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두 번 태어난다는 말이있다. 제1의 탄생은 육체의 탄생이며, 제2의 탄생은 자아의 탄생이다. 난 전자의 탄생은 이루었지만 후자의 탄생은 아직 이루지 못했다. 내가 누군지, 또 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등 에 대한 자기 스스로를 곧게 새우는 정리가 마음속에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다행히, 시작은 한 것같다, 시작조차 하지 못한 인간들이 넘쳐나는데 말이다.) 그래서 일단은 , 잃어버린 나를 찾고 제2의 탄생을 이루고자 한다.

 지금 까지의 생각에 따르면, 인간이 사는데 필요한 철학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고 확립하는 철학, 둘째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인간 근본적 궁금증을 해결하는 철학, 세번째는 자신과 사회의 근본을 찾고 답하는 철학이다.

 첫번째 철학과 두번째 철학은 다행이도 걸음마는 띤 상태이다. 그러나, 아직 나는 세번째 철학인 나 자신과 사회에 관한 물음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첫번째와 두번째 철학을 상대하는 데만 해도 곤욕을 치루고 있기때문이다. 지금 여기에, 내가 지금 까지 생각해왔던 자아를 찾는 철학과 나와 타인을 대하는 철학에 대한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1. 나를 찾는 철학(한명에 대해서의 현실)

-인간의 궁극적 삶의 목표는 행복이며, 매시 행복하는 삶이 인간의 가장 이상적인 삶이다. 구체적으로는 행복하기 위해 가져야할 생각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잠시 생략하도록 한다.


2.나와 타인을 관계를 찾는 철학(두명에 대해서의 현실)

-이상적인 인간은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자신 이외의 타인과 함께 삶은 살아가게 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사람은 그의 부모, 자신이 살아온 환경, 만나온 사람, 교육받은 것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개개인마다 독창적인 인격을 형성하게 된다. 설령, 모든 삶의 조건이 같더라도, 인간마다 선천적으로 차이점이 있으리라. 

 사람마다 독창적인 인격을 갖는다는 말은, 사람마다 행복을 정의하는 기준이 다를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예를 들어, A라는 인간은 편하게 쉬면서 여유를 느끼는 삶을 행복이라고 여기는 반면, B라는 인간은 항상 열심히 노력하고 땀흘리는 삶을 행복이라고 여긴다. 이때, A와 B가 한 집에 살림을 차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삶의 패턴이 극명히 다른 둘은 불보듯 뻔하게 갈등 겪에 될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A라는 인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을 행복이라고 여긴다. 반면, B라는 자신의 소유물을 지키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기는 자다. 이때, A와 B가 한 집에 살경우, A는 B의 물건을 빼앗이 부를 쌓으려 할테고, B는 이에 대해 큰 불만을 갖게 될것이다.

 첫 번째 예는, 서로에게 직접적인 피해는 끼지 않지만, 다른 생활 패턴으로 간접적이 피해를 끼지게 될것이다. 또한 두 번째 예는 그릇된 행복의 기준을 가진 자로 인해, 어느 한 사람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게된다.

 이때, 하나가 아닌 둘의 현실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이 드러난다. 혼자서 사는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던 행복이 질이 좋은 종류건 좋지 않은 종류건 그것은 생각할 바가 아니다. 그저, 그 행복을 누리기만 하면된다. 그러나 둘의 현실에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해야한다는 전제에, "그러나 그 행복은 타인의 행복을 방해하면 안된다"라는 조건이 붙는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신이 정의하는 행복이 소중한 만큼, 타인이 정의하는 행복도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나와 타인의 관계에서는 개인은 쾌락을 최대로 누리지만, 그 것이 타인의 행복을 침해한다면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행복을 누리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3.나와 사회의 철학(세명 이상의 현실)

 위에서 자신과 타인의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다. 그렇다면, 셋 이상의 여러사람이 모인 현실에서 인간은 어떻게 이상적 삶을 영위해야 할까? 자신과 타인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자신의 행복만큼 소중한 타인의 행복이 자신이 쾌락을 누리는 과정에서 상처받지 않겠다 '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살아가면 된다. 이는 분명, 행복을 누리는 것에 있어 아무런 제한이 붙지 않는 혼자의 현실보다는 골치아프지만, 셋 이상의 여러 사람의 모인 현실은 그 양상이 더욱더 복잡해진다. 셋 이상의 여러 사람의 모인 현실에서는 타인의 행복권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양하고 다른 여러 행복의 기준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타인의 행복권에 대한 이해조차도 다른 어떤 이의 행복권을 침해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부터 인간은 '법'이라는 도구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 법은 분명, 인간의 자유를 법이라는 울타리 안에 가둘 염려가 있지만, 타인의 행복마저 침해하는 자유로운 행복권은 이미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신이 정의하는 행복이 소중한 만큼, 타인이 정의하는 행복도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즉, 셋이상이 모인 현실에서 인간은, 여러사람의 뭉쳐진 행복을 기준으로 그 행복들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조건 안에서 법을 만들어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일 것이다. 때로는 행복을 위해 자신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불만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행동이 타인을 행복을 침해한다면 절대 용서될 수 없다. 진정 자유로운 행복을 원한다면, 그가 사회를 떠나 홀로 삶을 사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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