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법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 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 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뒤에 있다.

 












1. 
이 시인의 사랑법은 엄격하면서도 품이 넓습니다. ‘무애’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막히거나 거치는 것이 없음을 뜻하는 무애는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라는 전언과 통해 있습니다. 시쳇말에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다는 말이 있지요. 경우에 따라 바람둥이의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말을 철학적으로 사유하면 무애사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인간을 병들게 하는 큰 고통 중 하나가 집착임을 알아챈 그 옛날 한 멋쟁이 구도자가 양팔을 활짝 펼치고 무애를 춤추는 것, 노래하는 것 듣습니다. 구도행에 익숙한 시인의 삶이 세간과 출세간 사이에서 아슬한 경계로 버티고 있습니다.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라”고 합니다. 이 아슬한 팽팽함이 좋습니다. 그리고 기억하시길. 사랑은 ‘항상 함께’ 속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홀로 잘 존재하는 사람이 사랑도 잘 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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