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이 쳐진 깡촌에서 ‘서핑족의 성지’로
도시에선 꿈도 못 꿀 경험에 집중하라

281호 (2019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로컬 비즈니스가 실패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강원도 양양을 젊은 서핑족의 성지이자 동해안의 핫플레이스로 만든 주역인 박준규 서피비치 대표는 과거 강원도 고성의 알프스스키장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일하면서 로컬 비즈니스의 A부터 Z까지를 배웠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공간 비즈니스가 성공하려면 특정 레저와 같은 콘텐츠에 지나치게 의존하기보다는 플랫폼에 집중해야 하며 트렌드를 선도하는 2030 타깃 고객층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에 따라 ‘100% 청춘을 위한 바다’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동해안에 국내 최초의 서핑 전용 해변을 ‘창조’했다. 박 대표가 해변을 운영하면서 정립한 로컬 비즈니스의 세 가지 성공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타깃 고객이 도시에서 결코 경험할 수 없는, 로컬에서 기대하는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 둘째, 오래 돌아가더라도 원주민과 대립해서는 안 되며 주변 지역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끼쳐야 한다. 셋째, 로컬은 도시보다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운 만큼 동료들을 귀하게 여기고 근무 만족도에 신경 써야 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승빈·송지은(숙명여대 경영학부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양양, 홍천, 횡성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강원도 산골짜기 안에서도 ‘끼인 동네’의 대표주자라는 점이다. 강릉과 속초 사이에 낀 양양, 속초와 춘천 사이에 낀 홍천, 춘천과 원주 사이에 낀 횡성. 주위 도시의 그늘에 가려 관광객의 발길이 유독 뜸하고 여름 한 철 장사도 쉽지 않다 보니 이곳 주민들의 마음속엔 설움이 많다. 텃세가 심하다는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외지인을 배척한다고 보기엔 애당초 포용을 학습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중에서도 강원도 양양의 인구는 지난해 기준 약 2만7000명, 지난 20년간 강원도 18개 시·군 가운데 인구 규모 16위 하위권을 지켜 왔다. 면적은 629.32㎢로 속초의 3배에 달하지만 약 7000표만 얻으면 군수에 당선될 정도로 작은 커뮤니티다. 표 하나, 사람 한 명이 귀하디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이 인적 드문 깡촌에 믿기 힘든 변화가 생겼다. 전체 인구의 20%이상이 65세가 넘던 초고령 동네가 지난 몇 년 동안 대한민국 2030 청춘들의 집결지로 급부상한 것이다.

2015년까지만 해도 허가 없이는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고 군사용 철조망만 덩그러니 쳐 있던 해변을 구릿빛 피부의 젊은 서퍼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낮의 백사장에는 여성들이 비키니를 입고 돌아다니고, 해먹이나 비치 베드에 한가로이 드러누운 사람들은 코로나 맥주와 수제 버거를 즐긴다. 평화로운 해변은 밤이 되면 180도 다른 얼굴로 변신한다. 클럽 DJ의 선곡과 파도 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페스티벌과 댄스파티의 향연이 펼쳐지면서 광란의 밤이 시작된다. 동남아 보라카이나 발리의 해변, 스페인 이비사섬에나 등장할 법한 이색 풍경을 강원도 양양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양양이 동해안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비결은 무엇일까. 이런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있기까지는 몇 가지 중요한 변곡점이 있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양양을 잇는 고속도로가 개통된 것이 그중 하나다. 원래 서울에서 5시간은 족히 걸려야 도착했던 양양을 교통 체증이 없는 경우 1시간40분이면 갈 수 있게 되면서 동해안의 바다가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을 빨아들일 길이 뚫렸다.

그러나 단지 교통만으로 양양이 속초, 강릉 등 쟁쟁한 주변 휴양지들을 제치고 동해안의 명소로 떠오른 배경을 설명할 수는 없다. 특히 2018년 삼척에서 고성에 이르는 강원도 바다 6개 해수욕장의 하루 평균 피서객이 전년보다 30% 감소했다는 수치를 보면 더더욱 그렇다. 양양이 이런 동해안 바다의 불황마저 피해갈 수 있었던 차별점은 뭐니 뭐니 해도 바로 ‘서핑’에 있다.

양양의 해변을 ‘서핑족의 성지’로 만든 주역이자 모든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박준규 서피비치(라온서피리조트) 대표를 DBR이 만났다. 박 대표는 허허벌판이던 800m 길이의 군사작전 지역을 임대해 처음으로 ‘서핑 전용 해변’이란 이름을 붙이고, 바닷가에 컨테이너 달랑 두 대 놓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개장한 서피비치는 불과 4년 만에 연간 55만 명이 찾고 인스타그램에 매일 1000건이 넘는 인증샷이 올라오는 양양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도시로 진출했다가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박 대표로부터 그동안의 로컬 비즈니스 경험에서 배운 교훈, 그리고 양양의 ‘로컬 크리에이터(local creator)’가 될 수 있었던 성공 비결을 들어봤다.


로컬 비즈니스 실패의 원인
1. 스키장의 경험 - 리조트가 망하는 이유
박준규 대표는 평창군 진부면에서 태어난 강원도 토박이다.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그는 강원대 재학 시절이던 1996년, 국내 2호 스키장이었던 고성 알프스리조트에서 스노보드 강사 1기로 시작해 장장 8년간 스노보드를 가르쳤다. 10살 때부터 스키를 탔다는 그는 알프스리조트가 대한민국 스키의 성지이던 시절부터 경영 악화로 2006년 문을 닫기까지 흥망성쇠를 두 눈으로 생생하게 지켜봤다. 물론 수도권과 접근성이 좋은 다른 스키장이 생겨서였기도 하지만 알프스리조트가 망한 가장 큰 이유는 겨울 한 철 장사인 스키와 스노보드의 인기가 식어서였다. 평창의 용평스키장은 물론이고 전국 스키장의 경기가 전반적으로 다 기울고 있는 이유다.

박 대표는 리조트의 쇠락을 지켜보면서 스키나 스노보드 같은 특정 ‘콘텐츠’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이 레저가 더는 멋있어 보이지 않을 때, 더는 ‘핫’해 보이지 않을 때 사업이 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젊은이들이 레저를 즐기면서 스스로 더 멋있어지는 듯한, 트렌드를 앞서나가는 듯한 기분과 우월감을 느끼고 주변에 자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스키나 스노보드는 이미 너무 흔해져 버린 것이다. 오히려 과거에는 체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고 즐거웠다면, 어느 순간 스키를 잘 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못 타는 사람들은 위축되고 처음부터 배우기를 부끄러워하는 초보자들이 많아졌다. 여기에 가격도 싸지 않고 중국인 관광객까지 붐비다 보니 국내의 젊은 휴양객들이 등을 돌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어린 나이에 레저 산업에 몸담으면서 그가 얻은 교훈은 특정 ‘콘텐츠’보다는 리조트라는 ‘플랫폼’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스키장에서 반드시 스키와 스노보드만 타야 할 이유는 없었다. 드넓은 설원과 광장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은데 공간이 가진 좋은 가치를 백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숙박이나 식음료 사업 기회도 더 잘 살릴 여지가 있어 보였다. 박 대표는 “가령 스키장 정상에 요가원을 지을 수도 있지 않나. 산꼭대기에 유리로 된 요가원을 지어놓으면 해가 뜨는 절경을 바라보며 요가를 하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도 있다. 외국에는 이미 꽤 많다는데 해보면 정말 기분이 짜릿하다고 한다. 이런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스키장을 떠난 박 대표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외국 생활과 비즈니스에 대한 호기심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마케팅을 공부하다가 1년 만에 중도 포기했다. 서울에서는 광고대행사를 차렸다가 3년 만에 쫄딱 망했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공간 비즈니스’에 대한 그의 신념은 더 굳어졌다. 반짝이는 아이템, 기발한 콘텐츠로 승부를 봐야 하는 사업은 신생 회사가 자본과 인력이 많은 곳을 따라갈 수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특히 사업 실패로 서울 생활에서 호되게 당한 경험은 그가 ‘로컬 비즈니스’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다음에 사업을 한다면 정말 콘텐츠가 아니라 플랫폼에 주력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공간은 누구나 철학을 가진 사람이 만들 수가 있고, 일단 공간을 만들어놓기만 하면 그 철학에 공감한 아이템이 모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공간을 찾아온 사람에게 만족감을 주고 사랑받을 수만 있다면 그곳에서 빛이 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박 대표의 말이다.


2. 해운대해수욕장의 경험 ― 바다가 망하는 이유
이렇듯 박 대표의 막연한 구상에 숨을 불어 넣는 기회가 찾아왔다. 광고대행사 시절 친분이 있던 카드사와의 인연으로 BC카드에 취업해 일하던 때였다. 2011년 BC 모바일카드 광고 프로모션 때문에 해운대해수욕장을 방문했던 그는 당시 해운대에서 막 시작한 스마트 비치(smart beach) 사업에 한눈에 꽂혔다. 바다라는 매력적인 공간에 대해 배울 절호의 기회였다. 당시 초기 단계였던 스마트 비치 사업은 해수욕장의 파라솔이나 튜브 이용료, 식음료 등을 현금 결제 방식에서 카드나 손목 밴드를 충전해 결제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현대화 프로젝트였다.

사업 자체는 아직 체계도 없고 엉망이었다. 그러나 박 대표는 해운대가 백사장을 관리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만약 백사장을 삥 둘러싼 7000여 개의 리조트와 호텔 및 모텔 객실, 금수복국을 포함한 500개의 식음료(F&B) 매장 등을 하나로 묶어 스마트 결제가 가능한 온라인 플랫폼으로 만든다면 그가 원하던 공간 비즈니스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박 대표는 일을 배우기 위해 인력을 구하지도 않던 해운대해수욕장에 대뜸 이력서와 기획안을 들고 찾아갔다. 광고대행사 창업 경험이 있으니 광고주들을 해운대로 불러 모으겠다는 기존에 없던 역할까지 만들어 관리인을 설득했다. 해수욕장의 경우 광고주들이 지역 이장이나 계장 등을 찾아다니며 계약을 맺어야 하고 소통창구가 일원화돼 있지 않으니 행정상의 불편 사항들을 해결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광고 수익 구조를 만들어주겠다며 3번을 끈질기게 찾아간 끝에 그는 결국 일자리를 얻어냈다.

박 대표가 2011∼2013년 해운대에서 일하면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바로 ‘2030 청춘’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광고주를 설득하고 캐시카우를 만들어내는 게 주된 업무였던 박 대표는 해운대에 광고, 협찬을 유치하는 게 녹록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워낙 해운대 관련 기사나 사진이 많으니 광고주들이 한 번쯤은 관심을 가지고 현장을 찾았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대다수가 한 번 둘러본 뒤 발길을 끊었다. “해운대는 바다의 ‘포지셔닝(positioning)’이 잘못돼 있었다. 바다가 망하는 이유는 어린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거나, 나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다. 대표 사례가 해운대였다.”

실제로 해운대 백사장에는 유치원, 초등학생들이 뛰어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밤만 되면 짧은 치마를 입고 진하게 화장한 중고생들이 이벤트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정작 광고주들이 원하는 타깃 고객층, 트렌드를 선도하고 구매력이 있는 소비계층은 어린이나 노인들이 많은 곳을 피했다. 겨우 광고 부스를 설치해도 금세 아기 이유식 주는 부스, 아이들이 에어컨 쐬러 오는 부스로 변해 버리기 일쑤였고 주변 편의점들만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는 결국 광고주가 떠나는 원인, 바다의 수익 기반이 약해지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해운대에서의 3년은 박 대표에게 바다를 가르쳐준 시간이었다. 그는 백사장에 시설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건축 허가를 받기 전 해변을 임대하는 ‘공유수면허가’부터 먼저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이곳에서 배웠다. 허가를 따내기 위한 각종 절차와 법령,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고 각종 민원에 대응하는 요령도 터득했다. 연간 10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고, 야간에 파티나 콘서트도 끊이지 않으며, 해안가를 따라 늘어선 수많은 건물주와 모텔, 식당 주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해운대는 전국에서 가장 사업하기 까다로운 바다였다.

박 대표는 “해운대에서는 해변에서 사업하는 사장님 한 분 한 분이 모두 지역 유지이자 보통 힘든 분들이 아니었다. 패배감을 느끼는 순간도 많았다. 3년 정도 지나자 백사장에서 배울 수 있는 경험은 최대치로 쌓았으니 이제는 고향의 바다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라고 말했다. 이에 2013년 3월 박 대표는 부산을 떠나 다시 강원도로 향했다.


로컬 비즈니스 성공의 조건
박 대표는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강원도 동해안 바다에 사람들이 모이게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강원도 지역성을 살리고 싶다 해서 감자나 옥수수만 팔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촌이라고 오징어 축제만 하란 법도 없었다. 파라솔과 튜브, 횟집만 즐비한 바다도 따분하긴 마찬가지였다. 로컬은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지칠 대로 지친 이들이 훌쩍 떠나고 싶을 만한 완전히 낯선 공간이어야 했다. 이에 박 대표는 해변의 가치를 극대화해 전 세계 휴양객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있는 동남아를 벤치마킹 모델로 삼았다. 사람들이 동남아 비치클럽에서 날밤을 새우며 뛰놀듯이 한 공간에 주간과 야간 콘텐츠가 다 있어야 했다. 핵심은 오직 ‘바다를 빛나게 하는 것’에 있었다. 박 대표는 “콘텐츠는 바뀔 수 있지만 진짜 아름다운 해변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2013년부터 강원도 해안가를 따라 답사를 하며 적합한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광고 PT나 기획서 작성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1년여에 걸쳐 틈틈이 사업을 구상했다. 그가 원하는 조건은 세 가지였다. 첫째, 밤에 음악을 크게 틀고 파티를 해야 할 수도 있으니 민가에서 최소한 500m 이상 떨어진 해변이어야 했다. 둘째, 외국 휴양지에 온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일(一)자 해변이어야 했다. 해운대를 비롯해 90%의 대한민국 해변이 깊게 파인 만 형태의 유(U)자인 데 비해 대부분의 동남아 보라카이 휴양지 해변은 일자로 돼 있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셋째, 백사장의 너비가 50m 이상이어야 했다. 그래야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의 광경을 연출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 같은 세 가지 조건에 맞아떨어지는 지역이 바로 양양이었다.

2014년 10월 수심이 얕고 파도가 고운 모래에 부딪히는 양양의 해변에 시선을 빼앗긴 박 대표는 이곳에서 사업을 하기로 했다. 기획안의 제목은 ‘양양 보라카이’였다. 그다음 해운대에서의 경험을 살려 사람 한 명 없고 철조망까지 쳐져 있던 군사 작전 지역에 공유수면허가를 신청했다. 그리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해변을 임대하고 약 10평 남짓 공간에 컨테이너 두 대로 된 사무소를 차렸다.

애초에 서핑은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비즈니스에 대한 의욕이 충만했던 박 대표에게 서핑이 수익성 측면에서 그리 매력적인 콘텐츠가 아니었다. 100m 바다에 튜브는 1000∼2000개씩 띄울 수 있지만 서핑보드는 100개만 띄워도 꽉 차 수용 인원에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해변은 해수욕장이 아니라 구명 장비가 있어야 입수가 가능한 구역이었고, 서핑보드가 정식으로 등록된 구명 장비의 일종으로 튜브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이 박 대표의 눈길을 끌었다. 게다가 2010년 이후 스노보드 1세대들이 양양 죽도해변으로 건너와 스노보드와 유사한 서핑 숍을 하나둘 차리기 시작하던 상황이었다. 같은 1세대인 박 대표도 새로이 떠오르는 콘텐츠를 고려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긴 고민 끝에 박 대표는 해변에서 서핑 강습을 운영해보기로 했다. 새로운 플랫폼의 수익구조를 크게 네 가지, 서핑, 식음료(F&B), 기업 광고/파티, 숙박으로 나눠 기획했다. 그리고 이름 없던 해변에 ‘서핑 전용 해변’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붙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서핑 전용 해변을 만든 것이다. 박 대표가 경험을 통해 배운 로컬 비즈니스의 성공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고객에게 사랑받는 비즈니스
“도시가 줄 수 없는 것, 고객이 로컬에 기대하는 것을 줘라”
2030에 집중해야 바다가 건강해진다는 확신이 있었던 박 대표는 구체적으로 28세에서 38세까지의 구매력 있는 고객을 타깃으로 잡았다. 그리고 ‘100% 대한민국 청춘의 소유물’인 바다를 만들기로 했다. 처음에는 셔틀버스나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했지만 어린 학생들이 주로 필요로 하는 콘텐츠라고 판단해 과감히 중단했다. 돈을 내고 즐길 준비가 돼 있는 고객이라면 주로 자가용을 이용하고, 잠만 자는 곳인 게스트하우스보다는 펍과 라운지, 호텔, 리조트 등을 찾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 대표가 본 밀레니얼세대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최선을 다해 놀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서울의 ‘루프톱 신드롬’이 단적인 예다. 루프톱 임대료가 1층 건물과 맞먹을 정도로 인기를 끄는 것도 결국 평소와 다른 색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어 하는 열망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였다. 이들은 힘든 일상생활과의 ‘단절’을 원했다. 로컬은 그 열망을 가장 잘 충족할 수 있는 곳이었고, 고객이 원하는 경험을 제공해주는 것이 중요했다. 가령,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카페를 차려봤자 서울의 힙한 카페의 맛과 세련미를 따라가기는 힘들다. 공급자 중심 접근의 한계였다. 2030을 잡으려면 철저히 고객 중심으로,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줘야 했다. 바다든, 산이든 고객들이 로컬에서 기대하는 기본적인 감정을 녹여내는 게 핵심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로컬은 도시보다 확실하게 저렴해야 했다.

그렇게 박 대표가 바다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서핑이었다. 사실 서핑은 1년에 한두 번 배워서는 잘하기 어렵고, 이듬해 휴가철 즈음이면 또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할 정도로 몸에 익히기 어려운 레저다. 그는 이 때문에 서핑강습이 사실상 가르친다는 의미의 ‘강습’보다는 ‘체험’에 가깝다고 생각했고, 일회성 체험이라면 가격이 더 저렴해질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이에 따라 인근 해변에서 알음알음 서핑숍을 운영하던 로컬 서퍼들이 통상 1인당 8만∼10만 원까지 받던 강습료(보드 렌털 포함)를 6만 원으로 낮췄다. 처음엔 주변의 반발이 너무 심해 우선 7만5000원을 받았지만 다른 서퍼들에게 1년의 유예기간을 가지고 가격 인하의 효과를 지켜보자며 설득했다. 다행히 서핑의 인기가 올라가고 손님이 늘어나면서 주변에서도 가격 인하에 동조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가격은 지금의 6만 원이 됐다.

“스키장에서 일할 때 느꼈지만 보통 이런 리조트에 오는 분들은 1년에 한두 번 정말 어렵게 휴가를 내서 온다. 그런데 지역에 있으면 그 마음을 알기가 쉽지 않다. 한 철에 바짝 장사해 벌어야 하다 보니 조급하고 손님들 마음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을 돈벌이로 보는 순간 동네도 망하고, 서핑도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 대표의 말이다.

다행히 2015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 점점 서핑 붐이 일면서 입소문만으로 방문자가 늘기 시작했다. 이런 호조 속에서 박 대표가 서핑 다음으로 떠올린 건 바로 코로나 맥주였다. 맥주의 왕인 코로나를 빼놓고 바다를 논할 수는 없었다. 이에 서피비치는 사업 초기부터 3년간 코로나 맥주와 계약을 맺기 위해 공을 들였다. 마침 코로나는 ‘코로나 선셋(corona sunset)’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전 세계 유명 해변을 선정해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었고, 한국에서도 적당한 곳을 찾고 있었다.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박 대표는 연일 본사 담당자를 귀찮게 굴면서 양양을 방문해달라고 요청했다. 사실 ‘선셋’, 즉 일몰에 더 어울리는 바다는 당연히 동해안보다는 서해안이었다. 그러나 서피비치의 끈질긴 연락을 끝내 이기지 못한 코로나 담당자는 양양을 찾아왔고, 이날 하늘도 그를 도왔다. 좀처럼 보기 힘든 황홀하고 아름다운 석양이 양양의 바다를 물들인 것이다. 설악산 백두대간 넘어 양양의 노을은 코로나 담당자에게 감동을 안겨줬고 2016년 서피비치는 코로나와 계약을 따냈다.



2017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코로나 선셋 페스티벌’은 양양 서피비치가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고 급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스페인 이비사 등 유럽의 해변에서 주로 볼 수 있었던 세계적인 바다의 축제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사실만으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고, 2017년 8월 마지막 주 열린 이 행사엔 1만∼1만1000명의 참가자가 몰렸다. 장당 4만5000원의 입장권이 아깝지 않고, 이런 축제를 찾기 위해 해외로 나갔다면 지불했어야 했을 비행기 푯값 아꼈다는 후기가 관련 기사 베스트 댓글에 올랐을 정도로 축제는 대성공이었다. 이후 ‘코로나 선셋 페스티벌이 열린 곳’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더 많은 인파가 밀려들기 시작했고, 서피비치는 해변 파티의 메카로 떠올랐다. 서핑이라는 주간 콘텐츠와 음악과 춤이라는 야간 콘텐츠를 모두 잡게 된 것이다. 박 대표는 “바다에서 젊은 사람들이 가장 원하고 기대하는 것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옛날 해안가에 돗자리 깔고 밤새 통기타 치던 문화가 이제는 클럽 DJ의 음악이 있는 축제 문화로 바뀌었을 뿐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힘들게 유치한 코로나라도 서울시내 바에서 마시는 것보다 저렴해야 한다는 원칙엔 변함이 없었다. 이에 서피비치는 서울에서 병당 약 8000∼1만 원에 파는 코로나 가격을 6000원 이하로 낮추기 위해 ‘5+1’ 행사를 진행했다. 코로나를 5900원 선에 즐길 수 있게 하는 파격적인 연중 프로모션을 추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울 클럽에서 약 40만 원에 파는 모엣샹동 샴페인은 14만9000원에 팔기 시작했다.

서피비치는 또 이국적인 해먹과 비치 베드, 그늘막 등 시설 이용권과 코로나 맥주 한 병이 포함된 일일 패스를 1만 원에 제공하기로 했다. 맥주 1병 가격인 7000원을 제하면 사실상 3000원에 불과한 가격이다. 행인이 자리를 독차지하거나 점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요금을 받는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1인당 3000원이면 1만 명이 이용해봤자 3000만 원인데 이 돈 벌자고 요금을 받는 것은 아니다. 유료로 운영하는 것은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관리 차원이다. 어차피 서핑 강습을 듣고, 맥주를 마시고, 이용권을 구매하는 유료 손님은 전체의 10%에 불과하다. 90%는 공짜 손님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 90%가 우리의 해변을 SNS에 올리고 광고해주는 사람들이고, 서핑을 통해 만족감을 얻어가는 10% 외에도 90%가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박 대표의 말이다.


2. 주변 지역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비즈니스
“도시는 경쟁 때문에 망하고, 로컬은 ‘싸가지’때문에 망한다”
아무리 고향이라도 강원도로 돌아왔을 때 맨땅에서 사업을 시작하기가 말처럼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일단 바다로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허가를 받는 것부터 일이었다. 해변을 임대하는 공유수면허가부터 레저 인가, 음식점 허가, 사설 건축물 허가, 구조물 축조 허가 등 받아야 할 허가가 18종에 달했다. 갑자기 나타난 외지인이 듣도 보도 못한 허가를 자꾸 신청하자 군청 공무원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공연장 허가 같은 경우 강원도 전역에서 민간인이 신청한 첫 사례였다. 박 대표는 진입장벽을 뚫기 위해 매일 기획안을 들고 군청을 순회하면서 공무원들을 설득했다. 아주 작게라도 허가를 따낸 뒤 차근차근 범위를 늘리고 기간을 연장하며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하지만 허가가 끝이 아니었다. 외지에서 온 낯선 청년이 바다에서 전례 없는 일을 하기 시작하자 경계하는 지역 주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사업할 때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 서로 무리해서 몸집을 키우는 게 문제였다. 반면 로컬은 경쟁은 없었지만 주위 시선이 따가웠다.



2016년 건물이 지어지고 맥주와 버거 등을 파는 식음료(F&B) 사업이 본격화하자 ‘치킨 팔지 말아라’ ‘상한 햄버거를 파는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민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키니를 입고 까맣게 태닝한 채 인근 상점을 활보하는 젊은이들이 지역 어른들 눈에는 풍기문란으로 비칠 뿐이었다. 민가에서 한참 떨어진 해변에서 공연장 허가를 받고 음악을 트는 데도 경찰까지 대동해 항의하는 동네 어른들도 있었다.

그러나 워낙 작은 커뮤니티에 군수, 군의원까지 서로 다 안면이 있기에 이런 민원 하나하나 모른 척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특히 공유수면허가 등 대부분의 허가가 3년 단위로 갱신된다는 점에서 군청이 서피비치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엄청 많은 민원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정말 억울했다. 적법하게 사업하고 잘못한 게 없는데 경찰까지 왔다 간 날에는 억울한 마음에 밤새 술을 진탕 먹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날 문득 ‘누군가 나를 이토록 싫어한다면 뭔가 내 잘못도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지역 주민들이 오래도록 살던 터전을 갑자기 바꿔놓았는데 이 변화가 이분들이 원하는 방향과 다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자 처음엔 상식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던 반응들에도 좀 너그러워지고 어르신들을 존중하는 마음도 생겼다. 경쟁이 없는 곳에서 사업하고, 내 것이 아닌 바다에서 돈을 벌고 있으니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박 대표의 말이다.

이에 박 대표는 오래 돌아가더라도 지역과 대립각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웠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 사업을 하는 이유와 철학에 대해 지속적으로 알리기로 했다. 매년 두 차례씩 관광버스를 빌려서 주변 상권의 어르신들 30∼40명씩과 함께 여행을 다니고, 해마다 세 번씩 마을 잔치도 열었다. 또 지역 환원을 위해 번 돈의 일정 비율은 마을 발전 기금이나 장학금 등으로 기부했다. 인근 군부대를 대상으로는 무료 서핑 강습까지 진행했다. 허가를 받을 때마다 주변 동의서에 서명을 구하는 일도 점점 일상이 됐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도 점점 경계를 누그러뜨리고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상권이 살아날수록 인심도 넉넉해졌다. 처음에는 서핑을 위해 찾아온 젊은이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주민들도 청춘들이 점점 양양의 바다를 찾아오고 지갑을 열자 바다가 본인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강원도 지자체 차원에서 운영 기간을 45일로 제한하는 해수욕장과 달리 서핑은 연중 운영에 제한이 없어 자연히 주변 펜션 등 숙박업소나 식당 매출도 올라갔다. 최소한 날씨가 허락하는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은 수요가 꾸준했다. 평당 70만∼80만 원이던 인근 땅값은 2000만 원으로 올랐고, 이제는 오히려 젠트리피케이션 1 을 걱정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양양 죽도해변에 자리 잡았던 초기 서퍼들은 임대료가 싼 곳을 찾아 인구해변 등 주변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이제는 김장철이면 동네 분들이 박 대표에게 보낸 김치가 70통에 달할 정도로 서피비치는 로컬의 일부가 됐다.

“도시에서는 경쟁 때문에 망하는데 로컬에서는 ‘싸가지’ 때문에 망한다. 지역에는 기존에 일하던 분들이 있고, 새로운 로컬 비즈니스는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이들의 생활방식에 소음을 일으킨다. 기존 상인이나 거주민 중에는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동네 분들은 화가 나면 마을 진입로를 경운기로 막아 버리고 군청에다 민원을 넣어 허가를 못 내게 방해하기도 한다. 조금 잘나간다고 이런 지역 민심을 간과하거나 소위 ‘싸가지’ 없게 굴었다가 한순간에 망한 사업도 많다. 이처럼 동네 분들의 미움을 사면 절대 사업할 수 없다. 원주민들을 공경할 마음의 준비 없이 로컬 비즈니스를 시작해선 안 된다.” (박 대표)


3. 동료들이 힘들지 않은 비즈니스
“로컬은 도시보다 사람이 귀한 곳, 사람을 중히 여겨야”
로컬 비즈니스가 힘든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사람을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점이다. 서핑과 파티가 끊이지 않는 이국적인 해변이 관광객들에게는 천국일지 몰라도 직원들에게는 아니었다. 서피비치 자체는 아름답게 가꿀 수 있지만 서피비치를 벗어나면 영락없는 강원도 시골이기 때문이다. 연고도 없는 곳에서 열악한 주변 인프라, 쉴 때 영화 한 편 보기 힘든 삶을 견딜 수 있는 젊은 직원들은 많지 않았다. 동료들 외에는 지방에 친구도, 가족도 없는 경우가 많다 보니 ‘퇴근 후의 삶’ ‘워라밸(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도 다른 세상 얘기였다. 처음에는 서울 생활에 질려서 도망치듯 지방으로 온 직원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에 있는 또래와 처우를 비교하고 뒤처지는 느낌에 초조해했다. 1∼2년 정도는 괜찮다가도 3년이 고비였다. 20대의 젊은 혈기와 열정으로 뛰어들었다가 배우자를 찾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야 하는 30대에 접어들면 도시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고 양양 출신을 찾기엔 도시 생활을 경험해 본 사람들만큼의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인력이 드물었다.

시골살이 못지않게 힘든 것은 바로 불안정성이었다. 레저 산업 종사자들은 주로 시즌에만 바짝 수입이 있는 비정규직이고, 시즌이 지나면 벌이가 끊기는 경우가 많았다. 비수기와 성수기의 편차가 너무 큰 탓이다. 서피비치도 지금은 꾸준히 고객이 유입되고 있지만 사업 초반 방문객이 별로 없을 때는 극심한 보릿고개를 겪었다. 개장하고 첫 여름이 지난 직후인 2015년 8월엔 불확실한 미래를 견디지 못한 직원들이 단체로 그만두는 일도 있었다.




이에 박 대표는 보릿고개를 넘고 수익이 나기 시작하자 레저 업계에도 1년 내내 연봉을 받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수입 구조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성수기 기준 100명에 달하는 직원을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할 여력은 없지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로 한 것이다. 곧바로 직원 20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9개월 근무한 뒤 3개월은 100% 유급 휴가로 운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한여름에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인내심의 한계에 이르더라도 남은

3개월 휴가를 바라보며 동기 부여할 수 있게끔 만든 것이다. 작년에는 직원들과 다 함께 발리로 휴가를 떠나기도 했다. 물론 이런 혜택을 준다고 직원들이 이탈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유급 휴가가 지나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지금의 방식이 정답은 아닐지라도 사람을 중히 여겨야 성공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동료들을 정말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 사람들이 떠나면 비슷한 정도의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와서 빈자리를 메우기까지 오래 걸리고, 결국 불편을 겪는 건 고객들이다. 3개월 유급 휴가를 도입한 것도 최소한 1년의 4분의 1은 직원들이 온전히 회사 소속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라는 의미였다. 회사가 직원의 행복을 만들어줄 수는 없고, 떠나는 것을 말릴 수도 없다. 그러나 일하는 동안만큼은 최대한 덜 힘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올해는 서피비치와 조금 떨어진 몇몇 지역에 직원들의 사택을 마련해 일과 삶을 분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지속가능한 로컬 비즈니스

현재 서피비치의 주요 수익 모델은 기업 광고다. 바다를 찾는 청춘에게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경험을 제공하고, 공간에 대한 고객들의 사랑을 기반으로 광고를 유치하자는 게 서피비치의 전략이다. 실제로 젊은이들이 양양의 바다로 모여들자 광고주들도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작년 한 해 서피비치에서 촬영한 TV CF만 18편에 달한다. 박 대표에 따르면 다양한 브랜드 제휴와 광고 프로모션을 기반으로 매출은 2015년부터 매년 3배씩 늘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손님 1인당 서피비치에서 10만 원 이상 쓰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손님이 기분 좋게 도시로 돌아가고, 다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서피비치란 이름도 의도적으로 홍보나 브랜딩을 하지 않는다. 바다 그 자체로 빛나야 오래 생명력을 유지하는 명소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가령, 서피비치에 맥심 ‘카누’ 팝업스토어(임시 매장)를 운영하며 해변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공짜 아이스커피를 나눠주는 것도 단기적으로 서피비치의 커피 매출 손실을 가져다주지만 고객 경험을 극대화해 장기적으로는 더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올해 한시적으로 운영한 이 스토어는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인스타그램 포토존으로 떠오르며 더 많은 고객을 양양으로 끌어당겼다.



박 대표는 서피비치를 ‘해변을 운영하는 회사’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양양의 바다에 ‘세련됨’의 이미지를 붙인 것을 지금까지 회사의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그렇다면 박 대표가 꿈꾸는 로컬 비즈니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바로 양양의 해변을 ‘100년 가는 관광지’로 만드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계속해서 2030 고객의 사랑을 받고, 지역 사회에 도움을 주고, 동료들이 떠나지 않아야만 가능한 목표다. 청춘이 바다에 기대하는 것, 2030세대가 도시에서 해소하지 못했던 열망을 채워주기 위해 노력하면 로컬 비즈니스가 글로벌 무대에서도 먹힐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2018 남북정상회담 당시 방한한 CNN 등 외신 기자들이 ‘한국에 철조망 쳐진 곳에서 서핑하는 곳이 있다’며 우르르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그들 모두 아름다운 해변에 감탄하고 갔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철조망이 지금은 걷혀 아쉽긴 하지만 10년 안에 서피비치가 CNN이 발표하는 세계 10대 해변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콘텐츠는 바뀔지도 모른다. 해변에 풀빌라 리조트를 만들 수도 있고, 스시 한 점을 1000원에 파는 스시 바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동남아에서 배울 것도 많다. 그러나 강원도의 바다가 훨씬 깨끗하고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바다를 오래도록 사랑받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박 대표의 말이다.

양양 =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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