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양만금 화백
▲ /삽화=양만금 화백
[전광우·손현덕 통쾌한 경제-50] 지난번 칼럼에 이어 가상화폐 얘기를 계속합니다. 작금의 비트코인 투자 열풍이 튤립 버블에 버금가는 희대의 거품 사태로 기록될지 단언하긴 어렵지만 변곡점에 다다른 건 분명해 보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상화폐 열풍이 가장 뜨거운 우리나라, 투기에 뛰어든 국민이 학생부터 주부와 노인에 이르기까지 200만명에 달하고 '비트코인 좀비'가 넘친다는 뉴스는 비정상적인 현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번주 시작된 비트코인 선물(先物)거래가 가상화폐의 '제도권 진입' 전주곡일지 아니면 예정된 '종말의 시작'이 될지에 시장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역대급 버블 사태 경험과 시사점을 한번 생각해 보실까요. 

1600년대 네덜란드 튤립 버블. 역사상 최악의 거품 사태로 평가되며 비이성적 쏠림 현상의 원조이자 최초의 대규모 과열 투기로 기록됩니다. 당시 네덜란드가 원예식물로 처음 수입한 튤립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한 송이 가격이 노동자 연평균 소득의 열 배까지 뛰었고 극심한 사재기 현상을 빚었습니다. 꽃이 피지도 않은 튤립의 선물거래까지 생겼고요. 1637년 2월을 정점으로 한 순간 폭락세로 변하면서 개인적 파산을 넘어 당시 최강 경제대국의 자리를 영국에 넘겨주는 기폭제가 된 사건입니다. 

1700년대 영국 남해회사 버블. 18세기 초 남미지역에 대한 무역독점권 특혜를 등에 업고 무분별한 주가 폭등세를 키웠던 남해회사에 대한 투기 사태로 '묻지마 투자'의 전형으로 꼽힙니다. 1720년 일 년 사이 주가는 10배 이상 급등락했고요. 천재과학자 아이작 뉴턴이 당시 거액을 날린 투자 실패는 거품 시장의 최대 피해자는 '상투 잡은 투자자들'이라는 사례로 오늘날까지 회자됩니다. 비이성적 투기판에선 천재적 두뇌도 소용없는 모양이지요. 

1700년대 프랑스 미시시피회사 버블. 금속화폐를 사용하던 프랑스가 1716년 은행 설립을 통해 지폐를 무작정 찍어내며 거품경제와 주가 폭락을 키운 사태입니다. 프랑스 정부 소유인 미시시피회사 주식 공모로 주가를 띄워 재정적자를 메우려고도 했는데요. 4년간 4배로 늘어난 통화량으로 물가 폭등과 주식 투매 현상으로 주가는 폭락합니다. 급기야 투기 광풍이 재정 악화와 민생경제 파탄으로 번져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이 됩니다. 

180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골드러시(금광 캐려고 몰려는 사건). 전형적인 버블과는 다르지만 1850년경 촉발된 금광 채굴 열풍은 자주 언급되는 사건입니다. 한탕을 노린 대부분 사람들은 빈털터리로 끝났는데 제러미 시걸 와튼스쿨 교수는 흥미 있는 평가를 합니다. "골드러시 때 큰돈 번 사람은 금광 주인이나 황금을 캔 몇몇 사람들보다 채굴장비 팔았던 중간 상인들이었다"는 거지요. 비트코인 채굴과 거래 폭주로 가상화폐 거래소만 재미 본다는 요즘 얘기와 비슷합니다. 

1900년대 말, 2000년 초 나스닥 닷컴 버블. 1995년 시작돼 2000년 3월에 터진 거품 현상으로 인터넷 관련 벤처기업의 주가 급등락 사태입니다. 대부분의 닷컴(IT)회사들이 파산하고 상당수 테마주가 상장폐지되면서 국내 코스닥 시장도 상처를 입었습니다. 연간 10배 오른 주식이 태반이고 일부 주식 PER는 만 배에 달했지요. 그중 극소수의 성공사례도 있었으니 가상화폐 열풍이 '닷컴버블 속편'일지 '차세대 아마존'일지 모른다는 말이 나옵니다. 

역사적 버블의 공통점은 뭘까요. 첫째, 투자 대상의 내재 가치나 본원적 가치가 없거나 평가가 불가능합니다. 튤립은 그나마 실체가 있었는데 가상화폐는 그것도 아닙니다. 둘째, 국가경제에 유익한 기능은 없고 폐해만 키우며 때론 투자자들뿐 아니라 나라경제까지 파탄으로 몰아갑니다. 셋째, 열풍 와중에 대박 친 사람은 중개인과 거래소, 투기를 부추기고 빠진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피해는 무분별하게 뛰어든 투자자들 몫이고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는 달리 비트코인을 화폐 혁명으로 포장하는 건 턱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비트코인 광풍은 엄청난 자금세탁 수요 때문이라고 보고,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전 세계은행 부총재는 가상화폐는 국가경제에 유익한 기능이 전혀 없다며 불법화를 주장합니다. 역사적 버블 현상은 대체로 투자자들의 탐욕과 이를 악용한 업자들의 합작품입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투자와 경제의 기본 원칙을 새삼 일깨울 때입니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국민연금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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