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부채대국' 일본, 골골대도 왜 그리스 꼴은 절대 안날까
※ '한중일 톺아보기'는 한국·중국·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슈를 살펴보는 연재코너입니다.
"일본 정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 비율은 선진국 최악 수준"-일본 재무성
현재 일본이 지고 있는 국가 부채는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많다. 정부 부문 전체 채무 잔고는 매년 늘어 올해 3월 기준 1216조엔(약 1경2488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GDP 대비 부채 비율은 256%로 세계 최대급이다. 그리스, 이탈리아는 물론 2019년 기준으로는 심지어 베네수엘라보다도 높았다. 이 정도 부채 규모면 웬만한 나라들은 국가 부도 사태에 몰리게 된다. 2015년 국가 부도를 맞았던 그리스의 경우 GDP 대비 부채 비율은 181%였다. 이 때문인지 재무성도 일본의 채무 비율을 "최악"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경제성장률도 턱없이 낮다. 올해 1분기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3분기 만에 다시 역성장을 기록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 도쿄 올림픽 특수로 회심의 전환을 도모했던 것으로 보이나, 코로나19 라는 복병을 맞았다. 그런데 성장을 거의 못하고 있는 데다 늘어만 가는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데도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일본이 그리스처럼 국가 부도를 맞을 확률은 희박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 경제는 거품이 꺼지기 직전인 1989년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14% 정도로 매우 건전하고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닥친 부동산, 건축, 금융에 이르는 복합불황 이후 헤이세이(平成) 내내 침체를 거듭하며 소위 '잃어버린 30년'이란 말이 나왔다.
일본 정부는 1990년대부터 복합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확장 재정 및 금융, 규제 완화 정책을 실시했다. 이후 국가 총부채는 급격히 늘기 시작해 2009년 GDP 대비 200%, 2012년 230%, 2014년 245%, 그리고 현재 250%가 훌쩍 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이처럼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의 원인은 크게 재정, 금융, 조세 정책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재정 확장의 경우 버블 붕괴 이후 대규모 재정지출을 감행하지 않으면 GDP가 버블 직전 대비 반 토막이 날 수 있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면도 있었다. 하지만 경기 진작을 위한 재정 투입은 별 성과 없이 고스란히 재정 적자로 이어졌고, 누적된 국가 부채로 이자 상환도 여의치 않아 이를 위해 또다시 부채를 발행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또한 일본은행은 물가 상승을 유도하기 위해 통화 확대 정책을 취했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디플레이션과 금융 부채만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990년대 후반 소비세 인상으로 재정 건전화를 도모하기도 했지만 일본 국민들의 소비 절약으로 인한 실질 수요 감소로 국가 부채는 더 늘어 조세 정책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저출산·고령화라는 사회 구조, 인구적 요인도 크다. 초고령화로 복지 예산 지출은 급증하는데 생산가능인구는 급감하니, 조세 수입은 감소하고 국가 부채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구조, 인구적 요인으로 인한 부채 증가는 여타 선진국과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의 정치력 부재도 한몫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전반적으로 재정 균형을 맞추기 위한 과감한 정책을 주도할 정치력이 부족했다. 자민당은 과거 고도 성장기를 이끌었지만, 여러 파벌로 이뤄진 정치집단의 성격 때문에 총리를 중심으로 강력하고 참신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운 경향이 있었다. 거품 붕괴 이후 역대 총리를 살펴보면 고이즈미와 아베를 제외하면 재임 기간이 대부분 2년 미만으로 단명에 그쳤다. 결국 일본은 다양한 경제·비경제적 요인이 만성 재정적자를 초래해 국가 부채 급증으로 정착하는 원인이 됐다.
이 같은 천문학적인 국가 부채 규모에도 일본 경제가 버티는 건 일단 다른 나라들과 달리 부채 대부분을 일본 금융기관들, 즉 일본 국민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저축률은 근래 마이너스에 이른 적도 있을 만큼 지속적으로 떨어져 왔지만, 일본 경제가 승승장구하던 시절인 1980년대 20~30%에 달할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저축으로 금융기관에 몰린 돈은 국가 부채 수요 충당에 쓰였다. 높은 저축률로 인해 국채 대부분을 일본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점이 엄청난 국가 부채를 뒷받침한 셈이다.
그리스의 경우도 일본처럼 돈이 부족해 국채를 발행해 빌려서 조달하고 있었다. GDP 대비 부채 비율은 1.4배 정도로 현재 일본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디폴트를 선언하고 말았다.
양국의 엇갈리는 상황은 국내에 존재하는 자금 차이에서 기인한다. 일본은 국내에 충분한 돈이 있지만 그리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스 정부가 발행한 국채는 거의 해외 금융기관이나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스가 재정이 어렵다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국채가 매물로 나왔지만, 매수자가 없어 가격이 폭락했고 위기는 가중됐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일본의 경우는 국채 소유자 90% 정도가 일본 기관과 투자자들이다. 정말 최악의 경우,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서 갚는 것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엄청난 채무에도 일본이 국가 부도가 날 확률은 매우 낮다고 평가되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일본의 대외순자산은 356조9700억엔(약 3684조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357조150억엔) 대비 460억엔(약 4692억원) 줄어들었지만, 1990년대 이후 30년째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여전히 많다. 대외 순자산은 해외에 있는 정부, 기업, 개인의 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으로, 말 그대로 일본이 해외에 갖고 있는 순자산이다. 해외에 건설한 공장이나 인수한 기업은 물론, 해외 주식 및 채권 투자가 모두 포함된다.
일본의 경제주체들은 버블 붕괴 이후에도 꾸준히 해외에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막대한 해외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20, 30년 전 등장했던 용어인 '와타나베 부인'은 단적인 예다. 와타나베 부인이라 불리는 일본의 개인투자자들은 장기 불황과 엔화 초저금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엔화로 해외 고수익 자산에 대거 투자했다. 한때 이들의 거래는 도쿄 외환시장 거래 규모의 약 30%를 차지한 바 있으며, 수년 전 미국 JP모건은 전 세계 금융시장에 흐르는 이들의 돈이 40조엔(약 417조원)에 달한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결국 일본은 빚이 엄청나지만 빌려준 돈도 많은 나라인 셈이다. 하지만 그리스의 경우는 다르다. 대외 순자산에 있어 그리스는 채무가 GDP를 넘어설 만큼 많았다. 이 점이 일본과의 큰 차이점이다.
또한 엔화는 국제 사회에서 금이나 달러처럼 안전자산으로 취급된다. 엔화는 달러, 유로, 파운드, 위안화와 함께 국제통화기금(IMF)의 SDR바스켓에 편입돼 있어 사실상 기축통화다.
만성 저성장으로 한때 미국에 이어 부동의 2위이던 경제 규모는 중국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엔화의 위상은 아직 견고하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미국 주가가 급락했을 때를 포함해 세계 경제위기가 닥칠 때마다 특이하게도 엔화에 대한 수요와 가치는 오른다. 따라서 엔화로 표시되는 일본 국채 역시 안전자산 취급을 받고 있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했듯, 과거 일본이 잘나갈 때 그리고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가 가파르게 절상될 때 미국 국채를 비롯해 해외 자산을 대거 사들였던 점이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경제위기 때 기축통화이자 안전자산인 달러의 가치가 높아지면, 보유하고 있는 달러 자산을 엔화로 바꾸려는 일본인들이 늘어나게 되고 엔화 수요가 증가하니 자연히 엔화 가치도 뛰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에 국채 대부분이 일본 내에서 소화되고 있는 점, 한국의 3배에 달하는 외환보유액도 사람들로 하여금 엔화가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엔화가 갖는 안전자산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랐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조짐이 보이고 있진 않다.
당분간 일본이 그리스처럼 국가 부도 사태에 이르게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막대한 빚을 매년 늘리는 상황은 결코 건전하지 않다. 일본의 대외 신인도가 하락하는 주요 요인은 재정적자와 국가 부채다. 일본은 만성 저성장과 생산가능인구 감소, 초고령화가 거대한 국가 부채라는 악순환으로 연계되는 형국이다. 게다가 경제특수는커녕 막대한 비용 부담만 남기고 끝날 것 같은 올림픽까지, 일본 경제의 미래는 절대 긍정적이지 않다.
하지만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이 있듯, 일본이 하루아침에 폭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잘나가던 시절 많이 벌어놓은 데다 국민들의 안정 지향적 성향 덕으로 보인다. 다만 활기를 잃은 노인이 시름시름 앓듯이 향후 일본 경제의 내리막은 가팔라질 공산이 크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국가 부채 비율이 낮아 재정이 건실한 편에 속한다. 2014년 이후 외채보다 대외자산이 많은 순채권국이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성장 촉진을 위해 부채 비율을 더 늘려도 된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도 근래 국가 부채가 빠르게 불어나 지난해 국가 부채의 증가 폭과 규모 모두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계부채 증가속도는 주요국 가운데 1위다. 코로나19 여파로 확장 재정은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2월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한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이 더 상승할 경우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특히 한국은 일본보다 국가신용등급을 더 철저히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엔화와 달리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은 주요국 가운데 한국이 맞이한 심각한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를 먼저 겪어 온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인구 감소를 전제로 한 경제모델을 경험한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현재 한국은 일부 산업과 경제지표에서 일본을 따라잡았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저출산과 고령화 속도도 일본을 넘어서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사례는 재정건전성 문제를 비롯, 여러모로 한국 경제에 있어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는 반면교사이자 제법 괜찮은 참고서로써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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