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하여


1. 배경

 내 주변에 소설을 유난히 싫어하는 친구가 있다. 나는 소설에 꾀나 재미를 느끼는 터라, 왜 소설을 싫어하는지 궁금해서 그에게 물어봤다. 그는 어떤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삶에 무게에 눌려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고 했다. 또 심심찮게 바람피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보면 그들의 상식이하의 인생이 진열된 글을 읽는데 자신의 시간을 쏟는 것이 시간낭비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들은 나는 '아, 소설에 대해 이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감사하는 점은, 그가 소설에 대해 느끼는 나와는 상반되는 태도를 통해 '나는 왜 소설을 읽는가?' 라는 물음에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2. 소설을 읽는 이유 :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점이 흥미로왔나?(지극히 개인적인 주장)


ⅰ.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과 마주함으로써 새로운 생각의 영역 정립 그리고 통념에 묻혔던 생각들의 재정립 

 이 항목은 소설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다만 소설에서는 위와 같은 생각을 할 기회가 더욱 비번하게 제공된다는 것이다.

 그녀(사비나)가 이 교회에서 예기치 않게 만난 것은 신이 아니라 아름다움 이었다. 이 교회와 위령 기도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녀가 소란스러운 노래 속에서 며칠을 보냈던 청년 노둥대와 비물질적으로 유사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임을 그녀는 잘 알았다.미사는 마치 배반당한 세계처럼 느닷없이, 음성적으로 그녀에게 나타났기에 아름다웠다. 

 그날 이후 그녀는 아름다움이란 배반당한 세계라는 것을 알았다. 그 아름다움이란 박해자들이 실수로 어딘가에서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만 만날 수 있다. 아름다움은 노동절 행렬의 배경 뒤편에 숨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배경이 그려진 화폭을 찢어야만한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

 위의 대목은 소설 내의 등장인물인 사비나가 배신을 일삼는 심리적인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책의 표면적 내용만 이해 한다면 '사비나가 이러한 이유로 배신을 일삼는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사회적 통념상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배신을 자신의 인생에서 미덕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사비나의 태도를 보고 단순히 책에 적힌 내용만 이해하고 넘어갈 독자는 사실 없다. 위의 문단을 통해서 독자는 스스로에게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사비나가 위와 같은 이유로 배신을 일삼는 것이 과연 옳은 판단인지, 옳고 그름의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지, 더 근본적으로는 배신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까지 스스로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또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소설은 독자에게 다양한 것을 스스로 생각해볼 기회를 또 기존의 자신의 생각과 비교하고 그것이 그르다면 다시 재정립할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ⅱ. 심리분석

 소설의 꽃은 단연 등장인물과 그리고 인물 간의 갈등이다. 이는 소설 이외의 분야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참재미이다. 등장인물과 갈등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들의 심리 이해이다. 쉽게 말해 소설속 인물이 되어 입장바꿔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에 한발더 나아간 독자라면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것을 뛰어넘어 등장인물이 그러한 심리상태를 가지게된 더 근본적인 환경을 이해하고 그들의 심리상태를 정신분석학 입장에서 분석해보려는 시도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요코가 쉴새없이 아이에게 재잘대고 나간 뒤에도 그 목소리가 피리 소리처럼 여전히 주위에 여운을 남겨, 검게 번들거리는 낡은 현관 마루에 세워놓은 오동나무 샤미센 상자가 지닌 가을밤의 정적에도 시마무라는 왠지 마음이 끌렸다.
-설국 중에서

 주위의 환경이나 등장인물이 사소한 몸동작을 통해서 동장인물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기법이 매우 인상적이다.

 

ⅲ. 인생의 대리경험

 소설 속의 등장인물은 현실적이지만 현실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하곤 한다. 물론 그러한 등장인물의 경험도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가공된 것이지만 우리는 두 번 다시 살아 볼 수 없는 인생의 경험을 등장인물을 통해 대신할 수 있다. 


ⅳ. 작가의 숨겨진 의도파악

 소설은 말그대로 시작부터 마지막 마침표하나까지 작가에 의해 세심하게 다듬어진 가공품이다. 때문에 독자가 느끼기에는 사소하고 의미없는 것 같은 한 문장이라 할지라도, 작가는 수십번을 읽고 다듬고 글을 쓰기 때문에 소설내 어느 한 문장도 의미가 없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능숙한 독자는 소설의 문자를 초월하여 작가의 입장이 되어 소설을 볼줄안다. 작가가 어떤 방법으로 글을 구성하고, 다양한 표현 중 어떤 표현방법을 썼다는 것은 모두 의도된 것이며 작가의 입장에서 소설을 바라보면 글이 다르게 보일 때가 많다.


ⅴ. 한 번에 이해하기 힘든 소설의 한줄을 이해했을 때의 성취감

 지식제공을 목표로 하는 인문서, 자기계발서는 한 줄의 내용이 딱 그만큼의 내용만큼만을 독자에게 전달해 줄 수 있을 때 아름답다. 왜냐하면 지식전달이 주요목적이기때문에, 전달할 내용을 최대한 간결하게 전달하는 것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은 지식제공을 목표로 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한 줄의 내용이 딱 그만큼의 내용만을 담고있는 경우는 드물다. 때문에 깊게 이해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분야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것을 내포하는 한 줄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했을 때 그 성취감은 매우 크다.


ⅵ. 아름다운 표현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마치 내 온몸의 감각기관으로 전해지는 듯한 작가의 아름다운 표현이다. 때로는 사랑스럽고, 때로는 설레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무섭기도 한 훌륭한 표현들을 볼때면 글을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의 전률을 온몸으로 느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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