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를 어떠한 방법보다 확실하게 설명하는 방법은 코기토 철학이다. 이는 데카르트 자신도 인정하는 바인데, 그의 저서 방법서설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ego cogito, ergo sum)’라는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고,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가당치 않은 억측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주목하고서, 이것을 내가 찾고 있는 제일원리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방법서설 중에서]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이후, 절대 진리로만 여겨졌던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그 지위가 흔들리게 된다. 신학에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해결책을 제시해주던 교황청은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상처를 입게 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마저 르네상스 시대에 알려지기 시작한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해 위협받는다. 이것이 도그마의 위기이다. 절대적 진리인 도그마는 근대 이전까지 줄곧 사람들의 머리 속에 절대적인 진리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르네상스 이 후 도그마의 위기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기에 충분했다. 모든 것이 신으로 귀결되었던 때에 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은 정신적 카오스로 밖에 표현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도그마를 대신하기 위한 다른 진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때 데카르트가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자아 이다. 현재와 다르게 당시는 자아의 의식의 존재가 부정되지도 않았지만 인정되지도 않았다. 도그마의 붕괴 이전까지는 신이 모든 부족함과 궁금증을 대신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개인이 자아를 인식하고 자아의 자율성이 널리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아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필요했다.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라는 도구를 이용해 모든 것을 의심하고 증명하고 그리고 제외하며, 다음과 방식으로 자아를 증명했다. 먼저, 우리는 보고 느낌으로써 자아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말이다. 가령, 어떤 여인과 사랑에 빠진 이는 그 여인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인식할지 모르지만, 그러지 않은 이는 그 여인이 세상에서 가장 이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또한,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이 현실이 실제로는 현실이 아니라 꿈 속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지각으로 자아를 인식하려는 노력은 절대적인 자아를 찾는데 적절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지각이 아닌 머릿속의 정신적 이성으로 자아를 찾으려는 노력은 자아를 인식하는데 적절한 것인가? 이것 마저도 그렇지 않다. 천천히 눈을 감고 2+3 = 5 라는 수학적 공식을 생각해보자. 이러한 정신적 이성은 꿈에서든 현실에서든 항상 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 신체와 머릿속은 형태만 있는 껍데기일 뿐이고, 전지전능한 악마가 우리의 생각을 조정할 수 있다면 정신적 이성마저도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보자.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다고 하더라도, 꿈을 꾸고 있는 나는 존재한다. 내가 지금 전능한 악마에서 철저히 속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속임을 당하는 나는 반드시 존재한다. 이런 의심을 하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도, 의심을 하는 나는 존재한다. 나는 의심한다,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보통 코기토라고 불리는 바로 이것이 회의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데카르트가 찾아낸 절대 확실한 철학적 진리다. 그런데 코기토에 등장하는 는 무엇인가? 방법적 회의를 통해 내가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데 있어 나의 물질적인 부분, 즉 신체는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오로지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내가 존재한다는 결론에 영향을 주었을 뿐이다. 결국 코기토에 등장하는 는 사유하는 무엇 혹은 정신적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나의 정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금껏 살펴본 대로, 데카르트는 기독교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라는 두 도그마가 위기에 처한 시대에 새로운 도그마, 즉 생각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절대적이고 의심할 수 없는 진리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탄생한 자아는 개개인에게 신으로부터 독립적인 의미를 주게 되었다.

헤겔 법철학에서 그가 가장 기저의 전제로 두고 있는 것도 절대적 진리인 자아의 존재이다. 그의 저서에서 그는 자유의지를 사회의 법 이전에 존재하는 진리로 정의한다. 그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법의 지반은 도대체가 정신적인 것이며 또한 그것의 더욱 엄밀한 장소와 출발점은 의지이면서도 더욱이 자유로운 의지이다. 결국 이 자유야말로 법의 실체 및 규정을 이루는가 하면 또한 법의 체계는 실현된 자유의 왕국이며 더 나아가 정신자체로부터 산출된 제2의 자연으로서의 정신의 세계이다."(4)

이상의 인용문에서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의미 내용을 분석할 수 있다. 첫째로 법의 토대와 출발점이 정신으로서의 자유 의지라는 것이다. 둘째로 이러한 자유 의지가 법의 본성으로서 그것은 자신을 현실 세계에 실현하려는 목적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법철학에서 줄곧 견지하고 있는 자유의지는 자유의지라는 형태 이전에 자아에 대한 완벽한 인식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하다. 신에게서 독립된 절대적인 나의 존재(자아)가 있어야, 자유도 의지도 자유의지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와 헤겔의 법철학의 연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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