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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제도는 8세기 경,프랑크 왕국이 이슬람 교도의
침입에 대비하여 신하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고
기사를 양성하도록 하면서 지배계급 상호간에 형성된 주종관계를 말한다.

이렇게 왕에게서 토지를 나누어 받은 왕의 제후,
신하,사제들은 각 지방의 영주로서 자체적인 기사를 양성하고 농민들에게 토지를 경작하게 하여 소작세등
각종 세금을 부과하고 유사시 전쟁에 참가하거나
노역을 시키는 계약관계를 맺었다.이를 장원제도라
한다.

중세 유럽은 정치적으로는 왕과 신하 사이에 봉토
를 기반으로 주종관계 계약을 맺은 봉건사회였으며
경제적으로는 농노의 노동을 중심으로 경제가 돌아
가는 장원제도가 형성되었다.

장원이란 지방 영주의 지배를 받는 작은 마을을
말하는데 지방 영주는 이곳에서 왕과 같은 권력을
누렸다.

장원의 한가운데는 영주의 성이 자리잡고 있었고
교회는 대표적인 장원시설이였다. 농노들은 교회에
십일조를 받치고 교회 행사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했다.

농노는 농민과 노예를 합친 말로 농노는 농토를
경작하여 영주에게 소작료,결혼세,사망세등 각종
세금을 영주에게  받쳐야 했으며 각종 노역에 동원
되었고,거주의 자유를 가질 수 없는 반 노예의 신분
이였다.


봉건제도는 게르만 족이 서로마를 멸망시키고
통치기반으로 카톨릭 교회를 받아들이면서 중세적,
기독교적 국가로의 형성 과정에서 발생된 것이다.
카톨릭 교회는 세속적인  국앙의 세력과 결탁
하여 봉건제도를 등에 업고 확대되었다.

기독교는 단지 개인적,내면적 신앙이 아니라 교황,주교,장로,사제,평신도로 이어지는 위계
질서는 봉건사회 질서를 구성하는 형성원리가
되었다.


사제는 제후와 더불어 봉건사회의 대토지 소유주가

되었고 그 자신이 봉건사회의 지배계층의 한 세력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이후 카톨릭 교회및 수도원은 봉건사회에서 사상적

생산을 독점하였고 이는 기독교 사상의 신학적
이론을 제공하는 스콜라 철학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것은 카톨릭 교권의 신장과 병행하여

기독교적,봉건제적 이념을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사상은 결국 중세유럽사회가 봉건사회의

불평등한 위계질서와 신분질서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장원제도는 중세 유럽의 군사적 경제적 기본 체계이기도 했지만, 농민들에게는 많은 고통과 부담을 주는 제도였다. 영주에게 바치는 소작료나 터무니없는 세금 명목들로 농민들은 착취 당했다.노예인 농노는 물론이고 자유민과 농민도 마찬가지 였다.  


장원제도는 14세기 십자군 전쟁 이후 교역과 경제 발달로 점차 해체되기 시작 했다. 영국에서는 화폐 경제가 발달되어 영주들이 받는 세금도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마침내 영주들의 권한도 축소되어 간다. 1381년 영주가 지배하는 장원 제도에 반발하여 영국 남동부에서 일어난 ‘와트 타일러의 난’ 을 계기로 하여 영국의 장원 제도는 해체되기 시작한다. 영국은 유럽에서 장원 제도가 가장 먼저 해체된 국가 이기도 하다. 그 결과  젠트리(gentry)계급이 탄생 했다. 농민보다는 높고 귀족보다는 낮은 계급의 새로운 계층이다.  


젠트리 계급은 오늘날로 보면 일종의 중산층 계층
이라고 할 수 있다. 16세기 중반부터 약 1세기에 걸쳐
영국 사회에서 그들의 지위와 경제력은 현저히 상승
되었다. 하원 의원이나 지방 행정을 장악 하는 등,
당시 영국의 가장 유력한 사회 계층이 되었다.

후일 이들의 주도로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고, 영국
민주주의 혁명의 주도 세력으로 성장 하였으며
신대륙으로 건너가 오늘날의 미국을 건국하는
핵심세력이 되었다.


철학이 정의의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면 정의의 관점에서 중세유럽 봉건사회의 장원제도는 심각한

자원배분의 왜곡을 일으키고 있다.영주가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봉토는 사실 국민들이 골고루 나누어 가져야

할 공공재이다.공공재를 사유재로 특권계층에 나누어

주고 그 공짜 땅으로 영주들은 호위호식하면서 중세

시대는 암흑의 시대가 된 것이다.


하느님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기독교 교리는

스스로 엄격한 교황,주교,장로,사제,평신도의 위계

질서를 만들어 봉건사회의 든든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토마스 아퀴나스 등 스콜라 쳘학자들은

철학을 이용해서 기독교 사상을 이성적으로 증명하는 작업에 몰두하였고 교황은 기독교를 정치적으로

세속화하면서 중세 암흑시대를 공고히 하는데

일조하였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

의 충돌은 중세 봉건시대의 경제상황과 무엇이 다른가?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노력에 합당한

댓가를 가져간 것인가? 사회시스템의 미흡으로

인한 불로소득이 끼여 있지는 않은가?


500년 후에 미래의 지식인들은 지금 우리의 자본주의

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혹시 우리가 중세유럽의

봉건사회의 장원제도를 질타하듯이 우리의 자랑거리

자본주의를 질타하지는 않을까?


철학은 정의고,정의는 공정한 분배고,공정한 분배는

공동체 전체가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 사회시스템의
발굴,정착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경제 시스템이 혹시 중세
유럽의 봉건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또다른 장원

제도는 아닌가?심히 의심스러운 시대 환경이다.


 ᆢ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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