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nt1: 정보재 시장에서는 가격 설정 뿐만 아니라 어떤 타이밍에 과금을 유도하는 수익모델이 시장의 주요 경합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카카오톡 기다리면 무료)

point2: 초기 거래 이외에 차기 거래부터는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 직접거래가 성사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성장률에 한계가 보인다. 직접거래를 방지하기 위해서 수요자와 공급자 양측에  어떠한 incentive, disincentive전략을 펼칠 것인지가 지속적 성장에 중요하다. 

point3: 플랫폼의 심장은 네트워크이다. 네트워크는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숨고와 같은 플랫폼은 수요자와 공급자로 구성되고 그 생태계가 네트워크이며 플랫폼의 심장이다. 수요자가 악화되도 생태계는 무너지고, 공급자가 악화되도 생태계는 무너진다. 숨고가 채택한 리드 제너레이션 방식은 공급자의 일방적인 과금을 강요하는 제도이다. 이는 공급자 생태계를 악화시켜 수요자로써도 플랫폼의 매력을 잃게 한다.

Article at a Glance

라이프스타일 서비스 중개 플랫폼인 ‘숨고’의 성장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청소, 이사, 건강, 레슨 등 다양한 서비스를 한 플랫폼서 중개해 수요자의 탐색 비용을 낮추고 제공자의 거래 기회를 확대했다.

2. 고객의 서비스 요청 정보를 분석해 고객이 원하는 고수를 찾아 섭외해주고 고수의 고객유치율을 높여 기존 플랫폼과 차별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3. 플랫폼 이탈률이 높은 거래 수수료 방식이 아닌 거래 성사율이 높은 고객 정보를 제공하고 그 고객에게 견적서를 제출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리드 제너레이션(lead generation)’ 방식을 도입해 플랫폼 리스크를 줄이고 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장동욱씨(연세대 정치 외교학과 4학년)가 참여했습니다.

프리랜서 인구 100만, 자영업자 500만 명 시대다.1 특정 직장의 직원이 아닌 각자의 전문성을 조직과 개인에게 제공하며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전체 경제 활동 인구수의 무려 4분의 1을 차지한다. 이들이 담당하는 이사, 청소, 어학 과외, 운동 등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직결되는 서비스도 수백 가지다.

하지만 이들에겐 ‘자투리 일을 하는 사람’ ‘임시직’ ‘구멍가게 사장’이라는 꼬리표가 줄곧 따라다녔다. 고객을 지속적으로 찾기 어려운데다 고객을 유치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벌이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최근 소비자들의 서비스 이용 형태가 조금씩 변화하면서 이들의 위상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대형 업체를 고용하거나 자급자족으로 해소했던 생활 서비스들을 전문가에게 위탁해 해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과외, 가사일, 인테리어 등 기존에 자주 이용했던 일대일 서비스를 넘어 취미생활,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까지 범위도 다양해졌다.

2014년, 브레이브모바일이 운영하는 숨고는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각종 라이프스타일 서비스를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오는 거대한 실험에 돌입했다. 정형화된 서비스도, 정해진 가격도 없다. 고객은 원하는 서비스를 원하는 만큼의 돈을 지불해 제공받을 수 있고, 고수는 업체 규모에 상관없이 자신의 실력과 서비스 정도에 맞는 돈을 지불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 이른바 숨어 있는 고객과 고수를 찾아 연결하는 ‘개인 맞춤형 생활 서비스 거래 플랫폼’을 만들어낸 것이다.

숨고는 ‘마찰 비용’을 최소화하는 플랫폼을 표방한다. 고객과 고수에게 필요한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는 것이 제1 원칙이다. 이를 통해 고객은 이용하고 싶어도 제공자를 찾지 못해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해소할 수 있고, 고수는 비용을 적게 들이고 고객을 최대한 많이 유치해 매출을 늘릴 수 있다.

음식 배달 플랫폼인 요기요 초대 CEO를 거쳐 청소 전문 서비스 플랫폼을 경험한 김로빈 브레이브모바일 대표는 종합 생활 서비스 거래 플랫폼 성공 사례를 국내에서 최초로 만들어보겠다는 포부로 숨고를 창업했다.

2016년 미국 최고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 프로그램에 선정돼 화제가 됐던 숨고는 현재까지 서비스 내실을 탄탄하게 다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36만 명의 고수가 760여 종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전체 앱 이용자 수는 260만 명이다. 사용자 간 거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2019년 기준 누적 견적 수가 1000만 건, 추정 거래액은 2450억 원에 달한다. 2019년 145억 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도 유치했다. DBR은 플랫폼 안착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숨고를 심층 분석했다.



한국 플랫폼 시장 매력에 빠지다

김로빈 대표는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다. 미국 에모리대를 졸업한 후 한국으로 와 LG전자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가 테크 스타트업에 발을 들인 건 2010년. 독일의 벤처캐피털 ‘팀유럽(Team Europe)’이 만든 배달 음식 플랫폼 ‘딜리버리 히어로(Delivery Hero)2 ’의 글로벌 시장 확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다.

당시 팀유럽은 한국 시장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시장 규모가 작은데다 모바일 플랫폼 시장도 막 시작하던 단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독일의 다른 플랫폼 사업의 한국 시장 진출을 돕던 지인에게 팀유럽 프로젝트를 전해 들은 김 대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한국 시장이 왜 가능성이 높은지, 왜 진출해야 하는지 수백 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만들어 직접 팀유럽에 전달했다. 그는 한국 소비자들이 배달 음식에 익숙해져 있다는 점, 전단을 집에 모아놓고 배달할 식당, 메뉴를 찾아 먹는다는 점 등 다른 시장에서 보기 어려운 소비자 행동을 분석해 설득했다. 그리고 김 대표 스스로가 초기 한국 시장 세팅을 담당하겠다고 나섰다.





그의 열정에 마음을 움직인 팀유럽은 김 대표를 한국에 만든 음식 배달 플랫폼 ‘요기요’의 초대 CEO로 임명했다. 20대 중반이었던 김 대표는 약 1년간 요기요 사업 초기 정착 과정을 진행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한국 플랫폼 시장이 기대 이상으로 매력적이란 사실도 알았다. 물론 시장이 작아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기 어려워 성공 확률이 낮다는 단점은 분명했다. 그러나 유리한 부분도 명확했다. 소비자들의 동질성이 상대적으로 크고 한번 시장에 침투하고 나면 선도 기업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매우 컸다. 그만큼 시장 장악력이 높았다.

사실 미국에선 10년 차 유니콘 기업 중 시장점유율 1% 남짓인 회사가 수두룩하다. 기업 규모 자체는 크지만 시장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정체된 기업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또한 미국은 국토가 큰 만큼 지역별 소비자 선호, 시장 상황, 규제 등이 다 다르기 때문에 시장을 확장하고 관리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반면 한국에선 서비스가 소비자들의 니즈를 기대하는 수준 이상으로 제공하면 서울에서 지방 도시까지 빠르게 확장될 수 있다. 한국에서 유행어나 트렌드가 빠르게 번지는 것처럼 소비자들 사이에서 비슷한 행동 양식을 보이기 때문에 네트워크 효과도 다른 국가나 지역에 비해 강한 편이다.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잠재적 요건을 갖춘 셈이다.

이때 김 대표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한국의 로컬 서비스 시장이었다. 영세업체, 개인 사업자 위주로 형성된 동네 생활 서비스 시장이 다른 시장에 비해 훨씬 낙후된 것을 직접 목격했다. 가사도우미 아주머니를 고용하고 싶으면 인력 사무소에 전화해 연결을 받아야 하고, 화장실 시공을 위해선 아파트 관리실, 인터넷 블로그 등 여러 군데를 돌고 나서야 전문가를 찾아냈다. 서비스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동네에 흩어진 정보들을 찾지 못해 서비스 거래가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이 시장 역시 배달 음식 플랫폼이 들어오기 전 전단지를 뒤졌던 시대에 멈춰 있었다.

문득 김 대표가 미국에서 자주 이용했던 ‘크레이그스리스트(Craigslist)’가 떠올랐다. 도시 내 각종 구인/구직 광고부터 중고물품 거래, 제품 광고 등을 할 수 있는 웹사이트인데 한국의 벼룩시장, 중고나라, 당근마켓과 유사한 형태다. 이 웹사이트의 장점은 지역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정보나 서비스를 한곳으로 모은다는 것. 한국에서도 산재된 서비스와 정보를 한곳에 모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김 대표는 “카카오톡은 한국 메신저 앱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90% 이상이다.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선도하는 기업이 시장에서 성공하면 그만큼 다른 나라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시장 장악력을 가져갈 수 있다. 숨고 또한 라이프스타일 서비스 거래 플랫폼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한다면 그와 같은 시장 파급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DBR mini box I
숨고 서비스 소개


숨고 서비스는 어떻게 작동할까. 실제 사용자 후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30대 회사원인 A 씨가 집 안에 마련한 드레스룸이 뒤죽박죽돼 있는 것을 보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A 씨는 숨고 앱을 열어 정리 홈/리빙 카테고리로 들어갔다. 다행히 정리수납 컨설팅 서비스가 목록에 포함돼 있었다. 이 서비스를 누르니 자신의 상태를 알아보는 간단한 설문 조사가 시작된다. 정리수납이 필요한 공간은 어디인지, 공간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 정리수납을 위한 컨설팅도 필요한지, 심지어 반려동물을 키우는지 여부와 같은 세심한 질문도 포함된다. 이후엔 집 주소, 원하는 시간 등 필요한 필수 정보들을 묻는 조사가 시작된다. 30분 남짓 기다리면 A 씨의 카카오톡, 문자, e메일 등에서 알람이 울린다. A 씨의 서비스 요청서를 본 고수들이 각자의 경력, 자격증, 특이사항, 가격, 고객 리뷰 등의 정보를 담은 견적서를 보내 ‘입찰’을 시작한 것이다. A 씨는 견적서 중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서비스와 가격을 보낸 고수를 선택한다. 고객과 고수는 개별적으로 연락을 취한 뒤 개별 상담에 들어간다. 그리고 협의 과정을 거쳐 실제 거래를 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전문 서비스 1등보다 종합 서비스 2등이 낫다

김 대표가 처음 도전한 것은 2014년 문을 연 청소 전문 서비스 플랫폼이었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수요가 많고, 청소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나 기대 수준이 어느 정도 형성된 만큼 서비스를 규격화된 ‘상품’처럼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비즈니스 시작 수개월 만에 비즈니스 방향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막상 서비스를 시작해 보니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첫째, 무엇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다. 서비스를 상품처럼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게 만들기 위해 청소 서비스 제공자들을 교육하고 고객의 사후관리까지 도맡아야 했다. 그런데 들이는 노력에 비해 결과는 아쉬웠다. 사람들 개개인이 느끼는 비용 대비 서비스 만족도가 천차만별이었다. A 고객에게는 별점 5점짜리 청소 도우미가 B 고객에게는 별점 1점도 못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주관적인 고객의 불만족에 정면으로 나서야 하는 것은 결국 플랫폼 운영자인 김 대표였다. 김 대표는 ‘가격 대비 서비스 만족도’가 너무 달라 플랫폼이 주도적으로 품질을 관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느꼈다.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가 서비스 품질과 가격을 스스로 정하게끔 하는 서비스 플랫폼이 장기적으론 생명력이 길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한번 청소 서비스 거래가 완성된 이후에는 다시 플랫폼으로 돌아올 유인책이 적다는 것도 문제였다. 당사자들이 중개 수수료를 내지 않고 직접 거래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 사람을 독점하고자 하는 고객의 니즈도 무시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주기보다는 자신이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비스를 제공받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지속되면 새로운 사용자가 많이 늘어나지 않아 결국 플랫폼의 지속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고객은 적합한 서비스 제공자 풀이 적어 자신에게 맞는 서비스 제공자를 찾기 어렵고, 서비스 제공자는 잠재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

시장을 좀 더 넓게 확대해 여러 서비스를 동시에 중개하는 플랫폼으로 방향을 바꿔서 생각해봤다. 훨씬 더 많은 기회가 눈에 보였다. 청소, 이사, 인테리어 등 전문화된 플랫폼에 진출해 특정 시장에서 1등을 차지하는 것보다 모든 서비스를 한 플랫폼에서 제공해 각 시장의 플레이어와의 경쟁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 섰다. 시장 규모만 비교해 봐도 답은 명확했다. 숨고 추산에 따르면 한국의 인테리어, 청소, 이사 시장 규모만 각각 30조 원,
8조 원, 4조5000억 원이다. 여기에 종사하는 자영업자, 프리랜서 240만 명이 월평균 50만 원의 온라인 광고비를 집행한다고 가정할 경우 그 규모는 14조40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그만큼 숨고의 성장 잠재력이 훨씬 더 확대될 수 있다. 미국에서 유사한 서비스로 성공하고 있는 섬택(Thumbtack)을 벤치마크해 본다면 한국에서 관련 시장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섰다.

김 대표의 아이디어가 처음부터 환영받은 건 아니었다. 청소 서비스를 함께하던 동료들 중 일부는 이 새로운 서비스에 난색을 표했다. 그중 몇 명은 끝까지 반대하다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지난 사업을 정리하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도 고작 4000만 원 정도였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이 방향을 굽히지 않았다. 일부에선 실제 이런 시장이 존재하는지 먼저 분석부터 하고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도 했다. 김 대표는 그 시간에 빠르게 실행해보고 직접 경험하는 게 더 낫다고 설득했다.

DBR mini box II
미국의 섬택(Thumbtack)은…

숨고와 가장 유사한 형태의 플랫폼은 2008년 마르코 자파코스타가 세운 미국의 섬택이다. 실제로 김 대표는 숨고를 ‘한국의 섬택’으로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실제로 플랫폼의 성격이나 운영 형태가 매우 유사하다. 우선 서비스가 특정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무려 1000여 종의 다른 서비스를 검색해볼 수 있다. 숨고와 마찬가지로 고객이 먼저 서비스를 검색한 후 전문가와 연결돼 개별적으로 거래 가격 및 서비스 형태를 결정한다. 또한 서비스 제공자들이 자신의 서비스 특장점, 가격 등을 고객에게 제시해 서로 경쟁한 후 ‘낙찰’받는다. 역시 거래 가능성이 높은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서비스 제공자로부터 돈을 받는다. 2019년 섬택의 기업 가치는 19억 달러(약 2조3000억 원).

섬택이 미국에서 환영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역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들이 겪는 불만을 해소했기 때문이다. 바로 광고비다. 프리랜서가 고용되기 위해 각종 검색엔진에 광고를 하는데 이 비용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게다가 광고를 해도 고용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섬택을 활용하는 서비스 제공자가 1회 서비스로 벌 수 있는 돈은 평균 600달러 정도인데, 이때 들어가는 비용은 3달러에서 25달러다.

7만여 명이 섬택을 통해 300만 개의 서비스를 제공했고 약 180억 달러 규모의 경제효과를 일으켰다. 시장 내 영향력을 인정받아 2019년 세콰이어캐피털, 구글로부터 각각 3000만 달러, 1억 달러를 투자받았다.

숨고는 섬택을 벤치마크하되 한국 시장에 맞게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하는 것에 집중했다. 가령, 과외나 레슨 서비스로 초기 시장에 진입해 한국인들이 자주 쓰거나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찾아 차례로 확대하거나 설문 조사 구성을 한국 소비자들이나 서비스 특성에 맞게 재구성하는 등의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우선 숨고 플랫폼부터 만들었다. 내부개발자가 없었던 상황이라 외주 업체에 맡겨 아주 간단한 초기 플랫폼을 완성했다. 동시에 플랫폼상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고수를 모집했다. 김 대표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미국 수능 격인 SAT 과외를 해봤던 경험이 떠올랐다. 매번 과외를 구할 때마다 각기 다른 블로그나 카페, 중개업체를 들락날락해야 했던 불편한 경험이 스쳐 지나갔다. 여러 군데에 흩어진 과외 정보를 한 플랫폼에서 구할 수 있다면 승산이 있어 보였다.

그 뒤엔 모든 일이 ‘수작업’이었다. 과외 관련 블로그마다 들어가 가입자에게 일일이 메시지를 보내 숨고로 고수들을 스카우트했다. 거래 서비스 가격의 평균 20∼30% 정도 떼는 수수료를 받지 않는 등 기존 플랫폼을 이용할 때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고객을 구할 수 있다는 확실한 메리트 덕에 대부분 솔깃해 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과외 고수들이 숨고에 자신의 프로필을 등록하기 시작했다.

고객을 모으기 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광고도 집행했다. 고객들에게는 ‘자동 매칭’ 서비스를 강조했다. 고객이 일일이 고수를 살펴보고 자신과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가늠해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설문 조사만 작성하면 자신과 맞을 가능성이 높은 서비스 제공자를 찾아준다는 점을 내세웠다.

2015년 10월, 우여곡절 끝에 숨고 서비스가 론칭됐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서비스 론칭 석 달 만에 고수 3300명이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고객 수도 8700명에 달했다. 숨고의 가능성을 세상에 알리는 순간이었다.

누구나 많이 찾는 일반적인 서비스가 아닌 틈새 서비스 시장에서 승산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광고한 보컬 트레이닝 레슨을 받겠다며 새로운 가입자들이 대거 유입된 것이다. 숨고 내부 직원들이 데이터를 분석해 찾은 원인은 단순했다. 당시 TV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이 방송을 본 시청자 중 노래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보컬 트레이닝 레슨을 받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고, 그 결과 숨고를 찾아 들어온 것이다. 이 서비스가 인기를 끌자 전국에 숨어 있던 보컬 트레이너들이 숨고에 등록했다. 그동안 노래를 배우고 싶었지만 선생님을 찾지 못해 마음만 굴뚝같았던 사람들도 플랫폼에 유입됐다. 실제 숨어 있던 서비스가 잠재된 니즈와 만나면서 숨고의 매출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2018년 4월, 와이콤비네이터 후속 투자와 함께 아이디벤처스, IMM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약 50억 원의 시리즈 A 투자를 달성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점진적 확장에서 동시다발 확장으로 전환

2017년, 또 다른 희소식이 들려왔다. 실리콘밸리의 대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에서 숨고를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한 것. 와이콤비네이터는 유망한 스타트업을 선발해 이들이 사업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전방위 자문을 해주는 미국 실리콘밸리 대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다. 이곳 출신인 한국 스타트업은 4개. 화장품 샘플 구독 서비스로 시작한 미미박스,가사도우미 플랫폼 미소, 채팅 솔루션 센드버드, 그리고 숨고다. 특히 같은 해에 선정된 미소와 숨고는 한국 로컬 시장을 겨냥한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수년 만에 급성장한 야놀자, 쿠팡, 배달의민족 등의 역할이 컸다. 로컬 시장을 겨냥한 서비스도 빠르게 성장하고, 시장 내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목격한 미국 스타트업 전문가들이 차세대 플랫폼 리더로 두 회사를 주목했기 때문이다.

숨고 팀은 기대를 안고 실리콘밸리로 날아갔다. 그리고 숨고를 지금까지 키울 수 있는 기본기를 차곡차곡 쌓았다. 특히 숨고의 멘토였던 마이클 세이벨(Micheal Seibel) 와이콤비네이터 대표의 조언은 지금의 숨고를 정착시키는 데 큰 영향력을 끼쳤다. 세이벨 대표는 숨고 멤버들에게 “왜 플랫폼에 과외, 레슨 서비스밖에 없나?”는 질문을 던졌다. 이유는 너무 당연했다. 아직 플랫폼이 정착하지 않는 시점에서 무리하게 서비스를 확장할 순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점진적으로 서비스를 늘릴 계획이라고 대답했다.

세이벨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지고 시작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플랫폼 비즈니스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수요자들이 들어올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한데 지속적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대한 신속하게 가능한 한 많은 카테고리의 서비스를 플랫폼에 뿌려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를 포함한 창업 멤버들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김 대표는 바로 한국 본사와 연락해 서비스 카테고리를 확장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숨고는 홈리빙, 이벤트, 비즈니스 카테고리를 동시에 론칭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이때 가장 염두에 둔 것은 각 서비스 카테고리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적정 고수의 수를 확보하는 것. 과외와 같은 경우엔 고객이 주 2∼3회씩 서비스를 이용한다. 그만큼 회전율이 빠르기 때문에 더 많은 고수가 필요하다. 반면 이사나 인테리어는 서비스 기간도 길고, 주기도 길다. 초기에 상대적으로 적은 고수를 확보해 차츰 늘려가는 게 가능하다.

이렇게 우선순위를 정한 후 또다시 고수 섭외 작업이 시작됐다. 지역 커뮤니티의 인테리어 업체 광고를 통해 연락을 취하기도 하고,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블로그에 무작정 들어가 숨고를 알렸다. 다행히 고수들이 온라인 서비스 거래에 익숙했기 때문에 큰 거부감 없이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숨고에 가입할 때 초기 수수료가 없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카테고리별 세부 서비스를 어떻게 정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다른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이사, 집 안 청소, 영어 과외 등 일반적인 서비스로는 고객을 끌어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수들과의 인터뷰, 시장 조사를 통해 옷장 정리, 비즈니스 영어, SAT 과외, 세탁기 청소 등 고객이 원하는 세부 서비스를 정리해 나열했다. 꼬박 3개월을 밤낮으로 고생한 끝에 3개의 서비스 카테고리, 150여 개의 서비스를 한 번에 론칭할 수 있었다.

그 뒤, 숨고의 ‘히트’ 서비스가 차례로 늘어났다. 대부분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의 변화와 함께 숨고 서비스 요청도 증가했다. 예컨대, 빈티지한 느낌의 인테리어가 유행을 타자 바닥 표면 처리 기법인 에폭시 시공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숨고의 인테리어 서비스를 찾기 시작했다. 또한 넷플릭스에서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정리정돈 컨설팅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자 숨고에도 정리정돈 컨설팅 서비스 요청이 급격히 늘어났다.

언제부턴가 프리랜서,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닌 재능이나 경험을 서비스로 등록하는 고수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쇼미더머니6에서 이름을 알린 래퍼 라이노도 숨고를 통해 제자들을 가르친다. 평소 ‘랩은 스스로 깨우치는 거다’라고 생각했던 그는 숨고를 통해 다양한 제자를 만나면서 마음을 바꿨다. 기본기를 가르치면서 자신의 실력도 함께 커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끼고 있다. 요즘엔 각종 랩 오디션 준비를 도와주겠다며 등록한 고수들의 숫자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대기업 임원 출신의 중년 아저씨도 숨고에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취업 컨설팅 서비스를 해주기도 하고, 기업 전략 컨설팅도 도와준다.

사용자가 늘어나자 숨은 고수들도 기존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를 스스로 찾아 올리기 시작했다. 빈집에서 반려동물을 돌봐주는 ‘펫시터’가 대표적인 예다. 펫시터의 경우 론칭 초반에는 서비스 요청자들은 많았지만 정작 제공자들이 많지 않아 거래가 성사되자 않았다. 그런데 숨고의 인지도가 올라가고 숨고에서 활약하는 고수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펫시터들도 자신의 서비스를 하나둘씩 올리기 시작했다. 반려동물 돌봄 서비스는 이제 숨고의 대표 서비스 중 하나가 됐다. 숨고가 제공하는 틈새 서비스가 새로운 수요자를 끌어들이고, 수요자가 늘어나면서 또 다른 새로운 서비스로 확대되는 생태계가 형성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벤트 기획, 뷰티/건강, 디자인/개발, 비즈니스 등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성됐고, 숨고에는 760여 가지의 서비스가 등록됐다.

이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도, 고수가 제공하고자 하는 서비스도 계속해서 확장하는 효과를 얻었다. 청소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이 다음번엔 아이의 수영 레슨 선생님을 찾고, 이사를 할 때에는 이사 용역을 고용하는 식으로 ‘크로스셀링(Cross Selling)’이 가능해진 것이다. 고수 입장에서도 화장실 청소 서비스에서 부엌, 냉장고 청소, 세탁기 청소 등으로 서비스를 세분화/다양화할 수 있다. 또한 고수가 숨고의 다른 서비스를 이용해보기 위해 고객이 될 수 있고, 고객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고수로 등록해볼 수 있다. 실제로 2019년 전체 서비스 요청서 180만 건 중 두 번 이상 서비스를 요청한 고객 비중이 40.6%를 차지했다.

이지혜 브레이브모바일 마케팅 총괄이사는 “만약 우리가 인기 서비스 몇 개에 국한해 운영했다면 경험할 수 없었던 현상이었다. 결국 어떠한 서비스를, 언제 원하는지는 고객들이 정한다. 고객들은 시장 트렌드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라면 언제든 제공할 수 있는 ‘맞춤형’ 플랫폼을 원한다. 숨고는 그런 면에서 다른 유사 서비스 중개 플랫폼과 차별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의 힘’에 맡기자…
최소한의 관여로 최고의 매칭을

숨고는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원칙이다. 고객이나 고수가 원하면 서비스는 계속해서 업데이트할 수 있고 서비스 가격 범위도 정하기 나름이다. 모든 것은 플랫폼에 들어온 서비스 제공자와 사용자가 결정하게끔 설계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오프라인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인 만큼 온라인에서 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의 관리와 책임이 핵심일 것이라는 통념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시장의 힘’에 주목한 결과다. 흩어진 정보를 한곳에 모으고 필요한 정보를 여과 없이 공개해 정보 비대칭은 제거하고 정보 효율성을 높인다면 그동안 동네에서 잠자고 있던 거래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각자가 다양한 선택지에서 거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하면 결국 서로가 원하는 최적의 거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숨고는 직접 중개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을 만나게 해주는 마켓플레이스(Marketplace)로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숨고는 사용자가 원하는 공급자 관련 정보를 다양한 각도에서 제공하고 있다. 고수 각각을 소개할 수 있는 페이지를 만들어 서비스 전문성을 증명할 수 있는 자격증과 경력사항, 과거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들이 준 별점이나 리뷰를 공개했다. 이 고수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간단하게 소개도 해준다. 이 정보들을 토대로 고객은 자신과 이 고수가 잘 맞는지, 믿을 수 있는지를 파악해볼 수 있다.

고객이 자신이 마음에 드는 고수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숨고만의 차별화 포인트다. 자신이 요청한 조건에 맞는 고수들이 직접 제출한 견적서를 모두 살펴본 후 거래를 결정할 수 있다. 해당 서비스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것인지, 어느 정도 경력의 사람들이 실제로 시장에 있는지 직접 판단할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 구하기 힘든 정보들을 발품을 들이지 않고 제공받아 정보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숨고는 서비스별 예상 가격도 제시해 고객이 제안받은 견적서 가격이 어느 정도 타당한지 가늠할 수 있도록 했다.

고수 입장에서도 고객 정보를 사전에 파악해 자신과 거래할 가능성이 높은 고객에게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 숨고가 고객 정보를 파악한 후, 고객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고수를 골라 서비스 요청서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고수가 혼자의 힘으로 찾지 못했던 고객 니즈 정보를 숨고가 취합해 제공해주는 셈이다. 이로써 더 많은 거래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숨고에서는 대형 업체와 개인이 같은 서비스를 두고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 쉽게 예를 들어, 대기업 직영인 인테리어 업체와 인테리어 사무실이 운영하는 개인 업체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대기업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란 생각은 기우다. 개인별로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의 정도와 견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적은 비용으로 간단한 시공을 하고 싶은 고객이라면 굳이 비싼 돈을 주고 대형 인테리어 업체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공급자와 수요자들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와 별도로 자유경쟁 시장이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선 이를 지켜낼 수 있는 최소한의 ‘엄격한 룰’도 정착시켰다. 숨고는 플랫폼 플레이어들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안전 거래를 정착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첫째, 일부 카테고리에 한해 사업자등록증은 필수다. 안전, 전문 지식 등이 중요한 법률 상담, 인테리어, 이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고수들은 유효한 사업등록증을 등록해야 고객에게 견적서를 제출할 수 있다.

둘째, 에스크로(escrow) 제도다. 에스크로는 이미 중고나라와 같은 전자상거래 시스템에서 도입하고 있는 시스템인데 판매자와 구매자의 사이에 신뢰할 수 있는 중립적인 제삼자가 중개해 금전 또는 물품을 거래하도록 한다. 즉, 고객이 지불한 돈을 숨고가 보관하고 있다가 거래가 완료된 후에 고수에게 지불해주는 식이다. 소위 말하는 ‘먹튀’ 고수와 고객을 방지할 수 있다.

셋째, 원아웃 제도다. 만약 서비스 관련 분쟁이나 심각한 수준의 고객 불만이 한 번이라도 들어온다면 그 고수는 더 이상 숨고에서 활동할 수 없다. 매우 엄격한 페널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숨고 플랫폼 내에서 책임 있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거래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숨고의 고객은 ‘고수’… 전방위 마케터로 활약


고수들에겐 숨고가 유능한 마케터로서 일해 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숨고의 카테고리 매니저들이 고수들을 전담 마크한다. 고수들은 대부분 영세한 사업자이거나 개인이다.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마케팅 방법을 제대로 찾지 못하거나 찾아도 과도한 비용 부담 때문에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이지혜 이사는 고수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면서 인터넷 환경에 익숙하지 않거나 온라인 광고 시스템을 잘 몰라 불필요한 비용을 과다하게 지출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했다. 홍보 블로그 제작을 위탁하려고 업체를 찾았는데 시세보다 10배 이상 바가지를 쓴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서비스 중개 수수료가 전체 매출의 20∼30% 이상을 차지해 사실상 남는 게 없어 생계가 어렵다고 호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숨고에서는 이러한 복잡하고 불합리한 과정이 생략된다. 별 다른 비용을 들이지 않고 플랫폼에 자신의 프로필만 올리면 된다. 고수들이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별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널을 통해 광고하지 않아도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청년 세대뿐만 아니라 5060세대도 쉽게 숨고 플랫폼에 유입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플랫폼 자체가 카카오톡에 가입하고 메시지를 보낼 수 있으면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쉽게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가 바로 고수 컨설팅 서비스. 카테고리 매니저들은 고수들이 숨고에 공개되는 자신의 프로필을 어떻게 소개해야 하는지, 어떤 프로필의 고수들이 좀 더 거래 성사율이 높은지 등을 친절하게 상담해준다. 프로필에 단순히 자신의 경력만을 담기보다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취미생활 등 고수를 보다 상세히 알릴 수 있는 정보들을 함께 담는 것이 고객을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힌트도 제공한다. 고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를 ‘브런치’와 같은 외부 블로그 콘텐츠 플랫폼에 공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숨고가 성장하던 시기, 고수들의 불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고수가 잠시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거래 성사율이 낮아진 것. 가입 후 두세 달 동안 거래 한 번 성사시키지 못한 고수들이 많았다. 더러 숨고를 믿지 못하겠다고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숨고는 이들을 안심시키면서 지원 서비스를 묵묵히 제공해 나갔다. 고수들이 숨고를 잊고 지낼지언정 숨고는 이들에게 고객들이 요청한 제안서를 꾸준히 보내줬다. 속는 셈 치고 고객에게 보낸 견적서에 하나둘씩 답이 오기 시작했다.

고수들의 거래 성사율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대응책도 제시했다. 숨고가 데이터를 분석해본 결과, 고객 리뷰가 3개가 쌓이기 시작하면 거래 성공률이 높아졌다. 고수들이 다른 플랫폼에서 서비스를 거래하고 받을 리뷰를 최대 3개까지 숨고 플랫폼과 연동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했다. 이렇게 고객을 조금씩 늘려가자 선순환 효과가 나타났다. 고수에 대한 리뷰가 쌓이면서 서비스 신뢰도가 올라갔고 더 많은 고객이 고수를 찾기 시작했다. 당연히 거래 성사율도 올라갔다.

숨고는 실제 고수들의 삶을 바꿔놓기도 했다. 폐업 위기에 있던 A 청소업체 대표는 숨고를 통해 재기해 직원 20여 명을 고용한 어엿한 대표가 됐다. 이 회사는 숨고를 통해 하루에 적게는 50개, 많게는 100여 개 고객요청서를 받고 있다. 이 회사는 현재 다른 청소 플랫폼에서도 활동하고 있지만 전체 매출의 약 70%가 숨고를 통해 나온다. 각종 포털 사이트에 내는 광고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경영난에 시달렸던 B 인테리어 업체 대표도 숨고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그는 큰마음 먹고 포털 사이트 광고도 해봤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해마다 높아지는 광고비에 허덕일 뿐이었다. 숨고를 만나면서 상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작은 인테리어 공사 수주 경력을 바탕으로 하나둘씩 거래를 늘려갈 수 있었다. 좋은 서비스 평가가 쌓이자 찾는 사람도 늘었다. 이제 절반 이상의 수입을 숨고를 통해 번다.3

숨고는 고객이 고수의 신규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 서비스 가격의 일부를 대신 내주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플랫폼이 시장의 기존 플레이어들에 의해 장악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물이 들어오면서 선순환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서비스 가격의 10% 정도인데 이사, 인테리어와 같은 고가의 서비스가 많아 최대 지원금을 25000원으로 제한했는데 이제껏 숨고가 부담한 금액만 약 9300만 원 정도다.

김태우 브레이브모바일 제품총괄 이사는 “현재 숨고 플랫폼에서 36만여 명의 고수가 활동하고 있다. 다른 플랫폼에서 중복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숨고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숨고에서 거래 요청이 훨씬 더 많이 들어오고, 성사되는 거래건수도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DBR mini box III
‘춘추전국시대’ 들어선 로컬 서비스 거래 플랫폼 비교해보니…

프리랜서 고용시장이 확대되면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얼핏 보면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같지만 저마다 집중하는 시장도, 플랫폼 작동 메커니즘도 다르다. 크몽, 탈잉부터 미소까지 시장 내 숨고의 잠재적 경쟁사들의 플랫폼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분석해봤다.



1. 온라인 아웃소싱 전문 플랫폼, 크몽•위시캣

크몽과 위시캣은 수수료를 받고 아웃소싱 업무를 해주는 플랫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서비스를 중개하는 방식과 집중하는 서비스의 형태는 조금 다르다.

크몽은 2012년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등 간단한 서비스로 시작했는데 현재는 명함 디자인, 영상 제작, 통•번역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숨고가 개인 간 거래를 통해 서비스의 질과 가격을 결정한다면 크몽은 상품 구매 플랫폼에 더 가깝다. 각 서비스를 제공하는 참여자가 자신만의 섬네일을 만들고, 가격과 서비스 정보를 제공하면 서비스 이용자가 선택해 결제하는 식이다. 즉각적으로 서비스를 비교할 수 있고, 가격을 먼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와 맞지 않거나 기대했던 서비스와는 다를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같은 카테고리에 나열된 서비스가 너무 많아 오히려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도 고객들이 꼽는 불만 중 하나다.

크몽의 가장 큰 문제점은 수수료 중개 시스템으로 인해 ‘우회 거래’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초기 거래를 일으킬 때 수수료를 내고 같은 고객과의 거래가 반복되면 굳이 수수료를 추가로 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크몽은 현재 50만 원 이하 서비스에는 수수료율 20%, 200만 원 이하는 12%, 200만 원 이상은 6%를 부과하고 있다.

위시캣은 플랫폼 중개자의 역할이 보다 강화된 형태로 운영된다. 웹 개발 및 디자인 등 전문 IT 아웃소싱을 주로 다루는데 서비스 중개는 물론 IT 전문성이 부족한 의뢰인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해 IT 전문가에게 전달하는 역할까지 담당한다. 위시캣이 의뢰인의 요구사항을 파악한 후 적임자를 선택하는 것은 물론 서비스 관리까지 담당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비스 제공자와 사용자 모두 플랫폼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수수료 부과 서비스임에도 우회 거래가 발생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2. 취미/ 과외 관련 서비스로 시장 규모 키우는 탈잉

다른 국내 프리랜서 시장이 단순 작업에서 전문 업무 아웃소싱에 집중하고 있다면 탈잉은 취미생활이나 자기관리 등 여가 시간과 관련한 전문가들로부터 맞춤형 교육을 받는 데 집중한다. 탈잉 또한 크몽처럼 서비스를 상품처럼 만들어 소비자가 주문하는 ‘마켓형’으로 이뤄진다. 즉, 전자상거래에서 쇼핑을 하듯이 섬네일을 보고 레슨을 선택할 수 있다.

탈잉은 서비스 제공자 관리를 상대적으로 엄격히 진행한다. 우선, 플랫폼 진입하기 전부터 관리가 들어간다. 서류 심사, 전화 면접 등을 통과해야 서비스를 플랫폼에 올릴 수 있는데 합격률이 60% 수준이다. 강의 경력 및 전문성 등을 모두 고려한다. 플랫폼에 제공하는 서비스와 관련해서도 관여도가 높은 편이다. 구체적인 강의 계획서를 제출해야 하고 수업과 관련한 이미지 첨부도 필수다.

플랫폼의 서비스 관여도가 높기 때문에 수수료율도 높은 편이다. 하루 수업 수수료는 20%이고, 2회 이상 수업 수수료는 첫 수업의 1시간에 해당되는 수업료다. 이 때문에 거래 당사자들이 수수료를 회피하기 위한 우회 거래가 가능하다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3. 홈리빙 서비스에 집중하는 미소

2015년 서비스를 시작한 미소는 홈클리닝 전문 업체다. 누적 주문 수 200만 건, 파트너 수 3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 미소는 고객이 서비스를 신청하면 고객의 지역, 시간, 날짜 등의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클리너를 파견한다. 오프라인의 가사도우미 관리사무소를 데이터를 활용한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왔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클리너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교육하는 것도 미소의 업무다. 서울 역삼, 구로, 성수 등에 오프라인 교육장을 만들어 운영 중이며 서류 심사와 면접을 거쳐 클리너를 뽑는다.

미소 역시 수수료로 매출을 낸다. 미소 서비스 제공자들은 입회비나 가입비는 없지만 서비스 거래당 수수료율이 적게는 10%, 많게는 30%로 알려져 있다. 수수료 비용 때문에 우회 거래의 위험이 크다는 평가다. 실제로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 간의 신뢰가 쌓인 후에는 개인 간 거래로 돌려 저렴한 가격으로 거래하는 경우가 종종 목격된다.

하지만 미소는 여러 가지 안전장치로 이 약점을 보완하고 있다.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관리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클리너가 실수로 물건을 파손한 경우 보험으로 처리해 바로 보상해준다. 또한 서비스 평가가 좋은 클리너에게는 수수료율을 낮추고 최우선으로 고객을 매칭해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해준다.

최근에는 이사 서비스도 추가했다. 미소 견적 매니저가 현장에 방문해 입체 촬영한 후 최대 3개 업체의 견적을 제시하면 고객이 선택하는 식이다. 이사 업체 입장에서는 직접 고객을 방문하지 않아도 되고 고객 입장에서는 이사 서비스 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차별화 포인트다. 하지만 관련 서비스 역시 미소가 직접 인력을 파견하고 업체들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엔 서비스를 인테리어, 육아, 요리 등 58개 서비스로 넓힌다는 계획이다.

‘리드 제너레이션’으로 네트워크 효과 확대

이쯤 되면 궁금한 점이 생긴다. 대체 숨고는 어떻게 돈을 벌까. 고수는 숨고가 제공한 고객 서비스 요청서를 보고 고객에게 견적서를 발송하는 대가로 돈을 낸다. 플랫폼에 캐시를 충전한 후 견적서를 보낼 때마다 일정 금액에 차감되는 ‘Pay-as-you-go’ 형태다. 즉, 고수는 숨고에 돈을 지불하고 유치 가능성이 높은 잠재 고객의 정보를 사오는 것이다. 적게는 1200원부터 많게는 1만1700원까지 부과된다. 거래가 성사되든, 아니든 관계없이 고객 정보를 받아 고객에게 견적서를 제공했다면 금액이 차감된다. 경쟁이 치열한 지역일수록, 서비스 거래 평균 금액이 높은 지역일수록 견적서 요청 가격이 올라가는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 제도도 적용했다. 이렇게 영업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해 매출을 내는 것을 흔히 리드 제너레이션(Lead Generation) 방식이라고도 말한다.4

리드 제너레이션 방식은 국내 유사 서비스 중개 플랫폼과 숨고가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플랫폼에서는 거래를 성사시킨 후 수수료를 받는다. 사용자가 익숙한 방식이기도 하고, 매출을 일으키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수수료 부과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우선, 플랫폼을 통해 만난 서비스 사용자가 제공자가 이후 수수료를 내지 않기 위해 개별적으로 거래해 발생하는 ‘우회 거래’를 방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청소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거래한 두 당사자가 이후에는 개인 연락처로 연락해 수수료 없이 거래를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쉽다. 실제로 미국의 청소 서비스 매칭 서비스인 홈조이(HomeJoy)는 이 방식으로 서비스를 운영하다 창업 5년 만에 문을 닫았다.

결국 숨고는 플랫폼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제공해 유저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고수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다. 성사 가능성이 높은 고객 정보를 계속 얻을 수 있다면 돈이 들더라도 플랫폼을 버릴 이유가 없었다.

숨고는 거래 성사율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참’인 고객 정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데이팅 앱을 대입해 생각해보면 쉽다. 좋은 데이트 상대를 매칭해 주기 위해선 고객이 생각하는 이성의 조건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외모부터 직업, 성격, 취미까지 매칭에 유용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파악할수록 좋다. 숨고도 마찬가지다. 고객이 서비스를 요청할 때 최대한 많은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실제로 고객이 숨고 서비스를 요청하기 위해선 10개 안팎으로 구성된 설문 조사를 마쳐야 한다. 중국어 레슨을 받고 싶어 서비스를 신청한다고 가정해보자. 설문 조사를 통해 레슨 목적, 세부 희망 교육 프로그램, 선생님 성별에서 레슨을 받고 싶은 지역까지 모두 선택해야 한다.

서비스 특성별로 꼭 필요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설문 조사도 바뀐다. 인테리어 서비스를 요청할 때에는 면적의 크기, 시공하고 싶은 부분 등과 관련한 질문이 들어간다. 정리정돈 컨설팅 서비스를 요청한 경우 옷장 정리를 원하는지, 부엌 정리를 원하는지 등 원하는 서비스를 구체적으로 신청할 수 있다.

고수들이 ‘이 정보가 없으면 고객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적극 반영했다. 이삿짐 서비스를 하는 고수들은 실제 견적과 고객이 파악한 견적의 차이가 커 현장에서 난처한 경우가 많다는 점을 자주 토로했다. 요청서보다 실제 짐이 많아 추가 비용을 청구하면서 갈등이 종종 빚어지기도 했다. 숨고는 이삿짐 서비스에 한해 사진 첨부 기능을 추가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퍼스널 트레이닝처럼 성별에 민감한 서비스에 한해 고객이 선호하는 성별을 먼저 요청하게끔 설문 조사 질문을 추가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8개 서비스 카테고리, 760여 종의 서비스에 대한 핵심 고객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때 얼마나 효과적으로 서비스 요청 설문 조사를 설계하는 것인가도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고수들이 원하는 정보가 포함돼 있으면서, 이와 동시에 고객들이 설문 조사를 귀찮게 여겨 서비스 요청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균형’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숨고는 항상 샘플 설문 조사 테스트와 고수들의 반응을 통해 설문 조사의 정확도를 높이는 작업을 수시로 진행한다.

고객 데이터를 통해 서비스 트렌드를 정교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고수들에게 요즘 ‘뜨는’ 고객 수요를 미리 귀띔해주는 것도 가능해졌다. 여름이 되면 에어컨 청소 수요가 늘어난다. 세탁기 청소 서비스를 등록한 고수에게 에어컨 청소 서비스를 추가로 등록하라고 권유한다. 봄철 미세먼지 관련 서비스 요청이 많아지게 되면 인테리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수에게 미세먼지 차단 방충망 설치 서비스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사전에 알려준다. 이를 통해 고수들은 자신의 서비스를 잘게 쪼개 다양화할 수 있고, 시장 상황에 맞는 서비스를 유연하게 제공할 수 있다.



향후 성장 과제

숨고는 아직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다양한 플레이어가 같은 시장 내에서 영향력을 넓혀 1등 플랫폼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오프라인 노동시장과 연결된 온라인 플랫폼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점들을 누가 더 빠르게 해소하고 네트워크를 확대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우선 숨고는 다른 업체들과 다른 전략들을 내세워 차별화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이 전략으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는지 여부는 다른 이야기다. 숨고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무엇인지 정리했다.

1. 플랫폼 네트워크 확대의 ‘태생적’ 어려움

플랫폼 비즈니스가 성공하기 위해선 빠르게 많은 유저를 확보해야 한다. 성공한 플랫폼 기업을 보면 어느 순간 유저가 빠르게 늘어나는 구간, 즉 J-커브에 진입해 다른 경쟁자들보다 압도적 시장 지위를 얻는 형태를 보인다. 카카오톡, 배달의민족 등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간다.

하지만 라이프스타일 서비스 중개 플랫폼은
J커브를 빠르게 달성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선, 서비스 거래가 완료될 때까지 걸리는 주기가 상대적으로 길다. 회전율이 좋은 식당이 매출을 많이 내는 것처럼 서비스 주기가 길어지면 상대적으로 네트워크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거래 가격과 상품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서비스 경험치가 고객마다 다르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그렇기에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입소문을 내기도, 추천하기도 어렵다. 물론 오프라인 서비스를 전제로 하는 배달 음식 플랫폼의 확산 속도를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배달 플랫폼의 경우 고객들이 ‘내가 주문한 음식을 신속하게 배달해준다’는 간단하고 유사한 경험을 공유한다. 이 부분은 숨고와 같이 주관적 경험 비중이 높은 플랫폼에서는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다.

숨고는 이 문제를 고객에겐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수에겐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장점으로 해소하고 있다. 플랫폼을 특정 서비스에 한정하지 않고 확장해 유저들의 진입장벽을 최대한 낮춘 것이다. 향후 이와 같은 숨고의 전략이 다른 업체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 Vertical vs. Horizontal

청소, 인테리어 등 하나의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시장을 수직적 시장(Vertical market), 다양한 서비스를 한 플랫폼에서 확장해 제공하는 시장을 수평적 시장(Horizontal market)이라고 한다. 숨고를 제외한 다른 플랫폼은 모두 수직적 시장을 표방한다. 소수의 서비스로 한정한 후 서비스 제공자와 품질관리에 집중하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 숨고는 다양한 서비스를 한 플랫폼에서 거래하고 검색할 수 있게끔 해 고객과 고수의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하는 수평적 시장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숨고는 서비스 품질 관리에 필요 이상으로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객과 고수의 자율적 거래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다. 이를 통해 숨고는 플랫폼의 관리 및 유지를 위한 시간과 자원을 아낄 수 있다.

이와 같은 전략으로 인해 고객이 느낄 수 있는 불만족을 완전히 해소하기는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실제도 숨고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섬택 또한 아직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수천 달러가 넘는 인테리어 공사를 전문가에게 맡겼는데 결과가 엉망이었다는 고객 후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숨고는 고객 리뷰나 평가를 통해서 서비스 품질이 낮은 고수들은 계속해서 걸러질 수 있고, 좋은 고수들이 궁극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구조로 플랫폼이 설계돼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초기보다 서비스 관련 만족도가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며 고객들의 불만족스러운 경험이 플랫폼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DBR mini box IV : 경영학적 분석과 향후 과제
숨고의 네트워크 효과에 주목하라

숨고와 같은 라이프스타일 서비스 중개 플랫폼은 시장 내에서 네트워크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크기인 임계점(Critical Mass)에 빠른 시간 안에 도달하긴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공 요인은 해당 플랫폼이 얼마나 네트워크 효과를 창출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네트워크 효과(또는 망외부성)는 Metcalfe(1980, 1995)와 Gilder(1993)가 통신 네트워크에 대하여, Katz와 Shapiro(1985)가 경제적 관점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어떠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수요)이 많아질수록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효용(가치)이 크게 증가한다고 했다. 즉, 많은 이용자가 거래비용의 부담 없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경제적으로 거래하거나 수요자와 공급자 간의 매치메이킹(match-making)을 통해 대가와 용역을 효율적으로 교환하거나 상호작용함으로써 네트워크효과를 창출하게 된다.

네트워크 효과의 종류와 주요 요인

이러한 네트워크 효과는 크게 직접 네트워크 효과와 간접 네트워크 효과로 나뉘는데 매칭 형태의 플랫폼은 동일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는 이용자의 수가 증가할 때 나타나는 직접 네트워크 효과도 중요하지만 보완 제품이나 서비스의 숫자나 종류가 증가할 때 나타나는 간접 네트워크 효과가 더 의미를 가질 때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네트워크 효과가 참여자 간의 연결이 만들어내는 가치 창출 여부다. 이용자가 증가하더라도 이들 간의 상호작용이나 연결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네트워크 효과도 발생하지 않는다. 즉, 플랫폼 참여자 수가 많아지면서 얻게 되는 연결이나 상호작용의 효용가치가 비용보다 크지 않으면 네트워크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컴퓨터의 경우 어떤 PC 운영 체계가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운영 체계의 본질적인 이점뿐만 아니라 거기에 연결된 소프트웨어의 종류나 애플리케이션으로부터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카카오 서비스는 단순 메신저 서비스에서 게임, 선물하기, 대리운전, 택시 호출 서비스로 확장했다. 토스는 간편 송금 서비스에서 신용정보 확인, 투자 중개 및 결제 서비스 등을 통해 고객을 확대시키고 있다.

숨고와 같은 플랫폼들이 전문 서비스 1등보다 종합 서비스 2등을 선택하는 것은 이러한 간접 네트워크 효과의 창출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숨고는 한 가지 서비스에 집중하지 않고 라이프스타일과 관련한 서비스 스펙트럼을 확장해 서비스 사용자와 제공자 모두 계속해서 새로운 기회와 수요를 충족할 수 있도록 했다. 고객의 경우 청소, 이사, 건강, 취미활동 등 다양한 서비스를 한 플랫폼에서 검색하고 거래할 수 있게 됨으로 탐색비용을 낮출 수 있었다. 고수는 시장의 트렌드와 수요에 맞게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변주해 새로운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장점을 누릴 수 있다.

또한 같은 네트워크 사이즈를 가지고 있더라도 모든 플랫폼이 같은 네트효과를 내는 것도 아니다. 이용자들 간의 상호작용이 많아야 네트워크 강도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여러 메신저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유사한 수의 대화 상대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특정한 메신저에서 더욱 많은 시간 동안 메신저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이 메신저의 네트워크 강도가 더 높다. 숨고는 고객과 고수 모두 새로운 기회와 거래를 위해 플랫폼으로 지속적으로 방문할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네트워크 강도를 강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비용 측면과 이용자의 플랫폼 선택

숨고와 같은 마켓플레이스 성격의 매칭 플랫폼을 이용할 때 소비자나 서비스 제공자가 탐색비용이나 거래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다면 유사 플랫폼의 탐색과 비교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여러 온라인 쇼핑몰이 있어도 미국의 소비자들이 아마존의 프라임 멤버십 가입을 통해 쇼핑을 하는 주된 이유는 탐색비용 대비 더 큰 효용가치를 제공해준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이트에서 더 싼 가격을 보더라도 배송의 속도나 비용 절감, 구입한 제품의 쉬운 반환이나 환불 등의 측면에서 아마존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이는 소비자가 기존 플랫폼에서 이용하던 것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 소요되는 전환비용(switching cost)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데 전환비용이 높을수록 해당 플랫폼의 가둠(lock-in) 효과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서비스 기업들은 마일리지나 포인트를 제공하여 고객을 묶어두거나, 또는 고유의 익숙한 인터페이스 이용으로 인해 새로운 서비스 환경에서 학습비용이 많이 들도록 한다.

또한 시장의 진입장벽이 높지 않고, 시장선도자의 우위(first mover advantage)를 갖지 못하는데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플랫폼이 존재한다고 하면 품질이나 비용과 같은 기존의 전통적인 차별화 요인으로는 경쟁 우위를 갖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완전히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로 인식시킬 수 있는 성격의 차별화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또는 카카오톡과 같은 경우 이용자들이 커뮤니케이션 목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소셜네트워크 기반의 서비스 플랫폼이지만 서로 다른 성격이나 활용을 소구하기에 개별적으로 다른 강한 네트워크 효과 우위를 가질 수 있다.

숨고는 기존의 플랫폼과 달리 고객으로부터 서비스 요청서를 받아 가장 적합한 서비스 제공자를 매칭하고 있다. 기존 플랫폼들이 대부분 지역, 날짜 등 기본적인 요소만 고려한다면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목적, 선호하는 서비스 제공자 스타일 등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해 이를 바탕으로 매칭에 들어간다. 고수 입장에서도 거래 성사 가능성이 높은 고객의 정보를 최대한 많이 받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플랫폼에 비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하겠다.

기대 충족과 지속 사용

경영 정보 시스템과 마케팅 분야의 학술적 연구에서 자주 사용되는 Oliver(1980)의 기대일치이론(Expectation Confirmation Theory)은 소비자의 기대가 예측적이라고 가정할 때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기대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속성에 대한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소비자는 불만족을 느낀다는 고전적 연구 모형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결국 소비자의 만족이 플랫폼에 대한 지속 사용 의도의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이 모형을 기반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플랫폼에서 지각된 즐거움이나 유용성, 신뢰, 사회적 영향 등이 소비자의 기대나 만족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으로서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숨고 플랫폼의 경우 유사 경쟁 플랫폼에 비해 고객이 가지고 있었던 이용 전 기대가치가 고수들과의 거래나 서비스 혜택을 통해 어떻게 만족(고객경험가치)으로 유도할 수 있는지를 플랫폼 서치, 가입, 거래 프로세스, 그리고 거래 후 관리 등 단계별로 살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렇게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는 양면시장의 경우 [그림 2]의 에어비앤비 사례와 같이 어느 한쪽의 성장에만 관심을 가지면 서비스 품질이나 공급자 풀링 확보에 들어가는 비용 부담이 커진다. 플랫폼 내의 성장 선순환 구조(cross-side network effects)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어느 한 쪽의 성장에만 관심을 가지면 서비스 품질 향상, 공급자 풀링 확보에 들어가는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숨고가 ‘원아웃’ 제도를 시행해 고수들로 하여금 책임 서비스를 구현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는 신뢰 형성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실제 서비스 매칭이 이뤄진 후 사용자 리뷰를 기반으로 고수(서비스 제공업자)의 등급을 설정해 사용자들에게 데이터 기반의 업체를 추천하는 필터링 기반 매칭 알고리즘을 설계함으로써 매칭 수가 누적될수록 알고리즘의 정확도와 신뢰도가 높아져 사용자들의 만족도 및 재방문/구매 의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알리바바나 페이스북의 경우 성격은 다르지만 쇼핑몰에 대한 납품업자나 페이스북에 올리는 개인들이나 마켓스토어들이 일정한 품질 수준이 안 되거나 플랫폼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품질 관리 및 자정 노력을 함으로써 지금까지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숨고도 처음에는 쉽지 않겠지만 플랫폼에 참여하는 고수들에 대한 정보 검색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주고, 고수들의 자격이나 에어비앤비처럼 지속적인 매칭 노력에 대한 평가를 고객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는 거래가 축적될수록 고수들의 자격과 매칭 결과들을 파악해 고수들에게 ‘에어비앤비 플러스’처럼 인증을 부여하고 고수들이 제공하는 서비스 가격을 더 올려주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동적 가격과 리드 제너레이션 방식의 수익 모델

사실 양면 시장 구조의 플랫폼에서 가격은 어느 정도 플랫폼이 성장하기 전까진 가치 수준을 정하기 어려워 플랫폼 사업자나 참여자에게 비용의 적정 수준을 따지기가 힘들다. 숨고도 초기 ‘Pay-as-you-go’ 방식의 비용/수익 모델을 추진했다가 월 정액제로 변환한 다음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러한 측면에서 숨고에서 가장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자 다른 유사 플랫폼과 차별화되는 요소가 바로 이 ‘리드 제너레이션’ 방식의 수수료 부과 방법이다. 이는 지역이나 경쟁 유무에 상관없이 정해진 요금제 방식이 아닌 거래 성사 가능성이 높은 우량 고객을 서비스 요청 시 정보를 파악해 고수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시장 상황에 맞는 세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도와주고 이에 대한 적정 대가를 받는 것이다. 숨고가 이 모델을 어떻게 성공시킬지 기대가 된다.


참고문헌
1. Bhattacherjee, A. (2001), Understanding Information Systems Continuance: An Expectation-Confirmation Model, MIS Quarterly, 25(3), 351-370.
2. Chun, S. Y. & Hahn, M. (2006), Network Externality and Future Usage of Internet Services, Internet Research, 17(2), 156-168.
3. Divakaran, S. (2020), Network Effect: How To Make Your Content More Valuable?, Digital Uncovered, Available at: https://digitaluncovered.com/network-effect-make-content-valuable/
4. Gilbert, B (2016), Industry 2016, Available at: https://vimeo.com/188095817
5. Gilder, G. (1993), Metcalfe’s Law and Legacy, Forbes ASAP, Sept 1, 1993, 158, PDF 내려받기
6. Katz, M. L. & Shapiro, C. (1985), Network Externality, Competition and Compatibility, The American Economic Review, 75(3), 424-440.
7. Metcalfe, B. (1995), Metcalfe's Law: A Network Becomes More Valuable as it Reaches More Users, InfoWorld, October 2, 1995, 53.
8. Oliver, R. L. (1980), A Cognitive Model of the Antecedents and Consequnces of Satisfaction Decision,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 17(3), 460-469.


최정일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 jichoi@ssu.ac.kr
최정일 교수는 미국 네브래스카대학교 링컨 캠퍼스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보스턴 소재 메리맥대 경영학부 교수를 지냈다. 현재 한국경영학회 부회장과 Korea Business Review 저널 편집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 연구 관심 분야는 ICT 기반의 서비스 혁신과 비즈니스 전략, 디자인싱킹 등이다.


SR2. 미래 도심 모빌리티

로보택시, 로보셔틀이 곧 교통 체계 대체
실험 가능한 테스트베드 도시 조성 필요


미래 도심 모빌리티의 발전 방향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도시화(urbanization)에 따라 모빌리티의 발전 또한 도시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 도시 규모에 따라 자율주행이 적용된 로보택시 및 로보셔틀 서비스가 기존 교통 체계를 효과적으로 대체할 것으로 전망됨.

국내 모빌리티 업계에 주는 시사점

미래 자율주행 기반의 모빌리티 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시정부 및 관련 대기업, 벤처들이 종합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모빌리티 생태계 구축 및 테스트베드 도시 확보가 필요.











모빌리티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모빌리티라는 단어를 들으면 한국의 쏘카와 같은 차량 공유(car sharing) 서비스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후 모빌리티의 개념이 확장되면서 관련 서비스도 △택시와 유사한 차량 호출(ride hailing) 서비스 △주차 공간을 찾아 주거나 주차 공간을 공유하는 파킹 서비스 △최종 목적지까지 다양한 교통수단을 연계시켜 주는 멀티모달(multi-modal) 서비스 등으로 영역이 확대돼 왔다. 이후 2010년대 들어 자율주행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전기차의 높은 성장이 예상되면서 100여 년 역사의 자동차 산업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큰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 후 모빌리티 서비스가 더욱 본격적으로 전개됐을 때의 모습은 지금으로부터 얼마나 변화돼 있을까? 본 글에서는 모빌리티에 있어 자율주행 및 전기차의 역할과 도시화와 모빌리티의 상관관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의 역할

자율주행과 전기차는 운전자의 편의성 증대 및 도시 내 공기 오염 감소라는 각기 다른 목적하에 개발돼 왔다. 하지만 모빌리티가 활성화되면서 자동차 산업 관계자들은 모빌리티, 전기차, 자율주행, 이 세 가지가 서로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됨을 깨닫게 된다. 우선 자율주행이 상용화될 경우 운전자가 필요 없어지고, 운전자가 같이 제공되는 차량 호출 서비스와 차량 공유 서비스 간의 차이가 없어지며, 다양한 형태의 사업 모델 개발이 가능해진다는 측면에서 자율주행은 모빌리티에 있어 진정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2020년쯤에는 자율주행 택시가 본격적으로 출현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기술 및 제도적인 측면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아직도 산적해 있어 시범 운행을 넘어선 본격적인 서비스 론칭에는 7∼8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자율주행이 모빌리티에 적용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자율주행을 활용한 미래 모빌리티 사업 모델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자율주행 차량 렌트(Car2come) 사업이다. 자율주행 차량을 시간 단위로 대여하는 모델로 기존 차량 공유 서비스와 유사하다. 다른 점이라면, 자율주행 차량이 직접 소비자에게 오고, 소비자가 이를 렌터카와 같은 형태로 이용하고 나면 자율주행 차량이 다시 자율적으로 차고지로 이동하는 서비스를 생각하면 된다. 둘째, 로보택시(Robotaxi)다. 자율주행 차량이 소비자를 호출 장소에서 픽업해 목적지로 운송하는 모델로 자율주행이 운전자를 대체한다는 점만 빼고는 기존 택시 및 차량 호출 모델과 동일하다. 마지막으로 로보셔틀(Roboshuttle)을 생각해 볼 수 있다. 7∼8인 이상을 태울 수 있는 버스가 정해진 정거장을 이동하며 승객을 운송한다는 측면에서는 기존 시내버스와 유사하지만 운행하는 순간 승객들의 수요를 파악해 이동 경로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1]을 보면 현재는 대부분의 도시에서 거리당 이동 요금이 가장 비싼 수단은 운전자가 같이 제공되는 택시나 차량 호출 서비스다. 하지만 베릴스 분석에 따르면 자율주행이 대중화될 경우 차량을 시간 단위로 빌려서 운행하지 않는 시간까지 비용을 지불하는 차량 공유 서비스의 원가 구조가 가장 높아지게 되며, 로보택시의 경우 현재의 약 5분의 1 이하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로보택시 기술이 구현된다 해도 실제 이렇게 낮은 가격에 택시를 마음껏 이용하는 세상이 오리라 예측하기는 어렵다. 도시의 도로 인프라가 자율주행 차량이 무한정으로 늘어나는 것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향후 자율주행 차량의 운행(로보택시뿐 아니라 일반인이 소유한 자율주행 차량이 사람을 태우지 않은 상태로 운행하는 것까지 포함)과 관련해 새로운 규제 및 세제의 신설이 필요한 이유다.

교통 정체 완화 측면에서 더욱 주목받는 것은 로보셔틀 모델이 될 것이다. 이는 이동 방향이 같은 소비자들의 운행 수요를 합치는 카풀링에 기반한 것으로 현재의 시내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대비 더 낮은 가격으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교통량 관리도 더 용이해진다. 2019년 1000만 대 이상을 판매해 세계 1위 자동차 생산자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폴크스바겐그룹은 다임러, BMW보다 늦게 모빌리티 영역에 진입했다. 다임러가 공유 경제로 인해 개인의 차량 소유가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미래를 기대하고 카투고(Car2Go)로 차량 공유 시장을 선점했다면, 폴크스바겐그룹은 대중교통의 관점에서 로보셔틀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2016년 모이아(MOIA)라는 셔틀 서비스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1

기존의 시내버스들은 승객이 있건 없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노선을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공급자 중심의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미래의 대중교통은 이용자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경로로 이동하는 소비자 중심의 운영 방식이 적용돼야 한다는 게 폴크스바겐의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폴크스바겐은 카풀이 좀 더 발전적으로 변형된 승차 공유(ride pooling) 서비스 모이아를 대중교통의 혁신안으로 제시했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이용자들을 모아서 태울 수 있다면 요금은 택시보다 저렴해지고 승객들은 버스를 타고 갈 때보다 더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만약 자가용 이용자들을 이 승차 공유 서비스가 흡수할 수 있다면 승용차 수 감소로 시내 도로는 원활해지고 공기의 질 향상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서울 시내에서도 출퇴근 시간을 조금만 지나면 승객이 몇 명 없는 시내버스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승객들이 앱을 통해 미리 목적지를 입력했을 때 승하차가 필요 없는 정거장은 빠르게 지나치거나 심지어 더 빠른 경로를 통해 다음 정거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 차량 운행의 효율성은 높아지고 승객의 만족도도 더 올라갈 것이다.


모이아 같은 서비스를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이동 니즈를 파악해 셔틀의 최적 경로를 설정하는 기술(dynamic routing) 개발이 필요했다. 현재는 이러한 탄력적인 경로에 따라 모이아 셔틀을 운전기사가 몰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율주행이 운전을 대신할 것인데 이때 대중교통의 효율성은 올라가고 운영 비용은 낮아지게 된다. 모이아 서비스는 2019년 초 독일의 하노버 및 함부르크에서 처음 론칭됐으며 런던으로도 확장될 예정이다. 운행 도시에서 이용자들의 주요 이동 경로 및 시간대, 이동 시간, 적정 가격 등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한 뒤 이를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빅데이터와 연계한다면 도시 대중교통의 질을 크게 향상시킴과 동시에 후발 주자에 대한 높은 진입장벽도 갖춘 탄탄한 사업 모델로 자리매김하리라 기대된다.

모빌리티가 도시의 교통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는 건 공유로 인해 전체 차량의 숫자는 줄어들더라도 도시가 보유한 전체 차량의 총 운행 거리는 늘어나고 도시가 보유한 차량 및 도로의 활용도가 높아진다는 걸 의미한다. 이때 기존의 내연기관 차량이 모빌리티에 이용된다면 배기가스에 의한 대기오염이 오히려 더 심해지게 되기 때문에 모빌리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전기차 활용이 필수적이다. 기존 차량 공유 업체들도 이러한 트렌드에 적극 부응하고 있다. 가령 폴크스바겐이 새롭게 론칭한 차량 공유 프로그램인 위셰어(WeShare)에서는 100% 전기자동차(EV)로 공유 차량을 운영하고 있다. 2008년 자동차 메이커 중 가장 먼저 차량 공유 사업에 진출한 벤츠의 모회사 다임러의 카투고 또한 나중에 진입한 마드리드 등의 도시에선 100% EV로 차량 공유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앞에서 설명한 모이아 역시 자율주행 기술 적용과 더불어 EV 차량으로의 전환 계획을 갖고 있다. 이렇듯 모빌리티와 자율주행 및 전기차가 유기적으로 결합된다면 미래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좀 더 경제적이고 편리하며 안전하고 친환경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해 질 것이다.



도시화와 모빌리티

유엔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전 세계 인구의 약 55%가 인구 30만 명 이상의 도시 및 그 인근 지역에 살고 있으며 2050년에는 그 비중이 68%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차량 공유를 전제로 하는 모빌리티는 차량 통행이 밀집된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구가 밀집된 도시 지역은 교통, 주거, 의료, 교육, 환경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데 도시가 발달할수록 교통은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문제로 대두돼 왔다. 모빌리티 서비스를 활용해 이미 깔려 있는 도로 및 기존 운행 차량들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아낄 수 있는 예산을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도시 유형에 따라 사람과 차량의 이동 행태 및 대중교통 인프라의 구축 현황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도시의 구성을 인구밀도에 따라 크게 도심(city center), 어반 지역(urban area, 부도심과 도시 외곽 지역을 포함), 교외 지역(suburban area), 지방 지역(rural area)의 4가지 지역으로 구분했을 때 전 세계의 주요 도시는 크게 ‘메가시티’와 ‘중소형 도시’ 두 개 형태로 다시 나눠볼 수 있다. 메가시티는 도심, 어반, 교외, 지방 지역을 모두 갖고 있는 도시로 서울, 뉴욕, 파리 같은 거대 도시 및 유럽, 아시아의 주요 도시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 도시 내 대중교통이 잘 발달돼 있고, 교외나 지방 지역으로부터 도시로 이동하는 자가용 차량의 역할도 크다. 중소형 도시는 도시 전체가 교외 및 지방 지역 수준의 낮은 인구밀도로 구성된 도시를 가리킨다. 대도시형을 제외한 미국의 주요 도시들이 이 유형에 해당되는데 도시 규모가 크지 않아 대중교통보다는 자가용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처럼 도시가 각 유형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는 건 모빌리티 서비스 또한 해당 도시의 상황에 맞게 다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가령, 메가시티에서는 [그림 3]에서처럼 도시와 연결된 교외 및 지방 지역과의 이동을 도와주는 모빌리티 서비스가 필요하다. 이 경우 자율주행으로 운영 비용을 대폭 낮춘 로보택시가 소비자들에게 쾌적한 이동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단, 대도시 도심 내의 복잡한 교통 상황이나 교통 정체를 생각해 보면 자율주행 로보택시가 기존의 택시를 완전히 대체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측면에서 모이아 같은 로보셔틀 서비스가 좀 더 빠른 시간 내에 도심 내 대중교통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모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소형 도시에선 상대적으로 교통 정체나 교통 흐름의 복잡한 정도가 덜하므로 로보택시의 역할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대도시 도심과 비교해 훨씬 원활한 교통 상황을 고려할 때 메가시티보다 더 빨리 로보택시가 도입돼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듯 도심지역과 교통량이 덜한 도시 외곽 지역에 필요한 모빌리티 서비스 및 교통수단이 달라짐에 따라 도시로 진입하는 소비자들과 이를 도심으로 연결시켜 주는 모빌리티 허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게 된다. 모빌리티 허브는 철도, 지하철 등의 대중교통 수단 및 모빌리티 차량, 공유 자전거, 전기스쿠터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선택해서 환승할 수 있는 공간으로, 로보택시, 로보셔틀을 포함한 각종 모빌리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좀 더 복합적인 공간이 될 것이다.



시사점 및 국내 모빌리티 업계에 대한 제언

올해 초까지만 해도 모빌리티에 대한 기대는 우버의 급성장 및 구글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 등으로 치솟았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상당 기간 이동의 제약을 받고 있고 접촉에 대한 우려로 차량 공유에 대한 염려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데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 지연 등으로 인해 지금은 그 기대가 조금 가라앉은 상황이다. 하지만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모빌리티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자동차 산업이 태동한 이후 100여 년간 연관 사업자들이 더 안전하고 빠르고 품질 좋은 차량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사업자들뿐만 아니라 도시 정부까지 힘을 합쳐 미래 모빌리티 구현을 위해 주력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이 모빌리티의 선도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를 자유롭게 실험해 보고 성공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 도시가 필요하다. 대중교통, 규제, 모빌리티 인프라 측면에서 미래 환경을 좀 더 빠르게 조성할 수 있고 사업자들도 새로운 서비스를 적용하는 데 있어 여러 규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테스트베드 도시가 있다면 모빌리티 관련 기업을 유치하고 투자금을 끌어모으는 등 모빌리티 산업 발전을 위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미래 모빌리티 관련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시작해야 한다. 로보택시 등이 가져올 사회 변화의 강도는 최근 1∼2년간 논란이 많았던 타다를 허용하느냐, 마냐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자율주행의 적용 대상, 허용 범위, 사고 발생 시의 책임 소재, 로보택시가 촉발할 고용 문제 등을 모빌리티 선진국들이 어떻게 해결하는지 살펴본 후에 우리도 어떻게 할지를 결정한다는 방식으로는 모빌리티 산업을 리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테스트베드 도시를 중심으로 모빌리티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는 자동차는 물론 반도체, 정보통신기술(ICT) 등 모빌리티와 밀접한 산업 분야 전반에 걸쳐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한 사업자가 모빌리티에 대한 투자 위험을 전적으로 감당하기란 불가능하며, 특정 사업자가 모빌리티 사업을 독점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테스트베드 도시와 대기업, 벤처들이 함께 힘을 합쳐 현재 교통 체계가 풀지 못한 문제점을 정의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공동의 솔루션을 제시한다면 모빌리티 선진국으로의 도약이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방범석 베릴스 코리아 대표 michael.bang@berylls.com
필자는 연세대 기계공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MIT 슬론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 주로 자동차 산업을 대상으로 글로벌 컨설팅사에서 지난 17년간 근무해 왔으며, 2018년부터는 자동차 산업에 특화된 전략 컨설팅사인 베릴스(Berylls Strategy Advisors)의 한국 지사 대표를 맡고 있다.




DBR mini box I 도심 모빌리티(urban mobility) 플랫폼 구성에서, 핵심은 협력이다.

편집자주
본 기고문은 2019년 BGC가 발간한 ‘Building and urban mobility platform, cooperation is key’ 보고서를 요약, 번역한 글입니다.


도시의 교통이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려 하고 있다. 주문형/공유 모빌리티 서비스(on-demand and shared mobility services)로 인해 이미 이동과 관련해 더 많은 선택지가 생겨났으며, 교통 관련 앱의 부상으로 인해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도시 교통 생태계의 주요 관계자가 됐다. 이와 함께, 차량 호출(ride-hailing) 및 차고지 제한 없는 차량 공유(free-floating, 공간 제한 없이 도로에서도 자유 픽업•반납) 업체 등 새로운 모빌리티 업체들에 대한 민간 투자가 상승해 지난 12개월 동안 역대 최고 수준에 달했다.

현재는 단일 모빌리티 서비스에 자금이 쏟아지고 있지만 도심 교통의 다음 승부수는 사용자들이 다양한 모빌리티 수단을 이용해 이동하는 것을 돕는 디지털 인터모달 플랫폼(digital intermodal platforms)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림 5) 이 플랫폼들은 서로 다른 모빌리티 옵션들을 단일 고객 인터페이스에 연결함으로써 최적화된 개인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사용자의 이동 수단 선택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 이런 플랫폼들은 결국 개인적으로 차량을 소유하는 모델에서 서비스형 모빌리티(mobility as a service)로의 전환을 가능케 할 것이다.



다가올 도심 모빌리티

우버와 그 라이벌 격인 승차 공유 기업 리프트는 지난 십 년간 전통적인 택시 서비스를 혁신적으로 파괴해 왔으며 이제 새로운 교통의 형태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는 도심 모빌리티 플랫폼(urban mobility platform) 개발에 의미심장한 첫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 모두 사용자와 도심 모빌리티 생태계 참가자들 간의 인터페이스를 관장하는 것이 미래 가치 창출에 핵심임을 깨닫고 있다. 플랫폼 제공업체들은 고객과 그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이 더욱 커질 것이고 다른 관계자들에 비해 강력한 브랜드를 갖춘 점이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사용자들이 만들어내고 도심 모빌리티 플랫폼이 종합한 데이터로 인해 도시와 다른 관계자들은 수요 예측을 개선하고, 혁신 기술을 기존 교통수단과 결합해 그 어느 때보다도 끊김 없는 소비자 경험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개인과 차량의 이동 패턴에 대한 정보가 많아지면 도시는 교통량을 개선하고 배기가스는 줄이면서 인프라 니즈 예측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물류회사들 역시 피크타임을 피해 배송을 하는 방법 등을 통해 라스트마일 풀필먼트(last-mile fulfillment) 서비스를 더욱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를 실현하기 위해 도심 모빌리티 플랫폼은 다음 5가지 기능을 갖춰야 한다.

① 이동 계획 개인 맞춤화(Personalized travel planner). 실시간 정보를 기반으로 시간, 비용, 편리성 등의 요인에 대해 다양한 교통수단을 최적화해 개인별 이동 옵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도심 모빌리티 플랫폼을 구성하는 표준 구성요소다.

② 인터모달 티켓팅 및 요금 책정(Intermodal ticketing and pricing). 사용량 기반 지급(pay as you go), 사전 결제, 월정액 등 여러 가지 요금제를 합쳐 서로 다른 모빌리티 업체들의 온라인 티켓팅 엔진을 하나의 플랫폼에 통합해야 한다. 그래야 사용자에게 두 개 이상의 이동 단계를 하나의 요금으로 조합하는 묶음 이동 옵션(bundled travel options)을 제공할 수 있다. 이는 진정한 도심 모빌리티 플랫폼이 단일 모드 모빌리티 앱과 차별화되는 능력이다.

③ 실시간 승객 정보(Real-time passenger information). 사고 및 지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사용자들이 혼잡을 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능한 상세한 내용을 실시간으로 승객들에게 업데이트해 주며 추천 경로도 변경해 줄 수 있어야 한다.

④ 고객 고충 해결(Troubleshooting customer services). 결제, 티켓팅, 혹은 특정 모빌리티 업체에 대한 문제가 있을 때 고객들이 모바일 기기를 통해 언제든지 지원받을 수 있어야 한다.

⑤ 위치 기반 서비스(Location-based services). 위치 기반 서비스를 이용하면 현지 식당 추천이나 가까운 지역의 행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사용자들에게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이런 서비스는 도심 모빌리티 플랫폼의 본질적인 특징은 아니지만 조직들이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필요한 기능이다.

앞으로의 과제

플랫폼 제공업체들이 위에서 언급한 기능들을 실현하기 위해선 다음 5가지 도전 과제를 극복해야 한다.

① 참가자 요구사항 조정(Reconciling participant’s requirements). 도심 모빌리티 플랫폼은 다양한 참가자로 이뤄진 복잡하고 변화하는 생태계의 중심에서 움직인다. 각각의 참가자들은 각기 다른 니즈가 있고 갈등의 소지가 있다. 예를 들어, 대다수의 모빌리티 운영업체들은 독점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원한다. 또한 도시계획 담당자들은 대중교통을 최적화하고자 하는 반면, 혁신 솔루션은 보통 기존 운영 업체들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도심 모빌리티 플랫폼 제공업체들은 이런 갈등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② 가격 정책과 비즈니스 모델 통합(Integrating mechanisms and models). 플랫폼 제공업체들은 서로 다른 가격 정책과 비즈니스 모델을 자사 플랫폼에 통합해야 한다. 이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 어떤 모빌리티 업체들은 이동 거리를 기준으로 요금을 책정하지만, 어떤 업체들은 가격 결정을 위해 시간과 수요 등의 요소를 기준으로 삼거나 권역별 접근법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 다양한 기제를 통합해 사용자에게 하나의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플랫폼 제공업체들은 주문형 차량 공유 및 차고지 제한 없는 차량 공유 등 새로운 혁신 모델뿐 아니라 정해진 시간표와 정류장을 갖춘 기존 비즈니스 모델도 고려해야 한다. 다양한 이동 방식이나 특정 소비자 그룹을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할인 및 보조금도 취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③ 서비스 제안의 맞춤화와 확대 적용(Customizing and scaling the offer). 플랫폼 제공업체들은 도심 모빌리티 플랫폼을 로컬 사용자와 운영업체들에 맞춰 맞춤 설정하는 동시에 이를 다른 도시에도 복제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플랫폼은 특정 도시 차원에서 움직이는 동시에 다른 도시의 인프라 및 기존 모빌리티 생태계와도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대형 역내 모빌리티 업체를 유치하고 고객을 빠르고 저렴하게 증가시킬 수 있다.

④ IT 시스템 통합(Consolidating IT systems). 운영 측면에서 플랫폼 제공업체들은 서로 다른 IT 시스템과 데이터 포맷을 일치시켜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전통적인 모빌리티 운영업체와 정부 기관들이 이미 개발해 놓은 무수히 많은 레거시 시스템(legacy systems)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둘째, 일정 정보 등의 데이터는 업체마다 포맷이 굉장히 다르기 때문이다. 상호호환성을 목표로 하는 플랫폼 입장에서 이런 문제를 처리하는 것은 큰 골칫덩어리다.

⑤ 비즈니스 모델 수익화(Monetizing the business model). 마지막으로, 도심 모빌리티 플랫폼 제공업체들은 어떻게 수익을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현재 승차 공유 같은 새로운 서비스 업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수익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각각 문제점이 있다. 예를 들어, 최종 사용자에게 플랫폼 접근에 대한 사용료(일종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의 경우, 서비스가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거나 부가가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요소(예: 위치 기반 서비스)가 없다면, 최종 사용자는 수수료를 내지 않기 위해 개별 모빌리티 업체에서 직접 티켓을 구매하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이동 건별로 모빌리티 운영업체에 수수료를 부과하면 안 그래도 적은 마진이 더욱 축소돼 업체들은 차라리 자체 디지털 솔루션을 개발하게 될 것이다.

도전과제 극복을 위한 실행 전략

성공적인 도심 모빌리티 플랫폼들은 다음 5가지를 실행함으로써 이런 도전과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① 사용자 중점(Focus on users). 플랫폼 제공 업체들은 사용자에게 스마트하고 끊김 없는 목적지 간 이동 경험(end-to-end travel experience)을 제공함으로써 도심 모빌리티를 가능한 단순하고 편리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플랫폼의 모든 기능을 우수한 인터페이스와 함께 완전히 통합된 서비스로 제공해 사용자들이 손쉽게 여정을 계획하고, 서로 다른 교통업체들의 요금을 확인해 다양한 모빌리티 패키지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결제 및 티켓팅 시스템에 있어서 종합적이고 통합된 기능을 제공해야 한다.

② 공정한 입장(Adopt an impartial stance). 플랫폼 제공업체들은 편견 없는 중개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즉, 대중교통을 도시 교통의 척추로 여기고, 시간, 가격, 편의성, 혼잡 등의 요소를 고려해 민간 부문 모빌리티 서비스를 공정하게 통합해야 한다. 그래야 지방자치 당국과 모빌리티 업체들의 지원을 얻을 수 있다.

③ 현지 이해관계자들을 위한 맞춤화(Customize for local stakeholders). 플랫폼 제공업체들은 현지 이해관계자들의 요구사항에 맞춰 해당 도시의 교통 시스템과 규제를 반영해 자사 상품과 서비스를 적절히 조정해야 한다. 즉, 모빌리티 옵션, 비즈니스 모델, 운영 기준을 도시 특성에 따라 유연하게 가져가야 성공적인 플랫폼 업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④ 원활한 확장(Facilitate scaling). 플랫폼 제공업체들은 IT에 대해 표준화된 모듈화 접근을 이용해 그들의 서비스가 원활하게 새로운 지역에서 확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클라우드 기반 IT 아키텍처를 활용해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복제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⑤ 개방적인 IT 접근법 사용(Use an open approach to IT). 플랫폼 제공업체들은 공동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이용하고 진입장벽을 낮게 유지해 모빌리티 업체와 다른 관계자들의 참여를 독려해 협력사들의 생태계를 구성해야 한다. 그 결과, 플랫폼을 통해 제공하는 서비스가 최종 소비자에게는 물론 모빌리티 생태계에 속한 다른 참가자들에도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현재 도심 모빌리티 플랫폼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윔(Whim)을 포함해 몇몇 업체는 가입 기반 모델(도시 거주자들이 여러 형태의 교통수단에 대해 미리 결제하는 방식)을 실험 중이며, 또 다른 업체들은 사용자 경험을 저해한다는 리스크가 있긴 하지만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광고를 통합하고 있다. 이 밖에 플랫폼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수익화하는 방법을 모색 중인 업체들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디에서나 안정적으로 수익을 담보할 수 있는 성공적인 접근법은 나타나지 않은 상태다. 지금으로서는 많은 업체가 기꺼이 수익 창출을 보류하며 핵심 서비스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궁극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다섯 가지 과제를 실행에 옮긴 조직들이 경쟁에서 앞서 승자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업체들 간 파트너십을 만들어내며 민간 부문의 니즈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플랫폼 모델이 생성될 것이다.

필자소개
도미니크 코입(Dominik Keupp)은 BCG 취리히 사무소 이사(Principal) 겸 BCG 모빌리티 혁신센터(Center of Mobility Innovation)의 공동 리더(coleader)다. 니콜라우스 랑(Nikolaus Lang)은 BCG 뮌헨 사무소의 시니어 매니징디렉터파트너(Managing Director Partner, MDP)로 자율주행 자동차 관련 전문가다. 카밀 에글로프(Camille Egloff)는 BCG 아테네 사무소 MDP로 교통 및 물류와 관련한 다수의 프로젝트를 리드하고 있다. 마커스 하겐마이어(Markus Hagenmaier)는 BCG 비엔나 사무소의 프로젝트 리더로 미래 모빌리티 전문가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8호 Future Mobility 2020년 6월 Issue 1 목차보기


Article at a Glance

미래 모빌리티에서 차내 경험(in-car experience)이 중요해지는 이유

1. 시간적 여유 : 자율주행 도입으로 자동차가 단순 이동 수단에서 삶/여가/거주 공간으로 바뀌면서 이전과는 다른 차내 경험에 대한 고객 니즈 증대

2. 실내 공간의 확장 : 내연기관차 대비 3분의 2 수준의 부품만 필요한 전기차 확대로 훨씬 넓어진 실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 인테리어 디자인을 할 것인가가 중요

3. 주행 특성 획일화 : 주행이나 동력 전달 과정을 통해 자동차 브랜드 특성을 드러내던 기존 접근 대신 차내 경험 제고를 차별화된 브랜딩 전략으로 활용할 필요성 증대

4. 자동차 이용 형태의 변화 : ‘운전자’가 아닌 ‘승객’으로 모빌리티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서 자동차 자체보다는 이동 중 차 안에서 겪게 될 경험에 기반해 브랜드를 평가







해마다 열리는 세계 최대의 가전•정보기술 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가 미래 모빌리티 공개의 장이 됐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1월 열린 CES 2020에서도 자동차 회사들의 다양한 모빌리티가 관람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중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메르세데스-벤츠의 미래를 담은 콘셉트 카 ‘비전 AVTR (VISION AVTR, 이하 AVTR)’였다. AVTR는 ‘Advanced Vehicle Transformation’의 약자이며, 모티브로 삼은 영화 ‘아바타(Avatar, 2009)’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하필 아바타일까? AVTR는 자율주행 전동 모빌리티로, 영화 속 주인공이 타던 동물처럼 날렵하게 생겼다. 또한 외부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바이오닉 플랩(bionic flaps, 콘셉트 카 AVTR 후면에 파충류 비늘처럼 달려 있는 작은 덮개)과 옆으로도 움직이는 독특한 조향 구조를 가졌다. 아울러 100%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로 만들어진 유기 배터리가 장착돼 있다. 모두 아바타의 세계관을 연상시키는 요소다. 하지만 이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AVTR에서 주목할 것은 인간과 모빌리티 간의 새로운 소통 방법이다.

벤츠는 이에 대한 힌트 역시 아바타에서 찾았다. 영화 속 주인공은 여러 생물과 촉수를 연결해 교감을 시도한다. 이동을 위해 동물을 탈 때도 마찬가지다. AVTR의 사용법도 이와 비슷하다. 센터콘솔에 손을 얹으면 AVTR는 마치 잠에서 깬 듯 컨트롤러를 위로 밀어 올리며 시스템을 활성화한다. 동시에 대시보드에 화려한 그래픽을 투영하고, 호흡과 맥박수로 손의 주인을 인식한 뒤 개인화 서비스를 시작한다. 컨트롤러를 살짝 밀면 자율주행 기능이 작동한다. 실내 기능은 운전자의 움직임을 통해 통제(gesture control)할 수 있다. 가령, 허공에 손바닥을 들면 그 위에 아이콘이 비춰지고, 그 아이콘을 살짝 쥐면 해당 기능이 켜진다.

AVTR와 아바타를 연관 짓는 핵심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런 새로운 사용자 경험이다. 실체가 없는, 먼 미래의 기술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벤츠는 이런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지속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8년 프랑스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소피아 앙티폴리스(Sophia Antipolis)에 문을 연 니스 선행 디자인센터(Advanced Design Centre)가 좋은 예다.

니스 선행 디자인센터는 자율주행 전동 모빌리티의 내외관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UX/UI) 개발에 특화된 곳이다. 독일, 이탈리아, 미국, 중국 등 세계 각지의 디자인센터에 흩어져 있던 해당 분야 전문 디자이너 50여 명이 이곳에 모여 AVTR과 같은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고 있다. 참고로 벤츠는 니스 센터 설립 이전부터 UX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MBRDNA(Mercedes-Benz Research & Development North America) 실리콘밸리 센터에 선행 UX 디자인스튜디오(Advanced UX Design Studio)를 설립한 뒤 이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해왔다. 벤츠의 최신 인공지능(AI) 음성 인식 서비스인 ‘MBUX’가 바로 이곳에서 개발됐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사용자 경험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용자 경험은 소비자가 브랜드를 만나고, 제품 및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느끼고 겪는 모든 것을 뜻한다. 자동차에서는 디자인, 운전 감각, 시스템 완성도, 마감 품질, 소재 등이 바로 사용자 경험에 포함된다. 최근에는 자동차 내부 경험에 한정한 ‘차내 경험(in-car experience)’ 개념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몇몇 업계 전문가는 차내 경험이 향후 자동차 회사의 존폐를 결정짓게 될 요소라고까지 말할 정도다.




차내 경험(In-car experience)이 핵심으로 떠오른 이유

그들이 차내 경험을 이렇게 높게 평가하는 배경에는 자율주행화와 전동화라는 흐름이 있다. 이는 현재 자동차 업계의 가장 큰 화두로, 우리 사회 전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자율주행화와 전동화가 가져올 변화는 다음과 같다.

1. 시간적 여유

완전 자율주행기술이 구현되면 운전이라는 의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동차 업계에선 2030년이면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절반에 미국자동차공학회(SAE) 기준 레벨 3의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될 것으로 보고 있다. 레벨 3은한정된 상황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한 수준이다. 또한 2030년에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한 레벨 5가 등장하고, 2035년에는 본격적으로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10여 년 뒤면 운전대가 없는 차가 도로 위를 달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자율주행기술 수준이 높아질수록 운전자의 여유 시간은 점점 늘어난다. 그러다 주행의 주도권이 완전히 자동차로 넘어가게 되는 순간 운전자는 탑승자가 된다. 이전에 없던 여유 시간을 갖게 된 사람들은 자연스레 운전이라는 행위를 대신할 무언가를 찾을 것이 분명하다.

벤츠보다 먼저 소피아 앙티폴리스에 연구개발(R&D) 센터를 구축한 도요타의 움직임에서도 이에 대한 고민을 읽을 수 있다. 도요타는 지난 2019 도쿄 모터쇼에서 LQ 콘셉트 카를 공개했다. LQ는 도요타가 CES 2017에서 공개한 자율주행 전동 모빌리티인 콘셉트-아이(Concept-i)의 2세대 버전으로, 이전보다 강력한 AI 시스템을 탑재한 게 특징이다. 도요타는 유이(Yui)라는 자사 AI 시스템이 탑승자의 감정과 의식에 기반해 개인화된 모빌리티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용자를 이해하는 둘도 없는 친구에 가깝다며, 이를 통해 정서적 유대감(emotional bond)까지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자율주행 시대의 탑승자는 여유 시간 동안 시스템과 감정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할 거라는 예측에서 나온 전략이다.





도요타의 비전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중국계 자동차 회사인 바이톤(Byton) 사례를 살펴보자. 바이톤은 첫 양산 모델인 M-바이트를 ‘삶을 위한 플랫폼(Platform for Life)’이라고 부르며 최적화된 콘텐츠 소비 환경을 제공하는 모빌리티라고 소개하고 있다. M-바이트는 SAE 레벨 3∼4수준의 자율주행기술이 탑재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전략의 배경에는 공유 경험 디스플레이(Shared Experience Display, SED)라는 이름의 48인치 곡면 디스플레이(curved display)가 있다. 48인치는 현재 양산 차에 적용된 디스플레이 중 가장 큰 사이즈다. 바이톤은 이를 통해 각종 주행 관련 정보는 물론 영화, 음악,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를 보다 직관적으로 소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바이톤은 콘텐츠 다각화를 위해 여러 기업과의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비디오 스트리밍과 게임 전문 업체인 비아컴 CBS다. 이 밖에 콘텐츠 플랫폼 업체인 액세스, 날씨 정보 제공 업체 아큐웨더, 클라우드 기반 음성 지원 업체 클라우드카, 여행 서비스 업체 로드 트래블 등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 제공사와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자동차는 그간 단순한 이동 수단에서 삶, 여가, 거주의 공간으로 탈바꿈해왔다. 자율주행은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할 것이다. 또한 이로 인해 자동차의 실내가 기존의 자동차와 같은 형태일 이유도 없어진다. 운전을 하지 않으니 운전석이 없어도 되고, 시트가 반드시 앞을 보고 있을 이유도 없다. 자동차 회사들이 실내 공간 구성과 그 공간을 채울 콘텐츠에 무게를 두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자율주행차는 승객에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이동의 경험을 전달할 것이다.

2. 실내 공간의 확장

전동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유럽연합(EU)은 당장 올해부터 제조사당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30g/㎞에서 95g/㎞로 27%를 낮추는 규제를 시행한다. 2030년에는 현재 새 기준보다 37.5%를 더 줄여야 한다. 영국과 네덜란드 등 몇몇 국가는 2040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를 아예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소규모 스포츠카 브랜드들마저 전동화에 동참하는 이유다. 당연히 대량 생산 브랜드들은 전기차 생산과 판매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전기차의 확대는 자동차 업계에 또 다른 변화도 가져온다. 바로 실내 공간의 확장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달리 엔진과 변속기가 없다. 전기 모터와 배터리가 들어가지만 구조가 훨씬 단순하다. 일본자동차부품공업협회에 따르면 전기차의 부품 수는 내연기관차의 3분의 2 수준이다. 내연기관차에 들어가는 부품이 약 3만 개니 약 1만1000개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인휠모터(in-wheel motor, 모터를 차 바퀴에 내장하는 방식)’와 같은 통합 전기 파워트레인과 운전대, 페달 등 운전과 관련된 각종 조작 장치가 필요 없는 완전 자율주행 기술이 구현되면 여유 공간은 더 늘어날 것이다. 참고로 부품이 줄어들면 차의 형태도 단순해진다. 엔진을 차체 앞쪽에 두는 지금의 형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물론, 디자인이 자연스레 실내 공간 확장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가 CES 2019에서 발표한 ‘스타일 세트 프리(Style Set Free)’가 바로 이런 흐름에 맞춘 전략이다. 스타일 세트 프리는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인테리어 부품, 하드웨어 기기, 상품 콘텐츠 등을 최적화할 수 있는 맞춤형 인테리어 솔루션으로, 자율주행이 가능한 전동화 모빌리티를 전제로 하고 있다. 자율주행 상황에서 자동차의 실내 공간이 개인화된 디지털 공간, 움직이는 사무실, 편안한 휴식 공간 등 다양한 형태로 구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것이다. 이런 설정의 배경에는 전동화 파워트레인의 단순한 구조가 있다. 배터리를 바닥에 깔고 바퀴를 차체 앞뒤 끝에 장착한 스케이트보드(skateboard) 플랫폼은 바닥이 고르고 확장이 쉽기 때문에 실내 공간을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해 소형 가전, 사무기기 등의 실내 하드웨어는 물론, 배터리와 전기 모터 등 동력계 부품까지 고객의 요구사항대로 구성할 수 있다는 게 바로 스타일 세트 프리 전략의 핵심이다.

현대차가 이번 CES에서 공개한 3대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중 하나인 목적 기반 모빌리티(Purpose Built Vehicle, PBV)도 스타일 세트 프리 전략을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셔틀이다. PBV의 내부 공간은 용도에 따라 카페, 푸드트럭, 약국 등으로 다양하게 변한다. 현대차는 내년까지 스케이트보드 형태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를 기반으로 한 첫 전용 전기차를 선보일 계획이며, 최근 PBV 제작을 위해 모듈형 스케이트보드 플랫폼 개발사인 카누(Canoo)와 상호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DBR mini box

모빌리티 시대를 대비해 구현된 최신 기술들

1. 자동차의 디바이스화, 무선 업데이트부터 게임까지

테슬라는 자율주행화와 전동화뿐만 아니라 차내 경험과 연관된 기술도 빠르게 도입하는 중이다. 대시보드 중앙의 대형 스크린을 활용한 게임 기능이 좋은 예다. 스티어링 휠과 페달을 게임 조작에 활용해 자동차 자체를 게임 콘솔로 만들었다는 점이 독특하다. 또한 테슬라는 각종 소프트웨어를 무선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기술(OTA,over-the-air)도 가장 먼저 도입했다. 덕분에 주행 관련 프로그램, 내비게이션 정보 등의 데이터를 항상 최신 버전으로 유지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내비게이션과 같은 간단한 업데이트에 이를 활용하고 있다.

2. 영역 확장에 나선 AI 음성 인식 기능

자동차에 AI와 클라우드 기술이 더해지면서 음성 인식 기능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해진 명령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자연어를 인식하고 온라인의 정보까지 활용하기 시작했다. “나 더워” 같은 말로 실내 온도를 낮출 수 있고, “내일 서울에서 선글라스가 필요할까?”라는 질문으로 해당 시점의 지역 날씨를 알아볼 수 있다. 참고로 음성 인식은 모빌리티의 개인화 서비스에 활용될 수도 있다. 사람의 목소리에는 생체학적으로 키, 성별, 연령대 등의 다양한 신체 정보가 담겨 있다. 기기 제어를 넘어 각종 맞춤형 서비스 제공에도 사용될 수 있는 뜻이다.

3. 자동차와 집을 연결하다

자동차 시스템의 온라인화로 인해 자동차와 집을 연결할 수 있게 됐다. 흔히 카투홈(Car-to-Home)이라고 부르며 집 안 조명을 비롯해 에어컨, 보일러, 스마트플러그(원격제어가 가능한 콘센트) 등을 차에서 조작할 수 있는 기능이다. IT 기업의 음성 비서 스피커를 통해 홈투카(Home-to-Car) 기능을 이용할 수 있게 한 브랜드는 많지만 카투홈 기능을 적용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현대차그룹과 포드 정도가 전부다. 아직 스마트홈 환경이 구축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BMW가 아마존과 손잡고 기술 개발을 완료하는 등 시장 개척을 위한 관련 업계의 움직임이 한창이다.






4. 자동차가 달리는 지갑이 되다

현금 없는 세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신용카드도, 스마트폰도 아닌 차량 내 결제 시스템(Car Pay) 이야기다. 최근 여러 자동차 회사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주요 기능으로 결제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최근 제네시스 GV80을 통해 차량 내 결제 시스템을 소개했다. 제네시스의 결제 시스템은 신용카드 정보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등록하는 방식으로, 연계된 주유소나 주차장에서 지갑을 꺼내지 않고도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 향후 패스트푸드, 커피 체인점, 전기차 충전 등 보다 생활에 밀접한 서비스로 결제 범위가 확대될 예정이다. 혼다도 글로벌 금융사인 비자와 손잡고 결제 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방식은 제네시스와 비슷하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미리 등록한 카드를 사용한다. BMW, 도요타, GM, 포드, 르노 등 5개 회사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결제 시스템 구축을 위해 글로벌 블록체인 컨소시엄인 MOBI(Mobility Open Blockchain Initiative)를 구성했다. 벤츠는 독자적으로 메르세데스-페이라는 차량 내 결제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3. 주행 특성 획일화

운전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시각과 청각을 이용해 주변 상황을 파악해야 하고, 이 정보들을 바탕으로 판단을 한 뒤, 조향 장치와 페달을 빠르고 정확하게 조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실수를 하면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생각에 신경까지 예민해진다. 자동차 회사들은 그동안 이 부분에서 경쟁력을 찾았다. 운전에서 편안함 또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 차별화를 꾀한 것이다. 하지만 자율주행으로 인해 이런 특성이 사라지게 된다. 운전대를 직접 잡을 일이 없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전동화 역시 주행 특성에서 오는 브랜드만의 개성을 옅어지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전기차는 기존의 내연기관이 아닌 전기 모터의 힘으로 달린다. 전기 모터는 내연기관에 비해 출력을 높이기가 쉽다. 신생 회사 테슬라가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들을 위협할 수 있는 이유다. 아울러 전기 모터는 출력을 내고 동력을 전달하는 과정이 단순하다. 따라서 주행 감성을 더할 수 있는 요소도 지극히 적다.

현대차가 개발 중인 ‘튠업(Tune-Up)’이 바로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한 기술이다. 튠업은 전기차의 성능 조정이 비교적 쉽다는 것을 활용한 새로운 개념의 차내 경험으로, 스마트폰을 이용해 전기 모터의 최대 토크, 응답성, 회생제동량, 최고 속도, 냉난방 에너지 등 전기차의 성능과 연관된 총 7가지 항목을 일정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동력 전달 과정에서 브랜드 특성을 강조하기 어려우니 성능과 관련된 항목을 취향에 맞게 설정하는 재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처럼 자율주행화와 전동화로 인해 자동차 회사들이 주행 부문에서 고유의 색깔을 강조하기가 어려워짐에 따라 차내 경험이 브랜드 특성을 대변하는 유일한 요소가 될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4. 자동차 이용 형태의 변화

자율주행이 상용화되면 자동차는 모빌리티 서비스의 하나로 편입될 가능성이 커진다. 안 그래도 소유에 부담이 큰 물건인데 자율주행으로 인해 원하는 때만 사용하기가 더 쉬워지기 때문이다. 차량 공유와 차량 호출의 구분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대부분 승객으로서 모빌리티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이동만 제공하는 모빌리티는 당연히 보편 타당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따라서 브랜드의 특성을 반영할 요소는 더 줄어든다. 현재 우리의 택시 이용 행태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택시를 탈 때 차의 안팎 디자인이나 성능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친절함, 청결함, 승차감, 편의 장비 정도만 따진다. 즉, 이동 과정이 얼마나 편안한지가 중요하다.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에도 이와 비슷한 기준이 적용될 것이다. 이동 중에 모빌리티 안에서 사용하게 될 시스템의 편의성, 실내 공간 구성 등 차내 경험이 해당 모빌리티와 서비스, 그리고 브랜드를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는 이야기다.

앞서 설명한 도요타의 AI 서비스 유이가 바로 이런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이다. 유이는 탑승자의 표정을 인식해 이를 데이터화하고, 탑승자의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 게시물과 대화 이력을 살펴 감정 상태를 파악한다. 탑승자의 선호와 필요를 파악한 뒤 이에 맞는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유이가 제공하는 경험은 주로 편안한 이동에 초점을 맞춘다. 스트레스나 피로감을 감지하면 가장 부담이 적은 경로를 설정하고 시트 각도를 바꾼 후 마사지를 제공하는 식이다. 실내 온도, 음악 재생, 조명 밝기 및 색상 등도 알아서 조정한다. 아울러 유이는 탑승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건네기도 한다. 탑승자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운전기사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자동차 부품 업체들의 현실적인 솔루션

자동차 회사들이 차내 경험을 브랜드의 비전으로 내세우자 주요 부품 업체도 이에 발맞춘 제품 또는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부품 업체의 솔루션은 가까운 미래, 또는 당장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부품 업체의 움직임에 근미래에 실현될 기술이 반영돼 있다는 이야기다.

콘티넨털은 CES 2020에서 3D 디스플레이와 몰입형 오디오 시스템을 선보였다. 정식 명칭은 차세대 내추럴 3D 디스플레이로, 운전석 중앙에서 사람과 차 사이의 상호 작용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특징은 3D 영상 구현을 위한 헤드트래커나 특수 안경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터치로 조작할 수 있으며 3차원 하이라이트와 같은 복합적인 조명 효과를 통해 편리하고 안전하게 정보를 전달한다. 콘티넨털은 협력사 레이아(Leia)와 손잡고 해당 기술을 4K 해상도로 중앙 콘솔 디스플레이에 구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콘티넨털은 스피커가 없는 오디오 시스템도 공개했다. 협력사 젠하이저의 앰비오3D(AMBEO 3D)와 자사의 액추에이티드 사운드(Ac2ated Sound) 시스템을 통합해 개발한 기술로, 차 안 특정 표면을 자극해 몰입감이 뛰어난 사운드를 제공한다. 콘티넨털은 이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으며 기존 오디오 시스템에 비해 무게와 공간을 최대 90%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모빌리티에서 실내 공간 극대화와 경량화가 지금보다 더 중요해질 것을 감안한 기술이다.

보쉬는 B2B 분야의 강자답게 이번 CES를 통해 모빌리티, 에너지, 빌딩, AI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보쉬는 1억 유로를 투자해 독일에 AI 캠퍼스를 설립하고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AI 전문가를 양성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2025년까지 모든 제품에 AI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보쉬가 이번에 공개한 버추얼 바이저가 바로 이런 전략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버추얼 바이저는 카메라와 연결된 투명 LCD 선바이저로 햇빛을 차단하는 기술이다. 기존의 선바이저와 달리 인텔리전트 알고리즘을 이용해 운전자 눈 부위로 향하는 햇빛만 지능적으로 차단한다. 참고로 이 기술은 보쉬의 3D 디스플레이와 함께 CES 2020 최고의 혁신상을 수상했다.

자율주행과 전동화로 인한 패러다임의 변화 중 눈여겨볼 것은 전통적인 IT 기업들의 진입이다. 차내 경험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5G 데이터 네트워크, 초고속 프로세서, 미디어 플랫폼 등 점점 더 고도화된 IT가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CES에서도 IT 기업들의 다양한 모빌리티 솔루션이 눈길을 끌었다.

삼성전자는 CES 2020에서 자회사 하만을 통해 모빌리티 전장 부문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삼성전자의 자동차용 프로세서인 ‘엑시노스 오토 V9’ 칩세트를 탑재한 디지털 콕핏 2020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디지털 콕핏 2020은 8개의 디스플레이와 8개의 카메라를 활용해 안전 운전 지원은 물론, 다양한 인포테인먼트 경험을 지원한다. 탑승자는 주행 중에도 고화질 콘텐츠와 고화질의 정밀 지도를 실시간으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고, 끊김 없이 화상회의를 하거나 스트리밍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또한 하만은 탑승자가 접근하면 모빌리티 설정을 해당 사용자에게 맞게 개인화하고, 잠금 장치를 해제하는 원포올(One for All) 솔루션과 전기차용 오디오 및 인포테인먼트 패키지인 EV 플러스 솔루션도 함께 선보였다.


미래 모빌리티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은 SK그룹은 이번 CES에서 SK이노베이션(에너지), SK텔레콤(통신, 미디어), SK하이닉스(반도체), SKC(소재) 등 4개 그룹사의 공동 부스를 차렸다. 모빌리티와 연관 있는 각 그룹사의 강점과 함께 SK그룹의 역량을 한 번에 드러내는 구성을 택한 것이다.

그중 차내 경험과 연관된 전시물은 SK텔레콤의 차량 내부 통합 인포테인먼트 IVI였다. IVI는 모바일 내비게이션 ‘T맵’, AI 음성 인식 ‘누구(NUGU)’, 음원 서비스 ‘플로(FLO)’,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웨이브(WAVVE)’, 주차장 검색 서비스 ‘T맵 주차’ 등 현재 SK텔레콤이 지원하는 다양한 모바일 앱을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 통합 시스템이다. 모바일 및 미디어 분야에서 활용하던 기술을 합쳐 모빌리티에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IT 기업들이 모빌리티를 스마트 디바이스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LG전자 역시 CES 2020에서 모빌리티 솔루션을 공개했다. LG전자는 리눅스 기반의 차량 인포테인먼트 플랫폼인 웹OS 오토(WebOS Auto)를 적용한 커넥티드 카를 전시하고, 집과 모빌리티의 매끈한 연결성이 보장되는 미래를 제시했다. 웹OS 오토는 여러 기기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멀티미디어 플랫폼이다. LG전자의 AI 플랫폼 씽큐(ThinQ)를 도입해 AI 가전제품에서 경험할 수 있던 편리함을 모빌리티 안으로 끌어오겠다는 것이다. 가령, 웹OS 오토를 통하면 집에서 TV로 보던 영상을 모빌리티 디스플레이로 옮겨서 볼 수 있다.

소니는 모바일산업박람회(Mobile World Congress, 이하 MWC) 2018에서 5G 커넥티드 콘셉트 카 SC-1을 선보인 바 있다. 당시 소니는 이를 ‘차량 형태의 IT 커넥티드 디바이스’로 소개했다. 모빌리티가 아닌 사람들의 이동을 돕는 모바일 기기라는 개념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니가 올해 CES에서 공개한 콘셉트 카 비전-S는 33개의 고성능 센서가 장착된 자율주행 모빌리티다. 이전보다 모빌리티 개념에 더 충실한 콘셉트 카로 영역 확장을 알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니가 직접 모빌리티를 제작할 의사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콘셉트 카는 일종의 카탈로그로 보면 된다. 참고로 소니 비전-S에는 제스처 컨트롤과 같이 직관적인 사용자인터페이스(UI)를 가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시트에 내장형 360 리얼리티 오디오(360 Reality Audio) 등이 들어간다. 또한 모빌리티 전장 부문 진출을 위해 그간 축적한 이미징 및 센싱 기술을 비롯해 AI, 통신, 클라우드 기술 등도 온보드(on-board) 소프트웨어로 통합 적용됐다.



차내 경험의 차별화, 브랜드 철학에서 나온다

무선 업데이트, AI 음성 인식, 카투홈, 카 페이 등 모빌리티 시대를 대비해 자동차 회사들이 현재 도입하고 있는 기술들이나 부품 업체들이 제시하는 솔루션은 대부분 전자 시스템으로 구현된다. 그러나 새로운 차내 경험은 이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테리어 디자인부터 구성, 소재, 외부와의 연결성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새로운 환경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 회사들이 다소 과장된 비전을 앞다퉈 선보이는 이유다. 미래의 소비자들은 자신이 어떤 브랜드의 모빌리티를 이용함으로써 어떤 환경에 놓이는가,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해 현재 구체적인 형태나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서 특별한 차내 경험이 필요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개인 디바이스로 여유 시간을 보내는 데 익숙하니, 이를 편히 사용할 수 있는 환경만 제공하면 된다는 논리다. 사실 메르세데스-벤츠가 상호작용(interaction)을 강조하며 AVTR를 ‘생명체’라고 표현하는 것에도 이런 논리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대중적인 자동차 브랜드는 언제든지 전략을 바꿔 수익을 낮추거나 플랫폼 제공업체로 돌아설 수 있지만, 특히 벤츠 같은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는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빌리티 시대를 앞두고 있는 지금, 럭셔리 브랜드의 가장 큰 숙제는 자동차 소유에 대한, 더 비싼 차를 구입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제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소비자의 욕구와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브랜드가 명확한 철학과 메시지를 확립하고 이를 제품에 반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자동차 회사들이 선보이는 콘셉트 카들이 서로 다른 시각으로, 서로 다른 차내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필자소개
류민 수석은 글로벌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MOTORTREND)’ 한국판 수석 에디터를 지냈다. 이세환 책임은 영국 ‘카(CAR)’ 매거진 한국판과 ‘기어박스(Gearbax)’ 등 자동차 전문지에서 콘텐츠를 제작했다. 최은주 선임은 매경닷컴, 오마이뉴스 등에서 완성차 뉴스를 담당했다. 디지털 기반 마케팅 전략 및 솔루션을 제공하는 크리에이티브 컨설팅 업체 프럼(www.frum.co.kr)은 2020년 6월 모빌리티저널(Mobility Journal)을 창간해 국내외 모빌리티 트렌드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DBR Case Study: 화장품 분석 앱 ‘화해’ 성공 전략

이 화장품엔 ○○ 성분이 들어 있어요', 의문 풀어주니 500만 유저가 몰렸다

Article at a Glance

화장품에 들어 있는 성분이 위험하지는 않은지, 알레르기를 유발하지는 않는지 친절하게 해석해주며 500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이끌어낸 앱 ‘화장품을 해석하다(이하 화해)’. 화해의 성공은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1. 스타트업 성공의 핵심은 고객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 있다: 화해는 ‘화장품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싶다’는 고객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며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

2. 소비자가 서비스 업그레이드의 주인공: 화해는 처음부터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는 소비자 니즈에 귀 기울이며 리뷰, 랭킹, 커머스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왔다.

3. 수익화를 서두르기보다는 신뢰부터 쌓았다: 화해는 좀 더디더라도 이용자 규모를 확대하며 탄탄한 신뢰도를 쌓은 뒤 돈이 되는 광고나 커머스는 지난해 이후에야 도입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고은진(중앙대 신문방송학부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비싼 브랜드니까 뭔가 다르지 않겠어?” 겉으로 보기엔 비슷해 보이는 하얀색 액체이건만 가격은 왜 수백 배씩 차이가 나는 것인지 소비자들은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브랜드 이미지나 입소문, 리뷰에 의존해 구매할 수밖에 없는 게 화장품이었다. 어떤 제품이 피부에 무해한 친환경 성분을 사용하는지 등등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제대로 파악하고 비교해 자신의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골라내기란 사실상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이었다.

물론 접근 가능한 정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부는 2008년부터 소비자의 알 권리를 위해 화장품 제조에 사용된 모든 성분을 기재토록 하는 화장품 전(全) 성분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50ml 이하 제품 겉면에는 성분이 표시되지 않았고, 설령 표시가 돼 있다고 하더라도 ‘페녹시에탄올, 클로페네신’과 같은 화학성분이 도대체 피부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소비자가 의미를 해석하기란 불가능했다. 사실상 반쪽짜리 정보였던 셈.

이런 정보 불균형 상태를 해결해보겠다는 포부로 시장에 뛰어든 이가 바로 버드뷰의 이웅 대표와 2명의 고교 동창. 3명의 창업멤버들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 ‘화장품을 해석하다(이하 화해)’는 피부과 교수, 화장품 연구소 대표 등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소비자들이 이름만 들어서는 절대 알지 못하는 화장품 성분의 특징과 영향을 자세히 소개했다. 식약처의 지침에 따라 화장품 포장에 표기되고 있는 전 성분을 미국 시민단체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 대한피부과의사회 등이 고지하는 기준에 맞춰 분석하고 위험 성분, 알레르기 주의 성분 등을 소비자가 보기 편하게 알려준 것이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값진 정보를 제공하자 그동안 ‘깜깜이’ 상태로 화장품을 구매해야 했던 소비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일기 시작했다. 탈모나 민감한 피부로 고민하던 직장인에서부터 아토피를 앓는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까지 입소문이 퍼져나갔다. 2030 직장 여성들의 관심도 높아지면서 화해는 서서히 인기 앱 반열에 올랐다. 2013년 7월 출시 이후 4년여간 구글과 애플 앱스토어 화장품 카테고리에서 줄곧 1위를 차지한 끝에 2015년 2월 100만 다운로드, 2016년 2월 200만 다운로드, 2016년 8월 3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하더니 올해 들어 누적 다운로드 500만 건을 돌파했다. 화장품 구입 전후 화해를 사용하는 사람(MAU·월간 활성이용자 수)은 월 기준 110만 명에 이른다.

보유 데이터양도 4년여 새 무섭게 불어났다. 화해가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화장품은 2017년 6월 현재 4757개 브랜드의 8만5000여 개 제품. 국내 출시된 전체 화장품 중 약 70%에 달하는 제품들의 성분 정보가 화해에 모여 있다. 화해는 화장품 리뷰가 공유되는 ‘리뷰 허브’이기도 하다. 230만 건가량의 사용자 리뷰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화장품 기업 중 화해만큼 막대한 양의 소비자 반응 및 평가 데이터를 가진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스레 화해는 대기업들도 무시 못할 화장품 업계의 작지만 강한 플레이어가 됐다. 일부 대기업에서 인수를 고려했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로 관심의 주인공이 된 화해는 지난 2015년 말 투자자들에게 톡톡한 수익을 돌려주며 나이스그룹에 편입됐다. ‘버드뷰의 독립적인 경영권을 유지한다’는 조건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구체적인 수익모델을 일궈내지 못한 스타트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장품 성분 분석과 소비자 리뷰, 신뢰와 영향력이라는 화해만의 독자적인 ‘자산’을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그 후로도 이용자 규모를 꾸준히 확대해 온 화해는 이제 광고, 커머스를 통해 영향력은 물론 ‘수익’이라는 토끼까지 잡기 위해 바쁘게 뛰고 있다. 화해의 성장 스토리를 DBR이 분석했다.



값진 두 번의 실패, 고배를 마셨지만 ‘교훈’은 거뒀다

‘컨설팅? 금융회사?’ 여기저기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가슴이 뛰질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슴속에 자리한 창업의 꿈에 대한 미련만이 자꾸 그를 괴롭혔다. “딱 3번만 도전해보자.” 다행히 대학 졸업을 눈앞에 둔 이웅 대표의 곁에는 되든지 안 되든지, 함께해보자는 든든한 고교 동창 2명이 있었다. 의기투합한 3명의 남자들은 다른 동기들이 열심히 면접을 다닐 때 코딩 등 앱 개발 공부를 하며 창업을 위한 실무준비를 해나갔다.

2012년, 첫 번째 시도는 여행 관련 애플리케이션이었다. 사실 별다른 창업자금이 없는 대학생들끼리 뭔가를 해보기 위해서는 ‘창업경진대회’가 가장 쉬운 통로였다. 갖가지 창업경진대회의 문을 두드렸다. 10여 차례 고배를 마시다가 처음으로 수상의 영광을 안은 것이 바로 한국관광공사가 진행했던 창조관광 사업이었다. 사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여행족도 아니었는데 덜컥 경진대회용 아이템을 낸 것이 수상을 하면서 여행 앱으로 창업의 첫발을 내디딘 셈.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여행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행에서의 ‘만남’도 큰 의미를 가지는 만큼 여행 중인 사람들이 같은 도시를 여행하는 다른 여행자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것이었다. 앱의 이름도 travel+friends를 합쳐서 ‘트렌즈’라고 지었다. 나름 신선한 발상이라고 자부했건만 인기 앱을 만드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한 달 정도가 지나도 700명 이상으로는 다운로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 700명마저도 사실상 관광공사의 홍보에 따른 것이었다.

실패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두 번째 도전에 나선 이들. 이번에는 가볍게 자판기 사업을 아이템으로 잡았다. 자판기 사업에 ‘올인’을 하기보다는 자금력이 떨어진다는 게 굉장히 부담인데 자판기로 꾸준히 현금 소득을 거둘 수 있으면 그것이 향후 제대로 사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일반 자판기는 도저히 사업성이 없을 것 같아서 머리를 짜낸 것이 헬스장에 들어가는 단백질 보충제 자판기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자판기를 구입해 신촌에 3군데에 입점시킨 뒤 상황을 지켜봤지만 소비자들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이제 어느덧 한 번의 기회만이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신중하게 해보고, 안 되면 일단 어디든 취업을 해 경험을 쌓고 다시 도전하자.” 앞서 2차례 겁 없이 도전했던 이들은 비로소 두 번의 도전을 찬찬히 복기해보기 시작했다. 한 발짝 떨어져 보니 그들이 저질렀던 실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첫 번째 아이템인 해외여행에서 친구를 연결해주는 앱은 해외에서 매칭이 이뤄져야 하는 등 그들이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가입자가 일정 규모 이상이 돼 쉽게 여행친구를 찾을 수 있어야 가입을 할 ‘니즈’가 있는, 네트워킹 효과가 바탕이 돼야 하는 사업 아이템이었다. 따라서 고도화된 마케팅 능력이 필수였다. 보충제 자판기 사업의 경우, 시장이나 소비자 니즈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했다. 자판기 사업을 하기 전에 ‘헬스를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단백질 보충제를 먹는가’라는 기본적인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안일하게 ‘자판기를 갖다 놓으면 사람들이 헬스를 하다가 먹겠지’라고 기대했는데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헬스를 즐기는 이들은 본인이 까다롭게 검증한 보충제를 사물함에 넣어두고 틈틈이 섭취하고 있었다. 자판기에서 꺼내먹는 방식이 소비자들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도대체 마지막 아이템은 어떤 것이 돼야 하는가. 뼈아픈 2번의 실수를 경험한 그들은 기본적으로 본인들이 흥미를 갖고 있고, 끊임없이 학습할 수 있는 영역이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봤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결정적인 조건은 큰 자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분야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섣부르게 아이템을 결정하지 않고 몇 달간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아이데이션(Ideation)’ 과정을 거쳤다.

그러다 우연히 접하게 된 것이 남성 화장품 시장. 그러고 보니 주변에 한 달에 30만∼40만 원을 화장품에 쏟아붓는 남성 그루밍족(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돈을 투자하는 남자들을 일컫는 신조어)들이 출현하고 있었다. 반면 아직까지 화장품의 ‘화’자도 모르는 남성들도 많았다. 이는 남성 화장품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했다. 순간 머릿속에 ‘큰 그림’이 스쳐 지나갔다. 노트북 하나를 살 때도 몇 달씩 성능을 비교하고, 또 비교하는 남성들의 습성을 화장품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화장품의 스펙을 비교하고 공부하며, 이를 쉽게 고를 수 있게 도와주는 플랫폼이 생기면 화장품 시장에 접근하지 못했던 남성들의 발걸음이 이어질 것이라는 구상이었다.



“소비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자”


1. 해결하고 싶은 과제에 집중한 화해

이처럼 당초의 비즈니스 모델은 게임처럼 ‘스펙 비교’를 즐기는 남성들을 위한 화장품 큐레이션 플랫폼이었다. 노트북을 살 때 밤을 새워가며 CPU(중앙처리장치) 등 각종 사양을 비교하고, 자동차를 장만하기 전 출력과 엔진스펙을 줄줄 꿸 정도로 공부하는 남성들을 위해 화장품에 대해서도 스펙 분석의 ‘장(場)’을 열어주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스펙 비교를 해주려고 보니 ‘성분’이 자연스레 눈이 들어왔다. 수십만 원짜리 크림부터 단돈 1만 원짜리 크림까지, 가격대가 천차만별인데 도대체 어떤 성분이 들어갔는지를 알 수 없었다. “만약 성분만 제대로 정리해낼 수 있다면 ‘A 화장품은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제로인데, 용량 10ml당 가격이 제일 저렴하다, 즉 가성비 갑.’ 이런 식으로 분석이 가능해질 수 있을 텐데….” 알고 보니 정부가 시행 중인 ‘전 성분 표시제’ 덕분에 성분을 알 통로가 없진 않았다. 대한피부과의사회, 미국 비영리 환경단체들이 공개해놓은 데이터들만 해도 수두룩했다. 문제는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가끔 들여다보긴 하는데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고”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냥 안 보는데…” 대다수의 반응이 그러했다. 성분이 공개되고 있었지만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웅 대표는 돈을 떠나서 꼭 풀고 싶은 커다란 과제를 만난 느낌이었다. 정부는 ‘전 성분 표시제’를 시행만 할 뿐 추가적인 정보는 제공하지 않았다. 소비자에게 알아서 공부하라는 식이었다. 소비자들에게 이를 제대로 제공하는 민간 업체도 없었다. ‘우리가 여기 뛰어들어 성분을 제대로 분석하고, 쉽게 풀어내줄 수 있다면 어떨까.’ 3명의 창업 멤버는 화장품 성분을 둘러싼 ‘정보 불균형’이라는, 해결하고 싶은 명확하고 큰 과제를 설정했다. 남성 화장품 시장이 화장품 시장의 하위 카테고리라면 화장품 성분을 둘러싼 정보 불균형은 화장품 시장과 전체 소비자를 둘러싼 큰 과제였다. 이들에게는 더 가치 있고 큰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망설임 없이 화장품 시장에는 남되 남성 화장품이라는 키워드를 버리고 ‘성분 정보’에 집중하기로 했다. 과감한 ‘피버팅(Pivoting)’1   이었다.



2. 내가 찾은 ‘문제’가 소비자들에게도
과연 ‘문제’인가, 문제를 검증하고, 또 검증해


물론 그들이 찾은 ‘문제’가 정말 고객에게도 큰 문제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야 했다. 과연 화장품 성분 정보에 대한 니즈가 충분한지, 화장품 성분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게 소비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앞서 두 차례 충분한 소비자 조사도 없이 덤볐다가 낭패를 봤던 터라 이번에는 더 세심하게 접근했다.

일단 유사 서비스를 확인해봤다. 제대로 성분분석 정보를 제공해주는 업체는 없었지만 일부 개인 전문가들이 온라인 블로그를 통해 Q&A 형식으로 성분에 대한 컨설팅을 해주고 있었다. “A화장품에 대한 성분 분석 좀 해주세요”라고 사람들이 요청을 올리면 전문가들이 어떤 성분들이 들어 있고, 그 성분들이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분석해주는 식이었다. 해당 블로그들을 한참 둘러보면서 소비자들의 니즈가 충분하다는 믿음은 더해졌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비자들이 해당 블로그를 ‘한 번 이용하면 그 후 반복적으로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취득한 정보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는 뜻이었다. 제대로 플랫폼을 갖춰 다양한 화장품의 성분 분석 정보를 제공하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그렇다면 어떻게 플랫폼을 구성할 것인가. 다행히 도처에 데이터는 적지 않았다. 일단 전 성분 표시제에 따라 아모레퍼시픽 등 상당수 화장품 제조사들이 성분을 공개해두고 있었다. 미국의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 등에서 해당 성분의 장단점, 특징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런 공신력 있는 협회들의 정보를 잘 모은다면 화장품 성분의 맥락을 이해하기 쉽게 스토리텔링해 줄 수 있으리라고 봤다.

실제로 수십 차례의 시뮬레이션 결과 자신감이 붙었다. “A 화장품에는 20가지 주의 성분이나 알레르기 주의 성분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EWG 기준에 따라 전 성분을 분석한 결과 모든 성분이 낮은 위험도의 성분이었지만 자외선 차단 성분인 ‘티타늄디옥사이드’는 중간위험도 성분입니다.” 이처럼 성분에 대한 정보를 쉽게 풀어낼 수 있었다. 게다가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해볼수록 스스로도 굉장히 의미 있는 정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웅 대표는 “성분 분석 플랫폼이 소비자들이 화장품에 가지고 있던 궁금증이나 평소 소비과정에서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더 빠르게 결단을 내리고, 서비스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파일럿 테스트’ 실시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카페 24(www.cafe24.com)’ 사이트에 화해가 기획하던 서비스를 초기 버전으로 제공하고 반응을 살펴봤다. 게시판에 소비자들이 성분 분석 요청을 하면 화해가 분석을 해주고 옆에는 성분 분석 결과가 좋은 제품을 제시하는 방식이었는데 소비자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플랫폼 형태는 자연스레 웹페이지가 아니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됐다. 아직까지 화장품의 경우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구매액이 훨씬 높다. 사람들이 편하게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면서 성분 분석을 할 수 있어야 이용도가 높아질 수 있었다.

이렇듯 화해는 소비자가 궁금해 하지만 알지 못하는 화장품 성분을 둘러싼 정보 불균형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설정하고 소비자가 진짜 그것을 ‘문제’로 여기는지 검증하고, 또 검증했다. 그 후 해당 문제해결에 집중했다. 에어비앤비와 드롭박스를 포함한 80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등 지난 10년간 스타트업을 지켜봐온 폴 그레이엄은 스타트업이 실패하는 원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의미에서 스타트업을 죽이는 실수는 딱 하나밖에 없다. 사용자가 원하는 무언가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든다면 당신이 무엇을 하든, 무엇을 하지 않든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2    성공을 결정짓는 것은 최고의 기술이 아니다. 성공의 핵심은 고객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다. 사실 화해의 앱은 ‘사용성’ 측면에서는 화려하거나 돋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400만 명이 넘는 유저들이 이 앱을 다운로드한 것은 이 앱만이 해결해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업들이 정작 자신들이 해결해야 할 고객의 문제는 잊고, 제품이나 서비스, 디자인에만 치중하곤 한다. 화해는 “화장품에 도대체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알고 싶다”는 고객들의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성분 분석→리뷰→커머스,
소비자 ‘니즈’에 따라 업그레이드된 화해


1.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다

완벽함에 대한 ‘강박’이 없었다는 점도 화해만의 특징이다. 최종적으로 앱을 출시하기 전 한 달 동안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데 몰두했다. 하지만 도대체 DB를 어느 정도나 구축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방대한 양의 정보를 구축하고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일단 시작한 뒤 데이터양을 늘려 갈 것인가.’

화해는 후자를 선택했다. 단, 앱을 출시하면서 소비자들을 유인하기 위한 바탕이 될 기본데이터는 필요했다. 목표는 ‘3000개’였다. 3000개의 제품 성분 정보를 등록해야 소비자들이 찾아올 매력도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동안 이웅 대표를 비롯한 직원들이 화장품 회사의 온라인 홈페이지를 뒤지고, 백화점에 가서 직접 화장품 성분 정보를 메모해오는 등 발품을 팔아가며 성분 정보 등록에 매달렸다.

그렇게 3000개의 제품 성분 정보를 포함한 후 2013년 7월 출시한 앱 ‘화해.’ 개발자의 도움을 일부 받긴 했으나 3명의 인문계 출신 창업자들이 내놓은 앱은 사용자 인터페이스나 편의성 측면에서 여타 앱에 비해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창업 멤버들에게는 화해에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정보가 있으니 통할 것이란 강한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서비스 업그레이드의 주체를 ‘소비자’로 삼았다. 일단 3000개의 성분 정보로 시작하지만 소비자들이 화장품 사진을 찍어 성분 분석을 신청하면 그에 최대한 응하고 이로써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한다는 계산이었다. 실제로 초반에는 앱을 가동하면 바로 ‘문의하기’ 코너가 보일 만큼 문의하기 기능을 메인에 배치했다. 하루에 성분 분석 문의가 200∼300개씩 쏟아졌지만 이것을 밤새워가며 해결했다.

그러면서 어느새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더니 한 유명 뷰티 블로거가 화해 서비스를 언급하자 곧 하루 방문자가 수만 명을 돌파했다. 운도 따랐다. 독성 물질을 포함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해 정부 집계로만 최소 103명의 사망 원인을 제공한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에 대한 검찰조사가 2016년부터 본격화되는 등3    이른바 ‘옥시 사태’가 우리 사회를 달굼에 따라 사람들은 화학 성분에 대해 더 민감하고 예민해졌다. 그동안은 귀찮으니 ‘모르고도’ 썼지만 이제는 품이 들어가더라도 알아보는 데까지 알아보려는 소비자들이 늘어났다. 그렇게 달라진 태도와 가치관을 가진 똑똑한 소비자에게 화해는 훌륭한 도우미로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2. 고객들의 니즈에 따라 플랫폼 끝없는 업그레이드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못지않게 변화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화해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반영해 계속해서 플랫폼을 업그레이드, 또 업그레이드했다. 2013년 앱을 출시한 뒤 2014년 5월 리뷰 서비스를, 2015년 12월 랭킹 서비스를, 2017년 6월 커머스 서비스를 추가했다. 화해는 ‘화장품 시장의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해서 소비자 중심적인 시장을 만들자’는 큰 비전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성분 분석 정보 외에 화장품을 구매할 때 필요한 정보가 무엇일까? 고민해보니 답은 ‘써보니까 어떠했다’는 솔직한 평, 리뷰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순위 매기기를 즐기는 한국인들의 특성상 ‘스킨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은 A’라는 식의 랭킹 서비스가 따라와야 했다.

물론 화해의 리뷰는 다른 리뷰와는 달라야 했다. 사실 화장품 리뷰를 볼 수 있는 공간은 많았다. 단, 상업적인 리뷰, 불순한 의도를 가진 리뷰, 브랜드에서 직접 작성한 듯을 리뷰를 제대로 걸러낼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신뢰성이 적은 리뷰를 반드시 걸러내야만 리뷰 플랫폼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본 화해는 그래서 몇 가지 ‘허들’을 만들었다. 일단 리뷰 작성자가 자유로운 형식으로 리뷰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둘 다 기록하도록 했다. 자유로운 포맷을 가지고 있는 블로그의 경우 그 안에서 여러 가지 변형이 가능하다 보니 광고성의 리뷰나 포스팅을 하기 용이했다. 장점과 단점을 둘 다 기록해야 하는 특정 포맷을 강제하니 광고성 리뷰는 적어지고 훨씬 신뢰도 높은 리뷰가 올라왔다. 두 번째 허들로 내가 리뷰를 작성해야만 다른 사람의 리뷰도 확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다. 블로그의 문제점을 살펴보니 영향력 높은 일부 뷰티 블로거들이 광고성 리뷰들을 작성하며 여론을 주도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소비자들의 리뷰에 대한 신뢰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화해는 콘텐츠 제공자가 소수에 한정돼 있다는 점, 그 집중된 ‘콘텐츠 작성비율’이 문제라고 판단했다. 화해를 사용하는 일반 소비자들 대다수가 콘텐츠를 작성하도록 만든다면 행여나 그중에 일부 광고성 글이나 상업적인 글들이 섞이더라도 희석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이 두 가지 허들은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더해 화해 정보관리팀에서는 매일매일 올라오는 리뷰들에 대해 전체 검수를 시행하고 있다. 상업적인 리뷰를 걸러내기 위한 자체 알고리즘으로 문제가 될 만한 콘텐츠를 1차적으로 걸러내고, 팀원들이 다시 한번 확인한다. 계속해서 문제가 되는 브랜드나 제품은 ‘블랙리스트’로 등록해 브랜드 쪽에 시정조치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 결과 화해의 리뷰는 성분 분석 정보 못지않은 화해의 ‘핵심 콘텐츠’가 됐다. 무려 200만 건 이상의 리뷰가 올라와 있지만 양 못지않게 신뢰도를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화해는 ‘랭킹’과 더불어 각종 뷰티정보를 기사로 정리해 제공하고 있다. 화해 앱의 ‘화플’ 코너에는 계절별 뷰티고민을 만족시켜주는 디테일한 기사들이 시시각각 올라온다. 예를 들어 여름 휴가철을 맞이해 ‘자외선 차단의 모든 것’과 같은 카드뉴스가 업로드되는 식이다. 이렇게 업데이트되는 각종 콘텐츠들은 적게는 2만여 건에서 많게는 5만여 건의 클릭 수를 기록하며 화해 사용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올해부터는 아예 화해 앱상에서 화장품을 구매할 수 있게 커머스 기능도 더해졌다. 화장품에 대한 성분 정보를 확인하고 리뷰를 본 뒤 맘에 드는 제품은 아예 그 자리에서 구매할 수 있게 플랫폼의 기능을 확장한 셈이다. ‘화장품과 관련한 모든 것을 총망라한 앱’을 표방한 것이다. 화해의 열혈이용자들 가운데는 화해가 커머스까지 뛰어드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들도 있었다. 화장품에 대한 성분 분석 정보와 리뷰를 제공하는 화해가 제품 판매에까지 나서게 되면 ‘판매실적’ 때문에 객관성, 공정성이 퇴색될 수 있다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이웅 대표는 ‘화해만의 리뷰’는 달랐듯이 커머스도 ‘화해만의 커머스’면 통할 것이라 봤다고 설명했다. “열혈 이용자들의 걱정을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화해에서 제품을 구매한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 의미를 가질까’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봤습니다. 팔릴 만한 제품을 가져와서 파는 것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기존의 그런 커머스 문법을 따르자고 한다면야 우리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곳이 수두룩했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성분 분석과 리뷰 콘텐츠, 이를 신뢰하고 있는 사용자들이 우리가 갖고 있는 두 가지 핵심 경쟁력이라고 봤고 이를 조화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성하고자 했습니다.” 화해의 결론은 두 가지였다. 1) 잘 팔릴 만한 제품, 이미 잘 팔리고 있는 제품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화해 내에서 성능을 인정받고 있는 제품을 판매하자. 2) 그 제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우리들의 인위적인 목소리를 넣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자들의 리뷰 속 생생한 목소리를 살리자.

화해는 ‘이제 리뷰로 쇼핑하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화해가 가지고 있는 소비자들의 생생한 리뷰라는 엄청난 자산을 활용해 새로운 쇼핑경험을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화해는 A 제품을 소비자들이 왜 좋아하는지 해당 제품에 대한 리뷰 분석을 통해 파악해낼 수 있다. ‘아이오페 에어쿠션’을 예로 들어보자. 다양한 강점이 있지만 텍스트 마이닝 분석을 해보면 ‘수분감이 굉장히 좋다’ ‘화장이 들뜨지 않는다’와 같은 주된 특징이 도출된다. 화해는 광고 문구가 아닌 소비자들의 리뷰에서 찾아낸 이 같은 포인트 중심으로 쇼핑 섹션을 구성했다.

사실 ‘성공’의 열매는 달콤하다. 보통은 그래서 성공을 지키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화해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성분 분석 정보를 제공해서 얻은 인기와 인지도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리뷰 플랫폼을 추가했고, 그 후엔 매거진 콘텐츠를 제공하더니, 제품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커머스 기능을 추가했다. 지금까지 앱이 출시된 이후 업데이트만 99번. 이와 같이 계속해서 소비자들의 ‘니즈’를 좇아왔기에 오늘의 화해가 있을 수 있었다. 이웅 대표는 “한 번 뜬 인기스타도 그 인기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처럼 유저들이 계속 앱을 사용하게 하는 것도 서비스적으로 굉장한 난제(難題)였다”며 “데이터 분석과 사용자 니즈 분석을 지속하면서 결국 소비자들에게 계속해서 도움이 돼야 한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하면 화장품 정보를 얻고 구매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인가. 그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성분, 리뷰, 랭킹에 이어 매거진 콘텐츠와 쇼핑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지금도 화해 서비스 중심에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있다. 매일 들어오는 소비자들의 요청과 문의를 CS팀에서 통계를 내 매월 “화해 유저들이 어떤 요구를 했는가”를 전사적으로 공유한다.






수익화 서두르지 않고 소비자들의 신뢰
먼저 쌓으니 자연스레 업계에서도 ‘파워’ 생겨

현재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모바일 메신저들은 긴 시간 동안 이용자 확보에만 주력하며 수익화를 미뤘다. 그 후 이용자가 절정에 이른 순간 게임과 커머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며 지금의 천문학적인 매출 규모를 달성할 수 있었다.4  앞서 보듯 화해도 섣불리 수익화를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화해의 플랫폼 영역을 확장해왔다. 화장품 분석 정보로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화해만의 리뷰’ ‘화해 랭킹’을 선보이는 식으로 말이다. 돈이 되는 광고나 커머스는 2016년 이후에야 도입됐다. 사실 더 빨리 높은 수익을 올리고 싶었다면 다른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었겠지만 화해는 좀 더디더라도 탄탄한 신뢰도를 쌓고 이용자 규모를 키우는 방향을 선택했다. 이는 도리어 화해의 공정성과 영향력을 높여줬다. 그리고 그것은 화해의 수익이 ‘숫자’로 증명되지 않더라도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게끔 만들어줬다.

실제로 2015년 말까지 별다른 매출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기업에서 화해에의 투자와 인수에 관심을 보였다. 굴지의 대기업에서도 상당히 진지하게 화해 인수를 검토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화해는 독립적인 경영권이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2015년 말 금융정보기업 나이스그룹 신사업 부문으로 편입됐다. 당시 뚜렷한 수익을 내고 있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기업들이 화해에 눈독을 들였던 것은 업계에서 화해의 열혈유저, 신뢰도, 리뷰 데이터 등의 가치가 확실하게 평가됐다는 이야기다. 이웅 대표는 “나이스그룹은 결국 신용평가와 밴 사업 등으로 데이터를 확보해 경쟁우위를 가져가는 기업”이라며 “현재 화장품 시장에서 파생되는 각종 데이터들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며, 그것을 유용하게 이용할 것인가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비록 화해를 ‘한 식구’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화해가 가진 영향력을 활용하고픈 화장품 회사, 유통회사들의 러브콜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7월에도 화해는 신세계백화점 전 점에서 ‘코스메틱 페어’를 진행했다. 브랜드별로 화해 랭킹 상위 화장품에 ‘화해 마크’를 부착하고 고객에게 선보인 것이다. 일부 브랜드에서는 화해 랭킹 베스트제품이 포함된 기획세트를 구성해 판매하기도 했다. 이처럼 화해는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대기업들로서도 화해는 매력적인 플랫폼이다. 뷰티 업계 관계자는 “화해 애플리케이션 사용자는 성분과 같은 화장품 정보에 기반해 쇼핑을 즐기는 ‘적극적이고 준비된 화장품 소비자’라는 특성이 있어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사실 초창기만 해도 화장품 제조업체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이렇게 성분을 분석하고, 리뷰를 공개하는 것이 문제 아니냐”며 상표권 침해, 영업 방해, 명예훼손 등으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브랜드도 수두룩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학습효과가 생기며 업체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성분 분석 정보가 신경 쓰이긴 해도 화해에서 유저들의 관심대상이 되는 것이 그들 제품의 인지도를 끌어올려주며, 또 이제 화장품 구매시장도 모바일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화해에서의 호평을 바탕으로 지명도를 높인 중소 브랜드도 적지 않다. 아로마테라피를 테마로 한 유기농 화장품 브랜드 ‘아로마티카’의 경우 브랜드 파워는 약했지만 EWG로부터 안전한 화장품에 선정될 정도로 제품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화해를 통해 천연성분을 사용했다는 점과 사용후기가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주목받는 브랜드 중 하나로 성장했다. ‘아빠가 만든 화장품’이란 콘셉트의 ‘봄비’ 역시 2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면서 중국까지 진출했다. 역시 화해에서 좋은 평가로 입소문을 탄 브랜드다.

화해의 도전은 계속된다 지속적인 수익모델 구축은 ‘숙제’

물론 화해에는 적잖은 과제가 남아 있다. 가장 큰 과제라고 한다면 단연 영향력을 쌓을 수 있는 만큼 쌓았으니, 이제 그 영향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모델을 확보하는 것이다. 일단 광고사업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화해 앱에 2016년 광고를 도입했는데 작년 광고주가 30곳이었던 것이 2017년 상반기 200곳으로 늘어났다. 하반기에는 이를 훌쩍 뛰어넘을 것이란 예상이다.

온라인 커머스를 시작한 데 이어 이르면 내년 오프라인 스토어에도 진출한다. 올리브영부터 시작해서 롭스 등 수많은 드럭스토어들이 현재 오프라인에서 경쟁하고 있지만 화해는 신개념 드럭스토어로 빈틈을 공략할 계획이다. 현재 오프라인 드럭스토어에는 단순히 많은 제품들이 진열만 돼 있을 뿐 물건에 대한 충분한 정보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점원 눈치를 보며 화해를 체크하거나 네이버 검색을 하며 제품을 구입하고 있다. 화해는 기존 화해 콘텐츠와 사용자 데이터가 결합된 오프라인 쇼핑 영역을 만든다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화장품 구매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자신한다. 물론 화해의 오프라인 스토어로 전체 시장을 장악할 수는 없겠지만 충분히 이런 드럭스토어에 대한 니즈가 존재하며 오픈 시 ‘팬’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구상이다.

화해의 청사진은 아마존이 2015년 말부터 오픈하기 시작한 오프라인 서점 ‘아마존북스’를 연상시킨다. 미국 시애틀, 포틀랜드 등에 오픈돼 있는 아마존북스는 일반적인 오프라인 서점과는 다르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돼 있다. 주요 코너에 아마존닷컴에서 별 5개 만점 중 4개 이상을 받은 책들이 전시되며 별 4.8개 이상의 높은 평가를 받은 책들을 가장 눈에 띄는 입구에 배열된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의 ‘앳코스메’가 화해 오프라인 매장의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앳코스메’는 리뷰를 등록해 평점을 기록할 수 있게 한 화장품 포털. 일본 여성 1000만 명 이상이 사용할 만큼 대중적인 서비스인 앳코스메는 오프라인 매장 사업도 벌이고 있어 화장품 유통시장에서 목소리가 막강하다. 아마존 북스토어와 마찬가지로 앳코스메 역시 온라인에서 경험하던 것을 오프라인에 그대로 옮겨놓았다는 것이 가장 강력한 특징이다. 기존 드럭스토어들이 브랜드 위주로 제품을 진열해놓았다면 ‘각질 고민이 있는 사람들이 매긴 베스트 스킨 1∼5위’ ‘피부톤에 고민이 있는 사람들이 매긴 1∼5위’ 등 온라인상의 랭킹 정보를 가져와 소비자들이 더 쉽게 물건을 고르게 하는 식이다. 바로 옆에는 피부에 직접 발라볼 수 있는 ‘트라이얼 존’이 마련돼 있으며 각종 소비자 리뷰가 모니터를 통해 흘러나온다.


더 개인화된 서비스에 대해서도 욕심을 내고 있다. 화해의 커머스 기능이 더 자리가 잡히면 구매 데이터가 축적된다. 그럼 이 같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제로 그 사람의 개인적인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을 추가해볼 수 있다. 현재 화해 데이터팀에서는 AI나 머신러닝 등을 통해서 어떻게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를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는데 소비자 개개인별로 가장 적합한 화장품을 권유해주는 ‘챗봇 서비스’도 후보 중 하나다.

화장품 기업들을 향한 컨설팅도 화해의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화장품 회사들은 200만 건이 넘는 화해의 방대한 리뷰 데이터를 제대로 학습할 경우 상품 기획에 대한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화해는 현재 화장품 브랜드 A사에 데모 버전의 리포트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 이웅 대표의 최종적인 목표는 수익모델 창출, 그 이상이다. 서비스 영역 확대를 넘어 화해를 통해 화장품 시장의 구매패턴 자체를 바꾸고 싶다는 포부다. “브랜드 때문에 화장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성분을 제대로 알고, 리뷰를 확인하고, 똑똑하게 선택하는 소비자 중심적인 시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현재 누적 다운로드 건수가 500만 건을 넘어섰는데 이것이 2000만∼3000만 건이 되고, 활성화 사용자가 100만에서 300만 정도로 늘어나면 ‘배달의민족’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 정도로 사용자 풀이 확대되면 배달의민족이 배달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꿨듯이 화해도 확실히 화장품 시장의 한 축을 바꿔낼 것이라는 믿음이다.



성공 요인 및 시사점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데이터를 이용해 소비자들의 편익을 증진하고 혁신적인 제품 및 서비스를 실현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이터 기반의 사회’로의 이행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5    이러한 추세에 따라 정부의 공공데이터 개방 및 산업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창업의 기회를 찾으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하지만 공공 데이터와 산업 데이터를 활용해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데이터의 비즈니스화 자체의 난도도 상당하며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난 이후에도 데이터 이용에 대한 신뢰의 문제, 혁신에 대한 저항 등으로 인해 사회에서 수용되기까지 어려움을 겪는다.

화해는 이러한 난관들을 극복하고 어떻게 데이터 기반 비즈니스가 성공하고 생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DeLone & McLean(1992)의 IS Success 모형6   을 분석의 틀로 활용해 성공요인을 살펴보려 한다. 사용자의 사용 의도와 만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인 시스템 품질, 정보 품질 및 서비스 품질을 분석함으로써 전자상거래, 웹 및 앱과 같은 정보 시스템의 성공 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데 화해의 사례를 이에 비춰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정보 품질은 정보의 완전성, 용이한 이해, 개인화, 관련성, 안전 등의 개념들을 포함하고 있다. 화해는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이용해 유해물질 및 화장품 성분과 관련된 최신 정보를 완전한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데이터의 가시성 및 이용 가능성을 개선하고 ICT의 발전으로 인해 스마트해진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높은 ‘정보 품질’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에 장시간 많은 유저들이 활용하고 있으며 지속적 이용 의도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서비스 품질은 확신성, 공감, 반응성 등을 의미한다. 화해는 화해와 사용자를 연결할 뿐만 아니라 사용자와 사용자를 연결하는 ‘리뷰 허브’로 기능하며 사용자들이 다른 사용자의 리뷰에 공감하고, 확신성을 가지고 제품을 구매하도록 만드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화해라는 리뷰 플랫폼 안에서 사용자들이 정보 소비자인 동시에 정보 생산자가 되는 것이다. 230만 건이 넘는 화장품 리뷰 데이터가 모이는 정보 플랫폼인 화해의 서비스 품질은 이렇듯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넘어서 소유자-소비자, 소비자-소비자의 영역에서 확장되고, 또 향상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용 가능성, 적응 가능성, 반응시간, 이용 용이성 등이 주요한 하위 요인인 시스템 품질에 있어서 화해는 유저들이 사용하기 쉬운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구하는 데 장시간 걸렸던 정보를 실시간으로 빠르게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데이터 기반의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신뢰성을 확보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갖는다. 스티븐 코비(2006) 7   는 자신의 저서 <신뢰의 속도>에서 초고속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신뢰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신뢰의 수준을 경제적인 성과를 이끄는 핵심 요인으로 규정했다. 스티븐 코비가 주장한 신뢰의 5개 차원에 비춰 화해를 바라보면 수익화를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플랫폼의 영역을 확장해오며 획득한 신뢰가 결정적으로 화해의 성공에 작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2>와 같이 신뢰는 자기신뢰, 관계신뢰, 조직신뢰, 시장신뢰, 사회신뢰의 총 5개 차원으로 구성된다.8    화해는 화장품 성분을 둘러싼 ‘정보 불균형’이라는 산업적, 사회적 과제를 해소함으로써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겠다는 창업 당시의 전략과 자세를 일관되게 고수해왔다. 앱이 출시된 이후로 업데이트만 99번을 시행하며 변화하는 제품과 산업 환경에도 변함없이 소비자들의 ‘니즈’에 응하면서 소비자들로부터 관계 신뢰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이는 시장 신뢰로 이어져 코스메틱 산업 내에서 화해라는 이름을 브랜드화했고 신세계 등의 다수의 기업들이 함께 협력하고자 하는 위치까지 올라가게 만들었다. 이러한 신뢰 획득에 이르기까지는 수익을 낼 수 있는 쉬운 방법과 타협하지 않고 다 함께 화해를 지켜온 조직신뢰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제 화해는 신뢰 기반의 영향력을 보다 확대, 소비자들의 화장품 구매 패턴 자체를 바꾸어 시장 자체의 패러다임을 스마트해진 소비자 중심으로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정보 불균형을 해소시켜 소비자들이 브랜드 중심이 아니라 성분 중심, 실제 리뷰 중심의 스마트 소비를 하게끔 만들어 건강하고 소비자 지향적인 시장 형성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5번째 차원인 사회신뢰의 단계를 바라보고 있다 하겠다. 화해는 성장을 거듭하며 영향력을 확대해왔으며 이는 신뢰의 속도와 비례한다. 이러한 화해의 사례는 단발성 차원이 아닌 지속가능한 데이터 기반 비즈니스의 미래를 보여준다.







향후 과제


화해가 계속해서 지속가능한 데이터 기반의 비즈니스를 선도해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차원의 도약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프라인 매장에 진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데이터 기반의 비즈니스라는 이점을 살려서 코스메틱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정보 플랫폼을 넘어 실제 코스메틱 비스니스의 상거래 플랫폼으로 진화할 필요성이 있다.

소비자가 제품을 보고 선택하고 구매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Stitch Fix’와 같이 소비자가 개인의 신상정보 및 선호정보 등을 입력하기만 하면9   개인맞춤형 뷰티 솔루션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변모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고객 리뷰뿐만 아니라 전문 뷰티 컨설턴트와의 합작을 통해 소비자에게 빅데이터 분석 및 전문가 조언으로 추천된 화장품을 ‘토털 뷰티 케어 패키지’로 구성해 제공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여기에 그동안 구축한 고객 기반을 바탕으로 광고와 같은 부가서비스를 활용,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10   이러한 데이터 기반의 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한다면 계속해서 신뢰받는 선도적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양한 시도와 사용자 중심의 플랫폼을 추구하면 사용자 유입이 더 많아질 것이고,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사회 및 시장의 행동 패턴까지 변화시키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 측면에서 살펴보면 플랫폼의 개념이 단순한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서비스(예: Facebook, Airbnb, Netflix 등)로 확대되면서 시장에서 플랫폼의 ‘중개자(Aggregator)’로서의 전략적 역할이 강조되고 있으며 네트워크 효과 등을 통해 새로운 사업의 생태계가 구축되고 있다.

화해가 업계의 앱 플랫폼 리더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치사슬의 활동을 극대화함으로써 경쟁우위를 창출하는 ‘파이프라인(Pipeline)’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가치를 창출하고 많은 참여자들이 상호작용을 나누며 네트워크 효과가 만들어지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Bonchek과 Choudary(2013) 11   의 연구에서처럼 화해와 같은 플랫폼은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산자와 수요자 간의 연결을 촉진시켜주는 ‘Matchmaker’로서의 역할과 신뢰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또 이 같은 신뢰 구축을 위해서는 시장수요와 환경변화에 맞춰 정보, 시스템, 서비스 분야의 품질요소들이 소비자들의 기대를 지속적으로 만족시켜야 할 것이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최정일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 jichoi@soongsil.ac.kr

최정일 교수는 미국 University of Nebraska-Lincoln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프랑스 INSEAD에서 초빙 연구원과 미국 보스톤 소재 Merrimack대에서 경영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연구 관심분야는 ICT 기반의 서비스 혁신 및 수용, 서비스 디자인 분야이며 한국IT서비스학회(2018년 차기 회장)와 품질경영학회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서비스경영 4.0>과 <디지털경영과 경영정보론>등이 있다.

기타 참고문헌

김근형, 윤상훈 (2012). SNS 사용자 만족도의 영향요인 도출 및 서비스 형태별 비교 분석, 인터넷전자상거래연구, 12(1), 125-143.
동아비즈니스리뷰 298호 Future Mobility 2020년 6월 Issue 1 목차보기


https://dbr.donga.com/article/view/1202/article_no/9105

point1. 플랫폼 사업의 초기 진입단계에서는 유저가 가치를 느낄만큼의 기본 데이터는 쌓여있어야 하기에 발로 뛰는구나


poin2. AIDMA를 넘어선 5A전략 : Advocate의 팬덤층을 만드는 것은 KPOP의 주요 전략이기도 함\


poin3. 스타트업의 핵심은 고객의 문제해결이다.


poin4. 고객의 문제해결 이라는 본질에 충실한 플랫폼

DBR Case Study: 패션·뷰티 SNS 플랫폼 ‘스타일쉐어’의 성장 전략

“오늘 뭘 입지?” 일상 질문에 답하려 창업
매일 댓글 5만 개 호응하는 쇼핑 앱으로

Article at a Glance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반 패션·뷰티 쇼핑 앱 ‘스타일쉐어’ 성공 요인
1. 본질에 집중한 플랫폼 설계
: 플랫폼 안에서 정보와 상품, 사회적 통화(평판, 명성 등)가 원활히 교환될 수 있게 ▲유용한 정보 순서로 댓글 제시 ▲콘텐츠에 상품 태그 접목 ▲인플루언서 유저들과의 컬래버레이션 실천

2. 젊은 세대에 대한 통찰에 기반한 사용자 중심 사고
: 실속을 중시하고 즉각적 피드백을 원하는 Z세대 특성에 맞게 ‘빅 브랜드’ 대신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위주로 상품을 구성하고 인공지능(AI) 패션 챗봇 서비스 제공

3. 사용자 혁신 통한 차별화된 가치 창출
: 사용자의 댓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용자들의, 사용자들에 의한, 사용자들을 위한’ 플리마켓 운영 

4. 고객 구매 여정의 단계별 접점을 파악한 비즈니스 모델
: 5A(Aware, Appeal, Ask, Act, Advocate:인지, 호감, 질문, 행동, 옹호) 모델의 단계별 접점에 따라 비즈니스 모델을 구현, 사용자(고객)들을 충성도 높은 옹호자로 만드는 데 성공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지우(서강대 경영학과 3학년) 씨, 홍지선(경희대 호텔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다음 중 “ㅈㅂㅈㅇ”의 뜻은?
① 제발조용 ② 제발좀요 ③ 제발자요 ④ 정보좀요


이 문제를 듣는 순간 정답을 바로 맞힌 사람은 인터넷 쇼핑이나 커뮤니티 활동 좀 해봤을 가능성이 크다. 연령층도 십중팔구 10대나 20대 초반, 많아 봐야 30세 미만일 확률이 높다. 정답은 4번. 어떤 제품에 대한 브랜드나 가격, 판매처 등의 정보를 요구할 때 사용하는 ‘초성(初聲)’ 신조어다.

인터넷 사용자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이 유행어는 10대들이 ‘최고로 애정하는 애플리케이션(최애앱)’ 스타일쉐어(StyleShare)에서 탄생했다. 1 스타일쉐어는 패션, 뷰티와 관련한 다양한 스타일 정보를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반 쇼핑 앱이다. 봄철엔 어떤 스타일의 재킷을 입는 게 좋을지, 데님 팬츠에는 어떤 셔츠를 받쳐 입는 게 좋을지 등 ‘오늘 당장 내 일상’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스타일링 노하우가 넘쳐난다. 사용자들은 자신만의 패션 코디나 메이크업 노하우를 사진에 담아 스타일쉐어 플랫폼에 올리고, 다른 사용자들이 올린 이미지를 살펴보며 필요한 정보를 찾아간다. 서로에게 “정보좀요” “담아가요” 같은 댓글을 남기면서. 그러다 마음에 드는 상품을 발견하면 그 즉시 앱에서 물건을 구매한다.

지난 2011년 9월 앱 출시 2 후 지난달까지 스타일쉐어 앱 다운로드 횟수는 약 620만 건에 달한다. 처음엔 단순히 사용자들 간 패션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앱이었지만 지금은 패션은 물론 뷰티 상품에 이르기까지 마음에 드는 제품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원스톱 쇼핑 앱이 됐다. 누적 회원 수는 약 450만 명으로 사용자의 87%가 여성, 91%가 30세 미만이다. 월간 사용자 수(MAU)는 약 100만 명, 일간 사용자 수(DAU)는 약 30만 명에 달하며 지난달에는 구글피처드(google featured) 3 에도 선정됐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스타일쉐어는 작년 3월 GS홈쇼핑 자회사로 온라인 쇼핑몰 29CM을 운영하는 에이플러스비를 인수, 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고작해야 업력이 7년도 안 된 스타트업이 대기업 자회사를 인수한 덕에 온라인 패션 시장의 ‘공룡’이란 소리까지 들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든가. 지난 2015년엔 전 세계 명품 업계를 쥐락펴락하는 패션계의 거물 수지 멘키스(Suzy Menkes)로부터 “패션 산업의 판도를 바꾼 앱(a game-changing app)”이라는 평가 4

도 받았다. 국내 최대 패션·뷰티 SNS 플랫폼으로 성장한 스타일쉐어에 대해 DBR이 집중 분석했다.


평범한 일상의 질문에서 시작된 창업

스타일쉐어 창업자인 윤자영 대표가 회사를 설립한 건 지난 2011년 6월. 당시 20대 대학생(연세대 전기전자공학)이었던 윤 대표는 “강의 시간 중에도 뒤에 앉아 패션 잡지를 봤을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잡지를 보면 500만 원대 명품 가방을 ‘올봄 시즌 머스트 해브(must-have) 아이템’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당장 다음 주 동아리 오리엔테이션에 입고 갈 옷을 찾는 나에겐 쓸모없는 정보였다. 원래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건 범접할 수 없는 몸매를 가진 전문 모델이 아니라 내 옆에 옷 잘 입는 친구는 대체 어디서 쇼핑하는가다. 나처럼 평범한 체형을 가진 사람들도 잘 차려입고 다닐 수 있는 실용적인 패션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하고, 쇼핑까지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윤 대표가 말하는 창업 동기다.

패션 스타일을 ‘공유’하는 서비스인 만큼 스타일쉐어가 성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볼거리’가 많아야 했다. 사용자가 처음 앱에 접속했을 때 이미 올라와 있는 사진들이 많아야 본인 사진도 올리고 싶은 마음이 들 테니 말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어딜 가든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게 자연스럽지만 당시만 해도 개인 사진을 공개된 인터넷에 올린다는 게 익숙하지 않은 때였다. 더욱이 유명인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 모습을 공유한다는 건 개념적으로도 매우 생소했다. 이미지 기반 SNS의 대명사인 인스타그램이 미국에서 출시(2010년 10월)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때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윤 대표와 스타일쉐어 창업 멤버들은 본격적인 서비스 출시 전 앱에 업로드할 이미지를 확보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어다녔다. 패션 파워 블로거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스타일쉐어 서비스에 대해 알리는 건 기본. 카메라를 손에 들고 뉴욕 맨해튼 소호거리,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과 도산공원 일대, 명동 등 국내외 패션 거리를 쉴새 없이 돌아다녔다. 그러다 옷 잘 입고 스타일 멋진 사람들을 마주치면 사진을 찍어 스타일쉐어 플랫폼에 올려도 될지 물었다. 그야말로 ‘맨투맨 영업’을 한 셈이다.



동시에 스타일쉐어는 업로드하는 순서대로 사진을 보여주는 방식(최신 피드) 외에 ‘좋아요’와 댓글 개수를 종합해 인기도에 따라 콘텐츠를 보여주는(인기 피드) 알고리즘 개발에 주력했다. 많은 이가 좋아하는 게시물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따로 보여주면 사용자들이 요즘 유행하는 패션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 SNS가 최신 순서로만 게시물을 보여주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차별화된 접근이었다. 현실적 이유도 있었다. 서비스 시작 전 스타일쉐어가 확보한 게시물의 수는 약 100개. 5 이렇게 플랫폼에 올릴 콘텐츠의 절대 수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는 한정된 수의 콘텐츠를 가능한 풍성하게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최신 피드 외에 인기 피드를 따로 만든 이유다.

스타일쉐어는 아이튠즈 앱스토어에 출시되자마자 6 바로 그다음 주 ‘최신 및 추천(New & Noteworthy)’ 앱으로 선정됐다. 창업자인 윤 대표조차 “솔직히 서비스를 개발하면서도 ‘과연 사람들이 사진을 올릴까’ 걱정했다”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어떠한 광고 마케팅이나 프로모션 없이 한 달 만에 2700여 개 이미지가 쌓였다. 심지어 게시물엔 약 18만 개의 ‘좋아요’가 생성됐고, 팔로(스타일쉐어 사용자 간 네트워킹) 수도 3600여 건에 달했다. 이는 실제 일반인들이 자신의 사진을 자발적으로 올릴 뿐 아니라 화려한 전문 모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길거리 패션에 관심을 갖는다는 걸 뜻했다. 실제로 “모델이 아닌 스타일 좋은 평범한 분들 패션 보고 득이 되네요(사용자 ID: 림어이)”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일반인도 공감하고 도전할 수 있겠어요(사용자 ID: 보라빛똥)” 등 사용자들의 호평도 쏟아졌다. ‘패션피플(패피)들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고 싶어한 윤 대표의 희망이 헛된 꿈이 아니었음이 증명된 셈이다.



처음부터 좋은 반응을 얻은 데 대해 윤 대표는 “타이밍이 좋았던 것 같다”고 겸손해 했다. 자신의 관심사를 SNS를 통해 공유하는 데 거부감이 없는 밀레니얼세대가 패션의 주 소비층인 20대로 접어들면서 이들의 특성에 잘 맞는 서비스가 때맞춰 나온 덕택이 크다는 것. 사용자들의 반응을 고려해 게시물을 제시하는 접근 역시 사용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게 된 요인으로 풀이된다. 패션은 기본적으로 트렌드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인기 순서로 콘텐츠를 보여주는 방식이 적합했다는 분석이다.


화려함을 이긴 평범함, ‘끈끈한’ 유저들로 뭉친 커뮤니티 구축

스타일쉐어가 서비스를 출시하자마자 사용자들로부터 즉각적인 호응을 얻자 크고 작은 경쟁사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LG유플러스는 두 달 뒤 곧바로 스타일쉐어와 유사한 서비스를 내놓았다. 바로 패션 전문잡지 코스모폴리탄과 손잡고 내놓은 ‘코스모스타일’이다. 2012년 11월엔 SK플래닛이 ‘스타일태그’라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미국에서 파일럿 버전을 먼저 내놓은 후 1년 뒤 정식 버전을 개발,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 동시 공략에 나섰다. 특히 ‘개인 맞춤형 패션 큐레이션 서비스’를 표방했던 스타일태그는 사용자가 태그를 달아놓은 단어에 맞는 패션 스타일을 추천해 줄 뿐 아니라 ‘비디오 커머스(video commerce)’ 기술까지 도입, 패션 관련 동영상 속에 나오는 상품 정보를 제시하고 구매 페이지로까지 연결하는 서비스였다. 이 밖에 2013년 4월에는 네이버도 ‘워너비’라는 서비스를 내놓으며 가세했다. 국내 대기업은 물론 정보기술(IT) 업계 거물까지 모두가 패션 SNS 시장에 뛰어든 셈이다.



하지만 이들 서비스는 현재 모두 사라지고 없다. 결과적으로 대학생 몇 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스타일쉐어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긴 ‘다윗’이 됐다. 자금력이나 기술력, 인적 역량, 글로벌 네트워크 등 모든 면에서 스타트업보다 월등한 대기업이 패션 SNS 시장에서 실패한 이유는 뭘까. 가장 큰 패인은 패션에 대해 갖고 있는 일반 소비자들의 숨겨진 니즈와 욕망을 제대로 꿰뚫어 보지 못한 데 있다.

경쟁사들은 스타일쉐어와 유사하게 ‘패션 SNS’를 표방하긴 했지만 평범한 일반인들이 아니라 전문 모델과 유명 스타일리스트 등을 전면에 내세워 화려하고 정제된 스타일을 선보이는 데 주력했다. 플랫폼에서 제시하는 콘텐츠도 대부분 국내외 패션 디자이너, 전문 매거진, 파워블로거를 포함한 패셔니스타들의 사진들로 채웠다. 그에 비하면 스타일쉐어는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들의 일상적인 사진만 잔뜩 모여 있는 커뮤니티였다. 하지만 바로 이 ‘평범함’이야말로 스타일쉐어의 강점이었다. 스타일쉐어의 첫 번째 투자자인 프라이머의 권도균 대표 역시 “‘평범한 일반인들의 스타일 공유’라는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에 반해 윤 대표를 만난 지 한 시간 만에 투자를 결정했다”고 평할 정도다.

“윤 대표는 ‘편안한 옷차림에 구찌 가방 하나를 잘 든 코디, 고가의 패션 아이템이 아니어도 멋스럽게 소화한 옷이 스튜디오에서 전문 모델이 찍은 화려한 사진보다 더 매력적인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했다. 이건 패션에 대해 책 한두 권을 읽고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이야기다. 오랜 고민의 시간을 통해 패션이라는 주제에 몰입하지 않으면 얻기 어려운 통찰이다.” 권 대표의 설명이다. 7 






단기 성과 창출에 연연하지 않고 견고한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던 것 역시 스타일쉐어가 경쟁사들을 이길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이었다. 대기업 기반 패션 SNS는 단기간 가입자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 초기 광고 마케팅과 각종 프로모션에 집중했다. 가령, LG유플러스 코스모스타일의 경우 처음 서비스를 출시하며 앱 다운로드 고객 중 선착순 150명에게 5만 원 상당의 화장품을 제공했고, ‘좋아요’를 많이 받은 사진을 올린 사용자 총 100명(10주간 매주 10명씩 선정)을 뽑아 10만 원 상당의 화장품을 줬다. 그것도 랑콤, 에스티로더 같은 해외 유명 브랜드 화장품을 선물로 안겼다. 말 그대로 ‘물량 공세’를 한 셈이다. 심지어 SK플래닛은 ‘글로벌 시장 공략’이라는 야심 찬 목표 때문이었는지 앱 정식 버전 출시를 기념해 미국 뉴욕시 5번가에 위치한 패션 명품 백화점에서 론칭 쇼까지 열었다. 니콜 리치 같은 할리우드 스타는 물론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유명 패션 블로거와 디자이너, 모델, 패션 전문지 기자 등 뉴욕의 패션 산업 관계자 50여 명을 초대한 행사였다.



반면 자금 여력이 부족했던 스타일쉐어는 이 같은 광고 마케팅을 할 수도 없었고, 할 생각도 없었다. 스타일쉐어가 사업 초기 진행한 프로모션이라곤 서비스 출시 1주년을 기념해 진행한 온라인 바이럴 마케팅이 유일했다. 스타일쉐어 SNS 채널을 팔로하고 앱 리뷰 등에 응원 메시지를 쓰는 사용자를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스타일쉐어 박스’를 주는 이벤트였다. 박스에 담았던 품목도 클러치와 양말로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선물이었다. 스타일쉐어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했다. 바로 지난 1년간 사용자들이 스타일쉐어 플랫폼에 올린 이미지컷 약 380개와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브랜드/아이템’ 등을 분석한 데이터를 담은 소책자 ‘페이퍼S(Paper S)’다. 스타일쉐어 공동 창업자이기도 한 송채연 이사는 “프로모션을 하더라도 상업적 목적보다 사용자들과의 소통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며 “스타일쉐어의 브랜드 정체성에 맞는 ‘일상 속 소소한 아이템’을 유저들에게 선물로 주면서 스타일쉐어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페이퍼S도 함께 보냈다”고 설명했다.


DBR mini box I: 유저 댓글 용어 활용해 제작한 옷 ‘스쉐톡스(StyleShare Talks)’

스타일쉐어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신조어는 서두에서 언급한 ‘ㅈㅂㅈㅇ(정보좀요)’ 외에도 ‘ㄷㅇㄱㅇ(담아가요)’ ‘스쉐러(스타일쉐어 사용자)’ 등 여럿이 있다. ‘업로더는 아니지만’처럼 스타일쉐어 유저들만이 쓰는 독특한 문구도 있다. 가령, A라는 사용자가 올린 이미지(예: 신발)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는 댓글이 쇄도할 때 A가 답을 하지 않을 경우 해당 정보를 알고 있는 B라는 사용자가 대신 답을 하면서 댓글 말머리로 쓰는 표현이다.

스타일쉐어는 이처럼 스쉐러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독특한 문화를 존중하고 이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크고 작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령, 사용자들이 ‘ㅈㅂㅈㅇ(정보좀요)’ ‘ㄷㅇㄱㅇ(담아가요)’ ‘업로더는 아니지만’이란 글자를 일일이 입력하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클릭 한 번으로 해당 글자를 입력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제품에 대한 정보가 담긴 댓글은 빨리 찾아볼 수 있도록 ‘최신순’ 외에 ‘유용한 정보순’ 리스트도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스타일쉐어는 사용자들의 댓글 용어를 활용해 옷도 만들었다. 이른바 ‘스쉐톡스(StyleShare Talks의 줄임말)’ 컬렉션으로 기모 소재 후드티에 ‘Details please(정보좀요)’ ‘Collecting(담아가요)’ ‘I’m not the uploader, but(업로더는 아니지만)’ 등의 문구를 영어 문자(English lettering)로 프린팅해 한정 수량을 제작, 판매했다. 윤 대표는 “처음 해 보는 시도여서 과연 팔릴까 싶었는데 기획한 9개 상품 중 4개가 완판됐다”며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스타일쉐어의 정체성과 유저들의 이야기가 담긴 제품을 만들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스타일쉐어는 유저 한 사람 한 사람과 진정성 있게 소통하기 위해 힘썼다. 사용자가 게시물을 올리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스타일쉐어 전 직원들이 각자 댓글을 달면서 자신의 생각을 유저들과 공유했다. 심지어 송 이사는 자주 게시물을 올리는 헤비 유저(heavy user)에게 따로 연락해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유저를 직접 만나 이야기도 나눴다. “대개 윤 대표랑 둘이 나가 똑같이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영업 대상’이 아니라 ‘동호회 친구’처럼 유저를 대하려고 노력했던 마음이 전해졌는지 다들 오프라인 만남에 흔쾌히 응해줬다. 초창기 만났던 유저들 가운데에는 지금까지도 계속 연락하고 지내는 이들이 꽤 있다.” 송 이사의 설명이다.

동시에 스타일쉐어는 스타일쉐어만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도 부단한 노력을 했다. 음란물처럼 부적절한 이미지를 올리는 사람들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은 당연했고, 음식물 사진처럼 서비스의 기본 취지에 맞지 않는 이미지가 올라올 경우엔 하나하나 댓글을 달아 해당 사용자가 일상의 스타일을 공유하도록 유도했다. “스타일쉐어는 일상 스타일을 공유하는 것을 취지로 만들어진 커뮤니티입니다. 음식 사진보다는 ○○님이 오늘 입은 데일리룩이 궁금해요!”라는 식으로 말이다. 송 이사는 “이렇게 유저 한 사람 한 사람과 공들여 소통하는 일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브랜드 정체성이 분명한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일”이라며 “이런 세세한 노력 덕분에 스타일쉐어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견고한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대표 역시 “기본적으로 SNS가 성공하기 위해선 사용자들 간 끈끈한 연대감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이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노력도 많이 쏟아부어야 하는 매우 ‘지난한’ 작업”이라며 “당장 수익 창출 압박을 받는 대기업으로선 구조적으로 이런 일을 지속해 가기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유저 한 사람의 댓글에서 촉발된 오프라인 플리마켓 행사

스타일쉐어의 사용자 수가 10만 명 정도에 달했던 2013년 2월 초 어느 날. 스타일쉐어에 한 가지 ‘사건’이 벌어졌다. 한 사용자가 ‘옷장 정리를 하고 싶다’는 게시물을 올리자 불과 12시간 만에 댓글 280개가 달린 것. 내용을 확인해 보니 유저들끼리 ‘나도 옷장 털어야 한다’고 공감하며 중고품 거래 사이트, 벼룩시장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다 급기야 ‘스타일쉐어가 플리마켓을 열어주면 좋겠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더란다. 스타일쉐어 운영팀이 계속되는 댓글 릴레이에 방점을 찍었다. “와우 여러분! 플리마켓 한 번 열어볼까요?”

댓글을 올린 후 스타일쉐어는 처음 게시글을 올린 유저에게 곧바로 연락을 취해 플리마켓 공동 기획에 나섰다. 스타일쉐어 유저들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만큼 행사 기획부터 준비, 운영에 이르는 전 과정을 사용자와 함께하기로 했다. 우선 ‘2013년 3월 초중순 어느 일요일 서울에서 플리마켓을 열 테니 이벤트에 적극 참여하고 싶은 유저들은 신청해 달라’는 공지를 띄웠다.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플리마켓 크루(crew)’부터 모집 8 한 것. 불과 이틀 만에 150명이 지원했다.



스타일쉐어는 이 중 30여 명을 크루로 선발했다. 당시 스타일쉐어 전체 직원(6명)의 다섯 배나 되는 인원이었다. 스타일쉐어는 이들과 두 차례 기획 미팅을 갖고 ▲사전 홍보 ▲현장 관리 ▲행사 촬영 등 업무를 분장했다. 판매자는 스타일쉐어 사용자들로 한정했고, 참가자는 ‘스타일쉐어 앱만 있으면 누구나’ 올 수 있게 했다. 행사 이름은 ‘스타일쉐어 선데이 플리마켓’으로 정했다. 보다 충실한 준비를 위해 D-데이는 4월7일로 늦췄다. 장소는 신촌에 있는 이랜드의 신발 편집숍 ‘폴더(Folder)’ 매장을 빌리기로 했다.

스타일쉐어 창립 이래 최초로 열린 오프라인 이벤트엔 무려 1만여 명이 몰려들었다. 스타일쉐어 직원 그 누구도 그렇게 많은 인력이 몰려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매장 안으로 들어오는 데 평균 1시간30분을 기다려야 했을 정도로 붐벼서 주변 민원으로 경찰까지 출동했을 정도였다. 행사를 마친 후 이틀 만에 블로그 포스팅만 200개 이상 올라왔다. 송 이사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패션’을 매개로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라는 데 유저들이 큰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며 “패션에 민감한 같은 또래 사용자들의 애장품을 싼값에 ‘득템’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도 큰 호응을 얻은 비결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은 오프라인 이벤트는 패션에 관심 있는 젊은 여성들에게 스타일쉐어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4월 한달 동안 새로 가입한 사용자 수만 4만1500여 명에 달했을 정도다. 송 이사는 “2013년 초 10만 명이었던 사용자 수가 그해 연말 50만 명까지 늘어날 수 있었던 데에는 플리마켓 효과가 컸다”며 “광고 마케팅 비용을 거의 쓰지 않고 오로지 입소문에만 의존해 사용자 기반을 늘려오던 상황에서 오프라인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덕에 톡톡한 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후로도 스타일쉐어는 2014년 100만 명, 2015년 200만 명 등 해마다 두 배씩 사용자 기반을 늘려가며 대표적인 모바일 패션 커뮤니티로 성장해 갔다.


사용자들의 니즈에 최적화된 쇼핑 스토어 오픈

패션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형성에 집중했던 스타일쉐어가 전자상거래(e-commerce) 서비스를 시작한 건 지난 2015년 10월(베타 테스트)부터다. 앱 내 결제 기능을 도입, 일주일에 한두 개 상품을 메인 화면에 띄워 관심을 갖는 고객들이 그 자리에서 쇼핑할 수 있도록 했다. 이어 이듬해 4월, 서비스 개시 후 줄곧 ‘스타일피드(게시물 공유 공간)’만으로 구성돼 있던 앱을 대대적으로 개편해 별도의 ‘스토어(쇼핑 공간)’ 메뉴를 공식 오픈했다.




당시 스타일쉐어 스토어에 입점한 브랜드 수는 약 520개였다. 특이한 건 입점 브랜드 대부분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빅 브랜드’가 아니라 뉴해빗(Nuhabit), 어커버(Acover), 참스(Charm’s) 등 연령층이 조금만 높아도 익숙하지 않은 국내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로 채워졌다는 점이다. 장선향 스타일쉐어 마케팅팀 리더는 “지금은 입점 브랜드 수가 약 2100개로 4배 이상 늘었고 휠라(Fila), 뉴발란스(New Balance), 데상트(Descente), 르꼬끄 스포르티브(Le Coq Sportif) 같은 유명 브랜드들도 많이 들어와 있지만 3년 전 스토어를 오픈할 때만 해도 지금과는 구성이 많이 달랐다”며 “일반 대중들이 쉽게 알 만한 브랜드라곤 나이키(Nike)와 아디다스(Adidas)가 유일했다”고 말했다. 이는 기존 쇼핑몰의 상품 소싱과는 다른 스타일쉐어만의 독특한 원칙 때문이었다.





대개 일반적인 쇼핑몰은 머천다이징(MD, merchandising) 담당자가 일방적으로 브랜드를 소싱해 고객들에게 제안한다. 반면 스타일쉐어는 철저히 사용자들의 반응에 기초해 입점 브랜드를 결정했다. 즉, 앱 출시 후 4년간 스타일피드에 축적돼 있던 사용자들의 댓글과 ‘좋아요’ 개수, 검색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유저들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들을 추려, 입점 유치에 나섰다. 브랜드 업력이나 규모, 타 쇼핑몰에서의 인기도 등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스타일쉐어 유저들이 원하느냐 여부를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은 것. ‘허세’보다 ‘실속’을 중시한 의사결정이었던 셈이다.

2016년 4월, 드디어 스토어 메뉴를 공식 오픈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제 프로세스’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스토어를 오픈하면서 스타일쉐어가 제시한 결제 옵션은 ▲무통장 ▲신용카드 ▲휴대폰 결제 총 세 가지였는데 이 중 ‘무통장 입금’ 선택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온 것이다. 9 가장 번거롭고 불편하다고 여겨지는 무통장 입금 결제 방식이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택하는 방식이었던 것. 이는 전체 사용자 중 약 30%를 차지하는 10대들의 독특한 특성 때문에 생겨난 일이었다.

고등학생이나 대학교 초년생의 경우 카드 소지자가 적다. 특히 10대는 휴대전화 요금도 부모님이 내는 경우가 많아 본인의 구매 내역을 일일이 ‘감시’당하는 탓에 휴대폰 결제를 부담스러워 한다. 경제적 독립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남는 선택지라곤 무통장 거래뿐이라 대부분 현금인출기(ATM)를 통해 입금을 한다. 문제는 ATM에선 동전 입금이 안 된다는 데 있다. 물건을 구매하다 보면 결제 금액이 가령 ‘3만2200원’같이 100원 단위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지폐 입금만 가능하니 사용자와 스타일쉐어 모두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무통장 입금 방식의 경우 입금 정보(입금자명, 입금액, 계좌번호 등)대로 하나도 틀림없이 입금해야 주문건과 입금 내역을 정확하게 자동 매칭할 수 있다. 그런데 주문 내역과 다른 금액을 입금하다 보니 실제 주문건과의 불일치가 빈번히 일어났고, 이는 배송 지연으로 이어져 고객 불만 요인이 됐다. 스타일쉐어에서 온라인 서비스 피드백을 관리하는 CX(Customer eXperience, 고객경험)팀 직원들이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사용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구매 내역을 확인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타일쉐어는 대표적인 불일치 사례를 정리해 고객이 주문 내역과 다른 금액으로 입금해도 자동으로 매치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했다. 우선 결제 데이터에서 입금 확인 불가 케이스들을 모두 추출한 뒤 불일치가 생기는 사례들을 유형화했다. 구체적으로 1) 입금자명 대신 전화번호를 입력한 경우 2) 이름 뒤에 은행명도 입력된 경우 3) 금액을 여러 차례 나눠 입금한 경우 4) 여러 개 주문 건을 하나로 합산해 입금한 경우 등 자주 발생하는 유형을 로직화해, 입금 정보와 주문 내역 간 불일치가 발생해도 좀 더 정확하게 매칭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스토어 오픈 초기 67%였던 자동 입금 확인율을 다음 달 80%대로 끌어올려 고객 불만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10


커뮤니티와 커머스가 맞물려 돌아가는 쇼핑 앱 구현

스타일쉐어는 새로 스토어 메뉴를 오픈한 지 4개월 뒤인 2016년 8월, 기존에 있던 스타일피드 메뉴에도 독특한 기능을 도입했다. 바로 사용자들이 스타일피드에 올린 게시물에 덧붙여지는 ‘상품 태그’다. 사용자가 찍어 올린 이미지에 등장하는 옷이나 가방, 신발 등에 대한 상품 정보(브랜드명, 가격 등)가 사용자 게시물에 꼬리표처럼 달라붙는 기능으로, 태그를 클릭하면 앱 내 결제가 가능하다. 현재 스타일쉐어에서 발생하는 전체 쇼핑 거래액의 약 55∼60%는 스토어 메뉴가 아니라 스타일피드 메뉴에서 일어난다. 즉, 과반수 이상의 거래가 상품 태그 때문에 쇼핑 전용 공간이 아니라 게시물 공유 공간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는 커뮤니티(community)와 커머스(commerce)가 서로 잘 맞물려 돌아가는 시스템을 구축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용자 게시물(커뮤니티)에 상품 태그(커머스)가 달리려면 기본적으로 사용자들이 스타일쉐어 스토어에서 제품을 구입해 사진을 올리거나 후기를 써서 공유해야 한다. 이는 자동으로 상품 태그가 달리게 만드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 외에 사용자들의 후기 작성을 촉진할 수 있는 보상 시스템 개발 역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스타일쉐어는 이 점을 잘 이해했고, 상품 태그 도입과 함께 스토어에서 구입한 상품에 대한 게시물을 올리는 사용자에게 단추(스타일쉐어 스토어에서 쓸 수 있는 적립금) 500개를 제공하는 보상책을 함께 마련했다. 또한 A가 작성한 후기를 다른 사용자가 클릭할 경우 A에게 단추 5개를 지급(최대 1000개 한도)하는 추가 유인책도 만들었다. 이진수 스타일쉐어 엔지니어링팀 엔지니어는 “자신이 작성한 리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걸 알려주면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려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스타일쉐어는 ‘마일리지’ ‘포인트’ ‘캐시’ 등 관리상 편의를 위해 적립금을 세분화하기보다는 ‘단추’라는 단일 적립금을 만들어 사용자 편의성을 높였다. 사용자들이 적립금마다 서로 다른 유효기간 만료일을 신경 써야 하는 수고 없이 적립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스타일피드에 도입한 상품 태그와 단추 적립을 통한 보상 시스템은 곧바로 성과를 냈다. 도입 직전 2%가 안 됐던 구매전환율(MAU 기준)이 도입 후 3.6%대(2016년 9월, 10월)로 뛰었다. 이후 스타일쉐어의 구매전환율은 10대들의 취향에 맞는 상품 소싱과 결제 프로세스 개선, 상품 태그 기능 도입 등에 힘입어 2017년 13%, 2018년 18%(이상 12월), 2019년 19%(2월) 등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윤 대표는 “대개 일반적인 쇼핑몰의 구매전환율은 1∼5% 수준”이라며 “커머스 업력도 얼마 되지 않고 광고 마케팅도 과도하게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충성도가 높은 유저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평했다. 높은 구매전환율을 바탕으로 스타일쉐어는 스토어 공식 오픈 1년 만에 누적 거래액 100억 원을 돌파(2017년 4월)했다. 스타일쉐어 사용자 수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스토어 오픈 당시 약 220만 명이었던 유저 수는 2017년 8월 300만 명을 돌파했다. 약 1년 반 만에 80만 명의 사용자가 늘어난 것이다.

또한 스타일쉐어는 지난 2017년 12월 스타일피드 안에 스킨케어, 메이크업 등 뷰티 관련 게시물을 따로 보여주는 뷰티피드를 별도로 만들었다. 스타일쉐어 앱 사용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패션 외에 화장법 등 뷰티 관련 게시물을 올리는 사용자 역시 급증함에 따라 별도의 카테고리로 만들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스토어 입점 브랜드도 스토어 오픈 초기 의류 및 잡화에 집중했던 데서 벗어나 다양한 뷰티 브랜드로까지 확대했다. 11

이는 ‘신의 한 수’로 판명됐다. 2018년 전체 거래액(700억 원) 가운데 20%(140억 원)가 뷰티 관련 상거래에서 발생한 것. 스토어 오픈 후 1년간 패션·잡화 영역에서 발생했던 상거래 규모(100억 원)를 훨씬 능가하는 매출이 뷰티 관련 상거래에서 창출된 것이다. 스타일쉐어가 줄곧 패션 콘텐츠에 주력해왔던 플랫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주목할 만한 성과다.



DBR mini box II: 유저들과의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스타일쉐어는 상품 기획 및 소싱에 있어 적극적인 컬래버레이션을 추구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유명인들과 진행한 협업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구체적으로, 위너(Winner)의 노래를 테마로 최범석 디자이너의 향기 브랜드 더블유드레스룸(W. Dressroom)과 함께 ‘위너그런스’라는 향수를 내놓는다(2018년 6월)거나 아이콘(iKon)의 음악을 주제로 수제 천연비누 브랜드 크렘(Creme)과 함께 ‘코니솝’ 비누를 개발, 판매(2018년 10월)한 사례들이 있다. 특이한 점은 상품 개발 과정에 유저들을 참여시킨다는 점이다. 가령, 스타일쉐어 사용자들에게 위너의 노래를 들을 때 떠오르는 향에 대한 사전 설문 조사를 진행한 후 그 결과를 가지고 위너 멤버들이 조향 및 패키지 디자인에 참여하도록 하는 식이다.

팬덤 문화를 기반으로 한 상품 기획 외에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에 기초한 컬래버레이션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스타일쉐어 유저들이 올린 게시물과 사용자 반응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앞으로 유행할 트렌드를 예측한 후 브랜드들과 협업해 제품을 제작, 스타일쉐어 스토어에서 판매하는 식이다. 스타일쉐어와 인기 유저, 브랜드 3자 간 ‘트리플 컬래버레이션(triple collaboration)’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바로 ‘스타일쉐어 유저들이 사랑하는 브랜드와 인플루언서 유저가 만나 스타일쉐어스럽게 탄생한 아이템’이라는 의미가 담긴 ‘스쉐스럽(S Share’s Love)’ 라인이다. 정새롬 스타일쉐어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지금까지 후드티(2018년 9월), 아우터(2018년 10월), 백팩(2019년 2월) 등 3종의 스쉐스럽 상품을 출시했다”며 “인플루언서 유저와 브랜드 참여자 모두의 정체성이 잘 묻어나는 제품이라 사용자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이 밖에 스타일쉐어는 유저들 가운데 ‘스타일쉐어 써클’을 선발, i

운영하고 있다. 사용자들로부터 패션이나 메이크업 센스가 뛰어나다고 평가받은 이들을 뽑아 스토어에 입점해 있는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에 대한 사용 후기를 작성하도록 하고 화보 촬영도 진행해 써클이 ‘모델 겸 크리에이터’로 활동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향후 계획 및 도전 과제

현재 스타일쉐어에는 하루 평균 1만여 개의 게시물이 올라온다. 매일 달리는 댓글 수는 5만 개 이상.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외부 채널로 공유되는 건수만도 하루에 7000건을 훌쩍 넘긴다. 명실공히 국내 최대 규모의 패션·뷰티 SNS 플랫폼이다. 커머스 시작 첫해인 2016년 말 50억 원의 거래액을 달성한 이후 꾸준히 거래액이 늘어 작년엔 700억 원의 상거래가 스타일쉐어를 통해 이뤄졌다. 12 이런 성장세에 힘입어 직원 수는 90명(2019년 3월 기준)으로 늘었다. 13 지난 2017년부터 손익분기점도 넘긴 상태다.

스타일쉐어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플랫폼을 고도화한다는 방침이다. 작년 11월 사진 속 패션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3초 만에 찾아주는 인공지능(AI) 챗봇 ‘모냥봇’ 서비스를 내놓은 게 대표적이다. 14 고양이 캐릭터를 접목한 대화형 서비스로, 마치 친구와 대화하듯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챗봇이다. 윤 대표는 “10대들은 질문이 많고, 자신이 원하는 게 생기면 그 즉시 얻기를 바라는 열망이 매우 강하다”며 “‘정보좀요’라는 댓글을 남겨도 원하는 답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궁금증이 생겼을 때 곧바로 답을 알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도 사용자간 자유롭게 묻고 답하는 문화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플랫폼 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고객들의 편의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2월 GS리테일과 파트너십을 맺고 GS편의점에서도 현금으로 결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ATM조차 찾기 어려운 10대, 혹은 타행 ATM에서 입금 시 송금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소비자들의 불편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취한 조치다.

도전 과제도 있다.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이제는 글로벌 플레이어들과의 경쟁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실제 인스타그램의 경우 현재 미국에서 앱 내 결제 기능을 추가해 베타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인스타그램은 일상의 모든 이미지를 공유하지만 스타일쉐어는 패션과 뷰티라는 특정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이 쉽지는 않겠지만 충성도 높은 ‘진성 유저’들이 많은 스타일쉐어만의 강점을 살린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스타일쉐어는 우선 일본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개발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작년 8월 일본어 버전의 앱도 내놓은 상태다. 윤 대표는 “일본에서도 초기 한국에서의 성장 전략처럼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해 충성도 높은 사용자를 확보하는 데 우선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일본어 버전 앱에선 앱 내 결제 기능 없이 외부 쇼핑몰 링크로 연결해 주는 서비스만 제공하고 이는 이유다.

기존 10대 소비자가 20대로 나이를 먹어가고 20대 소비자가 30대로 접어들다 보니 좀 더 폭넓은 연령층의 고객을 아우를 수 있는 상품과 콘텐츠 확장 역시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해 GS홈쇼핑으로부터 29CM을 운영하는 에이플러스비를 약 300억 원에 인수 15 한 이유도 이런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스타일쉐어의 핵심 타깃은 20대 이하 젊은 층이지만 29CM은 30대가 핵심 고객층이다. 스타일쉐어가 ‘날것’ 그대로의 사용자 콘텐츠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로 성장했다면 29CM은 ‘정제된’ 형태의 브랜디드 콘텐츠(branded contents)를 통해 두터운 팬층을 형성해 온 경우다. 두 플랫폼에서 소개하는 브랜드들 간 중복도 크지 않다. 윤 대표는 “29CM 운영은 창업자인 이창우 대표가 계속해서 맡을 예정”이라며 “각 플랫폼의 본체를 건드리지 않고 서로 독립적으로 운영하되 함께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스타일쉐어는 앞으로 패션과 화장품 외에 인테리어, 소품, 문구 등 다양한 품목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간다는 목표다. 게시물을 올리는 방식도 지금처럼 이미지에만 집중하기보다 좀 더 다양한 형태의 사용자제작콘텐츠(UGC)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시사점 및 성공 요인

1. 본질에 집중한 플랫폼 설계
마셜 밴 앨스타인 보스턴대 교수는 그의 저서 『플랫폼 레볼루션』에서 “플랫폼을 설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플랫폼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선 1) 정보의 교환을 용이하게 해 주고, 2) 사용자가 편리하게 상품과 서비스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하며, 3) 평판 같은 무형적 가치, 이른바 ‘사회적 통화’도 교환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플랫폼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사용자들을 서로 연결해 주고 상품과 서비스, 혹은 사회적 통화를 교환하게 해줌으로써 모든 참여자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타일쉐어는 자사 플랫폼을 구축하고 개선시켜 나가는 데 있어 이 원칙을 정확하게 따랐다. 구체적으로, “정보좀요” “담아가요” 등 사용자들이 자주 쓰는 언어를 클릭 한 번으로 입력할 수 있게 하고, 정보 공유 관련 댓글은 ‘유용한 정보순’으로 별도 제시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정보가 플랫폼 내에서 쉽게 유통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했다. 또한 상품 태그 기능과 단추 적립 시스템을 통해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상거래 활성화를 촉진하고 무통장 입금 방식의 문제점도 개선함으로써 쇼핑 편의성을 더해갔다. 이 밖에 유저 가운데 스타일쉐어 써클을 선발해 모델 겸 크리에이터 역할을 맡김으로써 플랫폼 내 사용자의 영향력을 키워주고, 인플루언서 유저들과의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도 추진함으로써 이들이 개인적 명성을 쌓아갈 수 있도록 했다.

2. 젊은 세대에 대한 통찰에 기반한 사용자 중심 사고
권도균 대표는 스타일쉐어의 성공 요인으로 고객을 최우선시하는 경영 철학을 꼽았다. 그는 “스타트업 창업자들 가운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면 본업에서 벗어나 딴생각을 하거나 초심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윤자영 대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초점을 잃지 않고 고객 중심 사고를 놓지 않는 보기 드문 예”라고 강조했다. 이어 “소비자들에 대한 통찰 역시 뛰어나다”며 “전문 모델이 선보이는 화려한 패션을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길 때 평범한 일반인들의 스타일 공유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 자체가 그 증거”라고 말했다.

실제로 스타일쉐어가 커머스 기능을 도입할 때 취한 일들을 보면 젊은 세대, 특히 ‘디지털 신인류’라는 소리까지 듣는 Z세대에 대한 통찰을 확인할 수 있다. 가성비를 추구하면서도 과시형 소비 행태도 보이는 밀레니얼세대와 달리 Z세대는 무엇보다 ‘실속’을 중시한다. 궁금한 것에 대한 질문도 많고, 피드백도 즉각적으로 받길 원한다. 원하는 게 생기면 그 즉시 구입하려는 열망도 어느 세대보다 강하다. 16 스타일쉐어가 스토어를 오픈할 때 빅 브랜드 대신 신흥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위주로 상품을 구성하고 3초 만에 궁금증을 풀어주는 AI 패션 챗봇을 개발하며 편의점 현금 결제까지 도입한 건 모두 Z세대의 특성을 고려한 사용자 중심 사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3. 사용자 혁신 통한 차별화된 가치 창출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에릭 폰 히펠 교수가 주창한 사용자 혁신(user innovation)은 기업(제조업체)에 혁신을 의존하지 않고 직접 상품 개발 단계에 참여해 스스로 혁신을 창출해 나가는 사용자들의 활동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과거 공급자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소비자는 기업이 내놓은 신제품을 일방적으로 공급받아 쓰는 수동적 존재였다. 이제는 달라졌다. 사용자가 혁신의 원천으로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컨셉 개발부터 설계, 제작 등 제품 개발의 전 과정을 수행할 수 있는 시대다. 특히 사용자가 직접 개발 단계에 참여할 경우 속도를 높일 수 있고, 사용자 니즈에 꼭 맞는 적중률 높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 스타일쉐어는 이 점을 잘 활용해 적극적인 사용자 혁신을 꾀함으로써 차별화된 가치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단적인 예가 국내 대표 플리마켓 축제로 자리매김한 스타일쉐어 마켓페스트다. 한 사용자의 단순한 게시물에서 촉발된 이 행사는 처음 아이디어 도출부터 실제 행사가 열리기까지 두 달이라는 시간밖에는 걸리지 않았다. 당시 스타일쉐어 전체 직원 수가 6명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30명의 사용자 기획단이 주도한 ‘사용자의, 사용자에 의한, 사용자를 위한’ 행사였던 셈이다. 이 밖에도 스타일쉐어는 스쉐스럽처럼 인플루언서 유저들과의 협업을 통해 상품을 기획하고, 연예인들과의 컬래버레이션에도 사용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등 유저들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4. 고객 구매 여정(consumer journey)의 단계별 접점을 정확히 파악한 비즈니스 모델
‘마케팅의 아버지’로 불리는 필립 코틀러 노스웨스턴대 석좌교수는 그의 저서 『마켓 4.0』에서 초연결성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경제 시대에 기업이 주목해야 할 고객 구매여정(consumer journey) 17

의 접점을 크게 5가지로 구분한다. 이른바 5A 모델로 ‘인지(Aware)→호감(Appeal)→질문(Ask)→행동(Act)→옹호(Advocate)’의 5단계로 요약된다. 고전적인 마케팅 모델인 AIDA(Aware, Interest, Desire, Action: 인지, 흥미, 욕망, 행동)나 4A(Aware, Attitude, Act, Act Again: 인지, 태도, 행동, 반복 행동) 모델에서 진일보해 궁극적으로 고객을 단순 ‘구매자’를 넘어 ‘브랜드 옹호자’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코틀러 교수의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각 접점(5개의 A)은 소비자의 구매 결정을 공고히 하거나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스타일쉐어의 비즈니스 모델은 코틀러 교수가 제시하는 5A의 모든 단계를 정교하게 구현하고 있다. 우선 평범한 일반인들이 올린 게시물을 통해 수많은 브랜드의 상품을 사용자들에게 노출(Aware)했다. 특히 게시물을 인기 순서대로 보여줘, 큰 트렌드를 따라가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용자들의 흥미(Appeal)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냈다. 특히 스타일쉐어는 사업 초기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데 있어 자유롭게 질문(Ask)하고 응답하는 문화를 플랫폼의 기본 틀로 만들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어 견고한 커뮤니티가 구축된 후에는 앱 내 결제 시스템을 통해 손쉬운 구매(Act)가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마켓페스트 같은 초대형 오프라인 행사를 개최하고 스타일쉐어만의 고유한 문화를 유저들 간 공유할 수 있는 상품(스쉐톡스)을 기획하는 등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사용자들을 충성도 높은 옹호자(Advocate)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review1. 어떤 기업이든 기업의 그 시작은 문제해결에서 시작된다. 


review2. 플랫폼 사업의 경우 문제해결을 통해 트래픽을 모으면 수익 모델은 자연히 해결된다.


review3. 플랫폼 사업의 가장 큰 장점은 빅 데이터의 수집 가능성이다. 



Article at a Glance(https://dbr.donga.com/article/view/1203/article_no/9631/ac/m_visual)

13억8000만 인도인을 홀린 애플리케이션을 만든 회사가 있다. 바로 밸런스히어로다. 밸런스히어로는 2015년 1월 인도에서 이동통신 데이터 사용량과 잔여 데이터양을 확인할 수 있는 앱 ‘트루밸런스’를 선보였다. 이후 통신료 충전부터 대출, e커머스, 보험까지 비즈니스를 다양화했다. 현재 트루밸런스의 누적 다운로드 수는 7600만 건을 넘어섰다. 이 스타트업은 한국도 아닌 인도에서 어떻게 이와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밸런스히어로의 성공 전략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통신료 잔액 확인으로 트래픽을 늘린 뒤 데이터 충전과 소액 대출로 수익을 확보하겠다는 ‘서비스 플로(Flow)’를 사전에 계획하고 비즈니스에 돌입했다.

2. 네트워크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새 고객과 추천인 양쪽에게 소액을 제공해 가입자를 급속도로 늘렸다.

3. 데이터 분석과 고객 인터뷰를 통해 서비스의 성공 확률을 높였다. 이를 기반으로 신용점수가 없는 서민층, 금융 소외 계층에 대출 서비스를 제공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고경주(경희대 관광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13억8000만 명.

중국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 인구의 3분의 2가 35세 미만 MZ세대(밀레니얼, Z세대)로 이뤄진 역동성과 잠재력을 지닌 국가. 비즈니스 세계에서 인도를 기회의 땅으로 보는 이유다. 이 때문에 ‘코끼리에 올라타라’는 말까지 생겼다. 그런데 인도에서의 사업은 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 중국만큼이나 쉽지 않다. 오히려 “인도에서의 성공은 코끼리를 등에 업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다”며 두 손 들고 나온 사업가들이 적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특유의 종교관과 문화적 특성 때문이다. 인도의 29개 주에서 쓰는 공식 언어만 22개다. 비공식 언어는 780여 개에 달한다. 인도인끼리 소통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인도인도 인도인을 모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 소소한 말버릇, 제스처도 낯설다. 인도인들이 자주 언급하는 “No problem”은 확답의 의미가 아니라 “알았다” 정도의 답변이며, 인도인들이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은 부정이 아니라 긍정의 의미다.

인도인 고유의 특성도 한몫한다. 인도인 직장인 가운데 기분에 따라 다음 날 출근을 안 하거나 갑자기 일을 그만두는 일이 종종 있다. 회사보다 자신을 우선시하는 성향이 강한 것이다. 사적인 질문도 서슴없이 하는 편이다. 처음 인도에서 근무한 한국 직원들은 사생활과 관련된 질문에 놀란 적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사과를 잘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소한 잘못이라도 계급이 낮은 사람이 저지르면 강하게 처벌을 받는 카스트 계급 문화가 남아 있는 탓이다. 인도는 헌법상 카스트제도를 부정하고 있지만 지방을 중심으로 여전히 신분에 따라 차별받는 일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현지 사업가들은 직원 관리가 어려운 편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이 같은 특성은 맞춰나가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낮은 소득’이다. 인구가 많아도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인도의 1인당 평균 소득은 약 2000달러다. 그런데 전체 부의 60% 정도를 상위 1%가 차지하고 있다. 하위 70% 인구가 전체 부의 5%를 나누는 빈부격차가 극심한 국가다. 사업가들이 선뜻 인도에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러한 환경에서 ‘인도 국민 앱’을 만든 한국 업체가 있다. 바로 밸런스히어로다. 밸런스히어로는 2015년 초 이동통신 데이터 사용량과 잔여 데이터양, 잔여 통화량 등 통신료 잔액을 확인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트루밸런스’를 선보였다. 이후 밸런스히어로는 통신료 충전 - 외상 및 대출 - 기프트카드 - e커머스 - 보험 - 캐시백 등으로 서비스를 늘려나갔다. 앱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출시 다음 해 다운로드 수가 1000만 건을 넘어서더니 2017년 9월 5000만 건, 현재 7600만 건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밸런스히어로는 이를 기반으로 현재까지 700억 원가량을 투자받았다.

밸런스히어로는 크게 3가지 비즈니스 전략으로 승부를 봤다. 1. 사전에 서비스 플로(Flow)를 짜고 사업에 돌입했다. 데이터 잔량 확인으로 트래픽을 늘린 뒤 충전과 소액 대출로 수익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사전에 계획했다. 2. 네트워크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소액에 민감한 현지인들에게 새 고객을 끌어오면 일정 금액을 제공해 급속도로 입소문이 나게 만들었다.
3. 고객 인터뷰와 데이터 분석으로 서비스의 성공 확률을 높였다. 이 덕분에 밸런스히어로는 신용점수가 없는 다수의 인도인에게 외상•대출 서비스를 할 수 있었다. 이철원 밸런스히어로 대표는 “사업을 할 때 미국 경영학자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주장한 ‘파괴적 혁신’을 많이 참고했다. 단순하고 저렴한 서비스로 시장 밑바닥을 공략해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시장을 장악하는 전략인데, 딱 밸런스히어로 서비스와 맞아떨어진다. 우리는 지금도 파괴적 혁신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10루피(약 163원, 현지인이 가장 많이 충전하는 데이터 상품)짜리 상품을 팔아서 수익이 날까, 신용점수가 없는 이들에게 빌려준 돈을 되돌려 받을 수나 있을까. 지역마다 특성이 다른 수천만 인도인의 마음을 빠른 속도로 사로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밸런스히어로의 성장 비결을 DBR이 집중 분석했다.


DBR mini box I
밸런스히어로 소개


2014년 7월 이철원 대표가 창업한 밸런스히어로는 2015년 1월 인도에서 이동통신 데이터 사용량과 잔여 데이터양을 확인할 수 있는 앱 ‘트루밸런스’를 선보였다. 트루밸런스의 서비스는 크게 잔여 데이터양과 잔여 통화량 체크 및 충전, 기프트카드, 공과금 결제(위성방송, 전기요금, 가스요금), 대출, e커머스, 보험 등 6가지다. 밸런스히어로는 보통 2개 이상의 듀얼 유심칩(USIM)을 쓰는 인도인들이 앱에서 한 번에 잔여 데이터들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이후 고객들에게 통화, 데이터를 충전해주고 현지 통신사들로부터 1∼2%의 수수료를 받았다. 현재 밸런스히어로는 통신사별로 각 30여 개의 충전 상품(팩)을 판매하고 있다. 올해 3월까지 3달 동안 인도에서 1800만 명(중복 제외)이 트루밸런스를 통해 데이터 충전 등 금융 서비스를 이용했다. 트루밸런스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상품은 약 800원짜리 ‘49루피 팩(28일 한도, 3GB 데이터 제공)’이다. 2018년 9월에는 가스비, 전기세 등 공과금 납부가 가능한 기프트카드를, 지난해 3월에는 외상을 포함한 소액 대출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후 밸런스히어로는 e커머스와 보험 비즈니스로 진출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관련 보험 상품을 출시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트루밸런스의 총 다운로드 수는 약 7600만 건이다.



“We don’t need Charlie anymore.”

2012년 초 인도 뉴델리의 한 호텔 카페에서 만난 미국 세쿼이아캐피털의 인도 대표는 이 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음 이 대표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도에서 사업을 하면서 친구처럼 가깝게 지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분위기가 진지해졌다. “찰리(이 대표), 이럴 때가 아니야. 너처럼 B2B 영업하는 사람은 이제 한물갔어. 다들 앱 만드느라 난리야. 그대로 있다간 너 정말 망할지 몰라.”

공항에서 곧장 왔다는 그는 이 대표에게 스웨덴에서 막 투자 계약을 마친 스타트업에 대해 설명했다. 안드로이드용 스팸 전화 방지 앱을 만든 업체였다. 그는 “100만 다운로드(2020년 4월 초 기준 2억 다운로드)를 돌파한, 주목받고 있는 신생 회사”라며 세쿼이아캐피털에서 직접 회사에 전화해 투자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 대표에게 “시대가 변했으니 비즈니스 모델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카페에서 나온 이 대표는 조언을 곱씹었다. 사실 이 대표의 사업은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니, 폐업 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컬러링(휴대전화 통화 연결음 서비스) 사업이 하루아침에 쓸모없게 됐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인 와이더댄을 다녔던 이 대표는 2006년부터 인도에서 컬러링 사업을 하고 있었다. 당시 와이더댄은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전역에서 B2B로 컬러링 비즈니스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이때 이철원 대표가 아시아태평양팀장을 맡아 인도에 갔다. 와이더댄은 현지에 시스템 구축 등 설비 투자를 하고 서비스 운영까지 해줬다. 그리고 현지 업체와 매출을 나누는 형태로 비즈니스를 진행했다. 와이더댄은 각국에 법인을 만들어서 현지 직원을 뽑고 사업 역시 철저하게 현지화했다.

“아태팀장을 맡으면서 인도에 간 게 창업의 계기가 됐다. 컬러링 비즈니스가 굉장히 유망했고 잘됐다. 현지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당시 인도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다. 정말 공항에 내리면 원숭이, 코끼리, 낙타가 길거리에 다녔다.”

이 대표는 2006년 ‘액세스모바일’이란 모바일 서비스 회사를 차렸다. 처음 1∼2년은 사업의 기틀을 잡느라 고생했지만 2009년부터 순탄해졌다. 인도의 주요 통신사들과 인연이 닿아 있는 상태였고 컬러링, 레터링(발신자가 설정한 정보를 수신자에게 표시해주는 서비스)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서 매출이 껑충 뛰었다. 순수익이 연 100억 원을 넘길 정도였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면서 잘나가던 비즈니스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2011년 아이폰이 등장한 것이다. 모바일 서비스의 생태계가 확 바뀌었다.

2012년 다양한 앱이 생겨났고, 액세스모바일 사업에 곧바로 타격이 왔다. 그러던 찰나에 미국 세쿼이아캐피털의 인도 대표를 만난 것이다. 이철원 대표는 “이 사람을 만난 게 결과적으로 피버팅(Pivoting, 사업 방향 전환)한 계기가 됐다. ‘B2C 사업을 해야 된다’면서 굉장히 극단적으로 이야기했다. 나 같은 ‘영업맨’은 이제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새로운 사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모아둔 돈을 창업자들이 나눠 각자 새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밸런스히어로, ‘인도 국민 앱’ 만들다

이철원 대표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사업을 이어나가겠다는 한 가지만 정해두고 아이디어를 찾았다. 그가 인도를 떠나지 않은 데는 3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인도의 성장성과 개방성이다. 현재 인도 인구는 13억8000만 명으로, 2년 후에는 중국 인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제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는 “경제 성장 속도를 고려할 때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 인도 연 성장률이 7%에 달하고 스마트폰은 월 1000만 대씩 늘고 있었다”고 말했다. 영어를 사용하며 IT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 됐다. 정부와 국민이 외국 기업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정부부처가 호의적이라는 점도 장점이었다.






이철원 대표는 특히 두 번째 이유에 주목했다. 바로 외국인들이 단점으로 보는 인도인의 특성이다. 흔히 외국인들은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로 인도인을 규정한다. 주변 사람들 일에 간섭하기 좋아하고, 말도 많은 편이다. 그런데 그는 이 같은 인도인의 특징을 장점으로 봤다. “인도인들은 굉장히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다. 토론하는 문화를 그만큼 잘 받아들인다. 동기부여해주고 목표의식을 갖게 만들면 성과를 낸다. 외국에서 공부한 뛰어난 인재들도 많다. ‘인도의 가장 큰 수출 품목은 CEO’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철원 대표)

마지막으로, 그동안 쌓아둔 현지 기반 때문이다. B2B로 컬러링 등 모바일 비즈니스를 하면서 현지 통신사들과 맺은 인연이 꽤 많았다. 무엇보다 한국으로 돌아가기엔 인도에서 직접 사람을 뽑고 사업을 진행해본 경험이 아까웠다.

이 대표는 전혀 다른 분야에 뛰어들기보단 이전 경험을 살릴 수 있는 모바일 서비스에 주목했다. 그는 4∼5개월 동안 현지인들이 모바일 서비스를 이용하는 행태를 디테일하게 관찰했는데, 크게 3가지가 한국인과 달랐다. 1. 듀얼심(유심칩을 두 개 이상 사용)을 사용하면서 여러 통신사를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고, 2. 선불 요금제를 사용하며, 3. 잔액(잔여 데이터)을 확인하기 위해 하루 2번 이상 수시로 전화나 문자를 한다.

그는 스마트폰을 쓰면서도 여전히 피처폰을 쓸 때처럼 ‘*121#’으로 전화를 건 뒤 버튼을 몇 번 눌러 데이터 잔액을 확인하는 세 번째 행동에 집중했다. 이 대표는 “통신사 기지국에 전화하거나 문자를 보내서 잔액을 회신하는 방법(USSD)인데 굉장히 불편해 보였고, 통신사나 지역마다 USSD 번호가 달라 잊어버리는 경우가 잦았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통신사마다 남은 통화량과 데이터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앱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대표는 학창 시절 가입했던 동아리(서울대 민요연구회)에서 전략, 디자인, 개발 등 각 분야에 뛰어난 선후배 3명을 설득했다. 2014년 7월 밸런스히어로가 문을 열었다.



밸런스히어로는 안드로이드 앱에서 버튼을 한 번 누르면 여러 유심칩의 이동통신 데이터 사용량과 잔여 통화, 데이터양을 메시지로 보여주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에 대한 특허를 내고, 메시지는 인포그래픽으로 만들어 한눈에 ‘밸런스(잔액)’를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5년 1월 알파버전을 거쳐 앱 ‘트루밸런스’를 공식 론칭했다.

현지인이 데이터를 수시로 확인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인도인들의 95% 이상이 선불제 통신 요금을 쓰기 때문이다. 중간에 서비스가 끊어지지 않으려면 수시로 데이터를 확인하고 충전을 해야 한다. 인도인들에게 데이터 확인과 충전은 일상이다. 게다가 인도 모바일 사용자들은 헤비 유저다. 한 현지 통신사에 따르면 가입자의 월평균 데이터 사용량은 15GB 에 달한다. 한국인 이용자(LTE)의 평균 데이터 사용량은 월 9.7GB 정도다.

그렇다면 왜 인도인들은 선불제 통신 요금을 쓸까. 인도는 성장 속도가 빠르지만 아직 개발도상국이다. 그만큼 신용 사회가 덜 구축돼 있고, 사업자와 고객 사이의 신뢰도 높지 않은 편이다. 이 대표는 “인도에는 그래서 보조금 개념이 없다. 보조금을 줘도 고객이 끝까지 이용을 해줄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고객도 회사를 못 믿는다. 2GB 데이터를 쓴다고 하면 이 회사가 2GB 를 실제로 주는지, 안 주는지에 대한 신뢰가 없다. 그래서 딱 필요한 만큼만 충전해서 쓰고, 떨어지면 충전하는 것이 문화처럼 돼 있다”고 말했다.

유심칩은 왜 2개 이상 사용할까. 인도에서는 통신사 간 경쟁이 치열해 유심 카드를 새로 사는 것이 기존 서비스를 유지하는 것보다 혜택이 좋다. 통신사 직원도 유심칩을 많이 파는 게 핵심성과지표(KPI)에 반영된다.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도 인도에서는 유심칩을 2개까지 꽂을 수 있도록 제작됐다.




급성장 비결은 ‘네트워크 마케팅’

트루밸런스 서비스를 시작하고 가입자가 꾸준히 늘었다. 그런데 내부에서는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수익을 확보하느냐는 것이었다. 플랫폼 사업자 대부분이 하는 고민을 밸런스히어로도 피할 수 없었다. 피처폰 때처럼 전화로 잔액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수수료를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실제로 트루밸런스에는 수익 모델 자체가 없었다. 초기엔 광고를 붙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유지비용을 대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이 대표는 걱정이 없었다. 사용자를 최대한 끌어들이기만 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업 시작 단계부터 비즈니스 플랜을 가지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정도 가입자가 늘어나면 앱에서 쉽게 데이터를 곧장 충전할 수 있게 하고, 당장 돈이 없으면 외상이나 소액 대출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계획을 짰다. 여기서 수수료나 이자로 수익을 거두겠다는 전략이었다. 인도에는 데이터 헤비 유저가 많은 만큼 사업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결국 관건은 ‘어떻게 고객을 최대한 끌어모을 것인가’였다.

밸런스히어로는 인도 인구의 90%가량인 서민층과 금융 소외 계층을 타깃으로 잡았다. 이들의 소득은 월 1만2000루피(약 20만 원) 정도. 은행 대출은커녕 신용 점수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소득이 적은만큼 소액에도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최대한 많은 사람을 앱에 유입시킬까 고민했다.


DBR mini box II
다국어 환경에서 고객 서비스하기

29개 주에서 쓰는 공식 언어 22개. 비공식 언어만 780개가 넘는 인도에서 밸런스히어로는 어떻게 고객을 관리했을까.

밸런스히어로는 2015년 고객서비스(CS) 담당 직원을 뽑고 고객 관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CS팀 팀원이라 해봐야 팀장급 직원 한 명뿐이었다. 매뉴얼도 없었다. 담당자는 그래서 낮에는 고객 문의에 답하고, 밤이나 주말에 이를 문서화해 관리했다. 딱히 사용하던 업무용 툴이 없어 엑셀이나 문서 파일에 수작업으로 기입했다.

문제는 결제 같은 돈과 관련된 이슈가 발생했을 때다. 누군가 이를 해결해줘야 하는데 자동으로 이를 처리해줄 시스템이 없었다. 이럴 때면 개발팀이 고객을 직접 찾아가 문제를 해결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하루 50건 정도의 문의를 처리했다. 다음 해에는 수도권을 포함한 4개 주로 비즈니스가 확대되면서 사실상 전국 서비스가 됐고 이때부턴 업무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단 며칠 만에 불만이 1000건 넘게 누적됐다. 초기 직원들이 온몸으로 ‘홍역’을 앓은 덕에 결국 밸런스히어로는 제대로 된 CS팀을 갖췄다. 인력을 10명으로 늘리고 탄력적인 대응을 위한 시스템도 갖췄다.

이후에도 고비가 끊임없이 있었는데 가장 큰 난관은 ‘언어’였다. 인도는 유럽연합(EU)처럼 다양한 문화를 가진 여러 민족이 한 대륙에 모여 사는 나라다. 특히 북부와 남부의 차이가 크다. 북부 지역 고객들은 힌디어를 많이 사용하며 대부분의 교육 기관에서 영어를 기본으로 가르쳐 영어가 유창하다. 반면 남부 지역 사용자들은 힌디어를 사용하지 않고 지역어를 더 자주 사용하는데 ‘우리가 진짜 인도인’이라고 말할 정도로 문화와 언어에 자부심이 높다.

고객마다 쓰는 언어가 다른데다 영어나 힌두어, 각 지방의 지역어 등 특정 언어에 반감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처음엔 이런 특성을 간과한 채 남부 지역 고객들에게도 마케팅 관련 문자를 영어로 보냈다가 반감을 샀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현재는 공식 언어 8개를 지역마다 맞춤형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외에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전화가 오면 영어로 문의가 많이 오는데 인도인 특유의 억양이 강해서 알아듣는 게 쉽지 않다. 인도인도 우리 발음을 어려워해 서로 ‘쏘리’를 연발했다. 나중에는 결국 직원들이 인도 발음에 맞춰서 바꿔나갔다. 나중에 보니 한국인 CS 팀원들이 인도인들의 말버릇이나 제스처까지 따라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러한 경험 끝에 밸런스히어로는 CS와 관련해 두 가지를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먼저 ‘부족한 리소스라도 로우데이터(Raw Data)를 많이 모아라.’ 유저들이 많이 묻는 것을 잘 정리하면 매뉴얼을 갖출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디테일한 현지화가 가능해진다. 두 번째는 민감한 내용이나 예민한 고객은 텍스트보단 전화 또는 대면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밸런스히어로는 중요한 고객 문의는 한 직원이 전담으로 맡아서 하는 시스템을 쓰고 있다. 또 돈과 관련된 민감한 내용은 텍스트보다는 전화로 해결하는 게 고객 만족도가 높다.”(이철원 대표)


10루피(160원)의 힘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네트워크 마케팅’이었다. 2016년 7월 밸런스히어로는 소개 마케팅을 시작했다. 고객이 다른 사람에게 앱을 소개해주면 10루피를 주는 것이다. 소개받은 사람이 가입 시 추천인을 등록하면 밸런스히어로가 금액을 지불해주는 방식이다. 처음 가입한 고객에게도 마찬가지로 10루피를 제공했다. 데이터 잔액을 확인하는 방법이 기존보다 훨씬 편했지만 서비스를 알리고, 이 서비스를 써보도록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예 돈을 주는 마케팅을 해보기로 했다.

밸런스히어로가 이 금액을 10루피로 정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는 인도 통신사들의 최소 충전 금액으로,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상품이다. 보통 100MB 정도를 충전해준다. 향후 충전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이를 곧바로 충전하게끔 유도하려는 전략이었다. ‘소개 마케팅’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2016년 7월 초 100만 남짓했던 앱 다운로드 수가 마케팅을 시작하고 1주일 만에 1000만을 넘어섰다.

10루피를 벌기 위한 ‘뜨거운 경쟁’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10, 2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10루피를 받기 위해 앱 홍보에 나선 것이다. 자신의 아이디를 추천인에 넣어주면 추천인도 10루피씩을 받기 때문에 ‘데이터 잔액을 그래픽으로 한눈에 보여주는 서비스. 가입하면 10루피도 준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고객들이 스스로 만들어 거리에 부착하기 시작했다.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홍보대사가 된 것이다.

유명 유튜버들도 영상 하단에 추천인 아이디를 새겨 넣으며 트루밸런스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해당 유튜브를 구독하는 고객들은 이 추천을 일종의 ‘별풍선’처럼 여겼다. 이 서비스를 사용할 생각이 별로 없었던 구독자들도, 니즈가 없는 구독자들도 원하는 대로 앱을 받아주고 유튜버에게 생색을 냈다. 한 유명 유튜버가 이를 통해 10만 루피까지 벌었다는 게 알려지면서 앱은 더 유명해졌다. 2016년 말 트루밸런스의 다운로드 수는 3000만을 돌파했다.

물론 고객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10루피를 노리는 ‘해적단’들이 등장했다. 스마트폰의 고유 번호, 시리얼 넘버 등을 조작해 새 고객을 가장해서 10루피를 받아 가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밸런스히어로는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이 때문에 마케팅을 멈출 순 없었다. 밸런스히어로는 차차 기술력으로 이를 보완해나갔다. “안드로이드에서 우리 앱을 받으면 가입을 신청한 사람들의 전화 로그나 스마트폰에 저장돼 있는 앱의 숫자 같은 ‘생활 지문’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걸 통해 이 사람이 진짜 새 전화를 쓰는 건지, 우릴 속이기 위해 새 유저인 척하는 건 아닌지 등을 체크하고 있다.” (이 대표)

다음해 밸런스히어로는 통신사들과 MOU를 맺고 본격적으로 전화 및 데이터 유료 충전 서비스를 시작했다. 통신사들의 상품(팩)을 판매하고 1∼2%를 수수료로 챙겼다. 고객은 통신사들의 다양한 제품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밸런스히어로는 앱에서 충전 시점 등이 다가오면 알람을 해주는 기능도 만들었다.

이때부터 사실상 ‘테크핀(밸런스히어로는 자사 서비스를 핀테크 대신 기술을 중심으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테크핀 회사라고 소개)’ 업체가 된 셈이다. 계획대로 신규 가입 고객들은 10루피를 바로 충전하는 데 사용했고 기존 고객들도 앱에서 잔액을 확인하고 바로 상품을 구매했다.

‘국민 앱’의 일등공신 ‘리셀러’

이 덕분에 밸런스히어로는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등으로부터 시리즈A, 시리즈B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후에도 트루밸런스의 다운로드 수는 꾸준히 늘었는데, 여기에는 ‘리셀러’의 역할이 컸다.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가 없는, 현금만 쓰는 사람은 데이터가 떨어지면 어떻게 상품을 구매할 수 있을까. 돈을 들고 동네에 있는 대리점 같은 오프라인 매장을 찾을 것이다. 그런데 대리점이 굉장히 먼 곳에 있다면? 데이터 충전이 쉽지 않을 것이다. 대다수 인도인이 여기에 해당됐다.

이때 상품 구매를 도와주는 게 에이전트의 역할이다. 다른 고객의 결제를 대신해주는 일종의 중개인인 셈이다. 에이전트가 현금을 받고 스마트폰에서 상품을 구매할 때 고객의 번호를 넣으면 해당 고객의 휴대전화에 통신료가 충전되는 방식이다. 에이전트는 이에 대한 대가로 고객에게서 소액을 받는다. 밸런스히어로는 통신료 충전 서비스를 출시한 이후 각종 통계를 확인해 보니 본인보다 타인에게 충전해주는 데이터가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들이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밸런스히어로는 에이전트가 통신료를 충전할 때마다 회사가 일부 금액을 돌려주면 동기부여가 돼 더 열심히 사람들의 데이터를 충전해주러 다닐 것으로 판단했다. 장기적으로 신용 거래가 불가능한 고객들의 신용카드, 은행 역할을 해줄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밸런스히어로는 이들을 ‘리셀러’로 부르고 고객들의 제품을 대신 구매할 때마다 5% 정도를 수수료로 줬다.

리셀러는 최대한 많은 고객을 찾아내 수익을 거둔다. 밸런스히어로는 리셀러 덕분에 다수의 고객을 확보하고 은행 계좌가 없는 고객은 주변에서 리셀러를 찾아 데이터나 통화를 충전한다. 모두가 ‘윈윈’인 셈이다.


리셀러는 밸런스히어로의 핵심 전략이다. 회사가 타깃으로 잡은 10억 명의 서민층, 금융 소외 계층을 섭외하려면 리셀러의 역할이 중요했다. 이들 중 대부분이 은행 계좌나 신용 점수가 없고 현금으로 생활하기 때문이다. 결국 다수에게서 결제를 유도하고 미리 계획한 소액 대출 서비스까지 이어지려면 리셀러가 필요했다. “처음부터 경제 형편이 어려운 서민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려고 했는데 이들 중 70%가 도시가 아닌 지방에 살았다. 이들을 디지털 금융으로 포용하려면 리셀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했다.” (이철원 대표)

리셀러는 어떻게 확보하고 관리할 수 있었을까. 해답 역시 ‘보상’에 있었다. 밸런스히어로는 등급을 나눠 리셀러가 충전을 많이 유도하면 승급을 시켜줬다. 승급이 높아지면 리셀러가 받는 페이백 비율도 올라가게 된다. 이는 사람들로부터 소액을 받고 중개인 역할을 했던 에이전트들이 밸런스히어로의 리셀러로 갈아타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리셀러가 된 사람들이 괜찮은 수입을 거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리셀러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인도 차르키 다드리에 사는 대학생 아디탸 샤르마 씨(23)는 트루밸런스를 쓰다가 용돈 벌이를 위해 리셀러가 됐다. 그는 밸런스히어로의 상품들을 달달 외워 주변에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이를 통해 용돈을 번 것뿐만 아니라 인도에서 ‘부의 상징’으로 여기는 에어컨도 마련할 수 있었다. 지난해에 번 돈으로는 집을 리모델링하고 대학 등록금과 가족 병원비 등을 냈다. 카르날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로타시 메라 씨(36)도 리셀러가 된 후 삶이 달라졌다. 2017년 우연히 유튜브에서 트루밸런스 관련 영상을 보고 나서 3000여 명의 마을 사람에게 충전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서 충전 매장을 운영하는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이 덕분에 지난해 다른 곳에 가게를 한 개 더 열 수 있었다. 현재 트루밸런스의 리셀러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리셀러가 충전을 해주면서 고객들에게 실수를 하진 않을까. 리셀러는 트루밸런스 앱 내에서 자격(일정 금액 이상을 충전하면 부여)이 주어지는 시스템일 뿐 밸런스히어로와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트루밸런스 서비스를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따라 밸런스히어로의 제품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일정 부분 관리는 필요했다. 밸런스히어로는 유튜브를 적극 활용했다. 기본적으로 통신료 등 새 상품이 나오면 유튜브 영상부터 만들어 공개했다. 이후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왓츠앱 등 다양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관련 내용을 올렸다. 상품 홍보와 더불어 일종의 교육용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인도 유튜브 시장이 중국보다 크다. 그만큼 유튜브에 올리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유선 전화나 대면 인터뷰를 통해 교육을 하고 있다. 소통을 하다 보니 리셀러가 ‘이런 상품 어떠냐’ ‘새로운 상품 안 나오냐’ 등의 의견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판매량이 월등히 높은 우수 리셀러를 찾아 판매 방식을 비즈니스에 참고하기도 했다.


리셀러 발판으로 비즈니스 확장

밸런스히어로는 리셀러로 인도 전 지역에서 충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운데 비즈니스 영역을 점차 확대해 나갔다. 2018년 5월에는 전기세, 가스세 같은 세금을 앱에서 결제할 수 있게 했다. 이 역시 리셀러들이 주변 사람의 세금을 대신 납부할 수 있게 해줬다. 같은 해 9월, 기프트카드 서비스도 시작했다. 고객들이 세금 납부를 더 편하게 하고, e커머스에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기프트카드는 카드형 상품권으로 시리얼 번호를 입력하면 현금처럼 사용 가능한 포인트를 온라인에서 적립 받는다.

“흔히 스타벅스 같은 카페에서 쓰는 기프트카드와 비슷한 개념이다. 모바일 결제가 익숙하지 않고 거의 현금을 쓰니까 기프트카드가 필요했다. 통신료 충전뿐만 아니라 각종 공과금 납부도 기프트카드로 가능케 했다.” 이 대표의 말이다.

밸런스히어로는 여기에 공인인증서, OTP(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 없이 고객들이 비밀번호 4자리만 가지고 편리하게 결제를 진행할 수 있도록 인도 금융 당국으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아 모바일 월렛(지갑)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업의 성격이 바뀌면서 고비가 여러 번 있었다. 특히 데이터 잔량을 확인하거나 충전하는 서비스는 IT 기반의 성격(테크)이 컸는데 공과금 납부나 대출 같은 금융(핀) 섹터로 넘어가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아졌다.

이 대표는 “현지 업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를 해결했다. 데이터 충전 때 현지 통신사들과 제휴를 맺은 것처럼 금융 비즈니스로 넘어갈 땐 대출사, 핀테크 업체와 제휴를 맺고 협업했다”고 말했다.

라이선스를 받는 과정에서 작은 에피소드도 있었다. 한 번은 고객 인증 수단 관련 라이선스를 받기 위해 인도 정부에 서류를 제출했는데, 법 개정이 우선돼야 했다. 거의 논의가 끝난 문제여서 대법원 판결만 나오면 됐다. 그런데 대법원 판사들이 판결을 앞두고 40일짜리 여름휴가를 떠나버렸다. 이는 인도가 영국 식민지로 있었을 때 영국 판사가 자국으로 돌아가 휴식을 충분히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해서 만든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휴가가 길었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만큼 ‘현지 사정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게 중요하구나’라는 걸 또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우선 할 수 있는 다른 비즈니스에 먼저 집중했다.” 이 대표의 말이다.

2018년 말 다운로드 수가 7000만을 돌파하면서 밸런스히어로는 기존에 계획했던 사업의 한 축인 대출 서비스를 2019년 초 선보였다. 밸런스히어로가 잇따라 선보인 대출 상품은 페이레이터, 리차지론, 퍼스널론, 인스턴트캐시론 등 크게 4가지다.

지난해 초 출시한 페이레이터와 리차지론은 통신료 충전과 공과금 결제를 돕는 대출 상품이다. 페이레이터는 일종의 외상 거래 상품으로, 일부 수수료를 먼저 납부하고 10일 이후 원금을 상환한다. 리차지론은 큰 금액을 한 번에 충전하고, 이를 균할로 갚는 방식이다. “예로, 한 달에 200루피(약 3200원) 정도를 충전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면 결제할 때는 20루피, 40루피 이렇게 쪼개서 충전한다. 한 번에 상대적으로 큰 액수인 200루피를 충전하면 통신사들이 파격적인 혜택을 줄 때가 많은데 이를 못 누리는 거다. 고객들을 위해 처음 만든 대출 상품이다.” (이 대표)

지난해 11월에는 본격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대출 상품 퍼스널론과 인스턴트캐시론을 선보였다. 퍼스널론은 비대면 소액 대출이다. 신용등급이 없어 금융기관에서 대출이 어려운 저급여 소득자, 자영업자, 대학생 등이 대상이다. 밸런스히어로는 인도의 대출 중개사 루피랜드와 제휴를 맺고 이 상품을 만들었다. 루피랜드는 현지 10여 개의 대출사와 제휴를 맺고 온라인 대출을 판매하는 대출 중개사다.

퍼스널론의 가장 큰 특징은 대출 절차가 모두 비대면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별도 서류 작성을 하지 않고도 1000루피(약 1만6000원)부터 50만 루피(약 808만 원)까지 빌릴 수 있다. 상환은 1∼6개월이다.

그다음으로 내놓은 인스턴트캐시론은 금융 업체에서 거래가 불가능한 금융 소외층을 위한 초소액 대출 상품이다. 간단한 설문 조사와 신분증 인증을 한 뒤 자체 심사를 거쳐 500루피(약 8000원)를 빌려준다. 이를 잘 상환하면 대출 가능 금액이 늘어난다. 이 대출 상품들의 이자는 하루 1%가량이며 기간이 늘어나면(30일에 금리 20%) 이자가 낮아진다. 밸런스히어로에 따르면 현지 금융사들의 단기 대출 이자는 통상 하루 1% 정도. 인스턴트캐시론은 출시 2달 만에 일일 거래 건수 1만 건을 돌파할 정도로 히트를 쳤다.

“인도에서 금융 소외층과 서민들, 여기에 신용거래가 불가능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출을 해주는 업체는 밸런스히어로가 유일하다. 온라인으로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실시간으로 돈을 받을 수 있다 보니 인기가 치솟았다. 현재 밸런스히어로의 하루 대출 승인 건수가 4만 건이 넘는다.” 이 대표의 말이다. 밸런스히어로에 따르면 트루밸런스에서 대출을 신청하고 승인을 받아 돈을 지급받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5분 남짓이다.

그런데 아무리 소액이라도 신용점수가 없는 고객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신용점수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못 받을 확률이 높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현재 트루밸런스가 판매하는 대출 상품의 부도율(돈을 갚지 않아 부도 처리한 상품 비율)은 10% 수준이다. 밸런스히어로는 어떻게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을까.

데이터 분석 & 유저 리서치로 신용점수 없이도 대출 제공

밸런스히어로가 대출 서비스까지 비즈니스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서비스 플로(Flow)’를 미리 짜둔 덕분이다.

이 대표는 통신료 잔액 확인 서비스 단계부터 충전과 여기에 붙을 수 있는 외상•대출 상품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밸런스히어로는 아주 소소하고 날것의 고객 데이터라도 충실하게 모았다. 회사 내에서 데이터를 강조하고 모든 종류의 로그를 서버에 저장했다. ‘우리 유저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휴대전화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등을 철저하게 살펴봤다. 이 로그들을 가지고 머신러닝 기반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7000만 명의 결제•충전 내역, 앱•데이터 활용 패턴 데이터 등을 분석해 대안 신용평가 모델(ACS)을 만든 것이다.

물론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초기에는 정확도가 떨어졌다. 밸런스히어로는 고객들의 신용점수를 0∼1점으로 나눴다. 1점에 가까울수록 신용도가 높은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1점에 근접한 고객의 연체가 높고, 신용점수가 낮은데도 돈을 잘 갚는 고객이 있었다. 모델 자체가 부실했던 것이다. “특정 행동이 덜 분석됐다. 예를 들어, 비싼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으면 돈을 더 잘 갚을 것으로 판단하고 점수를 더 줬는데 큰 상관관계가 없었다. 이런 과정들을 반복적으로 경험해 수정해 나갔다.” (이철원 대표)

대출 상품이 팔릴수록 상환 데이터가 쌓여 ACS가 더 고도화된 측면도 있었다. 1만 원을 빌린 뒤 갚은 사람은 1000만 원을 대출받았을 때도 상환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는 신용점수를 계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밸런스히어로는 고객 데이터에서 신용도에 영향을 미치는 4가지 요소를 정리했다.

1. 통신료 충전 및 결제 내역이다. 트루밸런스에서 데이터를 충전하면 문자로 고객한테 승인을 받아 지난 3개월 동안 이 고객이 충전한 통신료 내역을 받는다. 한 달에 얼마나 충전을 하는지, 얼마나 자주 공과금을 결제하는지 등을 파악해 대략적인 소득 수준을 예측한다. 대다수 고객이 은행 서비스나 신용카드를 쓰지 않기 때문에 이는 꼭 거쳐야 할 요소다.

2. 각종 앱 데이터를 확인하는 것이다. 안드로이드는 트루밸런스를 다운받으면 이 사람이 어떤 앱을 쓰는지 정보를 공유해준다. 이를 통해 고객이 SNS를 많이 쓰는 유저인지, 비싼 유료 게임이나 아마존을 쓰는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다. 밸런스히어로는 이 같은 요소를 신용점수에 반영한다.

3. 위치 정보다. 인도 내 어느 지역에 사는지, 직업은 있는지 등을 확인한다. 머무는 곳의 위치로 생활수준을 예상할 수 있다. 또 아침에 특정 지역으로 이동했다가 저녁에 다시 돌아온다면 이 사람은 직장이 있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4. ‘사회적 행동 데이터’를 체크하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전화나 문자하는 상대가 있는지, 전화번호부에 가족과 연락한 기록이 있는지 등을 확인한다. 밸런스히어로는 혼자 사회적인 교류 없이 지내는 것보다 사회적 행동 데이터가 많은 고객이 상대적으로 책임감이 높다(신용적으로 믿을 만 하다)고 판단한다.

데이터 검증을 철저하게 하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상품도 있다. 인스턴트캐시론은 ACS를 참고하긴 하지만 앱에 쌓이는 금융 기록을 더 중시한다. 일단 당사자가 맞는지 등을 확인하는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500루피(약 8100원)를 그냥 빌려준다. 상환을 하면 신용점수를 올려주고 빌릴 수 있는 한도도 높여준다. 날리는 셈 치고 소액을 빌려준 뒤 잘 갚으면 대출금을 늘려주는 방식이다.

동남아 등 개발도상국에서는 대출 이자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이 같은 비즈니스가 가능하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고객들 역시 향후 더 많은 돈을 빌리기 위해 현재 빌린 돈을 열심히 갚는다고 한다. 트루밸런스가 아니면 고리대금업자 등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고객 데이터가 쌓이고, 이를 기반으로 대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단계가 거듭될수록 신용평가모델이 단단해지고 연체율은 떨어졌다.

보통 대출을 받는 사람들은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나 택시 운전사, 일용직 노동자 등으로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편이다. 전기•가스 요금 같은 공과금 납부나 개인 생필품 구입, 병원비 등에 활용하기 위해 돈을 빌린다. 소액을 빌렸다 갚았다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밸런스히어로의 재대출율은 70∼80%로 높은 편이다. 재대출자들의 연체율은 신규 대출자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낮은 편이다.

그런데 대출액이 적은 만큼 이자는 어찌 보면 미미한 수준일 수 있다. 이 정도로 수익이 날까.

“‘소품종 대량 생산’을 떠올리면 된다. 한국에서 하루에 발생하는 온라인 대출 신청 건수가 모든 금융권을 합쳐 약 1만5000건이다. 우리는 지금 승인돼 나가는 대출이 하루 4만 건이다. 1만 명이 20일 만기로 500루피를 빌려 갔다가 이 중 10%가 연체했다고 가정해보자. 10%가 연체해도 90%가 제대로 갚으면 이들이 내는 20%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이윤 관점에서는 훨씬 많이 남는 것이다. 1년 단위로 보면 이 이자가 120%에 달한다. 무엇보다 고객이 최대한 플랫폼에 많이 유입되면서 비즈니스를 확장할 여지가 크다.” (이 대표)

데이터 분석이 밸런스히어로의 오른쪽 날개라면 유저리서치는 비즈니스의 왼쪽 날개다. 밸런스히어로는 데이터 수집 못지않게 유저 리서치에 충실했다. 사업 초기 CS팀이 없었을 때도 유저리서치 팀은 따로 만들어 끊임없이 고객들과 접촉했다. 이 팀의 역할은 실제 고객을 찾아 만나는 것이다. 데이터 분석이 맞는지 고객을 일일이 만나서 확인했다. 새 서비스가 나오면 이를 검증하는 역할도 했다.

“고객들에게 티셔츠 같은 작은 상품을 주고 설문 조사(정량적 조사)와 집중 인터뷰(정성적 조사)를 꾸준히 병행했다. 데이터 분석을 해보니 고객이 특정 행동을 반복적으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직접 고객을 찾아가서 물어봤다. 인도 인구 중 절반 이상이 지방에 있기 때문에 5시간이 넘게 차를 타고 가서 조사한 적도 많다. 지금도 매주 이러한 소비자 행태 조사를 하고 있다. 이 정도 고생을 감수할 정도로 고객에게 직접 귀를 기울이면 배울 것이 많다.” (이철원 대표)


“목표는 인도 최고의 테크핀 업체”

밸런스히어로는 대출 이외에 e커머스부터 보험 상품 중개, 기차표 예약 서비스까지 비즈니스를 다양화하고 있다. 밸런스히어로는 지난해 7월 e커머스 서비스를 시작했다. 트루밸런스 앱에서 삼성의 피처폰과 스마트폰을 구매할 수 있다. 밸런스히어로는 향후 타사의 휴대전화를 비롯해 모바일 액세서리, 소형가전, 식료품 등으로 품목을 확대할 계획이다.

2019년 8월과 10월에는 각각 보험 상품과 기차표 예약 서비스, 디지털 골드 등을 출시했다. 현지 보험사와 제휴를 맺고 ‘우기 때마다 기승을 부리는 뎅기 모기에게 물렸을 때 보장받는 뎅기보험’ ‘통근사고보험’ ‘오토바이 보험’ 등을 선보였다. 인도는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이 많아 출퇴근에 보통 2시간 정도 걸린다. 오토바이 사용량도 많다. 이를 보장해주는 상품을 내놓은 것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 관련 보험 상품도 출시했다.

기차표 예약 서비스도 통근사고보험 상품과 연관성이 있다. 대부분의 인도인이 출퇴근 시 기차를 이용하는 데서 착안해 서비스를 만들었다. 인도에서 하루 기차 운행 건수는 1년 비행기 운행 건수와 맞먹는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 투자 상품도 일부 판매 중이다. 앱에서 ‘디지털 골드’ 상품에 일정 금액을 투자하면 100g짜리 실물 금을 보내주는 서비스다.

밸런스히어로는 앞으로 더욱더 비즈니스를 다양화할 계획이다. 생활 금융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 여전히 주요 고객은 인도의 서민층과 금융 소외 계층이다. 이들에게 IT 기반으로 편리한 금융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게 회사의 기본 방침이다. 물론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면서 기존 비즈니스 사업자들과의 경쟁도 피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밸런스히어로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전국적으로 분포된 100만 명의 리셀러들과 7600만 다운로드 수를 기반으로 만든 신용평가체제가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철원 대표는 “‘인도 국민 앱’을 만들었으니 코끼리에 일단 올라탔다고는 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인도 최고의 테크핀 업체가 돼서 코끼리를 춤추게 만들어 보겠다”고 말했다.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파괴적 혁신과 추천 마케팅… 글로벌 진출 모델 만들어

밸런스히어로는 거대 인도 시장에서 급성장 중인 글로벌 스타트업이다. 피처폰 시절, 컬러링으로 인도 통신 시장에 진출한 이 회사는 스마트폰이 도입되던 시절, 파괴적 혁신을 일으킨다. 스마트폰 사용자의 90%가 선불 요금제를 사용하는 시장 특성을 간파해 잔액과 데이터 사용량을 체크해주는 트루밸런스 애플리케이션(앱)을 출시한 것이다. 이 앱은 큰 인기를 끌어 거대 고객 기반을 확보하게 해줬다. 소프트뱅크벤처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데도 성공한 이 스타트업은 ‘인도의 토스’가 되고자 모바일 핀테크 서비스로 또 한 번 사업을 확장 중이다. 트루밸런스에 거래 대행 서비스, 전기료•가스비 결제, 보험 판매, 온라인 쇼핑, 소액 대출 서비스 등 기능을 하나씩 추가해 가고 있다. 밸런스히어로는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거대 인도 시장에 진출하고 현지화 전략에 성공하는 글로벌 진출 모델을 만들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s)을 통한 시장 진입

트루밸런스 앱의 성공은 고(故)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가 주창한 파괴적 혁신의 개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파괴’란 보유한 자원이 적은 기업이 기존의 안정된 비즈니스에 도전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보통 대형 통신사와 유통망은 기존에 수익성이 가장 높은 고객층을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집중하는 과정에서 다수 고객층의 요구를 무시하게 된다. 스마트폰이 도입된 이후에도 고객들은 데이터 잔액을 피처폰 방식으로 불편하게 확인해야 했다. 밸런스히어로는 이런 고객층이 앱을 통해 편리하게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시장 확대의 발판을 확보했다. 일단 시장에 진출한 후에는 네트워크 마케팅과 주류 고객층이 원하는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시장에서 파괴를 일으킨다.



[그림 1]은 제품 성능 궤적(붉은 선)과 고객 수요 궤적(푸른 선)을 비교한다. 기존의 기업들은 수익성이 높은 시장의 상부를 만족시키기 위한 상품, 서비스 개발에 신경 쓰지만 이럴 경우 주류 고객과 시장의 하부를 무시하는 문제를 갖게 된다. 데이터 소비량이 많은 인도 통신 소비자들이 선불제 형태로 데이터를 소비하면서 데이터 잔량을 보여주는 ‘공짜’ 정보 서비스에 무관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밸런스히어로는 파괴적 기업으로서 기존 기업이 무시한 스마트폰 앱을 통한 저수익성 정보 서비스가 인도 통신 소비자들의 진정한 요구사항인 것을 간파했다. 밸런스히어로는 파괴적 궤적(아래쪽 붉은 선)을 따라 서비스 성능을 개선하면서 시장의 상부로 이동했고, 그렇게 기존 기업의 우위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추천 마케팅(Referral Marketing)

사실 통신 서비스를 영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복잡한 데이터 플랜을 이해시키고 다른 고객을 소개한다는 것은 통신 서비스 판매를 통해 얻는 수익에 비해 품이 많이 든다. 밸런스히어로는 이런 영업의 속성을 고려해 추천 마케팅 방식을 택했는데 이는 고객 기반 확대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평가된다.



[표 1]은 이런 추천 마케팅 프로그램이 전통적 마케팅 프로그램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준다. 성공적인 스타트업 클라우드 저장 서비스인 드롭박스(Dropbox)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드롭박스 성장 전략의 핵심은 사용자 참여로 꼽힌다. 드롭박스 서비스에 처음 가입할 경우, 무료 저장 공간은 2GB로 적지만 드롭박스를 친구들에게 추천하면 1회당 500MB씩 최대 16GB까지 추가 저장 공간을 제공한다. 추천인뿐만 아니라 추천으로 가입한 친구들도 이 저장 공간을 받는다. 이런 추천 마케팅을 통해 사용자 참여를 유도한 드롭박스는 단기간에 5억 명이 넘는 가입자 수를 확보했다. 클라우드 저장 서비스의 편리함이란 영업사원이 설명하는 방식으로 영업하는 것보다는 사용자 참여를 통해 무료 사용자를 확보한 후, 차별된 서비스를 직접 느껴본 사용자들이 다른 사용자들에게 영업하는 방식이 보다 효과적인 것이다. 밸런스히어로의 경우에도 처음 가입한 고객에게 소액이지만 10루피를 제공하고 단기간에 가입자 수를 증대시켰다.

핀테크를 통한 기능적 확장

고객 기반이 확보되면서 밸런스히어로는 스마트폰 기술을 활용, 기존 금융기관들이 제공하지 못한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를 트루밸런스에 접목한다. 대중을 위한 금융 서비스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인도에서 핀테크 분야는 또 다른 파괴적 혁신의 기회다. 핀테크 중 가장 기본적인 결제 및 송금 서비스는 밸런스히어로 사례에서 데이터 충천 형태로 구현됐다. 결제 및 송금이 자리를 잡게 되면 자산 관리 분야인 예금, 대출, 투자 분야로 확대할 기회가 생긴다. 보안 및 데이터 분석 분야의 핀테크 서비스는 빅데이터 분석 기술과 결합해 자산 관리, 신용 리스크 평가, 금융 상품 추천 등 확장 영역이 보다 다양해진다.



[표 2]는 핀테크 분류와 핀테크 전반의 사업 분야를 보여준다. 밸런스히어로는 통신 서비스를 기반으로 확보한 고객 기반을

기초로 다양한 형태의 핀테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한국에서 토스가 젊은 스마트폰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편리한 송금 서비스로 출발해 대출 광고 및 소개를 통해 급성장한 것처럼 여러 핀테크 분야 중에 인도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 편리한 금융 서비스를 접목한 것을 하나의 성공 요인으로 꼽을 수 있겠다. 한국 출신의 스타트업 밸런스히어로가 인도 최고의 테크핀 업체가 돼서 ‘코끼리를 춤추게 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다만, 금융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한 대출 서비스가 강화된다면 규모의 성장을 조속히 이루게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부정 사용이나 상환, 채권 추심의 문제가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기존의 금융 서비스 시장을 파괴적 혁신으로 접근할 경우, 전통적인 금융 서비스 제공자의 견제와 함께 핀테크 스타트업들의 파괴적 혁신 또한 일어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전성민 가천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smjeon@gachon.ac.kr
필자는 서울대에서 경제학 학사를 마치고 동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경영정보 박사 학위를 받았다. IBM과 삼성에서 다수의 IT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서울 및 미국 산호세에서 창업자로 일한 경력도 갖고 있다. 벤처회사들의 실증 데이터 분석을 통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P2P lending, 소셜커머스 등 신규 사업 모델을 분석 중이다. 역서에 『페이스북 시대』 『FANG시대의 경영정보학』, 저서로는 『경영학으로의 초대』 등이 있다.




고객 눈으로 보니 “아하, 이런 기술 필요”
위기 닥칠 때 ‘파괴적 혁신’ 답을 찾다

Article at a Glance
엡손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고객의 니즈에서 답을 찾았다. 잉크 카트리지 교체 비용을 부담스러워하는 고객들을 위해 잉크 탱크를 탑재, 한번 잉크 충전으로 수천 장 출력이 가능한 무한 잉크젯 프린터를 내놓았고 다양한 소재에 무늬와 색감을 입히길 원하는 니즈에 발맞춰 섬유용 디지털 프린터를 개발했다. 이처럼 고객들의 니즈를 좇아 자신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잘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남들은 모방할 수 없는 제품을 개발하게 됐다. 결국 기술을 빛나게 해주는 건 고객인 셈이다.


“패션은 아날로그적인 산업이 분명하죠. 하지만 디지털 기술을 통해서 훨씬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 더 선명한 무늬를 만들 수 있고, 값싸고 손쉽게 제작할 수 있어요. 또 과거에는 생각지 못했던 다양한 표현이 가능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패션의 성공에 중요한 요소이자 우리 회사의 목표입니다. 우리는 디자이너들이 자기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디자이너들이 그들의 창의성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며, 그로 인해 고객들은 과거에는 못 보던 옷을 입는 즐거움을 경험하도록 할 것입니다.”

2017년 2월 뉴욕 패션위크(Fashion Week)에서 낯선 인물이 연설을 했다. 패션위크는 봄과 가을 두 번에 걸쳐 펼쳐지는 국제적 패션 이벤트로 다음 시즌에 유행할 패션 트렌드를 보여주는 자리. 뉴욕 패션위크는 밀라노, 파리, 런던과 함께 세계 4대 패션위크 중 하나로 그 규모가 가장 크다. 그런데 내로라하는 패션 업계나 연예계, 또는 예술 분야의 인사들이 모여드는 이 자리에서 일본의 IT 기업인 엡손(Seiko Epson Corporation)의 우스이 미노루 사장이 패션 산업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뉴욕 패션위크에서 3년째 개최한 패션 행사(Epson Digital Couture)에서 우스이 사장이 직접 손님들을 맞이했다.

다양한 산업에서 잉크젯 혁명을 시도
엡손은 섬유용 디지털 프린터를 개발해 시장에 내놨다. 이 프린터를 사용하면 염색으로는 불가능한 섬세하고 화려한 무늬와 색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제 디자이너 혼자서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독창적인 패션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이날 패션행사에 나온 디자이너 에린 페더스턴(Erin Fetherston)은 소규모 디자이너 브랜드의 고충을 토로하며 프린터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고객들은 점점 더 독창적인 걸 찾고 있어요. 모두 더 다양하고 더 독특한 제품을 원합니다. 예전 같으면 저처럼 작은 브랜드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도전이었죠. 각 고객에게 그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만들어주면서도 마진을 남기며 비즈니스를 유지한다는 건 불가능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엡손의 프린터가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는 얘기였다. 페더스턴은 2005년부터 뉴욕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운영해 왔다. 규모가 작은 브랜드이다 보니 소수가 원하는 독특한 디자인을 제작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도저히 타산이 맞지 않았다. 그런데 섬유 프린팅 기술은 어떤 무늬의 천도 저렴하게 만들어내 줘 소수의 고객이 원하는 옷을 디자인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심지어 섬유 프린팅 기술은 디자이너의 상상력을 넓히기도 한다. 대개 디자이너들은 시중에 나와 있는 재료를 먼저 떠올린 후 옷 디자인에 들어간다. 자연스레 섬유 재료의 특성 때문에 디자인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섬유 프린팅 기술은 거의 모든 재료에 상상 가능한 무늬를 입힐 수 있다. 디자이너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천을 실제로 디자인에 이용할 수 있는 셈.

영국의 신예 디자이너 리처드 퀸은 디지털 프린팅을 패션에 적극 활용해 주목받고 있다. 2016년 런던에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한 그는 비록 경력은 짧지만 제1회 ‘영국 디자인을 위한 여왕상(the Queen Elizabeth II Award for British Design)’을 받았다. 2018년 제정된 미래가 유망한 디자이너에게 주는 상을 차지한 것이다. 이처럼 전도유망한 퀸의 창작 활동 중에서 많은 부분이 스튜디오에 있는 엡손 섬유 프린터를 활용한 패턴 연구다. 다양한 소재에 독특한 무늬의 패턴을 디자인해 인쇄하는 과정에서 그에 걸맞은 패션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경제성도 디지털 프린팅의 또 하나의 이점이다. “프린터를 활용했을 때 좋은 점은 유통업체의 다양한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 있다는 거죠. 대부분의 매장은 자신들에게만 배타적으로 공급하는 디자인을 원해요. 섬유 프린터 덕분에 저는 거래하는 매장마다 그들의 요청사항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소비 매장마다 그들이 원하는 고객지향적인 디자인을 만들어줄 수 있죠.”

얼마 전까지도 엡손은 패션업계와 직접 소통하지 않고 기술만 공급했다. 2000년대 초반 이탈리아의 로버스텔리(Robustelli)라는 회사가 엡손에 찾아와 섬유인쇄기 개발에 엡손의 기술을 사용하고 싶다고 제안했고, 2003년 섬유인쇄용 프린터 모나리자가 출시됐다. 그 후 엡손은 로버스텔리사와의 협업을 통해서 패션산업을 간접적으로 지원해 왔다. 하지만 수년간 패션산업 고객들의 엡손 잉크젯 기술에 대한 필요성과 만족도가 높다는 것을 느끼고 2016년 로버스텔리사를 인수했다.


위기에서 깨달은 것, 강점을 지렛대로 삼아 고객을 만족시킨다


엡손이 패션 산업처럼 IT와 멀어 보이는 분야에서 새로운 고객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은 사업영역 확대와 다양화를 통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엡손 역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 후 이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엡손은 핵심 기술을 활용해서 다양한 산업 분야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원래 엡손은 세이코 시계의 부품업체로 출발했다. (DBR minibox ‘엡손은 어떤 회사인가?’ 참고.) 1964년 세이코 시계가 도쿄올림픽 공식 기록측정기로 채택되자 측정된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 프린터를 개발한 것이 엡손의 주력 사업이 됐다. 시계에 들어가는 액정 부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LCD 기술을 발전시켰고, 한때 중소형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LCD) 모듈로 커다란 이익을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엡손의 사업이 대부분 직격탄을 맞았다.

TFT-LCD 부품 사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금융위기로 전방 산업인 전자제품 소비가 감소하고 경쟁 격화로 LCD 가격은 급격히 떨어졌다. 더욱이 당시 엡손의 주요 고객이었던 모바일폰 제조업체가 어려워지자 엡손의 매출이 하락했다. 결국 막대한 투자와 지속적인 경쟁이 불가피한 TFT-LCD 부품사업을 2010년 4월 소니에 매각했다. 매출 비중이 가장 큰 프린터 사업 역시 어려움에 봉착했다. 당시 엡손의 프린터 사업은 개인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는데 금융위기로 소비심리가 위축되자 개인들의 소비가 감소했다. 직접적으로 프린터 판매도 줄었지만 소모품인 잉크 판매가 급격히 줄어든 게 더 심각했다. 프린터 사업의 수익모델은 싼 가격에 프린터를 팔고 소모품인 잉크를 비싸게 팔아서 이익을 내는 것이었다. 모든 프린터 회사가 이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했다. 그런데 소비심리가 가라앉자 비싼 정품 잉크를 사지 않고 비정품 잉크를 사용하는 고객이 늘어났다. 이런 현상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아시아 국가에서 특히 심하게 나타났다. 이에 따라 2005년 1조5000억 엔을 넘던 매출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1조 엔 이하로 떨어졌고, 2008년에는 처음으로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공교롭게도 2008년은 우스이 미노루 사장이 취임한 해다. 그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회사를 맡아서 회생을 위해 절치부심했다. 우선 전사적으로 원가 절감에 돌입했다. 심지어 프린터나 프로젝터에 들어가는 케이블의 길이까지 줄였다. 핵심 이외의 사업은 정리했다. 사업부 내에는 잘 팔리지 않는 제품도 많았다. 가령 프린터사업부에서는 레이저프린터도 만들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엡손은 잉크젯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는 회사다. 레이저프린터는 외부 기술을 들여와 생산하는 제품. 프린터 사업을 하니까 레이저프린터도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제품을 개발했지만 핵심이 아닌 제품이 잘 팔릴 리 없었다. 이런 사업을 모두 축소하고 정리했다. 이 같은 구조조정 비용 때문에 순이익에서 1113억 엔의 거대한 손해를 봐야 했다.

이와 같은 회생 노력 후에 2009년 향후 사업 방향을 결정하는 비전 ‘SE15(2015년의 세이코 엡손)’를 선포했다.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의 고객에 집중하고, 핵심 사업을 강화하며, 축적된 역량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자는 게 골자다. 한마디로 말해서 강점을 지렛대로 삼아서 고객을 만족시키자는 얘기였다. 단적인 사례가 정품 무한 잉크 프린터의 출시다.



고객이 원하면 무슨 이유가 있어도 만들어낸다… 정품 무한 잉크 프린터

잉크젯프린터 사업의 골칫거리는 소비자들이 정품 소모품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상당수 아시아 국가 소비자들의 경우, 정품 토너를 쓰지 않고 토너를 충전해서 썼다. 프린터 제조업체는 기기보다 잉크 카트리지나 토너를 판매해서 높은 수익을 올려야 하는데 비정품 소비가 늘어나다 보니 당연히 이익이 곤두박질쳤다. 시장에서 잉크젯프린터는 카트리지를 없애고 잉크통을 단 무한 잉크 프린터로 개조돼 팔렸다. 잉크가 다 닳으면 잉크통에다 해당 색상의 잉크를 부어주면 되는 것. 비정품 무한 잉크 프린터는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많이 사용됐다.

엡손은 이런 비정품 무한 잉크 프린터 시장에서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다. 무한 잉크 프린터로 변형되는 제품 중에 엡손 제품이 가장 인기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비정품 잉크 프린터를 판매하는 매장들은 무한 잉크로 개조할 프린터로 엡손 제품을 추천했다. 무한 잉크 프린터를 조금 오래 쓰다 보면 프린터 헤드가 망가져서 색이 번지는 현상이 발생했는데, 재미있게도 엡손 프린터에서는 헤드 문제가 별로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 시행착오 끝에 알아낸 사실이었지만 엡손 기술을 알고 보면 이 같은 강점은 자연스런 결과였다. 엡손이 최초 개발한 마이크로 피에조(Micro Piezo) 잉크젯 기술은 헤드에 열을 가하는 감열(thermal) 방식과 달리 물리적인 힘에 의해 잉크가 분사됐기 때문. 따라서 오래 써도 헤드의 성능이 감소되지 않아 굳이 교체할 필요가 없었다. 비정품 매장들이 무한 잉크 프린터를 만들 때 엡손 제품을 추천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무한 잉크 프린터는 엡손의 강점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카테고리였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무한 잉크 프린터 개발이 타당한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시아 각국에서 엡손 직원들이 모여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무한 잉크 프린터를 가장 많이 쓰는 인도네시아 시장부터 아시아 각국을 조사했다. 한국에서는 현재 한국엡손 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김대연 차장(당시 직급)이 참여했다.

“프린터 사업이란 게 기기에서는 손해를 보고 소모품으로 돈을 버는 거니까, 이 제품은 게임 룰을 뒤집는 전략이었어요. 그렇지만 고객들이 원하는 거니까 회사 내부에서는 해보자는 분위기가 컸습니다. 다만 기존 상식을 뒤집는 것이니까 철저히 준비하기로 했어요. 다른 프린터의 매출 감소를 무릅쓰고 시작하는 것이니만큼 꼭 성공시켜야 했습니다.”

인도네시아, 대만, 한국을 오가며 비정품 무한 잉크 프린터를 개조하는 매장을 방문해서 이야기를 들었고, 실제 사용자들을 찾아다니며 불만을 조사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비정품 무한 잉크 프린터에 대해 불만이 많다는 것을 알아냈다. 가장 많은 불만은 잉크가 새는 문제였다. 개조된 제품은 외부에 잉크통을 만들어 호스로 연결하는데, 여기서 잉크가 자주 샌다는 거였다. 또 호스가 굳으면서 잉크가 공급이 안 되는 문제도 빈번하다고 했다. 또 다른 불만은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공식 서비스를 받을 수가 없어서 추가 비용이 적잖이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싼값에 프린터를 쓰려고 했는데 몇 번 쓰지 않고 고장 나니 수리비로 돈이 더 들거나 새로운 프린터를 사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재미있었던 점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택배 서비스가 좋지 않아서 프린터를 개조하려면 이 제품을 들고 다녀야 하는데 그게 번거롭다는 불만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개조 제품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았고, 잉크 값이 비쌌기 때문에 무한 잉크 프린터에 대한 니즈는 확실했다.


니즈는 충분했지만 제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가격에 내놓아야 할지 등등 구체적으로 상품기획을 해야 했다. 일단 각국을 돌며 소비자 조사를 했다. 프린터 업계의 상식을 뒤집는 기획인 만큼 프로젝트 멤버들은 신나게 일했다고 김대연 부장은 전한다. “일본 본사와 아시아 담당 매니저들이 모여서 공동 작업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미팅을 할 때였어요. 멤버들이 저녁도 거른 채 밤 12시를 넘겨서까지 회의를 하고 그랬죠. 배고픈 줄도 몰랐어요. 정말 재미나게 일했습니다. 생각해야 할 게 너무 많았고 일이 끝이 없었지만 모두들 즐거워했습니다.”

고객들의 숨은 니즈를 파악하고, 어떻게 고객가치를 전달할지 치열한 고민이 계속됐다. 소비자조사와 소비자 관찰(Ethnography 에서 유래한 소비자 관찰 기법)이 이어졌다. 이를 통해 무한 잉크 프린터를 구매하는 데 소비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속성들을 일일이 찾아냈다. 더불어 다중속성모델(Multi-attribute model)을 활용해서 제품의 적절한 가격대를 계산했다. 2년에 걸쳐서 상품기획을 하다 보니 이전에 몰랐던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재미있게도 정품 무한 잉크 프린터가 우리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는 걸 알아냈어요. 우리 회사는 금융위기 이후에 핵심 역량을 가지고 있는 잉크젯에 주력했습니다. 전략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었죠. 그런데 정품 무한 잉크 프린터가 잉크젯 제품과 경쟁하는 게 아니고 레이저프린터 고객을 빼앗아 오는 제품이지 뭡니까. 우리 제품을 갉아 먹을까 봐 걱정했는데 말이죠.”(김대연 부장)

이렇게 2010년 말 정품 무한 잉크 프린터 L100과 L200이 출시됐다. 헤드의 내구성이 강한 엡손 기술에 딱 맞는 제품이었다. 인쇄량이 많은 고객을 대상으로 제품이 팔려 나갔고, 레이저 프린터 시장의 소비자들을 뺏어 오게 됐다. 그러자 다른 프린터 회사들도 정품 무한 잉크 프린터를 뒤늦게 출시했다.

엡손의 정품 무한 잉크 프린터 개발은 지배적인 기업이 스스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시도해서 성공한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파괴적 혁신이란 하버드경영대학원의 클레이턴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 교수가 창시한 개념으로, 후발기업이 저기능 저가격을 원하는 고객으로 이뤄진 틈새시장에 침투한 후 기술을 지속 발전시켜 궁극적으로 주력시장에서도 선도 기업을 밀어내는 것을 말한다. 값싼 일본 자동차가 미국 자동차 틈새시장에 침투한 후 품질을 향상시켜 자동차 시장을 장악한 경우나 할인점이 백화점을 밀어낸 사례가 이에 해당된다.

선도기업이 파괴적 혁신에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시장 규모가 작아서 자원을 할당하기 어렵고, 자사의 주력 제품에 대한 자기 잠식(Cannibalization)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리스텐슨 교수는 지배적인 기업이 파괴적 혁신을 하려면 독립 조직을 설립해서 기존 조직의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사실 정품 무한 잉크 프린터는 기존 프린터사업부에서 개발했다. 시장 규모도 크지 않았고 기존 제품 잠식에 대한 우려가 있었음에도 개발에 이견이 없었다.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건 저렴한 본체만이 아니라 프린터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적은 제품이다. 결국 이 결정은 옳았다. 오늘날 엡손의 정품 무한 잉크 프린터는 확고한 제품 세그먼트로 자리 잡았고, 엡손의 잉크젯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레이저프린터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고객의 눈으로 기술을 보자 안 보이던 고객이 늘어나, B2B 사업의 확대

이처럼 엡손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답을 고객에게서 찾았다. 고객의 눈으로 제품을 보고, 고객의 머리로 기술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고객 입장에서는 프린터 내부에 무슨 기술을 쓰는지, 프로젝터가 어떤 원리로 빛을 내보내는지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양질의 인쇄가 잘되면 됐고, 프로젝터를 쓸 수 있는 곳에 제약 없이 쓸 수 있으면 됐다. 고객의 눈으로 제품을 바라보자 안 보이던 고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쇄를 하는 모든 사람이, 더 나아가 향후 인쇄를 할 수 있는 모든 잠재고객이 눈에 들어왔고, 프로젝터를 쓸 수 있는 곳이 떠올랐다. 이렇게 엡손의 위기 돌파 전략은 다양한 분야의 기업 고객을 개척하는 것이 됐다. 위기 이후 엡손은 잉크젯 기술, 3LCD 프로젝터 기술, 센서 및 로봇 기술 등을 활용해서 산업용 제품 고객을 넓혀가고 있다. 가령, 과거 프린터 사업은 다른 프린터 제조회사와 마찬가지로 주로 사진이나 문서를 인쇄하는 개인과 기업 고객을 위해 제품을 판매했다. 당연히 가정에서 쓰는 소형 프린터와 사무실에서 대량 인쇄를 하는 데 필요한 프린터 생산에 집중했다. 그러나 엡손은 기술력으로 기존에 집중하지 않았던 새로운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앞에서 언급한 섬유산업의 경우 직물을 인쇄할 때에는 색이 옷감에 잘 달라붙어야 하고 세탁을 잘 견뎌야 한다. 이를 위해 염색 기술자들은 승화성 염료나 산성 염료, 또는 반응성 분산 색소를 넣는다. 또 광고판을 제작하는 인쇄업자들은 친환경 솔벤트를 잉크로 사용한다. 그래야 PVC 필름에 잘 붙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엡손은 잉크 원료와 관련된 고객의 다채로운 니즈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엡손의 마이크로 피에조 잉크젯 기술은 헤드에 열이 가해지지 않기 때문에 잉크의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다양한 잉크를 적용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엡손은 이 밖에 중소 제조업자들의 니즈도 눈여겨봤다. 소규모 업체들은 자신들의 제품에 라벨을 붙일 때 빨리 마르는 수성 레진이나 자외선(UV) 잉크를 쓴다. 그래야 다양한 매개체에 빠른 인쇄를 할 수 있기 때문. 엡손은 이에 적합한 라벨용 프린터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서퍼(Surfer)인 레어드 해밀턴(Laird Hamilton)은 커피 제조업체인 레어드 슈퍼푸드를 설립했는데 전시회에서 우연히 엡손의 라벨 프린터를 보고 곧바로 구매하기도 했다. 갑자기 주문이 늘어나 상품에 라벨을 일일이 손으로 붙일 수도 없고 주문을 하자니 제품이 너무 다양해서 힘들었는데 프린터를 보자마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직감했다는 것이다.

엡손은 오랫동안 시장점유율 1위를 지켜오던 프로젝터 사업에서도 고객을 늘려나가고 있다. 그간 프로젝터는 주로 기업, 학원 등에서 발표나 강의용으로 사용됐다. 고객들이 프로젝터를 쓰는 이유는 한 사람의 컴퓨터에 있는 내용을 여럿이서 커다란 화면으로 보며 공유하기 위함이다. 만약 밝은 곳에서도 여러 사람이 정보의 손실 없이 커다란 화면을 볼 수 있게끔 한다면 프로젝터는 충분히 어떤 분야에서건 사용될 수 있었다. 이에 엡손은 밝은 환경의 상점이나 쇼핑몰 등에서도 프로젝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품을 개발했다. 특히 3LCD(적색, 녹색, 청색 3개의 LCD를 통해 화면을 구현하므로 한층 선명하고 밝은 컬러를 구현하는 것이 특징) 기술을 원천 개발했는데, 이 기술은 다른 회사 제품에 쓰이는 DLP(Digital Light Processing) 기술에 비해 더 밝고 선명한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다. 여기에 고객들이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원가절감 노력을 지속한 결과, 가격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모두 갖추게 됐다. 또 손가락으로 화면을 조작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디스플레이 기술을 개발해서 학원에서 화이트보드 기능으로 수업의 몰입도를 높여주거나 쇼핑몰에서 매장 고객에게 정보와 재미를 제공할 수 있게 했다. 거대 화면을 자연스럽게 연출하기 위해 멀티 프로젝터 디스플레이의 자동 색상 교정 기술도 개발했다. 실제로 2017년 8월 세종문화회관은 건물 외벽에 프로젝터를 설치해 다양한 작품을 상영, 볼거리를 제공하는 ‘미디어파사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대형 FPD(평판 디스플레이)로는 거대한 건축물 전체를 꾸밀 수 없으므로 엡손 멀티 프로젝터를 쓸 수밖에 없었다. 엡손이 압도적인 시장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처럼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지속적으로 개척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이 원하는 기술 고도화로 없어서는 안 되는 회사가 되자… 마이크로 피에조 기술

잉크 등 소모품을 팔아 수익을 올리던 프린터 사업에서 발상의 전환이 된 정품 무한 잉크 프린터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엡손의 프린터 헤드가 내구성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또 패션, 광고 등 다양한 산업에서 쓰이는 산업용 프린터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도 엡손의 기술력으로 다양한 잉크 원료 사용이 가능했기 때문. 바로 마이크로 피에조 기술이 엡손의 프린터 사업 혁신을 가능케 한 셈이다.

엡손은 1970년대 말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를 개발해 시장을 장악했다.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는 비유하자면 타자기와 비슷한 기술로 탄소 리본에 충격을 가하는 방법으로 글자를 인쇄하는 초기 기술이다. 엡손은 1980년대 PC가 등장하면서 개인을 위한 프린터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시끄러운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가 아닌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과 1984년 등장한 것이 압전소자를 활용한 피에조 방식의 잉크젯프린터다.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 가격이 10만 엔이었던 반면 이 제품 가격은 49만 엔으로 결코 대중적인 제품은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100V의 큰 전압을 가지고도 잉크를 밀어내는 힘이 충분치 않았다는 사실이다. 큰 전압으로 구동하는 회로 때문에 덩치도 크고 가격도 높아 고객들이 찾는 제품은 아니었다. 같은 해 HP는 레이저프린터를 개발했고, 캐논은 구조가 간단하고 비용 절감에도 유리한 감열(thermal) 방식의 잉크젯프린터를 출시했다.

엡손은 레이저프린터와 비교하면 기술이 뒤지고, 경쟁 잉크젯프린터에 비해서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 엡손의 프린터 사업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이때 엡손은 레이저프린터나 감열 방식의 잉크젯 기술을 뒤따라 가는 대신 기존의 피에조 잉크젯 기술을 개선하기로 결정했다. PC를 사용하는 새로운 고객들이 값이 싸면서도 내구성 좋은 제품을 원할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현 사장인 우스이 미노루가 개발을 이끌었다. 고객 눈높이에 맞게 가격을 낮추려면 작은 원가절감은 무의미했다. 획기적인 혁신이 필요했다. 시행착오를 거듭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던 중 우연한 기회에 해결책이 다가왔다. 필립스가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의 액추에이터(구동장치)로 한 소자를 제안했는데 이것을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가 아니라 잉크젯에 적용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


이 소자를 채용해서 새로운 헤드를 만들어냈고, 30V의 전압에서 1μm를 움직이는 마이크로 피에조 방식을 개발했다. 1989년 개발의 실마리를 잡은 후 1993년에 가서야 마이크로 피에조 기술을 적용한 잉크젯프린터를 첫 출시했다. 성능을 높이면서도 소재를 저렴한 걸로 바꿔서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마이크로 피에조 기술은 전류에 반응한 피에조 소자가 수축돼 기계적인 동작을 보이며 잉크 방울을 분사하는 기술. 감열 방식은 열이 공기 방울을 만들면서 잉크를 분사한다. 이 때문에 열에 의해 헤드가 손상되며 화학적 변화에 민감한 잉크 원료를 사용하지 못한다. 반면 마이크로 피에조 기술의 경우 헤드 성능이 반영구적으로 지속돼 고객에게 내구성이 튼튼한 제품을 제공할 수 있다. 또 화학적 변형이 없어서 고객의 의도에 따라 잉크 원료의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다. 다만 마이크로 피에조 방식은 감열 방식에 비해 복잡해서 제작하기가 힘든 편이다. 그러나 엔지니어가 힘들수록 고객은 더 편해지는 것이 아이러니한 진실이다. 만들기 쉬운 간단한 기술은 결국 어떤 부분에서 고객을 불편하게 한다. 한 가지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데 집중하다 보면 다른 부분에서는 빈틈이 생기기 쉽기 때문. 반면 엔지니어가 힘들게 문제를 해결할수록 고객은 편해진다.

결국 마이크로 피에조 기술 개발에 성공한 것도 이 기술을 고객이 원하는 수준으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노력 때문이었다. 이처럼 엡손은 오랫동안 고객 관점에서 핵심 기술을 갈고 닦으면서 축적해 나가고 있다. 마이크로 피에조 기술을 기반으로 여러 분야의 고객을 만족시키고 있는 것처럼 프로젝터 사업에서는 3LCD 기술을 기반으로 고객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한 혁신을 지속하고 있다. 로봇 솔루션 사업은 재미있게도 엡손의 시계 조립생산을 자동화하기 위해서 1983년 처음 만들어졌다. 한 번 기술을 개발하면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지속 발전시키는 엡손의 특징은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수정 압전((壓電) 방식을 적용한 독자적인 포스 센서 기술을 원천 개발한 이래, 스카라 로봇은 2017년 세계 시장점유율 30%로 경쟁사들과 큰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고객의 니즈와 환경에 최적화할 수 있는 다양한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소형수직다관절(6축) 로봇은 에너지와 공간 절약을 위해 소형화와 경량 설계를 추구하며 세계 최초의 슬림 폴딩 암 구조를 개발해 차별화된 고객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엡손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고객에게 눈을 돌렸다. 그때마다 고객은 답을 줬다. 엡손이 프린터와 프로젝터의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계속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도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의지 때문이었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이걸 기반으로 제품을 혁신하다 보니 남이 따라 하거나 모방할 수 없게 됐다.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회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방향은 고객이 제시한 것이었다. 즉, 고객이 기술을 빛나게 하고 위대하게 만들었다.


DBR mini box: 엡손은 어떤 회사인가?
엡손의 정식 명칭은 세이코엡손주식회사(Seiko Epson Corporation)로, 1942년 정밀 시계 제조회사인 세이코사의 투자를 받아 시계 부품 제조회사 다이와 쿄고로 시작했다. 1959년 세이코사의 스와 공장을 인수하면서 스와세이코사로 이름을 바꾼다. 1964년 도쿄올림픽 당시 공식 시계로 세이코의 타임키퍼가 채택되자 스와세이코사가 세운 자회사 신슈세이키에서 측정된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 프린터 개발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68년 세계 최초의 미니 프린터 EP-101을 출시했다(EP는 Electric Printer의 약자). 이후 후속 제품으로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프린터를 출시했다. 상징적 모델명인 EP와 자손이란 의미의 SON이 합쳐져서 EPSON이라는 브랜드가 탄생했다. 1979년부터 신슈세이키에서 출시한 모든 프린터에 EPSON이라는 브랜드를 붙였고, 1982년 회사 이름도 엡손주식회사로 변경했다. 그리고 1985년 스와세이코사와 합병해 현재의 세이코엡손주식회사가 출범하게 됐다.

프린터에 대한 폭발적 수요 증가로 시계 부품보다 프린터 사업이 더 번창하게 됐는데, 1979년 출시된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는 미국 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며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1993년에는 잉크젯프린터의 핵심 기술인 마이크로 피에조(Micro Piezo) 기술 개발에 성공, 초고속 고품질 인쇄 시대를 열며 세계적인 프린터 기업으로 명성을 굳히게 됐다.

프린터 이외에도 엡손은 1970년대부터 다양한 액정 패널에 대한 연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세계 최초의 포터블 컬러 LCD TV, LCD 비디오카메라 뷰파인더 등을 출시했다. 이러한 기술력을 축적해서 프로젝터에 활용되는 HTPS LCD 칩(3LCD 기술)을 개발하게 됐고, 1989년에는 최초의 LCD 프로젝터 VPJ-700을 출시했다.

또 1982년에는 엡손의 정밀 시계 조립을 자동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립 로봇을 개발해서 시계 생산에 사용했다. 이 로봇이 제조업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상용화하기로 결정, 이듬해 스카라 로봇 SSR-H 시리즈를 내놨다.

이후 엡손은 프린터, 프로젝터, 시계, 로봇 등의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한국엡손주식회사는 1996년 10월 세이코엡손의 현지 법인으로 설립됐다. 이후 1998년 합작 파트너였던 삼보컴퓨터의 프린터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2011년에는 로봇 비즈니스를 개시하면서 한국에서도 프린팅 솔루션,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산업용 로봇 솔루션 등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엡손의 기술은 ‘쇼쇼세이(省小精, Sho Sho Sei)’를 특징으로 한다. 에너지를 적게 들이고, 작고, 정밀하다는 뜻으로 엡손 기술의 DNA이자 기술적 강점의 원천이다. 먼저 쇼(省, Sho)는 고효율(Efficient)을 통한 스마트 테크놀로지 구현을 추구한다. 이를 통해 엡손은 네트워크의 연결성, 사용의 편리성, 신뢰할 수 있는 품질의 제품을 제공한다. 또한 쇼(小, Sho)는 초소형(Compact) 기술로 에너지 절약, 공정의 효율적 혁신, 제품 및 서비스의 최적화를 통한 환경친화적 접근을 추구한다. 마지막으로 세이(精, Sei)는 초정밀 기술을 통한 생산성 향상, 정확하고 정밀한 제품 개발과 차별화된 고객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기술을 기반으로 엡손은 5개 분야에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프린팅 솔루션 사업에서는 개인용, 비즈니스용 프린터와 산업용 프린터, 포스 프린터, 라벨 프린터, 종이재생기인 페이퍼랩 등을 생산하고 있다.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사업에서는 3LCD 프로젝터, HTPS LCD 패널 및 스마트 글라스 등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웨어러블 제품에서는 시계를, 로봇솔루션 사업에서는 스카라 로봇 등 다양한 로봇 제품과 반도체 장비인 IC Handler를 생산하고 있다. 마이크로 디바이스 사업에서는 쿼츠 부품, 전자제품용 반도체 등을 생산하고 있다.

2016년 엡손은 고객가치를 혁신하기 위해 새로운 장기 기업 비전 Epson25를 발표했다. Epson25는 2025년까지 10년간 앞으로 엡손이 혁신해 나아갈 방향을 담고 있다. Epson25는 엡손의 고효율, 초소형, 초정밀 기술을 통해 사람, 사물, 정보를 연결하는 시대를 만들고 엡손의 핵심 사업 영역인 잉크젯(프린팅 솔루션),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웨어러블, 로봇 분야 총 4가지 영역에서 혁신을 이뤄내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객이 기술을 더욱 빛나게 한다


인터넷의 발달,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 환경의 도래로 제조업체 사이에 설계 등 핵심적인 기능만 보유하고 나머지 기능은 외주화하는 ‘수평 분업’이 유행이 됐다. 엡손은 이런 유행과는 정반대로 수직계열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고 있다. 원천 기술 연구, 핵심 부품 개발, 제품 개발 및 생산, 판매 및 서비스 등 제품 생산의 모든 기능, 고객에게 전달되는 대부분의 프로세스를 엡손에서 스스로 해결하고 있다. 제품의 설계와 제작에 고객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한국엡손의 김대연 부장이 목격담을 전해준다.



“필리핀 공장에 갔을 때였어요. 프린터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부품을 직접 찍어내기 위해 금형을 만들고 있더군요. 이런 부품은 외주 제작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다 만드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어요. 제품에 들어가는 주요 부품은 작은 것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아이디어와 사업 모델을 중시하는 시대에 엡손이 아직까지도 지속적인 프로세스 개선과 생산성 혁신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도 더 나은 고객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전 세계 어느 엡손 공장을 가든지 한결같이 프로세스 개선 활동을 중시한다. 방법론도 바꾸지 않고 전통적인 생산 도구를 그대로 쓰면서도 매일 개선안을 내고 있다. 이처럼 엡손의 경영은 예스럽다고 할 만큼 현대 경영의 유행과는 동떨어져 있다. 수평분업화 시대에 수직통합을 고수하고 남들이 사업모델을 그릴 때 생산성 향상에 몰두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정품 무한 잉크 프린터 같은 상식을 뒤집는 혁신을 할 수 있었다.

경영 구루인 고(故) 테오도르 레빗(Theodore Levitt)은 새로운 혁신을 할 때 고객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생산방식을 혁신한 헨리 포드(Henry Ford)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통념과 다른 해석을 내놨다. 사람들은 헨리 포드를 생산방식을 혁신한 천재로 칭송한다. 그러나 이는 헨리 포드의 위대함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란 얘기다. 레빗은 포드는 생산의 천재가 아니라 마케팅의 천재였다고 말한다. 포드가 생산라인을 혁신해서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500달러짜리 자동차 수백만 대를 팔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는 거다. 500달러로 가격을 떨어뜨리면 자동차를 수백만 대 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포드가 생산라인을 바꿨다는 얘기다. 대량 생산 시스템은 고객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결과다.

젊었을 때 엔지니어로 마이크로 피에조 기술 개발을 이끌었던 우스이 사장이 강조하는 바도 이와 유사하다. “우리 기술을 아주 깊이 이해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기술을 아주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대중이 그것을 정말 필요로 하고 편리하다고 생각할까’에 대해서까지 깊이 고민한다는 뜻이니까요.”

기술의 활용에 대해 깊이 고민해서 고객 니즈를 만족시켜줄 수 있어야 기술이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는 얘기다. 결국 기술을 빛나게 하는 건 고객이다.


필자소개 이병주 TVC 대표 capomaru@gmail.com
이병주 대표는 연세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LG경제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창의성, 변화관리, 리더십 등을 연구했다. 저서로 『애플 콤플렉스』 『촉』 『3불전략』 등이 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https://dbr.donga.com/article/view/1901/article_no/9518/ac/a_list

과감한 시도, 씨티라서 가능한 길


한국씨티은행의 디지털 은행으로의 급격한 변신은 경쟁 은행들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케이스다. 미국의 씨티은행 본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전역에 있는 법인과 지점들을 대상으로 포트폴리오 조정 작업을 지속했고 한국씨티은행도 2014년 희망퇴직을 대대적으로 실시하는 등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다 2015년 인터넷전문은행의 도입 방안이 발표된 이후 비대면 거래와 관련한 규제가 완화되자 한국씨티는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2017년 한국씨티는 디지털 은행으로의 변신을 위해 구조조정을 시행하는 한편 비용 구조 개선과 비즈니스 모델의 수정도 동시에 추진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시점에서 한국씨티의 디지털 전환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우선, 국내 다른 은행이 하지 못한 일을 과감하게 시도한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한국씨티는 외국 자본이고, 경영진의 임기가 긴 편이라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특수성이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전체 점포의 70%에 육박하는 점포를 한 번에 정리하면서 소매금융 위주의 비즈니스 구조를 PB와 기업 금융 위주의 모바일 중심 은행으로 개편하는 작업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구조조정의 핵심인 디지털화(digitalization) 작업은 무난하게 진행 중이다. 일단 고객과의 접점인 모바일 앱에 대한 고객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현재 한국씨티의 모바일 앱인 씨티 모바일은 평점을 까다롭게 매기는 편인 애플의 앱스토어에서도 평균 4.7개(5개 만점)의 별을 받고 있다. 이는 국내 은행 평균(2.4개)뿐 아니라 2위(SC제일, 3.7개)와도 상당한 격차를 보이는 1등이다. 물론 한국씨티의 앱은 미국 본사의 앱을 그대로 벤치마킹했기 때문에 온전히 자체 역량으로 앱을 개발해야 하는 여타 국내 은행과 출발점이 다르다. 하지만 모바일 채널의 우수성은 점포망을 최소한으로 운영하는 한국씨티의 입장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둘째, 디지털 은행에 걸맞은 기업 문화의 정착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알다시피 구글과 같은 혁신 기업들은 직원들의 협업을 촉진하기 위해 사무실 환경 개선에 큰 투자를 하고 있다. 은행도 디지털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존의 보수적 문화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는데 한국씨티의 경우 위아래 직원의 소통을 통한 협업을 장려하기 위해 모든 임직원을 직급 대신 ‘님’으로 통일해서 부르도록 했다. 또한 직급에 상관없이 공유 좌석제를 실시했다. 이러한 조치가 실제 기업 문화 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를 수치로 판단할 수는 없겠으나 직원들의 사고방식을 보다 유연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업무를 효과적으로 자동화하기 위해 현업 부서와 IT 부서가 협조하는 단계를 넘어 현업 부서 직원들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워 개발 단계부터 참여하도록 한 점도 인상적이다. 금융업은 자체가 강도 높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IT 전문가로 하여금 금융을 익히도록 하는 것보다 금융 전문가에게 IT를 가르치는 것이 빠를 수 있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곤 한다. 한국씨티는 이를 현실화함으로써 이용자의 편의성을 높였다.

하지만 경영진이나 주주가 원하는 수준의 비용구조 개선은 아직 진행 중인 것으로 평가된다. 점포 90개와 ATM 268개를 폐쇄하면서 임차료와 하청 관련 비용 등이 감소해 2016년과 2018년 사이 판관비가 899억 원 줄었고 경영 환경 개선으로 영업이익이 954억 원 증가한 결과, 동 기간 이익 경비율이 68.7%에서 57.7%로 11%p 하락하는 등 경영 효율성이 개선됐다. 그러나 노사협상 결과 기존 임직원에 대한 구조조정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건비를 줄일 수 없었으며 그 결과 기존 인력의 호봉 상승으로 인건비(급여+퇴직급여+해고 및 명예퇴직 급여+복리후생비)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다만 한국씨티는 신규 직원 채용이 적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인건비 규모도 조직의 점포망 규모에 적합한 수준으로 천천히 수렴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즈니스 모델은 비대면 채널을 통한 신용 대출과 통합 점포를 통한 PB 영업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기업금융의 비중도 확대되는 모습이다. 2016년과 2018년 사이 한국씨티의 원화 대출금 중 담보대출과 보증부대출이 각각 839억 원과 3343억 원 감소하는 동안 신용대출이 924억 원 증가하면서 신용대출 비중이 46.9%에서 48.2%로 131bp 높아졌다. 또 점포 수를 줄이는 대신 남은 점포들을 대형화하면서 80명 안팎의 PB들이 하나의 점포에서 팀을 이뤄 근무하고 있는데 그 결과 2016년 224억 원이던 신탁 관련 이익이 2018년 298억 원으로 33% 증가하는 등 PB 관련 이익이 늘었다. 또 수익성 강화를 위해 가계대출보다 중소기업대출에 신경 쓰면서
2016∼2018년 중 원화 대출금의 기업 자금 비중이 37.6%에서 39.6%로 200bp 확대됐다.

디지털 은행으로의 변신을 추구하는 여타 은행 입장에서는 한국씨티의 사례를 참고해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노사 관계를 고려해 점포망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기존 임직원을 남겨두는 방법이 있지만 기존 직원의 대대적 재배치와 하청업체와의 계약 해지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씨티의 경우,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습득 등으로 이노베이션팀에 배치된 직원들이 있는 반면 갑자기 비대면 채널에 배치돼 감정 노동 업무를 수행하게 된 직원들도 있다. 물론 은행에서 부서가 바뀌는 일이 흔하다고는 하지만 역할이 지나치게 바뀌면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또 장기간 거래하던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는 것도 평판 리스크 측면에서 가벼운 일은 아니다.

둘째, 점포망을 대거 정리하고 비대면 채널 위주로 판매망을 구축하는 경우 비즈니스 모델의 변경이 불가피한데 그 과정에서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다. 가령, 한국씨티의 경우에는 애초에 점포망보다는 본사 브랜드와 네트워크를 활용한 PB 및 일부 IB 업무에 특화됐고 모바일 앱의 경쟁력이 높은 상태였기 때문에 변신이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하지만 모바일 앱이나 PB 등의 강점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씨티를 벤치마킹할 경우 점포망을 기반으로 하는 기존 고객 접근성만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은행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바일 앱의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 고객이 모바일 앱의 사용을 꺼리는 상황에서 점포를 줄이는 경우 심각한 고객 이탈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 앱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한국씨티마저도 2016∼2018년 중 원화 대출금 내 가계 자금이 4.8%(5741억 원) 감소하면서 이자 이익이 6.9%(739억 원) 감소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은행으로의 변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내부적 충돌을 줄이고 직원들의 협업을 독려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씨티와 같이 직급 대신 ‘님’이라는 호칭을 쓰거나 공유 좌석제를 실시하는 것은 국내 은행의 문화상 쉽지 않겠으나 정보의 장벽을 제거하기 위한 각종 시도는 참고할 만하다.

한국씨티는 모바일 앱에 강점을 가진 외국계 중형 은행이라는 특수성을 활용해 다른 은행들보다 더 과감하고 신속한 방식을 선택했다. 여타 국내 은행 입장에서는 한국씨티 사례의 구체적 과정과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변화를 면밀히 살펴 디지털 경쟁력 강화 작업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씨티의 비즈니스 모델을 자사의 해외 진출 전략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bhsuh@kif.re.kr
서병호 선임연구위원은 2006년부터 금융연구원에서 재직하면서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외부평가위원회 위원(2015년), 제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감독체계 구축 TF 단장(2016년), 금융감독원장 금융자문관(2016∼2017년), 가계부채연구센터장(2018∼2019년) 등을 맡았으며 현재 아세안금융연구센터장이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학사, 미시간대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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