 진출 기업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가장 많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실제 서구의 다국적 기업들은 궁여지책으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P&G의 경우 각국 현지 시장에 맞는 비누, 샴푸 제품을 공급하다 증가하는 비용 구조, 사업부서 간 관리, 통제, 조정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지역 기반의 사업부를 글로벌사업부로 통합하고 ‘도브’라는 비교적 표준화된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재공략했다. 이 사례는 성공 사례로 꼽히지만 날로 다양화하는 지역별 소비자 기호와 요구를 감안할 때 모든 기업에 추천할 만한 방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학자들은 Global-Local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정이나 가치사슬상 핵심 부문은 표준화하고 비핵심부문이나 차별화가 요구되는 부분을 현지화해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추천한다. 자동차로 치면 메인 프레임 또는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은 표준화하고 여타 지역색을 반영해야 하는 판촉, 서비스 등은 현지화해 생산하는 개념이다. 결국 세계 각지에 판매하는 자동차가 기본적으론 비슷하지만 기호에 맞게 조금씩 차별화돼 서로 다른 제품인 듯 인식된다.
CJ제일제당의 킬러 아이템인 만두의 경우 기본적으로 생산 방식은 플랫폼화돼 표준화된 절차로 세계 현지에서 생산·공급됐다. 하지만 재료와 포장은 차별화했다. 그리고 글로벌 R&D센터를 중심으로 제품이 좋은 반응을 얻은 이유들이 공유됐다. 이후 더 세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신제품 출시나 현지 시장 공략 전략이 수립됐다. 본사-해외 자회사의 역량이 계속 선순환되는 구조로 Global-Local 딜레마를 극복한 것이다.
다만 이 방식이 효과를 보려면 세계 각 사업부별 업무 협조, 지식 공유가 필수적이다. 때론 본사가 해외 자회사의 좋은 아이디어를 역수입해서 재가공하고 다른 지역의 자회사에 다시 공급해야 하는 긴밀한 구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본사-해외 자회사 모두 윈윈하는 수평적인 조직구조가 필요하다. 이 방식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는 세계 각 지역 자회사들이 나름의 역량이 확보되지 않았거나, 별 권한이 없거나, 자회사 간 지식 공유, 원활한 업무 협조가 잘 되지 않는 기업문화 때문이다(이는 실무자들이 더 잘 이해할 것으로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CJ제일제당의 인수 역량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시장가치보다 내재가치에 무게를 둔 기업인수 철학도 주효했고 인수 후의 관리 방안도 탁월했다. 최근 중국 기업이 글로벌시장에서 약진하는 이유 중 하나로 중국식 M&A 운영 노하우가 학술연구에 자주 등장한다. 인수인 듯 인수 같지 않은, 이른바 ‘Light Touch 인수합병’이 부각되고 있다. Light Touch는 인수 후에도 피인수기업의 정체성과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면서 중국 기업도 같이 성장하는 통합방식이다. 피인수기업의 이탈과 사기저하를 막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육성해주는 방식으로서 기존 영미식 M&A에서는 보기 힘든 사례다. CJ제일제당이 베트남 국민 기업인 까우제와의 합병 과정은 이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CJ제일제당의 해외 시장 성공 사례는 해외 시장 진출 시 무엇을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할지를 보여주는 매우 모범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필자소개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류주한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jhryoo@hanyang.ac.kr
필자는 미국 뉴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에서 석사(국제경영학), 런던정경대에서 박사(경영전략)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United M&A, 삼성전자, 외교통상부에서 해외 M&A 및 투자 유치, 해외 직접투자 실무 및 IR, 정책 홍보 등의 업무를 수행한 바 있으며 국내의 학술저널 등에 기술벤처, 해외 진출 전략, 전략적 제휴, PMI 관련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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