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시 10개월,미 회계사 1년… ‘시험왕’ 초단기 합격노하우

국무조정실 사무관, 점심 30분만에 먹고, 근무중 화장실 갈때만 일어나는 이유?
jobsN2017.12.24. | 134,343 읽음
'시험의 왕' 국무조정실 이형재 사무관
일하면서도 각종 고난이도 시험 합격
프로페셔널한 공무원이 되기 위한 길

평생 하나 붙기도 어려운 시험을 30대 중반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여러 개 정복한 이가 있다.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에서 근무하는 이형재(35) 사무관. 그의 ‘스펙’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우등 졸업한 그는 행정고시(재경직)를 준비한 지 1년도 안돼서 합격했다.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도 이 사무관은 미국회계사(USCPA), 국제재무분석사(CFA) 레벨 1·2·3, 국제재무위험관리사(FRM), 공인중개사 등에 잇따라 합격했다. 직장 생활을 병행하면서 시험 준비를 할 경우 평균 수험기간이 각각 2~4년은 되는 난이도 높은 시험들이다. “머리 좋아서 가능한 것 아니냐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하시는데요, 제 아이큐(IQ)는 아주 평범한 수준입니다. 인내심과 생활 습관, 전략의 승리였다고 생각합니다.”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에서 근무하는 이형재 사무관

시험, 보고 또 보고


이 사무관은 2005년 9월 본격적으로 행시 재경직 준비를 시작했다. 대학 4학년 때였다. 두 학기를 휴학하고 이듬해 합격했다. 면접을 제외한 2차 필기시험(6월)까지의 수험기간은 10개월. 대학 시절, 시험 과목 관련 수업을 다수 들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합격자들의 평균 수험기간과 비교하면 매우 짧다. “경제학과 재정학, 통계학(선택) 과목은 학교 수업을 통해 기본기는 어느 정도 갖춘 상태였어요. 상대적으로 유리했죠. 2차 시험 나머지 두 과목인 행정학과 행정법 준비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평일 기준으로 오전 7시 40분쯤 책상 앞에 앉아서 밤 11시까지 공부했다. ‘1시간 공부+5분 휴식’을 원칙으로 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점심·저녁을 학생식당에서 해결했다. 식사 시간은 30분 정도. 그 외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고는 공부만 했다. 토요일에는 평일 학습량의 80%, 일요일에는 30% 정도를 배정했다. 하루 20분 집 앞 운동장을 뛰는 것으로 체력 관리를 했다.


고시라는 큰 산을 넘은 후에도 시험에 대한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바로 컴퓨터활용능력 1급, 워드프로세서 1급, MOS 마스터 등의 각종 컴퓨터 자격증을 취득했다. 직장에서의 문서 작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공무원 임용 후, 군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2008년9월~2011년11월)에는 CFA 레벨 1·2·3, FRM을 취득했다. CFA은 직장 생활을 병행할 경우 레벨 1·2·3을 모두 따는데 평균 3년 이상, FRM은 1년 이상 걸리는 시험이다. 이 사무관은 CFA를 1년 반만에, FRM을 5개월 만에 붙었다. 전역 후에도 그의 시험벽(癖)은 그치지 않았다. 2015년 미국회계사, 2016년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했다. 각각 1년, 4개월 공부했다. 이 역시도 평균 수험기간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   

이 사무관이 CFA(왼쪽)와 FRM(오른쪽) 시험을 준비하며 했던 필기들

왜 이렇게 많은 시험을 봤나


이 사무관은 10년간(군 시절 포함)의 공직 생활 중 4년여를 수험생으로 보냈다. 그가 끊임없이 시험을 본 것은 공부가 취미여서가 아니다. 단지 맡은 일을 충실히 하며 계속 발전하고 싶어서였다. “자격증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면 굳이 어려운 시험에 매달리지 않고, 쉬운 시험들을 골라서 봤을 겁니다. 업무를 보면서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함을 자주 느꼈어요. 관련 정보를 책이나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싶었어요.” CFA와 FRM은 군 입대 즈음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관련 분야에 대한 관심이 생겨 도전했다. 재경직 공무원이다 보니 직무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미국회계사와 공인중개사는 조세심판원에 근무하면서 취득했다. 조세심판원에서는 조세불복(不服)에 따른 심판청구를 검토해 결정을 내리는 곳이다. 이 사무관은 심판청구 들어온 내용에 대한 보고서 작성을 했다. 법인세나 양도소득세 등 회계·세무와 부동산 분야에서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결국 또 시험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2014년 사무실에서의 모습(왼쪽), 2006년 행정고시를 준비할 때 책상에 엎드려 낮잠을 자는 모습(오른쪽)

일과 공부의 효율 극대화


일하면서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절제와 철저한 시간 관리가 필요했다. 이 사무관은 점심을 대부분 구내식당에서 먹는다. 30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서 낮잠을 자거나 밀린 업무를 했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허투루 써서는 일과 공부의 병행이 불가능했다. 업무 시간 최대한 집중해 야근을 피했다. 화장실 갈 때 빼고는 자리를 거의 일어서지 않았다. 꼭 가야 하는 자리가 아닌 회식은 대부분 피했고, 주말에도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공부했다. 남들이 황금연휴에 인천공항으로 향할 때도 그는 책상 앞을 지켰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시험 준비를 오래 하다 보니 마땅한 취미도 없었다. 일이 너무 바빠서 도저히 시험공부할 짬을 내기 어려웠던 시기(약 3년)를 제외하면, 항상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평일 3시간, 주말 10시간씩 공부해 한 주에 35시간을 공부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 번에 두세 가지 일을 처리하려고 항상 신경 썼어요. 퇴근해서 전기밥솥 누르고 밥 되는 동안 씻고, 공부할 책 펴놓고 밥 먹으면 바로 책상에 앉았어요. 출근하면서는 그날 할 일을 적어놓고 도착하자마자 그 일들을 바로 실행했죠. 심지어 출근해서 컴퓨터가 켜지는 시간 동안에도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해놔야 할 다른 일을 찾았어요.”    

이형재 사무관과 이 사무관이 근무하는 곳

전략적인 학습


시간 확보를 했다고 시험에 붙는 것은 아니다. 그가 남들보다 훨씬 빨리 시험에 붙을 수 있었던 것은 전략적으로 공부했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책을 펴기보다는 주로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높은 집중력을 요하는 공부를 하는 것은 무리라고 봤다. 평일에는 주로 인터넷 강의를 듣고, 컨디션 좋은 주말에 집중해서 공부했다. 책을 읽을 때도 항상 ‘여기에서 어떻게 시험에 나올지’를 염두에 뒀다. “예컨대 ‘○○위원회는 위원장 포함 7인이다’라는 내용이 있다고 해보죠. 그러면 여기서 시험에 나올만한 것은 위원장이 제외되느냐 포함되느냐, 그리고 ‘몇 명인가’입니다. 세법을 공부할 때도 세율(%)의 숫자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기본적인 부분인데도 많은 수험생들이 그렇게 공부하지 않아요. 그냥 책을 읽고 있고, 그냥 밑줄을 치고 있는 거죠. 목표 의식이 흐릿하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겠죠.” 시험 수석이 아닌 합격이 목표라면 버릴 부분은 과감히 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할 때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시험 직전에 책에 나온 숫자만 쭉 썼어요. 그리고 외웠어요. 객관식 문항에서 다른 숫자가 나오면 오답일 가능성이 높은 거니까요.”


현재 준비 중인 시험은 없다. 하지만 업무의 질을 높이는데 필요하고, 자기 발전에 필요한 시험이 있다면 언제든 도전할 계획이다. “취미도 없이, 제대로 쉬지도 못하면서 시험을 준비했던 것은 ‘프로페셔널한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미없고 공부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제가 보낸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아요. 더 나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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