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1. re:Store (리:스토어): 지속가능한 오프라인 채널 전략
“여기서 신어 보고 온라인으로 주문하세요”
매장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라
리테일 아포칼립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오프라인 중심 리테일러들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오프라인 채널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미래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다만 오프라인 채널의 존재 이유는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
1. 오프라인 채널은 RaaS 모델을 진화시켜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기술이 접목된 색다른 소비 경험과 브랜드의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2. 고급화된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에 스토리와 역사를 담아 고객에게 ‘힙’한 경험을 선사해야 한다.
3. 매장의 쇼룸화로 운영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고객 편의성을 높여야 한다.
첨단 기술이 리테일 영역에 들어오면서 오프라인 리테일의 종말을 의미하는 ‘리테일 아포칼립스(Retail Apocalypse)’라는 표현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만큼 오프라인 중심의 리테일러들의 위기감이 커졌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간과하고 있는 사실 중 하나는 오프라인 채널은 현재도, 미래에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본 글에서는 오프라인 매장의 위기, 역할, 그리고 새롭게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전략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Chapter 1은 끝났다
지난 몇 세기 동안 리테일은 ‘빅 박스 스토어(Big Box Stores)’로 대변됐다. 빅 박스 스토어란 매장 외형이 큰 박스형인 대형 리테일러를 일컫는 표현으로, 대규모 상품 셀렉션이 구비돼 있어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월마트의 비즈니스 모델이 리테일의 바이블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오프라인 매장의 심각한 위기설이 대두되며 지금까지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의문이 제시되는 한편 새로운 전략적 접근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미국에서는 2017년부터 2018년 초까지 토이저러스(Toys “R” Us)와 130년 역사를 가진 시어스(Sears)백화점 등이 파산하는 등 1만5000여 개의 매장이 문을 닫았다. 1
이런 상황은 크게 아마존을 중심으로 하는 온라인과 모바일 리테일의 성장, 이탈리(Eataly) 같은 트렌디한 푸드홀 중심 마켓의 확산, 알디와 트레이더 조 같은 하드 디스카운트(Hard discount)의 확장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다. 더구나 고객들의 요구는 더욱더 까다로워졌고, 밀레니얼과 Z세대 같은 젊은 소비자들의 브랜드 충성도는 이전 세대들보다 훨씬 낮다는 특성을 지닌다. 한국에서도 신선식품의 새벽배송 전쟁은 물론이고 참치 캔 하나, 음료수 한 개 등 초소량도 배달해주는 배달의민족의 B마트까지, 사방에서 오프라인 매장의 영역을 침범해오는 온라인과 모바일, 그리고 플랫폼 비즈니스가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굵직굵직한 브랜드들, 특히 오프라인 중심 기업의 고민이 커졌다. 결국 미국도 한국도 향후 10년을 책임질 새로운 패러다임, 그중에서도 오프라인 중심의 브랜드가 취해야 할 전략이 절실해진 것이다.
오프라인은 현재도, 미래에도 여전히 중요한 채널
오프라인 중심의 브랜드들이 위기에 처한 것은 사실이지만 리테일에서 오프라인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중요한 채널로 존재할 것이다. 국가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80∼90%의 매출이 오프라인에서 나온다. 미국의 경우 전체 리테일의 12% 정도를 온라인이 차지하고, 그 온라인 중의 40%를 아마존이 차지한다. 한편 아마존을 포함해 다양한 온라인 리테일러가 오프라인 매장을 열거나 매장 수를 늘리고 있다. 아마존은 오프라인 서점(아마존 북스), 4-스타 큐레이션(별점 5점 중 4점 이상만 받은 상품들로 구성된 큐레이션 매장), 홀푸즈마켓 인수 이외에도 2020년 상반기에 아마존 자체 슈퍼마켓을 오픈할 예정이다. 무인 매장 아마존고는 2022년까지 2000여 개를 넘길 계획이다. 그런가 하면 안경의 와비파커(Warby Parker), 매트리스의 캐스퍼(Casper), 남성복의 보노보스(Bonobos) 등 온라인 기반 스타트업들도 오프라인 소매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추세다. 스타벅스가 온라인에서 커피와 머그, 텀블러 같은 굿즈 판매를 중단한 것도 오프라인 소매 매장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고객 측면에서도 오프라인의 역할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밀레니얼 소비자들은 대기업 브랜드보다 로컬 색을 지닌 브랜드를 선호하고, 특히 Z세대도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 쇼핑을 즐겨한다고 한다.3 물론 그들이 하는 오프라인 쇼핑은 이전 세대들의 쇼핑과 다르다. 이전 세대들이 습관적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반면, Z세대는 쇼핑 자체에 몰입해서 물건을 경험해보고 동행과 사회적 교류(socialize)를 하기 위해 매장을 찾는다. 어떤 면에서는 디지털 디톡스(detox)의 목적으로 매장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Z세대들은 성수동처럼 공장을 개조해 낡고 거친 느낌의 인더스트리얼 스타일 매장처럼 ‘본인에게’ ‘힙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이전 세대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종합해보면, 오프라인이 위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리테일 비즈니스의 특성상 또한 인구·소비 세대의 변화를 고려할 때도 오프라인 매장은 앞으로도 중요한 쇼핑 채널로 존재할 것이다.
“그럼 오프라인 매장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필자의 저서 『리테일의 미래』가 출간되고 기업 강연과 인터뷰 중에서 들었던 질문 중에 가장 마음에 걸렸던 말이다. 그런데 비슷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마음 한편에 답답함이 느껴졌다. 우리나라 오프라인 매장의 특성상 백화점·일반 매장 상관없이 좁은 매장 공간에서 오프라인 특성을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답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만큼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문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현재의 위기가 꼭 오프라인 중심의 브랜드들이 변화와 혁신을 안 해서 생긴 것일까? 사실 다양한 양상으로 오프라인 매장들이 많은 투자와 혁신을 시도했고, 또 시도하는 중이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오프라인 매장들에게 닥친 위기감이 리테일 아포칼립스를 대변하는 것처럼 심각한 상황으로 느껴지는 것일까? 이유는 몇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붉은 여왕 이론(Red Queen’s Theory)4 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붉은 여왕 이론 또는 붉은 여왕 효과로 불리는 이 이론은 어떤 대상이 변화하더라도 주변의 환경이나 경쟁 대상도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뒤처지거나 제자리에 머물고 마는 현상을 말한다. 리테일 문맥에 적용하면 온·오프라인 리테일러 모두 변하고 있는데 오프라인 매장들의 변화가 온라인과 소비자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즉, 지금까지 한번도 마주하지 못한 리테일 생태계의 격변 속에서 치열한 경쟁에서의 변화의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늦기 때문에 파생된 결과가 지금 오프라인 매장들이 겪고 있는 위기가 아닐까. 또 혁신의 양상에서도 소비자들에게 매장을 찾아야 하는, 굳이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야 할 관련성과 이유를 제시하는 데 부족했던 건 아닐까. 바로 지금, 오프라인 매장들은 하루라도 빨리 전략적으로 소비자의 경험 측면에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생존 전략
전통적으로 오프라인 매장들은 다음의 몇 가지 혜택을 제공한다. 오프라인 매장은 상품을 직접 만져보고, 구입한 상품을 바로 가져갈 수 있고(instant gratification), 직원과의 상호 작용(interaction)이 가능하고, 지인들과 사회적 교류(socialize)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매장에 대한 시각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바라봐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리:스토어’해야 한다. 오프라인 매장에 방문해야 하는 이유들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고객들에게 온라인과는 차별화된 어떤 ‘가치(Value)’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전략이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크게 3가지 정도로 살펴보겠다.
1.맥킨지가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했다? Retail as a Service(RaaS)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RaaS란 용어는 리테일 업계에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앞으로는 어떤 식의 RaaS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매장을 만들어야 할까? 필자는 이제 단순히 공간을 제조사들의 전시장으로 이용하는 식의 RaaS보다 진화한 다양한 기술이 접목된 소비 경험을 제공해 소비자들을 매장으로 유입시키는 모델, 반면 브랜드는 고객 행동 데이터에 중점을 두고 브랜드의 큐레이션까지 담당하는 비즈니스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예로 맥킨지(McKinsey & Co)의 오프라인 매장을 살펴보자. 너무나 의아한 일이겠지만 포천지5 에 따르면 맥킨지는 2019년 9월 미국 미네소타에 있는 몰 오브 아메리카(Mall of America)에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했다. 이 매장의 이름은 모던 리테일 컬렉티브(Modern Retail Collective)이다. 약 3000평방피트(약 70평) 규모의 매장에서는 주얼리 브랜드 켄드라스콧(Kendra Scott), 속옷 브랜드 서드러브(Third Love), 엘레베코스메틱(Elevè Cosmetics) 등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이 갖춰져 있다.
맥킨지가 왜 이 매장을 론칭했을까? 맥킨지는 이 매장을 각종 기술과 브랜드 상품을 경험할 수 있는 리테일 랩(lab)으로 이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디지털 기반의 스타트업과 소형 브랜드 중심으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다양한 기술을 쇼핑에 접목했다. 켄드라스콧 주얼리의 경우 원석에 무선인식(RFID)칩이 심어져 있어 소비자들이 직접 다양한 원석과 프레임 중 원하는 디자인의 조합으로 맞춤형 팔찌를 선택하고, 증강 현실(AR)로 완성된 팔찌 모습을 구현할 수 있다.
천연 화장품 엘레베의 성분을 알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으로 NFC(근거리 무선통신) 패드를 터치하면 된다. 이런 기술들은 리테일넥스트(RetailNext), 지브라테크놀로지(Zebra Technologies),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같은 16개 테크 회사와의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운영되며, 입점 브랜드와 인테리어도 3∼4개월에 한 번씩 변화를 줄 예정이다. 즉, 매장에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소비자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데이터로 수집할 뿐 아니라 챗봇으로 소비자의 구입 동기 또는 왜 구입하지 않고 매장을 떠났는지 등 소비자 쇼핑 경험에 대한 정교한 통찰을 얻고 이를 쇼핑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 이용할 계획이다.
맥킨지의 접근 방법은 RaaS와 흡사하지만 리테일러뿐 아니라 컨설팅 회사처럼 소비자 인사이트를 얻기 위한 공간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
사실 RaaS의 시조라고 볼 수 있는 매장은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는 b8ta(베타)라는 리테일러다. 보통 기술의 시험 버전을 베타 버전이라고 부른 것에 착안해 지은 베타(b8ta) 매장에 가보면 스타트업들이 개발한 신기한 상품들을 만날 수 있다. 필자 역시 뉴욕 메이시스백화점에 입점한 베타 매장을 방문해 보니 작은 공간 안에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신기한 상품들이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한 경험이 있다. 이들이 시도한 비즈니스 모델이 바로 공간을 제조사들이 개발한 상품들을 전시하고 소비자들이 구경하게 함으로써 매장을 1) 소비자들에게는 신기한 테크 제품들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 2) 스타트업들에는 얻기 힘든 상품 전시 공간 등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장소로 이용한 것이다. RaaS의 전형적인 사례다.
RaaS는 미국 대형 전자제품 리테일러 베스트바이(Best Buy)가 인터넷의 성장과 쇼루밍(Showrooming)으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는 전략의 근간이 되기도 했다. 쇼루밍이란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매장을 인터넷에서 구경한 상품들을 실제로 확인해 보는 전시장으로 이용한 후 실제 구입은 저렴한 가격을 찾아 온라인, 특히 아마존에서 구입하는 행동을 말한다. 이로 인해 베스트바이 같은 리테일러의 매출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고심하던 베스트바이 경영진은 그들의 대형 매장 내에 애플과 삼성 등의 주요 제조사들에 제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제공하고, 제조사들에는 공간 사용에 대한 수수료를 받는 모델을 고안해 냈다. 미국 전역에 1026개의 매장에 6 자사 브랜드의 제품을 자유롭게 전시할 수 있으니 제조사들에도 이익이고, 베스트바이는 판매뿐 아니라 공간 사용료까지 받을 수 있고, 소비자들은 다른 전자제품 리테일러보다 다양한 제품을 볼 수 있는, 1석3조의 모델이 된 것이다. 이후 스마트홈 기기 등의 다양한 영역으로 RaaS도 확대했을 뿐 아니라 아마존 같은 온라인 리테일러 가격에 매치해준다는 프라이스매치(price match)로 소비자들에게 가격에 대한 위험 부담을 줄였다. 또 베스트바이의 기술 서비스 프로그램인 긱스쿼드(Geek Squad)를 인 홈 어드바이저(In-Home Advisor) 프로그램으로 확대하면서 소비자와의 관계 확립에 중점을 두는 다양한 전략으로 소비자들에게 환영을 받았고 이후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다.7 베스트바이가 ‘아마존 시대에 살아남는 법’의 예로 많은 기사에서 인용이 되는 이유다.
결국 공간의 사용에 대해, 특히 대형 매장 중심의 리테일러들은 RaaS를 보다 더 신선하게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맥킨지처럼 소형 사이즈의 랩 같은 콘셉트로 자사의 타깃 고객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은 후, 향상된 소비 경험을 제시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겠다.
2. ‘힙’한 느낌 강화하기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식사 후 커피와 디저트 장소를 찾던 중 단델리온 초콜릿(Dandelion Chocolate)이 눈에 띄었다. 들어가 보니 매장의 3분의 2가 마치 초콜릿 공장처럼 꾸며져 있고 실제 초콜릿이 그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테이블이 몇 개밖에 없어서 약간은 당황했는데 초콜릿 음료와 디저트를 주문한 후 기다리는 동안 그 공정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인더스트리얼(Industrial)’ 스타일 특유의 낡고 거친 느낌을 힙하게 변신시키는 힘을 느꼈다고나 할까. 상당히 인상적인 경험이라 나중에 찾아 보니 단델리온은 2010년에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의 한 창고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성공한 많은 스타트업이 창고에서 시작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단델리온은 부티크 초콜릿 브랜드라는 콘셉트로 창업하면서 오픈형 공장으로 고객들에게 초콜릿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인더스트리얼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다. 얼마 전에는 대형 매장으로 확장하면서 오픈형 매장의 대대적인 확장뿐 아니라 테이스팅 룸과 상품 판매 공간까지 확보했다고 한다. 8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은 19∼20세기 초반 미국과 유럽에서 유래한다. 산업이라는 인더스트리(Industry)라는 단어에서 짐작 가능하듯 근대 산업과 공업 느낌이 강조되면서 미국 대공황 시 버려지거나 방치된 건물들을 주거 공간으로 바꾸면서, 또는 예술가들이 작업실로 이용하면서 거친 느낌의 인테리어가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도 몇 년 전부터 성수동을 중심으로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이 ‘힙’한 스타일로 떠오르다가 뉴트로 콘셉트의 확산과 함께 붐을 이뤘다. 얼마 전 방문한 성수동 카페에서도 젊은이들이 이리저리 열이 안 맞는 좁은 테이블과 의자, 심지어 난간 같은 데에 앉아서 커피와 함께 ‘앙버터(버터 한 조각을 앙꼬와 함께 올려낸 빵)’를 먹고 있는 모습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었다.
왜 이렇게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 뜨게 된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도 대세의 한 흐름으로 자리 잡을까? 필자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핵심은 단순하면서도 기능에 충실한 낡고 거친 느낌이다. 공장에 있는 듯한 철근과 파이프들, 세월의 흔적을 담은 거친 느낌의 콘크리트벽과 벽돌 등의 요소를 노출해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을 구성한다.
그런데 앞으로 오프라인 매장에 도입돼야 할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은 조금은 더 고급화된 디자인이어야 한다.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는 예가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Starbucks Reserve Roastery)다. 필자는 시애틀, 뉴욕, 샌프란시스코의 리저브 매장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리저브 매장이었던 상하이 매장까지 연구차 방문했다. 상하이 리저브 매장에서는 커피 원두가 볶아지는 모습, 볶아진 원두가 원형 파이프를 타고 이동해 패키지에 담기는 모습은 물론 AR로 커피 원두의 역사도 볼 수 있다. 또 고급화된 커피 샘플, 증류 커피 등을 고객의 눈앞에서 ‘제조’해준다. 와인과 칵테일, 다양한 차, 빵과 샌드위치 등의 요깃거리까지 있고, 곳곳을 돌아다니는 직원들에게 커피에 관해 질문을 하면 열정과 전문성이 느껴지는 답변들을 들을 수 있다. 한 번 들어가면 2, 3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는 요술 같은 커피 공장이었다. 2019년 11월, 미국 시카고에 무려
5층짜리 리저브 매장이 세워지며 상하이 매장이 지녔던 세계 1위 타이틀은 시카고로 넘어갔다.
시카고 매장에선 전체 건물을 관통하는 오렌지색의 철제관이 매일 볶아지는 500파운드 이상의 커피 원두를 보관한다. 다양한 커피 바에서 커피 장인의 열정을 담은 커피 한 잔의 경험을 제공하도록 디자인돼 있고, 층마다 커피 바리스타, 서비스 직원, 다양한 호기심에 가득한 소비자들로 에너지가 넘친다. 특별 컨베이어벨트도 설치해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을 강조한다. 전체 3만5000평방피트 규모의 매장에서 강조하는 것이 ‘오감을 감싸 몰입시키는 고객 경험(Immersive Customer Experience)’이라고 한다. 9
많은 이가 리저브 매장을 매장의 고급화로 보지만 필자는 그것을 매장의 고급화된 공장화, 즉 고급화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으로 무장한 ‘힙’한 느낌의 매장이라고 생각한다. 커피의 역사와 최첨단 기술, 나만을 위한 독특한 수제 커피 한 잔을 인더스트리얼 공간에 잘 녹여낸 매장 말이다. 이렇게 스토리와 역사, 고급화된 인더스트리얼 스타일로 매장을 힙하게 만드는 전략은 젊은 소비자들뿐 아니라 다양한 소비자군에 어필할 수 있다. 그런데 주의할 점은 단순히 콘크리트 벽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스토리, 독특한 상품에 대한 경험이 중심이 돼야 하고, 여기에 세련된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을 입혀 힙한 느낌을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 α’로서 이용해야 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힙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의하자.
3. 매장의 쇼룸화로 운영 비용 줄이고 편의성 향상하기
중저가 패션 브랜드 에버레인(Everlane) 매장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신발을 구경하다가 직원한테 필자의 사이즈 신발을 가져다줄 것을 부탁하면서 다른 컬러도 있는지 물었다. 직원은 지금 매장에 있는 것은 화이트밖에 없는데 검정과 네이비 등 다양한 색은 온라인에서 볼 수 있다며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사이즈는 여기서 테스트해보시고 구입은 원하는 색으로 온라인에서 하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아니, 고객이 실제로 매장을 방문해서 신발을 신어보겠다는데 구입은 온라인에서 하세요 라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에버레인이 매장을 보는 시각이 굉장히 유연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장 그 매장의 매출에 연연하는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소비자가 브랜드 제품을 구입하게끔 유도하는 것. 소비자들과 만나는 접점에서 최고일 뿐 아니라 유연한 서비스로 브랜드에 호감을 느끼게 하고 자유로운 경험 쇼핑을 도와주는 것. 즉 매장을 소비자들과 만나는 접점이자 상품을 테스트하는 용도의 ‘쇼룸’으로 이용하는 시각이었다.
로시스(Rothy’s)도 비슷하게 매장을 이용한다. 로시스는 2012년에 창업해 2016년 재활용 페트병을 활용한 신발을 론칭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된 브랜드다. 샌프란시스코 매장을 방문해 보니 매장 규모가 약 23㎡(7평) 정도에 불과했다. 살인적인 렌트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운영 방식이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우선 그 작은 매장에 서너 명의 고객들만 입장시키기에 매장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 했다. 의도적으로 약간의 불편함을 특별함으로 제공하는 것이었다. 둘째, 소비자 한 명당 한 명씩 1대1로 배정되는 직원은 한 사람이 대여섯 개 모델을 신어본다고 해도 생긋 웃는 얼굴로 고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셋째, 에버레인처럼 온라인에 있는 모델 중 하나의 컬러만 대표적으로 전시해 놓았는데, 사이즈별로 신발의 느낌을 매장에서 테스트해보고 실제 구입은 원하는 컬러로 인터넷으로 하는 것을 추천하기도 한다. 직원들이 매장에서 태블릿으로 주문해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오랜 역사를 가진 프랑스 스포츠 브랜드 데카트론(Decathlon)의 미국 매장은 더 재미난 모델을 가지고 있다. 2018년 약 770㎡ 규모의 테스트 매장을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 오픈했다.10 이 매장을 방문해 보니 매장 내에 다양한 스포츠 기어와 직원들이 소비자들의 상품 설명과 테스트를 도와줌에도 매장 입구에는 온라인 시스템에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상품을 온라인에서 편하게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놓았다. 태블릿 화면에서 원하는 상품을 선택하면 상품 스펙과 비디오뿐 아니라 QR코드로 스캔해 스마트폰으로 바로 주문할 수 있게 한 것이다.11
왜 이런 모델이 점점 많아지는 것일까? 필자가 책과 강연에서 남성복 브랜드 보노보스를 언급할 때 설명하는 요소들이 있는데 바로 1) 매장을 쇼룸화하기 때문에 재고의 부담이 줄어들고 2) 매장 인력 절약이 되고 3) 소비자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 세 가지가 핵심이다. 리테일러들에게는 재고 부담과 인력 절약처럼 중요한 이점이 없다. 물론 상품을 직접 그 자리에서 구입해야 직성이 풀리는 소비자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매장에서 상품을 착용해보고 구입한 상품이 집으로 배송되면 무거운 쇼핑백들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편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사실 앞으로의 리테일에서 매장을 기존 역할에 한정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매장에서 직원이 자꾸 착용과 구입을 권유하는 것, 마치 집사처럼 따라다니는 직원들 때문에 오프라인 매장을 찾기 싫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비대면(untact)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것도 현실이다. 12 즉, 매장을 보는 시각을 좀 유연하게 가지고 오히려 자신 있게 쇼룸화하는 것이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매장 운영 면에서도 이익이 될 뿐 아니라 소비자들도 구입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덜 느낄 수 있는 반면 쇼핑 경험 자체에 집중할 수 있고 그런 쇼핑 환경을 편리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오히려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가 높아질 수 있음에 주목해 보자.
마치며
비즈니스 환경이 너무나도 빨리 변하고 있고 위기감이 팽배해 있는데 리테일러들이 해야 할 첫 번째 작업은 고객의 쇼핑에 대한 기대감이 바뀌었고 그들의 인식 자체가 달라졌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쿠팡과 마켓컬리면 충분하다는 소비자들을 직접 매장으로 불러오기 위해서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 이를 결정하고 실행시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고객의 시각에서 브랜드를 바라보고 고객 경험의 디자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들을 알아야 온라인을 제치고 매장을 찾을 이유가, 다양한 테크 제품을 실제로 경험(RaaS)하는 것이든,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을 통해 전달되는 경험 자체의 ‘힙’함이든, 구입에 대한 부담 없이 편하게 상품을 사용해볼 수 있는 편리함이든 말이다. 구체적인 구현 양상은 달라도 결국은 소비자들이 매장에 들어가고 싶고, 찾아가게 하는 동력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에 들어서며 더 심해질 경쟁에서 오프라인 중심의 리테일러들이 ‘리:스토어’를 통해 붉은 여왕의 영향에서 벗어나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필자소개 황지영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마케팅 전공 교수 jiyoung.hwang.retail@gmail.com
황지영 교수는 최신 글로벌 마케팅과 유통 트렌드의 흐름을 생생하게 포착하는 연구와 대중 강의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마케팅 교수 중 한 사람이다. 한양대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의류 브랜드에서 상품 기획 및 마케팅을 담당하다가 글로벌 리테일 비즈니스를 배우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국제유통학으로 석사,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소비자유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UNCG) 마케팅 전공 교수이며 2017-2018 UNCG 우수 강의, 2017 우수연구자 강의상 등을 받았다. 미국 리테일 체인을 대표하는 H마트뿐 아니라 국내 대형 유통기업을 대상으로 연수와 자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최근 『리테일의 미래(2019)』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