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걸린 양적긴축, 달라진 금융시장
이효석의 주식으로 보는 세상
FOMC 의사록에 등장한 “양적 긴축”
작년 12월 진행된 FOMC 회의에서 연준 의원들이 어떤 이야기들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의사록이 발표됐습니다. 그런데 그 회의록 안에는 우리가 그동안 듣지 못했던 표현이 들어있었습니다. 바로 “양적 긴축”. 이에 깜짝 놀란 시장은 급락했습니다. 오늘은 이 양적 긴축의 의미와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양적 완화, 양적 긴축이란?
어떤 표현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말의 반대말을 알면 됩니다. 양적 긴축의 반대말은 “양적 완화”입니다.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란 연준을 포함한 중앙은행이 국채 매입 등의 방식으로 통화를 시중에 직접 공급해 경기를 부양하는 통화 정책을 말합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막기 위해 처음 시도된 이후, 양적 완화와 관련된 여러가지 용어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요.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통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제가 미국 정부이고 ××은행이 연준이라고 가정해봅시다. 작년 제가 코로나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급하게 ××은행에 가서 1억원을 대출받았다고 칩시다. 그럼 저에게는 현금 1억원이 생기고 은행에는 ‘이효석에게 받을 돈’이라는 글이 써 있는 종이 쪽지(대출 채권)가 생깁니다. 은행에겐 자산이 생긴 것이고 저에게는 현금이 생긴 것이죠. 이렇게 제가 XX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과 미국 정부가 발행한 채권 일부를 연준이 사주는 것이 거의 동일한 메커니즘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완전히 똑같지 않고 ‘거의’ 동일하다고 한 건 연준이 직접 미국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작년에 1억원을 대출받았는데 저는 올해 또 은행에 가서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돈이 더 필요하니 1억 원을 더 대출해 달라고 말이죠. 너무 당당하게 이야기하니 이상하긴 하지만 은행은 빌려줍니다. 제가 대출을 계속 받으면 받을수록 은행에는 대출 자산(채권)이 늘어납니다(A단계).
그러던 어느 날, 은행이 제게 전화해 “이제는 1억원씩이나 계속 빌려주기는 어렵고, 5000만원씩만 더 빌려주겠다”고 합니다. 매년 1억원씩 빌려서 생활하다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규모가 줄어서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대출을 안 해주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기분이 나쁘진 않습니다. 이것을 테이퍼링(Tapering)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테이퍼링은 돈은 계속 빌려주지만 빌려주는 돈의 규모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합니다(B단계). 연준은 올해 3월까지 테이퍼링을 끝내기로 했습니다.
또 그러던 어느 날, 은행이 제게 “이제는 더는 돈을 못 빌려주겠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불쌍해서 매년 대출을 더 해줬는데 이제는 먹고살만 해진 것 같으니 더 빌려줄 필요 없지 않느냐고 말이죠. 대신 지금 있는 대출은 만기가 돼도 갚지 않고 계속 그대로 쓸 수 있도록 연장해주겠다고 합니다. 매년 돈을 더 빌려주던 것에 비하면 분명히 아쉽긴 하지만 저도 어려운 상황은 지나갔으니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대출을 갚으라고 하지 않고 계속 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은행 입장에서는 만기가 된 종이 쪽지를 다시 사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준의 입장에서는 재투자를 한다고 하지요. 미국 정부에서 발행한 국채가 만기가 되면 원금을 상환해야 하지만, 그러지 않을 수 있도록 연준이 그 원금만큼을 시장에서 다시 사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재투자라고 합니다(C단계). 세번째 QE가 종료한 2014년에도 이렇게 재투자는 계속 했던 기간이 있었는데요. 사실상 이 기간이 2년이나 지속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은행은 한 발 더 나아가서 이제 원금을 갚으라고 합니다. 좀 많이 섭섭했지만 언제까지 대출을 늘리기만 하긴 어려우니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되면 드디어 은행에 있는 대출 자산의 규모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D단계). 이처럼 연준이 들고 있는 대출 자산이 줄어든다는 것은 재투자를 중단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처럼 재투자를 중단하거나, 오히려 들고 있던 대출 채권을 파는 상황(저에게 빌려준 돈을 회수)을 양적 긴축이라고 표현합니다.
중요한 내용이니 포물선 운동 비유를 통해 한 번 더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공을 하늘로 던지면 공은 포물선 운동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 공은 위로 빨리 올라가다가(A단계), 점점 속도가 줄어드는 구간을 거쳐(B단계), 하늘에 아주 잠깐 멈췄다가(C단계),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하지요(D단계).
포물선 운동과 제가 은행에서 대출받는 상황을 연결 지어 생각해보면 A구간은 제가 매년 1억원씩 대출을 더 받는 상황이고, B구간은 매년 추가로 받는 대출이 5000만원으로 줄어든 상황을 의미(테이퍼링)합니다. C구간은 대출을 추가로 해주진 않지만 만기를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쓸 수 있는 구간을 의미합니다.
테이퍼링과 긴축의 차이
정리하면, 연준이 양적 완화의 규모를 줄이는 테이퍼링은 긴축 구간이 아닙니다. 그러나 재투자를 하지 않아서 연준의 자산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상 진정한 의미의 긴축이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 연준은 테이퍼링을 종료한 이후 시장이 적응을 할 때까지 약 2년 동안 연준의 자산이 유지된다는 의미의 재투자를 해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를 것 같습니다. 지난 시간에 알아봤던 것처럼 인플레이션에 좀 더 진심이 된 연준이 금리 인상뿐 아니라, 양적 긴축까지 빠르게 진행한다면 이는 본격적인 긴축을 의미하게 되는 거죠.
시장의 반응은?
일단 ‘양적 긴축’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언급된 이 의사록이 나온 직후 시장의 반응을 보면, 금리가 크게 올랐고 나스닥 주식이 급락했습니다. 글로벌 자산 가격이 동반 하락한 셈인데요. 이 흐름을 이해하려면 2가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금리는 모든 자산의 적정가격을 계산할 때 분모에 들어가는 값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금리의 상승은 대체로 모든 자산의 가격에 부정적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 먼 미래에 좋아질 것이라고 예상 또는 기대되는 자산일수록 그 영향이 크게 나타난다는 것도 중요하지요.
금리가 올라가면 유독 더 심각한 영향을 받는 자산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위기에 취약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신용 등급이 낮은 기업의 주식 또는 그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인 정크본드, 외화부채가 많은데 경제 상황도 좋지 않은 터키 등 국가들의 채권이나 환율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레버리지를 많이 쓴 상황일 때 더 위험할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사실상 연준의 긴축은 시작되었다고 봐도 될 것 같으니, 혹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자산에 문제가 없는지 구체적으로 점검해 봐야 할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