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 엽(落 葉)








저의 발끝이 머무는 곳엔 
 

고은 낙엽이 질 만한 나무가 없습니다.
 

타버린 마음 속엔 뿌연 먼지만 흩날리고
 

눈길이 닿는 곳은 이미 지쳐버려

고은 낙엽이 질만한 나무는 보이질 않습니다.






 

이따금 저는 상상합니다. 낙엽이 지는 소리를
 

낙엽이 떨어져 내리는 장면을
 

그 감촉을




 



사락사락 낙엽소리가 문득 궁금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여유가 없어, 아직은 여유가 없어
 

그저 새벽과 저녁으로 불어오는 

외로운 바람의 음성이
 

낙엽이 맞부딛히며 나는 소리기를

그만큼만

바래볼 뿐입니다.









사랑법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 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 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뒤에 있다.

 












1. 
이 시인의 사랑법은 엄격하면서도 품이 넓습니다. ‘무애’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막히거나 거치는 것이 없음을 뜻하는 무애는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라는 전언과 통해 있습니다. 시쳇말에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다는 말이 있지요. 경우에 따라 바람둥이의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말을 철학적으로 사유하면 무애사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인간을 병들게 하는 큰 고통 중 하나가 집착임을 알아챈 그 옛날 한 멋쟁이 구도자가 양팔을 활짝 펼치고 무애를 춤추는 것, 노래하는 것 듣습니다. 구도행에 익숙한 시인의 삶이 세간과 출세간 사이에서 아슬한 경계로 버티고 있습니다.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라”고 합니다. 이 아슬한 팽팽함이 좋습니다. 그리고 기억하시길. 사랑은 ‘항상 함께’ 속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홀로 잘 존재하는 사람이 사랑도 잘 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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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 - 장석남












더 작은 목소리로
더 낮은 목소리로, 안 들려
더 작은 목소리로, 안들려, 들리질 않아
더 작은 목소리로 말해줘
라일락 같은 소리로
모래 같은 소리로
풀잎으로 풀잎으로
모래로 모래로
바가지로 바가지로
숟가락으로 말해줘
더 작은 목소리로 말해줘
내 사랑, 더 낮은 소리로 말해줘
나의 귀는 좁고
나의 감정은 좁고
나의 꿈은 옹색해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너의 목소린 너무 크고 크다
더더 낮고 작은 목소리로 들려줘
저 폭포와 같은 소리로,
천둥으로,
그 소리로










 1. 총 21행으로 구성된 이시를 ...다음과 같이 나누어서 바라보았다.

1행~4행 : 더 작은 목소리로 ~ 말해줘
5행~10행  : 라일락 ~ 숟가락으로 말해줘
11행~12행  : 더 작은 ~ 말해줘
13행~15행  : 나의 귀는 ~ 옹색해
16행~17행  : 큰 소리는 ~ 크고 크다
18행~21행 : 더더 ~ 그 소리로

2. 이 시의 실마리는 13행~15행(나의 귀는 ~옹색해)와 16행~17행(큰 소리는 ~ 크고 크다)에 있었다.
나의 귀는 좁고/나의 감정은 좁고/나의 꿈은 옹색해/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너의 목소린 너무 크고 크다
: 나는 속좁은 사람이라 남의 말은 잘 못들어, 아니 안들어. 그런데, 너의 목소리는 한마디 한마디가 나에게 너무나 크게 들려....  너는 나한테 너무 특별한 존재라, 너의 눈빛, 너의 숨결, 너의 말하나하나, 너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에게 너무 크고 새로우며 신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사랑스러운 연인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 손가락을 까닥까닥
모습, 실핏줄이 비치는 얇은 눈꺼플을 깜박깜빡이는 그 모습 하나하나에 나의 마음에는 벚꽃색 바람이 부는 것을.

+이 구절을 보고 생각났던 노래가 하나 있었는데, 김광석의 '변해가네'. 변해가네의 가사의 한구절을 보자.



그리길지 않는 나의 인생을 
혼자남겨진거라 생각하며
누군가 손내밀며 함께 가자 하여도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가려했지

그러나 너를알게 된후
사랑하게 된후부터 
나를 둘러싼 모든것이 변해가네

-김광석 변해가네  


사랑하는 너로 인해 나의 모습이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3.  '더 낮은 목소리로 말해줘'의 구절에서 말해달란 말은 사전적 의미의 말하다의 의미일까? 
 여기서 '말해줘'의 의미는 말하는 하나의 동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가 만드는 모든 말과 동작을 '말해줘'라는 단어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4. 라일락 ~ 숟가락으로 말해줘
라일락 같은 소리로 말해줘.. 모래알 같은 소리로 말해줘.. 풀잎으로 풀잎으로.. 모래로 모래로.. 서정적이며 아름다운 노랫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바가지로 바가지로, 숟가락으로"는 왠말인가? 바가지와 숟가락은 일상의 의식주를 대표할만한 삶과 굉장히 맞닿아있는 사물들이다. 사랑하는 연인이 삶을 위해 보이는 아주 일상적이며 현실적인 몸동작들마저도 신비롭게 느끼는 심정아닐까?

5. 18행~21행 : 더더 ~ 그 소리로
 더 낮고 작은 소리로 말해달라더니 갑자기 폭포와 천둥과 같이 말해달라는건 무슨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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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어느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1. 이 시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이 시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7행 부터 10행까지였다.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의 구절을 너의 그리움의 나의 그리움에게 라고 고치면 감정이입에 더 효과적이었다.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너의 슬픔이 나의 슬픔에게 손을 주고
너의 그리움이 나의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나는 비록 슬프고 그리운 상태지만, (나로 인한 혹은 제 3자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을 가진 너가 나의 슬픔과 그리움을 끌어안았다는 시의 의미는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이 나를 위로했다는 점에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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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Just To Say
William Carlos Williams
 


I have eaten
the plums
that were in
the icebox

and which
you were probably
saving
for breakfast

Forgive me
they were delicious
so sweet
and so cold
1. 왜 이런 시가 미국에서 크게 사랑을 받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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