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ase Study: ‘당신 근처의 마켓’ 당근마켓
“동네 사람과 거래… 이웃 간 연결 핵심”
마켓에서 출발해 커뮤니티 부활시켜
284호 (2019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동네 사람끼리만 중고물품을 사고팔 수 있도록 한 동네 기반 서비스 당근마켓은 커머스 플랫폼이 아닌 하이퍼로컬(hyper-local) 콘텐츠 플랫폼을 지향하며 지역 커뮤니티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회사의 성장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 효과가 중요한 플랫폼 사업이지만 ‘거래’를 늘리는 데 급급하지 않고 동네 이웃 간 ‘연결’이라는 기본에 집중해 사용자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극대화했다.
2. 전국을 6500개 동네로 쪼개고 주민들의 접근만 허용함으로써 ‘신뢰’와 ‘평판’이 가지는 이점을 살렸다. 직거래를 주선하는 방식으로 판매자와 구매자 간 거래비용을 낮추고 사기 위험을 최소화했다.
3. 동네 소비자에게는 지역 ‘광고’도 ‘정보’가 될 수 있다고 판단, 40∼50대 소상공인도 단돈 만 원 단위로 손쉽게 동네 광고를 집행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현했다. 과거 교차로, 벼룩시장 등 생활 정보지의 기능을 온라인으로 옮겨 신규 수익 모델을 발굴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미라(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
‘우리 동네’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에 사는 주민 A에게 대치동은 ‘우리 동네’일까? 잠실이나 사당은? 객관적인 지표인 거리를 역삼동의 강남역 사거리에서 잰다면 사당역(직경 약 5.1㎞), 옥수역(5.8㎞), 잠실역(6.8㎞) 순으로 가깝다. 그러나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한강 너머 강북(江北)과의 심리적 거리, 강남(江南) 3구의 상징성, 지하철 노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A에겐 물리적으로 가장 멀리 있는 잠실이 가장 가깝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최근 중고 거래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고나라만큼이나 유명한 모바일 앱인 당근마켓은 바로 ‘우리 동네’ 사람끼리만 중고물품을 사고팔 수 있도록 한 위치(GPS) 기반 서비스다. 이름부터 ‘당신 근처의 마켓’의 준말이다. 인근 지역에 사는 주민들끼리 집 주변에서 직거래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게 서비스의 핵심이다. 얼핏 보면 동네를 인증한다는 것 외에 다른 중고 거래 웹/앱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최근 성장세만큼은 독보적이다. 육아 맘들의 입소문을 타고 2018년 1월 100만 명이었던 월간 순이용자(MAU) 수가 같은 해 12월 160만 명, 2019년 9월 350만 명으로 증가하며 가파른 J커브(J자 모양 급상승)를 그리고 있다.
월 거래액 500억 원, 누적 다운로드 수 800만 건을 돌파하며 업계 선두주자인 중고나라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 당근마켓. 그러나 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인 김용현 대표(42)와 김재현 대표(41)는 2015년 7월 처음 중고 거래를 전면에 내세운 스타트업을 설립하면서 “어떻게 하면 중고나라를 이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길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이용자 수와 쓸 만한 매물이 많아야 거래가 잘 성사되는 플랫폼 사업의 특성상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데 ‘거래’만 놓고 보면 전국 기반 플랫폼과 ‘게임이 안 된다’고 봤다. 승산 없는 싸움에 힘 빼기보다는 같은 동네 사람들을 ‘연결’한다는 기본 아이디어에 집중해야 한다고 믿었다.
동네 사람들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한 두 창업자는 우선 전국 지도부터 펼쳐 들었다. 그리고 손수 경계선을 그려가며 “우리 동네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를 물었다. 고민 끝에 차로 10분 이동하는 거리를 벗어나면 접근성이 너무 떨어진다고 판단, ‘최대 반경 6㎞’라는 원칙을 세운 뒤 전국을 동네 단위로 쪼개기 시작했다. 한강이나 남산처럼 직거래를 방해하는 큰 지형지물이 있으면 거리가 가깝더라도 과감히 동네를 구분했고, 지하철 등 대중교통까지 고려해 전국을 6500개 구역으로 잘게 나눴다.
다른 커머스 플랫폼들이 거래 범위를 더 넓히고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기 위해 혈안인 가운데, 왜 당근마켓은 안 그래도 좁은 한국 땅을 6500개로 조각낸 걸까. 이유는 분명하다. 회사가 중고 거래로 돈 벌 생각이 크게 없기 때문이다. 동네 주민들 사이의 중고물품 직거래를 주선할 뿐 중개 수수료를 받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고 거래를 끝이 아닌 시작으로 보고 있다는 게 당근마켓이 중고나라처럼 규모로 맞붙는 플랫폼들과 가장 차별화되는 점이다.
대신 두 창업자가 주목하는 시장은 로컬 콘텐츠다. 일찌감치 지역 중에서도 가장 작은 단위인 ‘하이퍼로컬(hyper-local)’의 가치에 매료된 이들은 당근마켓을 지역 사람들이 생산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장, 즉 콘텐츠 플랫폼으로 정의했다. 중고거래를 마을 벼룩시장과 장터처럼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콘텐츠의 하나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동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오프라인 만남, 거래, 커뮤니케이션을 온라인으로 옮기는 것을 회사의 궁극적인 비전으로 삼았다.
이 비전이 실현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다만 소프트뱅크벤처스, 카카오벤처스, 알토스벤처스 등 유수의 투자사는 지금까지 총 480억 원을 투자하며 당근마켓에 기대를 걸고 있다. 당근마켓의 O2O 비즈니스 잠재력과 동 단위로 세분화된 이용자 데이터베이스(DB)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과연 카카오, 네이버 등 대형 포털도 손대려다 번번이 실패한 지역 기반 서비스로 도전장을 내민 이 회사의 비전이 실현될 것인지, DBR이 당근마켓의 하이퍼로컬 플랫폼 전략을 살펴봤다.
카카오 플레이스의 실패, 지역 기반 비즈니스에 눈 뜨다
2012년 카카오에서 근무하던 김용현 대표는 당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직접 발족한 태스크포스(TF)에 손들고 합류했다. 그 무렵 김범수 의장은 특정 동네에 특화된 ‘타깃 서비스’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고, 근거리 위치 기반 서비스를 만들어 각종 지역 업체나 지역 이벤트 광고를 카카오톡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다는 구상을 직원들과 공유했다. 길바닥에 뒹굴고 있거나 아파트 벽보에 붙어 있는 각종 지역 헬스클럽, 피아노 학원, 미용실, 구인광고 전단지 등을 카카오톡 안에 펼쳐놓고 지역 주민들에게 노출시켜 보자는 아이디어였다. TF 이름부터 ‘롱테일(Long Tail)’이었다. 쓸모없어 보이는 잡다한 지역 정보, 소위 ‘지라시’도 온라인에 모이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이 만들어낸 프로젝트였다.
이 사업 아이템에 꽂혀 TF에 자원한 사람은 카카오 전체를 통틀어 김 대표 혼자였다. 입사 전부터 ‘친구의 맛집’ 등 동네 맛집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기획한 경험이 있는 김용현 대표는 지역 기반 서비스에 곧바로 흥미를 느꼈지만 대다수 직원은 아이디어에 회의적이거나 관심이 없었다. TF는 인력 모집부터 난항을 겪었다. 그러던 중 카카오가 ‘씽크리얼스’란 스타트업을 인수하면서 프로젝트는 급물살을 탔다. 이 업체 개발자들이 합류하면서 6명으로 구성된 작은 별동대의 구색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씽크리얼스는 소셜커머스 모음 사이트 ‘쿠폰모아’와 맛집 정보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리스트 잇’ 등을 운영하던 업체였는데 그 창업자가 바로 현재 당근마켓의 공동 대표인 김재현 대표였다.
“내가 기획했던 ‘친구의 맛집’과 비슷하게 지인들이 호평한 인근 맛집을 추천해주는 씽크리얼스의 서비스를 안 그래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런데 TF에 합류한 김재현 대표가 그 서비스를 개발한 주인공임을 알고 ‘운명’이라 느꼈다.” 김용현 대표의 말이다.
이 TF가 야심 차게 론칭한 서비스가 바로 ‘카카오 플레이스’다. 지역 광고 플랫폼을 내놓자며 시작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광고 전단지만 모아서는 콘텐츠로서의 매력이 떨어졌고, 아무도 안 볼 게 분명했다. 나중에 광고를 붙이더라도 일단 이용자의 관심을 끄는 게 우선이었다. 이에 방향을 틀어 다시 동네 맛집 리뷰 서비스로 돌아갔다. 카카오가 보유한 이용자 간 소셜 그래프를 바탕으로 친구들이 좋은 리뷰를 쓴 맛집이 화면에 자동 노출되도록 한 것이다. 성공을 확신한 이들은 장장 8개월간 각종 스펙으로 무장한 서비스를 준비해 2013년 5월 세상에 내놨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카카오프렌즈 이모티콘을 배포한 덕분에 불과 일주일 만에 다운로드 수가 200만 건에 달했지만 그다음 주에 5000건으로 수직 낙하했다. 하루 실사용자(DAU)가 5000건밖에 안 나오자 카카오는 프로젝트를 실패로 규정하고 TF를 해체했다. 앞서 출시된 카카오스토리가 일주일 만에 1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음을 감안하면 사업 아이템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공을 의심치 않았던 서비스가 시장에서 외면받는 것을 본 이들은 실패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진단했다. 첫째, 사람들이 맛집을 찾는 빈도가 생각만큼 잦지 않았다. 지역 광고 플랫폼으로 자리 잡으려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처럼 사용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들어가 구경하는 서비스가 돼야 하는데 맛집을 찾아가는 건 한 달에 두어 번 저녁 모임이 있을 때가 전부였다. 둘째, 서비스 준비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가볍게 시장 반응을 테스트해본 게 아니라 8개월간 각종 기능을 탑재해 무겁게 내놓았기 때문에 실패 비용이 훨씬 커졌다. 사용자 니즈를 확인하기도 전에 상상만으로 대박이 날 것이라 짐작한 게 패착이었다. 카카오 플레이스의 실패에서 김용현 대표와 김재현 대표는 1) 체류 시간이 길고, 방문 빈도가 높은 서비스를 2) 최대한 빨리 가볍게 내놓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보는 재미, 중고 거래의 ‘콘텐츠 매력’에 주목
체류 시간이 길고, 방문 빈도가 높고, 빨리 선보일 수 있는 서비스를 고민하던 이들은 당시 카카오 직원들이 회사 인트라넷에 있는 중고 거래 게시판을 이용하는 것을 보면서 힌트를 얻었다. 직원들이 하루에도 5∼10번씩 게시판에 들락날락하면서 어떤 매물이 나왔는지 확인하고 ‘새로 고침’하는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카카오 직원 150명만 쓰는 게시판에 불과했지만 이 사내 장터에 스마트폰, 게임기 등 중고 디지털 기기를 올리면 10분이 채 안 돼 팔려나갔다.
사내 장터의 인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 거래가 편했다. 회사 사람들끼리 출근하면서 물건을 주고받으면 되니 접근성이 탁월했고, 번거롭게 박스에 담아 택배로 부칠 필요가 없었다. 둘째, 게시글을 쓸 때 본인 이름을 밝히기 때문에 돈 떼일 염려가 없었다. 보통 모르는 사람끼리 거래할 때 가장 걱정되는 게 사기나 불량의 위험인데 회사라는 비교적 믿을 수 있는 동질적인 집단의 일원이다 보니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셋째, 가격이 저렴했다. 직원들이 사내 평판을 생각해 바가지를 씌우거나 굳이 비싸게 팔기보다는 시가보다 20∼30% 싸게 내놓았고, 덕분에 ‘쿨매(저렴하고 좋은 조건의 매물)’가 많았다.
직원들이 이 쿨매를 낚아채고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져드는 것을 보면서 김용현 대표와 김재현 대표는 중고 거래가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가성비 좋은 매물을 놓치지 않으려면 수시로 게시판을 모니터링해야 하기 때문이다. 꼭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는 마을 벼룩시장처럼 목적 없이 지나가다 들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보는 재미’, 즉 중독성 있는 콘텐츠로서 중고 거래의 매력을 발견한 셈이다.
“현재 당근마켓 사용자 한 명이 하루에 평균적으로 앱에 머무는 시간이 18∼20분이다. 일반 쇼핑 앱보다 약 2∼3배 길다. 어떤 좋은 조건의 물건이 올라오는지가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 같다. 특히 남성들은 필요한 디지털 기기 등만 딱 검색해서 사지만 여성들은 육아용품이나 패션, 잡화 등 아이쇼핑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디지털 광고회사 인크로스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당근마켓의 월평균 체류 시간은 264.1분으로 위메프, 옥션, G마켓 등 덩치 큰 플랫폼을 제치고 커머스 앱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중고 거래에서 기회를 포착한 김용현 대표와 김재현 대표는 카카오를 나와 좁은 지역에서부터 사업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TF 해체와 카카오-다음 합병 이후 커진 조직에서 흥미를 잃고 방황하던 때였다. 네이버에서 약 7년간 지역 검색 서비스를 담당하던 현 정창훈 CTO도 함께 뜻을 모아 2015년 7월 ‘판교장터’란 회사를 차렸다. 카카오 사내 중고 거래 게시판의 확장판이었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에 근무하는 회사들이 대상이었다. 판교는 가로 700m, 세로 400m의 좁은 동네지만 비슷비슷한 IT 회사가 밀집해 있고 디지털 용품 등에 대한 관심사를 공유하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카카오 플레이스 실패의 교훈을 되새겨 단 2주 만에 개발을 끝마치고 게시판 하나와 댓글 쓰기, 달랑 두 가지 기능만 갖춘 최소한의 서비스를 출시했다.
물론 서비스를 개시하자마자 처음부터 반응이 뜨거웠던 건 아니었다. 지인들에게 앱을 깔아달라고도 해보고, 중고물품을 양도받아 올리기도 했다. 온종일 판교 소재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전단지를 붙이고 드론에 현수막을 매달아 한 달간 판교역과 테크노밸리 사이 출퇴근길 하늘에 띄운 적도 있었다. 판교 인근 카페 사장님에게 사정해 할인 쿠폰 100장을 받고 앱을 다운로드한 신규 고객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구글, 페이스북에 광고할 돈도 없었고, 발로 뛰는 게 좁은 지역에서 서비스를 선전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마케팅 수단이었다. 고생한다고 효과가 딱히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아파트 단지 전체에 전단지를 돌려봤자 기껏해야 200명, 드론을 띄워도 2명 남짓 가입자가 늘었다.
“몸으로 부딪치는 동안 지역 업체가 광고를 할 만한 플랫폼이 정말 없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오히려 이 경험을 통해 지역 소상공인들이 동 단위로 광고할 수 있는 플랫폼을 꼭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다졌다” 김용현 대표의 말이다.
다행히 판교 내 회사들을 대상으로 영업한 결과 주간 사용자가 1000∼2000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확장성’이었다. 판교처럼 비슷한 업종의 회사가 밀집해 있는 구역이 많지 않았고 가산디지털단지 등을 포함해봤자 총인구 100만 명에도 못 미치는 협소한 시장이었다. 게다가 신분 확인을 위해 회원 가입 인증 시 회사 도메인을 쓰게 했는데 이런 도메인을 보유한 직장인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회사 e메일 주소를 기재해야 하는데 중소기업의 경우 직원들이 회사 메일이 아닌 지메일, 네이버, 한메일 등 계정을 쓰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 “내 남편이 판교장터를 쓰는데 나도 거래하게 해달라”는 회원 아내들의 요청이 하나둘 접수됐다. 분당구 백현동, 상평동, 운중동에서 이런 문의가 적지만 꾸준히 이어졌다. 확장 경로를 모색하던 두 대표는 동네 주민들에게도 참여 기회를 줘보기로 했다. 가입 방식을 회사 메일 기반에서 휴대폰 번호 기반으로 바꾸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동네만 인증하면 누구나 중고물품을 사고팔 수 있도록 했다. 말 그대로 ‘판교장터’를 판교 지역 주민 전체에게 열었다.
주부들이 활동하기 시작하자 조용하던 앱이 들썩였다. 판교 맘카페에 소개 글 하나가 올라가고 단 이틀 만에 700명이 가입했을 정도였다. 중고 육아용품과 장난감을 찾는 맘들이 동네 물품에 관심을 보였고, 그 활동량은 회사 다니는 직장인의 10배를 능가했다. 김용현 대표는 “이때 중고 거래의 핵심 주체가 직장인이 아닌 집에 있는 주부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타깃 유저를 ‘아이를 키우는 3040 여성’으로 바꾸고 동네 기반으로 본격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회사는 2015년 10월을 기점으로 판교를 넘어 주거지역인 분당구로 진출했고 회사 이름도 판교장터에서 당근마켓으로 바꿨다.
DBR mini box I: 인공지능(AI) 활용한 신뢰 제고 동네 기반 서비스의 강점이 ‘신뢰’인 만큼 당근마켓은 신뢰를 저해하는 요인들을 원천 배제하기 위해 인공지능(AI)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선량한 이웃 간 거래’라는 정체성이 훼손되지 않으려면 전문 판매업자의 도배 글이나 모조품 등을 걸러내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 특성상 사람이 일일이 신고를 접수해 걸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당근마켓은 이 문제를 ‘기술’로 극복했다. 머신러닝을 적용해 AI가 사람 대신 전문 판매 업자가 올린 글이나 가품(짝퉁), 동물, 주류, 담배 등 금지 물품을 판별하도록 했다. AI는 업자들이 자주 올리는 글이나 사진 등 데이터 패턴을 학습해 업자일 확률을 1.0(100%), 0.9(90%) 등으로 알려준다. ‘새 상품’ ‘재고’ ‘구합니다’ ‘#’ 등 자주 쓰이는 용어나 기호, 이모티콘의 특징을 토대로 분석을 진행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루이비통 A급 15만 원에 팝니다’ 등 명품 매물이 나와도 AI가 사진과 글, 가격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가품일 확률을 제시한다. “AI는 고정된 규칙을 따르는 게 아니라 수만 개 사진과 글을 학습하면서 성격이 유사한 게시물을 걸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업자들의 수법이 교묘해지더라도 충분히 잡아낼 수 있다. 매주 올라오는 82만 건에 달하는 게시물을 사람이 일일이 판단해 처리하려면 고객만족(CS) 인력이 적어도 100명은 필요할 텐데 이 업무를 AI가 대체해준 덕분에 단 1명이 일을 처리하고 있다. 기계에 오류가 없는지만 점검하면 된다.” (김용현 대표) 동일 유저를 추정하는 알고리즘도 개발했다. 이 알고리즘은 사기꾼 한 명이 계정 수십∼수백 개를 가지고 활동하는 것을 원천 차단한다. 가령, A라는 계정으로 사기를 친 뒤 B 계정으로 접속하는 유저를 찾아내 자동으로 이용을 정지시켜버리는 것이다. 경찰청 사이트 DB와 연계해 소위 사기꾼들의 휴대폰 번호나 계좌번호로 거래를 시도하면 접근을 막는다. AI가 사람보다 나은 점은 ‘스피드’에 있다. 머신은 사기 등 부정 게시물이 올라오는 순간 1∼2초 안에 판단해 노출을 중단시킨다. 이와 달리 사람은 보통 신고를 받아 처리하기까지 3일이 걸리는데 그 잠깐 사이에 회복할 수 없는 사기 피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발 빠른 대응으로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예방한다는 게 AI의 힘이다. |
평판 효과, 신뢰 기반으로 낮춘 거래 비용
“세상 참 좁다.”
이 말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날지 모르니 다른 사람들에게 예의를 지키고 처신을 똑바로 해야 한다는 함의를 내포한다. 인터넷이 전 세계를 하나로 잇고 물리적인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는 지금, 당근마켓은 온라인 공간에 칸막이를 세움으로써 ‘좁은 세상’을 구현했다. 그리고 온라인 플랫폼의 특징인 익명성을 없앤 대신 ‘신뢰’와 ‘평판 효과’ 1 를 극대화했다.
당근마켓이 회사 이름을 걸고 쓰던 서비스에서 ‘동네’를 아이덴티티로 내건 서비스로 바뀌었지만 지리적으로 인접한 장소 기반이라는 점은 변치 않았다. 당근마켓의 차별점이 접근성을 바탕으로 한 이웃 간 ‘직거래’에 있기 때문이다. 중고나라, 번개장터 같은 전국 단위 플랫폼에서 물품을 사고팔려면 택배 배송은 필수다. 직접 물건을 건네고 싶어도 구매자가 판매자와 가까이 산다는 보장도 없고 동네 물건만 따로 분류해 볼 수도 없다. 반면 당근마켓에서 물건을 사면 같은 동네이기 때문에 육아용품, 가구처럼 크기가 큰 물품도 집 앞에서 쉽게 주고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당근마켓은 직거래 방식으로 여타 플랫폼이 골머리를 앓는 판매자와 구매자 간 ‘신뢰’ 문제를 해결했다. 당근마켓 이용자들의 경우 연락처나 집 주소 등을 공개하지 않아도 근처에서 거래 당사자 얼굴을 직접 보고 물건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고거래의 가장 큰 위험인 사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실제로 당근마켓에 따르면 전체 거래액의 10%는 이미 한 번 만났던 사람들끼리의 재거래다. 그만큼 사람들이 사기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생판 모르는 남’보다는 한 번이라도 만난 적 있는 ‘아는 사람’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이는 보통 전국 단위의 플랫폼에서 거래자가 재회할 확률이 거의 없는 것과 대비된다.
또 이같이 거래 당사자끼리 언제든 마주칠 수 있어 구조적으로 평판에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동네에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는 사람들인 만큼 서로 매너를 지키게 되고, 피드백 하나하나도 더 무겁게 느낄 수밖에 없다. 비매너 행동이나 물품의 하자를 속이는 일도 적은 편이다. 김용현 대표는 “거래를 하고 나면 후기를 쓰게 돼 있는데 부정적 후기의 비율이 0.7%로 1%가 채 안 된다. 다른 플랫폼과 비교는 힘들지만 99.3%가 긍정 후기라는 점으로 미뤄볼 때 사기 치기 힘든 구조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당근마켓은 이 같은 신뢰를 기반으로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을 낮춤으로써 기존 플랫폼과는 또 다른 시장 수요를 유발했다. 거래비용이란 거래 상대방을 탐색하는 비용, 거래 상대방과 협상하는 비용, 거래가 이뤄진 후 거래 내용을 실제 이행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믿을 수 있는 이웃들로 구성된 당근마켓의 커뮤니티는 탐색 및 거래 이행과 관련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한정된 지역에서 ‘연결’이 가지는 가치를 다시금 확인시켰다.
당근마켓에 따르면 거래 가격도 일반 중고 거래 플랫폼보다 약 30%가량 낮다.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품목을 정해놓고 다른 플랫폼과 일일이 비교 계산해본 결과라고 한다. “아무리 필요 없는 장난감이라 해도 우리 애가 쓰던 물건이 이상한 사람에게 가거나 버려지느니 누군가 잘 써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지 않나. 계속 가지고 있어봤자 쓰레기가 되는데 친근한 동네 아이에게 주고 잘 쓰는 걸 볼 때 느끼는 심리적 만족감과 뿌듯함이 분명 있다. 그렇기에 무료 나눔도 하고, 장터에서 가격을 굳이 높게 받으려 하지 않는다.” 김용현 대표의 말이다.
이용자의 신뢰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UX/UI를 만드는 데도 공을 들였다. ‘매너 온도’ 기능이 대표적이다. 이 기능은 거래 상대방이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평판을 보여준다. 국내 음원 사이트 ‘멜론’에서 스타와 팬 사이의 친밀도를 온도계의 눈금으로 표시한 것을 벤치마킹한 이 매너 온도는 거래자가 얼마나 신뢰할 만한지를 섭씨 0∼99도 계기판 위에 표시한다. 이 온도는 사람의 체온인 36.5도에서 출발해 좋은 평가를 받을 때마다 0.1도씩 올라가고, 거래 후기와 평가, 경고 및 징계, 신고 건수 등에 따라 오르내린다. 최근 1년 동안의 후기만 반영되며 평가 시점과 평가자에 따른 가중치도 다르게 부여된다.
“최신 평가에 무게를 두기 때문에 1년이 지난 평가는 온도에 반영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과거에 매너가 좋았다 해서 지금도 좋다는 보장이 없고, 과거에 나빴다가도 지금은 뉘우치고 나아졌을 수도 있지 않나. 또 거래를 안 하면 자연히 매너 온도가 서서히 떨어지기 때문에 계속 활동할 유인을 주려는 의도도 있다. 마찬가지로 매너가 나쁜 구매자가 무작위로 판매자에게 퍼붓는 비방을 그대로 반영해 평판을 깎을 수는 없기에 평가자에 따라서도 가중치를 달리한다. 사람들이 확실히 매너 온도가 높은 사람을 선호하는 것 같고, 이 온도를 99도까지 올리는 재미에 빠진 사람들도 있다.” (김용현 대표)
정확한 평판이 신뢰로 이어지는 만큼 매너 온도의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공을 들였다. 고객들의 깨알 같은 피드백들을 반영해 매너 온도가 신뢰 수준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가령, 일부 고객들이 거래 후 비매너 평가를 하고 싶어도 상대가 바로 알아챌까 부담이 돼 솔직한 평가를 망설이게 된다고 토로하자, 비매너 평가는 당사자에게 바로 노출하지 않기로 했다. 같은 항목에 대해 여러 사람의 평가가 누적됐을 때 비로소 당사자에게도 알리고 매너 온도를 낮추기로 한 것이다. 평가자의 신원이 특정되지 않게 하려는 조치였다.
그리고 거래 당사자들이 약속을 잘 지키게끔 ‘너지(nudge)’를 줬다. 채팅창에서 서로 만남의 시간을 논의하면, 이를 인식해 알람을 설정해주고 거래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알려주는 식이다. 약속을 어길 경우 제재도 가했다. 다만 과거에는 일괄적으로 ‘약속시간을 2회 어기면 경고, 3회 어기면 징계’ 이런 식의 규칙을 뒀지만 이제는 참작 사유가 있을 경우 유동적으로 징계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가령, 한 달에 300번 거래하다 2번 정도 실수로 거래시간을 깜박한 헤비유저와 2번 거래하는 데 2번 다 약속을 어긴 사람을 동일 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최대 반경 6㎞, 땅따먹기 마케팅으로 영토 확장
당근마켓이 ‘최대 반경 6㎞’를 기준으로 산, 강 등을 피해서 동네를 나눴을 때 주변에서는 이처럼 거래 범위를 제한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며 만류했다. 무엇보다 물량 확보가 관건이었다. 가령, 중고나라에서 중고 아이폰을 찾으면 매물 200개가 검색되는데 당근마켓은 신생 플랫폼이니까 10개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물량이 적은 마당에 같은 동네 주민끼리만 매물을 볼 수 있게 지역을 쪼개놓으면 검색이 하나도 안 될 수도 있는 터였다. 거래 자체가 성사되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이 때문에 지역 기반 서비스는 말도 안 된다며 말리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고 김용현 대표는 회고했다.
회사 직원끼리도 과연 거래 지역을 좁히는 게 맞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뒤늦게라도 지역을 6㎞보다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동네 제한을 푸는 순간 거래액은 쉽게 늘어나고 몸집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래’보다는 동네 ‘연결’에 집중하려는 회사의 비전을 포기하는 순간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더 우세했다. 오히려 가능한 한 지역을 더 좁혀야 한다는 게 창업자들의 신념이었다. 단, 현실적으로 인구 밀도가 낮은 지방의 경우 최대 15㎞까지 같은 동네로 묶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았다. 지방에서까지 6㎞ 기준을 고집하면 인구밀도가 너무 낮아 거래가 촉발되는 데 필요한 임계치 도달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국이 6500개로 쪼개지면서 동네를 하나하나씩 개척하기까지 마케팅 여정도 험난했다. 이제는 정읍, 속초, 통영 정도를 제외하면 전국에서 당근마켓을 활용한 거래가 활발히 펼쳐지고 있지만 동네별로 침투해 거래를 활성화하기까지 1년 반∼2년 걸리는 곳도 부지기수였다. 전국 단위 플랫폼에서는 판매자가 부산에 있고, 구매자가 대구에 있어도 서로 매칭이 된다. 그러나 지역 기반 플랫폼은 다르다. 부산 커뮤니티에서 거래가 일어나봤자 대구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김용현 대표는 “도시마다 한 땀 한 땀 다 노력을 해야 한다. 이번 달 부산에서 서비스를 개시하고 구글, 페이스북에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었더라도 다음 달 대구에서 서비스를 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커뮤니티 안에서 입소문이 나고, 돈을 안 쓰고도 사용자가 자연 유입될 때까지 계속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지난달에만 전국 52만 명의 가입자가 마케팅 없이 당근마켓으로 자연 유입되고 있지만 이렇게 전국에서 거래가 발생하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
육아용품을 활발히 거래하는 맘카페가 있는 곳들은 그나마 수월했다. 물꼬가 빨리 터진 부천시나 분당구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주부들이 많이 사는 곳, 특히 신도시에서는 한 번 맘들의 마음을 얻고 입소문을 타면 쉽사리 거래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주거지역이라고 해도 송파구처럼 맘카페 운영 정책과 승급 기준이 까다로워 홍보 글을 쉽게 못 올리는 지역들이라든지, 관악구처럼 1인 가구가 많고 주부가 적은 지역들의 경우 시장 진입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경기도 수원처럼 인구가 빼곡히 밀집해 있어 잘될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어렵사리 뚫은 지역도 있고, 강원도 원주처럼 뜻밖에도 빠르게 성장해 주간 방문자 수가 3만5000명에 이르는 지역도 있다.
이렇게 높은 진입 장벽과 싸우면서도 당근마켓은 거리 제한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비스가 궤도에 안착하면 범위를 2㎞ 내외로 더 좁힐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당근마켓의 사용자 한 사람이 하루 평균 보는 게시글의 수는 450개다. 전체 주간 게시물 수는 2016년 약 8000개에서 현재 82만 개로 100배나 늘었지만 사람이 하루에 볼 수 있는 양은 450개에서 크게 변한 적이 없다. 아무리 자주 구경하는 사람도 최대치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지금 분당구 등 거래가 활발한 지역들의 경우 일주일에 게시글이 3만 개, 하루 평균 약 4300개씩 올라온다. 하루에 볼 수 있는 양보다 게시글이 10배 이상 많다는 것은 범위를 더 좁히는 것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진짜 동네 생활 플랫폼이 되려면 반경 6km도 너무 넓다.” (김용현 대표)
“단돈 만 원에 광고”동네 지라시의 롱테일 효과
‘성남시 백현동, 판교동/ 예상 광고 도달 수 1990∼2980명/ 7일간 예상 광고비 2만4830원’중고 거래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 당근마켓은 처음 의도대로 지역 광고 플랫폼을 만들어보겠다는 구상을 실행에 옮겼다. 포털에 광고할 여력이 없는 소상공인들에게 분명 미충족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2018년 1월부터 앱에 지역 광고를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이런 지역 업체나 구인광고 수요는 벼룩시장, 교차로 등 생활 정보지나 메트로 같은 무가지가 수행하던 역할이었다. 그러나 점점 오프라인 매체의 영향력이 줄고 사람들의 시선이 물리적 경계가 없는 온라인 세계로 옮겨가면서 지역 특화형 광고가 종적을 감췄다.
온라인에서 지역 간 경계를 부활시킨 당근마켓은 바로 이 공백에서 새로운 수익 창출 기회를 떠올렸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적합한 온라인 매체가 없어졌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에 김용현 대표와 김재현 대표는 지역 소상공인이 단돈 만 원으로도 마치 중고물품 글을 올리듯 직접 지역 광고 글을 게시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그리고 40∼50대 자영업자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UX/UI를 단순화했다. 군더더기는 모두 빼고 광고를 노출하고 싶은 동네와 노출 기간, 두 가지 사항만 체크하면 자동으로 예상 광고 도달 수와 광고비가 뜨도록 한 것이다. 카드를 등록해놓고 결제만 하면 광고가 즉시 앱에 노출된다.
김용현 대표는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택시를 호출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근마켓에서 광고를 집행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편리한 UX/UI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대다수 소상공인이 40∼50대 아줌마나 아저씨들인데 이분들도 카카오택시는 부를 수 있지 않나. 이분들은 페이스북이나 구글, 포털에 광고하고 싶어도 어려워서 손조차 못 댄다. 페이스북도 1㎞ 단위로 광고할 수 있게 해주지만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CPA(판매액 기준 과금)인지, CPM(노출 기준 과금)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가 많고 절차가 복잡해 잘 못 쓰는 것이다. 그러나 ‘광고비가 일주일에 한 동네당 얼마다’ ‘몇 명이 광고 봤다’ 이렇게 알려주면 곧바로 그 의미를 안다. 이렇게 누구나 당근마켓 광고주센터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난이도를 낮추는 데 힘썼다”고 말했다. 광고 영업 인력도 따로 두지 않는다. 일주일에 몇만 원인 광고비를 벌기 위해 일일이 동네 가게들을 찾아가 봤자 알바생들만 있어 사장을 만나기도 어렵고 가까스로 사장님을 만나도 잡상인 취급받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에 당근마켓은 인건비도 안 나오는 광고 영업을 뛰기보다는 사장 스스로 원할 때 쓸 수 있고, 3분 만에 광고 결제까지 끝낼 수 있는 앱을 만들었다.
당근마켓에서 동네 1곳에 일주일(7일)간 광고할 때 드는 돈은 만 원 안팎. 동네별 방문자 수에 따라 가격은 조금 다르다. 같은 성남시라도 주간 방문자 수가 많은 판교동(1328명)이나 백현동(1155명)에 광고를 내보내려면 테크노밸리(317명)에 내보낼 때보다는 조금 더 내야 한다. 이처럼 동네마다 다르긴 하지만 현재 광고주들이 당근마켓에서 평균적으로 집행하는 광고비는 일주일에 약 7만 원 정도다.
김용현 대표와 김재현 대표는 이런 서비스가 소액으로 광고하려는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지역민들에게도 유용할 수 있다고 봤다. 양쪽 모두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주민들에겐 지역 광고도 ‘정보’의 하나로 인식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가령, 동네 네일케어 숍 또는 미용실 오픈이나 할인 프로모션, 이벤트 소식이 다른 동네 사람에게는 의미 없는 소음일 뿐이지만 동네 주민에게는 알짜 생활 팁이 될 수 있다. 아직까지는 참여하는 광고주가 제한적이고 동네 업체 정보가 별로 없지만 당근마켓이 마케팅 플랫폼으로 정착되면 지역 상권 데이터도 더 의미 있는 정보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이렇게 2018년 1월부터 시작된 지역 광고 매출은 꾸준히 늘어 지난 1년9개월간 약 24배 뛰었다. 동네 학원, 헬스클럽, 과외 선생님, 부동산, 중고차 등 광고주 면면도 다양해지고 있다. 당근마켓 앱에서 동네별 타깃 광고를 하면 무작위로 전단지를 돌리거나 지역신문, 버스에 광고할 때보다 20배 넘는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김용현 대표에 따르면 당근마켓 앱의 평균 광고 클릭률은 5%가 넘는다. 100명에게 광고가 노출되면 5명이 클릭해본다는 얘기다. 일반 배너광고 클릭률이 0.03%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100배가 넘는 수치다.
전국 단위 광고와 비교하면 이런 지역 광고는 티끌에 불과하다. 그러나 김용현 대표는 ‘티끌 모아 태산’, 롱테일의 힘을 강조했다.
“아직 개인 맞춤형 광고가 아니라 무작위 광고인데도 클릭률이 상당히 높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이 우리 동네 얘기에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본다는 의미다. 현재 배달의민족은 배달 가능한 지역 음식점 광고만으로 1조 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있다. 작년 말부터 네이버 플레이스도 동네 광고를 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며 지역 광고를 네이버 뉴스 하단에 노출하기 시작했는데 아직 개발이 안 됐을 뿐 이 시장도 모이면 2조∼3조 원 규모로 금세 클 것이라 생각한다” (김용현 대표)
동네 품앗이, 커뮤니티 서비스의 부활
“오후에 강아지 주변 산책시켜 주실 분 계신가요?”
“동네 축구 동호회 참여하실 분∼”
“반찬 나눔 하고 싶습니다.”
최근 당근마켓은 강남, 분당, 제주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동네 생활’ 메뉴를 만들어 시범 운영 중이다. 그동안에는 내게 필요 없어진 물품을 원하는 동네 주민과 나누는 중고 거래가 중심이었다면, 이를 넘어 주민들의 정보와 시간, 재능 등을 모두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로 확장을 꾀하고 있는 것.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 동네 누군가는 분명히 우리 집 강아지를 산책시켜주거나 우리 애를 2시간 동안 봐줄 수 있고, 축구 동호회에서 대신 뛰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몰라 맡기지 못할 뿐이다. 이런 이웃사촌들을 잘 연결하면 어마어마한 비즈니스가 될 것이다.” 김용현 대표의 말이다.
당근마켓은 먼저 중고 거래로 지역별 사용자 기반을 넓힌 뒤 궁극적으로 동네의 모든 업체, 동네 모임 활동 관련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지역 생활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동네 치과 어디가 좋은가요?” “지금 이마트 열었나요?” 등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모든 정보가 올라오고 교환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아직까지는 중고 거래 외에 매력적인 콘텐츠가 많지 않기 때문에 당근마켓이 가야 할 길이 멀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위치 기반으로 성공한 서비스는 많지 않다. 기껏해야 배달의민족 정도다. 그러나 당근마켓의 경우 이미 중고 거래 덕분에 동 단위로 사람들을 묶어놨기 때문에 커뮤니티 서비스 확장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동네별 사용자 DB라는 어마어마한 진입 장벽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근마켓의 중고 거래 게시판만 보더라도 이미 지역마다 사용자들의 독특한 문화나 색채가 형성돼 있다. 가령, 강남 서초구에서는 명품 가방과 구두가 많이 올라온다. 또 제주도의 경우 감귤이나 생선 등 각종 식자재부터 중고차, 가구 등이 많으며 바다를 건너는 운송비가 반영돼 물가가 비싸다.
DBR mini box II: 한국의 당근마켓과 미국의 넥스트도어 당근마켓이 생각하는 향후 경쟁 기업은 2010년 설립된 미국의 지역 기반 플랫폼 ‘넥스트도어(nextdoor)’다. 회사 이름부터 ‘이웃’을 뜻하는 넥스트도어는 비록 성장 속도는 느리지만 미국에서 반경 300∼500m의 작은 동네를 하나하나씩 뚫으며 시장을 개척 중이다. 이 회사도 당근마켓과 마찬가지로 주소 인증을 해야만 가입이 허용되고, 동네 사람끼리만 교류할 수 있는 프라이빗 온라인 커뮤니티이자 일종의 ‘반상회’다. 이 커뮤니티에서는 주차장에서 핸드폰을 주웠다는 분실물 신고부터 부엌 후드가 고장 났는데 수리기사를 구한다는 도움 요청, 단지 앞 레스토랑의 할인 쿠폰에 이르는 사소한 지역 정보들이 오간다. 미국의 경우 주민들이 대중교통보다는 자가용을 이용하는 데다 땅은 크고 인구는 뿔뿔이 흩어져 있어 우리 ‘동네’, 이웃의 개념이 한국보다도 더 좁다. 조금만 떨어져도 차 없이는 만남이나 물물교환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근마켓이 한국을 기준으로 설정한 ‘최대 반경 6㎞’보다도 동네 범위가 좁고 시장 진입이 더딜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넥스트도어는 이런 어려움에도 작은 동네들을 어떻게든 연결하겠다는 비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월간 순이용자 수(MAU)는 당근마켓의 3∼4배인 1200만 명으로 미국 시장 규모를 감안하면 크진 않지만 당근마켓과 마찬가지로 커뮤니티 서비스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비전이 일치한다. 넥스트도어는 현재 유럽 시장 진출을 도모 중이다. “넥스트도어는 커뮤니티 서비스로 시작해 중고 거래 등으로 확장하려 하고 있고, 우리는 중고 거래로 시작해 커뮤니티 서비스로 확장하려 한다는 점이 다르다. 최근 받은 투자금도 이런 커뮤니티 서비스의 고도화와 글로벌 확장 등에 쓸 계획이다. 서로를 벤치마킹하고 있고, 비전이 맞닿아 있기에 결국 만나지 않을까 싶다.” |
당근마켓은 이처럼 중고 거래로 다진 입지를 바탕으로 동네 커뮤니티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지역 내에서 아직 오프라인으로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상거래를 온라인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배달 서비스는 물론이고 동사무소 주민센터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여는 마을 직거래 장터, 아파트 부녀회에서 하는 에어컨 청소 공동 구매 등을 대체하겠다는 것.
“배달의민족은 음식만 배달하지만 사실 동네에서 배달할 수 있는 건 세탁물 등 얼마든지 많다. 또 아파트 부녀회 공동 구매처럼 당근마켓이 특정 생산지역과 특정 소비지역의 연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가령, 어떤 과수원에서 서울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 특상급 감을 팔고 싶어 한다고 해보자. 우리는 한 박스당 7만 원을 호가하는 특상급 감을 살 만한 소득 수준의 단지, 즉 강남이나 송파 주민들을 타깃으로 삼아 단체 배송을 해줄 수 있다. 이렇게 한 번에 대량으로 실어 나르면 배송비가 절약돼 주민들은 싱싱한 과일을 싼값에 먹을 수 있다. 에어컨 청소 공동 구매 같은 경우도 판매자와 소비자를 잘 연결하면 청소 도우미들은 특정 단지 안에서만 돌면 되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동선을 짤 수 있고, 주민들은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김용현 대표)
아직은 동네 생활 메뉴에 생활 정보가 중구난방으로 올라와 정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주제별로 사람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게 당근마켓의 설명이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끼리 자연히 연결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지금도 인테리어 등 특정 주제를 ‘팔로우’할 수 있는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주제별 팔로워가 일정 수를 넘어서면 개방형에서 폐쇄형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팔로워끼리만 글을 공유하도록 하고, 연결의 강도와 소속감을 키워야 끈끈한 소모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나와 비슷한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고 뭉치고자 하는 니즈가 있다. 그리고 맘카페를 비롯해 모든 사교 클럽에는 가입조건이 있고 어느 정도 지속적인 활동을 해야 글을 올리는 권한을 주고 클럽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준다. 동네 생활은 이런 모임에 대한 니즈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당근마켓의 타깃 이용자는 ‘25세에서 55세까지의 여성’이다. 아무래도 동네 관련 정보는 여성들이 빠삭하게 꿰고 있고, 남성들은 배우자나 여자 친구 등에게 문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입소문을 주도하는 여성들을 사로잡아야만 동네 소식이 빠르게 모이고 퍼질 수 있다. 당근마켓은 동네별로 이 타깃 인구의 절반 정도를 사용자로 끌어들이면 충분히 이와 같은 ‘연결’ 비즈니스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로만 한정했을 때 이 인구는 약 500만 명, 전체 남한 인구의 10%에 육박한다. 타깃 인구수 대비 가입자 수를 나타내는 침투율을 보면 서울은 26% 정도고, 제주도는 69%다. 당근마켓은 이렇게 지역마다 침투해 2년간 약 1000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아울러 2019년 말 글로벌 진출도 본격화한다. 최근 당근마켓의 비즈니스 모델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네이버 라인의 중고 거래 앱 ‘GET IT(겟 잇)’의 경우 2018년 12월 베트남에서 출시된 지 1년도 채 안 돼 월간 순이용자 수 100만(MAU)을 확보했다. 동남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시장을 선점한 것이다. 당근마켓과 똑같은 메인 화면, 동네 인증 화면, 동네 범위 설정 화면 등의 기능을 가진 ‘겟 잇’의 인기는 역설적으로 당근마켓 서비스가 해외 시장에서 충분히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특히 동남아의 경우 사람들의 모바일 이용이 활발하고, 인구밀도도 높고, 한국과 문화적으로 친숙해 시장의 이질감이 덜하다. 따라서 비교적 시장 기회가 많다는 설명이다.
김용현 대표는 “연결에 대한 욕구는 세계 어디에나 있다. 동네에서 내가 가진 필요 없는 물건을 팔고, 동네 사람과 정보를 교환하고, 동네에 있는 가게를 찾는 품앗이는 베트남, 일본, 프랑스, 미국 등에도 보이는 인간 공통의 행동 패턴이다. 이 때문에 굳이 한국에서만 사업을 할 이유는 없음므로 글로벌로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DBR mini box III: 성공 요인 및 시사점 현대인이 느끼는 가장 큰 위협은 불확실성에 따르는 불안이다. 온라인 시대가 가속화되면서 오프라인 못지않게 온라인에서 겪는 불확실성, 이로 인한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인터넷, 모바일의 무한한 확장성은 그 혜택도 크지만 역으로 위협도 키웠다. 마치 양날의 검과 같다. 커진다는 것은 잘 쓰이면 힘이 되지만 잘못 쓰이면 대단한 위협으로 다가온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경계가 허물어진 사이버 세상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어 다양성이 보장되는 공간이지만 가짜와 사기가 판치는 공간이기도 하다. ‘저신뢰’의 위험으로 인해 등 돌리는 이들도 있다. 국경 없는 글로벌화의 역풍으로 최근 자국, 인근 공동체 기반의 보호적 로컬리즘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무역에서는 자유무역이 아니라 보호무역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작지만 소소한 행복, 커뮤니티 기반 공동체 생활과 행복 찾기, 지역 재생과 로컬마켓의 부활 등 최근 우리 주변에서는 이런 역행적 마이크로 트렌드가 쉽게 눈에 띈다. ‘너무 나간 것’에 대한 반작용이다. 사회 곳곳에서 너무 지나치게 개방, 확장된 것에 대한 성찰이 이뤄지면서 작은 사회 지향, 시공간의 한정성을 적용하는 사례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의 획일적인 개방과 확대 기조, 여기에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 발전까지 더해지면서 세상은 유례없는 확장성을 경험하고 있다. 초연결 시대라는 말로 대변되는 요즘 시대에 역설적으로 많은 사람이 피로감을 느낀다. 무한한 확장성을 좇는 과정에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역효과로 나타나다 보니 다시 작은 세상으로 돌아가려는 회귀 본능이 작동하는 셈이다. 이러한 사회 트렌드 변화에 맞춰 발 빠르게 대처하는 기업들이 최근 떠오르고 있다. 무조건적 연결로 거대 사이즈를 지향하는 그동안의 플랫폼 비즈니스에 역행해 양보다는 질을 찾는 당근마켓도 그중 하나다. 당근마켓은 익명성과 확장성이라는 그동안의 게임의 룰에 반하는 역발상적 경영으로 주목받고 있다. 몇 가지 포인트를 중심으로 그 시사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우회적 접근과 실행우선주의 후발주자로서 선발주자와 똑같은 전략으로 맞대결 구도를 만드는 정면전략은 실패하기 십상이다. 정면전을 피해서 다른 길로 가는 우회 접근의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 특히 기반이 약한 중소업체에 더욱 필요한 전략이다. 하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통념을 깨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고, 게다가 이를 실행에 옮기는 용기까지 요구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 경쟁은 비용 기반의 가격, 수수료 싸움이다. 정면전이며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출혈 경쟁이다 보니 레드오션, 치킨게임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를 피하는 우회 접근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 이미 나 있는 쉬운 길이 아니고 스스로 새로운 아이디어로 길을 개척해야 한다. 기존 고정관념을 깨는 반대 방향의 접근이 예가 될 수 있다. 당근마켓의 경우 기존 중고 거래 플랫폼과 달리 개방보다는 제한, 규모보다는 안전이라는 반대 접근을 했다. 이러한 반대 접근을 위한 우회로 건설에는 많은 인내와 희생이 따른다. 성공을 위한 쉬운 길은 없다. 운이 좋아 쉬운 길을 찾았더라도 롱런은 어렵다. 오랫동안 사랑받으려면 위험 감수라는 희생이 따르는 새 길, 우회로 건설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사업을 하다 보면 생각이나 말만 많고, 막상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이처럼 따지기 좋아하는 유형을 심리학에서는 평가우선주의(assessment mode)라고 한다. 반면 일단 행동으로 옮기고 보자는 유형은 실행우선주의(locomotion mode)라 불린다. 새로운 발명과 혁신으로 추앙받고 산업 전체를 이끌어가는 리더와 리딩 기업에는 평가보다는 실행우선주의가 많다. 기술이 평준화돼 파괴적 혁신 외의 방법이 없는 요즘 시대에, 묻고 따지기만 하다 시간만 흘려보내고 기회를 놓치는 평가우선주의보다는 위험과 실패가 따르더라도 기꺼이 감수하는 실험 정신의 실행우선주의가 더 요구된다. 한 비교문화 연구에 따르면 유교 사상의 영향이 남아 있는 동양의 경우 세세하게 따지면서 위험을 피하고자 하는 평가주의가 강한 반면 서양은 실행주의가 강하다. 우리나라 기업이라면 혹시 조직 전반에 만연한 평가중심주의가 신사업, 혁신사업 추진의 발목을 잡고 있지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나이키에는 레전드급 브랜드 슬로건이 있다. ‘JUST DO IT’인데, 묻고 따지는 평가보다는 발 빠른 실행을 강조하는 의미다. 파괴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요즘, 그리고 미래 세상에 요구되는 문구다. 당근마켓도 평가 우선이라는 과거 시행착오를 거쳤기에 지금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실행 우선 기업이 됐다고 볼 수 있다. 2. ‘작지만 강한’ 한정의 힘 마케팅을 하다 보면 개방과 한정의 선택지를 자주 만나게 된다. 보다 많은 고객이 사용할 수 있도록 빗장을 풀고 경계를 허무는 전략을 택할 것인가, 조건과 자격을 만들어 고객 범위에 제한을 둘 것인가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전자는 질적 하락을 감수하면서 범용성을 기반으로 조기에 대량 시장을 형성하는 데 방점을 찍는다. 후자는 규모의 경제보다는 제한성을 바탕으로 소속감과 안정성을 통해 충성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둔다. 둘 중 어느 하나가 더 좋다고 단정할 수 없다. 상황에 따라, 기업의 지향점이 무엇인가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과거에는 시장을 만들고 크게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매스마케팅, 즉 많을수록 좋다는 양적 마케팅에 초점을 많이 뒀다. 하지만 기술 발전과 사회의 고도화로 인해 고객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질에 관심을 두는 마케팅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울타리를 치고 제한성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는 리미티드 마케팅이 사회 변화와 함께 트렌드로 부상했다. 최근 들어 폐쇄형 모임이나 동호회, 살롱도 많이 생겨나는 추세다. 제품에서도 리미티드 에디션, 즉 한정품 마케팅이 사치재뿐 아니라 일상 범용재에도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소확행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작지만 강한 스몰 문화가 의미 없이 크기만 한 거대 문화에 대한 역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의 핵심은 사이즈가 아니라 응집성이다. 사이즈에 이끌려 들어왔지만 내실 없는 공허함에 발길을 돌려 작지만 응집성 강한 데를 찾아 나선다. 특히 X세대로부터 시작해 밀레니얼세대, Z세대로 이어지는 자기중심형 가치지향 세대에게 이런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사회심리학에 한정효과(unavailability effect)라는 것이 있다. 한정이 일어나면 주목을 끌고 긍정적 태도가 생기는데, 그 기저에는 여러 가지 설득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신뢰 기반의 고품질 지각이다. 수량, 시간, 지역, 자격 등에 한정이 생기면 묘한 매력이 일어난다. ‘도대체 뭐가 있기에 한정이지?’ 하면서 그 대상에 대한 관심, 기대, 신뢰가 올라간다. 한정이라는 그 자체가 존재감을 알리는 시그널링이다. 안심하고 믿고 들어와 참여라는 재촉의 의미가 담겨 있다. 벽을 치면서 그룹을 만드는 것은 ‘그들만의 리그 효과’라 할 수 있다. 대단한 응집성이 생기고 방어, 수호를 위해 집단행동을 하고,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상징적 행위들이 자발적으로 나타난다. 한국이나 미국 프로야구의 응집성은 지역 한정 전략이 통한 대표적 사례다. 당근마켓 또한 지역 제한을 통해 한정효과를 누리고 있고 앞으로 더 진화된 효과가 기대된다. 지역 정체성을 기반으로 사용자 간 돈독함을 키우면서 더 많은 지역적 참여가 일어날 것이고 로컬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지역밀착형 파생사업 기회를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한 연결보다 한정 연결이 주는 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성장과 함께 스몰문화가 새로운 일상이 되고 있다. 소소한 거래를 통해 이웃과 따뜻한 정을 함께 나누고, 거래를 뛰어넘어 신뢰 기반의 지역민 정보 공유와 가치 창출을 도우려는 당근마켓의 혜안은 분명 미래 시대를 앞서 내다본 것이다. 3. 재미와 몰입을 유발하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아무리 기능적으로 좋은 것을 만들었더라도 감성적 재미가 없으면 외면받는다. 소비심리학에서 소비자가 추구하는 혜택을 실용(utilitarian)과 쾌락(hedonic)으로 구분한다. 둘 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적정 반영돼야 하는 요소다. 너무 실용적이기만 해도, 너무 쾌락적이기만 해도 문제가 된다. 둘 사이의 균형이 필요한데 굳이 중요도를 매기라면 쾌락적 요소, 즉 감성적 재미에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실용성이 주로 이성적 판단을 이끈다면 쾌락적 재미는 행동을 촉발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있거나 나도 모르게 계속 클릭하고 있다면 쾌락적 즐거움에 이끌려 무의식적으로 행동한 것이다. 쾌락적 즐거움, 재미를 창출하는 가장 대표적 수단은 바로 게임이다. 게임의 요체는 경쟁과 성취감 획득이다. 혼자 하면 재미가 없지만 상대가 나타나면 경쟁이 생기고, 이기려는 본능이 몰입감과 성취감을 만들어낸다. 플랫폼이나 콘텐츠에 게임적 요소를 반영하는 것을 게이미피케이션이라고 한다. 애플리케이션이나 사이트의 몰입도를 높이고 성취감 획득에 재방문 의향이 커지게 된다. 빠져듦, 중독이라는 말이 이때 생겨나게 된다. 당근마켓은 게임적 요소를 잘 반영하고 있다. 직거래다 보니 운을 찾고 만나게 되는 게임 성격을 지닌 데다 여느 앱과 달리 지역 기반의 신뢰성 높은 쿨매가 많아 낚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 누가 채가기 전에 먼저 득템하는 기분은 묘한 경쟁심과 성취감으로 설명된다. 일상 생업 속에서 성취감을 누리기 힘든 시대에 이런 게임적 요소를 통한 성취감 실현은 소소한 즐거움을 만들어 낸다. 거래자의 신뢰를 시그널링하는 매너 온도 제도도 경쟁심과 아울러 성취감 추구를 자극한다. 온도 관리라는 게임적 요소는 플랫폼에 지속적 관심과 재방문을 이끌고 자신과 그 플랫폼을 동일시하는 연결 효과를 창출한다. 온도가 마치 자신의 얼굴과 같기에 평소 외모 관리처럼 앱 속에서 매너온도 관리에 집중하게 된다. 4. 복잡다단할수록 쉽고, 가볍게 기술 발전으로 인해 생겨난 복잡다단한 온라인 초연결은 두 가지 불안감을 야기한다. 첫 번째는 어떤 사람을 만날지 모르는 불안감이고, 두 번째는 많은 대안 속에서 극대화를 놓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다. 첫 번째 이슈에 대해서는 여러 단계의 인증, 보호, 안심 절차로 대응을 한다. 두 번째 이슈에 대해서는 여러 단계의 정교, 전문화된 선택 과정을 통해 대응을 한다. 둘 다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일으킨다. 이는 ‘디지털 피로감’으로도 표현된다. 이처럼 익명성을 기반으로 개방된 온라인 세상은 사람들에게 가짜와 사기를 분별해야만 하도록 강요한다. 비슷해 보이는 제품들이 차고 넘치다 보니 최상의 것을 선택하기 위해 전문화, 정교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해 탄생한 인터넷, 모바일의 디지털 세상이 오히려 복잡하고, 어렵고, 무겁게 한다. 당근마켓의 거리 제한과 지역 광고 플랫폼은 복잡한 시대에 쉽고, 가볍게 가도록 도와준다. 지역, 동네 기반은 플랫폼 자체에 높은 신뢰가 내재돼 있기에 저신뢰에 따르는 보호, 인증의 노력을 생략하게 한다. ‘동네 주민 효과’라 할 수 있다. 가까운 이웃과의 거래이기 때문에 접근이 쉽고 신뢰를 확인하는 불필요한 과정을 줄여주기에 인지적 자원의 낭비가 적다. 또한 동네와 기간만 입력하면 도달 수와 광고비가 뜨고 결제도 바로 앱으로 가능케 하는 지역 광고 플랫폼은 광고를 어렵고, 무겁게 생각하지 않아도 쉽고, 가볍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많은 전문화된 선택지 속에서 어떻게 조합하고 최적의 선택을 만들어 낼지 고민하기보다는 쉽고 빠른 시스템을 통해 실행력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고무적이다. 특히 전문가가 아닌 지역 기반의 일반인, 영세업자에게는 어려운 분석이나 평가보다 쉬운 실행이 우선이다. 많은 기업은 분석과 평가에 매몰돼 불필요한 시간, 노력, 자원 낭비를 하고 있지 않은지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분석과 평가에 너무 매몰되면 과정과 시스템, 구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복잡해지고 무거워진다. 수단인 분석과 평가가 목적이 돼 시스템 전반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쉬운 실행이 기업 내부나 바깥 고객 모두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로 가고 있다. 필자소개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marnia@dgu.edu 필자는 고려대 경영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명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저서로 『한국형 마케팅 불변의 법칙 33』 『역발상 마케팅』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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