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

미래 모빌리티에서 차내 경험(in-car experience)이 중요해지는 이유

1. 시간적 여유 : 자율주행 도입으로 자동차가 단순 이동 수단에서 삶/여가/거주 공간으로 바뀌면서 이전과는 다른 차내 경험에 대한 고객 니즈 증대

2. 실내 공간의 확장 : 내연기관차 대비 3분의 2 수준의 부품만 필요한 전기차 확대로 훨씬 넓어진 실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 인테리어 디자인을 할 것인가가 중요

3. 주행 특성 획일화 : 주행이나 동력 전달 과정을 통해 자동차 브랜드 특성을 드러내던 기존 접근 대신 차내 경험 제고를 차별화된 브랜딩 전략으로 활용할 필요성 증대

4. 자동차 이용 형태의 변화 : ‘운전자’가 아닌 ‘승객’으로 모빌리티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서 자동차 자체보다는 이동 중 차 안에서 겪게 될 경험에 기반해 브랜드를 평가







해마다 열리는 세계 최대의 가전•정보기술 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가 미래 모빌리티 공개의 장이 됐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1월 열린 CES 2020에서도 자동차 회사들의 다양한 모빌리티가 관람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중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메르세데스-벤츠의 미래를 담은 콘셉트 카 ‘비전 AVTR (VISION AVTR, 이하 AVTR)’였다. AVTR는 ‘Advanced Vehicle Transformation’의 약자이며, 모티브로 삼은 영화 ‘아바타(Avatar, 2009)’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하필 아바타일까? AVTR는 자율주행 전동 모빌리티로, 영화 속 주인공이 타던 동물처럼 날렵하게 생겼다. 또한 외부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바이오닉 플랩(bionic flaps, 콘셉트 카 AVTR 후면에 파충류 비늘처럼 달려 있는 작은 덮개)과 옆으로도 움직이는 독특한 조향 구조를 가졌다. 아울러 100%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로 만들어진 유기 배터리가 장착돼 있다. 모두 아바타의 세계관을 연상시키는 요소다. 하지만 이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AVTR에서 주목할 것은 인간과 모빌리티 간의 새로운 소통 방법이다.

벤츠는 이에 대한 힌트 역시 아바타에서 찾았다. 영화 속 주인공은 여러 생물과 촉수를 연결해 교감을 시도한다. 이동을 위해 동물을 탈 때도 마찬가지다. AVTR의 사용법도 이와 비슷하다. 센터콘솔에 손을 얹으면 AVTR는 마치 잠에서 깬 듯 컨트롤러를 위로 밀어 올리며 시스템을 활성화한다. 동시에 대시보드에 화려한 그래픽을 투영하고, 호흡과 맥박수로 손의 주인을 인식한 뒤 개인화 서비스를 시작한다. 컨트롤러를 살짝 밀면 자율주행 기능이 작동한다. 실내 기능은 운전자의 움직임을 통해 통제(gesture control)할 수 있다. 가령, 허공에 손바닥을 들면 그 위에 아이콘이 비춰지고, 그 아이콘을 살짝 쥐면 해당 기능이 켜진다.

AVTR와 아바타를 연관 짓는 핵심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런 새로운 사용자 경험이다. 실체가 없는, 먼 미래의 기술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벤츠는 이런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지속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8년 프랑스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소피아 앙티폴리스(Sophia Antipolis)에 문을 연 니스 선행 디자인센터(Advanced Design Centre)가 좋은 예다.

니스 선행 디자인센터는 자율주행 전동 모빌리티의 내외관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UX/UI) 개발에 특화된 곳이다. 독일, 이탈리아, 미국, 중국 등 세계 각지의 디자인센터에 흩어져 있던 해당 분야 전문 디자이너 50여 명이 이곳에 모여 AVTR과 같은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고 있다. 참고로 벤츠는 니스 센터 설립 이전부터 UX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MBRDNA(Mercedes-Benz Research & Development North America) 실리콘밸리 센터에 선행 UX 디자인스튜디오(Advanced UX Design Studio)를 설립한 뒤 이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해왔다. 벤츠의 최신 인공지능(AI) 음성 인식 서비스인 ‘MBUX’가 바로 이곳에서 개발됐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사용자 경험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용자 경험은 소비자가 브랜드를 만나고, 제품 및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느끼고 겪는 모든 것을 뜻한다. 자동차에서는 디자인, 운전 감각, 시스템 완성도, 마감 품질, 소재 등이 바로 사용자 경험에 포함된다. 최근에는 자동차 내부 경험에 한정한 ‘차내 경험(in-car experience)’ 개념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몇몇 업계 전문가는 차내 경험이 향후 자동차 회사의 존폐를 결정짓게 될 요소라고까지 말할 정도다.




차내 경험(In-car experience)이 핵심으로 떠오른 이유

그들이 차내 경험을 이렇게 높게 평가하는 배경에는 자율주행화와 전동화라는 흐름이 있다. 이는 현재 자동차 업계의 가장 큰 화두로, 우리 사회 전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자율주행화와 전동화가 가져올 변화는 다음과 같다.

1. 시간적 여유

완전 자율주행기술이 구현되면 운전이라는 의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동차 업계에선 2030년이면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절반에 미국자동차공학회(SAE) 기준 레벨 3의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될 것으로 보고 있다. 레벨 3은한정된 상황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한 수준이다. 또한 2030년에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한 레벨 5가 등장하고, 2035년에는 본격적으로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10여 년 뒤면 운전대가 없는 차가 도로 위를 달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자율주행기술 수준이 높아질수록 운전자의 여유 시간은 점점 늘어난다. 그러다 주행의 주도권이 완전히 자동차로 넘어가게 되는 순간 운전자는 탑승자가 된다. 이전에 없던 여유 시간을 갖게 된 사람들은 자연스레 운전이라는 행위를 대신할 무언가를 찾을 것이 분명하다.

벤츠보다 먼저 소피아 앙티폴리스에 연구개발(R&D) 센터를 구축한 도요타의 움직임에서도 이에 대한 고민을 읽을 수 있다. 도요타는 지난 2019 도쿄 모터쇼에서 LQ 콘셉트 카를 공개했다. LQ는 도요타가 CES 2017에서 공개한 자율주행 전동 모빌리티인 콘셉트-아이(Concept-i)의 2세대 버전으로, 이전보다 강력한 AI 시스템을 탑재한 게 특징이다. 도요타는 유이(Yui)라는 자사 AI 시스템이 탑승자의 감정과 의식에 기반해 개인화된 모빌리티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용자를 이해하는 둘도 없는 친구에 가깝다며, 이를 통해 정서적 유대감(emotional bond)까지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자율주행 시대의 탑승자는 여유 시간 동안 시스템과 감정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할 거라는 예측에서 나온 전략이다.





도요타의 비전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중국계 자동차 회사인 바이톤(Byton) 사례를 살펴보자. 바이톤은 첫 양산 모델인 M-바이트를 ‘삶을 위한 플랫폼(Platform for Life)’이라고 부르며 최적화된 콘텐츠 소비 환경을 제공하는 모빌리티라고 소개하고 있다. M-바이트는 SAE 레벨 3∼4수준의 자율주행기술이 탑재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전략의 배경에는 공유 경험 디스플레이(Shared Experience Display, SED)라는 이름의 48인치 곡면 디스플레이(curved display)가 있다. 48인치는 현재 양산 차에 적용된 디스플레이 중 가장 큰 사이즈다. 바이톤은 이를 통해 각종 주행 관련 정보는 물론 영화, 음악,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를 보다 직관적으로 소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바이톤은 콘텐츠 다각화를 위해 여러 기업과의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비디오 스트리밍과 게임 전문 업체인 비아컴 CBS다. 이 밖에 콘텐츠 플랫폼 업체인 액세스, 날씨 정보 제공 업체 아큐웨더, 클라우드 기반 음성 지원 업체 클라우드카, 여행 서비스 업체 로드 트래블 등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 제공사와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자동차는 그간 단순한 이동 수단에서 삶, 여가, 거주의 공간으로 탈바꿈해왔다. 자율주행은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할 것이다. 또한 이로 인해 자동차의 실내가 기존의 자동차와 같은 형태일 이유도 없어진다. 운전을 하지 않으니 운전석이 없어도 되고, 시트가 반드시 앞을 보고 있을 이유도 없다. 자동차 회사들이 실내 공간 구성과 그 공간을 채울 콘텐츠에 무게를 두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자율주행차는 승객에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이동의 경험을 전달할 것이다.

2. 실내 공간의 확장

전동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유럽연합(EU)은 당장 올해부터 제조사당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30g/㎞에서 95g/㎞로 27%를 낮추는 규제를 시행한다. 2030년에는 현재 새 기준보다 37.5%를 더 줄여야 한다. 영국과 네덜란드 등 몇몇 국가는 2040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를 아예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소규모 스포츠카 브랜드들마저 전동화에 동참하는 이유다. 당연히 대량 생산 브랜드들은 전기차 생산과 판매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전기차의 확대는 자동차 업계에 또 다른 변화도 가져온다. 바로 실내 공간의 확장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달리 엔진과 변속기가 없다. 전기 모터와 배터리가 들어가지만 구조가 훨씬 단순하다. 일본자동차부품공업협회에 따르면 전기차의 부품 수는 내연기관차의 3분의 2 수준이다. 내연기관차에 들어가는 부품이 약 3만 개니 약 1만1000개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인휠모터(in-wheel motor, 모터를 차 바퀴에 내장하는 방식)’와 같은 통합 전기 파워트레인과 운전대, 페달 등 운전과 관련된 각종 조작 장치가 필요 없는 완전 자율주행 기술이 구현되면 여유 공간은 더 늘어날 것이다. 참고로 부품이 줄어들면 차의 형태도 단순해진다. 엔진을 차체 앞쪽에 두는 지금의 형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물론, 디자인이 자연스레 실내 공간 확장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가 CES 2019에서 발표한 ‘스타일 세트 프리(Style Set Free)’가 바로 이런 흐름에 맞춘 전략이다. 스타일 세트 프리는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인테리어 부품, 하드웨어 기기, 상품 콘텐츠 등을 최적화할 수 있는 맞춤형 인테리어 솔루션으로, 자율주행이 가능한 전동화 모빌리티를 전제로 하고 있다. 자율주행 상황에서 자동차의 실내 공간이 개인화된 디지털 공간, 움직이는 사무실, 편안한 휴식 공간 등 다양한 형태로 구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것이다. 이런 설정의 배경에는 전동화 파워트레인의 단순한 구조가 있다. 배터리를 바닥에 깔고 바퀴를 차체 앞뒤 끝에 장착한 스케이트보드(skateboard) 플랫폼은 바닥이 고르고 확장이 쉽기 때문에 실내 공간을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해 소형 가전, 사무기기 등의 실내 하드웨어는 물론, 배터리와 전기 모터 등 동력계 부품까지 고객의 요구사항대로 구성할 수 있다는 게 바로 스타일 세트 프리 전략의 핵심이다.

현대차가 이번 CES에서 공개한 3대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중 하나인 목적 기반 모빌리티(Purpose Built Vehicle, PBV)도 스타일 세트 프리 전략을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셔틀이다. PBV의 내부 공간은 용도에 따라 카페, 푸드트럭, 약국 등으로 다양하게 변한다. 현대차는 내년까지 스케이트보드 형태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를 기반으로 한 첫 전용 전기차를 선보일 계획이며, 최근 PBV 제작을 위해 모듈형 스케이트보드 플랫폼 개발사인 카누(Canoo)와 상호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DBR mini box

모빌리티 시대를 대비해 구현된 최신 기술들

1. 자동차의 디바이스화, 무선 업데이트부터 게임까지

테슬라는 자율주행화와 전동화뿐만 아니라 차내 경험과 연관된 기술도 빠르게 도입하는 중이다. 대시보드 중앙의 대형 스크린을 활용한 게임 기능이 좋은 예다. 스티어링 휠과 페달을 게임 조작에 활용해 자동차 자체를 게임 콘솔로 만들었다는 점이 독특하다. 또한 테슬라는 각종 소프트웨어를 무선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기술(OTA,over-the-air)도 가장 먼저 도입했다. 덕분에 주행 관련 프로그램, 내비게이션 정보 등의 데이터를 항상 최신 버전으로 유지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내비게이션과 같은 간단한 업데이트에 이를 활용하고 있다.

2. 영역 확장에 나선 AI 음성 인식 기능

자동차에 AI와 클라우드 기술이 더해지면서 음성 인식 기능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해진 명령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자연어를 인식하고 온라인의 정보까지 활용하기 시작했다. “나 더워” 같은 말로 실내 온도를 낮출 수 있고, “내일 서울에서 선글라스가 필요할까?”라는 질문으로 해당 시점의 지역 날씨를 알아볼 수 있다. 참고로 음성 인식은 모빌리티의 개인화 서비스에 활용될 수도 있다. 사람의 목소리에는 생체학적으로 키, 성별, 연령대 등의 다양한 신체 정보가 담겨 있다. 기기 제어를 넘어 각종 맞춤형 서비스 제공에도 사용될 수 있는 뜻이다.

3. 자동차와 집을 연결하다

자동차 시스템의 온라인화로 인해 자동차와 집을 연결할 수 있게 됐다. 흔히 카투홈(Car-to-Home)이라고 부르며 집 안 조명을 비롯해 에어컨, 보일러, 스마트플러그(원격제어가 가능한 콘센트) 등을 차에서 조작할 수 있는 기능이다. IT 기업의 음성 비서 스피커를 통해 홈투카(Home-to-Car) 기능을 이용할 수 있게 한 브랜드는 많지만 카투홈 기능을 적용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현대차그룹과 포드 정도가 전부다. 아직 스마트홈 환경이 구축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BMW가 아마존과 손잡고 기술 개발을 완료하는 등 시장 개척을 위한 관련 업계의 움직임이 한창이다.






4. 자동차가 달리는 지갑이 되다

현금 없는 세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신용카드도, 스마트폰도 아닌 차량 내 결제 시스템(Car Pay) 이야기다. 최근 여러 자동차 회사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주요 기능으로 결제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최근 제네시스 GV80을 통해 차량 내 결제 시스템을 소개했다. 제네시스의 결제 시스템은 신용카드 정보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등록하는 방식으로, 연계된 주유소나 주차장에서 지갑을 꺼내지 않고도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 향후 패스트푸드, 커피 체인점, 전기차 충전 등 보다 생활에 밀접한 서비스로 결제 범위가 확대될 예정이다. 혼다도 글로벌 금융사인 비자와 손잡고 결제 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방식은 제네시스와 비슷하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미리 등록한 카드를 사용한다. BMW, 도요타, GM, 포드, 르노 등 5개 회사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결제 시스템 구축을 위해 글로벌 블록체인 컨소시엄인 MOBI(Mobility Open Blockchain Initiative)를 구성했다. 벤츠는 독자적으로 메르세데스-페이라는 차량 내 결제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3. 주행 특성 획일화

운전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시각과 청각을 이용해 주변 상황을 파악해야 하고, 이 정보들을 바탕으로 판단을 한 뒤, 조향 장치와 페달을 빠르고 정확하게 조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실수를 하면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생각에 신경까지 예민해진다. 자동차 회사들은 그동안 이 부분에서 경쟁력을 찾았다. 운전에서 편안함 또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 차별화를 꾀한 것이다. 하지만 자율주행으로 인해 이런 특성이 사라지게 된다. 운전대를 직접 잡을 일이 없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전동화 역시 주행 특성에서 오는 브랜드만의 개성을 옅어지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전기차는 기존의 내연기관이 아닌 전기 모터의 힘으로 달린다. 전기 모터는 내연기관에 비해 출력을 높이기가 쉽다. 신생 회사 테슬라가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들을 위협할 수 있는 이유다. 아울러 전기 모터는 출력을 내고 동력을 전달하는 과정이 단순하다. 따라서 주행 감성을 더할 수 있는 요소도 지극히 적다.

현대차가 개발 중인 ‘튠업(Tune-Up)’이 바로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한 기술이다. 튠업은 전기차의 성능 조정이 비교적 쉽다는 것을 활용한 새로운 개념의 차내 경험으로, 스마트폰을 이용해 전기 모터의 최대 토크, 응답성, 회생제동량, 최고 속도, 냉난방 에너지 등 전기차의 성능과 연관된 총 7가지 항목을 일정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동력 전달 과정에서 브랜드 특성을 강조하기 어려우니 성능과 관련된 항목을 취향에 맞게 설정하는 재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처럼 자율주행화와 전동화로 인해 자동차 회사들이 주행 부문에서 고유의 색깔을 강조하기가 어려워짐에 따라 차내 경험이 브랜드 특성을 대변하는 유일한 요소가 될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4. 자동차 이용 형태의 변화

자율주행이 상용화되면 자동차는 모빌리티 서비스의 하나로 편입될 가능성이 커진다. 안 그래도 소유에 부담이 큰 물건인데 자율주행으로 인해 원하는 때만 사용하기가 더 쉬워지기 때문이다. 차량 공유와 차량 호출의 구분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대부분 승객으로서 모빌리티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이동만 제공하는 모빌리티는 당연히 보편 타당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따라서 브랜드의 특성을 반영할 요소는 더 줄어든다. 현재 우리의 택시 이용 행태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택시를 탈 때 차의 안팎 디자인이나 성능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친절함, 청결함, 승차감, 편의 장비 정도만 따진다. 즉, 이동 과정이 얼마나 편안한지가 중요하다.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에도 이와 비슷한 기준이 적용될 것이다. 이동 중에 모빌리티 안에서 사용하게 될 시스템의 편의성, 실내 공간 구성 등 차내 경험이 해당 모빌리티와 서비스, 그리고 브랜드를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는 이야기다.

앞서 설명한 도요타의 AI 서비스 유이가 바로 이런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이다. 유이는 탑승자의 표정을 인식해 이를 데이터화하고, 탑승자의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 게시물과 대화 이력을 살펴 감정 상태를 파악한다. 탑승자의 선호와 필요를 파악한 뒤 이에 맞는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유이가 제공하는 경험은 주로 편안한 이동에 초점을 맞춘다. 스트레스나 피로감을 감지하면 가장 부담이 적은 경로를 설정하고 시트 각도를 바꾼 후 마사지를 제공하는 식이다. 실내 온도, 음악 재생, 조명 밝기 및 색상 등도 알아서 조정한다. 아울러 유이는 탑승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건네기도 한다. 탑승자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운전기사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자동차 부품 업체들의 현실적인 솔루션

자동차 회사들이 차내 경험을 브랜드의 비전으로 내세우자 주요 부품 업체도 이에 발맞춘 제품 또는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부품 업체의 솔루션은 가까운 미래, 또는 당장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부품 업체의 움직임에 근미래에 실현될 기술이 반영돼 있다는 이야기다.

콘티넨털은 CES 2020에서 3D 디스플레이와 몰입형 오디오 시스템을 선보였다. 정식 명칭은 차세대 내추럴 3D 디스플레이로, 운전석 중앙에서 사람과 차 사이의 상호 작용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특징은 3D 영상 구현을 위한 헤드트래커나 특수 안경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터치로 조작할 수 있으며 3차원 하이라이트와 같은 복합적인 조명 효과를 통해 편리하고 안전하게 정보를 전달한다. 콘티넨털은 협력사 레이아(Leia)와 손잡고 해당 기술을 4K 해상도로 중앙 콘솔 디스플레이에 구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콘티넨털은 스피커가 없는 오디오 시스템도 공개했다. 협력사 젠하이저의 앰비오3D(AMBEO 3D)와 자사의 액추에이티드 사운드(Ac2ated Sound) 시스템을 통합해 개발한 기술로, 차 안 특정 표면을 자극해 몰입감이 뛰어난 사운드를 제공한다. 콘티넨털은 이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으며 기존 오디오 시스템에 비해 무게와 공간을 최대 90%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모빌리티에서 실내 공간 극대화와 경량화가 지금보다 더 중요해질 것을 감안한 기술이다.

보쉬는 B2B 분야의 강자답게 이번 CES를 통해 모빌리티, 에너지, 빌딩, AI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보쉬는 1억 유로를 투자해 독일에 AI 캠퍼스를 설립하고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AI 전문가를 양성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2025년까지 모든 제품에 AI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보쉬가 이번에 공개한 버추얼 바이저가 바로 이런 전략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버추얼 바이저는 카메라와 연결된 투명 LCD 선바이저로 햇빛을 차단하는 기술이다. 기존의 선바이저와 달리 인텔리전트 알고리즘을 이용해 운전자 눈 부위로 향하는 햇빛만 지능적으로 차단한다. 참고로 이 기술은 보쉬의 3D 디스플레이와 함께 CES 2020 최고의 혁신상을 수상했다.

자율주행과 전동화로 인한 패러다임의 변화 중 눈여겨볼 것은 전통적인 IT 기업들의 진입이다. 차내 경험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5G 데이터 네트워크, 초고속 프로세서, 미디어 플랫폼 등 점점 더 고도화된 IT가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CES에서도 IT 기업들의 다양한 모빌리티 솔루션이 눈길을 끌었다.

삼성전자는 CES 2020에서 자회사 하만을 통해 모빌리티 전장 부문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삼성전자의 자동차용 프로세서인 ‘엑시노스 오토 V9’ 칩세트를 탑재한 디지털 콕핏 2020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디지털 콕핏 2020은 8개의 디스플레이와 8개의 카메라를 활용해 안전 운전 지원은 물론, 다양한 인포테인먼트 경험을 지원한다. 탑승자는 주행 중에도 고화질 콘텐츠와 고화질의 정밀 지도를 실시간으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고, 끊김 없이 화상회의를 하거나 스트리밍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또한 하만은 탑승자가 접근하면 모빌리티 설정을 해당 사용자에게 맞게 개인화하고, 잠금 장치를 해제하는 원포올(One for All) 솔루션과 전기차용 오디오 및 인포테인먼트 패키지인 EV 플러스 솔루션도 함께 선보였다.


미래 모빌리티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은 SK그룹은 이번 CES에서 SK이노베이션(에너지), SK텔레콤(통신, 미디어), SK하이닉스(반도체), SKC(소재) 등 4개 그룹사의 공동 부스를 차렸다. 모빌리티와 연관 있는 각 그룹사의 강점과 함께 SK그룹의 역량을 한 번에 드러내는 구성을 택한 것이다.

그중 차내 경험과 연관된 전시물은 SK텔레콤의 차량 내부 통합 인포테인먼트 IVI였다. IVI는 모바일 내비게이션 ‘T맵’, AI 음성 인식 ‘누구(NUGU)’, 음원 서비스 ‘플로(FLO)’,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웨이브(WAVVE)’, 주차장 검색 서비스 ‘T맵 주차’ 등 현재 SK텔레콤이 지원하는 다양한 모바일 앱을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 통합 시스템이다. 모바일 및 미디어 분야에서 활용하던 기술을 합쳐 모빌리티에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IT 기업들이 모빌리티를 스마트 디바이스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LG전자 역시 CES 2020에서 모빌리티 솔루션을 공개했다. LG전자는 리눅스 기반의 차량 인포테인먼트 플랫폼인 웹OS 오토(WebOS Auto)를 적용한 커넥티드 카를 전시하고, 집과 모빌리티의 매끈한 연결성이 보장되는 미래를 제시했다. 웹OS 오토는 여러 기기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멀티미디어 플랫폼이다. LG전자의 AI 플랫폼 씽큐(ThinQ)를 도입해 AI 가전제품에서 경험할 수 있던 편리함을 모빌리티 안으로 끌어오겠다는 것이다. 가령, 웹OS 오토를 통하면 집에서 TV로 보던 영상을 모빌리티 디스플레이로 옮겨서 볼 수 있다.

소니는 모바일산업박람회(Mobile World Congress, 이하 MWC) 2018에서 5G 커넥티드 콘셉트 카 SC-1을 선보인 바 있다. 당시 소니는 이를 ‘차량 형태의 IT 커넥티드 디바이스’로 소개했다. 모빌리티가 아닌 사람들의 이동을 돕는 모바일 기기라는 개념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니가 올해 CES에서 공개한 콘셉트 카 비전-S는 33개의 고성능 센서가 장착된 자율주행 모빌리티다. 이전보다 모빌리티 개념에 더 충실한 콘셉트 카로 영역 확장을 알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니가 직접 모빌리티를 제작할 의사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콘셉트 카는 일종의 카탈로그로 보면 된다. 참고로 소니 비전-S에는 제스처 컨트롤과 같이 직관적인 사용자인터페이스(UI)를 가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시트에 내장형 360 리얼리티 오디오(360 Reality Audio) 등이 들어간다. 또한 모빌리티 전장 부문 진출을 위해 그간 축적한 이미징 및 센싱 기술을 비롯해 AI, 통신, 클라우드 기술 등도 온보드(on-board) 소프트웨어로 통합 적용됐다.



차내 경험의 차별화, 브랜드 철학에서 나온다

무선 업데이트, AI 음성 인식, 카투홈, 카 페이 등 모빌리티 시대를 대비해 자동차 회사들이 현재 도입하고 있는 기술들이나 부품 업체들이 제시하는 솔루션은 대부분 전자 시스템으로 구현된다. 그러나 새로운 차내 경험은 이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테리어 디자인부터 구성, 소재, 외부와의 연결성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새로운 환경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 회사들이 다소 과장된 비전을 앞다퉈 선보이는 이유다. 미래의 소비자들은 자신이 어떤 브랜드의 모빌리티를 이용함으로써 어떤 환경에 놓이는가,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해 현재 구체적인 형태나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서 특별한 차내 경험이 필요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개인 디바이스로 여유 시간을 보내는 데 익숙하니, 이를 편히 사용할 수 있는 환경만 제공하면 된다는 논리다. 사실 메르세데스-벤츠가 상호작용(interaction)을 강조하며 AVTR를 ‘생명체’라고 표현하는 것에도 이런 논리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대중적인 자동차 브랜드는 언제든지 전략을 바꿔 수익을 낮추거나 플랫폼 제공업체로 돌아설 수 있지만, 특히 벤츠 같은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는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빌리티 시대를 앞두고 있는 지금, 럭셔리 브랜드의 가장 큰 숙제는 자동차 소유에 대한, 더 비싼 차를 구입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제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소비자의 욕구와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브랜드가 명확한 철학과 메시지를 확립하고 이를 제품에 반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자동차 회사들이 선보이는 콘셉트 카들이 서로 다른 시각으로, 서로 다른 차내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필자소개
류민 수석은 글로벌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MOTORTREND)’ 한국판 수석 에디터를 지냈다. 이세환 책임은 영국 ‘카(CAR)’ 매거진 한국판과 ‘기어박스(Gearbax)’ 등 자동차 전문지에서 콘텐츠를 제작했다. 최은주 선임은 매경닷컴, 오마이뉴스 등에서 완성차 뉴스를 담당했다. 디지털 기반 마케팅 전략 및 솔루션을 제공하는 크리에이티브 컨설팅 업체 프럼(www.frum.co.kr)은 2020년 6월 모빌리티저널(Mobility Journal)을 창간해 국내외 모빌리티 트렌드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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